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李白詩歌

17. 少年行二首

마장골서생 2009. 9. 7. 11:25

少年行二首1)

소년행 2수



其一

제1수

擊筑飮美酒2),  축을 두드리며 좋은 술 마시고,

劍歌易水湄3).  역수가에서 검을 치며 노래부른다.

經過燕太子4),  연나라 태자처럼 현사들과 교제하고,

結托幷州兒5).  병주의 협사같은 벗을 사귀려 한다.

少年負壯氣,   청년은 힘찬 기운을 지고 있으니,

奮烈自有時.   위용을 떨칠 때가 절로 있으리라.

因聲魯句踐6),  노구천을 만난다면 나를 알리고프니,

爭博勿相欺7).  노름이나 한다고 업신여기지 마오.


其二

제2수

五陵年少金市東,8)  오릉의 귀공자들 금시의 동쪽에서,

銀鞍白馬度春風.9)  은 안장 백마 타고 봄바람 맞으며 가네.

落花踏盡遊何處,   떨어진 꽃잎 밟으며 어디로 가나?

笑入胡姬酒肆中10). 웃으며 호희의 주루에 들어가겠지!










1) 少年行(소년행): 樂府舊題이다.《樂府詩集》권66《樂曲歌辭》에 들어있다. 宋나라에는 鮑照의《結客少年場行》이 있고, 齊나라에는 王融이 있고, 梁나라에는 吳均의《少年子》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이 의협과 향락을 묘사하고 있다. 이백의 이 시도 이 두 가지 제목에서 왔기 때문에《少年行》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젊은 시절에 지은 것으로 대략 천보 2년(743) 43세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2) 擊筑飮美酒(격축음미주): 筑: 고대의 현악기로, 그 생김새가 거문고처럼 크고 머리 쪽에다 현을 걸고서 대나무로 친다고 해서 筑이라고 하였다.《史記․刺客列傳》에 荊軻와 高漸離에 관한 이야기에 이 악기가 약간 언급되어 있다. “형가는 연나라에 도착한 후 개백정 및 축을 잘 타는 고점리와 친하였다. 형가는 술을 즐겨서 날마다 개백정 및 고점리와 함께 연나라의 저잣거리에서 술을 마셨고, 술이 취하면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그것에 맞춰 저자에서 노래부르며 서로 즐거워했는데, 그러다가 옆에 구경하는 사람이 없는 듯이 서로 울곤 하였다.(荊軻旣至燕, 愛燕之狗屠及善擊筑者高漸离. 荊軻嗜酒, 日與狗屠及高漸离飮於燕市, 酒酣以往, 高漸离擊筑,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无人者.)” 이후에 형가가 진왕을 암살하고자 떠날 때 연나라 태자 丹 및 賓客들이 이를 알고는 易水에까지 전송하였고, 고점리는 또 축을 탔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이 구에서 이백이 고점리처럼 연시에서 축을 타며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한 것은 자신도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역사적 인물에다 빗댄 것이라고 하겠다.


3) 劍歌易水湄(검가역수미): 荊軻의 故事를 사용하였다.《史記․刺客列傳》을 보자. “태자 및 빈객 중에 이 일을 알고 있는 자들은 모두 흰옷과 흰 갓 차림으로 그를 전송하였다. 역수 가에 이르러 신에 대해 제사를 올리고 길에 올랐을 때 고점리가 축을 타자 형가는 이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치음의 변음을 내자 듣는 이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또 앞으로 나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바람은 소슬하고 역수는 차가워라. 장사는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네!’ 또 우성을 내니 그 소리는 강개하여 듣는 이들은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이 갓을 밀어 올릴 듯이 일어섰다. 이리하여 형가는 수레를 타고 떠나갔는데,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太子及賓客知其事者, 皆白衣冠以送之. 至易水之上, 旣祖, 取道, 高漸离擊筑, 荊軻和而歌, 爲變徵之聲, 士皆垂淚涕泣. 又前而爲歌曰: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復爲羽聲忼慨, 士皆瞋目, 髮盡上指冠. 於是荊軻就車而去, 終已不顧.) 湄: 물가를 일컫는다. 이 구 역시 역사적 인물인 형가의 고사를 빌어 자신도 비장한 각오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라고 하겠다.


4) 經過燕太子(경과연태자): 燕太子: 이름은 丹이고 燕王 喜의 태자이다. 秦나라가 韓나라를 멸하기 전에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후에 도망쳐 돌아왔다. 진나라가 한나라와 趙나라를 멸하게 되자 그는 荊軻를 진나라로 보내 督亢(지금의 하북 涿縣탁현 일대) 땅의 지도를 바치고 번오기(樊於期)의 머리를 확인할 때를 노려 秦王 政을 암살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 거사는 실패로 끝났고, 진나라는 군대를 급파하여 연나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연왕 희는 진왕의 노여움을 풀고자 태자 단을 죽였다. 하지만 5년 후에 진나라는 결국 연나라를 멸하고 말았다.《戰國策․燕策三》참조. 經過: ‘交往’의 의미로 ‘왕래하다’ ‘교제하다’. 이 구는 이백이 전국시대 때 연나라의 태자 단이 여러 현사들과 교류했던 것처럼 자신도 그러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5) 結托幷州兒(결탁병주아): 幷州兒: 병주의 유협을 가리킨다. 병주는 옛 지명으로 지금의 하북 서부와 섬서 북부지역이다. 예부터 비장한 노래를 하던 遊俠之士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구는 의협심이 강한 젊은이들과 사귀고 싶다는 이백의 자신의 포부를 묘사한 것이다.


6) 因聲魯句踐(인성노구천): 因聲: 말을 전하다. 魯句踐: 전국시대 趙나라의 협객이다.《사기․자객열전》: “형가가 한단에서 유력할 때였다. 노구천이 형가와 도박을 하다 말판의 길 때문에 다투었다. 노구천이 화를 내며 형가를 꾸짖자 형가는 아무 말 없이 떠나가 버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노구천이 형가가 진왕을 암살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듣고는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아아! 안타깝구나! 그가 검으로 찌르는 방법을 익히지 않았던 것이! 정말로 내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구나! 이전에 내가 그를 꾸짖었을 때 그는 틀림없이 나를 동지로 생각하지 않았었겠군!(荊軻游於邯鄲, 魯句踐與荊軻博, 爭道, 魯句踐怒而叱之, 荊軻嘿而逃去, 遂不復會.……魯句踐已聞荊軻之刺秦王, 私曰: ‘嗟乎, 惜哉其不講於刺劍之術也! 甚矣吾不知人也! 曩者吾叱之, 彼乃以我爲非人也!’)” 이 구는 노구천과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자신을 소개하고싶다는 이백의 소망을 담고 있다.


7) 爭博勿相欺(쟁박물상기): 爭博: 도박으로 서러 다투는 것. ‘博’은 옛날에 승부를 결정짓는 유희의 일종이었는데 이후에 도박으로 범칭된다. 말판에 12갈래의 길이 있으며, 말은 흑백 각각 6개이다. 이 구는 도박으로 서로 다투게 되더라도 이해해주고 업신여기지 말아달라는 의미이다. 즉 이백 자신도 형가처럼 포부가 큰 사람임을 알아달라는 뜻이다.


8) 五陵年少金市東(오릉년소금시동): 五陵: 본래는 漢나라 때의 長陵․安陵․陽陵․茂陵․平陵 등 다섯 황제의 능묘가 있는 곳이었는데, 당나라 때는 권문귀족들이 모여 사는 곳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시에서는 장안에 살고 있는 부유하고 권세 있는 집을 가리킨다. 金市: 장안의 西市로 금이나 은을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얻게된 이름이다.


9) 銀鞍白馬度春風(은안백마도춘풍): 度: ‘越’, ‘越過’의 뜻. 즉 ‘지나가다’로 해석하면 무난하다.


10) 笑入胡姬酒肆中(소입호희주사중): 胡姬: 당나라 때 西域 및 외국에서 온 젊은 여자를 가리킨다. 酒肆: 주막, 주점,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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