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장
징과 북소리가 진동하고 폭죽이 일제히 터진다.
신화과학기기공장 문 앞의 오색 깃발이 펄럭이고 허공에는 가로로 쓴 대형 표어가 걸려 있다. “우리 공장의 3등급 천칭 제품이 국가 계량기 총국 전국 품질 점검에서 일등품의 영광된 칭호 획득을 열렬하게 경축합니다!”
철문이 열리자 전 공장의 직공들이 흥겹게 징과 북을 울리며 진홍색 낭보를 높이 치켜든 류얼 등 공장 책임자를 빽빽이 에워싸서 생산공장을 걸어나온다.
그 뒤를 바짝 따르는 화려하게 꽃 장식을 한 선전차량이 경적을 높이 울리고 영화음악 《씀바귀 꽃》을 흘러나오는 가운데 두 명의 남자 아나운서가 구호를 선창한다.
“우리 공장의 3등급 천칭 제품이 국가 계량기 총국 전국 품질 점검에서 일등품의 영광된 칭호 획득을 열렬하게 환호합시다!”
“개혁개방을 견지하고 제품의 품질을 고수하자!”
“류 공장장과 주관 국의 정확한 지도를 충심으로 옹호하자!”
“시간은 돈, 효율은 생명!”
한 백발의 할머니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변 사람을 붙잡고 비분한 듯 말한다. “또 운동하는 거요?! 맙소사! 천벌을 받지!......”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죽 둘러서서 앞으로 나가 전단지를 빼앗아 한번 훑어보고는 자기와 별 관계가 없다고 여겼는지 바로 버려 버린다. 아이들은 되려 서로 빼앗으며 즐거워한다.
위용이 당당한 희소식을 안은 대오가 징과 북을 울리고 폭죽을 터트리며 시 전자계기국 기관의 대문으로 밀고 들어가자 원(溫) 국장 등 국의 책임자들이 벌써 건물 앞에서 환영차 기다리고 있었다. 류얼이 진홍색 낭보를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원 국장에게 바치자 주변에서 박수를 쳤다.
원 국장은 층계의 높은 곳에 서서 감격스럽게 큰소리로 말한다. “동지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전자 계기 계통의 40만 직원을 위해 영광을 쟁취하였습니다! 나는 국의 지도자와 전제 국의 직원들을 대표하여 여러분에게 충심 어린 감사와 열렬한 축하를 표하는 바입니다!”
경적을 울리고 목이 쉬도록 외치는 구호에 희비가 교차하는 《해방의 노래(翻身道情)》라는 음악이 어울려 기쁨으로 가득 찼다.
류얼은 기뻐하는 대오를 향해 힘있게 손을 흔들고는 원 국장 등과 함께 희소식 신문을 치켜들고 방향을 바꾸어 대문으로 나갔다.
인민경찰 한 명이 허둥거리며 다가와 묻는다. “헤이! 헤이, 헤이! 당신들 어디 소속이요? 공안국의 허가를 받고 시위 행진하는 거요? 당신들 누가 책임자요? 이리 나오시오!......”
류얼은 급히 경찰을 한쪽 모퉁이로 데리고가 담배를 꺼내 경찰의 손에 쥐어주고는 웃는 얼굴로 피우기를 권하였다.
당당한 기쁨의 대오는 원 국장과 류얼의 인솔 아래 시 정부 기관으로 들어갔다. 모든 창문에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었는데, 건물 아래의 상황이 그들에게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격세지감을 가져다 주는 동시에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을 주었다.
친(秦) 국장과 류웨이 등 계량국(計量局)의 사람들은 사무실 창문으로 건물 아래 공터의 소란을 차갑게 지켜본다.
희비가 엇갈리는 《해방의 노래(翻身道情)》라는 음악의 노래 소리가 약간은 희극처럼 보이는 가운데 아나운서의 구호가 귀청을 찢는다.
“우리 공장에 대해 시위원회와 시정부의 각별한 관심에 충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공장의 3등급 천칭이 전국 일등품이 된 것은 개혁을 강화한 위대한 승리입니다!”
“신화과학계기 공장은 희망이 있습니다!”
......
계량국의 사무실 안에서 친 국장은 냉소적으로 한마디한다. “흥! 자네의 형이 정말로 홍위병 지도자였다는 것에 부끄럽지 않은가? 문화대혁명운동을 한 것이 그야말로 그렇게 수월했던 일이었냐 말일세!”
류웨이는 건물 아래에 왁자지껄한 사람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무거워온다.
“내가 보기에 이번 충돌은 벌써 상부에 보고되었네......” 그는 걱정스럽게 혼잣말처럼 가볍게 말하였다.
“내가 즉시 국가계량총국에 전화해서 이 일을 보고하고 총국 책임자께서 나서서 국가계측기기총국에 계량의 감독과 자문을 제기하도록 요청하겠네!” 친 국장은 한숨을 내쉬며 큰소리로 말하고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로 가 보안전화를 걸었다.
류웨이는 큰형이 건물 아래의 인파 속에서 손짓발짓을 해대는 모습을 아득히 바라보며 슬프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눈을 감았다.
“실험초등학교”의 교문 밖에 아이들이 방학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가득 서있다. 류스도 인파 속에 있다. 그의 안색이 좋지 않은 데다 마음도 우울하여 흡사 큰 병에 걸린 마냥 초췌하기까지 하였다.
간식과 음료수를 파는 상인이 외치며 인파를 헤치고 지나간다.
갑자기 검은 광택이 나는 수입승용차가 천천히 길가에 멈춰 섰고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 입은 젊은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잽싸게 차 앞머리를 돌아 뒷좌석의 차 문을 열고 아주 공손하게 문틀 위쪽을 잡는다. 잠시 후 귀티가 나고 운치가 나는 젊은 여인이 하이힐을 신고 있는 다리를 뻗어 느릿하게 차에서 내린다.
류스는 무심한 눈빛으로 빼어난 귀부인을 바라보다 갑자기 매우 낯이 익다고 느낀다. 자세하게 보니 몇 해 전에 미국에 정착한 형수 젠샤오링이었다!
젠샤오링은 학생들의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느릿느릿 교문으로 다가가 바라보고는 나지막이 예의바르게 한 학부형에게 무언가를 묻고 나서 또 천천히 한쪽으로 가서 시계를 보며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류스는 말없이 형의 전처를 관찰한다. 그녀는 짙은 남색의 코트를 입고 있고, 정성들인 퍼머머리가 자연스럽게 양쪽 어깨에 걸쳐져 있다. 하얀 목덜미에 가느다란 목걸이를 하고 옅은 화장을 하고 있는데 확실히 옛날에 비해 훨씬 아름다워졌다. 그러나 표정은 조금 암울해 보이는데 미간에 근심과 슬픔이 배어 있었다.
젠샤오링은 남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갑자기 얼굴을 돌리다가 류스의 친근한 미소와 부딪혔다. 그녀는 약간 놀라더니 바로 미소를 보이며 류스 쪽으로 다가온다.
“스토우(石頭)! 정말 맞으세요! 잘 됐다......”
류스는 웃으며 앞으로 다가가 형수와 악수를 하였다.
“샤오링! 언제 돌아오신 거죠? 정말 못 알아보겠어요......”
젠샤오링의 두 뺨에 홍조가 떠오르고 눈가가 갑자기 붉어졌다 싶었는데 머리를 들자 얼굴에 진지한 미소가 띠었다.
“오늘 점심 때 막 도착했어요. 천천(沈沈)을 보고 싶어서......”
그들은 학부모들의 시선을 피해 길가를 천천히 걷는다.
“몇 일이나 묵으시려고? 천천을 미국으로 데리고 갈 건가요?”
젠샤오링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애 아빠가 원치 않겠죠......이번에 귀국한 것은 주로 사업 때문인데, 이 참에 좀 보러 왔죠.”
류스는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웃으며 말한다. “샤오링, 옛날보다 훨씬 예뻐졌네요. 다른 사람 같아요......미국 생활은 어떠세요? 결혼하셨어요? ......아, 죄송해요.”
젠샤오링은 억지로 웃었지만 마음이 아픈 듯 침울해진다. “전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또 다시는 당신 형 같은 남자도 만나지 않을 거구요.”
류스는 대답할 말이 없어 눈길을 교문 쪽으로 돌린다.
벨 소리가 길게 울린다. 학부형들이 떠들썩하게 머리를 쳐들고 바라본다.
“샤오링! 여기 기다리고 계세요. 가서 천천을 데리고 올게요!”
류스는 말을 마치자 교문을 향해 걸어간다.
젠샤오링은 불안한 듯 몇 걸음 걷다가 옷매무새와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어 멀리 학교 안을 바라본다.
잠시 후 류스가 천천의 손을 이끌고 젠샤오링 쪽으로 다가오자 젠샤오링은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딸을 바라본다.
천천이 걸음을 멈추고 겁을 먹은 듯이 약간은 낯선 엄마를 쳐다본다. 류스는 어린 조카를 앞으로 밀며 부드럽게 말한다.
“천천, 엄마라고 불러야지, 엄마가 돌아오셨다. 불러봐!”
천천은 머뭇거리며 앞으로 가지 않으려 한다.
“천천! 엄마를 못 알아보겠니? ......” 젠샤오링은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앞으로 다가가 딸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아당긴다. 천천은 잠깐 보고 나서야 젠샤오링의 목을 껴안고 원망스러운 듯 부른다. “엄마! ......”
엄마는 딸을 품속에 꼭 껴안았고 모녀는 함께 흐느껴 운다. 류스가 아들을 젠샤오링의 옆으로 데려 가서는 모녀가 잠시 정을 나누게 한 후에야 아들을 떠밀며 말한다. “쟈쟈! 큰엄마라고 부르렴.”
쟈쟈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부른다. “큰엄마!”
젠샤오링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치고 쟈쟈를 당기고 웃으며 묻는다. “쟈쟈, 이렇게 컸어? 아직 큰엄마를 기억하겠니?”
쟈쟈는 솔직하게 말한다. “기억 안나요......”
류스는 아들의 손을 당긴다. “이 녀석! ......샤오링, 먼저 가세요! 쟈쟈, 큰엄마와 천천이랑 작별인사 해야지.”
천천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쟈쟈를 보며 아쉬운 듯이 말한다. “쟈쟈 오빠랑 놀래, 숙제도 하고......”
젠샤오링은 다급하게 딸을 위로하며 말한다. “천천 착하지! 엄마랑 호텔에 밥 먹으러 가자. 쟈쟈 오빠도 같이 가는 건 어때?”
천천은 손뼉을 치며 웃었지만 쟈쟈는 눈살을 찌푸린다.
“난 안가. 일 있어 집에 갈래!”
그래서 젠샤오링은 딸을 데리고 고급승용차를 타고 갔다.
류스와 쟈쟈 부자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해질 무렵의 겨울 거리를 걷는다.
쟈쟈는 작은 책가방을 메고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생각에 깊이 잠긴 듯한 모양을 했다.
류스는 몰래 아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혼자 웃는다.
“쟈쟈, 속상한 일 있어? 선생님께 혼났니?”
쟈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몇 걸음 더 가다 갑자기 묻는다. “엄마는 어째서 날 데리러오지 않는 거야?”
“엄마는 지금 일 때문에 밤늦게나 퇴근하잖아......”
아들은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간다.
류스가 묻는다. “응? 어째 아빠랑 말하지 않는 거야?”
쟈쟈는 엄숙하게 말한다. “난 생각을 하고 있단 말야......”
“허! 뭘 생각하고 있는데? 중미 담판? 아니면 홍콩 반환?” 류스는 우스워서 아들을 일부러 골려대며 말했다.
쟈쟈는 속이 상한 듯이 아빠를 힐끗 보고 몇 걸음 걷다가 그제야 말한다. “난 지금 아빠랑 이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문제를 생각 중이란 말야.”
류스는 웃고 싶었지만 소리를 내지 않고 아들의 손을 당기고 앞에 쭈그리고 앉아 녀석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묻는다.
“엄마가 이렇게 말하든?”
쟈쟈는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말이 없다.
부자는 두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말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간다.
찬바람이 도로 위의 낙엽을 쓸어 올려 온데다 흩뿌린다.
화려한 등불이 하나둘 켜지고 거리의 행인들은 흥성거리기 시작한다.
미커는 새차로 바꾸었다. 반짝거리는 자홍색 “산타나(SANTANA: 桑塔納)” 세단을 몰고 시끌벅적한 거리를 헤집고 지나간다. 그는 흡사 과거의 악몽과 고통 속에서 벌써 벗어난 듯 머리도 새로 드라이하고 양피로 만든 콕 셔츠를 걸쳤다. 얼굴에 광택도 피어나고 입가에는 담담하고 조용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다. 차안에는 쑤뢰이(蘇芮)의 슬프고 우울한 노래 소리가 흐르는데 그녀는 가로등 아래 어린 여자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야기를 호소하고 있다.
택시가 불빛 휘황한 산청호텔의 문 앞에 멈추었다. 택시를 타고 온 외국인 부부가 달러를 지불하고 계속해서 손을 흔들어 거스름돈이 필요 없음을 표시하고는 껄걸 웃으며 차에서 내려 떠났다. 미커는 웃고는 알록달록한 몇 장의 지폐를 앞쪽 좌석 위로 던지고는 막 차를 몰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뒷좌석의 차 문이 사람에 의해 열리고 어떤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차에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미커는 모호하게 물었다. “어디, 어디로 가십니까?”
승객은 대답이 없다.
미커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는데, 왕창(王暢)의 원한에 찬 눈길과 마주쳤다. 그녀는 조금 야위어 보였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미커는 고개를 돌려 두 손을 핸들에 올리고 조용히 웃은 다음 되는 대로 미터기를 기본 요금 쪽으로 돌렸다.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다. 차의 엔진 소리가 부르릉 부르릉 울린다.
호텔 보안요원이 다가와 손을 저으며 차를 몰고 떠나라고 한다.
가로등 아래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려는 쑤뢰이의 노래 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슬퍼하지 말아요, 말아요”라는 대목을 부르고 있다.
산타나 승용차는 불빛이 부서지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왕창이 눈을 고정한 채 룸미러 속 미커의 그 얼음처럼 차갑고 상흔이 성성한 얼굴을 응시하는데도 미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며 진지하게 택시기사의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
미커는 마음이 평안해지자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린다.
산타나 승용차는 천천히 왁자지껄한 시의 고급주택지의 작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 시장이 있는 정원형의 작은 건물의 철창문 앞에 멈추어 선다.
근무 중인 무장 경비원이 검문을 하러 다가오다 왕창이 차안에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몸을 돌려 자신의 근무 위치로 돌아간다.
미터기에 “99.80”이라는 붉은 숫자가 나타났다.
미커는 미터기의 불을 끄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어둠 속에 앉아 인내심 있게 승객이 돈을 낼 때까지 기다린다.
왕창은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을 들고 미커의 고집스럽고 차가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소리로 한마디 묻는다. “당신 영원히 날 아는 체 안 할 거예요?”
미커는 흡사 듣지 못한 듯이 유유히 담배연기로 도너스를 만들어 뿜어낸다.
왕창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눈물을 닦고 차 문을 열었다.
미커가 갑자기 “응”하는 소리를 내며 미터기를 탁탁 쳤다.
왕창은 눈물이 솟구쳐 머리를 숙이고 지갑에서 한 뭉치의 지폐를 꺼내 좌석에 놓고는 흐느끼며 차에서 내려 철창문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미커는 전조등을 켜고 손을 뻗어 지폐를 주어들고는 세어보더니 받아야 할 돈을 주변의 작은 곽 속에 던져 넣고는 나머지 지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창 밖으로 던졌다.
무장 경비가 사방으로 날리는 지폐를 바라보며 의아해 한다.
산타나 승용차는 전방의 길 어귀까지 가서 방향을 돌려 연기처럼 빠르게 땅위의 지폐를 짓뭉개며 어둠의 장맛 속으로 사라진다......
침침한 가로등 아래 흩어진 지폐는 찬바람 속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다.
밤의 장막 아래 산청은 불빛으로 가득 차고 그 휘황한 불빛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산청호텔 9층 화원식의 식당에 아름다운 유럽의 고전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젠샤오링과 자신의 딸 천천이 부드러운 불빛 아래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식탁 위에는 고급스러운 과일과 서양요리가 즐비하고 천천은 어머니의 따스한 눈길 아래 맛난 음식들을 아주 즐겁게 먹고 있다.
젠샤오링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천천, 좋아?”
“좋아!” 딸은 달콤하게 웃는다.
“엄마랑 미국으로 가면 천천은 매일 이런 맛좋은 걸 먹을 수 있고, 꽃밭 같이 예쁜 학교에서 공부할 수도 있거든. 그리고 예쁜 외국 친구들이랑 놀 수도 있는데......”
“미국이 멀어? 기차 타면 몇 일 걸려?”
“바보! 기차로 어떻게 가? 큰 비행기를 타고 끝없는 태평양을 건너야 돼. 비행기 안에서 이틀을 보내야 돼! 큰 비행기는 아주 편안하단다. 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소파에 누워 잠 잘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맛 난 것도 먹을 수 있지......”
천천은 마음이 쏠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중요한 문제를 꺼낸다. “아빠도 우리랑 함께 가?”
젠샤오링은 순간 말문이 막혀 얼른 화제를 딴 데로 돌려 말한다. “천천! 비행기 타본 적 있어? 비행기 타는 거 정말 재밌단다......”
천천은 되려 이 민감한 문제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엄마, 아빠도 가? 아빠가 안가면 난 아빠가 없게 되잖아!”
젠샤오링은 대답할 말이 없어 얼굴을 돌리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천천은 엄마의 얼굴빛이 어두운 걸 보더니 철이 든 듯이 입을 다물고 머리를 묻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가끔씩 가만히 엄마의 얼굴색을 살핀다.
낡아빠진 텐진(天津) 상표의 봉고 한 대가 화려하고 웅장한 산청호텔 정문 앞에 서자 류얼이 차에서 내려 로비로 뛰어들어 간다.
로비의 프론트 데스크 직원 아가씨가 표정이 어두운 이 손님을 맞이한다.
“실롑니다만 손님, 몇 호실에 묵으십니까?”
“전 사람 찾으러 왔어요! 미국 로스엔젤리스에서 온 젠샤오링 여사가 몇 호에 머물고 있습니까?” 류얼은 차갑게 되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근무중인 아가씨가 숙박부를 뒤적이더니 전화를 돌린다. “여보세요, 실롑니다만 미국에서 오신 젠샤오링 여사십니까? 안녕하세요! 로비에 한 손님께서 뵙자고 하시는데 되겠습니까? ......예, 이 남자 분은 성은 류씨고요, 우리 시에서 오셨는데......”
류얼은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아가씨의 수화기를 빼앗아 말한다. “나 류얼이야! 천천이 당신 방에 있지? 애를 바로 내려 보내시지!......애가 목욕한다고?......알았어, 내 바로 올라 가지!”
당직 아가씨 수화기를 받아 들고 부드럽게 묻는다. “여보세요, 여긴 프론텁니다. 실롑니다만 류 선생님께서 올라 가셔도 되는지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 놓고 류얼에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서쪽 건물 1816호로 올라가시죠”. 류얼은 아가씨의 안내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 큰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붉은 카펫이 깔린 서쪽 건물의 아늑하고 조용한 복도에서 류얼은 1816호실을 찾아 벨을 눌렀다.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젠샤오링은 화려한 실크 나이트 가운을 걸치고 고개를 숙인 채 문 곁에 서서 가볍게 말한다. “당신 오셨군요.”
류얼은 싸늘하게 그녀를 훑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 하나에 호화스런 방이 세 칸이었다. 응접실 양편은 한 침실로 통하고 침실은 베란다와 화장실이 딸려있었다. 넓고 아늑한 긴 창문 밖은 산청의 잠들지 않는 불빛의 바다였다.
방안의 온기가 류얼을 덥게 만들었다.
젠샤오링은 그의 뒤에 서서 가볍게 말한다. “앉으세요”.
류얼은 굳은 표정으로 소파에 앉으며 질 낮은 담배를 더듬어 찾는다.
젠샤오링은 급히 준비해 둔 책상 위의 “말보로”담배 두 보루를 류얼에게 내밀자 류얼은 차갑게 손을 저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젠샤오링은 소리 없이 소파에 앉았고 한동안 말이 없다.
침실의 그냥 닫아 둔 욕실 문 안쪽에서 어렴풋하게 물소리가 들려온다.
젠샤오링은 갑자기 나지막한 소리로 간절하게 말한다. “당신에게 빌게요, 애를 데려가지 마세요! 나랑 이틀동안만이라도 있게 해주세요. 애를 돌볼 수 있어요......”
류얼은 전처의 애원을 거들 떠도 보지 않고 욕실 쪽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천천! 다 씻었니?”
욕실 안에서 천천의 흥분한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어서 와! 나 탕 속에서 수영 중이야! 아주 재밌어! ......”
류얼은 몸을 일으켜 앞으로 가다 갑자기 돌아서 다시 앉으며 답답한 듯이 담배를 피워댄다.
젠샤오링은 조용히 전 남편을 한 번 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욕실 쪽으로 걸어간다. 모녀 두 사람이 안에서 작은 소리로 소곤대며 바스락거리며 옷을 입는다. 잠시 후 어머니는 수건을 동여 맨 딸을 안고 응접실로 돌아온다.
“아빠!” 천천은 작은 손을 벌리고 아버지의 품에 뛰어 들었다.
젠샤오링은 묵묵히 더없이 친밀해 보이는 부녀 두 사람을 바라본다.
“아빠! 아빠도 여기서 자? 여기 방이 무지 커. 우리 세 사람 같이 자자!” 천천은 천진하게 말한다.
류얼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 딸에게 말한다. “천천, 아빠랑 집에 가자! 고모가 집에서 널 기다리셔. 우린 여기서 안 자!”
“그럼 엄만 어떻게 해? 엄만 혼잔데......” 천천은 고개를 돌려 동정하듯이 엄마를 쳐다본다.
젠샤오링은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몸을 돌려 입을 막고 욕실 쪽으로 뛰어들어가서는 문을 닫았다.
천천은 마음속이 편치 않은지 눈물을 글썽이며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얼마 울어! 우리 엄마 데리고 집에 가자?! ......”
류얼은 딸을 소파에 앉히고 옷을 찾아다 하나하나 입고 얼굴의 눈물을 닦인 다음 딸에게 말한다. “여기는 우리가 잘 곳이 아냐. 엄마도 다시는 우리 집에 가지 않을 거야. 착하지 아빠랑 가자!”
그는 어린 딸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든 말든 딸을 안고 이 낯선 방을 나선다.
텅 빈 호화스런 방안에는 젠샤오링과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남았다. 벌써부터 켜져 있던 텔레비전 화면에 신화과학계기공장의 공장장대리 류얼의 대범하면서도 멋진 모습이 나타났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개혁의 큰 물결 속의 풍운아 류얼이 한창 기자의 인터뷰를 받고 있다. 마이크에 대고 당당하게 말한다.
“......신화과학계기공장이 아주 짧은 시간에 파산할 급박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명성이 자자했던 3급 천칭 제품이 국가 계기 총국의 전국 품질 검사 평가에서 일약 1등품의 최고 등급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시가 개혁을 심화하여 처음 그 성과를 보는 가장 좋은 예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은 시에서 사회에 공개적인 초빙을 통해 기업의 대리 법인을 맡은 청년개혁가로서 당의 개혁개방정책과 시위원회 시정부 및 주관국 책임자께서 저를 위해 재능을 발휘해 볼 기회를 제공해 주신 것에 충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전 공장 400여 명의 직공들의 저에 대한 신임과 지지에 더욱 감사하고 싶습니다. 저는 절대로 저에 대한 책임자와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전 시의 인민들과 함께 오래된 산청을 아름답고 부유한 현대화 대도시로 만들기 위해 저의 역량을 바치길 바랍니다!......”
등이 꺼진 응접실에는 아무도 없고 텔레비전의 볼륨도 아주 작아졌다. 단지 작은 고양이만이 얌전하게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듯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뿐이다.
불빛이 침침한 서재의 문은 닫혀 있다. 류스는 일인용 침대에 반쯤 누운 채 샤린에게서 온 편지를 소리 없이 읽고 있다.
“스토우. 나는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빙하의 물사태가 흐르는 관측소에서 당신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공군의 ‘검은 독수리’라는 헬리콥터 한 대가 내가 묵고 있는 텐트 바깥에 멈췄는데, 기장이 이 편지를 라싸로 가져가 다시 당신에게 부쳐 주겠다고 대답했어요. 당신은 안온한 서재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며 무병신음하는 그런 소설들을 창작하고 있을 때, 그저 그렇고 이름 없는 그런 과학원의 지식인들이 지금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자연과 싸우과 있어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무명의 영웅이지만 그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고 그들에게 후한 보수를 지불하는 사람도 없답니다. 속세와 멀리 떨어진 여기에서 인적이 드문 빙하의 대협곡 속에 그들은 쇠약하고 지친 병든 몸을 이끌고 마른 건빵과 맛없는 통조림을 먹어가며 묵묵히 자신의 청춘과 생명을 소진시켜 간답니다. 일년에 또 일년, 하루에 또 하루......자랑할 만 것은 내가 이곳으로 방문한 첫 번째 작가이자 기자인데다 이 빙하 협곡 중에 나타난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답니다......‘검은 독수리’ 헬리콥터가 시동을 걸자 굉음을 냅니다! 비행사와 의사들이 추락사망의 위험을 무릅쓰고 빙하 협곡의 가파른 봉우리를 뚫고 세계에서 잊혀진 이곳으로 날아온 것은 중상을 입은 물사태 전문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예요. 그는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전용기에 의해 라싸에서 뻬이징의 가장 훌륭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이미 영원히 기억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난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갑자기 과거의 생활이 얼마나 맥없고 무의미했는지를 발견했어요! 우리는 항상 개인의 영욕과 불행 때문에 너무도 슬픈 나머지 죽고 싶어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남보다 두각을 나타내거나 물질적 향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며 꾀를 다했었지요. 우리는 진정 용감하고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부둥켜안아 본 적도 없고 진정으로 인류의 가장 숭고하고 가장 순결한 감정을 체험한 적도 없었지요! ......성정이 강렬한 한 여성작가는 일찍이 이렇게 단언했어요. ‘생명의 형식에는 ‘썩거나 불타는 것’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날마다 마비된 채 썩고 있었지만 하루도 봉헌 속에 불타본 적은 없었습니다! ......나를 과거의 그런 무료한 생활 속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세상으로 높이 날아오르는 한 마리 매로 변해 강한 바람에 무쇠처럼 강인한 날개를 펼쳐 황량한 대지를 내려다보다 기진맥진해지면 하늘에서 떨어져 빙하와 설봉에 묻힐 것입니다......시간이 없네요. 비행기가 이륙하려고 해요. 영원한 이별이네요 사랑하는 친구여! 나의 연인이여!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났네요......”
사방이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먼 곳의 강에서 간간이 기적소리가 드려오고 찬바람이 윙윙대며 마치 원통하게 죽은 영혼이 통곡하는 듯한 소리를 낸다.
류스는 편지를 천천히 접어 베개 밑에 쑤셔 넣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편안하고 따스한 서재에서 그는 그렇게 고독해 보였다.
협소한 욕실에서 허웨이는 목욕을 마친 후 실크치마 잠옷으로 갈아입고 흩어진 젖은 머릿결을 손수건으로 머리 뒤쪽으로 묶는다. 목과 겨드랑에 향수를 뿌린 다음 거울을 들여다 보니 슬프게도 거울 속 여인의 우아한 자태는 아직 그대로건만 오히려 초췌해 보였다.
허웨이는 코가 시큰거려와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는 자신을 진정시킨 다음 벽의 등을 껐다.
그녀는 외투를 걸치고 조용히 따스한 침실로 들어갔다.
아들은 이미 깊이 잠들었고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는데 발그레한 얼굴이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정도로 잘 익은 사과 같았다.
허웨이는 침대 가에 앉아 묵묵히 아들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테이블 등을 끄고 조용히 응접실로 돌아간다. 텔레비전은 벌써 “눈꽃”이 내리고 있어 그녀는 가볍게 꺼버렸다. 텅 빈 응접실에 잠시 서 있다 천천히 서재의 문을 말고 들어갔다.
류스는 조용히 아내를 바라보고 아내도 조용히 남편을 바라본다. 류스는 갑자기 웃으며 손으로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고 허웨이는 천천히 다가가 남편 곁에 앉는다.
“스토우, 우리 헤어져요.” 허웨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류스는 전혀 놀라지 않고 천천히 침대 서랍에서 담배 한 대를 더듬어 꺼내고는 묵묵히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았다.
“알았어. 헤어지자고.”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허웨이는 남편을 바라보다 가볍게 그의 손안의 담배를 가져간다.
류스는 눈빛을 반짝이며 가만히 아내를 바라본다.
그들은 한참동안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며 열심히 상대방의 눈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뛰게 했던 그런 표정을 찾는다. 하지만 그런 익숙하면서도 서로 통했던 표정은 이미 무관심의 냉담함에 의해 갈라져 안개가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말없이 집요하게 상대방을 부르고 있다. 흡사 서로간의 애무로 이런 냉담한 무관심을 희석하려는 듯이.
결국 그들은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서로 부둥켜않았다.
산타나 승용차가 곧장 시 전자국 기관의 정문으로 진입하였다.
류웨이는 차에서 뛰어 내려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 바로 국의 회의실로 밀고 들어가 회의를 주관하고 있던 원 국장에게 손짓하였다.
원 국장의 얼굴에 한 줄기 불쾌감이 스쳤고, 그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이 장면은 류웨이가 원 국장을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류웨이는 복도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원 국장님! 또 와서 귀찮게 하는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왕 시장님이 삼자의 책임자를 불러 회의를 열어 정한 원칙에 근거하여 우리 계량국의 품질검사팀이 이미 모든 준비를 완료하여 귀국(貴局)의 품질검사팀과 공동으로 신화과학계기공장의 3급 천칭 제품에 대해 샘플검사와 품질검정을 진행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를 희망합니다. 국장님께서 지지해 주십시오!”
원 국장은 차갑게 반문한다. “아직 이게 필요한가?”
“당연히 필요합니다. 이것은 왕 시장님께서 정한 원칙입니다.”
“왕 시장님의 원칙은 3급 천칭이 전국 품질 검사에서 합격한다면 계량부문이 국가계기총국과 이 문제의 해결을 협상하는 것이야. 현재 3급 천칭은 ‘합격’일뿐만 아니라 ‘일등품’으로 평가되었는데 샘플검정이 무슨 의의가 있어? 설마 당신들이 국가계기총국의 업무 권위와 지위를 뒤엎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원 국장의 태도는 강경하였다.
류웨이는 웃고 난 후 말한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표준이지요. 계량기 제품은 틀림없이 국가계량부문이 검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우리 계량법 집행요원의 실직이겠지요!”
“알았어!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전자국의 품질검사팀은 이미 역사적 사명을 완수해서 이미 했던 일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 당신들이 실재로 샘플을 채취하면 내가 신화과학계기공장에 통지해서 당신들과 협력할 수 있지. 그러나 사람들이 줄지 안 줄지는 나도 어쩔 수 없어! ......”
원 국장이 말을 마치자 몸을 돌려 자신의 사무실로 가버린다. 류웨이는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
원 국장이 사무실로 들어가 전화를 든다. “여보세요, 류 공장장이오? 내가 당신에게 말하겠는데, 시 계량국의 류웨이 동지가 품질검사팀을 데리고 와 공장에 들어가 샘플을 뽑아 검사할 모양이니 당신들은 3급 천칭 제품 3대를 제공해 주고 그들의 업무에 협력해 주시오......”
“샘플을 안 줄 거요! 사려면 그들더러 돈을 내라고 할겁니다!” 전화 속에서 류알의 노기등등한 목소리가 전해온다.
원 국장은 류웨이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수화기를 움켜쥐고 가볍게 말한다. “경고성의 벌금은 기업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이건 순수한 경제문제가 아니야......좋아, 자네가 형에게 말해 보지!”
류웨이는 수화기를 받아들고 끈기 있게 말한다. “큰 형님! 좀 냉정하게 제 말씀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샘플검사는 계량 감독의 규정순섭니다. 어떤 기업도 지지하고 협조해야 합니다......”
류얼은 전화 속에서 큰 소리로 동생의 말을 끊었다. “내가 벌써 말했어! 샘플은 안 준다. 사려거든 돈 가져오란 말이야! 이게 공평한 거래지! 너 돈 가져다 사서 마음대로 들볶으란 말이다!”
“알았습니다. 제가 당장 돈 가져다 사겠습니다! 3대 사죠!” 류웨이는 결국 폭발하여 “팍”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씩씩거리며 말한다. “원 국장님, 이따 봅시다!” 몸을 돌려 후다닥 뛰어 내려간다.
원 국장은 고통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옛날 시 한마디를 읊조린다. “본래 한 뿌리에서 났건만, 서로 볶아댐이 어찌 이리도 급할까......(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키가 크고 뚱뚱한 친 국장이 지금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
“......그렇소! 우리는 벌써 사람을 보내 3급 천평의 견본품을 구입했고 내일 아침 일찍 전담자가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보낼 거요! ......좋소. 그럼! 또 봅시다!”
류웨이는 두 명의 기술요원을 데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들어온다.
“국장님! 3대의 견본품을 전부 국의 보위과의 보안실로 옮겨 왔고 손상이 없도록 진공상태로 밀봉해 뒀습니다! 두고 봅시다. 벌금은 한 푼도 손에 오지 않을 거고 오히려 1만원을 얹어 줄 겁니다! 이건 중국계량공업사상 극히 드문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친 국장은 한 번 해보겠다는 듯이 말한다. “좋아! 나는 벌써 총국의 책임자께 돈을 가져다 견본품을 산 일을 보고했네. 총국의 책임자께서 아주 중시하시면서 우리더러 즉각 사 가지고 온 3대의 견본품을 베이징으로 직송해서 국가계량과학원이 모든 성능시험과 감정을 하도록 하라고 하셨네. 나는 벌써 사무실의 왕 주임더러 내일 베이징 항공편의 비행기표를 사오게 했네. 자네들 돌아가 준비하게. 내일 아침에 바로 비행기를 타야 하네!”
“왕 시장님께 인사를 드려야 할 지요?” 류웨이가 일깨우며 말한다.
친 국장은 커다란 손을 흔들며 “필요 없어! 왕 시장은 우리더러 국가계기총국과 협상해서 해결하라던 것 아닌가? 시험과 감정의 보고가 나온 후에 총국이 나서서 직접 국가계기총국 책임자에게 건네 훑어봐 주도록 요청했네. 만약 불합격이면 양 국이 연합하여 공문을 작성해서 책임지고 산청시 위원회와 시 정부가 신화과학계기공장에 대해 엄중하게 처리하도록 요청할 것이네!”
류웨이는 부담감이 크다는 것을 느껴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층아파트가 불빛 찬란한 빌딩 숲에 자리잡고 있다.
류웨이는 무거운 몸을 끌고서 건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건물 복도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 곧장 꼭대기 층까지 오른다......
“딩동!” 듣기 좋은 벨 소리가 울렸다.
깊이 잠든 아기를 지키며 바느질을 궈옌은 급히 몸을 일으켜 문을 연다. 남편의 어두워진 얼굴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불안함을 느낀다.
“이제 오세요! ......왜 그러세요? 몸이 안 좋으세요?”
류웨이는 이마에 대고 있는 아내의 손을 밀치고 사지가 편안하도록 소파 쪽으로 드러누우며 말한다. “베이징으로 출장 가야돼. 내일 아침 일곱 시 비행기야. 다섯 시에 집을 나서야 돼......”
궈옌은 남편에게 뜨거운 차를 한 잔 따른다. “몇 일 동안 가세요?”
“한 일주일쯤 될 거야! ......응? 녀석이 어떻게 된 거야?” 류웨이는 갑자기 딸이 생각난 듯 몸을 일으켜 침실로 들어간다.
부드러운 불빛 아래 딸은 새근새근 가볍고 작은 이불을 덮고 얼굴은 동그랗고 불그레하니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류웨이는 딸의 얼굴에 뽀뽀를 하다 아내에 의해 떨어졌다.
“애 건들지 말아요! 당신 얼굴에 흙 좀 봐. 빨리 씻으세요!”
류웨이는 응접실로 돌아와 외투를 벗으며 묻는다. “당신 오빠 요즘 어때? 아직 삼륜차를 끄시는가? ......”
궈옌은 남편에게 세숫물을 따라주자 대답한다. “그럴 거예요. 어떤 분이 여자를 소개해줬다고 하던데, 오빠의 형기가 끝나면 결혼한다나......자 세수하세요!”
“어, 뭐 하는 여잔데?” 류웨이는 관심 있게 물었다.
“결혼했던 여잔데 여섯 살 난 아들이 하나 있고 유람선 식당 종업원이래요. 예쁘게 생겼다고 하던데......”
얼굴을 씻고 나자 궈옌은 이미 따끈따끈한 요리와 밥을 식탁에 차려놓았다.
류웨이는 심하게 배가 고픈 듯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궈옌은 뜨거운 탕을 떠와서는 남편의 맞은 편에 앉아서 먹는 것을 지켜본다.
류웨이는 식사를 하면서 한마디 묻는다. “당신 밥 먹었어?”
궈옌은 고개를 끄덕이고 갑자기 웃더니 떠보듯이 묻는다. “봐요, 당신 보기에 내가 직장을 옮기는 건 어떨까요?”
“업무를 옮긴다고? 어디로 옮겨?” 류웨이는 그녀를 힐끗 보고 나서 물었다.
궈옌은 잠시 침묵하다 뱉듯이 말한다. “과학기술출판사에서 모집공고가 난 모양인데 전민소유제(全民所有制) 업체인데다 업무 분야도 괜찮고. 사무실에 앉아 문서수발 같은 걸 하는 것 같던데......”
류웨이는 그제야 주의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반짝이는 눈을 쳐다보며 묻는다.“당신 어디서 들었어? 누나가 알려 준 거야?”
궈옌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당신 보기에 갈까요 말까요? 어쨌건 내가 오케이하면 옮기는데 문제없어요! 언제까지나 공동으로 일 할 순 없잖아요.”
류웨이는 약간 수상쩍은 듯이 차갑게 묻는다. “옮기는 데 문제가 없다고? 이렇게 입김이 큰 사람이 누구야? 어이, 당신 솔직히 말해봐!”
“과, 과학 위원회의 부주임인데 형부와 옛날부터 잘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요......” 궈옌은 끝내 다 털어 내놓고 불안하게 남편을 쳐다본다.
류웨이는 젓가락을 놓고 머리를 갸웃하며 생각을 더듬는다. “호우 부주임? ......호우예밍? 그 사람이 당신을 찾아왔단 말이야?”
궈옌은 가련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양반이 과학 위원회 인사처의 한 아가씨를 보내와 나를 찾아왔는데 당신 식구들이 알게 하지말고 날더러 모집원서를 작성하라고 합디다......”
“음......” 류웨이는 문제가 좀 심각하다고 느꼈다. “호우 부주임? ......이 사람 평판이 별로야. 기회를 틈타 권력자를 따라 출세하는 데 난 사람이야......당신 그 사람한테 대답했어?”
궈옌은 고개를 끄덕이다 황급히 가로 저었다.
“당신 내일 과학 위원회 인사처에 가서 그 모집원서 받아와!” 류웨이는 얼굴을 엄숙하게 하며 말한다. “추잡해. 과학 위원회로 옮겨가서 뭘 하겠어? 이건 어떤 놈이 사(沙) 서기에게 친한 척 하는 짓이지만 실제로 함정을 파는 거라고 의심된단 말야! 요 얼마동안 사 서기가 비를 맞으며 빈민가를 다니다 친척을 알게 된 이야기가 전해진 것 아냐? 그렇지 않다면 이 사실과 전혀 상관없는 호우 부주임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겠어!”
궈옌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알겠어요......”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궈옌이 가서 문을 열며 기쁘게 소리를 지른다. “아, 큰 아주버님......여보, 큰 아주버님 오셨어요! 아주버님 들어오세요!”
류웨이는 의외라고 느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큰형 류얼은 냉기 가득한 얼굴로 들어선다.
“형님! ......식사 안 하셨지요?! 자, 우리 같이 들어요!” 류웨이는 반갑게 맞이하며 다가서 권한다.
류얼도 말없이 엉덩이를 식탁 가에 붙이고 앉는다.
구옌은 잽싸게 밥그릇과 젓가락을 가져다 큰 아주버니 앞에 놓는다. “아주버님, 정말 반가운 손님이세요! 무슨 맛있는 건 없지만 편하게 좀 드세요! ......제가 밥을 좀 뜰게요!”
류얼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단지 억지로 제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밥그릇과 젓가락을 들고 사양하지 않고 퍼먹기 시작한다. 아주 배가 고픈 듯 보였다.
류웨이는 아내에게 눈짓하자 궈옌은 조용히 물러간다. 형제 두 사람은 가만히 먹기만 할 뿐 누구도 말이 없다.
그래도 류웨이가 약간 능동적으로 거의 다 먹은 것을 살피고는 빙그레 웃으며 묻는다. “형님, 볼 일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류얼은 차가운 얼굴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답답한 듯이 몇 모금 빨아들인다. 눈빛이 번쩍하더니 동생의 얼굴 위에 멈춘다. “너 내일 베이징에 간다고?”
류웨이는 마음 속으로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류얼은 담배를 사납게 몇 모금 빨고 나서는 깊이 한숨을 쉬며 나지막하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웨이웨이, 넌 뭐 때문에 형과 맞서려는지 모르겠다! ......내가 너에게 잘못했냐? 넌 나를 우물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너에게 도대체 무슨 좋을 게 있냐?! 어려서부터 고생을 같이 했던 형제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보통 친구라도 이렇게 하는 건 지나친 거야! ......아니, 너 이유 댈 필요 없어! 넌 지금 뿌얼스웨커 형제의 넷째 류웨이지 계량국의 류 과장이 아니란 말이다! 나 류얼 한평생 남에게 도움 같은 거 받은 적 없고, 더군다나 친동생들한테는 더욱 그래본 적 없단 말이다. 만약에 네가 이 일을 점점 확대시킨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친형제지간에 잔인하게 죽이는 꼴을 보여주는 거지! 그러니 나도 더 이상 아무 할 말 없다! 나는 너 류웨이에 의해서 낙마해도 괜찮지만 우리 사이의 관계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지! 네가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류웨이의 안색은 변했지만 눈빛은 확고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류얼의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을 보면서 간곡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형님, 이 일이 지금 이 지경에 다다를 때까지 저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어요. 우리 형제의 감정을 말씀하신 것은 설마 정말로 제가 형님을 막다른 길로 밀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형님......”
“말하지 마라. 너 더 이상 말하지 마.” 류얼은 벌떡 일어났다. “보아하니 이 일은 이미 상의할 여지가 없군. 너 잘났어......잘났어......”
류얼은 말을 할수록 흥분되었고, 말을 마치자 몸을 돌려 나가버린다.
류웨이는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형님! ......”
“꽝!”하고 방문이 닫혔다.
류웨이는 침통하게 자리에 앉는다. 눈물이 솟구쳤다.
이른 아침 날이 희미하게 밝아온다. 어두컴컴한 밤의 장막은 소리 없이 조용히 물러갔지만 짙은 안개를 다가오는 여명에 남겨주었다. 차갑고 고요한 거리에 무궤도 전차가 지나갈 때 웅웅하는 소리와 짧은 벨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안개 자욱한 새벽 하늘에 간간이 아침 출근 기선의 긴 기적소리가 한 두 차례 울린다.
허웨이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앉아 바스락거리며 옷을 입는다. 어젯밤에 벌써 꾸려 두었던 배낭이 생각났다. 침대 가에 앉아 묵묵히 곤히 잠든 아들을 잠시 바라보다 녀석의 얼굴에 뽀뽀하였다. 아들은 몸을 뒤척이더니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허웨이는 살그머니 침실 방문을 닫고 욕실로 가 간단하게 씻은 다음 응접실로 돌아와 방 스탠드의 등을 켰다. 종이에 급히 몇 글자 적어서는 압정으로 서재 방문에 가볍게 꽂았다. 마지막으로 따스하고 조용한 집을 돌아보고는 짐을 메고 조용히 문을 나서며 집의 대문을 살며시 닫았다.
언제부터 가는 빗줄기가 부렸는지 모르겠다. 흐릿한 가로등이 몽롱한 안개비 속에서 갈수록 어둡고 분간이 되지 않았다.
허웨이는 종종 걸음으로 어두운 복도를 빠져나와 차갑고 조용한 골목을 뚫고 빠른 걸음으로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큰길의 전차역 간판 아래까지 걸었다.
잠시 후 아침출근 무궤도 전차가 웅웅거리며 지나가는데, 짧은 벨소리를 따라 차 문이 묵직하게 자동으로 열린다. 허웨이는 차에 뛰어 올랐다. 텅 빈 차안에는 겨우 너 댓 명의 승객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다. 자동 차문이 탄식하듯 다시 닫히자 전차는 벨을 울리며 안개 속을 또 웅웅 달려간다.....
새벽안개에 묻힌 화원식의 작은 건물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갑자기 방문이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살며시 열린다. 왕창이 간단한 짐을 들고서 미끄러지듯 문을 나온다. 살금살금 조용한 작은 집을 지나 철창문을 나서 근무중인 무장경비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 아래에 바짝 붙어 빠른 걸음으로 고요한 항구 쪽으로 걸어간다.
안개가 자욱해지며 이내 그녀의 뒷모습을 삼켰다......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텐롱먼(天龍門) 부두가 점점 거대한 윤곽을 드러낸다. 부두의 불빛은 부서지고 사람의 그림자는 분주하다. 아침 간식거리와 뜨거운 먹거리를 파는 장사치들의 호객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멀리 배에 오르는 여객들의 모습이 바쁘다. 길고 가파른 돌계단 아래 화물선과 여객선이 정박해 있는데 기적과 모터 소리가 긴장된 분위기를 더한다.
허웨이는 돌난간 곁에 서서 초조하게 시계를 보고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본다.
전차와 시내버스가 한 대씩 부두 종점역까지 도착하자 짐을 맨 여객들이 한 무더기씩 차에서 내린다.
허웨이는 새까만 인파 중에서 길동무의 모습을 찾는다. 이때 택시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멀리서 다가와 부두의 돌계단 앞에서 멈추었다. 왕창은 얇은 실크로 된 짧은 외투를 입고 차에서 내렸다. 허웨이를 보자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함께 하며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계단 쪽으로 걸어 내려간다.
불빛이 휘황한 여객은 수상 궁전 같다. 당직자가 확성기로 여객들에게 배에 오르라고 크게 외치고 있다......
새벽 안개가 흩어지면서 거인처럼 깊이 잠든 산청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검은 광택이 나는 시보레 승용차가 천천히 뿌얼스웨커 형제의 낡아빠진 집 앞에 멈추자 다른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양복을 반듯이 차려 입은 젊은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재빠르게 차 앞을 돌아 뒷문을 열었고 온화하고 귀티가 나는 젠샤오링이 천천히 차에서 내린다. 운전기사는 또 잽싸게 차 뒤로 가서 트렁크를 열고 화려하게 장식된 크고 작은 가방을 꺼내들고 여주인의 뒤에서 어두운 복도를 따라 간다.
류뿌는 작은 건물 문 앞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미소를 띠며 맞이한다.
“샤오링! 뭘 이렇게 많이 들고 와? 이사하는 거여?”
“형님! ......” 젠샤오링의 눈가가 붉어지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류뿌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친근하게 손을 잡고 뿌얼스웨이커 형제의 오랜 집으로 평소에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듯 들어간다.
젠샤오링은 침대에 누워 요양하고 있는 아주버님 쓰웨이(斯煒)에게 인사하고, 운전기사에게 가져온 물건을 방 한가운데 탁자에 놓게 하고 손을 젓자 운전기사는 공손하게 물러갔다.
류뿌와 쓰웨이는 웃으며 과거의 동생의 아내를 바라볼 뿐 말을 하지 못한다.
젠샤오링은 간절하게 말한다. “형님, 아주버님, 이번에 바삐 오느라 무슨 선물도 제대로 못 챙겼어요. 이건 제가 미국에서 가져온 작은 선물이니 집안 식구들이 하나씩 가졌으면 해요. 포장지에 이름을 적어 뒀어요. 맞을 지 모르겠지만 제가 집안에 대한 작은 성의라고 여겨 주세요! 형님과 아주버님께서 타인 취급하지 마시고......”
류뿌는 올케의 손을 잡고 같이 앉는다. “바다를 왕래하면서도 올케가 아직 이 집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고맙지! 내가 집안을 대신해서 올케의 성의를 받을 수밖에 없겠네. 좀 있다 헤어지고 나면 그들에게 가져다 줄게......언제 미국으로 돌아가?”
“오늘 가요. 오전 10시 50분 비행기로 베이징에 가서 내일 국제항공편을 타고 LA로 갑니다......”
류뿌는 시계를 보았다. “어! 시간이 많이 됐네, 벌써 8시 반이네. 시간 바쁜 거 아니지? 뭘 좀 해 줄 테니 먹고 가......”
“형님, 괜찮아요! 좀 더 있어도 돼요. 짐은 벌써 인편으로 공항까지 부쳤기 때문에 문제없어요 ......” 젠샤오링은 류뿌를 만류하며 작은 핸드백 속에서 은행 저금통장을 꺼내어 시누이의 손에 건네주며 말한다. “형님! 천천이 요 몇 년 동안 형님과 아주버님께 신경 쓰게 하잖아요. 애 아빠도 잘 보살펴 주지 못하고 전적으로 두 분께만 기대고 있고요. 어미 된 마음으로 정말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요......이건 형님 이름으로 은행에 예금해 둔 2만원의 통장인데 정말 꺼내기 부끄럽지만 형님이 받아주세요......”
류뿌는 통장을 보더니 점잖게 웃는다. “샤오링, 난 여지껏 남의 돈을 써 본 적이 없어. 자네도 당연히 알텐데......”
“알지요, 알고말고요!” 젠샤오링은 급히 해명한다. “하지만 이건 남의 돈이 아니에요. 제가 오빠의 회사에서 일해 번 월급이에요. 형님이 쓰지 않으시겠다면 집안의 아이들을 위해 쓸 수도 있잖아요! 이를테면 칼라TV, 냉장고, 오디오, 심지어 피아노 같은 고급 가전 제품이라도 사세요......형님, 애들에게는 이런 현대생활용품도 필요하잖아요......”
류뿌는 웃으며 통장을 올케의 손에 쥐어주며 간절하게 말한다. “그런 것들은 생길 거야! 나랑 저 양반이 요 몇 년 새 몇 천 원을 모았거든. 애들에게 그런 현대생활 용품들을 사 줄 거야. 동생들도 날 이해할거네. 동생들 돈은 필요하지 않아. 내가 한 푼 한 푼 모으는 건 힘은 들어도 이렇게 하는 게 맘 편하거든!......”
젠샤오링의 눈에 눈물 꽃이 핀다. “형님, 전 형님께서 돈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동생들의 도움도 받지 않을 것도 알고요. 형님은 형님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전......제 마음은 견디기 힘들어요! 제겐 어미로서 해야할 책임도 없어요. 천천의 교육이랑 부양을 모두 형님에게 미뤘으니 형님이야말로 딸애의 진정한 엄마세요! 형님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
류뿌는 소리를 죽이며 흐느끼는 올케를 부둥켜안았다. 두 눈이 시큰거려 왔다. 우로하며 마란다. “샤오링, 나도 자네 마음이 힘들다는 걸 알아. 나도 여자야, 어미가 아이를 잃는 다는 게 뭔지는 알지. 나도 두고두고 류얼을 설득하려고 해. 적당한 때에 아이를 자네 곁으로 보내 모녀가 합치도록 할게......이 돈은 내가 받아 두긴 하겠지만 통장을 천천의 이름으로 바꾸도록 해. 모두 아이의 교육과 부양에 쓸게. 안심해! ......”
젠샤오링은 시누이를 껴안고 흐느낀다. “형님! 죄송해요! 천천이랑 애 아빠한테도 미안하고요......”
류뿌는 올케의 들썩이는 어깨를 어루만지며 줄줄 눈물을 흘린다.
화려하고 웅장한 산청의 신선로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북적이고 소란스러웠다. 이층의 한 우아한 방에는 원 국장과 탕(唐) 총엔지니어 및 전자국 품질검사팀 책임자, 신화과학계기공장 기술과의 사오(邵) 과장 등이 시 계량국의 친 국장을 초대하고 있다. 모두 돌아가며 술을 권하였고, 이미 거대한 몸집의 친 국장을 얼굴이 온통 벌겋게 되도록 하였다.
술이 얼큰해 질 무렵 원 국장은 친 국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정겹게 얘기한다. “친구, 모두 업무에 충실했기 때문이지 근본적으로 심한 충돌은 없었네! 아래 사람들이 무례하게 자신들의 힘을 뽐내는 점이 있었던 것이니 친구가 넓은 도량으로 이해해 주고 그들과 같은 생각은 말아주게. 우리 기업들은 당연히 국가계량관리기관의 움직이지 않는 권위와 지위를 옹호해야지! 업무상 무슨 과오가 있다면 친 국장의 관대함을 청할 것이네! ......사오 과장! 물건 다 꺼내게!”
사오 과장은 급히 가방 속에서 두툼한 쇠가죽 봉투 한 개와 은행 수표 한 장을 꺼내어 공손하게 친 국장 앞에 놓는다. 원 국장은 웃는 얼굴로 원만한 중재를 시도한다.
“친구! 우리 빈말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차원에서 당장 약속을 시행하겠네. 이것은 류웨이 동지가 3급 천칭 샘플을 가져갈 때 신화과학계기공장 재무과에 지불한 14,000원 인민폐로 현금일세. 공장장이 당시에 화가 나서 몇 마디 한 것은 순전히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세! 지금은 모든 것이 완전히 원상태로 돌아왔네! 이것은 공장에서 계량국에 납부하는 경고성 벌금 10,000원 인민폐 수표일세. 친 국장 화 풀게나. 마음에 두지 말고......”
몇 사람이 간절하게 친 국장을 바라보며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었다. 친 국장은 이마 위의 땀을 닦고는 눈앞의 2만여 원의 거금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으며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돈은 내가 받아 두겠네. 우리 두 국은 당연히 계속 협력해야지. 이건 전부 문제없는 것이네! 하지만 사건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마도 우리 중 누구도 앞으로의 국면을 좌우할 방법이 없네. 만약에 계량과학원의 전 성능시험과 감정에 순리적으로 통과된다면 당연히 다들 기뻐할 일이지. 잘 나면 백 가지 추악한 게 가려지는 법이라고 만일에 하나라도 잘못이 있어 국가계량총국이 앞으로 국가계기총국에 계량의 감독과 자문을 제기할 것 같으면 문제는 심각하게 되는 거지! 모두 운명에 맡길 수밖에!”
몇 명의 책임자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설마 만회할 여지가 조금도 없소? 예를 들어 베이징에서 샘플을 되가져온다던가......” 원 국장이 떠보듯이 묻는다.
친 국장의 퉁퉁한 얼굴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쓴웃음이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너무 늦었네! 방금 총국의 전화 통지를 받았는데, 3급 천칭 샘플은 이미 전체 성능실험실로 올라갔다네!”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이 부서지자 원 국장 등 모두 침묵하고 말았다.
겨울날의 잔광이 도시를 엷은 금색으로 도포 한다.
무리를 이룬 초등학생들이 “실험초등학교”의 교문을 쏟아져 나오고 학부모들도 따라 나와 각자 흩어진다.
오늘은 쟈쟈와 천천을 마중 나온 사람이 없어 어린 오누이 둘이 손을 잡고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가는 길에 마음 속의 말을 털어놓는다.
“쟈쟈 오빠, 우리 엄마가 또 미국으로 돌아가셨어......”
“우리 엄마도 떠나셨어.” 쟈쟈는 약간 슬픔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 오빠 엄마도 미국에 간 거야?”
“몰라. 엄마가 아빠한테 쪽지를 남겼는데, 나가서 기분 전환 좀 하다가 몇 일 지나서 돌아 오신댔어......” 쟈쟈는 침통하게 말했다.
“그럼 오빠도 아빠랑 잘 수밖에 없겠네?”
쟈쟈는 머리를 젓는다. “난 아빠랑 헤어질 거야. 난 고모 집에 가서 먹고 자고 할거야.”
“잘 됐다! 우리 저녁에 같이 자! 이야기도 하고! ......” 천천은 흥분한 듯 손뼉을 치며 웃기 시작하였다.
“누가 너희들 같은 여자 애랑 자니! 또 너랑 결혼 안 했어!”
쟈쟈는 갑자기 기분이 상한 듯 걸음을 빨리 하며 앞으로 나간다. 천천은 급히 오빠를 부르며 바짝 쫓아간다......
한밤에도 문련(文聯)숙소건물의 불빛이 밝다.
닛산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건물 아래 공터에 멈춘다.
어떤 사람이 가볍게 문을 두드린다. 류스가 다가가 문을 여니 헤이너 외투를 걸친 시장 왕뢰이와 두 명의 수행원이 문 밖에 서 있었다.
“당신......왕 시장님?!” 류스는 상당히 의외라고 느꼈다.
“류스 동지, 안녕하시오! 좀 들어가도 되겠소?”
“어서, 어서 들어오시죠!” 몸을 비키며 말했다.
왕뢰이는 비서와 경호원에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한다. “자네들은 밖에서 기다려 주게!”
두 수행원은 류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왕뢰이가 집안으로 들어서며 친근하게 말한다. “벌써 우리들의 대 작가를 방문했어야 했는데 줄곧 기회가 없었어요. 내 이 시장이란 게 고관인 모양이야! ......어째, 부인과 아이는 집에 없소?”
“아, 예, 다들 누님 댁에 갔습니다......왕 시장님, 앉으시죠!” 류스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친절하게 대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응접실 소파에 자리하며 서로 담배를 권한다.
왕뢰이는 자신의 강화유리 찻잔을 받쳐들고 담배 연기를 뿜으며 방안의 가재도구를 훑어 보다 말한다. “아야, 방이 좀 작지요? 방 두 칸에 거실 하나? 안 어울리네, 안 어울려......”
“세 식구라 지낼 만 합니다!” 류스는 신중하게 대답하였다. 그의 마음 속은 민감한 느낌과 경계심으로 가득 찼지만 비굴하지도 거만하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며 얼굴에는 미소까지 띠었다.
텔레비전에는 연속극《별(新星)》이 방영되고 있는데, 리샹난(李向南)이 군중들에게 격앙된 어조로 말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묵묵히 화면을 잠시 보며 말이 없다. 방안의 공기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왕뢰이는 갑자기 웃었다. 그리고는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친구 배경이 대단하고 조건도 우월해서 전형적인 의미는 부족해. 칭송하고 본 받을 가치는 없단 말이야! 책임 간부 가운데 어디에 이렇게 많은 고급 간부 자식이 있겠나? 만약에 저 친구가 평민 출신의 현장(縣長)이라면 달리 거론할 것도 없지. 응?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이 인물을 좋아하오?”
“하이뢰이(海瑞)식의 청렴한 관리일 뿐이지요! 작가든 그를 감상하는 관중이든 머릿속에는 뿌리깊은 봉건사상의 잔재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중국식의 비극이지요!” 류스는 담담하게 웃는다.
왕뢰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그 말에 일리가 있소. 인류의 정신적 엔지니어라는 것에 부끄럽지 않지요.”
류스의 오만한 천성이 또 억누를 수 없이 나타난다. “왕 시장님께서 늦은 밤에 갑자기 누옥을 방문하셨는지요. 저와 문예창작의 문제를 토론하실 목적으로만 오신 건 아니시겠지요? 왕 시장님의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왕뢰이는 웃는 듯도 하고 그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를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몇 모금 빨고 나서 갑자기 웃으며 묻는다. “올해 서른 몇 살이죠?”
“서른 여섯입니다.” 류스가 대답하였다.
“젊음은 할 수 있고 전도는 무한하지!......” 왕뢰이는 가벼운 소리로 찬탄하더니 말머리를 돌리며 엄숙한 얼굴을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당신의 작품이 시는 물론 성에까지 명성이 높고 전국적으로도 영향력이 있다고 하더군요. 시문련부주석의 직무를 맡은 이래로 지도업무방면의 평판도 좋고 전시의 문예계에도 높은 평가가 있더군요. 중앙의 유관 정신에 근거해서 우리는 이미 당신을 문화홍보 부문 청년간부 ‘제3제대’의 선발 명단에 편입시켰소. 대 작가께서 약간의 자기 희생으로 유관 문화방면의 지도업무를 맡는 데 나서주실 수 있는지 모르겠소! 예를 들어 이번 회기에 정부 소속의 시문화국 국장 같은 것 말이오! 내 이미 당신에게 통째로 다 내놓았으니 고려해 봐 주시오.”
왕뢰이는 말을 마치자 홀가분하게 소파 쪽으로 기대며 날카롭게 작은 실눈을 하고 입으로는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왜 무슨 곤란한 점이라도 있소?” 시장은 친절하게 묻는다.
류스는 갑자기 웃더니 얼굴에 담담하면서도 홀가분한 표정을 떠올리며 가부를 단언하지 않는 태도로 말한다. “저야 어떤 곤란한 것도 없습니다만 제가 천성적으로 관리가 될 재목이 아니라서 이런 중임을 맡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도 이 때문에 저의 창작작업을 희생시키기를 원치 않습니다......”
“당신이 계속 글은 쓸 수 있소!” 시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듯이 그를 격려하며 “많은 문화적 명인들이 책임자의 직무를 맡은 후에도 여전히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대작을 쓰지 않소? 당신의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왕멍(王蒙) 동지도 중앙위원과 문화부장을 맡았소! 하하......”
류스는 순간 웃음 짓던 표정을 거두며 “제게 신중하게 고려해볼 시간을 좀 주시죠.”
“그럽시다!” 왕뢰이도 억지로 더 권하지 않고 경쾌하게 대답하였다.
두 사람은 또 침묵하며 눈으로는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한다.
왕뢰이는 정신이 팔린 듯이 계속 웃는 소리를 내었다.
“시장님 아직 무슨 지시가 있으십니까?” 류스는 손님이 떠나기를 채근하기 시작하였다.
왕뢰이는 시계를 보더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외투를 걸치며 작별인사를 한다. “당신들 형제 몇 분은 훌륭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재능을 좋아하오. 만약 개의치 않는다면 당신이 나의 집에 오시는 걸 환영하리다. 나는 문화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당신 같은 영특한 젊은이들을 말이오! 왕창도 당신과 잘 알지요. 그렇지 않소? 하하......그럼 이만!”
그는 갑자기 자신의 딸을 편할 대로 거론했지만 화살처럼 날카로운 눈빛은 류스의 얼굴에 꽂혔다.
류스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바로 솔직하고도 위엄 있게 상대를 제압할 듯이 반격하였다. “그렇습니다. 전 시장님의 따님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요? 좋아요! 그럼 잘 계시오!” 왕뢰이의 눈빛이 반짝하더니 류스와 힘있게 악수하고는 한 걸음에 문을 나서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류스는 가볍게 방문을 닫고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마 위에 식은땀이 흥건하였다. 그는 갑자기 빠르게 베란다로 걸어가 방호 유리를 통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잠시 후 왕뢰이가 바삐 복도를 빠져나와 차에 오르자 큰 공터를 떠나는 것만 보였다.
류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빠진다.
불빛이 휘황한 거대한 여객선이 천천히 불빛이 부서지는 강의 수면을 헤쳐가고 있는데 흡사 물위에 떠있는 불야성 같다.
허웨이와 왕창은 꼭대기 층 갑판 난간에 기대어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관계는 이미 상당히 가까워졌고 마음도 무척 편안해졌다.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데 하모니카 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웠다.
“전 벌써 류스와 깨끗이 헤어지기로 결정했어요. 이것은 고통스런 선택이긴 하지만 제가 장기간 생각했던 결과예요. 그 사람은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저의 부친께서 10년 전에 이 결론을 내렸어요. 전 후회하진 않아요. 제가 청춘과 사랑을 이 남자에게 바친 것은 제 스스로의 선택이었어요. 그는 강렬하게 절 매료시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 당신이 그 사람과 결합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이건 질투가 아니라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하는 진정한 권고라고 생각해요. 미커는 진정한 사내니까 함부로 그를 버리지 말아요. 당신들 사이에야 진정으로 지속될 수 있는 애정생활이 가능할거예요. 그건 당신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지요......”
허웨이의 말은 왕창을 깊이 감동시켰다. 그녀는 허웨이의 손을 꼭 잡았다. “전 영원히 미커를 기다릴 거예요 영원히......”
두 여자는 묵묵히 앞쪽의 어두컴컴하게 움직이는 산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하모니카 소리와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도 가라앉는다고 느낀다.
여행 중의 젊고 아름다운 두 싱글의 직업여성은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식인 모양을 한 의젓한 중년남자가 남몰래 한참을 관찰한 후에 조용히 다가온다.
“두 아가씨, 당신들 얘기에 좀 끼어도 되겠소?” 의젓한 남자는 교양 있게 묻는다.
허웨이는 이 사람을 보고도 아무 소리가 없다. 왕창은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태도로 바꾸며 그 남자에게로 다가가 말한다.
“우리는 아가씨가 아니고 아줌마예요!”
그녀는 그 남자가 당황하고 난감해하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웨이를 당겨 선창 안으로 돌아갔다. 그 외로워 보이는 남자는 다정다감한 류스와 같은 모습으로 그녀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다......
보잉 여객기가 먹구름이 가득 낀 바이윈(白雲) 공항에 내린다.
류웨이와 두 명의 수행원이 손수레로 짐과 몇 개의 큰 나무상자를 밀고서 승객들을 따라 출구를 나서자 친 국장과 몇 명의 직원들이 인파 속에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수행원과 직원들은 짐과 나무상자를 길가에 대기하고 있는 마이크로버스로 옮기고 있다. 류웨이는 국장을 따라 산타나 승용차에 올랐다. 두 대의 자동차는 비행장을 일렬로 달렸다.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은 우르릉하는 천둥소리가 다가오고 바람은 땅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불어대고 산청에는 냉랭한 기운이 뒤덮는다. 곧 비가 오려고 한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류웨이와 친 국장은 걱정스런 마음이 가득했다.
“국장님, 계량과학원의 감정 보고서를 보실 겁니까?” 류웨이는 조용하게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친 국장은 무겁게 소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자네 형은 철저하게 패했어! ......”
류웨이의 낯빛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였고,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양국의 공동문건이 언제쯤 내려오는가?” 친 국장이 가볍게 묻는다.
류웨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어렵게 침을 삼키고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곧 내려 올 겁니다. 대단히 엄격하게 처리할 겁니다......”
친 국장도 깊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건 우리 모두 원치 않았던 결말일세. 신화과학계기공장은 손실이 너무 커......”
류웨이는 눈을 붉히며 물었다. “어떡하죠?”
친 국장은 비통한 듯이 곧바로 고개를 젓는다. “다른 방법이 없어. 자네가 가서 자네 형과 만나 얘기해서 형 더러 자진해서 사직하라고 하게!”
류웨이는 얼굴을 쳐든 채 의자에 기대어 멍한 듯이 묻는다. “형에게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줄 수는 없습니까? 일격에 끝장을 내야만 하는 겁니까? ......”
“그건 시의 책임자와 류얼의 태도에 달렸겠지. 우리는 자네 형의 직무를 유지시키는 의견을 시의 책임자와 총국에 낼 수는 있겠지만 이미 초래된 악영향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없어 시장이라고 해도 그렇게 큰 부담을 질 수는 없을 걸세......” 친 국장의 심정도 류웨이 만큼이나 무거웠다.
류웨이는 눈을 감았지만 형의 비참한 최후 때문에 괴로웠다.
천둥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머리 위를 지나간다. 비가 마침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남쪽 기슭의 큰길에 폭우가 쏟아지자 거리에 행인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신화과학계기공장의 두 쪽의 부채꼴 철문은 굳게 닫혀져 있고 문 위에 커다란 목패가 걸려 있는데 그 위에 붉은 글자가 몇 자 적혀 있었다. “본 공장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자의 출입을 엄금함!”
류웨이는 공장 맞은편 북적이는 찻집에 서서 그 목패와 철대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탄식한다. 그는 공중전화를 찾아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돌린 후 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여보세요! 신화과학계기공장입니까? 여기는 시 병원인데요 류 공장장님의 따님이 병이 났습니다. 어서 병원으로 오라고 해주세요!”
상대방이 자세히 묻지 않도록 류웨이는 사납게 전화를 끊었다.
처음 하는 거짓말은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리게 했지만 그는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쏜살같이 처마 밑으로 가서 죽은 듯이 공장 정문을 주시하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의 장막 속에서 신화과학계기공장의 그 두 쪽의 굳게 닫힌 부채꼴 철문이 무겁고도 천천히 열리더니 한 대의 다 낡은 텐진 메이커의 마이크로버스가 비를 맞으며 공장 내의 큰 도로에서 나오고 있다.
류웨이는 갑자기 큰 걸음으로 찻집 쪽에서 나와 길 중간에 서서 손을 흔들어 차의 갈 길을 막자 차는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운전기사가 어떻게 된 건지 따지기도 전에 그는 이미 차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큰형 류얼의 옆에 앉았다.
류얼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냉랭하게 동생을 한 번 훑어보고 나서 성난 목소리로 꾸짖는다. “누가 너보고 타라고 하든? 내려! 할 말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하란 말이야!”
류웨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십여 쪽이나 되는 계량과학원의 전체 성능시험 감정보고서를 꺼내어 형에게 건넨다.
류얼은 힐끗 휘둘러보는 순간에 눈을 찌르는 “불합격!”이라는 큰 글자를 분명하게 보았다. 온몸이 잠깐 전율하는가 싶더니 흡사 뱀에 물린 듯이 감정서를 던져주고는 눈을 붉힌 채 큰 소리로 기사에게 “가자!”라고 명령하였다.
낡은 마이크로버스는 질척거리는 도로에서 요동치며 흔들거리자 고약한 휘발유 냄새가 답답한 차안으로 퍼진다. 두 형제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거친 숨을 내뿜으며 사납게 담배를 피워댄다. 단조로운 엔진소리는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 같았다.
차가 강변의 연락선 부두에 이르자 각종의 차량들이 이미 길게 줄을 짓고 있었다. 연락선은 아직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강에서 곱사등이가 크고 작은 자동차를 몰아가듯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붉게 충혈 된 류얼의 두 눈은 정신나간 듯이 차창 밖으로 어지럽게 날리는 가랑비를 바라보는데 고집스럽고 초췌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다. 그의 마음에 피가 흐르고 눈물이 흐른다......
아! 정말 견디기 힘든 인생이다! ......그는 《혁명의 불씨(播火記)》 중 녹림의 호한 리수앙쓰(李霜泗)가 내심에서 나오는 인생의 탄식이 생각나서 온몸의 뜨거운 피가 갑자기 솟구쳤다. 친형제조차도 길을 막는데 목숨을 걸고,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서 친형의 실패를 이용해 출세하려고 하다니......이 세상에 무슨 미련 둘 것이 더 있을까! 그는 야훤의 창백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떠올렸고, 그녀가 자신을 위해 했던 갖가지 노력과 희생이 떠올렸고, 스스로 심혈을 기울여 필사적이었던 나날들을 떠올렸고, 천진난만한 어린 딸 천천을 떠올렸다......그의 마음은 들끓는 가슴속에서 분출되어 나올 것처럼 갑자기 너무 견디기 괴로워졌다! ......그만 두자! 뭘 다툰단 말인가?! “인생은 꿈같고 눈 깜짝할 새가 백년인 것을”. 지치고 괴롭고 원망스럽고 견디기 어렵다 한들 누가 있어 안부라도 물어주랴?! 너무 어렵다! 야망을 품은 남자 되기가 너무 어렵다! 무엇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는 것일까?! ......
“형님, 제가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내려서 말씀 나누시죠?”
류얼은 침통한 반성 속에 천천히 고개를 들다가 동생의 지혜롭고 선량한 큰 두 눈과 마주쳤다. 서로 닮은 젊고 초췌한 두 얼굴에 똑 같은 시름, 똑 같은 복잡함, 똑 같은 고통, 똑 같은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마침내 류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쉰 듯한 목소리로 한 자 한 자 띄엄띄엄 말한다.
“웨이웨이, 네가 형을, 무너뜨렸어! ......”
류웨이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솟구친다. 극렬하게 떨고있는 형의 두 손을 꽉 잡고 다급하게 말한다.
“아닙니다. 형님! 모든 것이 아직 늦지 않았어요! 우리가 바로 공장으로 돌아가면 제가 옛날과 똑 같이 모든 힘을 쏟아 돕는다면 형님께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절 믿어주세요! 큰형님! 우린 친형젭니다!...”
바로 이 마지막 한마디가 류얼의 오만한 자존심을 상하게 한 모양이다. 참패에 가까운 고통과 패배를 인정하기 힘든 고집은 결국 침묵 속의 화산을 폭발시켰다!
“꺼져!”, 류얼은 궁지에 몰린 사자가 경천동지할 포효를 하듯이 사납게 차 문을 열고 류웨이의 소매를 움켜잡고 매섭게 차 문 밖으로 던져버린다. “운전해!”
마이크로버스는 울부짖듯 바지선에 올랐다.
류웨이는 진창 속에 넘어져 온몸이 다 젖어 토인이 되어버렸다. 그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눈물을 쏟으며 진창 속에서 일어나 형의 차를 좇으며 가슴아프게 외친다.
“큰형님! 무너져선 안돼요! ......”
무리를 지은 차들이 진흙을 튀기며 그의 곁을 지나간다.
바지선은 높고 슬픈 기적을 울렸다. 기적 소리는 겹겹의 차가운 안개를 뚫고서 강의 수면 위에 처량하게 메아리친다.
비가 쏟아 붓듯이 류웨이의 창백한 얼굴을 씻어 내리고 있다......
국가계량총국과 국가계기총국의 공동문건이 마침내 산청에 내려왔다. 시위원회 제1서기 사원신(沙文心)이 시위원회공업교통운수업부(市委工交部), 체제개혁위원회(體改委), 계획경제위원회(計經委), 표준계량국(標準計量局), 전자계기국(電子儀表局) 및 유관부문 책임자가 참가하는 시위원회시정부연합사무회의(市委市政府聯合辦公會議)를 직접 주재하여 신화과학계기공장이 국가계량 행정부문의 감독과 검사를 접수하지 않은 데다 불합격의 3급 천칭 제품의 재고를 발생시켜 수천만 원의 생산비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심각한 문제를 처리한다. 류얼은 신화과학계기공장의 공장장대리의 직무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회의에서 시계량국의 부국장 류웨이를 중심으로 하는 연합 업무팀을 공장에 파견하여 품질 개선 작업을 주관하도록 결정하였다......
이 시각 시위원회의 부서기 겸 시장 왕뢰이는 시위원회와 시정부의 연합사찰단을 이끌고 천천히 선전(深圳)경제특구의 드넓은 도로를 천천히 걷고 있다. 그들은 서커우(蛇口)공업구를 참관하고 ‘해상세계’를 유람한 다음 샹미(香蜜)호의 바캉스촌과 샤오하이사(小海沙)의 해수욕장으로 가서 안목을 넓히고,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빌딩에 올라 장관의 시내 전경을 내려다본다......모두들 통쾌하게 즐기며 ‘생각을 바꿉시다’라는 구호를 분분히 떠들어대고, 돌아가서 더욱 분발해서 대사업을 착실하게 진행하자는 뜻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전특구에도 많은 결점이 있음을 비판했는데, 가장 큰 결점이 바로 ‘정치 색채가 흐리다’는 것이었다. 이 점이 그들에게 상심과 유감을 느끼게 하였다. 왕뢰이는 사람들의 감정을 잘 아는 지도자여서 내일은 모두에게 신비스런 “사토우쟈오(沙頭角)”에 가서 안목을 넓히게 하고 간 김에 값싼 물건들도 쇼핑하게 할 계산을 하였다. “좋든 나쁘든 다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약간의 학비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렇지요?” 그는 사찰단의 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극적인 리듬의 디스코 음악이 귓전을 때리자 많은 청춘남녀가 어두운 불빛 아래 미친 듯이 흔들어 댄다.
이런 곳은 현재 대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문예 사롱이다.
류스는 어두운 낯빛으로 사람을 이목이 없는 홀의 구석진 곳에 앉아 홀로 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간혹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는다.
예술가의 풍치가 넘치는 주인 남자가 다가온다. “류스씨, 다들 문예계의 젊은이들이니 춤이라도 좀 추t;지요!”
류스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담배를 가리킨다.
“여기 오늘 신문 있습니다. 방금 온 겁니다.” 주인은 차 탁자를 가리키며 억지로 권하지는 않고 몸을 돌려 다른 사람을 응대하러 갔다.
류스는 손가는 대로 접혀있는 신문을 건성으로 뒤적거렸다.
다른 한 쪽에서는 주인이 몇 몇 손님들과 큰 소리로 얘기하며 웃고 있다.
류스는 타이틀만 보며 한 장 한 장 넘겼다.
갑자기 그의 눈빛이 고정되었다 ---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픈 한 줄의 고딕체 글자가 눈에 띄었다.
“유명 여류작가 샤린 씨쟝 취재 중 조난으로 장렬히 희생되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지 의심되어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그 한 줄의 무정한 고딕체 활자는 여전하였다!
그의 손은 물론 그의 몸과 마음 모두 격렬하게 떨려왔다.
광란의 디스코 음악이 천둥처럼 귀에 익어 강렬하게 그의 신경 하나하나를 뒤흔들었다.
변신하는 웃는 얼굴 얼굴들, 바닥을 구르는 구두 구두들.
류스의 두 눈이 초점을 잃은 듯 하더니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몇 명의 청년작가들이 함께 앉아 찬 맥주를 마시며 큰소리로 담론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얗고 뚱뚱한 청년작가 하나가 고소하다는 듯이 샤린을 평론하고 있었다.
“......그녀가 북쪽의 황량한 그 곳에서 지저분한 일을 한 줄 누가 알겠어! 계속해서 단장하고 잠을 자고, 애를 한두 번 긁어냈다고 하더라고......작품이 별론 데도 잘 나가는 작가로 대접받았으니 베이징에서 함부로 머리를 내밀지 못하고 씨쟝으로 가서 왕 노릇 한 거지! 제기랄 가기는 어디로 간단 말이야? 이번에 정말 잘 됐어, 보잘 것 없는 목숨도 갔으니 말이야! 고소한 거지! ......”
류스의 눈에 피가 솟구칠 것처럼 휘청거리며 사람들 속으로 걸어갔다.
뚱뚱한 청년작가는 여전히 주절주절 허풍을 떨어댔지만 류스에게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그는 휘청거리며 그 사람 앞으로 다가가 사납게 주먹을 휘둘러 깜짝 놀라는 빵빵한 얼굴에 꽂았다.
뚱뚱한 그 작가는 뒤로 나자빠졌고 주위에서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류스가 미친 듯이 달려들자 사람들이 꼼짝 못하도록 붙잡았다. 그는 발악하며 소리를 질러 대었다. 정신이 이미 나가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자 홀은 어지러이 한 무리가 되었지만 음악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깊고 부드러운 정감이 묻어나는 《모스크바 교외의 저녁》이라는 노래 소리가 흐르자 어느새 우렁찬 합창으로 변하였다......
겨울날은 햇살로 가득 차 따뜻하다.
류스는 가죽콕의 짧은 외투를 걸치고 두 손은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겨울의 냉기 서린 도로를 홀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그는 걸으며 미소를 짓는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이 앞을 바라본다. 기타를 든 한 가수가 가슴 아린 노래를 부른다.
친구여, 내 말 들어주오,
내 말 좀 들어주오---당신을 사랑하오.
지구 위에 둘만 있게 해주오.
아, 친구여, 친구!
그대는 어디에 있나요?
내 마음 속에 당신이 없을 수 없다오!
아, 친구여, 친구!
그대는 어디에 있나요?
내 마음 속에 당신이 없을 수 없다오! ......
류스는 무슨 기적이라도 발견한 양 눈빛이 빛났다.
샤린이 검붉은 짧은 외투를 입고서 미소지으며 다가오고 있다.
그녀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당당하게 좌우를 둘러보며 입가에는 달콤한 미소를 머금고 겨울의 햇살 아래 걸어온다.
류스는 걸음을 재촉하여 그 부드러운 뒷모습을 좇는다.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그를 향해 정다운 미소를 던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그를 향해 미소짓는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미소짓는다.
그녀가 미소짓는다.
하늘에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아련하면서도 기묘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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