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中國宦官

중국고대의 환관-저자 프롤로그

마장골서생 2009. 9. 1. 13:34

르언홍 지음 / 이상천 옮김 ≪중국고대의 환관, 울산대학교출판사, 2009.

 

 

환관(宦官)을 시인(寺人)․엄인(閹人)․환자(宦者)․중관(中官)․내관(內官)․내신(內臣)․내시(內侍)․내감(內監)․태감(太監) 등으로도 칭했는데, 특히 거세된 남성을 지칭하던 단어들이었다. 영화나 TV 연속극에서 수염 없는 얼굴, 보드라운 피부, 또 여자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약간은 쉰 듯한  목소리를 가진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이 권력을 전횡하거나 혹은 굽실거리며 아첨하는 모습은 사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당(唐) 현종(玄宗) 때의 고력사(高力士)나 자희(慈禧)태후 주변의 이연영(李蓮英)과 소덕장(小德張) 같은 사람들이 바로 권세를 누렸던 환관들이었다.

환관은 중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국에도 있었다.《성경․마태복음》중에 “처음부터 엄인으로 태어난 자도 있고,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거세된 자도 있고, 천국을 위해 스스로 거세한 자도 있다. 그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를 받아들이거라.”라는 기록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450~1250년 사이에 아시리아 제국의 왕궁 안에서 오로지 후궁만을 위해 일하는 거세된 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에 키루스 대제는 거세된 노예를 이용하여 자신을 보위하게 하였다. 그는 거세된 노예들은 가정과 거리가 먼 데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혈육간의 정도 문제될 것이 없으니 자신들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페르시아 제국 시절에는 거세되어 옥에 갇히는 죄수야 흔한 일이었다.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사람 중에 거세된 자들은 대부분 잘 생긴 죄인들이었다고 기술하였다. 페르시아의 왕 테리우스는 바빌론 왕국과 아시리아에 잔존하던 왕국들에게 500명의 거세된 노예를 바치도록 요구한 적이 있는데, 거세된 노예를 파는 행위도 이때부터 시작되던 것 같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어떤 사람은 전문적으로 어린애들을 거세시켜 교회 성가대의 소프라노 가수로 양성하거나 유럽 각지의 오페라 극장에다 팔아 넘겼다. 로마와 그리스 그리고 아랍의 일부 국가에서는 거세된 노예들이 매매되거나 후궁에서 종사하거나 귀부인들의 정부로 길러졌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러 몇몇 제국이 멸망하면서 엄인들도 비로소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중국의 환관은 대략 기원전 8세기의 주(周)나라에서 생겨났다. 고대의 천문역법을 논술한《성경(星經)》에 “환이라는 것은 네 개의 별인데 임금자리의 서쪽에 있다.(宦者四星, 在帝座之西.)”라는 기록이 있다.《주례(周禮)》에 “궁중의 소신은 왕후의 명을 관장하고, 왕후가 출입할 때 앞에서 길을 안내한다.(內小臣掌王后之命. 后出入, 則前驅.)”라고 했는데, 그 주석에 “이 소신은 엄인으로 왕후에게 길을 안내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此小臣, 是奄人, 與后導道是其常也.)”[《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주례주소(周禮注疏)》권7]라고 하였다. 또 “시인은 왕의 내인들을 관장하고......천자의 비빈들을 보좌하고 예에 관계되는 일들을 준비하였다.(寺人掌王之內人.......佐世婦治禮事.)”라고 했는데, 그 해설에 “......시인은 거세한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비빈인 세부를 보좌하고 장례에 관한 일이나 예에 관한 일들을 준비해야 했다.(以寺人是奄者, 故得佐世婦治喪事、禮事.)”라고 하였다. 이밖에《시경(詩經)․소아(小雅)》에 “항백이 유왕을 풍자하였다. 시인은 중상모략에 상처를 받은 이유로 이 시를 지었다.(巷伯, 刺幽王也. 寺人傷于讒, 故作是詩也.)”라고 하였다. 시인과 항백은 모두 환관을 일컫는 말인데, 이것은 아마도 중국의 역사서에서 환관에 관해 언급한 것 중 가장 빠른 기록일 것이다. 이로부터 이 전제주의(專制主義)제도 아래의 희생자인 환관들은 지옥에 떨어지거나 혹은 단번에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하면서 2,000년이 넘도록 중국 역사의 거대한 무대 위에서 놀라운 활극을 연출하였다. 아래에서 역사의 궤적을 따라 중국 환관들의 고락과 영욕을 더듬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