18. 곽자의를 대신한 임회왕 이광필 18. 곽자의를 대신한 임회왕 이광필(臨淮代汾陽) 곽자의(郭子儀)가 하양(河陽)에서 수도 장안(長安) 조정으로 돌아가게 되자 이광필(李光弼)이 그를 대신하여 군대를 통솔하게 되었다. 옛 진영에 옛 병사와 옛 깃발 그대로였지만 이광필이 한 번 호령하자 모두 정예병사들로 바뀌었다고 한.. 中文史哲/唐國史補 2012.06.05
17. 장구령을 그리워했던 현종 17. 장구령을 그리워했던 현종(玄宗思張公) 현종이 촉(蜀)땅에 이르면 늘 장구령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소주(韶州)로 사람을 보내 제사를 지내고 아울러 재물과 돈을 주어 그 가족들을 도와주었다. 제문을 백석산(白石山)의 옥벽 간에 새겨두었다. (玄宗至蜀, 每思張曲江1)泣下. 遣使韶州祭之, 兼賚.. 中文史哲/唐國史補 2011.07.03
16. 비단신 만져보는데 일백 전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16. 비단신 만져보는데 일백 전(百錢玩錦靿) 현종이 촉 지방으로 도망하다 마외 역참에 이르러 고력사(高力士)에게 명하여 양귀비더러 불당 앞의 배나무 아래에 목을 매어 자결하라고 하였다. 마외 객사를 운영하던 한 할머니.. 中文史哲/唐國史補 2010.08.03
15. 양귀비의 여지 사랑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15. 양귀비의 여지 사랑(楊妃好荔枝)1) 양귀비(楊貴妃)는 촉(蜀) 지방에서 태어나서 여지(荔枝)를 무척 좋아하였다. 남해(南海)에서 나는 여지가 촉 지방에서 나는 여지보다 훨씬 나아서 매년 날 듯이 말을 달려 남해의 것을 운반.. 中文史哲/唐國史補 2009.12.01
14. 모반을 꿈꿨던 안록산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14. 모반을 꿈꿨던 안록산(安祿山心動) 안록산(安祿山)은 은총이 점점 깊어지자 임금 앞에서 응대할 때에도 농담을 섞어 하였고, 양귀비 또한 항상 곁에 앉아 있었다. 현종이 영을 내려 양씨가의 세 부인들을 안록산과 의형제를.. 中文史哲/唐國史補 2009.12.01
13. 혼감을 놀린 장제구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13. 혼감을 놀린 장제구(張公戱渾瑊) 태사(太師) 혼감(渾瑊)은 나이 11세 때 아버지 혼석지(渾釋之)를 따라 변방을 지키러 나갔다.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 장제구(張齊邱)가 놀리며 물었다. “유모를 데리고 왔느냐?” 그 해 혼.. 中文史哲/唐國史補 2009.12.01
12. 왕유의 탁월한 그림 감정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12. 왕유의 탁월한 그림 감정(王摩詰辨畵) 왕유(王維)의 그림은 절묘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평담하면서 그윽한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산수화에 특히 뛰어났었다. 지금 소국방(昭國坊)에 위치하고 있는 유경휴(庾敬休) 집.. 中文史哲/唐國史補 2009.12.01
11. 바둑 두는 소리를 들은 왕적신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11. 바둑 두는 소리를 들은 왕적신(王積薪聞棋) 왕적신은 바둑의 변화를 터득하고서 스스로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서울로 나들이를 가다가 어느 객사에서 묵게 되었다. 등잔을 끄고 자려다가 주인 할머니가 .. 中文史哲/唐國史補 2009.12.01
10. 최령의 노여움을 샀던 호추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10. 최령의 노여움을 샀던 호추(胡雛犯崔令)1) 이원제자(梨園弟子)인 호추(胡雛)라는 예인은 피리를 잘 불어 황제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 일찍이 그는 낙양령(洛陽令) 최은보(崔隱甫)의 노여움을 산 적이 있는데 바로 궁중으로.. 中文史哲/唐國史補 2009.11.10
9. 이양빙의 소전체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9. 이양빙의 소전체(李陽冰小篆) 이양빙(李陽冰)은 소전(小篆)에 뛰어났다. 자칭 “소전은 이사(李斯) 영감 이후로 바로 이 몸을 으뜸으로 친다. 조가(曹嘉)와 채옹(蔡邕)은 언급할 만 한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개.. 中文史哲/唐國史補 2009.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