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장
검은색 벤츠 승용차가 천천히 강북선창의 정문으로 새로 닦은 공장부 사무동 문 앞에 멈추었다. 차 문이 울리더니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소우로우”는 의기양양하게 “핸드폰”을 들고 차에서 내려 머리카락을 정리한 다음 빠르게 사무동으로 들어간다.
길을 건너던 간부와 노동자들이 멀리서 흔치 않은 호화 승용차를 훑어보고 있다. 똑같이 양복을 매끈하게 차려입은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부드러운 천으로 세심하게 검은 광택이 나는 차를 닦는다.
류얼이 뒷좌석 소파에 반쯤 누워서 시가 담배를 피우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우로우”가 바삐 사무동 건물 문 앞 계단을 내려와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보인다. 류얼에게 보고한다.
“총재님! 형수님께서 사무실에 계시지 않고, 1호 도크의 조선대에서 공사팀을 조직하고 있다고 하는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류얼은 눈을 부릅뜨고 싸늘하게 명령한다. “가서 찾아봐!”
“예!” “소우로우”는 목을 움츠리고는 앞차의 문을 미끄러지듯 나간다.
류얼은 담배연기를 내뿜는데, 냉혹한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다.
열기 등등한 조선대 공사장에서 “소우로우”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꾸야훤을 찾아내어 굽신거리며 간청한다.
“전 바빠요! 나중에 봐요!” 꾸야훤은 차갑게 말한다.
“소우로우”는 그녀의 뒤를 따라 돌면서 “형수님! 형수님 제 말 좀 들어주세요......”
“누가 당신의 형수예요?!” 꾸야훤은 화를 내면서 그의 치근거리는 말을 잘랐다. “내 길을 막고 있는 것 안보여욧?!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소우로우”는 정말 끈질겼다. 헤헤거리며 그녀에게 달라붙어 말한다. “형수님! ......공장장님! 보세요, 총재님께서 아주 먼 곳에서 순전히 형수님을 보자고 오셨으니 어쨌건 약간의 체면이라도 좀 세워 주시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 같은 동생들이 설명하기 곤란하잖아요! 형수님이 체면을 좀 봐 주십시오. 싫건 좋건 몇 분간만이라도 총재님을 좀 만나주시면 됩니다......”
꾸야훤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춘다. “그 사람 어디 있어요?”
“저기, 벤츠 차안에 계십니다! 차안이 넓고 에어컨도 있으니 말씀 나누시기도 편할 것 같은데......” “소우로우”는 의외로 기쁜 듯이 말한다.
“전 그 사람 차 안 타요! 그 사람더러 강변으로 가라고 하세요! ......”
“예! 좋습니다! 형수님 조금 일찍 가주십시오! ......”
꾸야훤은 벌써 몸을 돌려 공사가 진행중인 인파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초봄의 태양은 따뜻하게 세차게 흐르는 강물 위를 내리쬔다.
떼를 지은 백사장의 비둘기들이 기선이 일으키는 물보라를 쫓는다.
모래톱에 구불구불한 두 줄기의 발자국이 남았다.
날이 선 양복을 입은 류얼과 노동자 복장을 한 꾸야훤이 강변 모래톱의 작은 길을 천천히 걷고 있는데, 두 사람의 옷차림이나 안색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급한 일로 절 찾은 것 아닌가요? 어떻게 말씀 안 하세요?” 꾸야훤이 물었다.
류얼은 따스하게 미소를 짓고는 눈은 앞을 향해 본다. “아주 오랫동안 당신과 같이 산보를 못했구려. 여기 분위기 얼마나 좋아! ......”
“전 정말로 당신하고 여길 산보할 시간 없어요. 특별한 일 없으면 전 돌아가겠어요.” 꾸야훤은 냉랭하게 말하고는 몸을 돌린다.
“야훤!” 류얼이 불렀고 꾸야훤은 멈추었다.
류얼이 그녀의 곁으로 가서 화가 나서 시퍼런 얼굴을 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우리의 관계는 정말로 회복할 수 없는 건가? 당신 속마음을 말해봐.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떠나도 좋아! 나도 당신에게 구걸하지 않겠어!”
꾸야훤의 눈에 눈물이 비치더니 고통스럽게 말한다. “그래요.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은 변했어요......난 차마 불쌍한 천천을 다시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잘 알겠어.” 류얼은 조용히 시가 담배를 꺼낸다.
두 사람은 애정의 파멸을 고통스럽고 분명하게 의식했지만 둘 다 딸에게 상처와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멀리 “소우로우”는 강변에서 심심한 듯 돌을 던지고 있다.
“천천은 이제 다 컸어......” 류얼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만약에 우리가 헤어진다면 그 애는 날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난 여자 없이는 괜찮아. 하지만 딸의 사랑 없이는 안 돼......”
꾸야훤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눈물을 머금으며 이 무정한 남자에게 말한다. “당신 너무 이기적이에요! 당신 마음 속에는 영원히 당신 자신뿐이에요. 영원히 외로운 사람이 될 거예요! 천천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걔의 아버지로 어울리지 않아요! 당신은 어떤 사람의 사랑과도 어울릴 수 없어요!”
꾸야훤이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다 류얼에게 꼼짝 못하도록 잡혔다. 그녀는 발버둥쳐봤지만 집게 같은 류얼의 큰손을 뺄 수 없게되자 굴욕적으로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강바람이 그녀의 옷깃으로 불어왔고 파도소리가 세찼다.
두 사람은 이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다른 일 좀 말하지!” 류얼은 마침내 침착해졌고, 집게 같은 손을 풀고 아내 주변에서 왔다갔다하며 말한다.
“더씬그룹이 국영 쟝베이춰안뿨슈짜오창(江北船舶修造廠; 강북선박수리제조공장)을 인수하는 것과 미국의 젠스그룹과 합자하여 ‘더씬춰안뿨여우씨앤꽁쓰(德信船舶有限公司; 덕신선박유한공사)’를 창립하는 것에 관한 가능성 보고서는 이미 계획경제위원회를 통해 시당위원회와 시정부 책임자의 손에 들어갔어. 이것은 산청의 개혁개방에 있어 획기적인 조치여서 틀림없이 시 전체는 물론 전국에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거야! 난 당신이 회사의 부회장 겸 사장을 맡아서 대단히 발전 전망이 있는 이 사업에 참가할 수 있기를 바래. 당신 생각해봤어?”
“쟝베이춰안창(江北船廠)의 법인 대표로서 이따위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계획에 난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단 말예요!” 꾸야훤은 기업책임자의 위엄과 자신감을 회복하고는 차갑게 말한다. “인수라고? 당신이 뭘 믿고 인수한다는 거예요? 국유기업의 재산권, 다시말해서 재산의 소유권, 경영권, 처분권은 모조리 국가에 귀속되어 있어요. 당신 돈 있으니 살 수 있겠네?! 당신도 김칫국 너무 마시지 말아요!”
“재산권 제도의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추세지. 당신 하필이면 그런 하찮은 일에 크게 놀라고 그래?!” 류얼은 냉정하게 반박한다. “전통적인 경제 체제 아래 우리나라의 재산권 제도는 자체적으로 큰 폐단을 안고있지. 주로 생산력 수준이 낮은 조건 아래 단편적으로 규모가 크고 집단화 수준이 높은 생산수단소유제 형식을 좇는데서 나타나지. 그리고 재산권제도의 수립, 운영과 변동 등등이 또 사회생산력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표준을 벗어났고, 기업경영과 시장수요의 관계를 단절하고 말았지. 이런 교훈이 아직도 심각하지 않단 말이야?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소유제는 단지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라고 여겼지. 당신이 하필이면 이런 낡아빠지고 해마다 적자로 상여금조차도 지급하지 못하는 국유기업을 위해 소리를 높이고 그래? 그따위 기업이 파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당신은 국유와 국영의 두 가지 신분과 두 가지 지능을 가진 기업법인이지만 당신에게 진정한 자주권이란 게 있나? 당신이 정녕 국가를 대표할 수 있을까?!”
기세 등등한 류얼의 “재산권 이론”이 꾸야훤을 순간 반박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나 그녀는 감정상 받아들이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갑자기 화제를 돌려 오만한 남편을 주시하며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기왕에 낡고 파산할 지경인데, 당신이 뭐 때문에 이 회사에 이렇게 큰 흥미를 느끼죠? 당신이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 거래하고자 하는 것은 음침한 보복심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요? 당신 능력 되니까 가서 신화과학계기공장이나 인수하시지! 당신이 가서 주인 하라고!”
류얼은 참지 못하고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웃는 얼굴을 거두고 냉소하며 말한다. “완전히 여자의 의견일 뿐이야! 당신이 생각해낸 것에 불과하지! 내가 무엇 때문에 신화과학계기공장을 인수해야 하지? 그것이 내게 높은 이윤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당신은 나의 돈이 몇 백 사람들을 먹여 살릴 정도로 많아야 내 보복심리를 채울 거라 생각하지. 그렇지? 당신은 크게 틀렸어! 당신은 진정한 기업가의 큰 포부를 전혀 이해 못해! 내가 지금 손해를 보고서라도 이 낡아빠진 선창을 인수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장래에 나를 세계로 나아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 산청은 내륙 항운의 최대 황금항구를 끼고 있고, 내지의 최대 경제특구라는 특별우대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두터운 공업적 기초와 무역의 우세를 지니고 있고, 나는 당연히 개혁개방의 큰 호기를 이용할 것이야! 나는 더씬춰안뿨여우씨앤꽁쓰를 국유, 사유와 외자를 서로 융합시키고, 수리건조, 항운, 무역, 여행 등의 다기능을 하나의 다원화 경제 실체로 만들어 매년 날 위해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내려고 하는데, 어때? 당신 아직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꾸야훤은 분명히 그의 포부와 대범한 매력에 사로잡혔으나 그녀는 자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류얼이 이미 감정상 자신에게 상처를 준 바에야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당신 마음대로 허풍을 떨든지 말든지 난 이미 당신과 계속 협력할 방법이 없어요. 만일 당신이 정말로 인수할 목적을 달성하면 난 바로 사직할 거예요! 만일에 당신이 동의한다면 나도 즉시 이혼할 거예요......”
꾸야훤은 몹시 심란해져 고개를 숙이고 조선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류얼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음침하였다.
아마도 그가 선천적으로 품지 말았어야할 여인이리라.
석양의 여운이 황혼 속의 도시에 따뜻한 색깔로 칠하고 있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거리는 행인들이 분주하고 차들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옷차림이 소박하고 몸가짐이 단정한 산부인과 의사 허웨이는 핸드백을 팔에 끼고 병원 정문을 나와 외로이 집으로 돌아온다.
심령의 감응을 받은 것처럼 허웨이는 갑자기 뒤돌아본다.
시당위원회 서기 후동성이 길가의 오동나무 아래에서 손에는 검붉은 울금향 가지 하나를 들고서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그는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짧은 머리를 하고, 옅은 황색의 짧은 가죽 자켓과 짙은 양복바지를 입고 있는데, 키가 크고 장대한데다 대범하기까지 하여 젊고 활력이 충만해 보인다.
허웨이의 마음이 갑자기 뛰기 시작해서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후동성이 가뿐하게 다가와 그 울금향을 허웨이 얼굴 앞에 내밀며 친근하게 부른다.
“안녕하세요, 허웨이!”
허웨이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 요염하고 묵직한 울금향을 받지 않고 작은 소리로 말한다. “당신은 시당위원회 서기잖아요. 이렇게 하시는 건 좋지 않아요.”
“시당위원회 서기도 사람입니다. 여전처럼 절 후 참모라고 불러주십시오!” 후동성은 조금의 가식도 없이 꽃을 그녀의 눈앞에 내민다. “좋아하시죠?”
흡사 누군가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허웨이는 서먹서먹하고 불안했다.
그녀는 마침내 울금향을 받고는 마음 편하게 얼굴을 들었다.
“어디 가서 얘기 좀 할까요?” 후동성이 웃으며 묻는다.
허웨이는 고개를 젓는다. “아들이 집에서 절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벌써 전화로 당신을 위해 휴가를 냈어요. 아들도 철이 들었는지 절 알아봅디다. 안심하십시오.”
허웨이는 여전히 머뭇거린다. 후동성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만약 뭣하다면......내가 다시 전화해서 아들에게 말하겠습니다.”
허웨이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머리를 숙이고 멀지 않은 곳의 공중전화부스로 걸어간다. 그녀는 당황해서인지 약간 불안해 보였다.
후동성은 멀리서 태연하게 기다린다.
전화부스의 유리창 안에서 허웨이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잠시 후 그녀는 발그레한 얼굴로 천천히 후동성의 앞으로 걸어와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어디로 가죠?”
“듣기에 ‘연인 하우스(情人酒吧)’가 괜찮다고 합디다. 여기서 멀지도 않으니 우리 가봅시다!” 후동성은 초대하듯이 말한다.
허웨이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기에 어떻게 가요! 그곳은 젊은이들의 장소인데다 사장이 제 막내 시동생이라서......”
“얼마나 좋습니까. 낯익은 사람들이잖소! 우리도 늙은 건 아닌데 왜 갈 수 없다는 거죠? 가봅시다!” 후동성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웃었다.
두 사람은 앞뒤로 서서 몇 걸음 걷다가 후동성은 뒤를 돌아보고 허웨이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한 다음 서로 담소하며 걷는다.
이렇게 하여 시당위원회 서기와 산부인과 의사는 금실 좋은 부부처럼 분분하게 왕래하는 인파 속을 천천히 걷는다.
“연인 하우스”는 소문대로 과연 분위기가 있다.
시간이 좀 일찍 한 지 술집 안의 고객은 많지 않았다.
후동성과 허웨이는 유리 회전문으로 들어가자 바로 허리에 작은 앞치마를 두르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름다운 아가씨가 다가와 그들을 깊숙하고 편안한 작은 테이블 쪽으로 안내한 다음 메뉴를 받아 적었다.
허웨이는 이런 곳을 와본 적이 없어서 서먹서먹하고 불안해 보인다.
후동성은 살짝 웃으며 말한다. “보세요, 아가씨가 심리학을 하나보네요! 분명히 우리가 혼외정사라는 걸 알고 여기로 안내했을 겁니다. 되게 신통하죠!”
허웨이는 단언하지 못하고 따스하게 웃었다.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쟁반을 들고 와 커피, 음료수, 프랑스 포도주 잔 두 개, 고급스런 간식 한 접시를 늘여 놓았다.
바의 사장 미커가 다가와 형수에게 인사하고 손님에게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는다. 허웨이가 소개한다. “이쪽은 제 시동생이었던 미커예요. 이분은 시당위원회 후 부서기님이세요. 저의 옛 전우이기도 하고......”
후동성이 미커의 손을 잡고서 고쳐 말한다. “시당위원회 서기 후동성은 ‘시당위원회부서기’가 아니라 정서기지요! 하하......”
미커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웃으며 자리를 뜬다.
바에는 장쉬에여우(張學友)의 노래《작별의 입맞춤》이 흐른다.
모종의 특수 관계에 있었던 두 옛 전우는 서로 미소지으며 세월이 상대방에게 남긴 흔적을 찾고 있다.
“당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그대로예요......” 허웨이가 말한다.
“당신은 변했어요. 생각이 깊고 성숙하게 말입니다.” 후동성이 말하였다.
“늙었어요.” 허웨이는 약간 서글퍼졌지만 역시 담담해한다.
“당신은 늙지 않았어요. 옛날보다 더 보기 좋아요. 정말이오!”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세요! 벌써 마흔 살에 접어든 할머니예요......”
두 사람은 “늙었네 늙지 않았네”하는 이 화제가 따분하게 느껴질 때쯤 허웨이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되는 대로 묻는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어떻게 갑자기 시당위원회 서기가 되셨어요?”
“천천히 바뀐 겁니다. 저 자신도 생각 못했습니다......” 후동성은 부드럽고 잔잔하게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 한다.
“당신이 부대를 떠나고 나서 난 결혼했어요. 집안에서 소개했는데 문예공작단(文藝工作團)의 무용수였지요. 처음에는 난 아는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 그녀가 마치 한 장의 백지 같아서 조금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신혼 때에도 합쳐서 100마디도 안 했을 겁니다. 할말이 없었던 거죠! 후에 알았지요. 이건 그야말로 내가 다시 봐야할 정도로 단순한 여자가 아닙디다! 자위반격작전이 끝난 후에 저는 사단 참모장의 직무에서 군사외국어학원으로 전근되어 3년여를 공부하고 졸업을 하게 되자 서유럽 국가에 주재하는 대사관의 무관으로 파견되었지요. 그녀는 무관 부인의 신분으로 절 따라 출국해서 유럽에서 2년 동안 조용한 생활 보냈지요. 그녀가 벌써부터 나를 떠나고, 자신의 부모와 자기가 낳은 딸을 버리고, 자신의 조국을 떠나서 다른 생활을 추구하려고 할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조용한 어느 날 밤에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어요. 이건 치밀하게 계획한 도주사건으로 영국기자가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고 가버렸지요. 그러나 그녀는 그를 버리고 미국의 한 억만장자 품속으로 뛰어들어 출중한 사교적 재능을 보이며 상류사회로 들어갔다고 하네요......저는 혼인의 실패자가 되었고 이일 때문에 군복을 벗었지요. 귀국 후 연해지역의 경제특구로 뛰어들어 평범한 회사의 직원으로 시작해서 시 전체 경제업무를 담당하는 상무부시장을 맡았었는데 베이징의 주의를 받았던 거죠. 전 중앙 당 간부학교로 전근되어 공부하게 되었고 나중에 국가기관의 국장과 총국 당 위원회 부서기 등의 직무를 맡았었지요. 아마도 운명적 안배인가 봅니다. 내가 다시 산청으로 돌아와 당신과 ‘연인 하우스’에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저의 이야기는 다 했어요. 당신 차롑니다!”
“저의 얘기는 아주 간단해요. 제대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혼하고......이랬죠.” 허웨이는 담담하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동성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당신은 내게 말하고 싶은 것 없습니까? 이를테면 이후의 계획이라든가......”
“당분간은 아무 계획 없어요.” 허웨이는 그의 말을 끊었다.
“우린 당연히 함께 해야지요!” 후동성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고 낮지만 뜨겁게 말한다. “이 기회를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난 지금까지 이 날을 기다려 왔단 말입니다......”
허웨이는 황급히 자신의 손을 빼고는 고개를 힘주어 저으며 말한다. “안돼요! 이러시면 안돼요! 전 여태껏 이런 문제를 생각해본 적 없어요......”
“날 믿어요. 허웨이! 당신은 적어도 류스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지만 난 평생동안 당신 외에 다른 여자를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나의 마음은 어떤 거짓도 섞이지 않은 순결하고도 진실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난 결코 다시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허웨이의 마음이 혼란해졌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더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 저 힘들어요......저의 아버지가 요즘 건강이 아주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전 베이징으로 돌아가서 아버지 곁을 지키려고 합니다......아니! 전 다시는 이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전 힘들어요......아마도 전 아직 류스를 사랑하고 있나봐요.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예요......”
후동성은 깊이 한숨을 쉬고 나서 침묵하였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도시의 야간 사교활동이 시작되었다.
쌍쌍의 젊은 연인들이 “연인 하우스”에 들어서더니 이내 바 안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들어찼다. 누군가 음악에 따라 좌석 중간에 있는 플로어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등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이 중년의 남녀는 침묵하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저녁 7시가 되자 열렬한 박수소리와 함께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 TV 아나운서 겸 프로그램 진행자 왕창이 화려한 치마를 입고 남편 미커의 손을 잡고 무대로 나온다!
후동성과 허웨이도 연인들을 따라 박수를 쳤다.
왕창은 단정하고 아름다워 사람을 매료시켰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부드럽게 말한다.
“여러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정감 넘치는 산씨(山西)민가 《죽어도 당신 따라갈래요》를 여러분과 저의 남편이자 애인 미커에게 바치겠습니다!”
연인들이 열렬하게 박수갈채를 보내며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악단이 은은한 전주음악을 연주하자 왕창은 단정하고 현숙한 모습으로 돌아가 온몸을 긴장시키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거의 온 몸으로 가슴을 찢을 듯 한 구절을 부른다.
정말 널 떠나고 싶지 않아요.
한 번 가면 돌아올 날 기약 없겠지......
“좋아요......” 연인들은 박수를 치며 큰소리로 갈채를 보내었다.
음악이 갑자기 빨라지며 시골 분위기가 농후한 빤후(板胡; 호궁의 일종)와 현대 로큰롤 박자가 절묘하게 합쳐져 왕창이 마음 속에서 부르는 노래 소리를 감정의 최고조로 밀어 올렸다.
정말 널 떠나고 싶지 않아.
한 번 가면 돌아올 날 기약 없겠지.
탓하지 마라 오빠가 널 남겨두는 것을.
가난이 이 지경으로 핍박한대도!
두려워 마라 모래바람이 널 날려버릴까?
두려워 마라 길이 멀어 널 지치게 할까?
너의 팔을 잡고 너의 옷을 끌고서라도,
죽어도 널 따라 갈 거야, 널 따라 갈 거야! ......
노래 소리에 허웨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후동성의 손을 꼭 잡았다. 왕창은 폭풍우같은 박수소리와 환호성 속에서 답례하였다. 허웨이는 감동 속에서 깨어나자 후동성의 손을 풀었다. 후동성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웃었다.
밤이 되었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궈궈는 여자 친구와 자전거로 시당위원회 고급간부 숙소에 도착했지만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래! 집에 사람 없어. 우리 가족들이 공연 보러 가셨어. 나랑 같이 잠시 올라갈래?” 여자아이는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궈궈는 고집스럽게 자전거를 붙들고 자리를 뜨려하지 않는다. “일 없이 너희 집에 뭣 하러 가니? 구경하니? 빨리 가. 1분 줄게. 옷가지고 빨리 학교로 돌아가. 난 아직 할 일이 있단 말야!”
“미워요! 기다려 줘요.” 여자아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가볍게 궈궈를 툭 치고는 빈 책가방을 메고 올라 갔다.
궈궈는 무의식적으로 꼭대기 층을 바라보았더니 방안에 불이 켜져 있다.
“띠띠띠......” 허리에 찬 궈궈의 무선호출기가 울렸다.
가로등 불빛을 빌어 호출 내용을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여자아이가 이층에서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분명히 울음이 섞여있었다.
“궈궈! 궈궈! 빨리 와봐요! 빨리 올라 와봐요! ......”
궈궈는 지체 없이 쏜살같이 통로로 뛰어가 부리나케 삼층으로 뛰어올라가며 외친다.
“텐텐(恬恬)! ......텐텐! 어디 있니? ......”
삼층 좌측 방문이 활짝 열려있어 궈궈는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여자아이는 애처롭게 응접실 중앙에 서서 말을 못할 정도로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몇 칸의 방문이 열려 있고 물건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궈궈는 민첩하게 몸을 돌려 방문의 방범문을 시험해 보았는데 이미 부서져 있었다. 그는 또 다른 침실 방문들을 열어보았는데 부시장 부부의 호화로운 침실 안의 큰 금고가 뜯겨져 있는 것만 보였다.
분명히 호우 부시장 집안이 도둑을 맞은 것이다.
“너희 집 도둑 맞았어. 빨리 경찰에 신고해!” 궈궈는 과단성 있게 말한다.
여자아이는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놀라 엉엉 소리내어 운다.
궈궈는 전화기 앞으로 다가가다 전화선이 이미 절단되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제기랄! 아주 노련하군!” 궈궈는 투덜대며 급히 전화선을 연결하면서 휴대하고 있는 소형 접이칼을 더듬어 찾는다.
여자아이는 무서워 벌벌 떨며 말한다. “먼저 우리 아빠한테 전화 걸 수 있을까? 아빠가 집에 일 생기면 먼저 연락해야 된다고 하셨거든......”
“접속되거든 보자! 응? 너희 집에 가정부 없니?”
“가정부는 고향에 갔어요. 이틀 전에 막 떠났는데......”
“맞은편 이웃집에 사람 있니?”
“불이 꺼져 있어요. 모두 공연 보러 간 것 같아요......” 여자아이는 말을 하며 허둥거리며 발끝으로 걸어가 방문을 닫는다.
궈궈는 생각에 잠긴다. “음......내부사람 소행이야!”
그는 전화선을 연결하고 시험해보니 수화기에서 신호음이 났다. “연결됐어! 네 아빠 전화번호가 몇 번이야?”
“아빠에게 휴대폰이 있는데, 번호가......” 여자아이는 황급히 수첩을 꺼냈다. “봐! 여기!”
궈궈가 번호를 돌리자 바로 접속되었다. 수화기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준다.
한참을 기다리자 아마도 호우 부시장이 극장에서 바깥 휴게실로 걸어나와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
“아빠!” 여자아이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자 또 원망스러운 듯이 울기 시작한다. “아빠! 빨리 돌아오세요! ......우리 집에 도둑 들었어! ......”
수화기 속에서 호우 부시장이 놀라고 다급해하는 목소리가 전해온다. “텐텐! 텐텐!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고?! ......너 지금 어디 있니? ......말을 해보거라! 너 혼자 집에 있는 거냐?”
여자아이는 정말 소용없다. 전화를 붙들고 우느라 말을 못한다.
궈궈는 참다못해 전화를 빼앗아 큰소리로 말한다. “호우 시장님. 저는 텐텐의 친군데요, 빨리 돌아오십시오. 저희들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자아이는 수화기를 받아들고 또 한마디한다. “아빠, 경찰에 신고할까? 아빠 방안의 금고가 다 뜯겨졌어......”
호우 부시장의 목소리가 더욱 공포와 초조함을 더해준다. “경찰에 신고하지마! 알아들었어. 텐텐! 잠시 신고하지마! 내가 돌아가서 보고 난 뒤에 보자! 알아들었냐? 내가 바로 돌아 가마! ......”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속에서 통화중인 소리가 울린다.
“됐어! 기다려보자! 보아하니 오늘 장인 어른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겠군!” 궈궈는 소파로 가서 누우면서 내키지 않는 듯이 말한다.
“뻔뻔스럽기는! 누가 너의 장인이야! 쓰러지는 것 보기 싫어!” 여자아이는 눈물을 그치고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핀잔을 준다.
“그럼 알았어! 나는 간다, 빠이빠이!” 궈궈가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가자 여자아이는 앞을 가로막으며 그를 안고는 눈물을 금새 글썽거린다.
작은 두 연인은 어쩔 수없이 조용히 기다리기로 한다.
잠시 후 건물 아래에서 “스스슥”하는 차 소리가 들렸다. “펑! 펑”하고 차 문 닫는 소리가 울리고 황급하고 다급한 발소리가 위층으로 다가온다.
“돌아 오셨네요!” 두 젊은이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호우 부시장과 젊고 풍만한 새 부인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큰 재난이 닥칠 듯한 모습으로 문 입구에 나타났다.
“텐텐! 온 사람 없었겠지?” 호우 부시장이 먼저 묻는다.
여자아이는 이미 차분해져서 새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고 더 이상 아버지 앞에서 애교를 떨지도 울지도 않고 머리만 가볍게 끄덕일 뿐이었다.
호우 부시장 부부는 재빨리 침실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문을 닫았다. 잠시 후 문 안에서 여자의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바로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다.
궈궈는 여자아이를 흘낏 보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한다.
한참 후에야 호우 부시장이 넋이 빠진 듯이 나오며 문을 닫고 두 젊은애들을 향해 이상야릇하게 웃는다.
“헤이, 없어진 게 아무것도 없네......천만다행이야! ......”
여자아이는 떠보듯이 묻는다. “아빠, 공안국에 신고할까요?”
“으응? 아? 그럴 필요 없잖니?! 아무런 손실도 없는데 뭘......” 호우 부시장은 흠칫 놀라더니 기괴한 헛웃음을 얼굴에 띄우며 갑자기 궈궈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묻는다. “이 친구가......?”
여자아이가 말한다. “이쪽은 제 친군데 신문사 기자예요.”
호우 부시장의 머리는 아직 녹슬지 않았던지 단 몇 초안에 즉각 인간관계의 실마리를 이해한다. “아......궈궈라고 하지요? 어릴 때 본 적 있어, 어릴 때 본 적 있지! 벌써 이렇게 자라 기자가 되었다고. 아? 하하! 자네 부모님 건강하신가?”
그는 도둑맞은 일을 잊어버린 듯 일상적인 일을 꺼내었다.
궈궈는 이런 상황에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호우 부시장님, 별일 없으면 전 가보겠습니다!”
“아이! 나도 갈래요!” 여자아이는 급히 궈궈의 손을 잡고 말한다.
“하하! 좋아! 너희들 먼저 가거라. 너희들 먼저 가......” 호우 부시장은 자신의 딸을 포함해서 만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민스러웠다. “자주 놀러 오게? 자주 놀러 와.....”
여자아이는 얼굴을 숙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책가방에 무엇인가를 집어넣고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문밖으로 나간다.
문 입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호우 부시장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잠깐 기다려라!”
두 젊은이는 머리를 돌려 호우 부시장을 쳐다본다.
호우 부시장은 창백한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가볍게 문을 닫고 나지막한 소리로 부탁한다.
“텐텐! 너희들 나가서 누구와도 이 일을 말하지 말아라. 알겠니? 우리 집에서 도둑 맞은 소문이 난다면 얼마나 안 좋겠냐! 호우 부시장 집에서조차 도둑이 들었다고 한다면 일반 사람들에게 안전감이 있을 수 있겠냐? 이 일은 끝난 걸로 하고 너희 두 사람도 더 이상 확산시키지 말아야 된다는 걸 알 거다. 궈궈, 자네는 기자니까 함부로 말하지 말게나. 하하! 사소한 일이네, 사소한 일이야! 가보게나.”
호우 부시장은 노파처럼 잔소리를 해대었다.
두 젊은이는 아리송한 얼굴로 집을 나선다.
집의 문이 조용하게 닫혔다.
궈궈와 여자아이는 자전거를 끌며 조용한 거리를 걸어간다.
가로등은 흐리고 행인들도 드문 가운데 찬바람만 불어온다.
두 젊은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없이 걱정거리를 생각한다.
“네 아빠가 왜 신고하지 말라는 거니? 호우 부시장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은 잃어버린 물건이 있건 없건 성격상 심각한 일이야! 무슨 이유로 신고를 못하게 하는 거지?” 궈궈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었다.
여자아이는 이 일로 난처해졌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신고한다면 적어도 도둑은 잡겠죠? 구태여 법을 피할 필요는 없잖아요? 혹시......혹시 아빠가 도둑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네 아빠는 소심한 분이시지. 백면서생이잖아?” 궈궈는 자신의 판단을 바로 뒤집었다. “응, 아니야! 아무래도 이렇게 단순할 리가 없어! 설마......네 아빠의 그 금고 속에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될 물건이라도 있었던 것 아니야?!”
여자아이도 궈궈의 추론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그럴 리가? 우리 아빠는 대단히 정직하신 분인데, 무슨 물건을 감출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새엄마 마음 속에 딴 생각이 있던지! 새엄마의 그 하얗게 질린 모습이 꼭 뭔가가 있는 것 같았어요! 새엄마가 안에서 우는 소리를 내가 들었거든요!”
“네 아빠도 이상해! 어디가 당당한 호우 부시장 같더니? 도끼를 훔친 옆집 둘째 아들 얘기처럼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잖아! ......제기랄! 정말 이상하네!” 궈궈는 걱정스럽게 말한다.
여자아이는 갑자기 충동적으로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몰래 공안에 익명으로 전화할까요? 도둑을 사칭할까요?”
궈궈는 머리를 젓는다. “그게 어떻게 되냐! 네 아빠가 신고하거나 무슨 원인인지 간섭하기를 기왕에 원치 않으셨으니 우리는 신용을 지켜야 해!”
“알았어요!” 여자아이는 귀찮은 듯이 말한다. “나 배고파요.”
“게걸스런 고양이 같으니라고......뭘 좀 먹으러 가자!”
그들은 걱정거리를 잊은 듯 자전거를 타고 웃으며 간다.
밤은 이미 깊었고 조용한 거리에는 행인이 거의 없다.
궈궈는 여자아이를 대학 문 입구까지 데려다 주고 두 사람은 아쉽게 작별한다. 여자아이가 자전거를 끌고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 궈궈도 자전거를 타고 홀로 집으로 돌아간다.
궈궈는 자전거를 타고 가로등이 없는 작은 길로 들어선다.
캄캄한 작은 길에는 적막하니 사람은 없고 도깨비불만 반짝인다.
궈궈에게는 익숙한 길이어서 휘파람을 불며 어둠을 더듬으며 앞으로 타고 간다.
차량 번호를 떼어낸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소리 없이 궈궈의 뒤를 따라 오다 갑자기 눈부신 전조등을 켰다.
궈궈는 급히 길가로 비켜서며 승용차에게 길을 양보하였다. 그러나 검은색 승용차는 전혀 감사하게 생각지 않는 듯 의외로 곧장 궈궈의 자전거 뒷좌석 쪽으로 다가와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받아 궈궈를 길가로 쓰러뜨렸다.
궈궈가 욕을 하려고 하는 순간 차의 전조등이 꺼지며 순간 어둠으로 변하였다.
차 속에서 체격이 우람한 사내 몇 명이 뛰어내려 달려와 바닥에서 궈궈를 움켜잡더니 정면으로 사정없이 구타한다!
“때리지 마시오! 난 기자란 말이요! ......” 궈궈는 아픔을 참으며 부르짖는다.
“개자식! 바로 너 같은 더러운 기자 놈을 패는 거다!” 우두머리가 되는 마르고 키가 큰 자가 날카롭고 잠긴 목소리로 잔인하게 나지막하게 욕을 하였다. “쓸데없는 일에 다시 간섭했다가는 네 놈의 혓바닥을 잘라버릴 거다. 조심하라고! ......”
몇 명의 경호원은 훈련이 잘 되어선 지 벌써 궈궈를 땅바닥에 엎어놓는다.
마르고 키가 큰 자가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자 검은 그림자 몇 개가 신속하게 차안으로 들어갔고, 차가 급하게 눈 깜짝할 새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궈궈는 얼굴에 피멍이 들고 머리에 피가 흐를 정도로 온몸에 내상까지 입고 안간힘을 쓰며 땅바닥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며 천천히 가로등이 있는 길 어귀까지 걸어가 카드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여보세요, 공안국입니까?” 궈궈는 숨을 헐떡이며 신고를 한다. “저는 산청일보의 기잡니다. 전 지금 쟝한루(江漢路) 똥둬안(東段) 4호 카드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8시 전후에 호우예밍 부시장 댁이 도둑을 맞았습니다. 11시 30분 경, 제가 목격자로서 민주(民主)항에서 신분을 알 수 없는 폭력배의 습격을 받아 부상이 심각합니다. 공안국의 빠른 구원을 바랍니다!”
“현장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당직자가 신속하게 처리한다. 궈궈는 전화를 내려놓자 온몸이 지친 듯 바닥에 쓰러진다.
몇 분 후 두 대의 파노라마 램프가 번쩍이고 사이렌을 길게 울리는 경찰 차가 빠르게 달려와 전화부스 앞에 멈추고 경찰들이 차에서 내린다.
궈궈는 피멍이 들어 퉁퉁 부은 눈을 뜨고 억지로 웃음을 보인다.
더씬 빌딩 지하 비밀회의실의 홀에 심상치 않은 정적이 흐른다.
희미한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 그룹의 핵심 인물들이 거대한 탁구대 옆에 둘러앉아 묵묵히 야식을 들고 있다.
사람마다 야채요리 도시락을 하나씩에 생수 한 잔씩이다.
야식을 한참동안 아주 맛있게 즐겼다.
총재 류얼은 먼저 먹고 나서 물을 빈 그릇에 부어 세심하게 흔들어 찌꺼기를 물과 함께 마셨다.
핵심인물들도 잇달아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마신다.
류얼은 심사숙고 한 후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호우예밍의 명은 다했소. 우리는 그를 버리기로 결정했소. 여러분들은 그와 유지했던 업무상의 여러 가지 관계를 정리하고 필요한 응급조치를 취하는 등 뒷수습 업무를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잘 처리해야 할 것이오. 호우 집에 도둑이 들었으니 반드시 큰 파문이 일 것입니다.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시켜야 하지만 절대로 허둥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정부와 밀접하게 협력하여 여러 방면의 협조를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호우씨와는 어떤 사적인 거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그의 경제적 손실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해야합니다.”
류얼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사람들이 영합한다.
가라앉은 분위기가 약간 가벼워졌다.
총재 보조 궈린은 결코 풀어지지 않은 태도로 또 경종을 울린다.
“총재님께서 하신 말씀은 지극히 옳으십니다. 제가 보충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 주의를 소홀히 하거나 지나치게 낙관해서는 안됩니다. 호우는 실제로 영혼이 없는 기회주의자로서 그의 신조는 털끝만큼도 남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이익만 도모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필연적으로 집권당 부패 현상의 근원이이며 경제합작 중 기업인이 가장 다루기 힘든 잠재된 근심거리이기도 합니다. 총재님의 고견처럼 류웨이는 결코 두려워 할 것은 없으나 다만 그로 하여금 우리들의 약점을 잡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호우는 천성적으로 배신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반부패의 칼이 그의 머리 위에 떨어질 때 그 선택은 필연적으로 지체 없이 밑뿌리를 몽땅 내보이고 관대한 처분을 바라야 할 것입니다. 목숨을 지키려면 말입니다......”
“문제는 이런 일에 절대로 관대해질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류얼은 차갑게 말을 받는다. “류칭산(劉靑山)과 장쯔산(張子善)이 관대하게 처분 됐습디까? 요 몇 년 분분히 낙마한 부패 관료들이 관대한 처분을 받았습디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호우 부시장을 알지 못합니다. 친구를 배신한 것은 실제로 그 자신이 치명적 올가미를 덧씌운 것입니다. 그 사람처럼 총명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간단한 놀이는 분명히 알텐데 말입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잡힐 만한 어떤 ‘꼬투리’도 없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이 일은 여기까지 논의하고, 내가 여러분에게 통보할 큰일이 하나 더 있소.”
류얼은 정중하게 선포한다. “개혁개방 형태의 수요를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룹과 정부당국과 긴밀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나는 무상으로 인민폐 100만 위앤을 찬조금으로 제공하여 시당위원회 시정부 기관의 사무비품을 전면적으로 교체하도록 조울 것을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견이 없다면 나는 바로 시행할 것입니다.”
핵심인물들은 비록 마음은 아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현금은 아무래도 좀 부족하겠지요? ......” 궈린이 깊은 생각을 하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류얼의 매서운 눈빛에 부딪히자 입을 닫았다.
깊은 밤이 되었다. 류웨이는 여전히 서재 겸 침실의 책상 앞에 앉아 문건을 작성하느라 급히 필을 놀리고 있다. 궈옌은 살며시 뜨거운 버섯탕을 받쳐들고 와 남편 앞에 놓는다.
전화 벨소리가 울리자 궈옌은 급히 전화를 받으러 간다.
“여보세요! 누구를 찾으세요?! ......당신, 당신은 누구세요? ......”
류웨이는 아내의 약간 이상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다.
“여보세요! 뭐라고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
상대방은 전화를 끊었다. 궈옌의 얼굴빛이 갑자기 창백해진다.
“누구 전화야?” 류웨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궈옌은 수화기를 잡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하지 못한다.
류웨이는 몸을 일으켜 다가가 수화기를 받아들자 통화가 끝난 소리만 들린다.
빠른 통화 종료음이 분위기를 바꾸었고, 공기가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한다.
류웨이는 전화를 내려놓고 차분하게 묻는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한 거야?”
“그 사람은......남자였어요! 그 사람이......그 사람이 당신 목을 조심하래요! ......” 궈옌은 온몸을 떨면서 더듬거리며 말한다.
류웨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어두운 얼굴로 몸을 돌려 물러난다.
궈옌은 불안한 듯이 남편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묻는다. “신고해야겠죠? ......그 사람 정말 흉악해요! 영화 속의 마피아 같이 말예요......”
류웨이는 창 앞에 서서 소리 없이 묵묵히 깊은 생각을 한다.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깜짝 놀라게 울리기 시작한다.
궈옌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 소리를 지르며 두려운 듯이 남편을 바라본다.
류웨이는 고개를 홱 돌리고 전화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한밤에 유달리 귀를 찌르는 듯 하다.
류웨이는 큰 걸음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
수화기 속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전해온다 “하하! 웨이웨이냐? 나 스토우야! 로스엔젤리스에서 네게 전화하는 건데 잘 들리니? ......”
류웨이의 미간이 펴진다. “잘 들려요! 둘째 형, 잘 있었어요? 곧 돌아오실 겁니까?”
류스는 전화 속에서 시원스럽게 말한다. “그래! 다음주 화요일에 산청에 도착해서 남안개발대계획을 같이 협상할 예정이야! ......”
바다 건너 온 전화 소리는 분명하고 음질이 최상이다.
류웨이는 수화기를 붙들고 있지만 가슴속에서 격정이 솟구친다.
바이윈(白雲) 공항은 햇빛이 쏟아지고 공항을 드나드는 여객기의 이륙과 착륙이 빈번하다.
검은색 벤츠 승용차가 부드럽게 대합실 건물 앞에 멈추었다. 양복을 차려입은 류얼은 총재 조수 궈린과 아름다운 여비서를 이끌고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대합실로 들어간다.
큰 홀 안은 사람들 소리로 왁자지껄하고 여객들이 바쁘게 왕래하고 있다.
경계에 촉각을 세운 궈린은 이쪽저쪽을 살피며 마치 모종의 좋지 못한 냄새를 맡은 듯 류얼의 뒤를 바짝 따르며 나지막한 소리로 일깨운다.
“총재님, ‘소우로우’가 어떻게 안 보입니까? 그가 반시간 전에 선발대로 왔으니 관례대로라면 문밖에서 영접해야 하는데......”
류얼은 말 한마디 없이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더욱 걸음을 재촉한다.
그들은 곧장 넓고 안락한 “귀빈실”로 들어섰고, 궈린은 즉각 당직 아가씨에게로 갔다. 그는 나지막한 소리로 묻더니 갑자기 긴장한 듯 빠른 걸음으로 류얼에게로 돌아와 낮게 말한다.
“총재님!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우로우’가 아예 오지도 않았습니다.”
류얼의 얼굴 근육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더니 바로 침착하게 가볍게 명령한다. “빨리 그의 행방을 알아봐!”
“알겠습니다!” 궈린은 “핸드폰”을 꺼내며 급히 문밖으로 나간다.
류얼의 입가에 한줄기 냉소를 띄우더니 천천히 시가담배를 꺼낸다.
아름다운 여비서는 일어나 종업원 아가씨와 서성거린다......
검은색 승용차가 천천히 대합실 문 앞에 다가와 멈춘다. 양복을 차려입은 상무부시장 류웨이가 경호비서를 데리고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대합실로 들어선다.
부채꼴 유리문이 울리자 류웨이가 “귀빈실”로 들어선다.
“류웨이! 왔구나!” 류얼은 만면에 봄바람을 맞은 듯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다가와 뜨겁게 동생을 손을 잡는다.
류웨이도 친근하게 웃으며 외친다. “큰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형제 둘은 뜨겁게 손을 잡고 나란히 소파에 앉는다.
종업원 아가씨가 바로 차, 과일, 음료수를 보내왔다.
“너 보거라! 시장님이 도착하니 관례가 바로 다르군! 내가 여기 한참을 앉아있었지만 아가씨들이 안부하나 묻지 않더군. 역시 관료가 좋아! 하하......” 류얼은 밝은 소리로 웃으며 빈정거린다. “어때? 요즘 되게 바쁘다던데?”
류웨이는 평온하게 웃으며 말한다. “큰 형님도 바쁘시지요. 사업도 갈수록 번창하시고, 수완도 갈수록 대범하시더군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사업에 착수하는 것도 잘 살펴야 해. 착수할 때는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라도 출자를 해야되지!” 류얼의 화제는 곧장 주제로 넘어가 류웨이에게 바짝 다다가 정중하게 말한다. “이봐, 너희들 생각해봤어? 더씬그룹이 100만 위앤을 무상으로 찬조하여 시당위원회 시정부 기관의 사무시설의 교체하는 것에 관한 협의 말인데, 나는 금주 내에 뉴스브리핑과 서명식을 거행하고 스토우를 통해 홍콩에서 물건을 들여오도록 가능한 한 구체화하기를 바란다. 이것도 우리 더씬급룹이 산청의 현대화 과정에 작은 공헌을 하게 되는 셈이지! 다른 의미는 없어......”
류웨이는 침착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곡하면서 간절하게 말한다. “더씬그룹의 성의는 시당위원회 시정부의 지도부와 동지들을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후 부서기와 기관 전체 동료들을 대신하여 기업에 정성어린 사의를 표시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찬조’라는 명의를 ‘기증’으로 바꿀 수 있는 지를 고려중입니다. ‘기증’의 대상도 협의중입니다. 예를 들면 ‘희망 프로젝트’이거나 장애인 사업, 아니면 기타 사회의 도움과 원조를 긴급하게 받아야 할 항목들 말입니다. 물론 이는 완전히 더씬그룹 자체의 바램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도 이 장거를 크게 선전하고 표창할 것입니다. 큰형님께서 동의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류얼의 입가에 한 줄기 담담한 웃음을 띄우며 반문한다. “이것은 상임위원회의 결정이냐 아니면 너 개인의 의견이냐? 사실대로 말해보거라.”
“당연히 상임위원회의 의견입니다.” 류웨이는 솔직하게 말한다.
후동성은 환영을 표시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지?! 나 류얼이 뇌물을 쓸까봐 그런가?“ 류얼이 날카롭게 묻는다.
류웨이는 너그럽게 웃고는 참을성 있게 해석한다. “큰형님, 오햅니다. 당정기관은 어떤 기업이나 개인의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왕에 이런 돈이 우리 개인의 주머니로 떨어지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만약에 오늘 더씬그룹의 돈을 받아 사무시설을 교체한다면 내일은 다른 기업 혹은 외국 상인의 돈을 받아 사무용 건물이나 호화로운 차를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알았어, 알았어! 100만 밖에 안되지? 아직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겠어? 너희들이 필요 없다면 나는 수영장이 딸린 호화별장을 수리해서 마음대로 어떤 삼류 가수에게 줘버리지! 난 못 믿겠어, 돈이 있어도 주지 않겠어!” 류얼은 시가를 반으로 잘라 땅바닥에 버리고 냉혹하게 말한다.
류웨이는 꾹 참으며 형을 힐끗 쳐다보고는 침묵하였다.
두 형제의 말은 화합하지 못해 쌍방은 다 괴로워한다.
텅 빈 “귀빈실”안의 공기는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꽁쥐줴왕(公爵王)” 고급 승용차가 시당위원회 안마당 녹음에 가려진 화원식 작은 건물 앞에 멈추자 호우예밍이 차에서 내린다.
기다리고 있던 비서가 그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넓고 쾌적한 상임위원회 회의실에 시당위원회 서기 후동성과 부서기 겸 기율위원회 서기 장신성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호우예밍은 두 서기의 엄숙한 얼굴을 보고 가슴이 긴장되는지 불안하게 물었다.
“후 서기님, 절 찾으셨습니까?”
후동성은 소파를 가리켰다. “음, 앉으시오!”
호우예밍은 조심스럽게 가리키는 자리에 앉으며 창백한 마른 얼굴에 웃음을 짜낸다. “베이징의 회의에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후동성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시간이 약간 있소이다. 우리 얘기 좀 나눕시다.”
“예, 예!” 호우예밍은 정중하게 만년필과 수첩을 꺼낸다.
“기록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 개인에 관한 일이오.”
호우예밍은 고개를 들고 얼빠진 모양으로 후동성을 바라본다.
“라오호우(老候), 집에 도둑이 들었다면서요? 왜 신고 안 했소?” 후동성이 잠깐 침묵하다가 갑자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호우예밍은 이미 다 생각 해 둔 것처럼 얼렁뚱땅 손을 내 저으며 말한다. “아, 그것 말입니까! 무슨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없는 데다 기밀 문건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신고할 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중요하지 않은 어떤 물건을 잃어버렸습니까?” 장신성이 묻는다.
“아마......300위앤 정도하고, 소액이 든 통장 몇 개하고......아, 참! 또 자동카메라 한 대가 있군요......”
호우예밍은 “진지”하게 기억해내고 있지만 “연기”는 자연스럽지 못했다.
“적은 액수의 통장이라고? 어느 정도죠?” 후동성이 갑자기 질문하며 날카로운 눈빛을 호우예밍의 얼굴에 쏘았다.
호우예밍의 머리 위에 식은땀이 솟았다. 지키는 것을 공격으로 삼은 듯 말한다.
“그건 말이죠......후 서기님! 개인 재산은 늘 약간의 프라이버시가 있잖습니까? 전 지금 이 문제를 깊이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후동성이 날카롭게 지적한다. “국가의 공무원은 합법적인 수입을 가집니다. 합법적인 수입상황과 부합하지 않는 일체의 ‘개인재산’은 반드시 조직과 군중에게 공개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호우예밍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안경너머로 작은 눈동자에 두 줄기의 잔인한 눈빛을 번쩍이며 신경질적으로 반문한다. “방금 하신 말씀은......제게 비합법적인 수입이 있다는 것입니까? 후 서기님! 방금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지셔야 할 것입니다! 제게 어떤 비합법적인 수입이 있다는 겁니까? 얼마나 되죠? 증거를 대 보시지요! ......”
“‘비합법적인 수입’이 있건 없건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오! 당신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언젠가 누군가는 신고 할 것이요!” 장신성이 엄숙하게 말한다.
“이것은 류웨이가 저를 모함하는 것입니다!” 호우예밍은 갑자기 일어나며 큰소리로 외친다. 창백한 얼굴은 붉어졌고 비정상적으로 흥분하여 미쳐버린 것 같았다. “그 기자가 바로 류웨이의 생질입니다. 친생질입니다! 류웨이 누나의 아들입니다! 그가 시장이 되기 위해 절 매장하고 넘어뜨리려고 한 겁니다.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자신의 동지마저도 미련없이 단두대로 보려고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그가 치밀하게 계획한 음모입니다! 증거는? 전 증거를 원합니다! 증거를 댈 수 없다면 류웨이와 그 더러운 기자는 모함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전 법원에 고소할 것입니다! 시 전체 시민들에게 류웨이의 흉폭한 야심을 알릴 겁니다! 저 호우예밍은 이 부시장 자리 원치 않는 예전처럼 정정당당한 지식이고 공산당원입니다! ......”
서기 두 사람은 냉랭하게 졸렬한 그의 연기를 지켜본다.
“호우예밍! 앉으시오!” 후동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호우예밍은 갑자기 입을 닫고 머리를 감싸며 소파에 앉아 아주 억울한 듯이 “엉엉” 통곡하기 시작한다.
후동성과 부서기는 안색을 바꾸고 호우예밍을 바라보며 냉정하고 엄숙하게 말한다. “류웨이 동지에 대하여 까닭 없는 당신의 비방과 모함에 관해서는 우리가 이후에 다시 결론을 짓겠소. 아마 당신은 절대로 생각 못했을 거요.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신 집을 털었던 도둑이란 말이오! 그 도둑은 16세의 소년으로 중학생이오. 그 학생은 원래 당신 집에 가 돈을 약간 벌어 스테레오 ‘휴대용 녹음기’를 사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부시장의 개인 금고에서 거액의 현금과 통장을 발견했지요! 6천 달러가 좀 넘는 돈을 포함해서 총 가치는 인민폐 18만 위앤이지요!”
호우예밍은 부상을 입은 듯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두 손으로 머리를 꽉 싸잡으며 부르짖는다. “그건 제 것이 아닙니다! 제 것이 아닙니다! ......”
“당연히 당신 것이 아니지! 매월 3~400위앤 하는 당신의 합법적인 수입에 의하면 당신이 한평생을 벌어야 할 돈이지!” 후동성이 격분하며 말한다.
“혹시 당신이 잘못을 범한 그 소년을 심하게 혼을 냈는지, 혹시 그 소년이 수년간 바른 교육을 받은 결과 양심을 발견했는지 심한 고민 끝에 그 학생은 결국 주임선생님과 부모님의 안내 하에 부정한 돈 전부를 가지고 공안 기관에 가서 자진해서 신고를 했지! 이제 이 돈의 내력을 분명하게 말해보시오!”
호우예밍은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었는지 머리를 감싸고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일말의 의미도 없는 통곡의 소리만 내었다.
누군가 가볍게 문을 두드린다.
팔에 검은 천을 두른 쟈쟈가 뛰어가 집의 문을 열고 미커 삼촌이 말없이 문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소리친다.
“엄마! 미 삼촌 오셨어요!” 울어서 눈이 부은 허웨이가 간단한 짐을 들고서 방안에서 나오다 시동생을 보자 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쟈쟈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묵묵히 어머니를 껴안는다.
미커는 막 사온 비행기 표를 허웨이에게 건네주며 그녀의 짐을 받아들고 잠자코 몸을 돌려 내려갔다.
쟈쟈는 사나이처럼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 울지 마세요. 빨리 가세요. 할아버지 만나 뵙고 저를 대신해서 절을 드리고......”
허웨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엄마 간다. 내일 밤에 할아버지께 소지 올리는 것 잊지 않으마......”
쟈쟈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천천히 문을 나서며 집의 문을 닫았다.
또 보잉여객기 한 대가 활주로를 떠나 파란 하늘로 뚫고 올라간다......
긴장된 기색의 궈린이 갑자기 “귀빈실” 입구에 나타나서 류얼과 류웨이를 바라보다 말을 하려다 그치고 서먹서먹하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류웨이는 담담하게 미소지으며 궈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류얼은 잠시 생각하다 재떨이에 시가담배를 부벼 끄고는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간다.
궈린이 즉각 뒤를 따라 들어간다.
류웨이는 서먹서먹하게 웃으며 창문 앞으로 걸어간다.
호화스럽고 청결한 화장실 안에서 류얼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고 있는데, 궈린은 도둑처럼 살금살금 다가와 작은 소리로 보고한다.
“총재님! ‘소우로우’와 ‘황위(黃魚)’가 확실히 실종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 그들이 모는 ‘순양함’이 공안국 안마당에 주차하는 것을 보았다는데, 무선호출기와 ‘휴대전화기’로 무수히 호출했지만 회답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구속된 것 같고, 행방이 분명치 않습니다......”
“호우예밍 쪽에서 소식이 있는가?” 류얼이 차갑게 물었다.
“전화도 호출기도 통하지 않고, 기관에서는 회의에 갔다고 하는데 방금 그 분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부인이 그 분은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하고는 황급하게 전화를 끊습디다. 보아하니 불미스런 일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류얼은 순간 멍해져서 되는 대로 수돗물에 두 손을 적신다.
궈린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묻는다. “총재님, 어떻게 합니까? 댁에서 긴급조치라도 취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허튼 소리! 하늘이 무너지면 내가 무릅쓸 게 있을까? 무엇을 당황해 하는 거야?” 류얼은 애써 진정해가며 차갑게 질책하였다. “계속 조사해봐! 회사의 어떤 사람도 이 일을 알게 해서는 안 돼. 수시로 내게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총재님!” 궈린은 몸을 돌려 총총히 사라진다.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화장실 안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였다.
류얼은 천천히 얼굴을 들고 멍하니 거대한 거울 속 자신의 음침한 눈을 응시하며 실의에 빠진 듯 하였다.
비행기는 저공으로 집 지붕을 스치자 천둥소리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낸다.
“소우로우”는 외롭게 공안국의 예심실의 철판 의자에 앉아 마음 속에서 위화감을 느끼듯이 공안요원의 심문을 접수하고 있다.
“3월 5일 밤 11시 20분부터 11시 50분까지 이 시간에 당신 어디에 있었소?”
“회사 총재님 사무실에서 당직을 섰습니다.”
“몇 사람이었죠?”
“저 혼잡니다.”
“누가 증명할 수 있죠?”
“총재 조수 궈린입니다.”
“그 날 밤 당신은 자동차를 사용했습니까?”
“아뇨. 전 줄곧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회사의 그 검은색 닛산 승용차 차번호를 알고 있습니까?”
“......모르겠는데요. 기억이 안 납니다.”
“모른다? 운전면허증은 당신 이름 아닙니까?”
“......생각이 잘 안 나는데요. ......189번 같습니다.”
“지금 들어봐요. 이게 누구 목소리죠?”
공안 요원은 마이크로형 카세트 레코더로 녹음 테이프의 소리를 틀어준다. 궈궈가 구타 당 할 때의 비명소리와 그 쉰 목소리의 남자의 악랄하게 욕하는 소리, 그리고 주먹질과 발길질하는 소리였다.
“소우로우”의 얼굴에 한 줄기 공포가 스쳤지만 억지로 태연한 척 한다.
“알아듣겠소? 이 목이 쉰 자가 누구요?”
“......모릅니다.”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연극하지 마시오! 이거 당신 목소리 아냐?”
“소우로우”는 머리를 떨구고 말을 하지 않는다. 자포자기 한 모습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그 날 허리춤에 별도로 가지고 있던 뉴스 취재기에 녹음된 현장 소리요. 당신 피해자를 만나 보겠소?”
벨 소리를 따라 머리에 붕대를 감은 궈궈가 방안으로 들어선다.
“공웬소우(龔遠壽)! 당신 저 사람 압니까?”
“모릅니다. 전 이 사람을 본 적 없습니다......”
“그만 두시지, 친구! 당신 그 목쉰 남자가 어떻게 변한 거지? 움직일 수 없는 증거지! 당신이 과학과 무슨 경쟁을 하겠다고! 빨리 자백하시지! 당신 두목이 누구냐!” 궈궈는 조롱하듯이 말하였다.
공안 요원이 눈짓하여 궈궈는 밖으로 나갔다.
“어때? 아직도 이 사건을 인정 안 할 텐가?”
“소우로우”의 작은 머리를 굴려 또 스스로 총명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인정합니다. 제가 녀석을 때렸습니다! 그 녀석 맞아도 쌉니다. 녀석이 교통법규를 어기다 내 차를 받아놓고 오히려 욕을 하면서 자기는 ‘기자’라고 합디다. 누가 제기랄 방귀뀐 놈이 성낸다더니? 더러운 기자 놈! ......”
“그럼, 이 말은 무슨 뜻이야. ‘더 이상 상관없는 일에 관여했다가는 네 녀석의 혓바닥을 잘라버리겠어. 조심해!’ 그 사람이 당신의 일에 간섭했나?”
“소우로우”는 또 말문이 막혀 얼굴을 한 쪽으로 돌렸다.
“좋습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끝장을 보지 않으면 안되겠군.”
또 한번 벨이 울리자 얼이 빠진 “황위”가 붙잡혀 들어와 “소우로우”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울먹이며 말한다.
“형님! 아직 뭘 버팁니까? 저는 제기랄 다 자백했습니다! 형님이 우리 셋을 데리고 그 녀석을 패주러 가면서 그녀석이 형님의 여동생을 희롱했다고 하셨잖아요......전 나중에 알았습니다. 형님한테 제기랄 어디 여동생이 있어요! 빨리 자백하십시오! 자백하지 않으면 좋을 것 없습니다! 형님! ......”
“소우로우”는 눈으로 단번에 그를 도려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황위”는 훌쩍거리며 붙들려 나간다.
“말하지. 누가 시켰나?”
“소우로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바닥을 보며 뻔뻔하게 버티고 있다.
“좋아, 당신이 한마디도 자백하지 않았어. 데려가!”
“기다려 주시오!” “소우로우”는 갑자기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보잉 757 제트기가 서서히 활주로의 에이프런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온다.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엔진소리 가운데 화사한 옷차림의 여자 군악대가 《영빈곡(迎賓曲)》을 연주하고 있다. 아가씨들은 엄숙한 표정에 조금도 소홀함 없이 특별히 진지하게 연주하고 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공리에 밝은 류얼의 “걸작”이었다.
비행기의 우렁찬 소리가 멈추었다. 웅장한 군악대의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객실 문이 열리자 만면에 웃음을 띤 류스가 두 명의 건장한 경호원의 호위 아래 천천히 트랩을 내려와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시한다. 상무부시장 류웨이와 더씬그룹 총재 류얼 등이 맞이하러 다가간다. 세 형제는 트랩 아래에서 뜨겁게 포옹하며 악수를 하는데, 눈에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만나는 감격의 눈물이 반짝인다.
기자들이 방송카메라와 사진기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 장면을 기록하고 약간의 마이크가 류스의 앞으로 내민다......
대합실 건물의 드넓은 플로어 유리문 앞쪽, 팔에 검은 천을 두른 허웨이가 멀리서 대합실 플로어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주시하고 있다.
간단한 환영 의식이 끝난 후 류스가 류얼의 벤츠에 타느냐 아니면 류웨이의 凌志 승용차에 타느냐로 세 형제가 서로 양보하고 있을 때 류스를 영접하는 호화 전용차 “캐딜락”이 이미 그들의 앞에 이르렀다. 그래서 각자 따로 자신들의 차에 오른다.
넓고 평탄한 공항 도로 위에 호화로운 승용차 팀이 경찰차의 선도 아래 위풍당당하게 열을 지어 시내로 향하고 있다......
벤츠 승용차를 타고 공항으로 급히 가는 시당위원회 서기 호동성은 길에서 경적을 울리며 선도하는 호화 차량 팀이 스치며 지나가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차량들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배웅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호화 승용차 팀이 천천히 경계가 삼엄한 씨쟈오호텔 정문으로 들어서서 안마당의 넓고 조용한 정원을 지나 녹음이 어울리는 작은 길을 따라 아름답기 그지없는 화원의 작은 건물 문 앞에 멈추었다. 문 밖 계단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책임비서 및 몇 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 종업원이 뜨겁게 맞이하러 다가와 각각 손님을 대신하여 차 문을 열었다.
막 이임하는 전 시장 왕뢰이가 입구에서 멀리서 온 귀빈을 뜨겁게 맞이한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뿌얼스웨이커 형제와 일일이 악수하고 상징적인 포옹을 하며 류스의 손을 잡고 그들을 데리고 화려하고 웅장한 응접실로 들어가서 탄력성이 있는 두껍고 붉은 고급 카펫을 따라 아래층 응접실로 간다.
“자자자! 오늘 내가 특수한 신분을 가진 옛친구를 초대해 여러분 형제들과 만나게 할 것이네. 그분이 어제 베이징에서 산청으로 날아오셨는데, 지금은 국가경제전략연구센터의 책임자이시네......자네들은 그분을 만나면 틀림없이 기뻐할 걸세! 들어가지!”
그들이 넓고 호화로운 대 응접실에 들어서자 유명 메이커의 운동복을 입고 고급 운동화를 착용한 마르고 키가 큰 노인 티가 나는 분이 경쾌하게 다가오는데, 눈에는 장난기가 어린 쾌활한 빛이 반짝였다.
“야! 자네들 안녕한가? 뿌얼스웨이커 형제!”
“사 서기님! 사 아저씨! ......”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깜짝 놀라며 앞다투어 전임 시당위원회 제1서기의 손을 뜨겁게 잡았다.
사원신은 정말로 “불로송(不老松)”으로 곧 일흔의 나이에 접어드는데도 여전히 생기 왕성하여 대범하면서도 건강해 보였다.
“어떠냐? 자네들이 보기에도 사 영감의 건강이 아직 괜찮지? 내가 아직도 국제 테니스 클럽의 노년부 우승자야! 하하......”
류스는 진심으로 찬탄한다. “사 아저씨는 정말로 생명의 상록수로서 항상 저희 같은 후배들에게 진땀이 나도록 하십니다......”
“나는 아직 자네들과 함께 21세기로 넘어가려고 한다네! 낙심하지 말게. 스토우! 자네들은 오전 10시의 태양 같아서 바로 큰 일을 할 때이고 전도가 양양하다네! 자네들 같은 젊은이들을 만났으니 우리 같은 노인들의 마음은 정말 기쁘다네! ......”
왕뢰이가 끼어 들어 골리 듯이 말한다. “이후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힘을 쓸 공무가 있을 때 절대로 우리 같은 늙은이를 잊지 않겠지? 계획을 세워 선봉에 서야한다면 우리가 젊고 아름다운 공공기관의 아가씨에 비해 손색이 없다네! 참으로 귀중한 재산일걸세!”
류얼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왕 시장님, 저는 시장님을 더씬그룹의 명예 총재와 고급고문을 맡아주시기를 청하니 절대로 물리치지 마십시오!”
왕뢰이는 하하 웃으며 손 사레를 친다. “농담일세! 농담이야! 의무노동이라면 모를까 전문적으로 겸직하는 것은 절대로 안되네! 고맙네 고마워!”
류웨이는 왕뢰이를 향해 시계를 가리키자 왕뢰이는 알았다는 듯이 말한다.
“아, 말하는데 정신팔려 손님을 이렇게 세워두다니! 오늘은 나와 류웨이가 주인의 자격으로 사 선생과 류 총재를 특별 초청하여 배빈이 되겠네. 변변치 못한 연회이나 류스 선생의 귀국과 남안개발의 투자에 대해 환영과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 김에 우리도 함께 옛날 얘기도 좀 하고 사 서기에게 베이징의 여러 소식도 좀 듣도록 하세. 자!”
서로 친근하게 겸양해하고 담소하며 응접실 바깥에서 식당으로 통하는 복도 쪽으로 걸어간다......
벤츠 승용차가 안정감 있게 대합실 건물 문 앞에 다가와 멈추자 시당위원회 서기 후동성과 비서가 차에서 내린다. 그들은 전송하는 관공서 책임자가 “귀빈실”로 가는 포장 안배의 호의를 거절하고 스스로 짐을 들고 대기실 홀로 들어간다.
그들은 일반 여객들처럼 줄을 서서 탑승카드를 바꾼 다음 떠들썩하게 붐비는 홀에서 빈 자리 두 개를 찾아 앉았다.
각지로 날아가는 수많은 여객기들이 바쁘다.
후동성은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상품 진열대를 돌아본다.
이리저리 돌다가 그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짙은 양장 치마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는 고독하게 대형 유리창문 앞에 서서 멀리 거무튀튀한 산들을 바라보고 있다.
후동성이 그녀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 부른다. “허웨이!”
허웨이는 순간 몸을 돌리고는 시당위원회 서기가 자기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얼른 가리듯이 붉게 부은 눈을 비빈다. “후 참모님?”
후동성은 그녀의 비통한 모습과 눈에 띄는 왼팔의 검은 천에 주의하며 불안하게 말한다. “어디 가십니까? ......베이징에 가십니까?”
허웨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솟아올랐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빨리 말씀 좀 하세요!” 후동성은 다급해 하며 물었고 마음이 순간 긴장되었다. “허 아저씨께서 혹시......?”
허웨이는 눈물이 샘물처럼 솟구쳐 힘주어 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런 비보가 사나이 후동성에게도 억누를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고이도록 하였고, 이 다정하면서도 존경스러운 노장군의 별세에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하였다. “......왜 제게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허 아저씨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노지휘관이자 선배이시고, 어려서부터 제가 성장할 때까지 지켜보아 주셨으며, 저의 아버지처럼 절 아껴주셨는데......산청에 오기 전에 특별히 댁에 들러 어른을 뵈었지요. 그 분께서 친히 절 위해 만두를 빚어 주셨고 밤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웨이웨이, 당신 날 속여서는 안됩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당신과 같이 병원으로 가서 그분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겠습니다......”
정신적 타격을 받은 허웨이는 참을 수 없어 후동성의 넓은 가슴에 파묻혀 흐느끼며 말한다. “아버지가 너무 일찍 떠나셨어요! ......”
후동성은 살며시 심하게 떨고 있는 허웨이의 마른 어깨를 껴안으며, 낮은 소리로 위로하듯이 말한다. “우리도 떠날 겁니다. 우리는 좀 늦게 가도록 해야지요. 우리는 아직 인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멀리 의자에 앉아있던 비서가 시당위원회 서기와 아주 비통해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놀란 듯이 바라본다. 일부 여객들도 함께 슬픔에 잠겨있는 한 쌍의 중년인을 말없이 바라보지만 여행 중에 늘 만나는 장면이라 그런지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다. 누구든 마음 깊은 속에 남모르는 사연이 없을까? 울어라. 울면 나으리라......
허웨이는 눈물어린 눈을 들고 싶지 않아 후동성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훌쩍이며 말한다. “동성, 당신에게 미안해요. 절 이해해 주세요......”
후동성은 묵묵히 그녀를 보며 더욱 힘주어 껴안는다.
대형 홀에 아나운서 아가씨의 부드러운 소리가 울린다.
“베이징으로 가시는 손님들께서는 주의해주십시오. 베이징으로 가시는 손님들께서는 주의해주십시오. 여러분이 탑승하실 4106편 529호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승객 여러분의 짐과 물품과 탑승카드를 준비하셔서 4번 대합실 탑승구에서 표를 확인하시고 탑승해주십시오. 4번 대합실 탑승구에서 표를 확인하시고 탑승해주십시오......”
그들은 승객들 줄에 끼어 인생의 여정 속에 우연히 만난 연인처럼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편안하게 그렇게 잘 어울리고 친밀한 모습으로 함께 서있다.
오후의 태양이 기울기 시작할 무렵 호화 승용차 행렬이 또 당당한 모습으로 씨쟈오호텔을 빠져나가는데, 특수한 신분과 위엄으로 산청의 번화한 대로를 날 듯이 달려간다.
호화로운 차량 행렬이 넓고 웅장한 콰쟝(跨江)대교를 달려간다.
호화로운 차량 행렬리 좁고 구불구불한 작은 골목길을 지나간다.
행인들이 멈춰서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어디든 녹색 신호등이 켜지며 통과하도록 한다.
거리를 지나며 사람들에게 뽐내는 느낌이 들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경적소리 속에 호화 차량 행렬들이 어울리지 않게 주민주택 단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의 “낡은 집(老屋)”앞 뜰 안에 멈추자 순식간에 교통이 막히고 크렉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근무를 서고 있던 경찰이 큰소리로 외치며 주차한 차량을 지휘하고, 운전 기사와 경호원들은 둘러서서 보려고 떠들썩한 아이들을 쫓는다. 수많은 머리가 각층의 창문으로 나와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듯이 건물 아래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양복으로 차려입은 뿌얼스웨이커 세 형제가 각자 차에서 내려 어깨를 맞대고 다정하게 위로 오른다......
교목으로 만든 건물의 계단은 지나친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는 듯이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었다. 어두운 복도 안에는 전등도 없지만 형제들에 의지하며 말없이 계단을 세며 위로 올라갔다.
“누님! 누님! 누가 왔는지 보세요! 스토우라고요! 우리가 다 왔어요! ......” 큰형 류얼이 큰소리로 외쳤다.
작은 옥탑방의 문은 잠기지 않은 채 안에는 어떤 소리도 없다.
세 형제는 약간 의아해 하며 꼭대기 올라가 살며시 닫힌 문을 밀었다. 넓지만 낮고 낡았지만 정갈한 다락방은 텅 비어있고, 남자 아이 하나만이 식탁 곁에 외로이 앉아 있다.
“쟈쟈! 아들아!” 류스가 살며시 부르며 문 앞에 서서 아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를 기다린다.
의외로 아들은 이상할 정도로 냉담했고 의자에 앉은 채 자리를 뜨진 않았지만 침착하고 차가운 눈길로 이 반갑지 않은 손님들을 바라본다. 놀라지도 않을 뿐 아이라 반길 의사는 더욱 없는 것 같다.
“아저씨들은 누굴 찾으세요?” 말투가 마치 집을 잘못 찾아온 낯선 사람에게 묻는 듯 하다.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모두 멍해졌다.
“헤이! 이 꼬마가 말을 어떻게 하는 거야!” 큰삼촌, 셋째 삼촌, 아빠까지 다 왔는데 우리가 누굴 찾아왔냐고 말을 해? 널 찾는다! 류얼이 앞으로 나서 쟈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쟈쟈는 머리를 흔들며 큰삼촌의 손을 뿌리쳤다.
“전 지금 숙제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저씨들 저녁에 다시 오시는 것 어때요?”
남들보다 총명한 류얼도 멍해져 어쩔 줄 모른다.
류웨이는 이미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채고는 큰형을 당기며 살며시 말한다. “됐습니다. 형님, 우리 먼저 내려갑시다. 스토우에게 쟈쟈와 잠시 같이 얘기 좀 하도록 해주십시다. 쟈쟈야, 우리 간다!”
쟈쟈는 아무 내색 없이 머리를 숙이고 숙제를 하기 시작한다.
류웨이는 영문도 모르는 류얼을 끌고 문 밖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큰 방안에 부자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
류스는 마음 속의 커다란 비통함을 참으며 아들을 바라본다.
쟈쟈도 말없이 아버지를 바라본다.
“앉으세요.” 그는 맞은 편의 의자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류스는 무너지는 듯이 천천히 다가와 앉아 이미 낯설고 냉정하게 변해버린 아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아들은 다 컸다!
쟈쟈는 투명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묻는다.
“미국에서 오신 건가요?”
“그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들의 눈이 기세가 등등하여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좋던가요?”
“좋지......물론 중국도 훌륭해.”
“결혼하셨어요?” 비약시키는 생각이다.
“쟈쟈, 내가 편지로 네게 알렸을 텐데......”
“무엇 때문에 큰엄마랑 결혼했어야 했나요? 돈 때문인가요?”
“아니야. 왜냐하면......왜냐하면 사랑 때문에......”
쟈쟈는 잠깐 웃음을 짓더니 보고도 보지 않은 채 손 가는 대로 책을 넘긴다.
“쟈쟈, 내 말 좀 들어보렴---”
“돌아오셔서 뭘 어쩌시겠다는 거죠?”
“쟈쟈! 아빠는 널 미국으로 데려가 공부시키려고 한다. 그곳의 학습조건은 아주 좋단다. 천천도 함께 가게 할거란다. 아빠랑 큰엄마는......”
“저를 엄마랑 떨어지게 하려고요? 싫어요. 절대로 안돼요!”
“쟈쟈, 넌 아빠랑 같이 있고 싶지 않니?”
“그래요. 전 원치 않아요.”
“왜지?” 아버지의 마음은 서늘해져 목소리에 애원이 담긴다.
“왜는 무슨 왜에요! 싫으니까 싫은 거죠.”
“아빠는 널 정말 사랑해. 아마도 우리 사이에 너무 깊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난 널 탓하지 않아. 아빠는 단지 네가 아빠에게 기회를 한 번 주길 바랄 뿐이야.”
“기회는 없어요.” 아들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왜? 아빠가 엄마랑 이혼했기 때문이니?”
“아뇨. 이혼은 결코 이상할 것도 아니죠. 왜냐하면 전 아빠에 대해 생각한 게 있어서예요!”
“말 해줄 수 있겠니?” 아버지는 되려 아들과 교류를 갈망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아들은 깜짝 놀랄 말을 한다!
“물론 해드리죠! 전 남자 대 남자로서 아빠에 대한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죠. 아버지 세대는 허위와 이기심의 세대라고 생각해요. 전 아버지 같은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버지 세대는 한번도 여자를 보호해본 적 없어요. 아버지 세대는 어느 누구도 참말을 하지도 않고 참된 감정도 없어요. 전 미커 삼촌만 좋아해요. 그 삼촌만 진정한 사나이라고요! 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틀렸어요.”
류스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낮은 소리로 묻는다.
“아들아! 아빠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아빠가 여길 떠나셔도 됩니다. 전 숙제를 해야 돼요.”
류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무의식중에 벽에 걸린 기타를 보았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가 기타를 내려 가볍게 줄을 퉁겨 본다.
“띵! ......” 기타의 공명통에서 웅웅거리는 긴 울림소리를 낸다.
류스는 샘물처럼 눈물을 흘리며 마음 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 이미 영원히 자식을 잃어버렸고 사랑을 잃어버렸고 진정한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막내 동생 미커가 운영하는 “연인하우스”의 텅 빈 홀에서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희비가 엇갈리듯이 다시 모였다.
류얼과 막내는 두 손을 벌려 함께 부둥켜안고 상대적으로 말이 없다. 미커는 양복으로 차려입은 형들을 “연인석(情人座)”의 소파에 앉도록 하고 직접 술을 날라 왔다.
종업원 아가씨와 뒤따르던 사람들은 눈치채고 물러난다.
“연인하우스”에 오늘은 뿌얼스웨이커 형제 네 사람뿐이다.
미커는 피아노 앞에 앉아 가볍게 《산사나무》곡을 치기 시작한다.
형제들은 피아노 소리에 따라 그 익숙하고 슬픈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화음은 여전히 감동을 줄만큼 듣기 좋았다.
노래 소리 가벼이 황혼 속 물위를 맴돌고,
나는 오솔길 따라 나무 아래를 걸어가네.
실바람 살랑살랑 불어와 나무 잎사귀 흔들고,
젊은 선반공과 철공의 머리카락 흩어놓았네.
아, 산사나무, 사랑하는 산사나무여!
아, 산사나무여, 산사나무,
넌 왜 슬퍼하느냐? ......
괴로운 노래 소리가 사람들에게 일종의 깊은 상실감을 주었다.
미커는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 아래 쇼팽의 B단조 피아노 소나타가 천천히 흘러나오자 순간 비극적인 분위기가 낭만적 무드로 가득 찬 연인하우스를 뒤덮었다.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침묵하였다.
이즈음 덩치가 우람한 사복경찰 몇 명이 소리 없이 술집 홀 입구에 나타나 차갑게 류얼을 쳐다본다. 궈린이 그들 사이에 끼여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쓴웃음을 짓고 있다.
피아노 소리가 끊어졌고, 미커는 천천히 형의 곁으로 돌아간다.
류얼의 얼굴빛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하였고, 얼굴을 돌려 류웨이를 바라본다.
류웨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침통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술집 홀에 무서울 정도의 정적이 흘러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류스도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의식했는지 입을 닫고 말이 없다.
류얼의 눈이 갑자기 붉어지더니 두 팔을 벌려 세 동생을 함께 끌어안았고, 네 형제는 머리를 숙이고 한동안 침묵하였다.
몇 명의 형사는 뿌얼스웨이커 형제를 차갑게 바라보고 있다.
류얼이 고개를 들고 동생들에게 대범하게 웃어주고는 몸을 일으켜 입구로 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보시오! 내가 지금 당신들과 가는 겁니까?”
세 동생은 무거운 눈길로 형을 배웅한다.
류얼은 고개를 돌려 웃고는 문밖으로 사라진다.
텅 빈 술집 홀 안에 아무런 소리도 없다.
황혼이 다가오자 태양이 지려고 하는지 온통 붉기만 하다.
남산의 혁명공동묘지는 장엄하면서 조용하게 금빛에 물들어 있다.
누나 류뿌는 홀로 조용히 부모의 묘 앞에 왔다.
류뿌는 솔가지로 세심하게 묘의 앞뒤를 깨끗하게 한 다음 바구니 안에서 제기용 그릇들을 꺼내고 술을 따르고, 만토우(饅頭), 옌차이(鹽菜), 간식과 과일 등을 올린다. 그런 다음 묘비 앞에 꿇어앉았다.
햇빛이 그녀의 몸을 비추고, 또 그녀 앞의 거대하고 차가운 돌비석을 비추자 그녀의 가슴속에서 한 차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이 솟구쳤다. 이 혼란스러움은 빠르게 그녀의 모든 사고를 점령하고는 고집스럽게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류뿌는 힘없이 눈을 감았고, 눈물 방울이 천천히 그녀의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로 미끄러져 내린다. 지쳐버린 바람이 불어오자 류뿌의 몸은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이 바람 속에 천천히 융화되어간다고 느끼자 그녀는 정말 눕고 싶어졌다. 이 푸른 산과 흰 구름 사이에 눕고 싶고, 이 얻기 어려운 고요 속에 눕고 싶고, 붉은 먼지 이는 속세의 그런 번뇌에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산비둘기 한 마리가 멀리서 구구하며 울기 시작한다.
류뿌는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느껴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과연 그녀의 뒤에는 이미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의 자식들---궈궈, 쟈쟈, 천천, 미미 그리고 유치원 유아반에 다니는 멍멍이 말없이 서있다. 아이들은 순진하면서도 조숙한 눈들 속에 맑은 눈물을 머금은 채 묵묵히 쇠약하고 초췌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다.
류뿌는 눈물을 머금은 채 아름답게 웃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미 자신도 모르는 일종의 굳건한 기색이 들어 있다. 이런 사랑스러운 후세들을 보고 그녀는 스스로 쓰러질 수 없고 결코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희망은 이 아이들의 몸에 있고 또한 그녀 마음 속에 있다.
희망만 있다면 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아이들이 그녀를 부축하여 천천히 산을 내려온다.
그들의 몸 뒤로 석양은 불꽃처럼 찬란하다.
1995년 10월 31일 청뚜(成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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