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商千*權容浩*姜秉喆 共譯 <孫子兵法譯注>
포항동양문학예술연구회(POLAS)의 두 번째 역서
제1편~제5편 姜秉喆 譯 / 제6편~제9편 權容浩 譯 / 제10편~제13편 李商千 譯
第一. 計篇1)
본편은 주로 전쟁을 연구하고 계획하는 중요성을 서술하였으며,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기본 조건을 탐구하고 아울러 “적군이 무방비한 상태에서 공격을 하고 적군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 하에서 공격을 진행한다.(攻其無備, 出其不意.)”라는 군사방면의 명언을 제기하였다.
[1] 손자가 말하였다. 전쟁은 국가의 대사이다. 국민의 생사와 관련된 땅(지형)과, 국가의 존망(存亡)과 관련되는 도리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고찰하고 연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문> 孫子曰 兵2)者,國之大事3). 死生之地,存亡之道4),不可不察也5).
<직역> 孫子曰 兵者는,國의 大事이다. 死生의 地와,存亡의 道는,不可不察이니라.
[2] 그래서 이하 다섯 가지 방면에서 분석 연구하여 적군의 각종 조건을 비교하여 전쟁의 승패의 상황을 탐구해야 한다. 첫째는 원칙이며, 둘째는 하늘(기상변화)이며, 셋째는 땅(지형의 변화)이며, 넷째는 장수이며, 다섯째는 법(제도)이다.
원칙은 백성들이 군주와 한마음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전쟁 과정에서 군주를 위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곳을 드나들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늘은 낮과 밤、맑고 흐림 등 기상변화、춥고 더움、사계절 변화를 가리킨다.
땅은 노정의 멀고 가까움、지형지세의 험준함과 평탄함、작전지역의 넓고 좁음、지형이 공수(攻守) 진퇴(進退)에 불리한가? 유리한가? 등을 가리킨다.
장수는 장수의 전략재능、상벌의 공평한 처사、사졸에 대한 애호、용감하고 과감한 결단력、군사 기간의 엄격함 등의 조건을 가리킨다.
법은 군대 조직편제 방면의 제도, 각급 장군과 관리의 직책 구분、관할 관리 등의 제도, 군수물자、군용 기계、군사비용의 공급과 관리하는 제도 규정을 가리킨다.
이상 다섯 가지 방면에 대해 장수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각하게 이해하고 확실하게 파악해야 비로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다음에 서술하는 일곱 가지 방면에 대해 분석 비교하여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조건을 탐구해야한다.
어느 쪽 주군(리더)이 현명하고 원칙이 있는가?
어느 쪽 장수가 전략적 능력이 있는가?
어느 쪽 진영이 천시(天時: 우세한 기상조건)와 지리(地利: 지형적 우세 조건)에서 유리한가?
어느 쪽 군령(軍令)이 엄격하게 집행되고 있는가?
어느 쪽이 군사 실력이 우세한가?, 어느 쪽 장졸(將卒)이 훈련을 잘하였는가?
어느 쪽 상벌이 엄격하게 집행하였는가?
우리는 이러한 여러 조건을 분석 대비한 것에 근거해서 전쟁의 승패를 분명히 판단할 수 있다.
<원문> 故經之以五事6),校之以計7),而索其情8). 一曰 道9),二曰 天,三曰 地,四曰 將, 五曰 法. 道者,令民與上同意也10),故可以與之死,可以與之生,而不畏危11). 天者,陰陽、寒暑、時制也12). 地者,遠近、險易、廣狹、死生也13). 將者,智、信、仁、勇、嚴也14). 法者,曲制、官道、主用也15).
凡此五者,將莫不聞,知之者勝16),不知者不勝. 故校之以計,而索其情. 曰 主孰有道17)? 將孰有能?天地孰得?法令孰行?兵衆孰强?士卒孰練?賞罰孰明?
吾以此知勝負矣.
<직역> 故로 之를 五事로써 經하며,之를 計로써 校하여,其情을 索한다. (五事는) 一曰 道,二曰 天,三曰 地,四曰 將, 五曰 法 등이다. 道者는,民으로 하여금 上과 意를 同하게 하는 것이다. 故로 之(主君)와 더불어 死할 수 있으며,之와 더불어 生할 수 있으며,그래서 危를 不畏한다. 天者는,陰陽、寒暑、時制 등의 조건을 가리킨다. 地者는,遠近、險易、廣狹、死生 등의 조건을 가리킨다. 將者는, 智、信、仁、勇、嚴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法者는,曲制、官道、主用 등의 제도를 가리킨다.
凡 此五者는,將로서 不聞하는 사람이 莫하며,之(五事)를 知한 者는 勝하며,不知한 者는 不勝한다. 故로 “計(七計)로써 之를 校하며, 그래서 其情을 索하다.”이라 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曰 主는 孰이 道가 有한가?,將은 孰이 能이 有한가?天地(유리한 형세)는 孰이 得하였는가?法令은 孰이 行하는가?兵衆은 孰이 强한가?士卒은 孰이 練하였는가?賞罰은 孰이 明한가?
吾는 此로써 勝負를 知하니라.
[3] 주군이 거느리는 장수로서 만약 나의 계책을 따른다면, 그 장수를 중용하여 전쟁을 지휘하게 한다면,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며, 바로 휘하에 남기어 중용해야 한다. 만약 장수가 나의 계책을 따르지 않는데도, 그 장수를 중용하여 전쟁을 임의로 지휘하게 한다면, (보나마나) 반드시 전쟁에서 지게 될 것이며, 바로 장수의 자리를 빼앗고 휘하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
<원문> 將聽吾計18),用之必勝,留之. 將不聽吾計,用之必敗,去之.
<직역> 將이 吾의 計를 聽하여,之(將)를 用한다면 必히 勝할 것이며,之(將)를 留하게 해야 한다. 將이 吾의 計를 不聽하여도,之(將)를 用한다면 必히 敗할 것이니,之(將)를 去하게 해야 한다.
[4] (작전회의를 개최하는 사당 안에서) 아군에게 유리한 계책이 이미 채택되면, 또한 실행할 방법을 찾아 “형세”(승리에 유리한 조건)를 조성하여, 작전 지역에서 진행을 보좌해야 한다.
이른 바 “형세”라는 것은 바로 어떤 상황이 아군에 유리한지 여부에 근거해서 상응하는 행동을 채택하는 것이다.
<원문> 計利以聽19), 乃爲之勢20), 以佐其外21). 勢者, 因利而制權也22).
<직역> 利를 計하여 以[已]聽하면, 乃에 之를 爲하여 勢를 만들어, 其外를 佐한다. 勢者는 利에 因하여 權을 制하니라.
[5] 용병은 적군을 속이는 행위를 원칙으로 삼는다. 그래서 공격할 수 있으나 공격할 수 없는 것처럼 위장하며, 싸울 수 있으나 싸우지 않는 것처럼 위장하며, 가까운 곳에서 행동하려면 먼 곳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위장하며, 먼 곳에서 행동하려면 가까운 곳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위장하며, 탐욕스런 적군에 대해 작은 이익으로 그들을 유인하며, 혼란 상태에 처한 적군에 대해 그 기회를 틈타서 탈취하며, 군세가 강성한 적군에 대해서는 그들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해야 하며, 강력한 적군에 대해서는 잠시 그들의 예기를 피하며, 곧잘 분노하는 적장에 대해서는 기만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격분하게 하며, 아군을 경시하는 적군에 대해서는 그들을 더욱 더 교만하게 만들며, 충분히 휴식을 가진 적군에 대해서는 그들을 피로하게 만들 전법을 구사해야 하며, 내부가 단결이 잘된 적군에 대해서는 그들을 이간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적군의 무방비한 상태에서 공격을 가하고, 적군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행동을 취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군사 전문가들이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 비결이며, 이에 대해서 결코 사전에 구체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원문> 兵者, 詭道也23). 故能而示之不能24), 用而示之不用25), 近而示之遠26), 遠而示之近. 利而誘之, 亂而取之27), 實而備之28), 强而避之29), 怒而撓之30), 卑而驕之31), 佚而勞之32), 親而離之33). 攻其無備, 出其不意.
<직역> 兵者는 詭의 道이다. 故로 能하여도 之를 不能으로 示하며, 用하여도 之를 不用으로 示하며, 近하여도 之를 遠으로 示하며, 遠하여도 之를 近으로 示한다. 利로써 之를 誘하며, 亂으로써 (적군이 혼란에 빠진 기회를 틈타서) 之를 取하며, (적군이) 實하면 之에 備하고, 强하면 之를 避하며, (적장이) 怒하면 之(將)를 撓하게 하며, (적군이 아군을) 卑하게 여기면 之를 驕하게 하며, (적군이) 佚하면 之(적군)를 勞하게 하며, 親하면 之를 離하게 한다. 其(적군)의 無備한 곳을 攻하고, 其의 不意한 곳을 出한다.
此는 兵家의 勝이니,不可先傳이니라.
[6]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묘산”에서 적군에 승리한다는 것은 전쟁의 승패에 대해 치밀하게 연구하였기 때문에 승리의 조건(勝算)이 많은 것이다. 전쟁하기 전에 “묘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계산이 치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승리의 조건이 적은 것이다. 계산이 치밀하면 승리의 조건도 많으며 적군을 이길 가능이 있으며, 계산이 치밀하지 못하면 승리조건도 적으며 적군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전혀 계산을 하지 않으면 승리의 조건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방면에서 고찰하면, 어느 쪽이 이기고 지는 가에 대해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원문> 夫未戰而廟算勝者, 得算多也36). 未戰而廟算不勝者37), 得算少也. 多算勝, 少算不勝而况於無算乎? 吾以此觀之,勝負見矣38).
<직역> 대체로 未戰에 廟算에서 勝한 者는, 算을 得함이 多한 까닭이다. 未戰에 廟算에서 不勝한 者는, 算을 得함이 少한 까닭이다. 算이 多이면 勝하고, 算이 少이면 不勝하거늘 况차 算이 無함에랴? 吾는 此로서 之를 觀하여,勝負는 見하니라.
<戰史> 후한 말년 황건적이 기승을 부리자 군벌들의 혼전이 일어났다. 당시 4대 명문대가인 원소(袁紹)와 曹操가 강성하였다. 조조는 모사 순유(荀攸)의 적군을 분산시키는 계책(도하하여 강을 건넌다고 정보를 흘리고 나중에 원소의 후방을 공략하였다.)을 채택하여 원소의 대장군 안량(顔良)과 문추(文丑)를 참살하였다. 관도대전(官渡大戰)이라 한다. 官渡는 许昌(河南省, 许昌市)의 북부, 黄河의 남부에 위치하며, 河北에서 河南地界를 진군할 때 军事의 要冲地이다. 官渡大战으로 유명하다. 建安四年(199年)六月 袁绍가 精兵 10만, 战马 만 匹를 선발하여, 南下하여 许昌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官渡大战의 序幕이다. 曹操는 모사들의 계책을 잘 수용하여, 最终 승리를 얻었다. 이는 用人의 道이다. 刘晔、荀攸、许攸 등은 人才로서 计谋를 구사하여, 위험한 처지를 극복하는 공이 있었다. 一计로써 萬人에 대항할 수 있었다. 所谓兵不在多,在乎能否调遣(戰略按排).
<간단한 평가>
본편에서는 전쟁을 연구하고 계획하는 중요성 및 어떻게 쌍방의 조건을 분석하고, 전쟁의 승패를 판단하고, 장수가 전쟁에서 지휘력을 발휘하는 문제 등을 설명하였다.
손무는 조리 있게 지적하였다. “兵者, 國之大事也;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이것은 신흥지주계급이 전쟁을 중시한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당시 무력으로 노예지주계급의 부패통치를 타도하는 역사적 요구에 부합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손무 군사사상의 중요 구성부분이며, 이것은 “仁義”를 간판으로 삼고 적극 반동 노예제를 보호하고 진보전쟁을 반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손무는 전쟁 전에 반드시 상방의 조건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작전계획을 철저히 연구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반드시 도(정치)、하늘(천시)、땅(地利)、장수、법(제도) 등의 “오사(五事)”와 “어느 쪽 주군이 원칙이 있으며, 어느 쪽 장수가 재능이 있는가?” 등의 “칠계(七計)”로부터 진지하게 분석 비교를 하여 상방의 우열과 장단점을 탐색해야 비로소 전쟁의 승패를 미리 알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손무는 전쟁에 대한 계획을 소박한 유물론의 기초 위에 세웠으며, 이것은 몰락한 노예주계급이 점복(占卜) 등 유심주의 방법으로 전쟁의 승패를 예견한 것과는 근본적인 구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손무는 승리의 조건을 설명할 때, “道”를 “오사”의 앞자리에 놓았다. 신흥지주계급이 전쟁의 승리를 탈취하기 위해 먼저 중시한 것은 “정치를 혁신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주군과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전쟁 과정에서 민중과 사졸들로 하여금 “함께 죽고”, “함께 살고” “위태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주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이처럼 명확하게 “오사”를 승리의 조건으로 삼고, 특히 “道”(“백성으로 하여금 주군과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다.”)를 승리 조건의 첫 번째 조건으로 삼은 것은 손무 이전의 군사 저서 가운데 보기 드문 것이었다. 이것은 손무가 중국고대 군사사상에 기여한 중요한 공헌이며, 손무가 주장한 군사사상의 진보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장수가 전쟁에서 어떻게 지휘능력을 발휘하는가는 손무가 본편에서 서술하고 있는 또 다른 중요 내용이다. 그는 전쟁의 전략이 일단 결정이 나면 장수가 상황에 근거해서 “아군에 유리한지 여부에 맞춰 승리를 얻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因利而制權.)”, 유리한 작전태세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전쟁은 적을 속이는 행위를 원칙으로 삼는다.(兵者, 詭道也.)”라는 전쟁에서 적을 속이는 일은 다반사(兵不厭詐)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장수가 각종 수단을 사용하여 자신의 계획을 은폐하고 적군을 유인하여 적군에게 착각과 예상치 못한 상황을 조성해서 “적군의 무방비한 상태에서 공격을 가하여 적군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행동을 취하다(攻其無備, 出其不意.)”는 것처럼 적군을 공격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물론 계급과 역사의 한계성으로 인해, 손무는 전쟁문제를 분석할 때, 다만 두루뭉술하고도 직관적으로 “전쟁이란 생사존망과 관련된 중대사”라는 전쟁의 본질을 지적하였다. 동시에 계급 이익의 근본 대립으로 인해, 그가 언급한 소위 “백성으로 하여금 주군과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다.”라는 말은 백성이 신흥지주계급의 이익을 따르게 한 것에 불과하다.
1)《손자병법》의 강령에 해당하는 글이다. 計는 작전계획, 전략의 의미이며, 승패를 결정하는 요소와 쌍방의 우열을 결정하는 판세를 분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七計”. 편명 “計”는 《会注本》에서만 “计”라 하고, 나머지 판본에서는 “始计”라 하였다. 曹操의 注에서 “计者, 选将、量敌、度地、料卒, 计於庙堂也.”라고 정의하였다. * 손자병법에 주석을 단 명가로서 소위 “11家”로는 삼국시대 魏나라 曹操 이후로 南朝의 梁나라 孟氏, 唐朝의 李筌、贾林、杜佑、杜牧、陈皞, ,宋朝의 王皙、梅尧臣、何氏、张预 등이다.
2)兵의 내포된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兵器、軍械、兵卒、軍隊 등의 의미가 있다. 《新注》에서는 戰爭이라 풀이하였다.《설문해자》에서 “병은 기계이다. 도끼를 손에 잡고, 힘을 모으는 모습이다.(兵, 械也. 持斤, 幷力貌.)”이라 하였다.《六韬․龙韬․论将》“故兵者, 国之大事, 存亡之道, 命在於将.”,《周禮·司兵》에서는 “사병은 오병을 관장한다.(司兵掌五兵)”라 하였다. 동한 사람 정중(鄭衆; 자는 司農)은 “오병이란 가지가 달린 창、대나무로 만든 긴 창、끝이 두 갈래로 나뉜 창、길이가 스무 자가 되는 창、길이가 2장 4척, 약 7미터 이상 되는 전차에서 사용하는 창 등이다.(五兵者,戈、殳、戟、酋矛、夷矛).” 《左傳·襄公二十七年》참조.
3)《左傳·成公十三年》“나라의 큰일은 제사와 전쟁이다.(國之大事, 在祀(祭祀)與戎[戰爭].)”
4)死生之地, 存亡之道: 백성들 생사의 갈림이 있는 장소, 전쟁터이며, 국가 존망의 갈림이 있는 도리, 원칙이다.《左傳·襄公二十七年》“성인은 병력을 잘 활용하여 나라를 일으키며,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병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여 일신의 화를 입어 자리에서 쫓겨난다. 자리에서 쫓겨나고, 나라를 흥성시키고, 나라를 존속하고 망하게 하는 것은 모두 전쟁으로 말미암는다.(聖人以興, 亂人以廢. 廢、興、存、亡, 皆兵之由也.)” 杜牧은 “나라의 존망과 백성의 생사는 모두 전쟁으로 말미암는다.(國之存亡,人之死生,皆由於兵.)”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賈林은 “地는 장소이다. 또한 군대를 집합시키거나、정돈하거나、전투태세를 갖추게 하는 곳이다.(地, 猶所也. 亦謂陳師、振旅、戰陳(战阵)之地.)”라고 설명하였다. 의미가 축소되었다.
5)不可不察: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爾雅·釋估》“찰은 살피다는 의미이다.(察,審也.)” 《新注》에서는 깊이 考察、硏究하다는 의미이다.《竹简本》에서는“孙子曰 兵者, 国之大事也.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이라 하였고, 五本(《曹注本》、《武经本》、《四库本》、《孙校本》、《会注本》)은 모두 “兵者, 国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이라 하였다.
6)經: 베틀(織机)의 종선(縱線), “기강(綱)”、“강령(綱領)”의 의미이다. 측량하다. 여기서는 분석 연구하다는 의미이다. 五事: 다섯 가지 방면의 상황, “道、天、地、將、法”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5가지 가능성을 분석하다.《竹简本》에는“故轻(经)之以五, 效之以计, 以索其情.”이라 하고, 四本은 모두 “故经之以五事, 校之计, 而索其情.”이라 하고,《孙校本》은 “故经之以五.”이라 하였다. 다소 차이가 있다.
7)校: 較, 비교하다. 상대방의 각종 조건을 비교하고 이러한 일로부터 얻은 결과를 가지고 전쟁 승패의 상황을 탐구한다.
8)索其情: 索(색)은 구하여 찾다(求索),탐색(探索)하다는 의미이다.《廣雅·釋詁三》“索, 求也.” 情은 적군의 실정(實情)을 가리킨다. 計: 계획하다, 계산하다. “七計”를 가리킨다.
9)道: 도리, 규율, 원칙. 여기에서는 통치자의 정치 상황을 가리킨다.
10)백성들이 군주와 한마음이 되게 한다.《荀子․議兵》에서 “고로 전쟁의 관건은 백성들의 지지를 얻는 데 있을 따름이다.(故兵要在乎善附民而已.)”이라 하였다. 전쟁의 승리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는 데에 관건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上: 國君. 意: 思想、志向.
11)《新注》에서는 不畏危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하였다. 은작산 서한 묘에서 출토된 죽간본 《孫子兵法》(이하에서는 서한의 죽간본《孫子兵法》이라 한다.)에서는 “民弗詭也.”라 하였다. 《通典․兵一》에서는 “而人不佹.”이라 하고, 《孙校本》“而民不畏危.”이라 하였다. 판본에서 “民”을 “人”으로 바꾼 것은 李世民의 讳字를 피한 것이며, “弗”을 “不”로 바꾼 것은 汉나라 昭帝 刘弗의 讳字를 피한 것이다.
12)음양은 주야(晝夜), 청우(晴雨) 등 날씨 기상의 변화를 가리킨다. 한서: 춥고 덥고 하는 기온의 차이를 가리킨다. 시제: 사계절의 절기의 변화를 가리킨다.
13)행군 노선의 거리(출발점부터 종착점까지의 거리)、지형지세의 험준함과 평탄함、작전지역의 넓고 좁음、지형이 공수(攻守) 진퇴(進退)에 불리한가? 유리한가? 등을 가리킨다. 간체본《孫子兵法》에서는 “地者, 高下、廣狹……”이라 하여 “高下”가 첨가되어 있다.
14)장수의 전략재능、상벌의 공평한 처사、사졸에 대한 애호、용감하고 과감한 결단력、군사 기강의 엄격함 등의 조건을 가리킨다. 동한 사람 왕부(王符)의《潛夫論》에서 “將者, 智也、仁也、敬也、信也、嚴也.”라고 인용하였다.
15)곡제: 군대 조직편제 방면의 제도.(운영방법도 포함) 曲: 曲落(村莊), 曲道(乡曲, 乡里). 曹操 注: “곡제는 군대 조직 편제의 단위인 부곡의 깃발과 동라(銅鑼), 쇠북(金鼓) 등 부대 기물에 관한 제도를 말한다.(曲制者,部曲旛帜、金鼓之制也.)” 관도: 각급 장군과 관리의 직책 구분、통괄 관리 등의 제도. 주용: 군수물자、군용 기계、군사비용의 공급과 관리하는 제도. 主: 관리하다. 用: 물자 비용.
16)知: 심각하게 이해하다, 확실하게 파악하다. 聞: 알다, 이해하다.(《新注》)
17)孰: 누구. 쌍방 중에 어느 쪽. 어느 쪽 주군이 민심을 얻고 청명하게 정치를 행하였는가에 전쟁 결과를 알 수 있다.
18) 將……: 聽자의 조동사로 해석하기도 한다. “만약 나의 계책을 따라 ……할 수 있다면”의 의미로도 해석한다(매요신의 주장), 혹은 일설에는 장수(將, jiàng)라는 의미로 “장수가 나의 계책을 따른다면”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만약 저의 계책을 따를 수 있다면, 작전을 지휘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남을 것입니다. 만약 저의 계책을 따를 수 없으면, 작전을 지휘해도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떠날 것입니다.(如果能够聽從我的計謀, 指揮作戰一定勝利, 我就留下. 如果不能聽從我的計謀, 指揮作戰一定失敗, 我就離去.)”(《新注》) 楊炳安은《孫子會箋》에서 두 가지 설을 모두 수용하여도 무방하다 하였다. 명나라 趙本學《孫子書校解引類》에서 “將”을 “如”자로 보았다. 戚繼光《大學經解》에서는 “將”을 “將兵之將”으로 풀이하였다. “만약 주군께서 저의 군사사상을 받아들이고, 저를 장군에 임명하여 작전에 나서게 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며, 나는 남을 것입니다. 만약 저의 군사사상을 용납하지 않으면서, 저를 장군에 임명하여 작전에 나서게 한다면 반드시 패배할 것이며, 저는 바로 떠날 것입니다.(如果您能接受我的軍事思想, 任用我領兵作戰一定勝利, 我就留下. 如果您不能接受我的軍事思想, 用我領兵作戰必定失敗, 我就離去.)”(周亨祥 譯註《孫子全譯》,貴州人民出版社, 1992, 9 초판. 5쪽) 여기서는 문맥상 주어로써 “장수”의 의미이다. 李浴日 著,《孙子新研究》, 世界兵学社, 1946年 初版,《孫子兵法新研究》電子版 2008년 2월 발행. 李仁雄, 李仁繆 合編.世界兵学社網上發行.)에서도 장수의 의미로 풀이하였다. 즉 “戰爭之事,在乎將領得人. 將領(偏將, 裨將)倘若聽從, 力行我(主將)的計劃,用他必可操左券,這樣, 就留下以為手足. 反之, 不聽從我的計劃, 即意氣不投,喜歡自由行動, 必致僨事(일을 그르치게 하다), 那非把他辭退不可. 因為這樣, 纔能上下一致, 如身之使臂, 臂之使指, 進而爭取戰勝之果.” 曹操는 “不能定计, 则退去之.”라고 주를 달았다. 李興斌 註譯《孫子兵法》(崇文出版社, 2007, 1 초판, 8쪽)에서는 “주군[합려]께서 만약 저의 계책을 따라 채택하신다면, 반드시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휘하에 남을 것입니다. 반대로 주군께서 저의 계책을 따르지 않고 고집스럽게 제멋대로 전략을 구사하신다면, 반드시 패배할 석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國君如果聽從幷採納我的計謀, 必定能獲得勝利, 我就留下來. 國君如果不聽從我的計謀而剛愎[남의 말을 듣지 않다]自用, 則必定失敗, 我就乾脆離開,)”이라 풀이하였다.《孫子兵法論正》에서는 梅尧臣이 “(孫)武以十三篇干吴王阖闾, 故首篇以此辞动之. 谓王(합려)将聽吾计, 而用战必胜, 我當留此也. 王将不聽我计, 而用战必败, 我當去此也.”이라 풀이하였는데 그 오류가 심하다. 그 이유로 3가지를 들 수 있다. 一. 若这是孙子向阖閭表白之语,则何以十三篇中只此一句?若说此乃因本篇为十三篇篇首之故,则何以本篇中亦仅此一句?且其與上下文之关系为何?若依梅氏之解,则此句未免过於突兀及天马行空,由此可知此说实失之牵强也. 二.〈计〉为首篇, 而孙子见吴王时, 尚自称“外臣”. 如此, 则若依梅氏之解,则阖闾豈会在孙子“每陈一篇”时, “不知口之称善,其意大‘悦’”. 即指此句“王将聽吾计”既有“命令、强迫”之味,其语氣又过於“自信、狂傲”, 仅以此點观之,即知其非孙子之意, 此说看过十三篇或〈见吴王〉等其它有关孙子事迹之记载即可知之,不赘言. 又何以知〈计〉必为十三篇篇首, 摒除“道系统”之说,只观其餘先秦古兵书之體例即可知之.《三略》以〈上略〉始, 以〈下略〉终, 而其〈中略〉云“聖人體天, 賢人法地, 智者师古. 是故, 《三略》为衰世作. <上略>设禮赏, 别奸雄, 着成败. <中略>差德行, 审权变. <下略>陈道德, 察安危, 明贼贤之咎. 故人主深晓上略, 则能任贤擒敌. 深晓中略, 则能御将统众. 深晓下略, 则能明盛衰之源, 审治国之纪.”《六韬》以〈文韬〉始, 以〈犬韬〉终.〈文韬〉以〈文师〉始,〈犬韬〉以〈战步〉终.《司马法》以〈仁本〉始, 以〈用众〉终.《吴子》以〈图国〉始, 以〈励士〉终.《尉缭子》以〈天官〉始, 以〈兵令〉终. 故知《孙子兵法》必以〈计〉为始, 此先秦兵家之共识, 亦是中国兵学之特色也. 三. 此句之“将”若不作名词“将军”解, 则两句皆失主词. 如此, 则十三篇之同型文例中仅有此句之句式特異. 意即其违反文理, 證例如〈九变篇〉之“故将通於九变之利, 知用兵矣. 将不通於九变之利, 虽知地形, 不能得地之利矣. 治兵不知九变之术, 虽知五利, 不能得人之用矣.”, 而此二句之“将”皆作“将军”解. 且若依梅氏或其他学者般解作“若”, 则“用之”之“之”势與“留之、去之”之“之”字用法大異, 而此实无法经由逻辑推理得出. 故知其误.” 曹操의 주석을 비평하던 당나라 사람 陈皞(진호)는 “孙武以书干阖闾曰:‘聽用吾计策,必能胜敌,我當留之不去;不聽吾计策,必當负败,我去之不留.’ 以此感动阖闾, 庶必见用. 故阖闾曰‘子之十三篇,寡人尽观之矣. ’其时阖闾行军用师,多自为将,故不言主而言将也.”이라 하였다. 陈氏의 주장이 옳다면 “将”을 “主”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견강부회하다 할 것이며, 매요신과 별 차이가 없다 하겠다. 陈氏의 논리라면 “主孰贤?将孰能?”은 마땅히 “将孰贤能?”이라 해야 할 것이다. 張預는 “將”을 “장차”라고 해석하였다. “將, 語辭也, 謂君將聽吾所陳之計而用兵, 則必勝, 我乃留之矣. 將不聽吾所陳之計而用兵, 則必敗, 我乃去之他國矣. 以此辭激吳王而求用也.”이라 하였다.《孫子兵法論正》에서는 “장수”의 의미로 결론을 지었다. “만약 장수가 손무의 병법에 나오는 계책에 따라 전략에 활용한다면, 그 장수를 전쟁에 중용하여도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장수를 휘하에 머물러 두어야 합니다. 반대로 만약 장수가 손무의 계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에 그를 전쟁에 참여시키어도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장수를 휘하에서 내쳐야 합니다. 이와 같이 풀이하면 문맥이 잘 통하며 도리에도 부합한다.(如果“将聽吾计”,则因“用之(将)必勝”, 所以要“留之(将)”而如果“将不聽吾计”, 则因“用之必败”, 因此要“去之”, 如此则文通意畅, 亦合情合理.)”
19)計利以聽: “以”는 “已”자와 통한다. “聽”은 “聽從”, “채택하다”는 의미이다. 채택할 작전방법과 전략이 유리한 점이 있다면 채택하여 바로 상응하는 행동으로써 과감히 전쟁을 수행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新注》) 《商君书·说民》“夫农, 民之所苦. 而战, 民之所危也. 犯其所苦, 行其所危者, 计也. 故民生而计利, 死则虑名."
20)정사농(鄭司農): “勢爲形勢.”《文心雕龙․定势》“势者,乘利而为制也.”
21)以佐其外: 佐는 輔助,輔佐의 의미이다. 外는 曹操가 “常法之外也”라고 풀이하였다. 분명하지는 않다. 梅堯臣은 “定計於內, 爲勢於外, 以助成勝.”이라 하였다. “廟算” 즉 작전회의를 하는 사당을 안(內)이라 하면 전쟁터를 밖(外)으로 보는 것이다. 형세를 조성하여 주군을 보좌하면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22)權: 저울, 權道, 權變之擧(임기응변의 술수, 모략). 制權은 상황에 근거해서 그에 상응하는 임기응변의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荀子·議兵》“술수는 미리 책정할 수 없으며, 모략도 미리 도모할 수 없다. 작전 시기가 아군에 유리한 지 여부에 근거해서 적절한 전법을 취해야 하며, 사물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전법을 취해야 한다.(權不可預設,變不可先圖,與時遷移,隨物變化.)”이라 하였다. 저울로 물건을 저울질하듯이 정확하게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을 파악한 뒤에 비로소 그에 상응하는 전법을 구상하여 적군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야 한다.《孟子․梁惠王上》“权, 然後知轻重. 度, 然後知长短.”
23)詭道: 欺詐、多變한 方式.《孫臏兵法·威王問》“詐者,所以困敵也.” 용병술은 하나의 적군을 속이는 행위이다. 詭는 詭詐、奇詭(奇怪)의 의미이다.(《新注》) 조조는 “용병할 때는 일정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속임수를 원칙으로 삼는다.(兵無常形,以詭詐爲道.)”라고 풀이하였다. 用兵할 때는 마땅히 임기응변을 原則으로 해야 한다.《禮记․中庸》“道者, 日用事物當行之理.”라 하여 “道”는 “规律、规则、常法、常理”이란 의미로 발전하였다. 詭는 위배하다는 의미로써, 일반 원칙에 위배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의미이다.
24)본래는 공격할 수 있지만, 일부러 공격할 수 없는 듯이 처신한다. 본래는 수비를 할 수는 있지만, 일부러 작전상 지켜 낼 수 없는 듯이 처신한다. 示: 示形, 위장(僞裝)의 의미이다.
25)본래는 작전을 수행하여도 무방하나 일부러 작전상 미동도 하지 않는 듯이 위장한다. 본래는 어떤 인물을 내세워 작전을 수행할 작정이지만, 일부러 작전상 그를 내세우지 않으려는 것처럼 위장한다. 사례를 들자면, 219년 오나라 장군 여몽(呂蒙)이 촉 장군 관우(關羽)가 북쪽으로 번성(樊城)을 공격하러 간 기회를 틈타서, 형주(荊州)를 탈취하려 하였다. 관우가 여몽에 대해 경계와 대비를 하였기에 여전히 강한 부대를 머물게 하여 강릉(江陵)、공안(公安) 등지를 수비하였다. 여몽은 관우의 경계심을 풀기 위하여 중병에 걸린 것처럼 위장하였고, 손권은 공개적으로 그를 건업(建業) 지금의 남경(南京)으로 소환하였다. 아울러 “아직 명성이 멀리까지 알려지지 않고 관우에게 크게 경쟁 심리를 불러일으키지 않는(未有遠名, 非羽所忌.)” 육손(陸遜)으로 대체하게 하여 형주를 탈취하려는 의도를 숨겼다. 뒤에 관우는 결국 형주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하고 강릉、공안에 파병한 부대를 번성 공격에 합류하게 하자, 여몽은 그 기회를 틈타 강을 따라 부상하여 오군을 지휘하여 공안、강릉을 탈취하고, 형주를 매우 빨리 공격하여 탈취하였다.
26)본래는 가까운 곳에서 공격을 하지만 일부러 작전상 먼 곳에서 공격을 감행하려는 듯이 위장하며, 본래는 말을 타고공격하려 하지만 일부러 말을 타지 않고 공격하는 듯이 위장한다. 사례를 들자면, 기원전 478년, 월나라 왕 구천(勾踐)이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크게 공격하였고, 오나라 왕 부차(夫差)도 군대를 이끌고 대적하여 쌍방이 입택(笠澤)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동남부의 오송강(吳淞江)에서 강을 끼고 진영을 대치하였다. 월나라 군대는 눈앞에 흐르는 강을 건너 공격할 것을 결정하였으나 그러한 의도를 은폐하기 위하여 일부러 일부 군대를 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좌우 양쪽 측면에서 야음(夜陰)을 이용하여 북을 치며 공격하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부차는 그것에 속아서 군대를 나눠 대적하였다. 월나라 주력부대는 기회를 틈타 도강하여 오나라의 허를 찌르고 정면공격을 실행하여 오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27)亂而取之: 혼란 상태에 처한 적군에 대해 기회를 틈타 공격하여 탈취하다. 杜牧은 “적군에게 혼란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그러한 기회를 틈타서 적군을 습격하여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敵有昏亂,可以乘而取之.)”라고 풀이하였다. 사례를 들면, 383년, 동진 군대가 낙간(洛澗)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회원(懷遠) 남부에서 전진(前秦)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전진 군대를 추격하여 비수(淝水) 서안을 따라 포진하게 하고, 동진의 장군 사현(謝玄)은 전진 왕 부견(苻堅)의 자만심을 이용하여 도하하여 전진 군대와 승패를 결정짓는 일전을 하고자 원한다고 공언하면서 전진의 군대에게 일보 후퇴를 요구하였다. 부견도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동진의 군대가 도하하도록 유인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적군이 반쯤 도하할 때 공격하고자 하여, 군대에 명하여 약간 후퇴하게 하였으나, 막상 작전상 후퇴를 하였으나 사기가 저하된 분위기는 되살릴 수가 없는 법이라, 전진 진영에서 혼란의 형세를 조성하였으며, 동진 군대는 그 기회를 틈타 비수를 도하하여 전진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28)實而備之: 曹操는 “적군의 상태가 충실하면, 반드시 전투준비가 된 것이다.(敵治實,須備之也.)”라고 풀이하였다. 매요신(梅堯臣)은 “적군이 충실하면, 그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彼實則不可不備.)”라 하였다.
29)强而避之: 강력한 적군에 대해서는 잠시 그러한 예기(銳氣)를 피해야 한다. 사례를 들면, 기원전 154년, 서한 경제(景帝)가 칠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주아부(周亞夫)를 파견하여 동으로 오나라와 초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주아부는 연합군의 군세가 강성함을 보고서 대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양나라에 부탁하여 연합군의 식량보급로를 차단하게 하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에 창읍(昌邑) 지금의 산동성 금향(金鄕) 서북부로 근거지를 두고 강적을 피해 싸우지 않았다. 연합군이 양나라 군대를 공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양지(梁 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동부를 이용하여 적군을 끌어들였다. 뒤에 하읍(下邑) 지금의 안휘성 탕산(碭山) 동부로 진군하여 도랑을 깊게 파고 성을 높게 쌓아 성벽을 견고히 하여 수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연합군이 굶주리고 피로에 지칠 때를 기다려 부득이 퇴각할 때를 기다려 주아부는 군대를 이끌고 유리한 형세를 이용하여 연합군을 대파하였다.
30)怒而撓之: 撓는 희롱하다, 놀리다는 의미이다. 곧잘 진노하는 적장에 대해서는 기만하는 술수로 그를 자극하여 진노하게 하여 적장이 이성을 잃어 경거망동하게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기원전 203년, 한나라 군대가 항우(項羽)가 동부로 팽월(彭越)의 군대를 공격하는 기회를 틈타 성고(成皐) 지금의 하남성 형양(滎陽) 서북부를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초나라 장군 조구(曹咎)는 먼저 항우가 “성고를 조심히 수비하고 만약 한나라 군대가 도전해오더라도 신중하게 대처하고 대적하지 말라.”는 경고에 따라 견고히 수비하고 성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뒤에 한나라 군대가 연이어 도전하고 모욕을 주자 조구는 화가 난 나머지 곧장 군대를 이끌고 출격하였다. 한나라는 초군이 사수(汜水)를 반쯤 도하하였을 때 공격을 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怒는 사기가 왕성하다는 의미. 매요신(梅堯臣)은 “적장이 너무 성급하고 잘 분노한다면, 그러한 성격을 부채질하여, 화를 돋우고 쉽게 화를 내게 하여 전쟁을 가볍게 여기게 해야 한다.(彼福急易怒,則撓之,使憤急輕戰.)”라고 풀이하였다. 曹操는 "성격이 급한 적장은 그러한 분노하는 성질을 돋우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疾急之人, 可憤怒侮而致之.)"라고 풀이하였다. 즉 장수가 성격이 조급하고 화를 잘 낸다면 적군의 경모지계(기만술)에 빠지기 쉽다(將帥急躁易怒,則易中敵人輕侮之計) 撓는 “흔들어 혼란하게 하다, 또는 굴복시키다.”는 의미가 있다. 적군의 사기가 왕성하면 아군은 마땅히 그들의 예봉을 신중히 꺾어 적군의 사기가 쇠퇴하기를 기다려 다시 공격한다는 의미이다. 제갈량이 사마의를 놀릴 때 여성의 장식물을 보내어 분노하게 한 사례가 있다.《三国志·魏志·明帝叡传》裴松之注引《魏氏春秋》“亮既屡遣使交书, 又致巾帼妇人之饰, 以怒宣王(司马懿; 179年~251年).”, 《晋书·宣帝纪》:"亮(诸葛亮)数挑战, 帝(司马懿)不出,因遗帝巾帼妇人之饰."
31)卑而驕之: 아군을 비아냥거리는 적군에 대해 그들을 더욱 더 교만하게 만들게 한 뒤 기회를 틈타서 격파해야 한다. 일설에 따르면, 적군으로 하여금 아군을 무시하게 하고 적군 스스로 교만하게 하여 경계와 대비를 소홀하게 하여 공격하기에 유리하게 만든다고 해석하였다.
32)佚而勞之: 佚은 “逸”, 안일하다는 의미와 통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적군에 대해 그들을 피로하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기원전 512년, 오나라 왕 합려가 초를 대거 공격하고자 하였다. 손무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여 만류하였다. 오왕은 오자서의 건의를 받아 오군을 삼군으로 나누고 교대로 초나라를 습격하여 연이어 6년간 초나라 국경 사방을 공격하여 초군을 피로에 지치게 하여 기원전 506년 초나라를 격파하고 수도 영(郢)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강릉(江陵) 북부로 입성하는 조건을 만들었다.
33)親而离之: 리(離)는 이간하다는 의미.《廣雅·釋詁一》“離, 分也.” 적군의 내부가 단결되어 있는 상태라면 반드시 그들의 마음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34)勝: 비법, 오묘함, 뛰어나다, 오묘하다.(《新注》)
35)不可先傳: 사전에 작전을 구체화 할 수 없다. 즉 반드시 전쟁 수행 과정에서 적군의 상황에 근거해서 탄력성이 있게 전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曹操는 “전은 누설하다는 의미이다.(傳, 猶泄也.)”라고 풀이하였으며, 杜牧은 “전은 말해주다는 의미이다.(傳, 言也.)”라고 풀이하였다. 군사 전문가들이라면 적군을 격파하는 신비한 비결을 피아를 막론하고 사전에 말해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36)得算多: 승리를 얻는 조건이 많다. 계산이 치밀할수록 승리 조건이 많아진다. 算: 산가지. 여기서는 승리의 조건이란 의미.《孫臏兵法․客主人分》에서 “군대의 수가 많다고 승리하는가? 승패의 조건을 치밀히 고려하고서 전쟁에 나설 따름이다.(衆者勝乎? 則投算而戰耳.)”이라 하였다. 여기서의 算 역시 산가지의 의미이다.
37)廟算:《新注》에서 “고대에 군대를 일으켜 전쟁을 할 때, 묘당에서 회의를 열어 작전의 대략을 결정하고 전쟁의 승패를 미리 판단하였다. 이것을 묘산이라 한다.(古時候興兵作戰, 要在廟堂擧行會議, 謀劃作戰大計, 預計戰爭勝負, 這就叫廟算.)”이라 하였다.
38)見: “現”, 呈現, 顯現(드러나다, 분명하게 알다)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