雍也第六
옹야 제6편
(凡三十章)
(도합 30장)
6·1
子曰: “雍也可使南面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염옹은 고관이 될 만하다.”
[주석]
1) 雍也可使南面(옹야가사남면) -- 옹은 남면하게 할 수 있다.
雍: 冉雍(기원전 522-?)을 가리키는데, 자가 仲弓,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29살 어렸다. 冉耕(伯牛)․冉求(子有)와 함께 모두 孔门十哲의 반열에 들어 세칭 “一门三贤”이라고 했으며, 三冉이라고도 한다. 可使: 염옹으로 하여금 …하게 할만하다. 南面: 남쪽을 향해 앉는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하는 방향을 가장 존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지위가 높은 사람은 모두 남쪽을 향해 앉는다. 使南面: 여기서는 고위 관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6·2
仲弓问子桑伯子1. 子曰: “可也简2.” 仲弓曰: “居敬而行简3,以临其民4,不亦可乎5? 居简而行简6,無乃大简乎?7” 子曰: “雍之言然8.”
冉雍이 자상백자라는 사람이 어떤지를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괜찮다. 政令이 간명한 편이니 말이다.”라고 하였다. 염옹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지 이렇게 말하였다. “엄숙하고 책임지는 태도에 입각하여 간단명료한 순서로써 백성들의 목적에 다가선다면 또한 괜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무책임한 태도로 일처리를 대충대충 한다면 어떻게 지나치게 간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말이 참으로 옳구나.”라고 하였다.
[주석]
1) 仲弓问子桑伯子(중궁문자상백자) -- 仲弓: 冉雍의 字이며 子弓이라고도 한다. 공자의 제자로 덕행으로 유명하였다. 子桑伯子: 人名으로, 생평은 확실치 않다. 장자가 말하는 子桑戶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2) 可也简(가야간) -- 괜찮다. 간명하구나. 즉 정치적 명령이 간단명료해서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라는 뜻이다. 可也: 자상백자라는 사람이 괜찮은 편이라는 뜻이다. “也”는 판단이나 결정의 어기를 나타낸다. 简: 현대중국어로 简要나 不烦琐에 해당한다. 간단명료하고 번쇄하지 않다.
3) 居敬而行简(거경이행간) -- 엄숙한 마음을 품고서 간략함을 행하다. 즉 정중하면서도 책임지는 태도에 입각하여 간편하고도 빠른 일처리 순서로써 처리한다는 뜻이다. 居敬: 居는 동사로 ‘마음에 품다’ ‘두다’ ‘먹다’의 뜻이다. ‘생각’ ‘속마음’을 뜻하는 ‘居心’이라는 말과 통한다. 行简: 정치적인 일처리가 간략하고 번잡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4) 以临其民(이림기민) -- 이로써 그 백성에 임하다. 즉 이로써 백성들의 목적에 가까이 다가선다는 뜻이다. 以: 这样. 이로써. 이렇게. 临: 面临. 面对. 직면하다. 대면하다. 여기서는 통치하다, 다스리다, 관리하다(治理. 管理)의 뜻으로 쓰였다.
5) 不亦可乎(불역가호) -- 정말로 괜찮지 않겠습니까? “亦”은 강조의 의미로, “정말로”의 뜻이다.
6) 居简而行简(거간이행간) -- 간단한 마음을 가지고 간략함을 행하다. 즉 무책임한 태도를 가지고 일처리를 대충대충 하는 것을 뜻한다. 居简: 무책임한 마음을 품다. 行简: 일처리를 대충대충 행하다.
7) 無乃大简乎(무내대간호) -- 어찌 지나치게 간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無乃: 岂不是. 어찌 …이 아니겠는가? 大简: 太简单. 대단히 간단하다. 너무 간단하다. 지나치게 간편하다. “大”는 “太”와 같다.
8) 雍之言然(옹지언연) -- 옹의 말이 옳다. 즉 너의 그런 견해가 참으로 옳다는 뜻이다. 雍: 冉雍, 즉 仲弓을 가리킨다. 然: 对. 是. 옳다. 맞다.
6·3
哀公问1: “弟子孰为好学?” 孔子对曰: “有颜回者好学, 不迁怒2, 不贰过3, 不幸短命死矣4. 今也则亡5, 未闻好学者也.”
애공이 묻기를 “선생의 제자들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가장 좋아합니까?”라고 하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안회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좋아해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범하지도 않았는데, 불행하게도 단명해서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이런 제자가 없어 지금까지 아직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哀公(애공) -- 魯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蔣이었다.
2) 不迁怒(불천노) -- 이 사람에 대한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분출하는 것을 말한다. 迁怒: “移怒”라고도 하며, “아무에게나 분풀이 하다”,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다”의 뜻이다.
3) 不贰过(불이과) -- “贰”는 반복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똑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4) 不幸短命死(불행단명사) -- 단명하여 죽다. 颜回가 죽을 때 나이가 겨우 31세였다.
5) 今也则亡(금야즉무) -- 지금은 죽고 없다. 亡: “無”자와 같다.
6·4
子华使於齐1, 冉子为其母请粟2. 子曰: “與之釜3.” 请益4. 曰: “與之庾5.” 冉子與之粟五庾6. 子曰: “赤之適齐也7, 乘肥马8, 衣轻裘9. 吾闻之也: 君子周急不济富10.”
자화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떠나자 염유가 공자에게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청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어머니에게 1부(6말4되)를 가져다 주거라.”라고 하자 염유는 좀 더 주자고 청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럼 1유(16말)를 가져다 주거라.”라고 하였다. 염유는 몰래 5유(80말)를 가져다주었다. 공자께서 이 일을 알고 나서 말씀하시기를 “공서적이 제나라로 가면서 살찐 말을 타고 가볍고도 따스한 가죽옷을 입었더구나. 나는 군자란 빈궁한 사람을 구제하지 부유한 사람을 구제하지 않는다고 들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子华使於齐(자화사어제) -- 자화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다. 子华: 성은 公西, 이름은 赤, 자는 子华이다.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42세 어리다.
2) 冉子为其母请粟(염자위기모청속) -- 염유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청하다. 冉子: 冉有를 가리킨다. ≪논어≫ 속에서 공자의 제자들에 의해 “子”로 불리는 사람이 네댓 명에 불과한데, 염유가 그 중의 한 사람이다. 为其母: 子华의 어머니를 위하여. 粟: 고문에서 粟과 米가 연용될 때 粟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낟알을 가리키고, 껍질을 벗긴 후를 쌀(米)이라고 한다. 粟자가 단독으로 사용될 때 米가 되는 것이다.
3) 與之釜(여지부) -- 자화의 어머니에게 1부의 곡식을 주다. 與之: 자화의 어머니에게 주어라. 釜: 양을 나타내던 명칭으로, 1釜는 대략 6말(斗) 4되(升)에 해당한다.
4) 请益(청익) -- 더 해주기를 청하다. 공자가 자화의 어머니에게 주라고 한 곡식이 적다고 여겨 염유가 더 주자고 공자에게 요청하는 말이다.
5) 與之庾(여지유) -- 자화의 어머니에게 1유의 곡식을 주다. 庾: 양을 나타내던 명칭으로, 1庾는 16말(斗)이다.
6) 冉子與之粟五庾(염자여지속오병) -- 염유가 자화의 어머니에게 곡식 5유를 주다. 庾: “秉”자로 된 것도 있는데, 1秉은 16곡(斛)이었고, 1곡은 10말(斗)이었다. 5병이면 80곡(800말)이나 되니 지나치게 많다.
7) 赤之適齐也(적지적제야) -- 자화가 제나라로 가다. 赤: 公西赤, 즉 사신으로 가는 子华를 가리킨다. 適齐: 제나라로 가다.
8) 乘肥马(승비마) -- 살찐 말을 타다. 乘: 원래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말이 끄는 수레를 말한 것이다.
9) 衣轻裘(의경구) -- 가볍고 따뜻한 가죽옷을 입다. 衣: 동사로 ‘입다’의 뜻이다. 裘: 가죽 옷(皮衣).
10) 君子周急不濟富(군자주급불제부) -- 군자는 빈궁한 사람을 구제하지 부유한 사람을 돕지 않는다. 周: 周济. 救济. 구제하다. 도와주다. 急: 빈궁한 사람을 가리킨다. 济: 接濟. 增益. 돕다. 늘리다. 富: 부유한 사람을 가리킨다.
6·5
原思为之宰1, 與之粟九百2, 辞3. 子曰: “毋4, 以與尔邻里乡黨乎5!”
원사가 공자의 집의 관리인이 되었는데, 공자께서 그에게 봉록으로 곡식 900을 주니 원사가 사양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양하지 말라! 가져다가 너의 이웃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거라!”
[주석]
1) 原思为之宰(원사위지재) -- 원사가 공자의 관리인이 되다. 原思: 성은 原, 이름은 宪, 자는 子思, 鲁나라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로 기원전 515년에 태어났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사법관으로 있을 때 원사가 공자의 집에서 관리인으로 있었다. 爲: 做. 되다. 之: 공자를 가리킨다. 宰: 家宰. 管家. 총관. 지배인. 관리인.
2) 與之粟九百(여지속구백) -- 그에게 곡식 900을 주다. 與: 給. 주다. 之: 원사를 가리킨다. 粟: 곡식. 九百: 곡식의 양을 나타내는데, 뒤에 단위가 생략되어 지금은 알 수 없다.
3) 辞(사) -- 사양하다. 공자가 준 봉록이 많다고 하여 받지 않겠다고 사양한 것을 가리킨다.
4) 毋(무) -- 不要. 不可以. 하지마라. 봉록이 많다고 사양하는 원사에게 사양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이다.
5) 以與尔邻里乡黨乎(이여이린리향당호) -- 이것을 너의 고향사람이나 주변사람에게 주거라. 以: 拿. 가져가다. 與爾: 너의 …에게 주거라. 邻里乡黨: 고대의 주민조직단위. 여기서는 원사의 고향 사람이나 고향 주변의 백성을 가리킨다. 5戶를 邻이라 하였고, 比라고도 한다. 5鄰을 里라 하였고, 閭라고도 하는데, 25가구이다. 4里가 族인데, 100가구이다. 5族을 黨이라고 하는데, 500가구이다. 5黨을 州라고 하는데, 2500가구이다. 5州를 鄕이라고 하는데, 12,500가구가 1鄕이다. 그래서 鄕侯 또 萬戶侯라고 했던 것이다.
6·6
子谓仲弓, 曰: “犁牛之子骍且角1, 虽欲勿用2, 山川其舍诸3?”
공자께서 중궁에게 말씀하셨다. “얼룩소의 새끼에게 붉은 털과 가지런한 두 개의 뿔이 자라고 있다면 비록 희생으로 안 쓰려고 해도 산천의 신이 어떻게 그 얼룩소 새끼를 내버려두겠느냐?”
[주석]
1) 犁牛之子骍且角(리우위지성차각) -- 犁牛: 얼룩소. 고대에 제사용의 소는 농사용의 소로 대신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붉은 털과 긴 뿔을 가진 소를 별도로 사육하였다. 骍: 붉은 색. 角: 두 개의 뿔이 가지런하다는 뜻. 고대에는 붉은 색을 숭상해서 제사 때는 붉은 색의 소를 사용하였다. 犁牛가 여기서 仲弓의 부친을 비유하는 데에 사용되었고, 犁牛之子는 중궁을 비유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 구는 중궁의 부친이 비록 “신분이 비천하다(下賤)”고는 하나 그의 아들은 “고관이 될 만한(可使南面)” 인재라는 의미이다.
2) 虽欲勿用(수욕물용) -- 비록 (제사에 희생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도. 虽: 비록. 欲: …하려고 하다. 勿: “不”과 같은 뜻의 否定을 나타낸다. …하지 않다. 用: 제사에 사용하다. 즉 제사의 희생으로 사용하다.
3) 山川其舍诸(산천기사제) -- 산천의 신이 어떻게 버려두겠는가? 山川: 산천의 신. 이것은 상층의 통치자를 비유한 것이다. 其: 부사로 추측이나 반문을 나타낸다(현대중국어의 “怎麽会”의 뜻). 어떻게 …하겠는가? 舍: 버리다(捨). 诸: “之於” 두 글자의 합음. “그것을 …에”의 의미.
≪冉氏族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염옹의 부친 冉離는 顔氏를 아내로 맞아 長子인 冉耕을 낳았고, 자가 伯牛이다. 次子는 冉雍이며, 자가 仲弓이다. 안씨가 죽고 난 후 또 公西氏를 아내로 맞아 冉求를 낳았는데, 자를 子有라 하고 冉有로 통칭되며 有子라고도 한다. 후에 공서씨가 3형제를 공자에게 맡겨 공부하도록 하였다. 염씨 3형제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공자의 격려로 모두 학문적으로 성공을 거두어 모두 공자의 10대 제자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바로 德行분야에 冉伯牛와 仲弓이, 政事분야에 冉有가 꼽히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절에서 공자가 冉雍을 격려하여 목축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비천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고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과 소질이라는 강조하고 있다.
6·7
子曰: “回也, 其心三月不违仁1, 其餘则日月至焉而已矣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는 그의 마음이 오랫동안 仁德을 어기지 않을 수 있었지만 다른 제자들은 가끔 기억할 뿐이었다.”
[주석]
1) 其心三月不违仁(기심삼월불위인) -- 그 마음은 3개월이 넘도록 인을 어기지 않았다. 즉 안회는 오랫동안 仁의 원칙을 어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其心: 그의 마음. 즉 안회의 마음. 三月: 비교적 긴 시간을 가리킨다. 不违仁: 仁을 어기지 않다. 즉 仁德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2) 其餘则日月至焉而已矣(기여즉일월지언이이의) -- 그 나머지는 곧 하루나 한 달에 이르렀을 뿐이었다. 즉 기타 제자들은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고, 대부분의 제자들은 2, 3일 정도 유지하거나 길어야 한 달 정도 유지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其餘: 그 나머지. 즉 안회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 日月: 비교적 짧은 시간을 가리킨다. 至焉: 이에 이르다. 즉 仁德에 이르다. 焉은 介词 “於”에 代词 “此”의 어법 기능이 더해진 것으로 “이에. 여기에(於此)”에 해당한다. 而已矣: 語氣詞가 연용된 것으로 “而已”는 한정을 나타내며 “矣”는 語氣를 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할 뿐이다”로 해석한다.
6·8
季康子问1: “仲由可使从政也與2?” 子曰: “由也果3, 於从政乎何有4?” 曰: “赐也可使从政也與5?” 曰: “賜也达6, 於从政乎何有?” 曰: “求也可使从政也與7?” 曰: “求也艺8, 於从政乎何有?”
계강자가 묻기를 “중유에게 정무를 맡길 수 있을까요?”라고 하자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중유는 과단성이 있으니, 정치를 하는 데에 무슨 좋은 점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계강자가 또 묻기를 “단목사에게 정무를 맡길 수 있을까요?”라고 하자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단목사는 성격이 활달하여 거침이 없으니 정치를 하는 데에 무슨 좋은 점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계강자가 또 묻기를 “염구에게 정무를 맡길 수 있을까요?”라고 하자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염구는 육예를 닦았지만 전문적인 인재가 아니니 정치를 하는 데에 무슨 좋은 점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석]
1) 季康子问(계강자문) -- 계강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季康子(?-기원전468): 춘추말기에서 전국초기에 걸쳐 살았던 노나라 사람이다. 성은 季孙, 이름은 肥, 시호는 康이었다. 노라의 대부로, 魯哀公 때 최고 권력인 正卿으로 있었다. 그가 집정하자 각지를 유세하던 공자는 8년이라는 우여곡절의 담판을 통해 마침내 노나라로 돌아왔다. 이 때 冉求는 계강자를 도와 혁신적인 조치를 하고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오고 난 뒤에 한 것이다.
2) 仲由可使从政也與(중유가사종정야여) -- 중유를 정사에 종사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仲由(기원전 542-기원전 480): 자가 子路, 또는 季路라고도 하며, 춘추시기 노나라 卞지방(지금의 山东 平邑县 仲村)사람이다. 공자의 제자로 정치에 뛰어났다. 可使: …을 하게 할 수 있다. 从政: 정치에 종사하다. 즉 정치에 참여하다. 군주는 爲政이라 하고, 대부는 从政이라 한다. 也與: 어기사가 연용된 형태로 “也歟”라고도 한다. “也”는 단정을, “與(歟)”는 의문․반문․추측․감탄을 나타내고, 중점은 “與(歟)”에 있다. “…입니까?”, “…이지요”, “…인가?” 등으로 해석한다. “也乎”와 같다.
3) 由也果(유야과) -- 중유는 과단성이 있다. 由: 仲由, 즉 子路를 말한다. 也: 句 중에 쓰여 멈춤을 나타낸다. “…면”, “…는”, “…이”라고 해석한다. 果: 과단성이 있다. 결단력이 있다. 아직 독단에 이르지 않은 상태.
4) 於从政乎何有(어종정호하유) -- 정치를 하는 데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즉 정무를 처리하는 데에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는 뜻이다. 於: …에 대하여. 从政: 政事에 참여하다. 政事를 처리하다. 乎: 句 중에 쓰여 잠시 멈춤이나 느슨함을 나타낸다. “…인가”라고 해석하며, 해석하지 않기도 한다. 何有: 반문의 어기. 무엇이 있는가. 어찌 있겠는가.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어렵지 않다.
5) 赐也可使从政也與(사야가사종정야여) -- 단목사를 정사에 종사하게 할 수 있을까요? 赐: 端木賜(기원전 520-기원전 456)를 가리킨다. 그는 자가 子贡으로, 孔门 72贤의 한 사람이었다. 공자의 가장 만족스러운 제자로 언어에 뛰어났다고 한다.
6) 賜也达(사야달) -- 단목사는 성격이 활달하다. 즉 성격이 활달하여 거침이 없다는 뜻이다. 达: 활달하다. 거침이 없다. 밝다.
7) 求也可使从政也與(구야가사종정야여) -- 염구를 정사에 종사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求: 冉求(기원전 522—?)를 가리킨다. 그는 자가 子有, 또는 冉有이다. 춘추말년 노나라(지금의 山东 曲阜) 사람이었다.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29세가 어렸다. 孔門72賢의 한 사람이다.
8) 求也艺(구야예) -- 염구는 육예를 닦다. 즉 육예를 닦아 다재다능하나 전문적인 인재는 아니라는 함의이다. 艺: 재능과 기예가 있다. 즉 다재다능하다.
이 절에서 공자가 계강자의 질문에 이런 저런 이유도 없이 곧장 뛰어난 제자들을 낮추어 평가했던 것은 제자들을 아무에게나 보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음 절에서 언급되는 제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6·9
季氏使闵子骞为费宰1, 闵子骞曰: “善为我辞焉2! 如有復我者3, 则吾必在汶上矣4.”
계씨가 민자건을 그의 費城의 시장으로 삼으려고 하자 민자건이 사자에게 말하였다. “제발 나를 대신에 거절해 주십시오! 만약 다시 나를 찾아오는 자가 있으면 난 반드시 문수 이북으로 달아날 것이오!”
[주석]
1) 季氏使闵子骞为费宰(계씨사민자건위비재) -- 계씨가 민자건을 그의 비지의 현장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季氏: 노나라의 대부 季孫氏이다. 삼환 중에서도 가장 세도를 부렸으며 노나라의 昭公을 축출하는 등 월권행위를 일삼았다. 使: 사역동사로 “…으로 하여금 …하게 하다”의 뜻이다. 闵子骞: 성은 闵, 이름은 损, 자는 子骞으로 노나라의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로 덕행이 높았으며 공자보다 15세 어렸다. 费: 季氏의 封邑으로, 지금의 산동성 비현 서북쪽 일대이다. 宰: 邑宰, 즉 縣長에 해당한다.
2) 善为我辞焉(선위아사언) -- 제발 나를 위해 거절해 주오! 善: 제발. 잘. 为我: 나를 위해. 나를 대신하여. 辞焉: 그들에게 사양하다.
3) 如有復我者(여유부아자) -- 如有…者: 만약 …하는 자가 있다면. 復我: 다시 나를 찾아오다.
4) 则吾必在汶上矣(즉오필재문상의) -- 그럼 난 반드시 문수 이북으로 달아날 것이오! 则: 인과관계를 나타낸다. “곧”의 뜻이다. 汶上: 汶은 물 이름으로, 지금의 산동성 大汶河이다. 汶上은 汶水의 북쪽이다. 汶水는 齊나라의 남쪽과 노나라의 북쪽 경계에 흐르는 강물이다. 여기서는 다른 나라의 뜻으로 쓰였다. 민자건이 “吾必在汶上”이라고 한 말은 바로 제나라로 달아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가 계씨의 읍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6·10
伯牛有疾1, 子问之2, 自牖执其手3, 曰: “亡之4, 命矣夫5! 斯人也而有斯疾也6! 斯人也而有斯疾也!”
백우가 병에 걸리자 공자께서 문병을 가셔서 창 너머로 그의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셨다. “너를 잃게 되다니! 운명의 장난이로다! 덕행이 출중한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덕행이 출중한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주석]
1) 伯牛有疾(백우유질) -- 伯牛: 성은 冉, 이름은 耕, 자는 伯牛,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공자는 그의 덕행이 훌륭하다고 여겼다. 有疾: ≪淮南子≫에서는 癩病(문둥병)이라고 하였다.
2) 子问之(자문지) -- 공자께서 그를 문병하다. 問: 问候. 慰问. 문병하다. 之: 백우를 가리킨다.
3) 自牖执其手(자유집기수) -- 창문 안으로 그의 손을 잡다. 自: …로부터. 牖: 창문. 其: 백우를 가리킨다.
4) 亡之(망지) -- 백우를 잃겠구나. 亡: 잃다. 즉 죽게 될 것이라는 뜻. 之: 백우를 가리킨다.
5) 命矣夫(명의부) -- 운명이로다. 命: 동사로 “이것은 운명이다”의 뜻으로 쓰였다. 矣夫: 어기사가 연용된 것으로, “矣”는 “이미 그러한”, “장차 그러할”이란 의미이다. “夫”는 감탄을 나타내며, 중점은 “夫”자에 있고, “…하구나”, “…이겠지”, “…인지”라고 해석한다. “夫”는 현대중국어의 “吧”에 해당한다.
6) 斯人也而有斯疾也(사인야이유사질야) --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斯人: 이런 (훌륭한) 사람. 斯疾: 이런 질병.
6·11
子曰: “贤哉, 回也1, 一箪食2, 一瓢饮3, 在陋巷4, 人不堪其忧5, 回也不改其乐6. 贤哉, 回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는 참으로 어질다! 한 그릇의 밥을 먹고 한 쪽박의 물을 마시며 누추한 동네에 살다보면 남들은 그 괴로움을 견딜 수 없지만 안회는 자신이 즐겁다고 여기는 것을 바꾸지 않았다. 안회는 참으로 어질다!”
[주석]
1) 贤哉, 回也(현재, 회야) -- 어질도다! 안회여! “안회는 참으로 어질도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즉 “안회의 인품이 이 얼마나 고상한가?”의 뜻이다. 이 구는 감탄의 어기가 도치된 것이다. 哉: 감탄을 나타내는 어기조사. 현대중국어의 “啊”에 해당한다. “아!”라고 해석한다. 也: 구 말에 쓰여 판단이나 긍정의 어기를 나타낸다. 현대중국어의 “啊”나 “呀”에 해당한다.
2) 一箪食(일단사) -- 한 그릇의 밥. 箪: 고대에 밥을 담을 때 사용하던 원형의 대나무 그릇. 食: 명사로 발음은 사, 뜻은 밥.
3) 一瓢饮(일표음) -- 한 쪽박의 물. 瓢: 표주박.
4) 在陋巷(재누항) -- 누추한 골목에 살다. 陋巷: 누추한 동리. 여기서는 안회가 살고 있는 빈촌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곧고 넓은 길을 “街”라 하고, 좁고 굽은 길을 “巷”이라 한다.
5) 人不堪其忧(인불감기우) -- 다른 사람은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다. 不堪: 견디지 못하다. 참지 못하다. 其憂: 그런 걱정. 즉 현실적인 생활고를 뜻한다.
6) 回也不改其乐(회야불개기악) --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다. 乐: 乐於学.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다.
6·12
冉求曰1: “非不说子之道2,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废3. 今女画4.”
염구가 말하였다. “제가 선생님의 학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의 능력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서 그만두게 될 것이다.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으니 전혀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주석]
1) 冉求曰(염구왈) -- 염구가 말하였다. 冉求: 공자의 제자인 冉有이다.
2) 非不说子之道(비불열자지도) -- 선생님의 학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非不: 이중 부정으로 강한 긍정을 나타낸다. “…않는 것이 아니다.” 현대중국어의 “非常”이나 “極其”에 해당한다. 说: “悦”자와 같다. “기뻐하다”, “좋아하다”의 뜻이다. 子之道: 공자의 학설을 가리킨다.
3) 中道而废(중도이폐) -- 도중에 나아가기를 그만두다. 中道: “도중”이나 “중도”. 현대중국어로 “半路”, “中途”에 해당한다. 废: 포기하다. 그만두다.
4) 今女画(금녀획)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그었다. 즉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나아가기를 두려워하는 염구의 소극적인 태도를 공자가 비판한 것이다. 女: “汝”자와 같다. “너”, “당신”의 뜻으로, 염구를 가리킨다. 畵: 긋다. 제한하다.
이 절에 나오는 염구는 이후에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때 계씨 집안에서 고관이 되어 넉넉한 봉록을 누렸다. 그는 줄곧 계씨를 도와 재물을 긁어모으는 행동을 보였다. “爲政以德”을 표방했던 공자로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여겼던지 결국 제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비판하라(鼓而攻之)”(<先進篇第十一>에 자세함)고 요구했던 것이다.
6·13
子谓子夏曰1: “女为君子儒2, 無为小人儒3.”
공자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 같은 선비가 되려고 해야지 소인 같은 선비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되느니라.”
[주석]
1) 子谓子夏曰(자위자하왈) -- 공자께서 자하에게 일러 가로되. 子夏: 卜商의 字. 문학과 학문에 뛰어났다고 한다.
2) 女为君子儒(여위군자유) -- 너는 군자다운 선비가 되어라. 女: 자하를 가리킨다. 为: 되다. 儒: 會意字. 人과 需자로 구성된 글자로 합치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재라는 뜻을 나타낸다. 本義가 “人才”이다. 詩․書․禮(도덕교육)․樂(음악)․射(군사훈련)․御(수레몰기)라는 六藝에 정통한 인재.
3) 無为小人儒(무위소인유) -- 소인 같은 선비는 되지 말라. 無: “毋”와 통하고, 권고나 금지를 나타내며 “…하지마라”라고 해석한다. 현대중국어의 “不要”나 “别”에 해당한다.
무엇이 “君子儒(군자 같은 선비)”일까? 간단하게 말해서 이것은 군자의 도를 지닌 선비를 말한다. 그럼 군자의 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앞에서 언급된 군자에 관한 논술들을 종합하면 다음의 몇 가지 원칙으로 귀납된다.
1. 스스로 위엄이 있도록 한다. 2. 부지런히 배운다. 3. 융통성이 있게 행동한다. 4. 남과 화합하며 서로 돕도록 한다. 5. 행동을 말보다 중하게 여긴다. 6. 인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한다. 7. 천하를 백성들의 것으로 여겨 사사로움이 없도록 한다. 8. 사회의 공적인 덕을 준수하고 기강과 법을 지킨다. 9. 의로움을 보면 용감하게 행동한다. 10. 일처리는 효율이 높도록 한다. 11. 행위는 정직하게 하고 맡은 일은 철저하게 하며, 군주를 존중하고 백성들이 이롭도록 한다. 12. 남을 돕는 것을 즐긴다.
소인들도 다음의 몇 가지 사실로 귀납된다.
1. 사사로이 무리를 짓는다. 2. 오로지 사적인 이득만을 생각한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꼭 군자라고 하지 않는다는 알 수 있다. 재능은 있지만 인품이 훌륭하지 않으면 바로 소인식의 인재인 것이다. 공자가 존중한 군자는 바로 군자의 도를 지닌 인재였지 모든 인재(儒者)는 아니었다.
6·14
子游为武城宰1. 子曰: “女得人焉尔乎2?” 曰: “有澹臺灭明者3, 行不由径4, 非公事5, 未尝至於偃之室也6.”
자유가 무성현의 현령이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곳에서 어떤 인재를 발견했느냐?”라고 하자 자유가 대답하기를 “담대멸명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걸을 때는 지름길을 가지 않았고, 공무가 아니면 제가 머무는 곳에 온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子游为武城宰(자유위무성재) -- 子游: 공자의 제자로 言偃의 字이다. 武城: 노나라의 고을 이름으로, 지금의 산동성 费현 경내에 있었다. 宰: 縣令.
2) 女得人焉尔乎(여득인언이호) -- 그대는 인재를 얻었는가? 女: 자유를 가리킨다. 得人: 사람을 얻다. 즉 훌륭한 인재를 발견하다. 焉尔乎: 어기사가 연용된 것으로 중점은 “乎”자에 있고, “…입니까?”라고 해석한다.
3) 有澹臺灭明者(유담대멸명자) -- 담대멸명이라는 사람이 있다. 澹臺灭明: 성은 澹臺, 이름은 灭明, 자는 子羽, 武城사람이다. ≪史記․仲尼弟子列傳≫에서 그를 공자의 제자로 열거하고 있다.
4) 行不由径(행불유경) -- 걷는데 좁은 길을 가지 않는다. 行: 길을 가다. 由: 가다. 경유하다. 거치다. 현대중국어의 “行走”에 해당한다. 径: 지름길. 좁은 길. 오솔길. 현대중국어의 “小路”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사악한 길(邪路)”이라는 뜻으로 引申되었다.
5) 非公事(비공사) -- 공무가 아니면. 公事: 공적인 일.
6) 未尝至於偃之室也(미상지어언지실야) -- 일찍이 저의 집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 즉 한 번도 사사로이 현령 벼슬을 하고 있는 자유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未尝: 부사로 동사 앞에 쓰이고, “없다”, “일찍이 …없다”라고 해석한다. 至於: …에 이르다. 偃: 言偃. 즉 子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자유가 자신의 이름을 자칭한 것이다. 室: 머무는 곳. 즉 자유가 살고 있는 곳.
6·15
子曰: “孟之反不伐1, 奔而殿2, 将入门3, 策其马4, 曰: ‘非敢後也5, 马不进也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다. 한 번은 군대가 전쟁에 패해 도주할 때 맨 뒤에서 적들과 싸웠는데, 성문에 들어설 때 자신의 말을 채찍질 하며 말하기를 ‘내가 뒤에 남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이놈의 말이 앞으로 가지 않아서였지요.’라고 했지.”
[주석]
1) 孟之反不伐(맹지반불벌) -- 맹지반은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다. 孟之反: 성은 孟, 이름은 侧, 자가 之反이다. 노나라의 대부였다. 伐: (능력, 공로, 지위 등을) 뽐내다. 자랑하다. 과시하다. 현대중국어의 “夸耀”에 해당한다.
2) 奔而殿(분이전) -- 패주할 때 맨 뒤에서 엄호하다. 奔: 败走하다. 즉 군대가 패하여 후퇴하는 것을 가리킨다. 殿: 부대의 맨 뒤에서 행군하다. 현대중국어의 “殿後”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군대의 후미에서 엄호하는 것을 가리킨다.
3) 将入门(장입문) -- 성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다. 将: …하려고 하다. 현대중국어의 “快要”에 해당한다. 入門: 성문으로 들어가다.
4) 策其马(책기마) -- 자신의 말을 채찍질하다. 策: 채찍질하다. 其马: 맹지반 자신의 말.
5) 非敢後也(비감후야) -- 뒤처지고자 한 것이 아니다. 非敢: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後: 뒤에 처지다. 맹지반이 의도적으로 후퇴하는 군대의 후미에 남아 엄호한 것을 뽐내지 않는 태도를 알 수 있다.
6) 马不进也(마불진야) -- 말이 나아가지 않다. 즉 맹지반 자신이 후미에서 엄호했던 공을 말이 달리지 않아서였다는 말로 숨기고 있다.
6·16
子曰: “不有祝鮀之佞1, 而有宋朝之美2, 难乎免於今之世矣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 영공이) 축타의 재능을 중시하지 않고, 송나라 공자 조의 아름다움만을 좋아하니, 지금의 난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석]
1) 不有祝鮀之佞(불유축타지녕) -- 문자 상으로 “축타의 구변이 있지 않다”이지만 실제로는 “衛靈公은 축타의 재능을 중시하지 않았다”의 뜻이다. 有: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중시하다”나 “좋아하다”로 인신되었다. 祝鮀: 衛나라의 대부로, 자가 子鱼이다. 위나라 종묘의 제사와 의식을 관장하는 예의 관원이었다. 외교사령에 뛰어났다. 佞: 문자 상 “말 재주”의 뜻이나, “재능”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2) 而有宋朝之美(이유송조지미) -- 오히려 송의 공자 조의 미색만을 좋아하다. 而: 오히려. 현대중국어의 부사 “却”에 해당한다. 有: 앞 구의 “有”와 같다. 宋朝: 송나라의 公子 朝로, 용모가 아름다운 것으로 당시에 이름이 알려졌다. ≪左傳≫ 昭公 20년과 定公 14년에 그가 아름다운 용모로 궁정 안을 어지럽혔다는 기록이 있다.
3) 难乎免於今之世矣(난호면어금지세의) -- 지금의 세상을 면하기 어렵다. 즉 지금 세상에서 재난을 모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难乎: …하기에 어렵다. 免於: …을 면하다. 今之世: 지금의 난세. 이 구는 공자가 당시 사회가 덕을 숭상하지 않고 아첨과 미색만을 좋아하는 현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 이 절의 다른 해석: 공자가 말하기를 “축타와 같은 그런 말재주가 없다면, 설사 송조처럼 잘 생겼다 해도 지금 세상에서는 재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 이 절의 다른 해석: 공자가 말하기를 “축타와 같은 그런 말재주와 송조와 같은 미색이 없다면 지금 세상에서 증오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6·17
子曰: “谁能出不由户1, 何莫由斯道也2?”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어찌하여 이 방법을 통해 문을 나가는 사람이 없는가?”라고 하였다.
[주석]
1) 谁能出不由户(수능출불유호) -- 누군들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수 있으랴! 不由: 경유하지 않다. 戶: 방문. 堂과 室로 통하는 半門을 말한다.
2) 何莫由斯道也(하막유사도야) -- 어째서 이 방법에 말미암지 않는가? 즉 어떻게 이런 방법을 통해 문을 나가지 않느냐는 뜻이다. 何莫: 어찌하여 …하는 사람이 없는가? 由: 경유하다. 거치다. 斯道: 이 길. 즉 ‘이 방법’을 뜻한다. 이 “斯道”를 어떤 이들은 공자가 주장하는 仁義之道라고 府會하기도 하는데, 굳이 이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공자는 공명정대하고 정정당당함을 주창하기 위해 단순한 예를 든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자가 “나의 도”를 지칭할 때 “吾道”라고 했지 “斯道”라고 하지 않는다.
6·18
子曰: “质勝文则野1, 文勝质则史2. 文质彬彬3, 然後君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천적 본성이 후천적 교육을 앞지르면 야만스러워 보이고, 후천적 교육이 선천적 본성을 앞지르면 세상일에 어두워 보인다. 선천적 본성과 후천적 교육이 조화를 이루고 나서야 군자의 도가 생기는 것이다.”
趙紀彬 譯
공자: 본성(의 측면)이 문화(의 측면)를 압도하면 예악에 대한 교양이 없어지고, 예악이 본성을 압도하면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본성과 예악이 조화를 이루어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
[주석]
1) 质勝文则野(질승문즉야) -- 투박한 바탕이 화려한 수식을 이기면 곧 거칠게 보인다. 즉 ‘선천적 본성이 후천적 교육을 앞지르면 야만스러워 보인다’는 뜻이다. 质: 質朴. 꾸밈이 없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것. 즉 선천적 본성을 일컫는다. 勝: 이기다. 두드러지다. 앞지르다. 文: 文彩. 수식을 거쳐 화려하게 된 것. 즉 후천적 교육을 가리킨다. 野: 거칠고 촌스러운 것. 여기서는 ‘야만스럽게 보이다’의 뜻.
2) 文勝质则史(문승질즉사) -- 화려한 수식이 투박한 바탕을 이기면 곧 피상적이 된다. 즉 ‘후천적 교육이 선천적 본성을 앞지르면 세상일에 어두워 보인다’는 뜻이다. 史: 言词가 华丽한 것. 실제적이지 못한 것. 즉 ‘세상일에 어두운 것’을 가리킨다. “史”는 원래 文書를 관장하던 사람으로, 주로 진술하는 식의 말로 객관적으로 사건을 기록하기 때문에 史官의 진심과는 관계가 없다. 그래서 실제적이지 않은 피상적이라는 의미로도 쓴다. 또 말이나 문장에 전고나 시구를 인용하여 학문이 있음을 나타내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서생을 나타내기도 한다.
3) 文质彬彬(문질빈빈) -- 성어. 화려한 수식과 투박한 바탕이 잘 어울린다. 彬彬: 배합이 적당한 것. 즉 ‘文과 质의 배합이 아주 적당한 것’을 가리킨다. 원래는 사람이 고상하기도 하고 소박하기도 한 것을 형용했는데, 나중에 사람이 고상하면서 예의가 있는 것을 형용하게 되었다. ‘문질빈빈’이라는 전고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공자는 仁義는 質(바탕)이고 禮樂은 文(수식)이니 만큼 바탕과 수식은 내용과 형식의 관계로, 반드시 적절하게 어울려야하지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즉 사람의 선천적 본성을 지켜야 하고, 또 배움을 통해서 자신을 끌어올려야 비로소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6·19
子曰: “人之生也直1, 罔之生也幸而免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본성은 정직한 것이고, 누구의 본성도 이 법칙을 요행히 피해갈 수 없다.”
[주석]
1) 人之生也直(인지생야직) -- 사람의 본성은 정직한 것이다.
2) 罔之生也幸而免(망지생야행이면) -- 누구의 본성도 이 법칙을 요행으로 피해갈 수 없다. 罔: 代詞. 사람이 없다. 아무도 없다. “罔”은 여기서 指示代詞로 쓰여 앞 구의 명사 “人”과 같이 주어가 된다. “罔”이 최초로 사용될 때는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없는 대사였는데, 후에 “…하지 않다”나 “…하는 자가 없다”는 의미의 “莫”으로 쓰이게 된다. 예:
a. 四方之民, 罔不祗畏.(≪尙書․金藤≫)--사방의 백성들 가운데 周武王을 공경하지 않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b. 自成湯至常乙, 罔不明德恤祀.(≪尙書․多士≫)--成湯에서 常乙에 이르는 군주들 중에 도덕을 발양하지 않고 제사에 신중하지 않았던 분은 없었다.
“罔”을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풀이하고, 이 구절 전체를 “사람의 생존은 정직하기 때문인데, 정직하지 않은 사람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요행으로 재앙을 면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또 “사람의 천성은 정직한데,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요행으로 재앙을 면하고 있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할 경우 앞뒤 구절이 서로 연관성을 잃게 된다. 공자의 말은 늘 앞뒤의 말이 연관을 짓고 있는 특징으로 비추어 봐도 어색하다.
여러 古漢語字典에 풀이된 “罔”자의 용법은 대체로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①(명) 魚網. 고기잡이 그물. ②명사의 동사활용. “그물로 잡다”의 뜻. ③引申된 것. “무함하다”, “모함하다”, “박해하다”의 뜻. ④(부) 없다. …하지 않다. 할 수 없다. 하지 마라. 안 된다. ⑤(형) “惘”과 통한다. “미혹되다”, “갈피를 잡지 못하다”, “혼란하다”의 뜻. 이처럼 다섯 가지 용법 중에 어디에도 “부정직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없다.
어법상에서 “人之生也直” 중에 “人”을 주어로 하여 “人之生也, 直”으로 斷句하면 “사람의 천성은, 정직한 것이다”로 쉽게 이해된다. 이를 가지고 유추하면 뒤 구 “罔之生也幸而免” 중의 “罔”은 앞 구의 “人”과 똑같이 주어의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명사나 대사의 신분이 딱 맞다. 명사인 “魚網”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는 통하지 않지만, 無指代詞인 “아무도”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전후가 순조롭게 통하게 된다. 幸而免: 요행으로 (재앙을) 면하다.
공자는 여기에서 “사람의 본성은 원래 정직한 것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로써 누구도 태어나면서 이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주창하고 있다.
6·20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1, 好之者不如乐之者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문에 대하여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에 종사하며 즐기는 사람만 못하니라.”
[주석]
1)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 그것을 아는 자는 그것을 좋아하는 자만 못하다. 知: 이해하다. 之: 공자가 주장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不如: …만 못하다. 好: 좋아하다. 사랑하다.
2) 好之者不如乐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 --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乐之者: 이런 학문에 종사하며 즐거워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6·21
子曰: “中人以上1, 可以语上也2: 中人以下, 不可以语上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해능력이 중등이상의 사람과는 심오한 문제를 연구 토론할 수 있지만, 이해능력이 중등이하의 사람과는 심오한 문제를 연구 토론할 수 없다.”
[주석]
1) 中人以上(중인이상) -- 이해능력이 중등 이상의 사람. 中人: 견문이나 지식 등 이해능력이 중등인 사람.
2) 可以语上也(가이어상야) -- 상등의 것을 말해줘도 된다. 즉 심오한 문제를 토론할 수 있다. 可以语: 말해도 좋다. 즉 “연구 토론할 수 있다”는 뜻이다. 上: 심오한 문제.
6·22
樊迟问知1, 子曰: “务民之义2, 敬鬼神而远之3, 可谓知矣.” 问仁, 曰: “仁者先难而後获, 可谓仁矣.”
번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냐고 묻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고, 귀신에 대한 제사는 공손하게 하되 멀리해야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번지가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어진 사람이냐고 묻자 공자가 또 대답하기를 “어진 이가 먼저 어려움을 겪고, 나중에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어질다고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주석]
1) 樊迟问知(번지문지) -- 번지가 지혜에 대해 물었다. 樊迟: 공자의 제자. 知: “智”자와 같고, “지혜”의 뜻이다.
2) 务民之义(무민지의) --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다. 务: 가르치는 데에 전력을 다하다. 民: 백성. 義: 마땅히 해야 할 일.
3) 敬鬼神而远之(경귀신이원지) --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 귀신에 대한 제사는 공손하게 지내되 귀신을 멀리한다. 즉 귀신을 믿되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仁者先难而後获(인자선난이후획) -- 인자는 먼저 어려움을 겪고 나중에 얻는다. 仁者: 어진 사람. 즉 仁德이 있는 사람. 先难: 어려운 일을 남보다 먼저 처리하다. 後获: 남들보다 후에 보답을 얻는다.
이 구절은 공자가 이해능력이 중인 이하의 사람, 즉 “알고자 하는 사람(知之者)”에게 “知”와 “仁”의 관계를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6·23
子曰: “知者乐, 水1; 仁者乐, 山2; 知者动, 仁者静; 知者乐3, 仁者寿.”
공자가 말하기를 “지혜로운 자의 즐거움은 물과 같고, 어진 자의 즐거움은 산과 같다. 어진 사람은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주석]
1) 知者乐, 水(지자락, 수) -- 지혜로운 자의 즐거움은 물과 같다. 즉 “지혜로운 자의 즐거움은 물과 같이 외면도 즐겁고 내심도 즐겁다.”의 뜻이다. 知: “智”자와 같다. 지혜롭다. 어떤 이는 “知者乐水(지자요수)”로 斷句하여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로 풀이한다. 이 경우 “乐”의 음은 “요(yào)”이며 “좋아하다(喜爱)”의 뜻이 된다. 주2)의 “乐”의 음도 마찬가지이다.
2) 仁者乐, 山(인자락, 산) -- 어진 자의 즐거움은 산과 같다. 즉 “어진 자의 즐거움은 산과 같이 외면은 평온하나 내심은 즐겁다.”의 뜻이다. 어떤 이는 “仁者乐山(인자요산)”으로 斷句하여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로 풀이한다.
3) 知者乐(지자락) -- 지혜로운 자는 즐겁다. 樂: 음은 “락(樂)”이며 “즐거워하다”의 뜻.
이 구절은 공자가 이해능력이 중인 이상의 사람, 즉 “좋아하는 사람(好之者)”과 “즐기는 사람(樂之者)”에게 “知”와 “仁”의 관계를 심오한 언어를 사용하여 풀이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6·24
子曰: “齐一变, 至於鲁1; 鲁一变, 至於道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나라를 일변시키면 노나라처럼 될 수 있을 것이고, 노나라를 일변시키면 선왕의 대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주석]
1) 齐一变, 至於鲁(제일변, 지어로) -- 제가 일변하면 노에 이를 것이다. 당시의 제나라는 도에서 크게 멀어져 太公의 遺法이 다 변경되어 끝이 났지만, 노나라는 예교를 중시하고 周公의 법치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제나라를 변화시키면 현재의 노나라처럼 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2) 至於道(지어도) -- 先王의 大道에 이르다.
사료에 의하면, 周武王은 혁명을 성공시키고 난 후 스승인 尙父(상보)를 제일 먼저 營丘라는 지역에 봉하고 齊라 했다한다. 이 齊의 땅은 당시에 변방으로, 부근에는 오랑캐로 불리는 소수민족인 萊人들이 대대로 거주하고 있었다. 이 萊人의 근간은 매우 깊어 500년 후인 齊景公과 魯定公이 협곡에서 회맹할 때 래인들로 구성된 가무단으로 하여금 공연하게 하였다.
주무왕은 周公旦을 曲阜에 봉하고 魯라고 하였다. 가장 큰 공을 세운 주공단을 주무왕은 변방으로 보내지 않고 가장 발달한 지역인 곡부를 그에게 주었던 것이다. 고증에 의하면, 炎帝가 鎭營에서 魯 곡부로 도읍을 정하였고, 少昊는 窮桑을 식읍으로 하여 제위에 올랐으며 곡부을 도읍으로 정하였고, 顓頊은 처음에는 궁상에 도읍을 정했다가 商丘로 옮겼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바로 전설 속 수 만 년 전 삼황오제시대 때부터 곡부는 줄곧 발달한 대도시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姜太公은 자신이 계책을 내어 최고의 공을 세웠음에도 얻은 것이라고는 불모지에 分封되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이 실망하였다. 그래서 封國으로 가는 길에서 고의로 꾸물대며 불만을 표시하였다. 후에 길에서 어떤 군자의 가르침을 얻고 나서야 서둘러 길을 재촉하였다. 강태공은 營丘에 도착하면서 萊人들을 만나 그 세력권을 빼앗고 잽싸게 격퇴한 후 온 힘을 기울여 정무를 개혁하고 현지 실정에 맞도록 鹽業, 어업, 공상업을 발전시켰다. 5개월 후 수도로 돌아와 복명하였다. 周公이 놀라며 “어떻게 이리 빨리 돌아왔소?”라고 묻자 강태공이 “신은 현지의 실정에 맞추어 우리 周朝의 통일된 문화를 간소화하고 현지의 문화를 발양시킨 덕에 빠른 시일에 정돈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周公은 魯에 분봉되었지만 武王이 떠나보내지 않아 주공의 아들 伯禽이 대신 봉국으로 가서 취임하였다. 그의 아들은 노나라에서 3년을 보내고 수도로 돌아와 보고하였다. 주공이 깜짝 놀라서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늦었느냐?”라고 묻자 백금이 “노나라에 가자마자 우리 周朝의 통일된 문화를 시행하는 데에 착수하여 우선 현지의 문화를 없애느라 3년이 걸렸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공이 듣고는 “아아! 노나라의 후세는 제나라를 섬기게 되겠구나! 정치가 간소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지 않으면 백성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고, 평이하여 쉽게 이해된다면 백성들은 반드시 따르게 될 것이건만!”라고 탄식하였다. 주공의 예측은 대단히 정확하였다. 그는 노나라가 지금은 제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발달하고 국력도 강하지만 노나라의 정책이 제나라만큼 융통성이 없고, 행정효율도 제나라만큼 민첩하지 못하니, 이대로 가면 노나라의 후대는 틀림없이 제나라에 의해 추월당하고 통제당할 것임을 지적하였다.
공자가 생존했던 시기가 바로 노나라의 후대가 제나라를 섬기는 시대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공자는 “제나라의 개혁이 노나라를 추월했음에도 노나라는 어째서 아직 개혁을 하지 않는가? 만일 개혁을 한다면 패주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천하를 태평하게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탄식하였다.
6·25
子曰: “觚不觚1, 觚哉! 觚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고가 고답지 않아도 고라고 할 수 있는가! 고라고 할 수 있는가!”
[주석]
1) 觚不觚(고불고) -- 고가 고답지 못하다. 觚: 고대에 술을 담는 그릇. 위는 원형이고 아래는 사각형으로, 모가 나 있다. 용량은 대략 두 되 정도 되는데, 공자 때에 이르러 원형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고가 고답지 못하다고 개탄하였다. 공자의 진의는 이런 생활 속의 사소한 일을 빌어 당시의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한” 현상에 대한 불만 표시에 있다.
6·26
宰我问曰1: “仁者, 虽告之曰2 ‘井有仁焉’3, 其从之也4?” 子曰: “何为其然也5? 君子可逝也6, 不可陷也7: 可欺也8, 不可罔也9.”
재아가 “만약 인자에게 우물 속에 仁이 있다고 하면 그는 뛰어들어 仁을 찾을까요?”라고 묻자 공자가 “너는 말을 어째서 그렇게 하느냐? 군자는 우물가로 가서 살펴보겠지만 어리석게 우물 속에 뛰어들어 仁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 이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속을 수는 있어도 절대로 우롱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주석]
1) 宰我问曰(재아문왈) -- 재아가 물어 가로되. 宰我: 공자의 제자로 웅변가였다.
2) 虽告之曰(수고지왈) -- 만약 그에게 알려 가로되. 虽: 여기서는 가정의 의미로 쓰였다. 之: 재아가 말하는 仁者를 가리키는 告의 목적어.
3) 井有仁焉(정유인언) -- 우물 안에 仁이 있다. “仁”을 “人”으로 보아, 어진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4) 其从之也(기종지야) -- 그가 그것을 따를까요? 其: 재아가 말하는 仁者. 从: 따르다. 즉 우물에 빠진 사람을 따라 뛰어들다. 之: 우물에 仁이 있다고 말한 사람의 말. 이 구는 “우물에 뛰어들어 仁을 찾겠느냐?”라는 의미이다.
5) 何为其然也(하위기연야) --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하느냐? 즉 “너는 무엇 때문에 말을 이렇게 하느냐”의 뜻이다. 何为: 무엇 때문에. 즉 현대중국어의 “为什么”나 “何故”라고 하는 표현과 같다. 其然: 이와 같다. 즉 현대중국어의 “如此”라고 하는 말과 같다.
6) 君子可逝也(군자가서야) -- 군자는 갈 수 있다. 즉 군자는 속아서 우물가로 갈 수는 있다는 뜻이다.
7) 不可陷也(불가함야) -- 빠져서는 안 된다. 즉 어리석게 우롱 당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陷: (어떤 불리한 상황이나 국면으로) 빠지다. 놓이다. 현대중국어의 “陷入”와 같다.
8) 可欺也(가기야) -- 속임을 당할 수 있다. 여기서는 “군자는 속임을 당할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9) 不可罔也(불가망야) --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즉 군자란 스스로 현혹되어 사리판단을 못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罔: (사실을 숨겨) 속이다. 欺瞞하다. 欺罔하다. 여기서는 “眩惑시키다”, “迷惑시키다”의 뜻으로 쓰였다.
*다른 해석: 재아가 물었다. “어진 사람은 만약 그에게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고 알리면 그는 뛰어들어 구할까요?” 공자가 대답하였다. “너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려고 하느냐? 군자는 그에게 구할 방도를 세우게는 해도 그에게 우물로 뛰어들게 하지는 않는다. 군자는 속임을 당할 수는 있어도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6·27
子曰: “君子博学於文1, 约之以禮2, 亦可以弗畔矣夫3.”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고대의 문헌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자신을 단속한다면, 정말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君子博学於文(군자박학어문) -- 군자로서 문에 박학하다. 즉 군자로서 여러 문헌을 널리 공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文: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문헌.
2) 约之以禮(약지이례) -- 자신을 단속하는데 예로써 하다. 约: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단속하다(约束)”이고, 다른 하나는 “간단명료하다(简要)”이다. 여기서는 앞뒤 문맥상 군자의 수양과 관련이 깊다고 여겨 군자 자신을 단속하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3) 亦可以弗畔矣夫(역가이불반의부) -- 그만하면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亦: 또한. 정말로. 여기서는 “그만하면”, “그런대로”의 함의가 있다. 弗: …하지 않다. 목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동사를 부정하며 “不”보다 의미가 강하다. 畔: “배반하다”, “반역하다”의 뜻을 지닌 “叛”과 같다. 여기서는 “상궤에서 벗어나 도리를 어기다(離经叛道)”의 뜻이다. 矣夫: 어기사로서 비교적 강렬한 감탄을 나타낸다.
6·28
子见南子1, 子路不说2. 夫子矢之曰3: “予所否者4, 天厌之5! 天厌之!”
공자께서 남자를 만나시자, 자로가 탐탁지 않아 하였다. 공자께서 자로에게 맹세하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정당하지 않은 일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주석]
(1)子见南子(자견남자) -- 공자가 남자를 만나다. 南子: 卫나라 靈公의 夫人으로, 당시 위나라의 실권이 그녀의 손 안에 있었다. 宋朝라는 자와 淫乱한 行为를 벌여 평판이 좋지 못했는데, 공자가 그녀를 만나러 가자 子路가 탐탁지 않게 여기자 공자가 하늘에 맹세하며 자로에게 만나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사실 正史의 기록은 다르다.
2) 子路不说(자로불열) --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说: “열”로 읽는다. “기쁠 열(悦)”자와 통한다.
3) 夫子矢之曰(부자시지왈) -- 부자가 그에게 맹세하며 가로되. 夫子: “선생님”의 뜻으로 공자를 가리킨다. 矢: “맹세할 서(誓)”자와 통한다. 여기서는 맹세하는 것을 가리킨다. 之: 子路를 가리키는 목적어.
4) 予所否者(여소부자) -- 내가 만일 옳지 않다면. 予: 공자를 가리킨다. 所: 여기서는 가정의 의미인 “만약 …한다면”으로 쓰였다. 이런 용법은 맹세의 글 중에만 사용된다. 否: 옳지 않다. 아니다. 여기서는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한 것을 가리킨다.
5) 天厌之(천염지) -- 하늘이 나를 질책할 것이다. 厭: 버리다. 싫어하다. 미워하다. 꾸짖다. 질책하다. 之: 공자를 가리키는 목적어.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南子는 衛靈公의 夫人이었다고 한다. 제후군주의 妻妾은 아무리 많아도 夫人으로 불리는 사람은 하나였으며, 王后와 비슷하다. 南子는 위령공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위령공의 태자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후에 태자가 왕위를 순조롭게 계승하고자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국외로 도망을 쳤다. 그래서 野史에서는 그녀의 음탕했다고 억지로 갖다 붙이지만 正史에는 그런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위령공은 태자가 도망친 후 작은 아들 郢에게 왕위를 계승하라고 했지만 사양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님이 이전에 태자이셨고, 비록 국외로 망명하셨다고는 하나 형님의 아들이 있으니 그 아들에게 왕위를 잇게 하십시오.” 그래서 태자의 아들 輒이 왕위를 이었는데, 이가 바로 衛出公이다. 후인들은 남자가 공자 영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한 것에 근거해 남자가 위나라의 대권을 장악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단지 그녀가 왕후로서 군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행사하는 정산적인 권리일 뿐이었다.
孔文子의 아내와 태자의 아내는 자매지간이었다. 위출공이 처음 정무에 임했을 때는 나이가 어렸는데, 그의 아버지가 해외로 망명한 후 이모부 공문자는 늙어 죽었고, 작은 숙부 영은 그에게 정사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사촌형인 孔悝(공문자의 아들)가 그를 도와 국정을 돌보았다. 子路가 바로 이 攝政王 공리 수하에서 總管을 맡고 있었다.
태자가 도망치기 전에 공리 가족은 太子黨에 속했지만 남자가 위령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태자와 위령공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태자당(태자, 공리, 그의 총관 자로 등 포함)과 남자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공자가 위나라에 있을 때 위령공의 부인 남자의 요구에 응하여 남자를 배알하였다. 남자의 미모와 공자의 재능은 당시 제일 재자와 제일 미녀의 만남이었다. 이 때문에 후세의 호사가들은 이를 공자의 연애담으로 여겼던 것이다. 正史인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의 회견은 공개적이고 정식적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조금 더 분석해보면 남자는 절세의 미인으로 위령공이 가까이 하고 있었고, 공자 또한 일대의 재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동향은 자연히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논어≫에 이런 기록이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의 회견에서 무슨 연애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모조리 근거 없는 황당한 예기에 불과하다.
설사 이렇다고 해도 자로는 불쾌한 듯이 말한다. “선생님께서는 남자와 태자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실 테고, 제가 태자당이라는 것도 잘 아실 텐데 남자의 초청에 응하신다면 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자는 자로에게 해명하기를 “비록 너희들이 남자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내가 옳지 못한 사람과 일을 한다면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가 말한 옳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공자의 마지막에 “내가 정당하지 않은 일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予所否者, 天厌之! 天厌之!)”라고 한 말은 미녀와 회견하고 나온 뒤에 언급한 것이어서 후대인들은 이를 가지고 여러 상상을 해내었던 것이다.
6·29
子曰: “中庸之为德也1, 其至矣乎2! 民鲜久矣3.”
공자가 말하기를 “중용은 도덕의 표준으로 아마도 최고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백성들은 이를 떠받들지 않은지 오래되었구나.”라고 하였다
[주석]
1) 中庸之为德也(중용지위덕야) -- 중용이 덕이 됨은. 中庸: 이것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백성들을 순박하게 만들고 덕성스럽게 할 수 있었던 무슨 도덕의 표준 같은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공자도 이 “中庸”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미 실전되었던 듯하다. 어쨌든 공자는 이것을 최고의 도덕표준으로 여겼던 것 같다. 후인들은 이 “中庸”이라는 글자를 나누어 “中”은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것, 즉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하고, “庸”은 평범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억지춘향식 해석은 그 원의를 흐릴 뿐이다. 爲德: 도덕이 되다.
2) 其至矣乎(기지의호) -- 아마도 지극한 것이리라. 其: 아마도 …일 것이다.
3) 民鲜久矣(민선구의) -- 백성들에게 드물게 된 지 오래되었다. 民: 일반 백성. 鮮: 드물다. 여기서는 이런 중용의 도덕이 추앙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는 뜻이다. 久: 오래되다. 즉 중용의 도덕이 무시되게 된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6·30
子贡曰: “如有博施於民而能济众1, 何如2? 可谓仁乎3?” 子曰: “何事於仁4! 必也聖乎5! 尧舜其猶病诸6! 夫仁者7, 己欲立而立人8, 己欲达而达人9. 能近取譬10, 可谓仁之方也已11.”
자공이 말하기를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대중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仁이라고 할 만합니까?”라고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어찌 仁에만 그치겠느냐. 그야말로 聖이라고 할 수 있겠지. 堯舜조차도 행하지 못할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대체로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할 때 남까지 세워 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할 때 남까지 통달하게 해 준다. 매사에 자신을 예로 삼아 남을 헤아릴 수 있다면, 仁德을 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1) 如有博施於民而能济众(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 만약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 대중을 구제할 수 있다면. 如: 만약. 가령. 有: 어떤 사람. 博施於民: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다. 즉 사람들에게 좋은 점을 가져다준다는 뜻이다. 济众: 대중을 구제하다. 즉 모두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는 뜻이다.
2) 何如(하여) -- 어떻습니까. 현대중국어의 “怎么样”과 같다.
3) 可谓仁乎(가위인호) -- 인이라고 이를 만합니까? 可谓…乎: …라고 할 수 있는가?
4) 何事於仁(하사어인) -- 어떻게 인에만 그치겠느냐! ≪四書集注≫에서 邢昺은 “不啻於仁”이라고 풀이하였다. 何事: 不啻에 해당하며, 어찌 …에 그치랴? 어찌 …뿐이겠는가? 라고 풀이하였다. 현대중국어의 “岂止”에 해당하는데, 주로 反語를 표현할 때 쓰인다.
5) 必也聖乎(필야성호) -- 반드시 성이리라! 즉 “그야말로 성인일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必: 반드시. 틀림없이. 그야말로. 聖: 성인을 가리킨다.
6) 尧舜其猶病诸(요순기유병저) -- 요순도 아마 걱정했던 듯하였다. 尧舜: 전설상의 두 제왕으로 공자 마음속의 표준이었다. 유가는 “聖人”으로 여겼다. 其: 아마도. 猶: 마치 …와 같다. 病: 걱정하다. 마음에 부족한 것이 있다. 행할 수 없을까를 걱정한다는 뜻. 諸: 이에. “之於”의 合音. 현대중국어의 “于此”에 해당한다. 이 구는 요순 같은 성인들도 “博施於民而能济众”이라는 일에 대해 그 마음속에 마치 부족한 것이 있는 듯 했다는 뜻이다.
7) 夫仁者(부인자) -- 대체로 인덕이 있는 사람이란. 夫: 대저. 무릇. 대체로. 句首 发语词.
8) 己欲立而立人(기욕립이립인) --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세워준다. 즉 내가 지위를 얻고 싶으면 동시에 남도 얻도록 한다는 뜻이다. 立: 세우다. 성취하다.
9) 己欲达而达人(기욕달이달인) -- 자신이 통달하고 싶으면 남을 통달하게 한다. 즉 내가 이루고 싶으면 동시에 남도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達: 바라던 것을 달성하다. 뜻을 이루다.
10) 能近取譬(능근취비) -- 가까운 것으로 비유를 취할 수 있다. 즉 매사에 자신을 예로 삼아 남을 생각한다는 것으로, 바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이다. 近: 나와 가까운 주변의 것. 나 자신을 비유로 삼다. 取譬: 비유를 취하다. 즉 남을 헤아려 본다는 뜻이다.
11) 可谓仁之方也已(가위인지방야이) -- 인덕을 실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可謂: …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중국어의 “可以说”에 해당한다. 仁: 여기서는 동사로 쓰여 “인을 행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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