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莊子淺說

10. 쓸모 없는 것의 쓰임

마장골서생 2009. 2. 13. 18:57

10. 쓸모 없는 것의 쓰임


세속의 사람들은 왕왕 실용을 가지고 가치를 따지는 표준으로 삼는다.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쓸모가 있는 사물에 대해서는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쓸모가 없는 사물에 대해서는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많은 사물의 쓰임새가 비록 간접적이고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중요성은 직접적으로 쓸모 있는 그런 사물을 훨씬 초월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장자가 비록 純理論知識이 실용기술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해내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보통사람들이 실리를 우선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식견으로 눈앞의 사물에 좀스럽게 따지는 것을 폭로하였다. 그래서 실용자체의 입장에 서서 그는 “쓸모 없는 것의 쓰임(無用之用)”의 의미를 천명하며 선전하였다.
장자의 철학에서 보면 “무용지용”에는 몇 겹의 의미가 있다.


一, 이 주장을 빌어 자신의 염원을 나타내었다.
장자의 착상은 거침없는 붓끝으로 쏟아내었지만 “황당무계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해서(猶河漢而無極)” 처음 들으면 그 말이 “너무 커서 쓸모 없고(大而無用)” “어이없어 믿을 수 없다(狂而不信)”고 느낀다. 이 점은 장자에게 마치 선견지명이 있었던지 그는 “소경은 아름다운 무늬를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종과 북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 聾者無以與乎鐘鼓之聲)”고 하였다.


二, 세속 사람들은 작은 지혜와 무지는 종종 눈은 있지만 눈동자가 없어 큰 재주와 큰 쓰임을 알지 못하고 그들은 큰 것을 사용하는 데에 어리석다.
<逍遙遊> 안에 장자는 또 惠子를 빌어 자신의 염원을 토로하였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한다. “위왕이 내게 큰 조롱박 나무의 종자를 보내와 난 땅에 심어 키웠는데 열린 박이 족히 다섯 섬은 들어갈 정도로 컸다오. 물을 담는 용기로 쓰자니 물의 압력을 견딜 정도로 단단하지 못하였소. 그것을 갈라 표주박으로 쓰자니 너무 커서 이것이 들어갈 만한 항아리가 없었소이다. 나는 그것이 쓸데없이 크기만 하다고 여겨 부셔버렸다오.”
장자가 말한다. “선생은 정말로 큰 물건을 사용하는 데에 서투르오.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집안은 대대로 솜을 표백하는 일을 해왔다오. 어떤 나그네가 이런 약 소문을 듣고는 백금의 돈으로 그의 약 제조기술을 사려고 했다오. 송나라 사람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상의하며 말하기를 ‘우리 집안은 대대로 솜 표백하는 일을 해왔지만 쥐꼬리만한 수입에 불과했다. 지금 이 약 제조기술을 판다면 바로 백금을 얻을 수 있으니 팔아야겠다’라고 했다오. 나그네는 약 제조기술을 얻자 곧장 오나라 왕에게 유세했지요. 오나라는 이 때 월나라와 전쟁 중이었는데 오왕은 그를 장군으로 삼았소. 겨울에 월나라 군사와 수전을 벌였는데, 오나라의 군대는 이 약을 사용하여 손발이 얼어 터지는 걱정을 면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대승을 거두었다오. 오왕은 그에게 영토를 주고 제후에 봉했지요. 똑같은 약 제조기술로 어떤 사람은 제후에 봉해지고 어떤 사람은 솜을 표백하는 일이나 하는데, 이것은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오. 지금 선생에게 다섯 섬 크기의 박이 있다면 어찌하여 큰 술통을 만들어 강호에 띄우고 놀지 않고 그 박이 담을 것이 없다고 근심하시오? 선생은 아직도 비좁은 마음을 가지고 있구려!” 
(惠子謂莊子曰: “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 成, 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自擧也; 剖之以爲瓢, 則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 而掊之.”
莊子曰: “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爲事. 客聞之, 請買其方, 百金. 聚族而謀曰: ‘我世世爲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鬻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難, 吳王使之將, 冬, 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 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 而浮於江湖? 而憂其瓠落無所容? 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같은 사물이라도 다른 사람이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사용하면 이처럼 서로 다른 결과가 생겨난다. 여기에서 장자는 세인들이 그 큰 사물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점을 보여준다. 이어서 또 혜자와의 대화 속에서 그 “무용지용”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내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樗)’라고 하오. 그 큰 줄기는 옹이 투성이어서 먹줄을 치기에 적합하지 않고, 그 작은 가지들은 뒤틀리고 휘어 그림쇠를 쓰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큰길에서 자라도 지나가는 목수가 그것에 눈길도 주지 않았소. 지금 선생의 주장은 가죽나무처럼 크기만 했지 쓸모가 없으니 누구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장자가 대답하였다. “선생은 살쾡이와 족제비를 보지 못했소? 몸을 낮추고 엎드려 놀러 나온 작은 짐승을 잡으려고 기다리지요. 이 작은 짐승은 높고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덫을 밟거나 그물에 걸려 죽게 되오. 지금 저 검은 소는 그 크기가 하늘가의 구름 같아서 비록 쥐를 잡을 수는 없다 해도 그것의 기능은 정말 크지요. 지금 선생은 이렇게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쓸모가 없다고 걱정을 하고 있소. 무엇 때문에 그것을 인적 없는 시골의 드넓은 광야에 심지 않으시오? 그러면 선생은 정말로 아무 근심 없이 그 나무 곁을 거닐 수도 있고, 그 나무 아래 마음 편히 누울 수도 있겠지요. 이 나무는 도끼에 찍혀나갈 리도 없고, 이 나무를 해치려는 일도 없을 것이오.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해서 무슨 해가 있겠소?”   
(惠子謂莊子曰: “吾有大樹, 人謂之樗; 其大本擁腫, 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 而不中規矩; 立之塗, 匠者不顧. ――今子之言, 大而無用, 衆所同去也.”
莊子曰: “子獨不見狸狌乎? 卑身而伏, 以候敖者, 東西跳梁, 不辟高下, 中於機辟, 死於網罟. 今夫斄牛, 其大若垂天之雲; 此能爲大矣, 而不能執鼠. 今子有大樹, 患其無用, 何不樹之無何有之鄕、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無害者,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인간세> 안에서도 “무용지용”의 관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이름을 石이라고 하는 목수가 제나라를 향해 가다 곡원 땅에 도착해서 그 곳의 신목인 櫟樹라는 나무를 보았다. 이 나무의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그림자 속에 가릴 정도였고, 나뭇가지는 굵기가 백 자나 되었다. 그 높이는 산꼭대기보다 몇 장 더 높았고 그 위에 가지가 자라났다. 이런 가지 중에 배를 만들 수 있는 것만도 십여 가지나 되었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시장 안처럼 북적였지만 목수 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그의 제자가 질리도록 바라보고는 스승인 목수 석을 쫓아가 물었다. “제가 도끼를 잡고 스승님을 따르면서부터 지금까지 이처럼 훌륭한 목재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스승님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그냥 지나쳐 가시기만 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목수 석이 말하였다. “그만하거라! 더 이상 말하지 말라! 그건 쓸모 없는 ‘散木’이니라. 이 나무로 배를 만들면 바로 가라앉을 것이고, 관곽을 만들면 얼마안가 썩어버릴 것이며, 그릇을 만들면 금방 부서져버릴 것이고, 문짝을 만들면 진액이 흘러나올 것이며, 집의 기둥을 만들면 나무좀이 들끓게 될 것이니 재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니라. 조금도 쓸모가 없으니 저토록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목수 석이 집으로 돌아온 후 꿈속에서 신목인 역수를 만났다. 신목이 석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무엇으로 나와 비교하려드는가? 나를 훌륭한 목재로 쓰이는 나무에다 비교하려는 것인가? 저 산사나무․배나무․귤나무․유자나무 및 모든 나무에 맺히는 열매와 넝쿨 위에 과실을 맺는 식물은 과실이 익게되면 바로 누군가 와서 따게 된다네. 누군가 열매를 딸 때 휘어지는 굴욕을 당하는데, 큰 가지는 부러지고 작은 가지는 당겨져 휘어진다. 이것은 그것들의 타고난 재능 때문에 자신의 일생이 괴롭게 된 것이지. 그래서 타고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죽는 거라네. 자신의 쓸모를 자랑하다 세속으로부터 두들겨 맞은 꼴이지. 모든 사물이 이렇지 않은 것이 없다네. 하물며 나는 쓸모 없기를 바란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몇 번은 죽을 뻔했지. 지금까지 온전한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는 점이 내게 큰 쓰임이었기 때문이지. 만일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겠는가?”
(匠石之齊, 至於曲轅, 見櫟社樹; 其大, 蔽數千牛, 絜之百圍; 其高, 臨山十仞, 而後有枝; 其可爲舟者, 旁十數. 觀者如市, 匠石不顧, 遂行不輟.
弟子厭觀之, 走及匠石, 曰: “吾自執斧斤以隨夫子, 未嘗見材如此其美也. 先生不肯視, 行不輟, 何邪?”
曰: “已矣, 勿言之矣! 散木也. 以爲舟, 則沈; 以爲棺椁, 則速腐; 以爲器, 則速毁; 以爲門戶, 則液樠; 以爲柱, 則蠹; 是不材之木也. 無所可用, 故能若是之壽也.”
匠石歸, 櫟社見夢. 曰: “汝將惡乎比予哉? 若將比予於文木邪? 夫柤、梨、橘、柚、果、蓏之屬, 實熟, 則剝; 剝, 則辱, 大枝折, 小枝泄; 此以其能苦其生者也, 故不能終其天年, 而中道夭. 自掊擊於世俗者也. 物莫不若是. 且予求無所可用, 久矣, 幾死. 今乃得之, 爲予大用. 使予也而有用, 且得有此大也邪?”)

 

三, 세속에 수용되지 못하는 사람은 그들 자신에 대해서는 오히려 큰 이점이 있는데, 특히 통치계층에게 부림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에게는 하나의 다행스런 일이다.
能者에 대한 세속의 배척과 타격은 확실히 無所不爲적이다. 장자는 才智人士들을 일깨워 깊고 멀리 보아야 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급급해해서는 안 되고 재능을 믿고 함부로 행동해서는 더욱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부림을 당해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자아를 드러내거나 자랑하는 것을 모두 자아의 毁滅을 초래할 것이다. 바로 “산 위의 나무는 도끼 자루가 되어 자신을 찍어내고, 油膏는 불을 끌어들여 타지만 반대로 자신을 졸이게 되며,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벌채되고, 옻나무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려지는 것”(<인간세>)과 같다. 이것은 “호랑이와 표범이 몸에 난 무늬 때문에 사냥꾼을 불러들이는”(<應帝王>) 이치와 같은 것이다. 장자가 “세인들은 有用만 알 뿐 無用의 쓰임을 모르는 것”(<인간세>)을 탄식하듯이 말한 것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장자가 “無用”을 강조한 것은 결코 일체의 “廢物”을 변호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의기소침한 심경을 표현한 것도 아니다. 바로 才智를 가진 선비들이 공을 세우고 이득에 급급하여 治者에게 부림을 당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후환이 끝이 없게 된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李斯의 경우, 그가 秦朝의 재상이 되었을 때는 정말로 부귀공명이 한 몸에 집중되었지만 결국은 정치투쟁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옥에 갇혔을 때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였다. “옛날에 桀은 關龍逢을 죽였고, 紂는 王子 比干을 죽였으며, 吳王 夫差는 伍子胥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불충했겠는가? 그러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몸이 죽은 것은 충성을 받는 임금이 옳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史記․李斯列傳》) 이사가 탄식한 것을 장자는 훨씬 이전에 지적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신분과 명성을 세상에 드러내지만 결국은 죄수로 추락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바로 “교활한 토끼가 잡혀 죽고 나면 훌륭한 사냥개는 삶겨지고, 적국이 깨뜨리고 나면 지모가 뛰어난 신하는 처형되는 법이다(狡ꧏ死, 良狗烹……敵國破, 謀臣亡).” 漢나라의 淮陰侯 韓信이 誅殺되고 蕭何가 옥에 갇혔던 사례를 통해 장자가 “無用”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경계의 의미를 체득할 수 있다. 그는 智士들이 대부분 懷才不遇하고 이 때문에 종종 비관과 비분에 빠지는 것을 속속들이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無用之用”의 의미를 발휘함으로써 지식인들의 위기를 구제하였다. 이 점에서 장자는 후대 지식인의 항거정신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장자는 난세에 태어나 난세 속에서 治者에게는 “無用”했어도 실제로 자신에게는 “用”이 있었다―관료집단에게 부림을 당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는 실제로 크게 이롭다는 것이다. 민감한 장자는 한 눈에 관료집단이란 가면을 쓴 盜跖(도척; 도적)의 무리와 같아서 나라의 땅을 강탈하면서도 모습을 바꾸어 제후가 되고, 교묘하게 仁義로 가장하고는 스스로를 聖人으로 빚어낸다고 간파하였다. 장자는 기민하게 그들과 한 무리가 되는 것을 피하는 한편, 신묘하게 인의로 가장한 그들의 탈을 벗겨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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