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가족계획”이라는 나무 팻말이 걸려있는 진료실 문밖 복도상의 긴 의자에는 진찰을 기다리는 부녀자와 함께 온 남자들로 꽉 차있었다.
복도 끝 유리창 앞에 큰 마스크를 쓴 날씬하고 매력적인 한 아가씨가 슬며시 서 있다.
자태가 풍만한 한 소녀가 진료실에서 나오자 그녀의 남편이 재빨리 은근하게 달여가 맞이하며 부부 두 사람은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떠났다.
의사는 방안에서 소리쳤다: “다음 분. 8번 손님.”
큰 마스크를 쓴 아가씨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의 무리를 지나 진료실로 들아 가서는 몸을 돌려 신중하게 방문을 닫았다.
의사 허웨이가 고개를 들면서 막 자리에 앉은 아가씨와 얼굴을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인 것을 느꼈다.
큰 마스크를 쓴 아가씨도 마침 초롱초롱 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눈빛이 순간 반짝거리며 의사의 시선을 외면하였다.
허웨이는 정상대로 일을 처리하며 진료를 시작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가씨는 입을 열기도 전에 얼굴이 빨게 지며, 머뭇거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저……벌써 정상 시간보다 보름여가 지났는데 생리를 하지 않아서요……”
결혼하지 않고 임신하였다. 의사는 이미 자주 보는 일이라 놀라지 않았다.
“마지막 생리는 언제 했던가요?” 허웨이가 관심 있게 물었다.
“대략……대략 지난달 5일……”
“결혼은 했어요?”
아가씨는 급히 머리를 흔들다, 또 고개를 끄덕였다.
허웨이가 일어섰다: “자, 제가 먼저 검사 한번 해볼게요.”
아가씨는 잠깐 멈칫하고서 일어서서 의사와 안방으로 들어갔다.
허웨이는 한편으로 아가씨를 진찰대에 누우라고 하고 한편으로 손을 씻어 소독하고 박막장갑을 끼고 내시경으로 환자의 아랫도리를 검사했다.
아가씨는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던지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허웨이는 검사하며 물었다: “피임한 적 있습니까?”
아가씨는 입술을 꽉 깨물고 머리를 흔들었고, 눈가는 약간 붉어졌다.
허웨이는 아가씨를 동정하며 한번 쳐다보았고, 계속 작은 소리로 물었다: “임신반응이 있었나요? 구역질 구토, 어지러움 같은 거요……”
아가씨는 눈을 가리고 참지 못하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허웨이는 한숨을 쉬고, 박막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솔직하게 아가씨에게 알려주었다: “당신에게 알려야 겠군요, 임신입니다. 첫 번째 임신입니까?”
아가씨는 울며 고개를 끄덕였고, 마스크는 흠뻑 젖어 있었다.
허웨이는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고 부드럽게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원치 않으시면, 제가 수술해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는 임신 중절 수술을 했어요, 어떤 고통도 없구요……”
그녀들은 다시 진료실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허웨이는 처방전을 들고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이름이 뭐죠?”
“리……리리.” 아가씨는 분명히 가명을 말했다.
허웨이는 돌연히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방송국의 아나운서 왕창씨 아닙니까? TV에서 자주 본 것 같아요……”
아가씨는 온몸을 부르르 떨고 이어서 고개를 들었고 눈빛은 편안하게 의사를 주시하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 비밀로 해주세요.”
그녀는 흡사 두려움을 이긴 듯 하여 천천히 마스크를 벗고 창백하면서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으며, 얼굴은 밝고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허웨이도 마스크를 벗고 친절하게 왕창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음 놓으세요. 어떤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지 않을 테니까요, 저의 남편을 포함해서요. 그는 당신을 알아요, 당신의 취재를 받은 적이 있어요……”
왕창은 순간 몸을 한번 흠칫 떨고서는 엉겁결에 물었다: “그는……”
허웨이는 웃으며 그에게 얼려주었다: “류스라고 해요, 작가죠.”
“맙소사!” 왕창은 순간 번개가 머리를 내리치고, 오장이 타들어가는 듯함을 느꼈고, 벌떡 일어서자 순간 강렬한 현기증을 느꼈다.
허웨이는 급히 그녀를 안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왕창! 왕창!”
왕창의 안색이 종이처럼 창백해졌고, 온몸은 오한이 난 듯 끊임없이 벌벌 떨며, 천천히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뜨고, 허웨이의 친절한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으며, 통절하게 소리쳤다: “언니!” 허웨이 품에 급히 안겨 실성하며 울었다.
허웨이는 온몸을 떨고 있는 아가씨를 경악하며 안고는, 눈에는 갑자기 맑은 빛이 한 가닥 스쳐지나갔고, 사람들에게 사나운 공격을 받은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으며, 안색이 잠깐사이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오후의 양광이 한적하고 시원하고 상쾌한 골목길에 큰 그늘을 드리웠고,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고급주택지구는 아주 조용하게 보였다.
꾸야펀은 신선한 과일 한 자루와 암탉 두 마리를 들고 그늘지고 시원한 담 밑을 따라 왕루이의 집으로 왔다. 그녀는 철책문 앞 초소의 무장 경비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원의 작은 건물로 걸어갔다.
무장 경비가 초인종을 눌렀다.
보모 류씨 아줌마가 문에서 나와 맞이하며 열정적으로 물었다: “작은 이모님 오셨어요?”
꾸야펀은 닭 두 마리를 류씨 아줌마에게 건네주고 부탁하며 말했다: “아주머니, 닭을 잘 씻어주세요, 창창에게 약한 불로 닭죽 좀 쏘주세요……”
류씨 아줌마는 암탉을 받아 한번 보고는 혀를 차며 칭찬하며 말했다: “그래도 작은 이모님이 제일 낫다니까요! 그럼 그렇지 창창이 아픈 뒤로 아씨만 생각한다니까요……”
“건강한데, 몸이 안 좋아요?” 꾸야펀이 물었다.
류씨 아줌마가 소리를 낮춰 말했다: “누가 알겠어요! 며칠 됐지요, 밥도 드실려고 하지 않고, 말씀도 하지 않으시려 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어요, 얼굴이 콩나물처럼 야위었다니까요! 그녀의 아빠가 의사를 부르는 것도 못하게 하니……”
두 사람은 낮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며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창창! 창창!” 꾸야펀이 살짝 부르면서 위층의 생질녀 침실로 들어갔다.
왕창이 외롭고 쓸쓸하게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것이 보였고, 작은 이모를 보자 눈물이 왈카닥 흘러내렸다.
“창창, 어떻게 된 거야?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은 거야! ……” 꾸야펀은 마음이 아픈 듯 앞으로 나아가 왕창을 껴안고, 눈도 촉촉해졌다.
“작은 이모, 너무 괴로워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왕창은 딸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흐느껴 울며 작은 이모에게 말하면서도 허약한 몸은 겨를 까부르듯 벌벌 떨고 있었다.
꾸야펀은 외생질녀를 꼭 껴안고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바보 같이! 그런 말 하지 마! 뭐가 안 풀리는 게 있어? 하늘이 무너져도 작은 이모가 지키고 있잖아, 누가 널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봐봐, 너 왜 온몸이 이렇게 차가워?! 자, 작은 이모가 따뜻하게 해줄게……”
두 사람은 꼭 안고 한참동안 말없이 있다가 점차 안정을 찾았다.
꾸야펀은 살짝 왕창의 얼굴을 들어 보고 가볍게 뺨을 스다듬어 주는 동작을 하였다. 왕창은 난처한 듯 눈물을 머금고 웃어보였다.
“됐어, 작은 이모에게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응?” 꾸야펀은 왕창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녀의 엉클어진 머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왕창은 눈꺼풀을 늘어뜨리고 눈물이 또 봇물 터지듯 솟아져 나왔다.
“아이야, 이 아가씨야! 눈물이 어째 수돗물보다 더 빨리 나오네! 도대체 무슨 일이야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작은 이모가 해결해줄게! 작은 이모 못 믿어?”
왕창의 초췌한 얼굴에 엷은 붉은 구름이 일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작은 이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할게요, 놀리지 마요……”
꾸야펀은 의아하게 여기고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창은 배게 아래에서 병원의 수술 통지문 한 장을 집어내어 말없이 꾸야펀에게 건네주었다. 꾸야펀은 묵묵히 몇 번을 보고는 묵묵히 왕창에게 돌려주고는 손으로 가볍게 눈물 흔적으로 가득 찬 얼굴을 젖히고는 고정된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하며 나지막이 물었다:
“말해봐, 그가 누구야?”
왕창은 눈물을 흘리며 작은 이모의 눈빛을 회피하며 고통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꾸야펀은 또 그녀의 얼굴을 젖히고 다정하게 물었다:
“미커야? 너희 둘 관계 도대체 어떤 거야?”
왕창은 머리를 아주 심하게 흔들었고, 눈물이 왈카닥 밖으로 흘러내렸고, 참지 못하고 작은 이모의 품에 묻혀 못 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꾸야펀은 통곡하는 사람처럼 울고 있는 외생질녀를 꼭 껴안고서는 일종의 불길한 예감이 마음에서 솟구쳐 올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알았어, 최근에 나도 풍문으로 소문 들었어……설마 정말 그 일 줄은? 류스?”
왕창은 갑자기 창백한 얼굴을 들고 작은 이모를 바라보며 너무 슬퍼 죽고 싶은 듯 울며 소리치며 말했다: “작은 이모! 어떻게 해야 되요?”
꾸야펀은 놀라 어리둥절했다!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날 정오, 미커는 파출소의 한 임시 구치소에 이불로 얼굴을 뒤집어쓰고 거짓으로 자는 척하고 있었고, 창밖 나무위의 매미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나게 큰 소리로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멀리서 가까워지는 발걸음소리를 따라 파출소 소장이 공손한 태도로 눈 같이 휜 깃이 달린 짧은 소매 운동셔츠와 사과표 청바지를 입고 은백색의 단발을 하며 단호하면서도 쾌활한 눈의 여위고 키가 크며 쭈굴한 한 노인을 안내하며 왔다.
사람들이 미커를 한번 건드리자 미커는 침상에서 몸을 돌려 거만하게 비뚤하게 있고는 꿈적도 하지 않고 노인을 쌀쌀하게 힐끗 째려보았다.
“류커! 일어나! 이 분은―”
소장의 말은 노인의 손짓에 의해 제지되었다. 노인이 머리를 흔들자, 소장과 수행원 두 사람이 바로 물러났고, 동시에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방안에는 미커와 그 신비의 노인만 남았다. 노인은 작고 네모난 의자에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앉고는 천천히 “홍탑산(紅塔山)”을 꺼냈다.
“피우겠나?” 노인은 담배를 들어 의사를 나타내며 물었다.
미커는 무관심하게 천천히 일어서서 침상 머리에 담배 갑에서 “말보로” 한 대를 집어내어 멋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담배를 피웠고, 담배연기로 하여금 먼저 무거운 공기를 완화시키도록 하였다. 노인은 미커의 침상 머리의 궤짝에 각종 담배․과일과 식품 음료수 심지어는 꽃 한 다발이 있음에 주의했다.
“보아하니, 자네 인복이 많은 것 같군! 요 근래, 시 도처에 보통 택시기사의 이름을 노래하고 있더군, 많은 젊은이들이 자네를 영웅으로 추종하더군! 들어봤겠지? 얻어맞은 그 ‘외국손님’ 산성체육대학 유학생이야, 자기나라에서는 세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지체 높은 관료자제’들이지, 중국에 공부하라고 보냈는데 못된 습관 고치기 어려웠던 모양이야. 우매하고 무지하지, 생활은 매우 무료하지, 어디 그 짐승 같은 욕구를 발설할 곳이 없어 여러 차례 학교에서 여학생을 쫓아다니고 조롱하였지, 또 매춘행위도 했어, 일찍 감치 학교에서 퇴학조치를 취했지. 그날 저녁 중국을 떠나기 전 외국인 신분을 믿고 행패를 부리다가 고소하게도 너를 만나 중국인의 무서움을 맛 봤지. 이 놈 병원에서 보름 누워 있다가 벌써 기가 죽은 채로 아프리카로 내 뺐다더군……”
미커는 아랑곳하지 않고 들으며 차가운 얼굴로 자신의 담배를 피웠는데, 마치 노인이 말한 일이 그와 조금도 상관이 없는 듯 하였다.
노인은 자신의 이마를 한번 치고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미안! 내 소개 하지: 나는 자네 형의 친구야, 당연히 너의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자네가 여기 있다고 해서, 오늘 특별히 자넬 보러 온 거네. 어때? 이곳 식사는 괜찮은가? 땅은 습하지 않고? 아픈 데는 없는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소장에게 집에 알려달라고 그러게. 자네를 걱정하는 사람 아주 많지! ……”
노인은 부드럽고 정답게 말하면서 미커의 냉랭한 태도에 개의치 않은 듯 큰 가죽 가방 안에서 식품 한 뭉치를 꺼냈다: 과일 통조림, 고급 간식, 값비싼 차, 내지에서 보기 드문 바나나와 미커가 가장 피우길 좋아하는 “말보로” 담배 등을 한 더미 한 더미 미커 침대 앞의 작은 탁자위에 놓아두었다.
미커는 쌀쌀하게 노인의 행동거지를 보며 갑자기 펜을 잡더니 백지에 대충 날겨 몇 줄의 글자를 썼다:
“당신 성함은? 신분은? 목적은? 당신의 물건을 가져가세요!”
노인은 종이를 보고 하하 하고 한번 웃고는 방안을 시원스럽게 몇 바퀴 돌고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나는 그저 진심으로 자네와 친구가 되려고 하는 것뿐일세, 다른 것은 없네.”
미커는 거만하게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또 종이에 몇 글자를 쓰고는 펜을 집어 던지고는 고개를 벽 쪽으로 돌려 다시는 손님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노인이 종이를 집어 보자,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져 있었다:
“난 당신을 몰라요! 돌아가세요! 전 싫습니다!”
노인은 자조하듯 어깨를 약간 으쓱하며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거두고는 미커 침대 앞까지 바짝 다가가 그의 뒷그림자를 바라보며 간곡하게 말했다:
“좋아! 자네의 의견을 존중하겠네. 나는 믿네,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일세. 그 나머지는 자네가 나온 뒤에 우리 계속 이야기 하세!”
신비의 노인이 작은 방에서 사라진 뒤, 젊은 경찰 몇 명이 방안으로 우르르 물려 들어와 아직 영문도 모르고 있는 미커에게 농담을 하였다:
“헤이! 형님 발이 정말 커 네요! 한턱내요 한턱내요, 우리 덕 좀 봅시다! 시위 샤 서기님이 너네 집과 무슨 큰 관계인가? 그는 네 아빠의 노전우야! 이야……”
미커는 다소 멍해졌고, 애매모호하게 물으며 말했다: “샤……샤 서기?! ……”
미커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고 눈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초점을 잃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술은 온몸이 벌벌 떠는 것에 따라 순간 테이블 위의 음식물 모두를 땅바닥에 내팽개 쳐버리고 뛰어가 두 발로 한바탕 마음대로 짓밟아 버렸고, 또 광분하며 쥐고는 계속해서 모질게 문밖으로 던져버렸다.
경찰들은 순간적으로 눈이 둥그레 해지며, 서로를 쳐다보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미커는 곧장 침대에 쓰러지며 이불로 머리를 뒤집어썼다.
경찰은 기분이 깨져 입을 실쭉거리며 조용히 문밖으로 나왔다……
보잉 707여객기가 번개 치듯 씽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 위 하늘로 스쳐지나가며, 산성 바이윈 공항 활주로에 서서히 착륙했다.
류스는 여행객을 맞이하는 출구의 인파들을 밀치며 목을 죽 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조금 후 베이징에서 온 여행객들이 출구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여행객을 맞이하는 인파들로 순간 활발해지기 시작해졌다.
류스는 자신에게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시아린은 예쁜 청바지로 만든 가방을 메고 그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왔다.
바삐 만나 악수를 하고 사람들을 밀치고 류스는 시아린의 짐을 받아들고 물었다: “어떻게 갑자기 오려고 했던 거야? 급한 일이라도 있나?”
“우리 조금 이따가 얘기 해! 나 내일 돌아갈 표 사야 돼, 먼저 비자수속 하러 가자!” 시아린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살짝 뛰며 대합실 밖의 매표소 창구로 내달려가서, 재빨리 수속을 마쳤다.
그녀의 정서는 약간 격동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류스는 그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며 머리를 흔들었다.
택시가 황혼의 공항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금색의 양광이 도로 가 나무그림자 사이로 간간이 반짝였다.
차안에서 시아린은 공무를 보듯 일을 하며 급히 류스에게 베이징 쪽의 몇몇 소식을 알려주었다: “너 그 12만자 되는 소설 편집부 내에 큰 논란이 생겼어, 심지어 희극성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어. 주편은 네 소설을 아주 높게 평가했지, 이 책은 근래 보기 힘든 장편 수작으로, 작가가 자신에 대한 초월이며, 작가의 창작생애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당시 최근 한 기간잡지에 우선 작품으로 발표하도록 결정했지. 그런데 편집원 두 명과 젊은 부주편이 반대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지, 그들은 작가가 이른바 인성의 문제를 탐색하면서 너무 동떨어졌으며, 감관자극과 엽기적 기교에만 열중하여 현실생활에서 벗어나 허위적이고 경박하며, 너무 한쪽만 강조하여 작가 창작사상의 혼란 심지어는 후퇴와 타락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의견이 맞지 않아 논쟁을 벌이고는, 누구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었어, 내가 아예 몰래 원고를 집으로 가져가서 영감에게 직접 한번 훑어보도록 했어―그는 문학계의 권위자잖아! 생각지도 않게 영감이 다 읽고나서 눈물을 흘리더니, 바로 ‘수작은 얻기 힘들다, 발표할 것을 건의함, 논쟁.’이라는 열 글자를 크게 적지 뭐야. 말 한마디에 바로 결정되어, 형세가 급격히 반전됐어, 반대의견이 바로 수그러들었지……”
류스는 그녀의 그칠 줄 모르면서도 감정이 결핍된 말을 들으면서 일종의 말할 수 없는 흥분된 정서로 마음이 조급해져, 참지 못하고 쌀쌀하게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너 이런 무료한 일 알려주려고 일부러 베이징에서 온 거야? 이런 일이라면 전화나 편지해도 되잖아, 하필이면 내가 듣길 싫어하는……”
시아린은 약간 예의를 잃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조용히 그를 한번 힐끗 쳐다보며 격앙된 정서를 잠깐 완화하고 말했다: “당연히 이 일 때문만은 아니지……모레 원고를 보내야 해, 주편이 각 방면의 의견을 토대로 세 가지 수정의견을 냈어, 원고를 가지고 특별히 너와 면담하라고 날 보냈어, 너 오늘 밤 세우더라도 수정해서 원고를 꼭 완성해줘, 내일 아침 일찍 원고를 가지고 돌아가야 해……”
류스는 인내하며 그녀의 말을 다 듣고, 여전히 짜증나고 냉랭한 얼굴을 하며 단호히 거절하였다: “또 다른 일은?”
시아린은 눈가가 갑자기 빨갛게 달아올랐고, 입술을 깨 물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좋아! 원고 나에게 줘. 내일 아침 일찍 내가 널 비행기에 태워줄게!” 류스는 손을 뻗으며 쌀쌀하게 말했다.
시아린의 눈에 눈물 빛이 반짝거렸고, 충동적으로 류스의 손을 꽉 잡았다.
류스는 손을 내팽개치며, 얼굴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차내 공기가 차가워졌다.
차는 휘황한 등불이 막 켜지기 시작하는 산성호텔 문 앞에서 멈췄다.
두 사람은 앞에 가고 뒤 따라 가며 빠른 걸음으로 등불 휘황찬란한 로비로 들어갔다.
시아린은 데스크에 가 숙박등기 수속을 하였는데, 분명한 단골손님이었다. 류스는 멀리 한쪽에 서 있었는데, 길가는 사람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산성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저녁에 전화로 방을 예약했습니다……”
“그렇군요, 저희가 이미 배정을 다 했습니다, 8124방으로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이건 저의 신분증입니다.”
“방 열쇠 여기 있습니다. 산성에서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아린이 류스 곁에 가자, 두 사람은 묵묵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서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두 사람만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안정되게 운행하고 있었다. 붉은 등이 순서대로 깜빡거렸다.
시아린은 벽 모서리에 기대 정답게 기분이 들떠 불안한 류스를 주시하며 밝은 눈에는 타오를 듯한 눈부신 빛을 번뜩 방출하고 있었다.
류스는 쌀쌀하게 머리를 치켜들며, 눈은 층계지시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벨소리가 울리자, 엘리베이터가 마침내 8층에서 멈췄다.
두 사람은 앞에 가고 뒤 따라 가며 엘리베이터 문을 나왔다. 시아린은 데스크로 가 숙박서를 당직 아가씨에게 주고 두 사람은 또 앞에 가고 뒤 따라 가며 묵묵히 붉은 카페트가 깔린 조용한 복도를 걸어 방문 앞까지 왔다.
시아린은 흥분된 정서를 억제할 길이 없어, 열쇠를 든 손을 떨면서 문 자물쇠 속에 넣어 몇 차례 돌렸지만 문을 밀어 열지 못했다. 그래도 류스가 와서 원형 손잡이를 한번 틀자 방문이 활짝 열렸다.
류스가 먼저 표준스위트룸으로 들어와 牛津가방을 시몬스 침대 시트에 던지고 몸을 돌려 서늘하게 말했다: “내 임무 끝났어. 원고 줘, 시간을 아껴야 지……”
그가 본 것은 문 쪽에 서서 조금씩 떨고 있는 시아린의 그림자였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훌쩍훌쩍 우는 듯 하며, 방문을 살짝 “철커덕”하며 잠갔다.
류스는 의아해하며 그녀의 뒤에 갔다: “왜 그래?”
시아린이 갑자기 몸을 돌려 류스를 꽉 껴안고 입을 벌리고 한껏 류스의 입에 입맞춤을 하며, 뜨거운 눈물이 솟아나왔다!
폭풍우와 같은 진한 키스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류스로 하여금 점점 정감을 충동적이게 했고, 뜨거운 피를 들끓게 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고, 너무 힘들게 기다렸을 것이다. 20년 전 첫사랑의 격정은 이 순간 화산이 폭발하듯 소생하였다. 그들은 발견한 것이다, 이 순간에서 와서야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랑했고,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첫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애정 꽃이며, 꽃송이마다 꽃술마다 순수한 봄바람 진한 가을비를 품으며, 그것을 신선하고 화려하게 적셔주며, 설사 모진 세월을 다 겪었다하더라도 영원히 꼿꼿하게 우뚝 서며 지지도 꺾이지도 않았다. 그 정감의 빛은 소박하면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태양처럼 두 개의 생명을 비추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귀중하여, 내심 진정에서 나오는 영원한 활력이었다.
류스가 시아린과의 첫 키스를 떠올리자, 온몸에 불덩이가 타올라 솜털 하나하나마다 세차게 타오르는 불꽃이 되는 듯 했다……그때는 정말 얼마나 순진했던가 정말 얼마나 순진했던가, 웃을 때마다 말할 때마다 젊은 남녀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게 선명하고 생동적이었다.
꽃향기를 가진 첫사랑, 청초의 숨결을 가진 첫사랑이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 다시 나타났고, 다채로운 꿈처럼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시아린은 거대한 행복과 해탈 속에 파묻혀 연인의 귀가에 중얼중얼 거리듯 말했다: “사랑해, 자기야! ……20년 동안 줄곧 널 깊이 사랑하고 있어……이 세상에 있는 한 너만 사랑할거야……넌 날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어! ……”
류스는 순간 힘을 다해 그녀를 안았다. 그들은 이렇게 포옹하며 키스 하며 속삭이며, 시몬스 침대로 갔다……
“시아린! 너무 그리웠어!”
그 사나이의 열기는 바로 여인의 열나는 얼굴로 뿜어졌고, 그녀는 충동적으로 소리치며 말했다: “자기야, 난 더 그리웠어! 널 한번 잘 사랑하게 해줘, 난 벌서 20년이나 생각했어!……내 사랑, 널 한번 잘 보게 해줘……아, 정말 꿈만 같아……”
류스의 머릿속에 허웨이의 얼굴이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모호하게 번뜩이며 지나갔다. 아내에게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할지 아니면 득의양양해야할지 몰랐다. 돌이켜보면 자신은 그녀를 사랑한 적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던 시아린에 대한 사랑만큼 그렇게 순진하고 뜨겁지는 않았다……부대에 있던 그때, 도도한 반석과 같았던 그에게 한 여자아이가 맑은 샘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었을 때 얼마나 위로를 받았던가……
널찍하고 아늑한 응접실에 유럽고전음악이 스테레오로 울렸다.
등불 휘황찬란한 방송국 녹화장에는 경축일 날 잘 차려입은 아마추어 방송합창단이 마침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정열이 넘치는 은발의 노 지휘자가 힘차게 팔을 내젓자 찬사의 합창단은 마음속으로 우러러 나오듯 성모의 찬송가를 불렀다.
허웨이는 깊은 감동을 받아, 눈물이 샘솟듯 하였다.
찬송가를 인류의 가장 깊은 감정―사랑에 바치고 싶었다.
《성모송》의 장엄한 노래 소리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등불 휘황찬란한 방송국 음악녹음실 홀에는 경축일 날 잘 차려입은 아마추어 방송합창단 단원들이 마침 소탈한 노 음악가의 지휘 하에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 허웨이 역시 천사의 합창단 중에 서있었다.
열정적이고 활발한 은발의 노 지휘자는 아주 듣기 좋은 합창소리 가운데 틈을 찾아 잘 따라오지 못하는 단원을 일깨우며 말했다: “입모양! 입모양! 허웨이 씨 앵두 같이 입을 만들지 마세요!”
감정에 몰입된 허웨이는 급히 입을 조금 벌렸다.
사회각계에서 모인 합창단 단원들은 노래에 몰두하였고, 신성한 교회의 성가대처럼 생명의 찬가를 낭송하고 있었다.
허위이의 마음은 파도가 일 듯 술렁거렸고,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가득 고였다.
그녀는 순정한 노래 소리 속에서 어떤 해탈을 얻은 듯 하였다.
등불은 부드럽고 희미하였으며, 방의 장식은 낭만적인 분위로 가득했다. 막 거대한 감정의 충동을 겪은 류스와 시아린은 서로 껴안고, 부드러운 음악소리 가운데 경쾌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다정답게 상대방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다. 시아린이 갑자기 류스의 귀가에 정다운 소리로 말했다: “꽉 껴안아줘, 스토우!”
류스는 시아린의 부드러운 허리를 꽉 껴안았고, 시아린은 두 팔로 친근하게 류스의 목을 끌어안았는데, 모습이 키스하는 듯 했다.
시아린은 연인의 귀가에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진정한 작별 무도회야. 아마, 이것 역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저녁일거야.”
류스는 약간 의아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지막이라고? 왜?”
“티벳 문학계의 친구들이 나를 그곳에 와서 일하도록 초청했어, 이 역시 나의 오랜 숙원이야. 신비한 티벳은 줄곧 내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곳이야. 나는 세계의 지붕에서 나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거야……”
류스는 격동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시아린의 눈을 바라보며, 울적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너 시 쓰는 거야? 농담하는 거야?”
시아린은 분명히 심경을 알 수 없는 눈빛을 번득이며 생긋 웃었지만 웃음 속에는 처량함을 은미하게 담고 있었다: “정말이야, 나 정말 티벳으로 가려고 해.”
“영원히 그곳에 있을 거야? 천장? 설장?”
류스는 순간 시아린의 눈에 반짝이는 눈물 어린 빛을 보고 그녀를 꽉 껴안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농담해서는 안 되는데……”
시아린은 눈물 빛이 가득한 채 고개를 흔들며 얼굴을 연인의 얼굴에 묻었다: “괜찮아,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나서……”
이것은 시아린이 처음 자신에게 아들이 있음을 꺼낸 것이다.
류스는 다소 놀라면서 나지막이 물었다: “그……몇 살이야?”
“지아지아랑 비슷해……아니, 지아지아보다 한살 적어……그 아인 나 자신이 심어놓은 쓰라린 결실이지, 태어나자마자 다른 사람이 안고 가버렸어……7년이나 됐어, 난 한스럽고 사랑하는 그 땅을 떠났지, 그 먼 베이따황(北大荒)에서 꼬박 7년간 있었어, 하지만 나의 고통은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있어.”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가엽은 아인 잘못 없어, 7년 전, 난 이 원래 이 세상에 오지 말아야 할 아이를 낳았지, 그의 도래는 잘못이야, 그러나……난 정말 그를 없앨 용기가 없었어, 친구들과 친척들이 이 아이를 없애라고 권했지만 난 그래도 그를 낳았지, 아이가 태어나자말자 어떤 사람들이 안고 가버렸지, 꼬박 7년이나 됐어, 얼굴 한번 보지 못한지!……”
시아린의 눈물이 샘솟듯 흘러나왔고, 고통스러운 듯 눈을 지긋히 감았다.
류스는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그녀를 고옥 안아주었다.
경쾌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구슬프고 은은하면서, 애원하듯 노래하듯 하였다.
오래 오래 이따가 시아린은 눈물을 멎고, 천천히 말했다: “이 7년 동안, 나는 하루도 이 불쌍한 아이, 태어나자 말자 어머니를 본 적이 없는 아이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어.”
“이 아이 지금 어디 있어?” 류스가 그녀의 긴 머리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소리로 물었다.
“베이따황.” 시아린이 탄식했다. “죽일 놈의 그 아빠랑 같이 있어, 난 그야말로 이 몇 년 동안 그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상상할 수도 없어……”
시아린은 천천히 눈물 흔적으로 가득한 얼굴을 들고, 류스의 눈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간절히 청원하며 말했다: “스토우! 나랑 베이따황에 한번 가주겠어? 난 내 자신의 모든 것을 그곳에 남겨두었어……아들이 보고 싶어, 그저 살짝 보더라도……”
“네가 널 데리고 갈게!” 류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게 그녀에게 승낙했다.
시아린은 자신도 모르게 류스에게 키스를 했다.
그들은 연인같이 손을 꽉 잡고 끊임없이 왕래하는 번화가의 인파속을 걸어갔고, 네온사인 등이 그들의 격동한 얼굴에 반짝거렸다.
등불 휘황찬란한 산성호텔 정문 밖에는 일군의 행인들이 새까맣게 에워 사고 있었다. 흥겹고 아름다운 아코디언 소리가 한 차례 인파속에서 전해오며, 빙 둘러 서서 보는 사람들이 소리치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였다.
류스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눈은 순간 다소 멍하게 한곳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익숙하고 다정한 아코디언 소리인가!
“‘사과?!’ 헤이, 정말 잘 타네! ……길거리 예인인가? 우리 가서 한번 보자!” 시아린은 흥겨워 말하다, 류스의 안색이 갑자기 새파래지고 눈빛이 냉혹해진 것을 발견했는데 완전히 딴 사람 같았다.
“스토우!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아파?”
류스는 괴팍하게 한번 웃음을 쳤다: “아무것도 아냐. 한 대 피려고.”
시아린은 그녀의 팔을 안고, 위안하며 말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가면 되잖아……방으로 돌아갈까?”
“가서 보자! 이건 산성에서 가장 볼만한 광경이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보기 어렵지! 뭘 꾸물거려? 가자!”
류스는 우악스럽게 그녀를 한번 밀고는 한 차례 냉소했다.
시아린은 걱정되고 불안하게 갑자기 침울하고 무섭게 변한 류스를 바라보며 뒷걸음질치며 부탁하며 말했다: “그럼 너 날 기다리고 있을래?”
류스는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시아린은 몸을 돌려 길을 지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사과”의 선율은 타면 탈수록 빨라져, 구름이 흘러가고 물이 흐르듯 시원스러워, 다시 에워 사서 보는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시아린은 인파속을 밀치고 들어가, 연주하는 사람이 수척하고 여윈 지식분자 모습의 중년남자이고 진실 되고 기뻐하는 선비풍의 얼굴과 지혜가 충만한 널찍한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 다른 소박한 옷을 입은 야위고 키가 큰 중년부인이 그 옆에 서있었다. 품에는 인쇄품을 가득 담은 낡고 오래된 큰 가방을 안고 있었다.
흥겹고 우렁찬 아코디언 소리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더니 소리가 뚝 멈췄다.
빙 둘러 보는 사람들이 큰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땀범벅이 된 아코디언 연주자는 작은 탁자 위에 올라섰다.
손에는《털실 짜기》라는 작은 책자 한권을 들고, 듣기 좋은 테너 소리를 내며 억양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소리치며 팔기 시작했다:
“여이―! 좋은 소식이오, 좋은 소식이오! 최근에 들어온 유럽 미국의 털실 짜기 양식 백과전서를 봐요! 사범대학 도서관에서 강력 추천하는《털실 짜기》양식 100가지 봐요! 80년대 외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대전람 봐요! 유럽 미국의 이국양식의 최신 디자인 대노출 봐요! 삽화도 있고요, 사진도 있고요, 양식도 있고요, 침법도 있어요, 있을 건 다 있어요! 리근식, 광부식, 사오칭식, 장위식, 엘리자베스식, 마커스부인평상복식, 할리우드스타레저복식, 피터․카단이 정성스럽게 설계한 대자연으로의 회귀 편의식 봐요……동서고금의 풍류인물 풍부하고 다채로워 끝이 없어요, 믿지 못하면 한번 사서 봐요! 잔돈은 각자 준비하세요, 다 팔면 없습니다! 한 권에 3모요, 10권을 사면 15%할인해서 3원만 받습니다! 기회 다시 오지 않아요!……”
사던 안 사던 사람들은 아코디언처럼 구름 가듯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런 판매하는 말에 즐거운 듯 웃었다. 이로 장사는 특별나게 잘돼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고, 자칫 한번에 다 팔리게 될 것 같자, 시아린조차 흥겹게 두 권을 샀다.
시아린은 떠들썩한 인파를 비집고 길 건너편으로 뛰어 돌아왔을 때 그녀의 류스는 일찌감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차들의 물결과 낯선 사람들의 물결 한가운데에 서서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시종 다시 그 익숙하면서 기괴한 그림자를 찾지 못했다. 그녀가 영원히 류스의 무겁고 복잡하며 나약하면서 고통스러운 내심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는 영원히 이렇게 갑작스럽게 발생한 “실종사건”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사람들이 떠나가자 잔돈을 들고 있는 부부만 남았다. 그들은 돈을 손가는 대로 큰 가방 안에 집어넣고, 고개를 들고 서로를 보고 웃으며 긴장과 피로를 잊었다. 아내는 마음 아프게 남편을 대신해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고, 살짝 그에게 뭐라 말을 하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며 천천히 길 건너편의 공공화장실로 갔다.
바로 이 순간, 류스가 갑자기 제부의 앞에 나타났다.
“또 얼마나 있어요?” 그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쌀쌀하게 물었다.
스웨이가 고개를 들어보니 셋째 동생이어서, 놀랍기도 하며 기쁘기도 하여 웃기 시작했다: “어이, 스토우! 얼마 없어, 얼마 없어! 오늘 전과가 혁혁하지, 저녁에만 200여권을 팔았어! 가방 안에 100여권 있어, 내일 다시 말해!……에이, 마침 너하고 웨이웨이랑 상의하려고 했어, 편한 날 허 백부님 청해서 저녁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류스는 말대꾸를 하지 않고, 시커먼 얼굴을 하며 주머니에서 인민폐 한 뭉치를 꺼내고는 헤아려 보지도 않고 거칠게 제부의 손에 쥐어주고는 땅바닥에서 낡고 오래된 큰 가방을 들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떠났다.
“어이―? 스토우! 스토우! ……”
스웨이는 한참동안 어안이 벙벙한 채로, 한 뭉치의 액면이 큰 지폐를 쥐고는, 멍하니 동생의 노기등등한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그는 동생의 의미를 깨닫자, 얼굴색이 삽시간에 창백해졌고, 홀쭉한 두 손이 극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베이따황―끝도 없는 흑색의 벌판.
기러기들이 남쪽으로 날고 있다. 맑은 하늘에서 고요히 멀리 날고 있는 기러기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작은 두 명의 그림자가 지평선상에서 정면으로 걸어오고 있다.
시아린은 다시 이 열토를 밟으며 눈에는 격동하는 눈물을 머금으면서 류스를 뒤로 제쳐두고,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류스는 시아린의 빨리 뛰는 그림자를 보며 바짝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저녁 무렵. 쓸쓸한 토옥이 황혼녘과 어울려 돋보이고 있었다.
어렴풋이나마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토옥에서는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피어났다.
류스와 시아린은 도랑에 몸을 숨기고 있었고, 눈은 촌 바깥의 독립된 이 토옥을 바짝 주시하며 날이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치 신기하면서도 다소 놀라 두려운 희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날이 점차 어두워졌다. 시커먼 토지는 적막하고 광활했다.
시아린은 벌을 받고 있는 듯 도랑에 숨어있었고, 간절한 기대로 충만한 눈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작은 토옥을 주시하며 사랑의 고통을 참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눈이 빛나더니 순간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실성하며 소리쳤다: “빨리 봐! 그야! ……”
류스는 급히 그녀를 눌러 몸을 숙이도록 하고, 그녀의 입을 막았다.
작은 토옥 앞에 새끼 호랑이처럼 건장하고 귀여운 한 어린 사내아이가 나타났다. 그는 귀엽고 팔팔한 강아지와 장난을 치며, 혼자 토옥 앞마당에서 아주 흥겹게 놀며, “껄껄”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얼마나 고요한 향촌의 저녁 풍경인가! 한 폭의 그림같이……
시아린의 눈물이 줄줄 아래로 흘러내렸고, 두 손은 흑토 속으로 깊이 쑤셔 넣고, 류스에 의해 입이 막힌 채 신음소리를 냈다.
사내아이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강아지와 함께 흥겹게 놀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내아이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서 천천히 방향을 잡고 이쪽으로 왔다. 기민한 강아지가 낯선 사람의 냄새를 맡고는 왕왕 짖으며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사내아이는 오면 올수록 가까워졌고, 강아지는 짖으면 짖을수록 사나웠다.
류스가 한번에 잡아당기지 못하자, 시아린이 갑자기 특이하게 뭐라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고, 그녀는 일절 개의치 않고 도랑을 뛰쳐나가 사내아이에게 달려갔다.
사내아이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낯선 여인에 의해 놀라 멍해지며, 그곳에 서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강아지가 달려들며 짖으며 어린 주인을 보호하자, 류스가 급히 뛰쳐나와 개의 주의를 흩뜨려 놓자 강아지는 불안한 듯 큰소리 짖어댔다.
시아린은 비틀거리며 울부짖었고 아들 앞으로 달려들어 쓰러졌고, 아들을 안고 이리저리 어루만져 주었다. 사내아이는 멍하니 낯선 여인이 어루만지는 것을 감당하며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강아지가 시아린의 면전에 달려들어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류스가 마침내 주루룩 눈물을 흘렸다.
시아린은 미친 듯이 울고 소리치고 어루만졌다……
이때, 토옥 문 앞에 굵고 건장한 키 큰 시커먼 사나이 묵묵히 나타났다. 그는 유령 같이 먼 곳에 서서 이쪽으로 바라보며 꿈적도 하지 않았다.
사내아이는 순간 정신이 들어 시아린의 포옹을 벗어나 몸을 돌려 작은 토옥으로 달려갔다. 시아린이 그의 팔을 한줌 잡자, 사내아이는 갑자기 오른손을 휘두르며 시아린의 얼굴을 사납게 치고는, 미친 듯이 뛰어갔다.
시아린은 헛걸음치며, 흑토에 엎드려 얼굴을 쳐들어 손을 뻗어 아들의 그림자를 향해 부르고, 울며 소리치고 발버둥 쳤다……
금추의 양광이 비추는 가운데 편한 복장을 한 노장군 허원더(何文德)는 자식이 큰 인물이 되길 바라는 많은 가장들과 함께 “실험초등학교” 교문 밖에서 기다리며,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귀가하려 하였다.
교정 안에서 낭낭한 책 읽는 소리와 쟁쟁한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후에 책가방을 메고 붉은 마후라를 멘 아이들이 새장에서 나온 새처럼 장난치며 웃으며 교문으로 날듯이 오자 곧바로 각자의 가장들이 맞이하고,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하듯 손을 끌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장군 역시 지아지아를 맞이했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아주 친근하고 다정하게 만났다. 그들은 손을 잡고 금추 저녁 무렵의 양광의 세례를 받으며 아주 흥겹게 행인들로 떠들썩한 대로상을 걸어갔다.
“할아버지! 매일 절 데리러 와요? 다 클 데까지!”
“할아버지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만 할아버진 너와 헤어져야 돼. 할아버지가 오늘 마지막으로 지아지아를 학교로 데려가주는 거야……”
“왜요? 베이징의 집으로 돌아가시게요? ……”
“그래, 할아버지는 베이징 집으로 돌아가야 해……”
“왜 돌아가요? 베이징의 집에 혼자 계시다고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얼마나 썰렁해요!” 지아지아가 할아버지를 만류하며 말했다.
장군은 약간 슬픔에 잠긴 듯 했다: “그래, 나 혼자 있지……그곳은 할아버지의 둥지야! 사람은 말이야, 새나 강아지처럼 자신의 둥지가 있어야 하는 거란다!”
“여기 계시는 게 불편하세요?”
“좋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얼마나 심심 하겠니! 엄마 아빠는 출근하고, 지아지아도 학교 가고, 할아버지 혼자 집에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니, 말할 상대도 없고……”
“그럼 돌아가셔도 혼자 계시는 거잖아요?”
“그건 다르단다, 얘야! 네가 크면 알게 될 거야, 사람이 얼마나 친정과 온정을 필요로 하는지 말이야! ……”
“그럼 저 내일 선생님에게 집에서 할아버지 모시게 조퇴해서 해달고 할까?”
“안될 말! 지아지아는 공부해야지, 어떻게 조퇴 할 수 있어?”
“그럼 할아버진 어떻게 해요?” 어린 녀석은 정말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니?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아지아는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돼, 커서 큰일 해야지! ……”
“재미없어! 에이, 제가 언제 은퇴할 수 있겠어요?”
“바보 같은 소리! 넌, 아직 시작도 안했어!”
지아지아는 말없이 고개를 잠깐 숙이고 길을 가더니, 갑자기 또 물었다:
“할아버지, 정부야?”
“뭐? 정부?! 너 어디서 그런 엉터리 같은 일 들었어? 할아버지가 왜 정부라는 거야?”
“정부가 뭐예요?” 지아지아는 꼬치꼬치 케물었다.
장군은 자신의 뜻대로 설명이 잘 안 되었다: “정부란 말이야, 세 번째 사람이겠지? 아니면 여남은 사람을 말하는 거겠지……”
“할아버지, 내가 여남은 사람인가요?”
“이 녀석이! 너 작은 머릿속에 뭐 엉터리 같은 것들만 들어있어! 네가 왜 여남은 사람이야? 아빠 엄마가 얼마나 널 사랑하니, 넌 집에서 소황제야! 허허……”
지아지아는 오히려 심각한 얼굴을 하였고, 어른처럼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엄마는 날 사랑하는데, 난 아빠가 싫어.”
장군은 다소 놀란 듯 외손자를 바라보았다: “왜?”
장군은 마음이 순간 무거워졌고, 눈은 자신도 모르게 촉촉해지며, 말없이 외손자 앞에 천천히 쭈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아지아, 귀여운 것! 생각 많이 했구나! ……할아버지 말 들어, 방금 한 말 잊어버려! 잊어버리란 말이야! 응?”
지아지아의 눈에도 눈물 빛이 반짝였고 고개를 끄덕이며 갑자기 할아버지의 목을 껴안았다. 장군의 뜨거운 눈물이 눈구멍에서 솟구쳤고, 그는 몰래 눈을 닦았다.
금추의 양광 하에 할아버지와 외손자는 손을 잡고 집으로 줄곧 갔지만 그들은 말이 없었다……
저녁 무렵. 응접실의 TV에는 본시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고 화면상에 또 여자 아나운서 왕창의 청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났다.
“본 방송국 소식입니다. 오늘 막 끝난 시인민대표상임위원회 제6회 1차 전체회의에서 원 시부서기 겸 대리시장 왕루이 선생이 산성시 인민정부 제9대 시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왕 시장은 기자의 취재를 받으면서 전시인민들의 그에 대한 기대와 신임에 감사를 전했고, 살아있는 동안 힘을 다해 산성인민들을 위해 좋은 일과 실질적인 일을 할 것임을 나타냈습니다……”
허웨이는 행주치마를 두르고 포도주와 냉채 등을 들고 식탁위에 놓으며 틈나는 대로 본시의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화면에 왕루이의 두상이 나타났고, 그는 꿈적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고 있었는데 심지와 교양이 아주 있어 보였다.
아나운서 왕창의 소리는 냉랭하게 신임시장 왕루이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었다: “……왕루이 선생은 올해 55세로, 한족이며, 전문대학에 상응하는 학력을 갖고 있습니다. 1950년 혁명사업에 참가하였으며, 후아이현(懷縣) 정부문서, 토지개혁대원, 시위비서, 과장, 처장, 시위선전부부시장, 주샨현(諸山縣) 현위 제1서기 겸 혁위회주임, 시과위부주임, 시위조직부부장, 시위부서기 겸 부시장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허웨이는 급히 대답하며 뛰어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온갖 고생을 다하고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류스가 서있었다.
허웨이는 순간 격동되었지만 그녀는 분명히 억제하면서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돌아왔어? 빨리 들어와!”
류스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 집안으로 들어와, 손가는 대로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역시 담담하게 한 마디 물었다: “아무 일 없었지?”
허웨이는 그의 뒤를 따르며 나지막이 한 마디 했다: “별일 없어……”
TV화면에 또 왕창의 모습이 나타났다.
류스는 힐긋 쳐다보고는 말없이 앞으로 가 채널을 바꾸었고, 몇 번 돌리더니 성에 차지 않은 듯 TV를 끄고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허웨이는 침실 문까지 따라가서 문가에 기대어 마음이 심란하게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류스는 아주 피곤한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는 말없이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이고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응, 일 있어?”
허웨이의 눈가가 순간 붉어졌지만 바로 불평을 참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잘 돌아왔어! 오늘 아버지 칠순 생신이야, 마침 축하해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아빠 내일 베이징으로 돌아가, 그쪽 간부휴게소에서 빨리 와서 회의에 참가하라고 재촉해서……”
류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으응”하고는 가만히 담배를 피웠다.
“똥베이(東北) 거기 추웠어?” 허웨이는 할말이 없어 물었다.
“안 추워…… 참! 하얼빈에서 가죽모자 하나 샀어, 어른 신께 전해드려!” 류스는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부부 두 사람이 잠깐 침묵을 지키자, 다소 어색하게 보였다.
류스가 고개를 들고 웃었다: “지아지아는?”
허웨이는 눈꺼풀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대답했다: “아빠가 데리러 갔어……”
또 분위가 서늘해졌다. 이웃집의 녹음기에는 최건(崔健)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허웨이는 마음속으로 순간 괴로웠고, 고개를 숙이고 응접실로 나오다가 몸을 돌려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아빠 가실거야, 오늘 기분 좋게 있어줘, 노인네 괴롭게 하지 말고……” 말을 다하고 몸을 돌려 갔다.
류스는 깊이 한숨을 내 쉬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오디오에서 자극성이 아주 강한 리듬의 헤비메탈음악이 흘러나왔고, 가수는 사납고 호탕한 목소리로《난니만(南泥灣)》을 우렁차게 부르고 있었다.
예쁜 생일 케이크 상의 7가지 채색 초에 불을 붙였다.
촛불이 빛나는 가운데 전 가족이 잔을 들었다.
“지아지아! 할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허웨이가 아들을 일깨워주었다.
류스 역시 미소를 띠고 아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웃는 모습이 수월하지 않았다.
지아지아는 잠깐 생각을 하다 분명히 “이미 정해놓은 방침대로” 하지 않고, 뜸을 들이며 축사를 한 마디 했다: “할아버지! 적적하시지 않도록 기원해요. 지아지아는 영원히 할아버지의 친구예요! 건배!”
전 가족이 웃기 시작했고, 류스 조차 아주 편안하게 웃었다.
“좋아! 한잔하지!” 노장군은 기분이 동하여 단번에 잔을 다 비워버리고는 외손자를 안고 자신의 품에 두었고, 그의 얼굴을 뽀뽀를 했다.
허웨이는 정답게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마음 편안하시고, 몸 건강하시기를 바랄게요, 손자 아들 안는 날까지……”
류스도 잔을 들고 일어섰다: “어르신, 건강하시고 장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노장군은 눈물을 머금고 그들과 잔을 부딪치며 다시 통쾌하게 마셨다.
허웨이는 사람들이 기쁜 틈을 타 아버지에게 제의하며 말했다: “아빠! 촛불 끄셔야지요. 한번에 다 끄셔야 해요!”
노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한 숨! 오늘 이 촛불, 내 친구 지아지아가 나를 대신해 불어주었으면 해!”
지아지아는 일찍 감치 한번 불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기 때문에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내가 불게, 내가 불께!” 이에 입안에 공기를 잔뜩 불어넣어 고개를 흔들며 한숨에 촛불을 껐다.
“잘했어!” 어른들은 아주 기쁘게 박수치기 시작했다.
노장군은 아주 격동이 되어, 다정하게 아이들을 보며 제의하며 말했다: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 더 이상 많은 말 하지 않겠어. 너희들에게 노래 한 곡 불러주마! 옛날 노래 한 곡 부르지, 비웃지 말거라!”
“할아버지 노래 환영해요!” 지아지아가 환호하며 앞장서서 박수치기 시작했다.
류스는 오디오의 소리를 살짝 줄였다.
노장군은 고개를 숙여 분위기를 잡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들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한 집안이 있었는데 아주 유명한 집안이지,
집은 수이더(綏德) 30리鋪 마을에 살지!
네 명의 자매가 세 명의 오빠를 알게 되었지,
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네! ……
쓸쓸하고 근심 어린 노래 소리가 노장군의 순정하고 짙은 섬서(陝西) 사투리와 맞물려 목에서 나오자 자리에 있던 젊은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허웨이의 눈에는 바로 눈물이 가득 고였고, 류스의 내심 역시 강렬한 흔들림을 받았고, 지아지아 조차도 감동을 받아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응시하고 있었다.
세 명의 오빠 올해 19살 이예요,
네 명의 자매 올해 16살 이예요,
사람들은 우리 둘을 천생연분이라 하지요,
당신만은 자매를 길에다 떼어 놓아 두었어요! ……
전 가족들이 마침 노래 소리가 가져다 준 격동과 사색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꽝”하는 큰 소리가 들려왔고, 방문이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차 열렸다. 전 가족이 크게 놀라 일제히 고개를 돌려 보니, 류웨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벌건 얼굴을 하고 그들 앞에 서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류스를 죽으라 쳐다보며, 눈에는 분노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전 가족들이 순간 멍해졌고,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허웨이가 먼저 이성을 찾아 급히 일어나서 인사하며 말했다:
“아, 웨이웨이! 빨리 앉아! 오늘 아빠 칠순이셔, 내일 베이징으로 돌아가셔……앉아 한잔해요!”
류웨이는 차갑게 그녀의 손을 밀치며, 방안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고, 눈은 둘째 형 류스를 쳐다보며 사납게 말했다:
“이리 와봐! 볼일이 있어서 찾았어!”
말을 다하고, 고개를 돌려 옆방 침실로 곧바로 들어갔다.
류스는 냉정하게 천천히 일어서서 장군과 아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나 침실로 들어갔다. 순간, 침실 안에서 류웨이가 분노하며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울렸다:
“가져가! 이건 너의 더러운 돈! 485원! 내가 누나를 대신해서 너에게 돌려준다! 헤아려 봐! ……”
“꽝!”하는 소리가 나며 침실 문을 힘을 다해 닫아버렸다.
침실 안에 류스는 냉정하게 온 바닥에 뿌려져있는 몇 장의 지폐를 천천히 줍고는 동생을 힐끗 쳐다보고는, 얕잡아 보듯 나지막이 말했다: “화낼 필요 없잖아? 얘도 아니고? ……”
“가방은? 돌려 줘! 누나의 책과 피땀 전부 돌려줘!” 류웨이가 형에게 한 손 내밀었다.
류스가 망설이다 천천히 말했다: “가방 문 뒤에 있어, 돈은 손 안됐어……책은, 버렸어!”
“버렸다고?!” 류웨이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성난 눈을 부라리고 불 같이 따지듯 물었다: “어디다 버렸어? 가서 찾아와!”
류스는 어금니 깨물며 아무런 말없이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였다.
“넌 뭐하는 물건이야!? 넌 누나의 마음을 철저히 해쳤어! 누나가 책 파는 게 돈 때문인 것 같아? 그건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의 기개야! 넌 우리를 무시할 수 있어도 그들의 인격을 더럽힐 권한은 없어! 누나를 더럽히는 건 너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니까! 우리의 어머니를 더럽히는 것이니까! ……”
허웨이가 문을 밀치고 뛰어 들어와 동생을 안고 울며 설득하며 말했다:
“웨이웨이! 웨이웨이! 차분하게 말해! 할말 있으면 천천히 말해! 형수 말 들어, 형제간의 감정 해치지 마……”
“감정?! 형에게 또 무슨 감정 있겠어요?!” 류웨이는 상기된 눈을 하며 큰 소리로 소리를 치며 말했다. “형이 누구에게 감정 있었던가요? 그는 아빠를 증오했고, 불쌍한 제부를 무시했어요, 동생 미커를 괴롭히고, 누나조차도……그는 뻔뻔한 사람이라구요!”
성실하고 충실한 류웨이가 이렇게 크게 화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허웨이는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동생의 옷소매를 꽉 붙잡으며 말했다:
“웨이웨이! 웨이웨이 동생! 말하지 마! 어르신 면전에서……부탁할게! 모든 게 형수 잘못이야……”
류웨이는 사납게 발에 힘주어 밟고는 문 뒤에서 그 낡은 가방을 쥐고 곧장 뛰쳐나가며, “꽝! 꽝! 꽝!”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허웨이는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났고, 어찌할지를 몰라 다른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노장군은 묵묵히 손자를 꼭 안으며 온몸을 떨고 있었다.
류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장인과 아들의 냉혹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뺨에 눈물 한 방울을 닦고 몸을 돌렸다……
고급 군용 벤츠자가용 한 대가 가을의 고속도로 위를 생생하며 달리고 있었다. 온 대지에는 마른 잎이 가득했고, 들판은 스산한 기운으로 덮여 있었다.
널찍하고 쾌적한 뒷좌석에서 온 가족들이 노장군을 배웅하고 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지아지아도 작은 입을 꾹 다물고 얌전하게 할아버지의 품안에 앉아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사가《가시는 길 평안하세요》라는 경쾌하고 부드러운 음악을 틀었다.
공항의 대합실에서 할아버지는 외손자를 데리고 테라스로 비행기를 보러갔고, 류스와 허웨이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비행기가 떴다 내렸다하는 웅 하는 소리가 희미해졌다가 크게 울렷다가 하였고, 방송에는 여자 아나운서의 부드럽고 경쾌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이 여정에 있는” 느낌이 크게 들었다.
류스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끊임없이 담배를 피며 아무 말이 없었다.
“아빠하고 얘기 좀 나눠! 노인네 마음속으로 괴로울 거야……” 아내가 마침내 참을 수 없어 남편에게 부탁하며 말했다.
류스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담배를 끄고 일어났다.
허웨이는 고통스럽게 남편의 냉랭한 뒷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인과 사위 두 사람이 테라스 난간에 서서 떴다 내렸다 하는 비행기를 조망하고 있다.
많은 물건들로 가득 찬 데스크 앞에서 허웨이는 아들을 데리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물건들을 둘러보며 수시로 고개를 돌려 근심어린 듯 아버지와 남편을 바라보았다.
지아지아는 다 큰 어른처럼 뒷짐을 지고 데스크로 가서 중얼중얼 거리며 자세히 듣고는 “재미없어!”를 연발하였다.
테라스에서 류스는 장인을 살짝 쳐다보았다.
“……아버님!” 그는 자신의 소리가 어색하다는 것을 느꼈다.
“응?” 노장군이 대답했으나 역시 부자연스러웠다.
사위의 얼굴이 약간 벌게졌다: “……언제 다시 오실거죠? 저희들 언제라도 환영해요……”
장군이 몸을 돌려 심란한 듯 자신의 멋지고 냉정한 사위를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다시 올 걸세, 다시 올 걸세……” 그는 사위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지아지아 좋은 아이야, 속도 깊네……”
사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들 사이에는 영원히 한 층의 무언가가 사이에 있었다.
벨소리가 울렸다. 장군은 외손자의 얼굴에 뽀뽀를 해주고 미소를 지으며 여행객들의 무리로 섞여 들어가서는 천천히 비행기 트랩을 올랐다. 그는 고개를 돌려 딸․사위와 외손자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허리를 숙여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허웨이는 아버지의 몸이 구부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고독하게 아무도 없는 그 간부휴게소로 돌아가 TV를 켜고 밤늦게까지 보다가 외롭게 잠자리에 들것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지아지아가 울었고, 허웨이도 울었고, 아주 마음 아프게 그렇게 울었다.
보잉 여객기가 번갯불처럼 빠르게 활주로 상을 박차더니 순간 고개를 치켜들고 사납게 포효하며 푸른 하늘로 박차고 나아갔고 점점 작아지더니 끝내 사라졌다.
등불 찬란한 조선대는 마치 신기루처럼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초라한 선체작업사무실에는 꾸야펀이 급히 한쪽 칸에 놓여진 전화기를 집어 들고 큰 소리로 물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전화기에서 한 익숙한 남자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야펀이야? 나야. 왕루이야.”
“오……” 꾸야펀은 아주 의외라고 여겼다. “제부세요, 무슨 일이세요?”
“처제! 오늘 왜 집에 안 왔어? 나하고 창창이 저녁 먹으려고 널 기다리고 있어!” 제부는 전화로 다정하게 말했다.
꾸야펀이 수화기를 한번 쳐다보고는 미안한 듯 설명했다: “오늘은 정말 안돼요! 작업실에서 마침 연장근무를 하고 있어요!”
“토요일 저녁에도 연장근무 해? 너희 회사 어떻게 된 거야! 노동자들은 쉴 권리가 있어! 하하……” 제부는 농담을 하며 기분이 아주 좋은 듯 했다.
밖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미스 꾸! 저쪽 준비 다 됐어! OK만 하면 점화해서 차를 작동할거야! ……”
“아야, 가요! ……” 꾸야펀이 대답을 하고는 급히 전화속의 제부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제부! 이곳이 무지 바빠서요, 다음에 얘기해요! 제가 작업장 주임이 된지 얼마 안 되서, 제가 없으면 일이 안 되어서요……끊을 게요?”
“처제!” 제부가 그녀를 부르더니, 전화상에서 딸을 대신해서 사정하듯 말했다: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와! 창창이 또 아파, 침대에 누워 처제만 생각해! 아이들도 아주 힘들어 해, 엄마마가 없으니, 처제가 와서 그녀와 같이 좀 있어줘! 창창은 처제 없이 못살아!”
꾸야펀은 마음이 약해져 급한 마음에 제부의 요구에 승낙했다: “……알겠어요! 내일 아침에 갈게요. 아무 일 없죠? 끊을게요!”
제부가 순간 또 다정하게 그녀를 일깨워주며 말했다: “야, 처제, 물건 같은 거 사오지 마, 아주 힘드니까! 좀 일찍 와?”
“예, 알았어요. 들어가세요!” 꾸야펀은 전화를 끊고,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몸을 돌려 열기 등등한 작업실로 갔다.
다음날 아침, 초겨울의 양광이 포근하게 텅 비고 밝은 작은 거리를 비추고 있고,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고급주택가는 아주 고요하게 보였다.
꾸야펀은 신선한 과일 채소와 새우와 생선을 들고 담 아래를 따라 왕루이의 집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당번을 서고 있는 무장경찰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화원의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무장경찰이 초인종을 누르자 류씨 아줌마가 손님을 맞이하러 나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꾸야펀은 널찍하고 조용한 문에 들어가서 소리를 쳤다: “류씨 아줌마!”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물바구니를 들고 주방 안으로 그녀는 들어갔고, 또 작은 문으로 들어가 조용한 후원을 보았지만 그래도 류씨 아줌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꾸야펀은 물건을 주방에 두고 응접실로 돌아와 또 몇 번 소리를 쳤다: “류씨 아줌마! ……창창! ……사람 있어요?”
그래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꾸야펀은 마음속으로 조비심이 나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전체 건물이 아주 이상하리만치 조용하였다.
꾸야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가서는 창창의 침실 문이 살짝 열려져 있는 것을 보고 가서 방문을 밀치고 나지막이 소리쳤다:
“창창! ……”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창의 침상은 비어 있었고, 이불은 한쪽으로 개어져 있었다.
“응? 사람은? ……” 꾸야펀이 이상해서 중얼중얼 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 것을 느끼고 순간 고개를 돌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부 왕루이가 귀신 같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 아무런 소리 없이 생끗 웃으며 손 가는대로 방문을 닫았다: “처제! ……”
꾸야펀은 온몸에 식은땀이 나와, 숨을 헐떡거리며 책망하듯 말했다: “놀랐잖아요! 왜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창창은 요?”
그녀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떨어뜨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제부는 그녀를 한번 끌고 손 가는대로 잡아당겨 품안에 꽉 껴안았다.
꾸야펀은 크게 놀랐다: “제부?! ……놓으세요!”
왕루이의 눈에서 억제하기 어려운 정욕이 뿜어져 나오며, 목이 잠긴 채 중얼중얼 거리며 한 마디 했다: “처제! 너무 그리웠어! ……” 갑자기 얼굴을 내밀고 강제로 꾸야펀과 키스를 하려고 했다.
꾸야펀은 이러한 갑작스런 습격에 놀라 온몸에 힘이 빠져 제부의 힘 있는 포옹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고, 순간 눈물이 솟구쳐 올랐으며 손을 빼서 제부의 흥분한 얼굴을 밀치고는 얼굴을 힘을 다해 다른 한쪽으로 돌리고는 눈물을 머금은 채 큰 소리로 말했다: “형법규정에 의하면 무릇 부녀자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행하는 성행위는 모두 강간죄가 된다고 했어요!”
왕루이는 온몸을 한번 떨더니 서서히 그녀를 풀어주었다.
꾸야펀은 두 어 걸음 물러나 옷가지와 단발을 가지런히 하고 사납게 제부를 힐끗 한번 째려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방문을 나가려고 했다―
“잠깐만!” 왕루이가 갑자기 소리치자, 꾸야펀은 멈추었다.
왕루이는 천천히 몸을 돌렸고, 새파란 야윈 얼굴이 냉엄함과 위엄을 찾으며 억지로 한번 웃음을 지어보이며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봐, 할 말이 있어. 앉으라고 해잖아!”
꾸야펀은 잠깐 말없이 있다가 방문을 활짝 열고 쌀쌀한 얼굴로 방으로 돌아와서 소파에 앉았다: “말하세요!”
왕루이는 담배를 더듬어 불을 붙이고는 깊이 한숨 들이 마시고는 방안을 왔다갔다 몇 바퀴 돌더니, 날카로운 눈빛이 순간 곧장 내뿜어져 왔다: “알고 싶어, 왜 날 좋아하지 않는지? 왜?”
“말할 수 없어요!” 꾸야펀은 꿋꿋하게 얼굴을 창밖으로 돌려버렸다.
“진실한 감정을 치른 한쪽으로써 난 알 권리가 있어! 난 널 사랑할 권리가 있어!” 왕루이는 마침내 의기소침한 포효를 하였고, 마음속에는 정욕과 실패의 고통을 참고 있었다. “사랑은 무죄야!”
꾸야펀은 다소 놀랍고 의아하게 그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이런 말 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 했군요……”
“왜? 넌 나 왕루이가 타고난 냉혈인간이라서, 지금까지 감정․생활 그리고 진정한 애정 따위를 모를 거라 생각했나?!” 왕루이는 충동적으로 처제 앞을 왔다 갔다 움직이다 갑자기 그녀의 면전에 쭈그렸고 눈에 간절한 흠모의 정을 드러내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네 언니가 난을 당한 뒤, 너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지, 중년에는 아내를 잃었지, 창창 개인의 생활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지……인생의 세 가지 큰 불행이 모두 나 개인에게 들이 닥쳤어! 난 아직 감정상의 어떤 희망이 있어……넌 나의 친 가족이면서, 설마 나에 대해 조금의 이해와 동정도 없어?……내가 높은 지위에 있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하지 마, 남자로서 이미 사업의 절정기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 왕루이 역시 감정이 살아있는 사람이라구! 정상적인 욕망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라구! 너 설마 정말 몰랐어? 여자로서 넌 일찍 감치 내가 마음속으로 숭배하는 우상이 되었어! 다만 예전에 난 너에 대한 불타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것일 뿐이야……너 언니가 없고서, 넌 내 생명을 지속시켜나간 희망이야! 받아줘, 처제! 난 내 모든 감정을 너에게 쏟아 부을 거야! 우리 가련한 두 외톨이가 결합해서 함께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다 하자구! 받아줘! ……”
왕루이의 고백은 진실 된 마음이 담겨있고,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 하며,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말을 토로하고는 처제의 무릎에 엎드려 뜨겁고 다정하게 그녀의 손에 키스했다.
꾸야펀의 마음은 떨고 있었고, 천천히 자신의 손을 빼고 일어서서 창 앞으로 걸어갔다. 제부의 진심어린 마음의 노출은 어쨌든 그녀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나 그녀는 자신을 누르면서 감정상의 충격을 버티면서 고개를 돌려 냉정하게 희망으로 가득 찬 제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 여태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제 자신의 생활을 제부와 함께 한다는 것을요. 미안해요! 제부의 마음은 이해해요, 저에 대한 감정도 존중해요……하지만 이건 절대 실현될 수 없는 일예요. 솔직히 말해서, 전 줄곧 제부의 마음 깊은 곳은 아주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동안 비정상적인 정치투쟁의 생활은 이미 제부를 냉혹하고 무정하게 단련시켰어요. 전 마음속으로 무서워요! 전 제부 같은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면 무슨 ‘행복’하다고 말할 것이 있는지를 상상하기 어려워요……전 언니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믿어요, 두 분은 겉으로는 아주 화목하고 아주 ‘행복’했지만요……언닌 마음씨가 아주 선량해요, 성격도 너무 연약하고, 혼자서 남몰래 묵묵히 쓴 열매를 삼킬 수밖에 없었어요. 제부는 근본적으로 언니의 내심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요! 저 여동생만 알아요……용서해주세요! 전 제 스스로 저의 생활을 설계할거예요, 전 권세에 붙는 시장부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왕루이는 절망한 듯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섰고, 또 맥없이 가죽소파에 쓰러지며 약간 벗겨진 머리를 움켜쥐고,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았어, 이건 나 왕루이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이야! 시장부인이 되려고 하는 여자들은 아주 많아, 내가 고개만 끄덕이면 그녀들은 머리가 깨지도록 밀치며 나의 품속으로 뛰어들 거야……하지만 이런 여자들은 하나도 맘에 들지 않아! 난 처제를 좋아해! 내가 고독하게 나의 인생여정을 가도록 정해져있다면 난 그래도 진심으로 널 축복해, 널 영원히 축복할거야! ……너 마음속엔 일찍 감치 널 사로잡은 사람이 있겠지? 너의 가족이자 친구로서 그 행운아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꾸야펀은 솔직하게 두 글자를 토해냈다: “류얼.”
왕루이는 순간 고개를 치켜들었고, 사람에게 사납게 채찍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경악과 고통이 그의 새파란 여윈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였다.
꾸야펀은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이미 약혼했어요.”
왕루이는 자세를 잃고 단번에 일어서서 방안을 몇 걸음 왔다 갔다 하더니, 갑자기 창밖을 가리키더니 비분하며 소리를 치며 말했다: “뭘 근거로?! 그 류쉐이창 일가가 뭘 근거로 이렇게 나 왕루이를 허무하게 만드는가 말이야?! ……30년 전, 그의 아비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나의 미혼 처 친팡을 앗아 갔어; 30년 후, 볼품없는 삼류인생인 그가 그렇게 쉽게 나의 처제를 뺏어가! 듣자하니 그의 동생 류스라는 그 유부남 건달이 나의 외동딸 창창의 순결한 감정을 속여 뺏어갔다지……뭘 근거로 그러냐 말이야?! 나는 이런 억울함 받아들이지 못해! 난 30년 전의 왕루이가 아냐!!”
꾸야펀은 말없이 이 소인배 출신의 강경인물의 진실 된 고통스런 모습을 바라보며, 일시에 적절한 말로 그를 위로하기 어려워 담담하게 한 마디 했다: “아마 형부가 말한 게 맞을 지도 몰라요, 사랑은 무죄예요. 쌍방이 원한다면 누구도 바꿀 수 없어요.”
왕루이는 순간 냉정해졌고, 또 새파란 여윈 얼굴이 위엄하고 장엄하며 냉혹하고 무정하게 변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침실 문 입구까지 와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차분하고 냉담하게 말했다:
“미안해! 본인이 오늘 실례한 것 양해해줘. 창창은 오후에 돌아 올 거야. 난 회의하러 가. 그럼!”
말을 다하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윽하고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더니, 사라졌다……
꾸야펀은 멍하니 텅 빈 방을 둘러보다, 갑자기 슬픔이 밀려와 창창의 침상으로 가 부여안고, 눈물이 뚝뚝 흘리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가 등불이 반짝거리는 많은 건물 가운에 자리 잡고 있었고, 입주자들은 벌써 다 차 전 아파트가 훤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고, 키가 크고 건장한 한 남자의 뒷그림자가 건물 앞 검은 그림자속에 서서 잠깐 동안 고층 건물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하다가 비틀비틀 하며 어둠을 더듬고 복도로 들어가,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밟았다. 한 층을 지나며 가로등을 끄고는 꼭대기 층까지 왔다……
남자의 뒷그림자는 류웨이의 집 앞에 서서 잠깐 숨을 돌리고 또 호수를 확인하고는 살짝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듣기 좋은 초인종 소리가 간소한 방안에 울렸다.
마침 침실에서 갓난아기를 돌보고 있던 꾸오얜이 급히 아이를 안고, 응접실을 지나 문 앞에 와서 물었다: “누구세요?”
“띵동!” 또 초인종 울리는 소리가 났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꾸오얜이 “도어스코프”로 밖을 보니, 모습을 바꾼 한 낯선 중년남자의 얼굴이 보여, 또 물었다: “누굴 찾으세요?”
밖에 있던 사람이 무겁게 대답했다: “꾸오얜을 찾습니다.”
“누구시죠?”
“꾸오린이라고 합니다.”
꾸오얜은 깜짝 놀라 또 “도어스코프”에 바짝 붙어 살펴보았다.
“미안해요, 전 당신을 몰라요……”
“얜쯔! 나 너의 큰 오빠 꾸오린이야, 잊었어? 어렸을 때 내가 매일 너를 어깨에 메고 놀았잖아……”
꾸오얜의 마음속에 한 차례 뜨거운 파도가 일어났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난 잊었어요……”
“널 탓하지 않을게, 얜쯔! 내가 떠날 때 넌 겨우 다섯 살이었어, 내 다리를 부여잡고 울었지……18년이나 됐어! 넌 잊었어……”
꾸오얜의 눈물이 천천히 솟아올랐고, 눈을 감고 잠깐 마음을 차분하게 갖고,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서북지방에서 옥살이하고 있지 않나요?”
“맞아, 난 죄를 저질렀지……나는 복역기간에 깊은 반성을 하였고, 또 생산기술방면에서 창조발명을 하여 두 차례나 공을 세워 정부에게 관대하게 처리해주었어, 사형 연기에서 무기형으로 감형되었지, 또 무기징역에서 유기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지, 지금은 이미 나에게 ‘가석방’을 하기로 결정했어, 다시 말해 미리 석방한다는 거지, 또 2년의 감찰을 통해 자유를 주기로……”
꾸오얜은 자신의 딸에게 살짝 입맞춤을 하고, 갑자기 하나의 요구를 했다: “당신의 저의 큰 오빠 꾸오린이라면, 어릴 때 오빠가 나에게 불러준 노래를 부를 줄 아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던 그 노래를요……”
“할줄 알아! 얜쯔, 들어 봐!”
꾸오린은 가볍게 흥얼흥얼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요,
땅에선 반짝반짝 빛나죠!
입 비뚤어진 큰 형수 시장에 가야 해요―
왼손에는 기름통 들고요,
오른손에는 恩恩儿糖 가지지요!
돈 같은 매화 떨어지죠,
恩恩儿糖, 연꽃이 해당화 건드리네!
――해방 대만
꾸오얜은 일찌감치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휜 머리가 가득한 큰 오빠 꾸오린이 여동생 앞에 서있다.
“오빠! ……” 꾸오얜은 눈물을 흘리며 불렀다.
꾸오린은 말없이 아주 충직하고 아주 소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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