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唐國史補

7. 왕유의 표절시비

마장골서생 2009. 11. 10. 23:41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7. 왕유의 표절시비(王維取嘉句)


왕유는 불교를 좋아해서 자를 마힐(摩詰)이라고 하였다. 심오한 ○당연히 현(玄)자로 생각됨 성품에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 송지문(宋之問)의 산수가 빼어난 망천 별장을 얻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청원사(淸源寺)가 바로 이곳이다. 왕유에게는 시명(詩名)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훌륭한 구절을 취하길 좋아했다. “물이 끝나는 곳까지 가서, 구름 피어오를 때를 앉아 지켜보리라”라는 시구는 영화집(英華集) 중의 시이다. “질펀한 무논에선 해오라기 떼들 날아오르고, 음산한 여름비에 우거진 숲 속엔 꾀꼬리 노래하네”라는 시구는 이가우(李嘉祐)의 시이다.

(王維好釋氏, 故字摩詰. 立○疑當作玄.性高致, 得宋之問1)輞川別業, 山水勝絶, 今淸源寺是也. 維有詩名, 然好取人文章嘉句.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英華集中詩也. “漠漠水田飛白鷺, 陰陰夏木囀黃鸝.”2) 李嘉祐詩也.)


1) 송지문(宋之問; ? - 712년): 당의 시인으로 일명 소련(少連)이라 했고, 자를 연청(延淸)이라고 하였다. 중종(中宗) 경룡(景龍) 연간에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이 되었고, 후에 두심언(杜審言) 등과 함께 수문관학사(修文館學士)가 되었다. 또 뇌물을 받았다가 조주장사(趙州長史)로 쫓겨났다. 예종(睿宗)이 즉위하면서 흠주(欽州)로 유배당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원래 문집이 10권 있었다고 하는데 전하지 않는다. 명(明)나라 사람이 편집한 《송지문집(宋之問集)》이 있고, 《전당시》에 그의 시 3권이 수록되어 있다. 시로 이름이 높아 심전기(沈佺期)와 더불어 “심송(沈宋)”으로 불렸다.

2) 왕유의 《장마철 망천장에서(積雨輞川作)》라는 시의 두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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