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唐國史補

6. 이백이 신발을 벗었던 사건

마장골서생 2009. 11. 10. 23:39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6. 이백이 신발을 벗었던 사건(李白脫鞾事)


이백(李白)이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벼슬을 할 때 늘 술독에 빠져 있었다. 현종(玄宗)이 이백에게 노래 가사를 지어 오도록 했는데 이백은 술에 취해있는 상태라 시종들은 술이 깨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어 그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이백은 그제야 조금씩 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더니 바로 붓을 잡고 단숨에 수 십 행을 휘갈겨 쓰고는 전혀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의 얘기이긴 하나 한번은 이백이 현종의 면전에서 발을 내밀며 고력사(高力士)로 하여금 신발을 벗기게 했는데, 현종은 환관들에게 명하여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고 한다.

(李白1)在翰林2)多沈飮. 玄宗令撰樂辭, 醉不可待, 以水沃之, 白稍能動, 索筆一揮十數章, 文不加點3). 後對御引足令高力士4)脫靴, 上命小閹排出之.)


1) 이백(李白; 701-762): 당대의 대시인이다. 본적은 감숙(甘肅) 천수(天水) 부근이고, 중앙아시아의 쇄엽성(碎葉城; 지금의 러시아)에서 태어나 5세 때 아버지를 따라 사천(四川) 강유(江油)로 옮겨와 살게 된다. 일찍이 산동(山東)과 강남(江南)의 각 지역을 유람하였고, 수많은 시를 지었다. 40세 때 장안에 와서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다. 권세가들에게 멸시를 받아 3년이 채 못되어 장안을 떠나게 된다.

2) 한림(翰林): 당대에 문학으로 궁정에서 황제의 시중을 들던 관직으로 한림대조(翰林待詔)와 한림공봉이 있었다. 대부분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 직관(職官)은 아니었다.

3) 문불가점(文不加點): 문장을 한숨에 썼어도 고칠 곳이 없다는 뜻인데, 문장의 구상과 기교가 탁월함을 형용한 것이다. 점(點)은 수정하다의 의미이다.

4) 고력사(高力士: 684-762)는 고주(高州) 양덕(良德)[지금의 廣東省 高州] 사람이다. 개원 연간 초기에 그는 내시성(內侍省)을 관장하면서 각종 청탁을 받아 처리하였다. 당시 조정의 장군과 재상 중에 그의 추천을 받아 등용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숙종(肅宗) 때 무주(巫州; 지금의 湖南省 黔陽縣)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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