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文2]
自惟历事二主1), 从宦两京2), 遍居司籍之曹3), 久处载言之职4).
나는 선후로 무후와 중종 두 군주를 섬길 것을 생각하며, 장안과 낙양에서 문헌전적을 관장하는 관직을 두루 거치며 오랫동안 사관의 직무를 맡았다.
昔马融三入东观5), 汉代稱荣;
과거에 마융이 세 차례나 동관에 들어간 것을 한대에는 영광스러운 일로 여겼다.
장화가 다시 사관을 맡으면서 진조에서 찬미를 받았다.
아! 나 같은 사람이 그들 두 사람의 경력을 겸하고 있어,
이 때문에 언제나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되어 잠시라도 쉬려고 하지 않았다.
尝以载削餘暇12), 商榷史篇13), 下笔不休14), 遂盈筐箧15).
내가 일찍이 사서를 편찬할 여가를 이용하여 사서의 편찬과 관련된 문제를 토론하고 쉬지 않고 글을 써서 마침내 상자를 채울 만큼의 성과를 내었다.
이리하여 그것들을 구분하고 분류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1) 自惟: 스스로 고려하다, 생각하다. 二主: 武后와 中宗을 가리킨다.
2) 宦: ≪통석≫주에 “‘관’이라고 한 판본도 있다(一作 ‘官’).”고 하였다. 象本에는 “官”으로 되어 있다. 两京: 西京인 장안과 東京인 낙양이다.
3) 司籍之曹: 문서와 전적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기구이다. 유지기는 선후로 문하성의 기거랑․중서성의 중서사인․비서성의 저작좌랑․저작랑․비서감 등의 직책을 맡은 적이 있는데, 이런 직무들은 모두 문서전적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전적을 관리하는 부서를 두루 거쳤다(遍居司籍之曹)”고 말했던 것이다..
4) 载言之职: 사관의 직무를 가리킨다.
5) 马融三入东观: 马融(79~116)은 자가 季長이며 東漢 扶風 武陵(지금의 陝西 興平) 사람으로, 유학자로 유명하였다. 재능이 높고 박식하여 천 명이 넘는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盧植과 鄭玄 등의 유학의 대가들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저서에는 ≪三傳異同說≫이 있고, ≪孝經≫․≪論語≫․≪詩經≫․≪易經≫․≪三禮≫․≪尙書≫․≪烈女傳≫․≪老子≫․≪淮南子≫․≪離騷≫ 등에 주석을 붙였다. ≪後漢書≫에 傳記가 있다. 마융은 安帝 英初 4년(110)에 校書郞中에 임명되어 東觀으로 들어가 기밀을 요하는 책들을 교감하는 책임을 졌다. 鄧太后에게 거슬려 禁錮되었다. 등태후가 죽고 난 후 안제가 친정하게 되자 郎署로 소환하는 조서가 내려졌고, 다시 經籍을 講解하게 되었다. 안제가 죽고 北鄕侯가 즉위했을 때 마융은 병으로 이직하여 郡의 功曹가 되었다. 桓帝 때 南郡太守가 되었고, 또 議郞에 임명되어 東觀에서 저술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 번 동관에 들어갔다(三入東觀)”고 말했던 것이다. 東觀은 한나라 낙양의 궁전 이름으로, 한대에는 문헌전적을 보존하고 사서를 수찬하던 곳이었다.
6) 张华再典史官: 張華(232~300)는 자가 茂先이며, 西晉 範陽(지금의 河北 固安縣) 사람이다. 기억력이 좋아 잘 외웠고 박학다식해서 당시에 제일로 추앙되었다. 인물 추천에 즐거워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선비 가운데 하나라도 잘하는 것이 있으면 늘 그에 의해 추천되었다. 후에 趙王 司馬倫이 惠帝의 皇后인 賈后를 폐하고자 도모했는데 장화가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저서로 ≪博物志≫가 있으며, ≪晉書≫에 전기가 있다. 그는 晉代로 접어들기 전에 魏나라에서 저작좌랑을 지냈다. 진나라로 접어들면서 관직은 비록 司空이었지만 여전히 저작의 직무를 맡았다. 그래서 “다시 사관을 맡았다(再典史官)”고 했던 것이다. 典: 주관하다(主持, 主管).
7) 稱美: 칭찬하다, 찬미하다(稱赞, 赞美).
8) 嗟予小子: 嗟: 감탄사. 小子: 옛날에 자신을 지칭하던 謙辭였다. [唐] 韩愈≪芍药歌≫: “꽃 앞에 취해 쓰러져 노래하는 이 누구인가요? 옛 초나라 땅의 젊은 사람 한퇴지라네.(花前醉倒歌者谁? 楚狂小子韩退之.)”
9) 兼而有之: 동시에 점유하거나 몇 가지 사물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 ≪墨子․法仪≫: “하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늘이 모든 사람을 존재하게 하고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으로 알 수 있다.(奚以知天兼而爱之, 兼而利之也? 以其兼而有之, 兼而食之也.)” 兼: 전부, 모두.
10) 是用职思其忧: 是用: 이 때문에(因此). 职思其忧: 이 말은 ≪詩․唐風․蟋蟀≫의 “지나친 즐거움을 찾지 말고, 갑자기 닥칠 우환을 생각해야 한다(無已大康, 职思其忧)”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유지기는 여기에서 언제나 자신의 책임을 생각하고 자신의 직무에 맞지 못할까를 걱정하고 있다. 職: 응당 ~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한다. 일설에 ‘항상’의 의미라고도 한다. 思: ≪通釋≫주는 “과거에는 ‘사’로 잘못되어 있었다(舊誤作 ‘司’)”라고 하였다.
11) 不遑启处: 이 말은 ≪詩․小雅․四牡≫의 “왕의 일은 멈출 때가 없고, 편안히 쉬어서는 안 된다(王事靡鑒, 不遑启处)”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遑: 여가. 한가한 때. 啓: 무릎을 꿇다. 옛날 사람들은 앉는 자세와 꿇는 자세가 비슷하였다. 앉을 때는 두 무릎을 땅에 대고, 엉덩이는 뒤꿈치에 붙이고, 꿇는 것은 엉덩이를 뒤꿈치에서 떨어지게 하고 허리와 넓적다리를 곧추 세운다. 그래서 “長跪”라고도 한다. 處: 거주하다.
12) 载削: 史書의 편찬을 가리킨다. 고대의 책은 대나무에다 썼는데, 틀리면 칼로 바로 깎아내었다. 그래서 서적을 편찬하고 수정하는 것을 筆削이라고 하였다.
13) 商榷: 연구 토론하다. “榷”을 ≪通釋≫주에서는 “ ‘확’이라고 한 판본도 있다(一作 ‘確’).”고 하였다.
14) 下笔: 글을 쓰다(落笔).
15) 筐箧: 장방형으로 된 나무상자를 가리킨다.
16) 类聚: 같은 부류의 사물을 함께 모으다.
17) 编而次之: 순서에 따라 배열하다.(按次序编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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