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릉 발굴 아직도 진행중… 진·한시대 유적 수두룩
● 세계 4대 古都 시안의 문화유적
아테네·로마·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의 하나로 꼽히는 시안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지난해 시안을 방문한 사람은 내국인 6500만명, 외국인 106만명. 이들이 뿌리고 간 돈은 426억위안이나 된다. 관광은 산시성 경제에서 약 8%를 차지하는 ‘효자’산업이다. 작년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미국인(10만명)이 가장 많고, 한국인(8만4000명)은 일본인에 이어 세 번째이다. 서울과 부산에서 시안까지 비행기 직항편도 있다.
시안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35㎞ 떨어진 진시황릉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동서 485m, 남북 515m, 높이 약 76m의 거대한 진시황릉은 아직도 발굴하지 않았다. 외관으로는 사과나무 등이 심어진 언덕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곳은 병마용(兵馬俑:병사와 병마들을 본뜬 인형이라는 뜻). 병마용은 진시황릉을 보호하는 일종의 지하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황릉 중심에서 보면 동쪽 1㎞ 지점에 있다.
▲ 발굴 작업이 진행중인 진시황릉의 개갑굴. 네모난 돌 조각을 엮어 만든 갑옷 모형이 출토되고 있다.
병사와 말 모양 도기(陶器)들이 무더기로 발견된 병마용은 1974년 우물을 찾기 위해 밭을 파던 농부들이 깨진 도자기 조각과 부서진 청동제 무기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 결과 3개의 큰 구덩이에서 실물 크기의 각종 도용(陶俑)이 6000여개나 나왔다.
병마용 박물관을 둘러본 뒤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개갑굴(鎧甲窟)과 문관갱(文官坑)으로 향했다. 진시황릉 동남쪽 200m 지점에 있는 개갑굴에서는 1998년 네모난 돌 조각들이 1만3600㎡나 나왔다. 이를 연결해 봤더니 갑옷과 투구 모양이었다.
진시황릉 서남쪽 50m에 있는 문관갱에서는 2000년 12개의 도용(陶俑)이 발견됐다. 그 중 8개는 사법관(司法官), 나머지 4개는 마부로 추정됐다. 허름한 가건물로 보호되고 있는 발굴 현장들은 출토유물을 박물관으로 옮긴 뒤여서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구덩이가 진시황릉 주변에 180개 있고, 그 속에서 계속 유물이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아직 우리 발굴 기술이 국제 수준과 차이가 많아서 섣불리 발굴하면 보존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너무 서두르지 않는다”는 장잉란(張穎嵐) 부관장의 설명에서 중국인다운 여유와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중국 역사상 진(秦) 다음으로 천하를 통일한 한(漢)나라의 유적도 있다. 시안 북쪽 20㎞ 지점에 위치한 한양릉(漢陽陵). 고대 중국의 오랜 도읍지였던 시안 일대에 흩어져 있는 황제 무덤 중 하나다. 한나라의 4대 황제 경제(景帝·재위 기원전 158~141)와 황후 왕씨가 묻혀 있다. 12㎢의 광대한 무덤은 지난 1990년 주변부터 발굴을 시작해 5만 점이 넘는 각종 유물이 출토됐다. 1999년에는 지하 발굴현장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지하로 내려가니 유리로 보호된 거대한 구덩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 안에는 무기를 든 전사(戰士), 관복을 입은 문관,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형이 무더기로 묻혀 있었다. 도기(陶器)로 만들어 2000년을 견뎌낸 것들이다. 돼지·말·소·양·닭 등 동물과 팔찌·병 등 각종 장식물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세월의 흐름 때문에 파괴된 부분도 많았지만 연구를 통해 원형을 복원해 놓은 곳도 있었다.
▲ 세계최대의 지하박물관이라고 말하는 중국 산시성의 양릉 한경제의 무덤 박물관.
시안=중국 취재단 12진(조선닷컴 입력 : 2007.08.17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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