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中國小說

볼세비키 형제들(15)

마장골서생 2011. 3. 10. 23:04

 

제 15 장


이곳은 세상의 잊혀진 모퉁이다.

이것은 역사가 남겨 놓은 무덤이다.

이곳에는 문화혁명 기간 중 무장투쟁의 광란 속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원귀들이 묻힌 채 벌써 18년이나 조용히 잠들어 있다.

새벽의 자욱한 안개가 흩어지자 온갖 새들이 숲에서 지저귀고, 놀빛이 만물의 생명을 어루만질 무렵에 류얼은 혼자서 이 황량하고 음산한 홍위병의 묘지에 다다랐다.

빽빽하게 들어선 묘비가 얼굴에 다가오는데, 마치 그 당시에 살아남은 자에게 다투어 소리 없이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묘비마다 젊은이들의 이름이 길게 새겨져 있는데, 그들은 인생을 맛보기도 전에 너무 빨리 지옥으로 가버렸다.

살아있는 사람인양 격동하는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하소연하고 있다......

류얼은 마침내 무덤들 가운데서 쏭웬웬이 잠든 자리를 찾아내었다. 그녀는 애처롭게 잡초 무더기의 끊어진 담 모퉁이에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는 낙엽 마냥 끼어있다.

류얼은 작고 초라한 묘비 앞에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연노랑의 들꽃을 바친다. 그는 갑자기 묘비 주위가 벌써 세심하게 청소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묘비 앞에 아주 작지만 농염한 향기를 뿜는 들잇꽃이 놓여있다.

분명히 이 사람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부근에 있을 것이다.

류얼은 마음에 전율이 일고 혼란해져 서늘한 기분을 느껴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그는 몸 뒤쪽 멀지 않은 곳의 무덤들 사이에 서있는 온갖 풍상을 겪은 듯한 투박한 반백의 중년 남자를 보았는데, 자기를 향해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보내왔다.

“궈린?!......” 류얼은 살며시 소리내어 불렀다.

궈린은 고개를 끄덕이자 갑자기 눈물이 나는지 나지막하게 말한다. “오늘이 웬웬의 기일이지......18년이나 되었군!”

류얼의 눈빛이 반짝인다. “자네......아직 기억하고 있었는가?”

궈린은 눈물을 쏟아낸다. “영원히 잊을 수 없네! ......”

그들은 서로 다가가 상대의 손을 꽉 잡았다.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자유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쓰웨이는 병이 나아지자 아예 대나무 광주리를 지고 물건을 사러 문을 나섰다. 솜옷을 입고 바깥에는 색이 바랜 작업복을 껴입고 배가 불룩한 게 흡사 시골사람이 시내에 들어온 것처럼 북적이는 인파 속을 뚫고 지나간다. 지나가는 도중에 등에 진 광주리가 이 사람 옷에 걸리고 저 사람 허리에 부딪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바구니를 들고 설 명절 물건을 사러 나온 가정주부와 모범적인 남편들은 화가 난 듯이 서로 당기고 밀쳐대어 쓰웨이를 비틀거리게 하였고 길을 따라가면 좋은 말을 들었다.

어렵사리 시장의 대문까지 떠밀려 오자 이미 숨을 몰아 쉴 정도로 피곤하였고 야윈 얼굴은 온통 벌겋게 달아올랐으며 머리 위에는 식은땀이 솟아나서 하는 수 없이 멈춰 서서 쉬었다.

쓰웨이가 등에 지고 있던 광주리를 길가에 막 내려놓고 앉았을 때 아름다운 검붉은 산타나 승용차 한 대가 소리 없이 조용히 그의 앞에 다가와 멈춘다. 아, 미커였다. 그는 흥분한 듯이 몸을 일으켰다.

“헤이! 미커! 너 어째서 이렇게 오래 동안 집으로 안 돌아오는 거야? 누나가 온 데 널 찾아다녔어. 어디로 간 거야?”

미커는 여전히 화려하게 차려 입고 있었다. 검은 가죽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앞이 뾰족한 구두를 신었으며 검은 머리카락은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드라이를 하고 있었지만 얼굴빛은 욕심은 없어 보였으나 어두웠다. 그는 자동차에서 내려 아무런 대답도 없이 뒤쪽 트렁크를 열고는 설날에 쓸 물건으로 가득 찬 대나무 광주리를 집어넣고 “쾅”소리가 날 정도로 트렁크를 닫았다. 차에 들어 가 손을 뻗어 자형을 위해 뒤쪽 차 문을 열었다.

쓰웨이는 슬쩍 웃고는 차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차가 익숙한 도로를 따라 내리막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쓰웨이는 막내 동생에게 집안의 최근 상황을 간략하게 일러주었다.

미커는 아무 말 없이 들으며 눈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치 집안 일들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차가 이미 쟝판춘(江畔村) 30호 오랜 건물 아래에 도착하였다. 미커는 차를 멈추고 여전히 한마디도 없이 차에 내려 뒤 트렁크를 열고 광주리를 꺼내어 땅바닥에 내려 놓은 후 자형이 쫓아오며 부르는 소리에 아랑곳없이 산타나 택시를 몰고 순식간에 번잡한 시내 쪽으로 사라졌다......


옷차림이 장중하고 정결한 류스와 허웨이가 큰길에 있는 사무소의 혼인등기 사무원 앞에 서서 차분하게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쌍방이 협의이혼을 원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협의이혼을 원합니다.”

“직장의 중재도 효과가 없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들 직장에서도 중재가 무효하다는 증명이 있습니다.”

“가정의 재산분할과 자녀부양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협의서에 분명하게 다 적혀있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알았습니다. 수속이 다 갖춰졌군요. 《중화인민공화국혼인법》의 규정에 근거하여 두 분의 협의이혼을 허락합니다.” 판에 박힌 듯한 표정을 한 중년여자 사무원이 신속하게 “탕, 탕” 큰 도장을 찍고 나서 연녹색의 이혼증서와 신분증 두 부를 나누어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나누어주고는 일어나서 정중하게 두 사람과 악수를 하였다. “축하합니다. 두 분께서 새로운 생활을 하시게 되겠지요!”

류스와 허웨이는 웃으려고 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아 말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는 허웨이의 눈에 눈물이 비친다.

그들은 이혼증서를 조심스럽게 호주머니에 넣고 서로 한번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문 밖으로 나간다.

똑같이 옷차림이 장중하고 정결하고 똑같이 차분한 마음으로 류얼과 꾸야훤이 같이 들어온다. 두 쌍의 부부는 웃으며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 나자 류스와 허웨이는 문밖으로 사라진다.

여사무원은 또 한 쌍의 중년부부가 오는 것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앉아 규정에 의거해 사무적으로 묻는다. “어떻게 다들 금년의 마지막 날에 일을 보러 오냐......두 분은 협의이혼을 원합니까?”

신혼부부가 서로 힐끗 쳐다본다. 꾸야훤이 말한다. “우리는 결혼합니다.”

폭죽소리 가운데 새로 산 칼라 텔레비전 냉장고 오디오 등 고급 가전제품을 가득 실은 소형 화물차 한 대가 건물 앞에 멈추었다. 대학생 궈궈가 차에서 내려 큰소리로 옥탑방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어머니! 아버지! 다 실어 왔어요! 빨리 내려오세요!”

“야! ......” 2층에서 한바탕 환호하더니 황급히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잠시 후에 류뿌 부부와 야훤, 허웨이, 궈옌 등 동생과 올케들 및 아이들이 환호하며 뛰어내려왔다.

궈궈가 땀에 흠뻑 젖은 채 몇 명의 배달 인부를 지휘하여 차에서 짐을 내리자 온 가족이 다같이 가전제품들을 2층으로 옮긴다......

궈궈는 지체 없이 포장 상자를 뜯어 21인치 소니 칼라 TV를 방 중앙의 사각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바쁘게 선을 연결하여 설치하고 조정한 뒤에 전원을 켜자 큰 화면에 색채가 선명하고 또렷한 영상이 즉각 나타났다.

“야! ......” 온 가족이 또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궈궈가 먼저 침대에서 물구나무를 서자 쟈쟈와 천천도 따라서 물구나무를 선다. 궈옌의 품속에 안겨 있는 미미(咪咪)가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고 방안은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되었다.

쓰웨이가 한 쪽에서 조립형 오디오를 연결하자 스피커에서 갑자기 “웅!”하는 큰 소리가 나더니 자극적인 리듬의 디스코 음악이 나왔다. 궈궈와 동생들은 바로 음악의 박자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바닥에서 흥이 난 듯 춤을 추어댄다.

엄마들은 박수를 치며 아이들을 응원하자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났고 작은 옥탑방 안은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류뿌는 지친 듯이 올케의 어깨에 기대어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미미는 악을 쓰며 운다. 그녀는 모두의 기쁨을 이해 할 방법이 없었다.


화려한 등불이 켜지면서 네온 빛이 부서진다. 평소에 번화하고 시끄럽던 큰길이 의외로 적막하게 변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한다.

돌아갈 곳이 없는 미커는 고독한 유령처럼 막연하게 산타나 승용차를 몰고 큰길에서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간간이 어깨를 맞대고 팔짱을 낀 한 두 쌍의 젊은 연인들이 길가에서 손을 들어 차를 세웠지만 미커는 보고도 못 들은 척 경적을 울리며 그들 곁을 나는 듯이 지나쳤다.

밤의 장막이 드리운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은 안개비가 흩날린다.

여기저기서 폭죽이 울린다. 큰길에는 사람 하나 없다.

산타나 승용차가 한적한 작은 길에 도착하여 장사가 신통치 않은 개인 식당 문 앞에 멈추어 선다.

식당 주인은 반가운 듯이 미커를 맞이하고 주인 마누라와 나이 어린 점원 몇 명이 그를 둘러싸고 쩔쩔맨다.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신년파티의 실황이 방송되고 있다.

미커는 두텁게 접힌 지폐를 던지며 한 상 가득한 요리와 네 병의 맥주를 주문하자 주인 일가족은 놀란 눈빛이 지켜보는 가운데 게눈 감추듯 배불리 먹어 치운 후 잔돈도 받지 않고 흔들거리며 차를 몰고 안개비 속으로 사라진다......


신화과학계기공장의 본관에 불빛이 밝게 켜지고 웃음소리가 이따금씩 울려나온다.

류웨이는 한 무리의 과학기술원과 엔지니어들을 이끌고 담소하며 계단을 내려가 본관 밖의 돌계단으로 나간다.

류웨이는 큰소리로 모두를 진작시키며 말한다. “동지들! 승리가 눈앞에 있습니다. 하지만 느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연구팀은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철야작업을 통해 새해 첫날 ‘새 출발’을 쟁취하여 3급 천칭 전체 성능시험 감정을 통과합시다! 어때요?”

“좋습니다! 문제없습니다! 류 국장님 안심하십시오! ......” 모두들 뜨겁게 호응하며 류웨이를 둘러싸고 열의가 등등한 공장으로 걸어갔다.

고무줄 새총 하나가 고무줄이 당겨지더니 갑자기 발사되었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돌맹이가 류웨이의 이마를 때렸다. 류웨이는 “아야”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검은 그림자가 멀지 않은 화단 뒤쪽에서 언뜻 비치더니 후다닥 도망친다.

주위 사람들이 “저놈 잡아라!”라고 외치며 전력으로 쫓아갔다.

류웨이는 손으로 이마를 움켜잡았지만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린다.

어떤 사람이 큰소리로 외친다. “빨리 의무실로 가서 의사를 데려 오세요!”

사람들은 부상당한 류웨이를 부축하며 큰소리로 외친다.

잠시 후 “자객”이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류웨이의 앞에 붙잡혀 왔는데, 뜻밖에도 낯빛이 어두운 젊은 직공인 살코기라는 별명을 가진 “소우로우(瘦肉)”였다!

공장의 의사가 숨을 헐떡이며 도착해 류웨이에게 가제로 싸매어 준다.

류웨이는 식식거리며 “소우로우”를 쳐다보지만 말이 안나왔다.

“소우로우”도 식식거리며 류웨이를 쳐다보는데 얼굴에는 불쾌한 빛이 가득하였다.

“데려 가자고! 저놈을 공안국에 넘겨버려!” 사람들은 시끌시끌하게 떠들어대었다.

류웨이는 손을 들어 사람들을 제지하였다.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멀리서 드문드문 폭죽소리가 울린다.

계단과 복도 안에 발자국 소리와 함께 두 명의 공장 보안과의 간부가 “소우로우”를 호송하여 공장장 사무실로 들어왔다.

류웨이는 피가 약간 배어 있는 가제를 머리에 두른 채 홀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다. 책상 위에 두 사람 분의 도시락이 놓여서 남은 온기를 내뿜고 있다.

“소우로우”는 자포자기 상태로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태도다.

류웨이가 손을 젓자 두 명의 보안요원이 물러갔다.

방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창 밖에서는 웅웅하는 기계소리가 날아 들어온다.

“앉아요.” 류웨이는 의자를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한다.

“소우로우”는 잠깐 생각하더니 다가와 류웨이의 맞은편에 앉고는 호주머니를 더듬어 빈 담뱃갑을 꺼낸다.

류웨이는 따첸먼(大前門) 담배 한 갑을 그의 앞에 던진다.

“소우로우”는 힐끗 보고 나서 한 대를 꺼내 피우기 시작한다.

먼 곳에서 간혹 폭죽이 울리고 희미하게 아이들의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우로우”는 담배연기를 힘껏 내뿜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식사 하시오!” 류웨이는 도시락 하나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소우로우”는 담배의 꽁초를 몇 모금 힘있게 빨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다른 일 없으면 난 그만 가보겠소!”라고 말하며 몸을 돌려 나간다.

“거기 서!” 류웨이는 단호하게 불러 “소우로우”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는데, 눈빛이 적대적이며 어두웠다.

“제기랄! 너무 원한 깊은 표정 짓지 마시오! 어디에 이런 계급적 원한이 있소? 옛 친구의 체면 안보고 오늘 당신을 패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소!” 류웨이의 눈에서 갑자기 살벌한 눈빛이 뿜어져 나왔다.

“소우로우”는 즉시 큰 눈을 부릅뜨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도리어 비난을 한다. “누가 당신 친구라는 거요? 당신 같은 사람에게도 친구가 있소? 친형조차도 용서하지 않고 전 동장 400여 명의 어깨를 밟고 출세하려고 하니 제기랄 당신 같은 사람에게 약간이라도 인정이라는 게 있는 거요? 내가 눈이 삐었지! 당신 같은 이런 사람을 친구라고......당신이 날 치겠다고?! 내가 오늘 당신과 함께 하지!”

“당신 거기 앉아요!” 류웨이가 소리치자 천정과 바닥이 다 울렸다. “소우로우”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의자 귀퉁이에 앉는다.

류웨이는 노기 등등하게 방안을 왔다갔다 몇 바퀴 돌면서 스스로 격분한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히고 차갑게 말한다.

“당신을 때리는 게 쉽지 않다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열 명이라도 내 상대가 될 수 있겠소? 당신을 때린다고 어떡하겠어? 당신을 둔하고 어리석은 생각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당신 같은 사람이 손해보는 건 수준이 없는 데서 손해 보는 거야! 머리 속에 친구들에 대해 돌팔이 같은 의협심만 꽉 차있는데, 당신들이 친구라고 할 수 있어? 불합격 제품을 가지고 소비자를 괴롭히고 국가의 이익을 해치고 사회의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당신들이 누구에게 떳떳하다는 거요?! 자신의 양심에 당당하다는 거요?! ......”

“당신 그따위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시지! 이 몸은 노동자야! 누가 내게 임금과 상여금을 주느냐에 따라 난 그 사람을 따르지! 다른 일은, 흥, 내가 관여할 바 아니지! 수준이 안 된다고!” “소우로우”는 무뢰하게 조롱하였다.

“불량배가 당신에게 돈을 주고 사람을 죽여 달래도 할거요?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고!” 류웨이는 그의 코에 삿대질을 하며 꾸짖었다. “당신 자신이 어디에 노동자 같은 지 잘 보란 말이요? 노동자가 이렇게 자신의 기업을 망치는 거요? 내가 외국의 자본가였다면 진작에 당신 같은 사람을 잘랐을 거요! 내 형님이 당신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망쳐놓은 거란 말이요! 눈앞의 이득에 눈멀고 자신과 남을 속여 날조나 하고......형님이 이전에 내 말만 들었다면 이런 상황이 됐겠냐고! 도대체 누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거요?! ......당신 잘 생각해 보시오. 더 이상 어리석게 시간 보내지 맙시다! 생각이 정리되면 공장으로 출근 하도록 하시오!”

“소우로우”는 중얼거리며 말한다. “난 출근하고 싶지 않소이다.......”

“알겠습니다! 내일 당신 자료 가져다 수속하시오. 당신은 해고되었소!” 류웨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볼펜을 들고 재빠르게 메모하였다.

“소우로우”의 눈이 잠깐 휘둥그레지더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류웨이를 쳐다보며 “당신이 날 자르겠다고? 흥! 무슨 근거로?”

“당신이 15일 이상 계속해서 무단 결근한 것, 의도적으로 회사 관리자에게 상해를 입힌 것, 회사에 아무런 책임감이 없는 것들이 그 근거지요! 난 회사의 법인 대리인입니다. 회사의 직원 관리와 처벌 규정에 근거해 당신을 해고시킬 권한이 있소이다!”

“소우로우”는 뛰어 오르듯이 몸을 일으킨다. “나는 19년 동안이나 국영기업에서 일한 정식 직원이야. 당신이 해고하겠다면 해고해 보시지?! 당신에게 알려주지! 신화과학계기공장의 ‘철밥통’은 내가 결정한다고! 이게 사회주의가 내게 준 우월성이지!”

류웨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얼굴에 귓불까지 붉게 물든 “소우로우”의 얼굴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나도 당신에게 알려주지! 만일에 당신이 착실하게 출근하지 않고 계속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나도 이 빌어먹을 무슨 부국장 자리 때려 치고 당신의 그 놈의 ‘철밥통’ 박살내고 말 거요! 난 한다면 하지! 못 믿겠다면 내일 공장 문 앞의 게시판을 보시지!”

“소우로우”는 결국 상대가 되지 못하고, 먼저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알지, 안다고! 당신은 국가의 간부에다 기업의 법인대리이고 사장이지. 나야 평범한 노동자에다 당신의 종이라면 됐소? 내 꼬리 내리고 얌전하게 출근하지. 하지만 나와 당신의 관계는 끝났소이다! 나는 당신을 무시할 거요!”

“소우로우”는 몸을 돌려 힘껏 닫으며 가버린다.

류웨이는 손으로 화끈거리는 이마의 상처를 떠받친다. 말하기 어려운 아픔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벤츠 승용차 한 대가 경비가 삼엄한 씨쟈오(西郊) 호텔 정문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정원 안쪽의 넓고 조용한 숲으로 들어선 다음 나무 그림자로 가려진 이층의 아담한 건물 앞에 멈춰 선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朱) 비서 및 몇 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 종업원들이 친절하게 맞이하러 앞으로 나와 손님 대신에 차의 문을 연다.

류얼이 주 비서의 안내로 화려한 로비로 들어서자 탄력성이 뛰어나고 두터운 선홍색의 고급 카펫을 따라 곧장 1층 운치 있고 드넓은 응접실로 들어간다. 사원신이 소파에서 일어나 영접하며 친근하게 손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왔군, 샤오류(小劉)! 가자고, 날 따라 식당으로 가세! 오늘 우리 독신끼리 모였으니 술이나 마시자고! 이 쪽으로!”

류얼이 시위원회의 제1서기를 따라 넓고 호화로운 식당으로 들어서자 몇 명의 종업원들이 이미 식탁 곁에 붙어서 공손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주방에서 풍성한 요리와 술이 나왔다. 간단한 요리 몇 접시와 탕 외에 술과 음료수 그리고 과일이라지만 하나하나 정성스럽고 맛과 향이 최고급이었고, 고급 식기에다 서비스와 분위기까지 일품이라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고 식욕이 돋도록 하였다.

사원신이 손을 젓자 종업원들이 조용히 물러갔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주인은 손님에게 “마오타이(茅台)주”를 가득 따른다.

“자, 샤오류! 건배!”

두 사람은 상징적으로 잔을 부딪히고는 사원신이 호쾌하게 잔을 비웠지만 류얼은 입술만 적셨는데 제1서기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곧 목을 젖히고는 마셔버렸다.

“좋아요, 요리 좀 들자고.” 사원신은 친근하게 손님을 재촉한다.

“왜그러나, 샤오류? 남자가 무엇 때문에 종일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가? 오늘은 명절이니 흥 좀 내고 즐기자고!”

류얼은 시위원회 서기를 향해 억지로 웃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사원신은 류얼을 위해 계속 술을 시키며 아주 즐거운 듯이 말한다. “샤오류, 아내를 맞아들이게. 아이에게도 엄마가 있어야 되고!”

“저 오늘 막 결혼증명서를 받았습니다.” 류얼은 웃는 얼굴을 내비친다.

사원신은 흥미로운 듯이 묻는다. “아, 여자는 어디 사람인가?”

“조선공장 엔진니업니다. 문혁 전 마지막 대학생이었죠.”

“틀림없이 예쁘겠지?” 사원신은 즐거운 듯 묻는다.

류얼은 가타부타 말없이 여유 있게 웃는다.

“잘 됐군! 자, 우리의 여성 엔지니어를 위해 건배!”

류얼은 더 이상 대충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잔을 들고 단숨에 마셨다.

“야아, 신혼부분데 내가 멋대로 두 사람을 갈라놓았네 그려, 정말 미안하네! 그렇지 않음 차를 보내 모셔오도록 할까? 이런 일은 시끌벅적 해야지! ......” 사원신은 가책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였다.

“괜찮습니다. 사 서기님. 오늘 저녁에 다 같이 모이기로 해서 누님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남자 네 명은 집에 없어 여자들과 애들만 즐겁지요!” 류얼은 담담하게 말하였다.

사원신이 조심성 없게 묻는다. “왜, 다들 집에 안 오시나?”

“아마도......자기들 일이 바쁘겠죠. 잘 모르겠지만!”

사원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이건 별로 안 좋은데. 뿌얼스웨이커 형제가 사분오열 될 수 없지, 자네 생각은?”

“헤어져 있으면 만나고 만났으면 헤어지는 법, 아마도 이런 이치겠지요.”

“어찌되었건 친형제들이잖아! 다른 상황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자네와 류웨이의 문제에 자네가 동생에게 오해를 하고 있을 걸세.”

시위원회 제1서기는 갑자기 민감한 화제를 꺼냈다.

류얼의 얼굴빛이 즉각 어두워졌다. “사 서기님, 이 일은 벌써 지났습니다. 전 다시 이 일을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난 아직 말해야겠네. 류웨이는 결코 틀리지 않았네.”

“저도 이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제가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류얼의 말은 어색하면서 차가웠다.

사원신은 그의 손을 치며 낯빛이 엄격해진다. “성패를 가지고 영웅을 말하지 말게! 설사 자네가 잠시 이겼다고 해도 만약에 자신의 결점을 의식하지 못했다면 자네는 결국 실패하고 말 걸세! 자네는 스스로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제게도 결점은 있습니다!” 오만한 류얼의 천성이 심각한 실패의 느낌이 또 억누를 수 없이 부풀기 시작하여 차갑게 말한다. “저의 가장 큰 결점은 저 자신이 너무 강한데 있습니다!”

“자네가 틀렸네!” 시위원회 제1서기의 얼굴이 엄숙해지더니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네의 가장 큰 결점은 눈앞의 성공에 너무 급급해 하는 것이지. 삶과 생명의 진실한 의의에 대해 깊은 인식이 부족해!”

류얼은 약간 당황한 듯이 시위원회 제1서기를 바라보며 그의 진솔함과 충고에 깊이 충격을 받았다. “서기님, 계속 말씀하시죠!”

사원신은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인생의 의의는 본질적으로 공적과 이익이라는 두 글자로 헤아리고 평가될 수는 없네. 나는 자네 형제들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해왔네. 솔직히 말해서 자네들은 차이는 좀 있겠지만 이 방면의 결점이 다 있지만 자네가 특히 두드러지네! 자네는 야망이 큰 젊은이인데다 개인적인 소질도 훌륭하고, 또 건강과 나이의 우월한 점도 있어 큰일을 할 수 있다네. 그러나 자네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이익에 눈이 홀려버렸거나 사회의 생존환경과 개인적 투쟁의 힘든 역경이 초조하고 경솔한 심리상태를 만들어 버린 거지. 언제나 되도록 빨리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드러내어 사회의 인정을 얻느라 분투 자체의 의의를 망각한 거지! 무거운 심리적 압박이 자네를 여태까지 생활의 정취와 은근한 온정을 없게 만들었고, 달관하는 인생의 자세와 가벼운 유머를 부족하게 만들었지. ‘낮에는 신선한 꽃 한 송이 없고 밤에는 달빛마저 없는 격이지’. 공적과 이득에 급한 단기간의 행위는 자네의 심신을 노곤하게 했고, 자네의 식견과 포부를 시종 하나의 협소한 공간에 국한시켰지. 일로 분투하고 진취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것 외에 자네는 더 이상 어떤 개인 생활의 즐거움도 없지. 그래서 매 번의 실패가 끊임없이 자네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자네는 또 거대한 고통과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지. 그때마다 자네는 과거의 모든 노력이 모두 하룻밤 사이에 수포로 돌아갔다고 뼈저리게 느꼈지. 이 고통과 절망의 과정은 종종 자네의 너무 많은 지혜와 에너지를 소비시켜버리지만 다른 눈앞의 이익 목표가 자네 앞에 나타났을 때 자네는 또 그 화려한 빛에 유혹되어 심지어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황급히 전장에 나가 인생과 싸우지......이렇게 반복하며 분투하나 시간은 무정하게 자네가 성공할 모든 가능성을 빼앗아버리고 자네를 영원히 재수 없는 실패자로 만들어버렸지! 루즈벨트 대통령이 죽기 한 시간 전에 비서에게 여러 차례 한 부탁이 ‘프랑크 워크’에게 전화를 걸어 샌프란시스코 기념우표를 가져다 내 곁에 두라고 하게‘하는 거였네. 자네는 이렇게 할 수 있겠나? 실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일 경우 절대로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신화 같은 얘기지. 이런 사람의 감정은 종종 간단하면서도 거칠기 때문에 있어야 할 부드러움과 인정미가 부족하지. 유머 감각은 말할 필요도 없지. 그들은 평소에 충분한 심리와 감정의 교류가 부족한 때문에 왕왕 일종의 자기 폐쇄적 정감패턴과 냉담하고 무관심한 대중적 형상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지. 더욱 엉망인 것은 그들은 간혹 천박한 실리 목적을 위해서 분투하고 심지어 희생까지 하지만 결국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얻을 수도 없고, 영원히 후대 사람들에게 버림이나 받을 걸세! 자네는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여태까지 제게 이런 마음 속의 말을 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류얼은 기쁜 마음으로 탄복한 듯이 제1서기를 바라보며 말한다. “서기님은 당연히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서기님에 대하여 벌써 새로운 인식을 갖게되었고, 제 자신에게도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 아저씨! 저의 성공은 여태까지 모두 단명했고, 이것은 저를 무척이나 괴롭게 했습니다. 방금 서기님께서 말씀하신 공적과 실리에 안달하는 것 외에 제가 원래 성공하는 사람의 어떤 조건을 갖추지 못한 건 아닌지요? 아니면 선천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기시는지요?”

사원신은 손을 흔들며 웃고는 일어나 천천히 걸으며 말한다.

“과학자들이 일찍이 각종각양의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추적고찰과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네. 성공은 재능과 기회 그리고 꿈 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꿈은 성공의 길로 가는 첫 번째 계단이라는 것이지. 자네는 앞의 두 가지 조건 즉 재능과 기회는 결코 부족하지 않지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꿈일세! 내가 말한 ‘꿈이 부족하다’고 한 것은 ‘꿈꿀 줄 모른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야. 왜냐하면 어떤 평범한 사람도 아마 여러 가지 현실에 맞지 않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들과 성공자의 구별은 바로 그들은 꿈을 실현할 용기와 행동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지! 예를 들어 류얼 자네가 몇 년 안에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해 봤는가? 류얼 자네는 단지 작디작은 공장장에 만족했을 뿐 억만 금의 자산을 가진 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봤는가? 더욱이 류얼 자네가 야커카나 마쯔시다 같은 세계적인 거물과 이름을 나란히 할 것을 생각해 봤는가? 자네는 틀림없이 생각도 안 해봤을 걸세! 설사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스쳤을지라도 그저 생각일 뿐이었지 결코 진지하게 이러한 꿈을 현실로 바꾸어 볼 준비를 하지 않았지. 재능은 자신에게 속하는 귀한 재산이지만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네. 관건은 위대한 꿈을 실현하는 데에 있지! 이것은 자네가 공적과 실리에 조급해 하는 잡념을 버리고, 원대한 분투 목표가 있기를 필요로 한다네. 나는 자네가 의기소침해 할 필요도 자신을 괴롭힐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네. 자네의 앞길은 아주 원대하다네!” 류얼은 경건하게 시위원회 제1서기를 위해 ”마오타이술“을 가득 따르고 잔을 들었다. “제가 서기님과 같은 분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큰 행운입니다! 사 아저씨, 오늘밤 저의 행운을 위하여 건배해 주십시오!”

“성공을 기원하겠네!” 두 사람은 쨍 소리가 나도록 잔을 부딪는다.

조용한 정원 속 건물 안에서 감동적인 노래 소리가 울려 나왔다.

식사 후 그들은 주흥이 오르자 이층 응접실로 돌아와 피아노 앞에 앉아 아무런 구속감도 없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사원신은 피아노를 치며 이탈리아의 명곡 《나의 태양》을 불렀다. 그는 흡사 이탈리아의 미성 창법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것처럼 파바로티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는 찬양성이 풍부한 바리톤 음색으로 찬란한 햇빛과 남색의 하늘을 찬미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고음부의 솟구치는 정열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진실한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류얼은 노래 소리에 감동을 받아 목소리를 높여 제1서기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 태양, 나의 태양이여!”를 불렀을 때 그의 고음은 지붕을 뚫고 태양을 향해 솟아오를 듯 하였다......


쓸쓸하고 어두운 가로등 그늘 속에 보슬보슬 내리는 안개비가 흩날리고, 바이타(白塔) 공원 문 앞은 인적도 없다. 산타나 승용차 한 대가 길가의 그늘 안에서 암흑 속의 유령처럼 조용히 잠복하고 있다.”

섣달 그믐날 밤의 공원 안은 썰렁하고 관광객도 거의 볼 수 없다. 다만 어두컴컴한 나무 아래 간혹 돌아갈 만한 집이 없는 연인 몇 쌍이 어둠 속에서 포옹하고 입맞춤하며 소곤소곤 밀어를 속삭이고 있을 뿐이다.

미커는 휘파람을 불며 어슬렁어슬렁 석판이 깔린 작은 길을 따라 산의 정상에 올랐다. 오래된 바이탑이 말없이 어두컴컴한 밤의 장막 속에 우뚝 서서 끝없이 휘황찬란한 산청의 등불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미커는 바이탑 뒤쪽의 굽은 통로의 난간을 돌아 온통 불빛으로 환한 도시의 장관을 여유 있는 모습으로 유유히 감상하고 있다. 그는 갑자기 자신과 멀지 않은 곳에도 한 쌍의 연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흥이 깨진 듯 몸을 돌려 자리를 뜬다. 그러나 그 남녀의 소리가 점점 커져 미커의 발걸음을 저절로 멈추게 하였다.

그것은 상당히 귀에 익은 두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의 발걸음이 순간 두 사람의 목소리에 의해 그 자리에 멈춰졌다.

“나는 지금까지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한 적 없고, 당신도 여태껏 진정으로 날 사랑한 적 없어! 우리는 줄곧 스스로의 감정을 속여왔지. 단신 마음 속에 미커를 지울 수 없다는 걸 나도 알아. 하지만 내가 진정 필요로 하는 여자는 샤린이야. 우리 사이의 만남은 다만 서로 감정상의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서였을 뿐 근본적으로 무슨 사랑 같은 건 얘기할 수가 없지! 지금 모든 걸 끝낼 수 있어. 당신은 미커에게 돌아가도 좋아. 나도 새로운 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겠지......”

“당신이 오늘 내게 이런 얘기하겠다고 나보고 나오라고 한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한 마디 일러 주죠. 당신은 영원히 미커를 대신해 내 마음 속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어요! 당신은 위선자야! 당신은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당신 자신만을 사랑할 뿐이죠! 당신 가세요!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았으면 해요!.....”

“내가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키스해도 될까?”

“저리 비켜요! 당신을 증오해요! ......”

한 줄기 강렬한 손전등의 불빛이 이 남녀의 얼굴에 직접 비춰졌다.

“누구야?!” 류스는 화를 내며 앞으로 다가서며 기사도 정신이 있는 사람처럼 왕창을 몸 뒤로 보호한다.

손전등이 꺼졌다. 마르고 키가 큰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웃음소리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맴돌았다. 류스의 심장이 멎었다.

“너......넌 누구야? 미커?! ......”

미커는 흔들흔들 유유히 다가와 태연하게 형의 얼굴을 소리가 나도록 후려치고는 몸을 돌려 떠난다.

“미커! ......” 왕창이 흐느끼며 불렀지만 류스에 의해 붙잡혀 쫓아가지 못한다. “미커! ......”

미커의 흔들거리는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어느 집인지는 몰라도 또 폭죽을 터트렸고, 마치 격렬한 총소리 같았다.

새해의 종소리가 울렸다. 삽시간에 폭죽소리, 환호하는 소리와 종소리가 한 덩어리가 되었고, 휘황찬란한 산청은 떠들썩하였다!

해가 바뀌는 사이에도 뿌얼스웨이커 형제의 집안은 되려 썰렁하기만 하다. 자형인 쓰웨이 외에 이 집안의 성년 남자들은 모두 자리에 없고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만이 큰누나를 중심으로 새로 장만한 칼라 TV 앞에 빼곡이 둘러앉아 따분하게 프로그램을 쳐다보며 묵묵히 각자의 걱정거리를 생각하고 있다.

금방 들어온 형수 꾸야훤은 벌써 천천의 신임을 얻었는지 그녀는 딸을 어루만지며 귓가에 끝없는 귀엣말을 해대고 있다. 막 이혼한 허웨이와 단순하면서도 착한 올케 궈옌은 충실하게 큰누나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녀들은 큰누나 마음 속의 고통이 더욱 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궈궈와 쟈쟈도 말이 없고 미미조차도 착하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

TV에서 밤사이의 뉴스를 방송하고 있다. 브라운관에 갑자기 활짝 웃고 있는 류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셋째 삼촌이다! 빨리 봐요 셋째 삼촌이야!” 천천이 가장 먼저 기적을 발견한 듯 화면을 가리키며 흥분하며 소리쳤다. 온가족은 깜짝 놀라 대화와 생각을 멈추었고, TV 앞에 모여 눈을 고정한 채 주시하였다.

온 시의 시청자들이 다 아는 여자 아나운서 왕창이 담담하면서도 싸늘한 음성으로 류스와 관련된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본 방송국의 소식입니다. 시 문예연합회의 부주석인 저명한 청년작가 류스 동지가 오늘 오후 시의 소년궁에서 우리 시 소년아동기금회에 원고료 수입인 인민폐 2만5천 원을 기부하여 우리 시 300만 소년아동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을 표시하였습니다. 소년단 시 위원회의 책임자는 시 소년 아동기금회와 전 시 소년 아동을 대표하여 작가의 기부금을 접수하는 동시에 류스 동지의 진지한 감정과 고상한 정열에 대해 경의를 표하였으며, 소년대원이 작가에게 붉은 네커치프를 드리며 열정이 넘치는 답사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류스 아저씨의 숭고한 사상과 인품을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여 나날이 발전시켜가서 결코 당과 인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류스 동지도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사회와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능력을 열심히 배워서 자신을 사화(四化;공업화, 생산의 상품화, 사회화, 현대화)를 건설하는 유용한 인재로 단련해야 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온 집안은 침묵했고, 아이들조차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여자들의 얼굴은 모두 엄숙하였고, 마음도 무거웠다. 쟈쟈가 갑자기 앞으로 가 TV를 끄고는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순간 방안의 공기가 이상할 정도로 답답해지기 시작하였다......

창 밖의 폭죽소리가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이웃집에서는 간간이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전해온다......산청 전체가 비할 수 없는 기쁨에 빠져 들고 있다......

얼마나 답답한 채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류뿌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더니 천천히 계단 모퉁이의 주방으로 간다. 그녀는 문 앞에서 살그머니 부른다. “웨이웨이.” 허웨이는 고개를 숙이고 큰누나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 협소하고 복잡한 주방에 도착하였다.

그녀들은 잠시 말이 없다가 마음 속에 괴로움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이 일을......자네는 동의해?” 큰누나는 묵묵히 묻는다.

허웨이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전 모르겠어요......원고료는 류스의 것이니 그 사람에게 맘대로 할 권리가 있겠죠. 전......우리 이혼했어요......”

류뿌는 온몸을 떨며 심줄이 파랗게 보이는 손을 내밀어 올케 얼굴 앞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허웨이는 순간 눈물이 솟구쳐 시누이의 야윈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낮게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류뿌는 마치 만 개의 화살에 마음이 뚫린 듯 어두컴컴한 복도를 바라보며 괴로운 눈물을 떨어뜨린다.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처럼 말한다.

“얘가 도대체 뭘 얻겠다는 거야?......욕망이 지나치면 안 돼. 지나치면 가장 귀한 것을 버리게 되는데! ......스토우 얘는 어려서부터 허영심이 제일 강해서 너무 이기적이었지. 누나인 내가 알지......얘는 넘어질 거야. 누나의 저주가 아니야. 얘는 자신을 철저하게 무너뜨리게 될 거야!......” 류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지자 올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허웨이가 울며 말한다. “형님, 제가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하고......”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갑자기 문밖에서 울려왔다. 왕창이 흩어진 머리를 하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두 언니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미커! ......미커가 안보여요!”

류뿌는 머리 속이 “웅”하는 소리가 울리며 눈앞이 어지러웠다. 그녀는 이 아름다운 여자 아나운서의 두려워하는 얼굴에서 재난이 자신에게 닥쳐오고 있음을 느끼자 마음이 갑자기 죄어드는 것 같았다.

“미커?! ......그 애가 어디 있어요? 미커가 어디 있냐고요? ......”

왕창은 울음을 터트렸다. “빨리 그 사람 좀 찾아봐 줘요. 언니! 그 사람 죽을 거예요! 그 사람 머리에 다쳤었기 때문에 충격을 견딜 수 없어요......”

“왕창! 삼촌을 어디에서 봤어요? 빨리 말해봐요! 삼촌이 무슨 충격을 받았다는 거예요?......” 허웨이가 급히 물었다.

왕창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멍하니 허웨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와하는 소리와 함께 또 울기 시작한다.

“언니! 류스도 안보여요!”

허웨이는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고개를 들고는 류뿌의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말한다.

“형님! 빨리 미커를 찾아봐요! 삼촌에게 일 날 거예요!”

류뿌는 꿈에서 깨어난 듯이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가자! 모두 미커를 찾으러 가자! ......”

뿌얼스웨이커 형제들 집안의 여자들은 즉각 행동하였다. 그녀들은 아이들을 형부 쓰웨이에게 맡기고 흩어져 아래층으로 내려가 전화를 걸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큰형 류얼은 전화를 받자 시 위원회 제1서기의 벤츠 승용차를 타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류웨이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서 신화과학계기공장의 텐진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황급히 돌아왔다. 그들은 건물 아래 정원에서 간단하게 상의한 다음 각자 차를 타고 시내 모든 정거장, 부두, 공항과 모든 가능성이 있는 곳은 다 찾아보기로 결정하고 즉시 행동하였다......

텐진 마이크로버스가 드넓은 기차역 광장에 들어간다.

벤츠 승용차가 드넓은 공항광장에 들어간다.

텐진 마이크로버스가 쓸쓸한 큰길에서 찾아다닌다.

벤츠 승용차는 시 공안국 대문으로 들어간다.

텐진 마이크로버스는 웅장한 장관을 자랑하는 횡단대교로 간다.

벤츠 승용차는 큰길 골목길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찾는다.

어두컴컴한 종루에 도 묵직한 종소리가 울렸다.

텐진 마이크로버스와 벤츠 승용차는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 쟝판(江畔)촌 부근의 입구에서 합류하였다. 집안 식구들이 차에서 내려 초조하게 서로 물어보고는 또 실망스럽게 고개를 떨군다......

갑자기 왕창이 귀신이라도 본 듯이 입을 짝 벌리고 한 방향을 가리키고는 허웨이 뒤쪽으로 몸을 숨기며 낮은 소리로 한 마디 한다. “저기! 보세요! 저 사람! ......”

음산한 비가 흩날리는 한적한 큰길 끝 멀리 옅은 회색 스프링코트를 입은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걸어온다. 그는 흠뻑 젖어 불빛이 반사되는 길을 밟으며 등불을 지고 있어 역광의 윤곽을 만들자 마치 살아서 밤길을 거니는 유령 같았다.

온 집안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복잡한 눈빛으로 이 사람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가족들과 먼 거리에서 그는 멈추었고,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깔깔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쉰 듯이 말한다.

“내가, 내가 미커를 알아요. 어디에 있는지를......”

온 집안 사람들은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아무도 말이 없다.

류스가 천천히 걸어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를 숙이고 텐진 마이크로버스로 다가간다.

과연 날이 밝을 무렵 그들은 조용한 난산(南山)혁명묘지에서 미커를 찾아내었다. 산타나 승용차가 숲속 작은 길에 세워져 잇고 미커는 부친의 묘에 쓰러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구구, 구구......” 산비둘기 한 마리가 먼 곳에서 지저귀고 있다.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침묵하였다.


90년대 어느 초봄, 햇살이 화창한 새벽이다.

뿌얼스웨이커 형제의 작은 건물 안에 내의를 입은 묘령의 한 소녀가 검고 수려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유연한 허리와 다리를 비틀며 테이블 위의 녹음기가 내보내는 로큰롤 음악의 리듬을 따라 경쾌하게 춤을 추며 창 앞으로 다가가 “화악--!”하는 소리와 함께 커튼을 걷었다. 창 밖의 노을 빛이 갑자기 작은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소녀의 얌전하고 유연한 춤사위가 역광의 윤곽으로 변하여 온몸이 청춘의 향기로 가득 찼다.

“야, 빨리 봐! 오늘 태양이 정말 좋아! ......”

궈궈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소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소녀는 돌아서며 록큰롤 음악 리듬을 따라 또 몸을 흔들며 궈궈의 침대 앞으로 다가와 두 팔을 벌리고 그의 품속에 안기고는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을 감는다.

궈궈는 소녀에게 입을 맞추고 그녀 얼굴 앞의 흩어진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 가르면서 묻는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더 자!”

소녀는 애교스럽게 “응”하는 소리와 함께 또 궈궈의 눈과 이마에 키스하고는 말한다. “안돼. 오늘 영어 시험 있어!”

그녀는 음악의 리듬에 따라 허리와 엉덩이를 비틀며 짙은 스웨터와 긴치마를 입는다. 벽 모서리 쪽의 초라한 화장대 앞에서 폭포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빗고 간단하게 화장을 하였다.

궈궈는 맨발로 말없이 소녀의 몸 뒤로 걸어가서 부드럽고 가볍게 소녀의 허리를 껴안자 소녀는 새하얀 목을 쳐들어 키스하도록 하고 두 팔을 뒤쪽으로 들어 궈궈의 머리를 감싼다.

아쉬운 작별의 키스, 정감 넘치는 미련......

소녀는 궈궈의 귓가에 바짝 붙어 서서 말한다. “그만, 시간 늦겠어 ......저녁에 그곳에서 날 기다려.”

궈궈는 소녀의 손을 놓기 싫은 듯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조용히 아래층으로 그녀를 배웅한다. 소녀는 계단 코너에서 머리를 돌려 소리를 죽이고 입맞춤을 날리고는 부드러운 궈궈의 눈길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끝으로 살금살금 나무계단을 밟으며 몰래 내려간다......

소녀는 책가방을 메고 멋진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조용히 주택가를 벗어나 점점 희뿌연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침실 문밖 작은 베란다에서 꽃에 물을 뿌리고 있던 어머니 류뿌의 눈에 다 보였다. 그녀는 소녀가 멀리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홀로 거처하는 작은 방으로 돌어선다.

벽에는 검은 천을 두른 남편 쓰웨이의 영정이 걸려있는데, 그는 묵묵히 외롭고 노쇠한 아내를 바라보며 얼굴에 영원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류뿌는 남편의 영정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눈물을 떨군다......

작은 옥탑방 안에서 궈궈는 다 차려입고 거울을 마주하여 머리에 “무쓰”를 바르고는 드라이로 손질하고 있다.

탁자 위의 녹음기에서는 췌이젠(崔健)이 《새로운 여정의 로큰롤》을 열창하고 있다.

어머니가 복도에서 소리쳐 부른다. “궈궈야, 밥 먹어라!”

“예, 가요!” 궈궈는 드라이를 끄고 마지막으로 거울에 비춰본 후 몸을 돌려 오디오를 끄고 카메라 가방을 넘어 문밖으로 나간다.

텅 빈 옥탑방 안은 엉망이었지만 청소할 시간이 없다.

협소한 주방의 식탁에서 모자 두 사람이 아침식사를 한다.

류뿌가 아들에게 우유를 따라주고 계란을 까주며 식빵 위에 버터와 과일잼을 발라준다. 아들의 윤기 나는 검은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소리를 한다. “또 머리에 기름 바르고 얼굴에 분칠했구나. 정말 보기 안 좋아!”

“엄마!” 궈궈는 기분 나쁜 듯이 엄마의 손을 치우고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한다. “남의 머리카락에 참견해서 뭘 하게요.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류뿌는 화를 내며 말한다. “네가 좋아한다고! 엄마가 아들을 단속도 할 수 없다는 거야? 야, 그 여자 애 어젯밤 또 네 방에서 잔 거야?”

궈궈는 잠깐 얼굴을 붉히더니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애는 아직 대학생이야. 그리고 너희들은 아직 결혼도 안 했으면서 어떻게 아무렇게나 같이 잘 수가 있냐? 네가 취직한 지 몇 일 되지도 않은 데다가 신문기잔데, 무슨 소문이라도 나서 영향이 있으면 얼마나 안 좋으냐! ......”

궈궈는 눈을 부라리며 계란을 꿀꺽 삼킨 다음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한다. “아야, 엄마! 엄마는 아직도 50년대 식 곧이곧대로 생각입니까? 무슨 영향이 있고 없고예요? 지금은 벌써 90년대라고요. 이런 일은 완전히 사적인 일인데 누가 누구를 간섭합니까!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원하기만 하면 그만이죠.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결혼하지 않았다고 같이 있을 수 없단 말입니까? 이게 정말 좋지 않나요! ......”

류뿌는 묵묵히 이미 성숙한 남자 티가 나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는 말한다. “그 여자 애는 어떻게 안 거야?”

“학교 친군데요! 저보다 2년 아랜데 내년에 졸업해요......”

궈궈는 갑자기 약간 신비하게 나지막한 소리로 어머니에게 알려준다. “엄마, 걔 아버지가 호우 부시장인데, 우리 아버지 친구래요!”

“호우예밍? ......”류뿌는 약간 의외로 멍하니 아들이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또 묻는다. “걔 아버지가 알고 있냐?”

아들은 고개를 가로를 흔들고는 식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류뿌는 마음 속에 한 바탕 불안감이 솟구쳤지만 말없이 아들만 바라보고 있다.

“엄마, 요즘 어때요?” 아들이 갑자기 머리를 들고 묻는다.

“뭐가 어떻다는 거냐? 엄마가 어쩔 수 있겠냐? 출근하지!”

궈궈는 묘하게 웃으며 장난스럽고 순진한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한다. “제 말은 엄마랑 자오 아저씨 그 일 말예요......요즘 발전 좀 있어요?”

“쓸데없는 소리! 나와 자오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거냐? 엄마랑 농담하는 거지......”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궈궈는 진지하게 말한다. “엄마,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몇 해가 됐잖아요. 엄마 혼자 생활하시는 것도 불편하실 테고. 자오 아저씨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좋은 분이세요! 성실하신 데다 학식도 대단하시고 게다가 오랜 동료이기도 해서 성심 성의껏 엄마를 대하시던데요......”

“궈궈!” 어머니는 갑자기 어두운 표정으로 냉랭하게 말한다. “이후로 이 일을 다시는 꺼내지 마라! 엄마는 네 걱정 필요없어!”

궈궈는 얼굴을 붉히면서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였다. 묵묵히 밥을 먹고 나자 일어서며 가볍게 말한다. “엄마, 저 출근해요.”

어머니는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만 눈에 눈물이 비친다.

궈궈는 다가와 가볍게 어머니의 이마에 살짝 입맞추고는 잡낭을 메고 문을 나선다.

류뿌는 멍하니 식탁 위의 빈 그릇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류뿌는 수수한 복장으로 손가방을 들고 묵묵히 출근을 한다.

길 어귀에 50여세 되는 검은 테 안경에 하얗게 쉰 머리, 검은 나사의 짧은 외투에 오래된 가죽 가방을 들고, 학자풍의 지식인 모습을 한 남자가 서서 류뿌를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류뿌는 이유도 모르고 얼굴이 붉어졌고, 피할 재간도 없어 할 수 없이 다가가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조 선생님, 출근하세요?”

조 선생님은 조금 통통한 얼굴에 한줄기 부끄러움이 스치더니 더듬거리며 말한다. “아, 출근합니다......같이 갑시다.”

류뿌는 고개를 저으며 낮은 소리로 말한다. “먼저 가세요. 저......전 시에 가서 처리할 것이 있어서......”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간다.

자오 선생님은 실망한 듯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돌아서 간다.


초봄의 아침해가 붉디붉은 얼굴을 나타낸다.

놀빛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호화별장을 비추고 있다.

산뜻한 유명 메이커 운동복을 입고 있는 고등학생 천천이 새벽 조깅을 마친 후 별장의 작은 건물 문 앞으로 돌아오다 갑자기 젊고 아름다운 아버지의 여비서가 바삐 아래층으로 내려와 건물 앞에 정차되어있는 검은 벤츠 승용차 안으로 들어가자 차가 경쾌하게 대문 밖을 향해 가는 것을 보았다.

천천은 입술을 깨물며 화가 난 듯이 수중의 만보기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이층 창문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 내려오세요!”

잠옷을 입은 류얼은 이층 베란다에서 멀리 바라보다 딸이 벌써 응접실로 뛰어들어오는 것을 본다.

넓고 호화로운 식당 안에 두 명의 가정부가 이미 풍성한 아침식사를 차려놓았다. 천천은 화가 난 듯이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혼자 식탁 옆에 앉아 책가방 속의 학습 용품을 정리하고 있다.

이윽고 고급 비단 잠옷을 입은 류얼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는데, 유력자와 같은 기백이 넘치고 머리는 검고 윤기 나게 빗어 넘겼다.

가정부가 때맞춰 짙은 향이 나는 뜨거운 커피를 받쳐들고 온다.

류얼은 딸의 맞은편에 앉아 정교하게 만든 티스푼으로 커피 잔을 젓자 경쾌한 소리를 낸다. 큰 응접실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

천천은 얼굴을 한쪽으로 돌린다. 류얼은 가볍게 웃기 시작한다.

“허, 또 왜 그러냐, 나의 큰아가씨? 빨리 밥 먹지 않고......”

천천은 갑자기 얼굴을 돌리더니 온통 빨갛게 물든 작은 얼굴로 히죽거리는 아버지를 보며 큰소리로 말한다. “아빠가 다시 그 더러운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면 아빠와 관계를 끊을 거야! 그런 아빠는 없는 셈 칠 거야!”

류얼은 묵묵히 굵은 시가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몇 모금 내 뿜고는 되는 대로 말한다. “천천, 어른들의 일에 애들이 간섭할 것 없어. 네가 할 일은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천천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를 향해 소리친다. “난 어린애가 아니야! 내가 아빠를 간섭해야겠어! 엄마가 아빠더러 미국에 들어오라고 하셨어. 꾸 이모도 아빠 때문에 화가 나서 몇 일이나 돌아오지도 않잖아! 그 역겨운 여자가 뭐가 좋아요?! 그야말로 마귀 같던데! 난 그 여자를 증오해!”

분노와 불만이 천천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류얼은 얼굴을 찌푸리며 가볍게 찻잔을 젓는다. 마음 속에 깊은 말못할 고통이 있는 듯이 천천히 머리를 들어 딸을 쳐다보는데 얼굴에 한 줄기 불안감이 스친다. “꾸 이모는 이제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 또 더 이상 우리 집을 필요하지 않는단다......”

“거짓말! 아빠가 꾸 이모를 사랑하지 않잖아!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아빠는 아빠 자신만 사랑하고 그 더러운 마귀를 사랑하지! ......” 천천은 내키는 대로 소리지르며 책가방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뛰어나간다.

류얼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쓴웃음을 짓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딸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천천! 오후에 학교 끝나면 고모집으로 가거라! ......”

딸은 벌써 문 밖으로 사라졌고 대답이 없다.

류얼은 차츰 냉혹함과 위엄을 회복하고는 거대한 식당에 외로이 앉아 태연하게 아침식사를 한다.


방 두 개에 응접실 한 개인 그 주택은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허웨이는 베란다에서 꽃에 물을 뿌리며 여전히 그렇게 생활을 사랑하고 있다.

아들 쟈쟈가 벌써 아침식사를 지었다. 흰죽, 만두, 계란 그리고 여러 모양의 간단한 요리를 식탁에 차려놓고 어머니를 부른다.

“엄마! 식사하세요!”

모자 두 사람은 협소하지만 정갈한 작은 식탁 앞에 앉아 서로 귀한 손님을 대하듯 깊은 정감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보살핀다.

“쟈쟈, 밤에 잘 잤냐?”

“그럼요. 엄마는 어제 몇 시에 주무셨어요?”

“한 시쯤일 게다. 엄마는 업무 결산을 작성하느라......”

“또 직무 평가를 해야 하나요?”

“그렇단다. 엄마는 부주임 의사에 부교수 평가를 받아야 되는데.....”

“희망이 잇는 거예요?”

“쟁취해야지! 평가가 좋지 못해도 상관없어. 다음에 또 평가받으면......”

“엄마는 틀림없이 평가를 잘 받을 서예요.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

“착한 아들! 넌 요즘 어떠냐? 잘 지내는 거니?”

“그다지 좋진 않아요. 엄마. 저 이미 반장하지 않기로 했어요.”

“왜?”

“저 사퇴했어요. 제가 반의 간부가 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잘했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해야지.”

“엄마.” 아들이 갑자기 부른다.

“응?” 허웨이는 아들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엄마, 혹시 시 위원회 서기 후동성(傅冬生)이라고 아세요?”

허웨이의 마음이 울렁거린다. 되묻는다. “너 어떻게 그 사람을 아니?”

쟈쟈는 어머니에게 알려준다. “어제가 우리 학교 개교 4주년 기념일이어서 많은 선배님들이 모교에 축하하러 오셨어요. 후동성도 왔고 게다가 연설도 했어요. 듣기에 그분이 학생회 주석도 맡은 적이 있다고 하대요. 큰아버지께서도 주석 테이블 쪽에 앉으셨는데, 교장선생님께서 대기업가라고 말씀하시고는 연설을 부탁하셨어요. 큰아버지께서 그 자리에서 10만위앤을 학교에 기부하시며 무슨 ‘덕신우등생장학금’을 건립하실 거라고 하셨어요. 오후에 학생들과 선배님들이 좌담회를 개최했을 때 큰아버지께서 저를 시위원회 서기 앞으로 불러내셨어요. 후 서기께서 큰아버지가 자신의 옛날 전우라고 하시며 특별히 큰아버지를 보러 왔다고 합디다! ......엄마, 왜 그러세요?”

허웨이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한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쟈쟈, 어서 학교 가야지, 늦겠다!”

“엄마 다녀올게요.” 쟈쟈는 책가방을 둘러메고 문 밖으로 걸어간다.

허웨이는 뒤에서 아들에게 당부한다. “쟈쟈! 오후에 학교 마치면 고모 댁에 밥 먹으러 가거라. 잊지 말거라. 천천을 불러 같이 가거라!”

“예, 알았어요.” 아들이 방문을 닫았다.

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허웨이의 가슴속에서 한 줄기 뜨거운 것이 솟구친다.

쟈쟈는 책가방을 메고서 자전거로 큰길까지 왔을 때 갑자기 길 어귀에서 산뜻한 운동복을 입고 있는 소녀가 자기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쟈쟈는 다가가 천천과 만나 함께 한다. 두 아이는 만나자 매우 반갑게 재잘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길가의 간이음식점으로 간다.

간이음식점은 의외로 장사가 잘되는지 많은 출근하고 등교하는 어른들과 학생들이 즐겨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쟈쟈와 천천은 길가의 작은 탁자 곁에 앉아 콩국과 꽈배기를 약간 사서는 마주앉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확실히 이것은 그들이 흔히 하는 약속 방식으로 집에서 밥을 먹었다 해도 여기에 잠시 있다가 간다.

“쟈쟈 오빠, 오늘 아침에 나 아빠랑 싸웠어.”

“왜?”

“성가시게 만드는 기분 나쁜 일 때문이지! 난 아빠가 싫어.”

“꾸 이모 집에 계시니?”

“꾸 이모는 오래 돌아오시지 않았어. 오빠! 나 오빠 집에 가 살까? 우리 매일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게 어떻게 되겠니! 네 아빠가 화내실 거다.”

천천은 갑자기 기분 좋아한다. “엄마한테 편지 왔어! 엄마가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편지 안 했었거든. 이번에 아주 여러 장이 왔어......”

“엄마가 우리 아빠에 대해 말씀 안 하시든?” 쟈쟈는 민감하게 묻는다.

“없어. 엄마가 곧 결혼한대. 날 생각한다고......”

“누구랑 결혼하신다고 하셨니?” 쟈쟈가 또 물었다.

“그건 말씀 안 하셨어. 어른들은 뭣 때문에 자꾸 결혼하려는 거지? 정말 이상해!”

쟈쟈는 되려 의외로 심각한 듯이 갑자기 침묵하였다.

“왜 그래, 쟈쟈 오빠?” 천천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쟈쟈는 깊이 한숨을 쉬고는 천천에게 알려준다. “네 엄마가 아마 우리 아빠랑 결혼할 거야. 나도 미국에서 온 편지를 받았는데 아빠가 곧 결혼 하실 거라고 했기 때문이지......”

천천은 놀랐다. “뭐라고? 오빠의 아빠가? ......울 엄마랑?!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완전히 가능하지!” 쟈쟈는 통찰하고 있다는 듯이 판단하며 말한다. “우리 아빠가 미국에 가셔서 네 엄마 회사에 의탁했으니 완전히 네 엄마랑 결혼하실 거야. 아빠라는 분은......자존심도 없나보다!”

두 아이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갑자기 울적해지기 시작하였다.

바삐 움직이는 인파와 꼬리를 물고 움직이는 자동차들이 시끄럽고 떠들썩한 소리들......어디를 가야 조용한 낙원을 찾을 수 있을까?


평범한 고층 아파트가 여전히 우뚝 솟아있다.

상무 부시장 류웨이가 건물에서 내려오자 젊은 비서가 벌써 차 앞에서 공손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차 문을 열어 주고 다시 닫는다.

반짝거리는 검은 고급 승용차가 천천히 이 평범한 주택가를 떠나 번화하고 북적이는 큰 거리로 간다.

불혹의 나이에 가까운 류웨이는 눈빛이 형형한 것이 더욱 성숙해진 것 같았다.

비서가 앞좌석에서 머리를 돌려 말한다. “류 부시장님, 여기 사시는 것은 너무 불편하고 안전하지도 못합니다. 시 위원회 책임 간부 숙소 건물로 이사를 하십시오. 출퇴근도 좀 가깝고......”

류웨이는 웃으며 손을 젓는다. “이 일을 더 이상 꺼내지 말게! 계량국의 이 집에 내가 8, 9년을 살아왔는데, 참 좋아! 농담 한 마디 하면 이 곳의 풍수가 그만이지. 나는 아직 미련이 남아있네!”

“방 둘에 응접실 하나면 어쨌든 너무 작아서......”

“세 식구가 살만은 해. 자, 오늘의 스케줄이나 얘기해 보게!”

비서는 즉각 한담을 중지하고 검은 가죽 가방 속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고 상무 부시장에게 업무 스케줄을 보고한다.

“오전 8시 30분, 4호동 상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시위원회 상무위원회에 출석하셔서 남쪽 연안 개발구역의 기업인 초청과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것과 반부패 등의 문제를 논의하시고, 11시 10분, 씨쟈오호텔 2호동에서 주중 오스트레일리아 대사의 사례 오찬에 참석하시고, 오후 2시 15분, 산청호텔 ‘운향각(雲香閣)’에서 남쪽 연안 개발 기업인 초청과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뉴스브리핑에 출석하셔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셔야 하고, 오후 4시 30분, 국가은행 부행장과 남쪽 연안 개발지역의 공사현장을 시찰하시고, 저녁 7시 정각에 중앙 가무단의 개막 초대회에 출석하시고, 저녁 9시 10분, 시 TV방송국 제2 스튜디오에서 특별 프로그램 제작에 출석하셔서 기자의 인터뷰를 받습니다......”

류웨이의 대뇌는 쉬지 않고 빠르게 회전한다.

거리의 사람과 차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소박한 옷차림을 한 시장의 부인 궈옌은 화려하게 차려 입은 딸 미미의 손을 끌고 길을 건너 그녀를 “실험초등학교” 문 앞에까지 바래다준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많은 부모들이 눈이 빠지게 자식들을 지켜보다가 교문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바삐 출근들을 한다.

“엄마, 좀 일찍 데리러 와!” 미미는 어머니에게 명령한다.

“엄마가 아주 일찍 미미 데리러 올게. 엄마가 미미가 고모 집에 저녁 먹으러 가도록 바래다줄게......” 궈옌은 딸을 교문으로 들여보냈다.

“엄마 안녕!” 미미는 헤어지기 서운한 듯이 소리친다.


고층의 호화로운 아파트 건물 아래 승용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다.

양복에 구두를 신은 미커와 옛날 그대로 빛나는 아내 왕창이 세 살 난 딸 멍멍(盟盟)을 안고 아래로 내려온다.

미커가 오랜지 색의 “샤리(夏利)”라는 자가용승용차를 몰고 오자 세 식구는 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

이미 출근 러시아워여서 차와 사람이 넘쳤다.

샤리 소형승용차는 차량들 속을 뚫으며 가다 서다 한다.

마침내 작은 골목 깊은 곳의 기관 유아원 문 앞에 도착하였다.

부부 두 사람은 어린 딸을 달래고 타이르며 딸을 이모의 품으로 보낸다.

왕창은 잊지 않고 딸에게 말한다. 오후에 고모 집에 데려다 줄게.

어린 딸은 울며 이모에게 안겨 갔다.

부부 두 사람은 차로 돌아와 계속 “장정”을 한다.

샤리 소형승용차가 TV방송국의 큰 건물 앞에 멈추었다.

왕창은 온순하게 미커의 뺨에 붙인다. “저녁에 봐요!”

미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내가 가볍게 계단으로 뛰어가는 것을 눈으로 전송한다.

왕창이 머리를 돌려 미커를 향해 손을 흔들자 미커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샤리 승용차는 방향을 돌려 차량들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더씬(德信)그룹 총재 류얼은 유명 메이커 양복에 광택이 나는 구두를 신고 대범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집의 문을 나선다. 벌써부터 공손하게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 “소우로우”와 총재 보조 궈린도 양복에 구두를 신고 비범한 모습으로 잽싸게 앞으로 달려와 뒷좌석 차 문을 열고 출발을 기다린다.

전체가 광택으로 번쩍이는 벤츠 승용차가 천천히 화원의 작은 길을 벗어나 대문을 빠져나오면서 넓은 큰길을 달린다.

호화로운 차안에서 류얼은 굵은 수입제 고급 시가 담배를 깨물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궈린의 보고를 듣고 있다.

“총재님! 세 가지 중요한 일을 먼저 보고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젠스(簡氏)그룹과 합자하여 ‘세계화원(世界花園)’을 건축할 토지의 물색은 이미 호우 부시장에게 보고되어 비준을 얻어내었고, 주소는 씨쟈오 우가의 농지 부근으로 1천2백5십여 무(畝)를 차지하기로 했습니다. 호우 부시장과의 사적인 일은 완전히 다 처리했습니다. 시 건축 설계원 그리고 시 계획경제위원회와 협력하여 ‘더씬광장(德信廣場)’을 건설하는 일은 이번 주말 오후 4시에 서명하면 효력이 발생하며, 유관 인원도 이미 모두 준비되어 있어 쌍방이 모두 만족할 만 합니다. 30만 톤 강재의 출항과 관련한 비준문서는 이미 손에 들어왔으며, 세관방면에 약간의 잡음이 있습니다만 순수한 기술적 문제에 속해서 현재 처리할 방안을 설계하고 있는 중입니다......”

류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오전 9시에 핵심 팀원들은 비밀회의실에서 만나서 점심 회식하겠어.”

“예, 총재님!” 궈린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큰소리로 말한다.

벤츠 승용차가 푸른빛이 번쩍이고 으리으리한 더씬빌딩 문 앞에 멈추었다. 모두 짙은 양복을 입은 중간층 이상의 관원들이 큰 로비 문 앞에서 질서정연하게 둘러섰다. 기업제국의 꿈이 지금 류얼의 수중에서 현실로 바뀌고 있다.


번잡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고급 주택가의 화원의 작은 건물 철책문이 천천히 밀쳐지며 이임하려는 시 위원회 부서기 겸 시장 왕뢰이가 호위비서의 수행 하에 벤츠 승용차에 오른다.

시 위원회 고급 간부 숙소 건물 앞에 부시장 겸 계획경제 위원회 주임 호우예밍이 번쩍이는 “공작(公爵)” 고급 승용차가 천천히 마당 입구의 문을 나서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는 번화한 큰길로 달린다.

겉모습이 조금도 남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구식 단층집 작은 마당 문 앞에 국산 “아우디”200형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멈춘다. 철문이 열리자 젊은 시 위원회 부서기 겸 기율 위원회 서기 장신성(張新生)이 공문가방을 끼고 총총히 걸어 나와 자동차에 오른다. 자동차가 한산한 작은 길을 따라 큰길로 나간다. 번잡한 시내의 차량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씨쟈오호텔의 나무 그림자가 서로 어울려 돋보이는 2층 화원의 작은 건물 문 앞에 소박하게 차려입은 상당히 군인 티가 나는 신임 시 위원회 서기 후동성이 큰 공문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와 호위비서의 수행 하에 호화로운 벤츠 승용차에 오른다. 홍등을 번쩍이는 산타나 호위차량이 앞에서 길을 열자 자동차가 조용하고 수목이 무성한 원림을 지나 경계가 삼엄한 호텔 정문을 나와 넓고 평탄한 고속도로를 달린다.


생기발랄한 청년기자 쓰홍궈(斯紅果)가 신문사 건물 안에서 편집장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곧장 들어갔다.

“편집장님 절 찾으셨습니까?”

마흔 살이 넘어 보이는 안경을 쓴 신문사 편집장은 사무용 탁자 맞은편의 가죽 의자를 가리켰다. “앉지. 1분만 기다려 주게.”

편집장은 새 신문 교정쇄에 몇 글자 적고 크게 이름을 써서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당직 주임편집에게 건네준다. “제판하세요!”

당직 주임편집은 그 교정쇄를 들고 문을 나갔다.

편집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자네의 업무능력과 사회관계의 배경을 고려하였고, 당연히 더욱 중요했던 것은 자네의 정치적 소양과 신문의 도덕적 품성을 고려했으며 우리는 자네를 기동기자부로 전근시키기로 결정했네. 주요 임무는 법제신문부 및 사회신문부 등의 부문과 협력하여 우리 시의 중, 고위층 간부 중 반부패 방면의 소재를 발굴 편집하여 고위층 지도자에게 가치 있는 내부 참조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네. 자네는 나와 시 위원회 관련 책임 부문 내지 시 위원회 부서기 겸 기율위원회 서기 장신성 동지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서면 자료를 제공할 권한이 있네. 자네 무슨 할 말 있는가?”

쓰홍궈는 몸을 일으킨다. “편집장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편집장도 일어나 쓰홍궈의 손을 잡고 갑자기 묻는다. “우리 시에서 가장 큰 개인기업 그룹의 총재 류얼 선생은 자네의 외삼촌이시지? 자네는 그 분을 주의해서 관찰하게.”

쓰홍궈는 마음 속으로 흠칫 놀란다. “무슨 뜻입니까?”

“더씬그룹은 짧은 몇 년 안에 수많은 자산을 가진 수퍼 주식회사 그룹으로 기형적 팽창을 해왔지만 이미 불법적 경영의 단서들이 노출되었네. 그러나 류얼은 일을 하는 데에 대단히 기민하고 조심스럽고, 또 여러 권력기관의 의도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비호를 받고 있어서 현재 법집행기관은 그와 ‘냉전단계’에 처해있네. 하지만 아직까지 그 흑막을 파헤칠 돌파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지.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자네더러 주의하라고 한 걸세. 이건 일급비밀이냐. 자네는 기회를 보아 행동해야 하겠지만 절대로 경솔해서는 안되네.”

궈궈는 갑자기 가슴속이 썰렁해지는 걸 느꼈고, 얼굴색도 어색하게 변하였다.

“무슨 곤란한 점이라도 있나?” 편집장의 날카로운 눈빛이 쏟아져 나온다.

궈궈는 이빨을 물고 말한다. “한번 해보죠.”

편집장은 그의 손을 잡는다. “행운을 비네.”

쓰홍궈는 꿈속을 헤매듯이 편집장 사무실을 나가서야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급히 출구 계단을 날 듯이 내려갔다.


거대하고 호화로운 총재 사무실 안에서 류얼이 외로이 안락한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듯이 “루이 13” 최상급의 술과 남미산 시가 담배를 맛보는 한편, 눈으로는 컴퓨터 화면상에 나타난 극비 상업 데이터를 주시하며 깊은 사색에 잠긴다.

탁자 위의 인터폰의 부저가 부드럽게 두 번 울린다. 류얼이 버턴을 누르자 인터폰 속에서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전해온다.

“총재님, 회의 시간이 다됐습니다.”

류얼은 마이크로컴퓨터를 끄고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정교하고 두꺼운 나무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류얼은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꼿꼿이 세우고 문밖으로 나간다. 손에 핸드폰을 든 “소우로우”와 젊고 아름다운 그 여비서가 그의 뒤를 바짝 뒤에 붙어 두꺼운 고급 양모 카펫이 깔린 복도를 따라 전용 엘리베이터 문을 향해 걸어간다.

양복을 입은 두 명의 젊은 경호원이 공손하게 엘리베이터 문 양편에 서있다. 류얼의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철문을 닫는다.

고속 엘리베이터는 아래쪽으로 안전하게 운행한다.

류얼의 얼굴은 무표정하게 머리를 쳐들고 각층의 표시등을 바라본다.

붉은 등이 순서대로 번쩍인다. 12, 11, 10, 9, 8......

벨이 울리는 소리에 따라 류얼 일행은 엘리베이터 문을 걸어나가서 지하실 복도로 돌아들어 간다.

음침하고 깊은 복도 안은 벽 등으로 밝고 경계는 삼엄하다.

류얼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소우로우”와 여비서도 바짝 따라 붙는다. 낭랑한 구두소리가 복도 안에서 허전한 메아리를 낸다.

모퉁이를 굽어들자 막다른 복도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

“소우로우”와 여비서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흐릿한 서포터라이트 아래 홀 중앙에 덩그러니 암녹색 탁구대가 놓여져 있다. 주변에 옛날 식의 선형 장의자가 둘러쳐져 있고, 7, 8명의 그룹 핵심인물들이 공손하게 기다리고 있다.

아무런 인테리어도 없고 담배, 술, 차도 없는 아주 간소한 분위기이다.

류얼이 총재 자리에 앉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전체가 숙연해졌다.

벽에 걸린 대형 석영 괘종이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여러분!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합시다. 회사의 3개 전략 결정 문제를 논의합시다.” 류얼은 위엄 있게 익숙한 얼굴들을 하나하나 훑어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추호의 동요도 없는 권위와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중앙은 벌써 정식으로 남안개발구의 건립을 비준했는데, 이것은 대륙 내지에서 가장 큰 ‘특구’인데다 정책적으로 대단한 우대를 해주고 있으니 노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씬그룹은 한가롭게 바라만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남안을 개발하는 기회를 이용해서 더씬그룹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첫째, 정부의 관원들과 밀접하게 협력할 방법을 모색하여 합자사항을 쟁취하고, 토지구획과 저리대출을 선점해야 할 것이오. 둘째, 미국의 젠스그룹의 강력한 경제적 실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중외합자 남안특구 개발의 기적을 창조합시다. 나는 이미 시 위원회 서기 후동성 그리고 부시장 호우예밍과 협력의향을 면담했는데, 후는 나의 학교동기이자 나의 입단 소개인으로 가장 관건적인 인물이니까 반드시 최선을 다해 그의 지지를 얻어내야 합니다! 호우 부시장의 경우 그런 문제는 크지 않지만 단단히 그를 우리들의 수중에서 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측은 내 동생 류스가 이미 젠스그룹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재로 발탁되어 과감하게 3년 내 대륙에 100억 인민폐를 투자할 계획이어서 기회는 많지만 투자의 중점적인 결정은 산청에 있습니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에 인화(人和)까지 만사가 다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지 여러분은 성심성의껏 단결하고 대책을 내놓아 더씬그룹의 원대한 계획과 위대한 사업을 새로운 단계로 올려야 할 것이오. 여러분 무슨 고견이라도 있습니까?”

핵심인물들은 옷깃을 바로 하고 단정하게 앉아 생각에 몰두한다.

총재조수 궈린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경종을 울린다. “더씬그룹의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지만 잔잔한 수면 아래 배를 전복시킬 역류가 숨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호우예밍은 기댈만한 인물이 못됩니다. 그 사람은 관리사회에 따라 부침할 사람으로 결코 의리가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일단 암초에 부딪힐 위험을 만나면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지 않을 거라고 보장 못합니다. 그러나 상무부시장 류웨이는 실제로 대적하기 힘든 상대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비록 총재님의 친아우라고는 하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결정적 순간에 죽기살기로 국가의 이익을 보호했던 ‘3급 천칭’사건이 이미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청렴결백해서 넘치는 상품경제의 조류 속에서 군계일학인데다 과장 때부터 허술한 층집에 살고 있고, 부인은 아직도 큰길 공장의 평범한 노동자로 있으며, 게다가 솔선해서 때맞춰 개인재산과 수입을 공포하였습니다. 그 청렴한 정치적 이미지와 개혁적인 정치적 업적은 이미 그를 현재 여론이 가장 좋은 시장 후보입니다. 류웨이는 더씬그룹에 대해 시종 불신임의 눈빛을 보내고 있고, 게다가 몇 차례 더씬그룹의 현금잔고와 장부상의 부합여부 등의 문제에 손을 댄 적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개발, 주식 발행, 투자 항목, 수출입 무역 방면에서도 겹겹의 장애가 있습니다......”

핵심그룹인물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지만 근심이 자꾸만 인다. 

류얼은 최대한의 인내심과 관용을 나타내었지만 정말로 궈린의 비관적인 논조를 더 이상 계속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손을 내저으며 그의 말을 자른다. “류웨이는 두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기껏해야 작은 야심을 가진 열혈청년에 불과하고, 아직 큰일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내 동생은 내가 압니다. 그는 정치가의 기본자질도 갖추지 못해 틀림없이 신속하게 발전하는 시대에 도태하고 말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기본관점은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와 ‘경제기초가 상층건축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는 특수한 역사적 시기에 처해 있으며, 신흥 기업집단에서 보면 자본의 초기누적시기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정부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과 금융의 어려움이지만 개인기업집단에서 보면 의심할 바 없이 신속하게 발전할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정부에 바라고 있는 것은 정부는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정부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우리에게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더씬그룹의 막강한 경제적인 능력과 사회적인 영향에 의거해 발전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설마 정부가 미련 없이 나를 파산시키겠습니까? 더씬빌딩이 무너진다면 중국과 산청의 경제건설에 무슨 좋은 점이 있겠습니까? 만일 나 류얼이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내게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와 정치협상회의 위원의 월계관을 씌워주었겠습니까? 스스로 자신을 놀라게 하지 마시오! 터놓고 말해서 거목을 쓰러뜨리려면 당신이 도끼로 한바탕 찍으면 충분합니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좀 가볍게 변하였다. 궈린은 쓴웃음을 짓는다.


시 위원회 안마당 녹음이 어우러지는 화원식 건물 문 앞에 고급 승용차가 가득 주차되어 있고 호위비서들이 아래층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넓고 편안한 상임위원회 회의실 안에 시 위원회 서기 후동성과 상임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열고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고 있다.

“왕뢰이 동지는 이미 해임되어 성 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의 부주임 위원을 맡도록 배치되었습니다. 왕 시장님은 산청에서 꼬빡 40여 년을 일하셨고, 산청의 건설과 산청의 인민들을 위하여 큰 공헌을 하셨습니다. 남안개발구의 문제에서 왕 시장님은 줄곧 이 때문에 동분서주하고 몸소 실천하여 많은 계획을 세우고 여론 방면을 선전하는 지도 업무를 하였습니다. 이임하시기 전에 왕 시장님께서 이 방면의 고귀한 의견을 남겨 주셔서 다음 정부의 참고로 제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후동성은 왕뢰이가 말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왕뢰이는 외투를 젖히며 소파에 기대앉아 천천히 말한다. “자리하신 분들은 모두 젊은이들이어서 전 무척 기쁩니다. 우리의 사업에 뒤를 이을 사람이 있으니 이것은 내가 이임하기 전에 가장 기쁘고 위안이 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나와 사 서기는 일찍이 류웨이 동지를 상무 부시장으로 적극 추천했었는데 나는 또 시 인민대표대회에 그를 차기 정부의 시장으로 추천하려고 합니다. 류웨이 동지는 훌륭한 후계잡니다. 이것은 당정의 지도층과 인민군중이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리하고 있던 상임위원들이 모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천성을 나타낸다.

류웨이는 미동도 없는데 후예밍은 되려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중앙에서 남안특구 개발을 비준해 준 것을 나는 두 손들어 찬성합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진행해와서 전국의 인민들은 혜택을 입었고, 연해지역은 가장 큰 수익자입니다. 중요한 원인은 바로 우리가 경제특구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구가 있어야 정책적 우대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현재 산청은 내지 대도시로서 남안개발구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날아오를 기회입니다. 남안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돈입니다! 그래서 나는 류웨이 동지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하루빨리 전체 시의 통일 관리할 외국 상인들의 투자 업무 위원회를 성립시켜야 하는 동시에 중앙 재정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산청의 미래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왕뢰이의 “이임연설”은 박수를 받았다.

“류웨이, 당신이 말해보시오!” 후동성이 호명하며 말한다.

류웨이는 간단명료하게 방안을 제기하였다. “남안 개발은 피할 수 없는 추세로서 우리는 반드시 하루빨리 외국상인의 투자사무를 고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전문기구 즉, 시정부 외국상인 투자업무위원회를 건립하여 ‘하나의 기구’, ‘하나의 창구’, ‘하나의 도장’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과거의 그런 층별 비준과 급별 검사의 ‘직렬식’방법을 각개 직능 부문이 한꺼번에 처리하는 ‘병진식’방법으로 바꾸어 본 세기말 10년 시간 내까지 보증함으로써 남안개발구와 전 산청이 외자 60억에서 100억 달러를 유치할 목표에 도달하는 것으로 삼습니다.”

“외국 상인들의 투자업무위원회 주임은 누가 맡습니까?” 부시장 후예밍이 갑자기 민감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당연히 업무를 주관하는 상무부시장 류웨이 동지가 겸임해야지요.” 시 위원회 서기 후동성이 조금도 애매함이 없이 대답하였다.

호우예밍의 얼굴빛이 일그러지며 말문을 닫았다가 야릇하게 선동하며 말한다. “아니, 이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중앙에서 기구의 축소를 되풀이하여 명령했는데,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기구를 증설하고 있습니다. 성에서 중앙까지 무슨 외국상인투자위원회 같은 것을 만든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각 직능과 부문의 의견을 들어볼까요?”

“상하이는 예전에 이런 기구를 성립시켰습니다. 이 사실이 증명하듯 이것은 하나의 성공적인 경험이었습니다.” 후동성은 화제를 돌려 비판의 창 끝을 부시장 호우예밍에게 조준하였다.

“말 나온 김에 나는 호우예밍 동지에게 경종을 울려드리지요. 우리 시에 있어 외국상인투자 및 내자기업의 계획안 비준과 자금관리업무가 근년 들어 혼란한 국면에 처해 있습니다. 관리체제 자체의 일부 폐단 외에 당신에게 주관 부시장 겸 계획경제위원회 주임으로서 추진하거나 제어해서는 안 될 책임이 있소. 당신이 시 전체의 생산자료, 유동자금, 기본건설항목 등의 계획, 분배와 조달권한을 가지고 있고, 매년 수억 위앤의 자금조달할당권과 저리대출권도 가지고 있어서 시 전체의 경제적 대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당신은 당과 인민이 당신에게 준 권한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초보적인 통계에 의하면 작년 일년 동안에 계획경제위원회에서 비준한 근 천 개의 항목 가운데 3분의 1 이상의 항목이 단체 토론을 거치지 않았거나 규범적 절차에 부합하지도 않았는데도 당신이 독자적으로 비준했더군요! 특히 더씬그룹과 관련된 20여 개 항목 가운데 저리 대출액이 5천만 위앤에 달하고 부동산도 1만 무에 가까운데 사실 드문 일입니다! 당신은 류웨이 동지와 상임위원회에 설득력 있는 해석을 할 필요가 있겠지요!”

날카로운 비평이 회의실 분위기를 순식간에 긴장시켰다.

호우예밍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연신 손수건으로 안경을 닦아대더니 긴장했던 마음이 천천히 안정되자 얼굴에 억울한 빛을 띠며 말한다. “비준항목의 자금할당 등 업무중에서 경솔하고 누락된 부분이 있지만 저의 출발점은 개혁개방의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저는 과학기술요원 출신의 책임간부여서 복잡한 경제 업무를 처리하는 경험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저의 약점입니다. 우리 산청의 경제기초가 박약하여 개혁임무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큰 발전이 있으려면 전국 내지 성과 시의 전례를 따라 반드시 대담하게 현존하는 규정의 속박을 깨뜨려야 하고 어느 정도의 위험을 무릅써야겠지요!” 그는 말을 하며 결국 흥분하기 시작했는지 하얀 마른 얼굴은 붉게 물들고 두 눈은 빛이 난다.

“저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전 ‘두려워 않을 다섯 가지’인데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적에서 제적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감옥에 가서 목이 잘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이 족자는 현재 저의 침실에 걸려있는데, 거리낌없이 당과 인민을 위해 일하도록 고무시켜줍니다! 저의 직무를 없애십시오! 저는 마음에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

그는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다 갑자기 머리를 감싸고 앉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했나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

상임위원들은 차갑게 그를 바라본다.

분명히 호우예밍의 예상 밖 흥분은 사람들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줄곧 발언이 없던 시 위원회 부서기 겸 시 기율위원회 장신성이 냉정하게 다른 화제 하나를 꺼낸다.

“전 남안구(南岸區)위원회 부서기 겸 구장(區長) 리후여우(李福友)의 수뢰안은 현재 이미 모두 밝혀졌고, 시 검찰원은 이미 리후여우를 체포하도록 비준하였습니다. 성 위원회와 성 정부는 리후여우의 당적에서 제적시키는 것과 당 내외의 모든 직무를 철회시키는 것에 관한 우리의 보고에 비준하였습니다. 신문사는 공개적인 취재와 보도를 요구하는데, 상임위원회의 결정을 부탁드립니다.”

상임위원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우예밍은 여전히 머리를 감싸고서 말없이 앞쪽의 공문서 가방을 주시하고 있다.

후동성이 왕뢰이, 류웨이와 잠깐 눈빛을 교환하고 나서 필기도구를 들고 보고서에 몇 글자 적어 장신성에게 돌려보낸다.

“공개적으로 보도해도 됩니다.”

오후 2시 15분 산청호텔 “운향각” 홀에서 시정부의 뉴스브리핑을 거행하였다.

양복차림의 젊고 준수한 상무 부시장 류웨이가 빠른 걸음으로 주석단 쪽으로 가서 자리하려 할 때 회의장에서 한차례 박수소리가 났다.

잠깐 동안 수십 대의 방송카메라와 사진기가 류 부시장을 조준하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플래시를 터트린다.

류웨이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말한다. “여러분! 여러분께서 오늘 시정부가 거행하는 ‘남안개발 상인초청 외자유치 뉴스브리핑’에 참석해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산청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산청의 외자유치 업무를 국제관례에 따라 절차 있게 진행되도록 보증하는 이것은 산청시 인민정부의 세밀한 정책과 항구적인 정책이며, 절대로 가볍게 바꿀 수 없는 정책이니다. 외부인들은 ‘산청 사람들은 장사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산청은 정책결정층과 기업가는 장사에 정통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남안개발구의 정식 착수로 산청은 이미 해외투자자를 위하여 대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투자의 목적은 당연히 자선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꺼릴 필요 없는 실화이며 우리는 당연히 투자자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만일에 외국 상인들에게 돈을 벌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도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후로 외국상인들이 돈을 얼마를 벌든 우리는 절대로 질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돈을 벌 수 있다면 말이죠......”

홍콩 기자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묻는다. “류 부시장님, 온통 ‘돈’을 강조하시는데, 설마 실수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시겠지요?”

류웨이는 웃으며 대답한다. “돈이 저 개인의 허리춤으로 들어오지 않고 산청의 인민들에게 돈을 벌 수 있게만 한다면 약간의 저 개인의 실수 정도는 두렵지 않습니다! 직무를 그만두고 여러분과 함께 돈을 벌지요!”

기자와 기업가들은 그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청년기자 쓰홍궈가 질문을 한다. “류 부시장님, 남안개발구는 내지의 가장 큰 특구로서 어떤 특징들이 있습니까?”

류웨이가 대답한다. “남안개발구와 연해경제특구를 서로 비교해보면 중요한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남안에 자유무역공업구를 건립합니다. 둘째, 외자은행을 도입하고 증권거래소를 개방합니다. 셋째, 외국기업가들의 직접투자방식을 매료시킬 조치를 취하고 여러 형식을 허가할 것입니다. 넷째, 토지의 유상양도와 부동산 시장의 개방 등에 더욱 융통성있는 정책을 취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안을 제2의 푸동(浦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회의장의 분위기는 갑자기 활기로 술렁이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질문을 한다.

“류웨이 선생, 하나 물어봅시다. 당신이 본 시의 시장이 될 것인가요!”

류웨이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선포한다. “산청의 인민들이 절 믿어주신다면 전 당연히 공복의 책임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또 한바탕 폭풍우 같은 열렬한 박수소리가 일어난다.


햇살이 눈부신 미국의 작고 아담한 교회 안.

《아, 내게 대답해 줘......》의 노래와 음악 속에 한 쌍의 신랑신부가 친척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교회 앞 계단을 내려온다. 신랑은 류스이고, 신부는 과거 자신의 형수였던 젠샤오링이다. 사람들이 신랑신부에게 꽃잎을 뿌리고 축복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롤스로이스 승용차까지 배웅한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고 비둘기 떼가 햇살아래 나른다.

   

밤의 장막이 내린다. 뿌얼스웨이커 형제 집의 작은 옥탑방 안에 따스한 등불과 아이들의 순진하고 달콤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크고 아름다운 케이크에 채색초를 가득 꽂고 다섯 아이들이 류뿌의 주위에 둘러 앉아 그녀의 47세 생일을 축하해준다.

《생일 축하합니다》의 전주 음악 속에 류뿌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이들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깊은 정을 담아 말한다.

“얘들아! 오늘은 내 생일이란다. 내가 너희들 아빠와 엄마를 포함해서 모든 어른들과 친구들을 사절하고 너희들만 초청했지.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가장 존귀한 나의 손님이란다. 난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난 너희들을 위해 모든 걸 하길 바란단다......”

아이들은 맑은 눈물꽃을 반짝이며 격동으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노래 소리로 어머니에 대한 그들의 깊은 사랑을 나타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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