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莊子淺說

8. 붕새와 참새

마장골서생 2009. 2. 8. 21:22

8. 붕새와 참새

 

《莊子》를 넘겨보면 첫 편이 바로《逍遙遊》의 鯤鵬에 관한 우화이다.

 

북방의 대해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의 이름을 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가 몇 천리인지 알 수 없다. 곤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그것의 이름을 鵬이라고 한다. 붕새의 등이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붕새가 힘차게 날아 오르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이 새는 바다의 치솟는 파도를 따라 남방의 대해로 옮겨간다. 남방의 대해는 하늘의 연못이다.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우선 글자 상에서 그 속의 의미를 살펴본다.
여기의 “北冥(海)”․“南冥”․“天池” 모두 사람의 발자취가 이를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그 멀고 아득함은 세인들의 육안으로는 엿볼 수도 없으며, 마음의 눈으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비유는 유형공간과 감관인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장자는 모습을 바꾼 곤붕을 빌어 물질세계 속 여러 가지 생김새의 한계를 깨뜨리고, 그것을 경험세계에서 뽑아낸 다음 문학적 상상력을 운용하여 하나의 드넓은 우주를 펼쳐내었다. 이런 새롭게 열린 광활한 우주에 절대적 자유를 부여하여 그 사이에서 막힘 없이 사방으로 내달릴 수 있도록 했지만 어떤 구속도 가하지 않고 있다.
“바다는 드넓어 물고기가 마음대로 노닐 수 있고, 하늘은 드높아 새들이 마음껏 날 수 있다(海闊憑魚躍, 天高任鳥飛)”라는 속담은 물고기와 새의 자유를 형용한 것이지만 결국은 상대적이고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나 새의 활동범위는 바다나 하늘의 밖을 벗어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바다나 하늘에 제약을 받는다. 이 때문에 장자가 창조한 거대한 곤과 붕의 의미는 유형의 바다나 하늘의 제약을 깨뜨리고 봉쇄된 공간체계에서 분리되었다 데에 있다.
곤이 “화하여 붕새가 되는 것(化而爲鳥)”은 형상일 뿐이지 질과 양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의 “化”는 여전히 이상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하나의 방향인 것이다.
“붕새가 힘차게 날아 오르다(怒而飛)”는 그 뜻이 인간 세상에 와서 힘써 펼치는 것을 가리킨다. “怒”는 힘써 떨쳐 일어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바다의 치솟는 파도를 따라 남방의 대해로 옮겨간다(海運則將徙於南冥)”. 바다가 “運”한다는 것은 바로 바다가 “움직인다(動)”는 것이고, 바다가 움직이려면 반드시 큰바람이 있어야 한다. 큰바람이 일면 붕새는 곧장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이 의미는 시기를 가리킨다. 바로 시기가 성숙되고 조건이 충족되면 세상으로 나와 시세의 추이에 적응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南冥”의 “冥”은 “明”으로 풀기도 한다. 감산(憨山)의 注는 “음양의 방향을 말하는데. 바로 임금의 남면을 설명한 것(謂陰陽之方, 乃人君南面之喩.)”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세상으로 들어가는 포부를 가리킨다. 이 포부는 일단 펼쳐지면 낙관적 신념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로부터 장자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비관적이고 소극적이며 또 은거사상을 품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그는 세상에 뛰어들 웅지를 가득 품었다. 오직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뿐이다―즉 시세의 추이에 적응하는 데에 그런 조건이 있는 이상 孔孟처럼 현군을 고대하는 애처로움은 아니다. 현실세계의 환경이 만약 그의 생각과 거리가 너무 멀 때 그는 자신의 생활태도를 보류하고는 있으나 자신의 원칙을 버리는 것은 원치 않았다.
지금부터 이 우화의 요점을 다시 토론하고자 한다.


一, 장자의 托物寓意(사물이나 현상에 의탁하여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는 鯤鵬으로 그 마음 속의 이상적인 인물을 보여준다―그는 “至人(도덕이 극치에 이른 사람)”이라고 하였다. 먼저 행적을 숨기고 스스로 연마해야 한다. 곤은 바다 밑에 숨어있는데 마치 지식인이 책상에 엎드려 연구에 몰두하는 것처럼 자신을 충실하게 하면서 내재적 조건이 충실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붕새가 높이 나는 것처럼 나아가 시세의 추이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런 이상적 인물이 일단 출현하기만 하면 그 성과는 곧 백성들에게 두루 미칠 것이다. 마치 붕의 날개가 만물을 뒤덮듯이 말이다.
이로 통해 장자 마음 속의 이상적인 인물은 실제로 곤붕 양자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곤과 같이 깊게 힘을 모으고 붕과 같이 멀리 날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二, “북해(北冥)”․“바다의 파도(海運)”․“깊은 물(積厚)”의 의미는 인재의 양성에 있어 훌륭한 환경과 스스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곤의 크기가 몇 천리인지 알 수 없다(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라는 표현을 가지고 유추해보면 북해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하고 넓다. 거대한 곤이 북해의 드넓은 곳에서 힘을 모으기에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데, 인재 역시 훌륭한 환경에서 양성되어야 함을 비유한 것이라고 하겠다. 작은 연못에서는 대어를 키울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바로 “물이 모여 깊지 않으면 큰배를 띄우기에는 부력이 부족하다(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力)”이다. 큰배를 띄우려면 반드시 물이 깊어야 한다. 이는 인재 양성에 있어 환경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의 붓 아래 대붕이 남쪽으로 날아간 후 또 작은 새의 조롱이 출현한다.

 

나는 힘써 날면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이를 수 있고, 간혹 날아 오를 수 없으면 땅으로 날아 내리면 그만이다. 구태여 단숨에 구만리나 되는 아주 먼 남해로 갈 필요가 있겠는가?
(我決起而飛, 搶楡枋, 時則不至而控於地而已矣, 奚以之九万里而南爲?)

 

참새는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서 자라나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득의양양해 하니 어떻게 대붕의 큰 뜻을 알 수 있을까? 至人이 지향하는 바를 세속의 천박하고 비루한 무리들이 이해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장자는 이를 빌어 천박한 주장에 얽매인 세인들을 비유했던 것이다.
장자는 매미와 참새가 대붕을 비웃는 문장 뒤에 결론을 내렸다. “이 두 마리의 벌레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之二蟲又何知)”라고 하였고, 이어서 “얕은 지혜가 깊은 지혜를 알 수 없는 데도……사람들이 그와 견주고자 하니 슬프지 아니한가(小知不及大知……衆人匹之, 不亦悲乎)”라고 탄식하듯이 말하였다. 경박한 무리들은 학문과 지략이 깊은 선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 데도 그들은 자신의 능력도 헤아리지 못하고 억지로 견주려고 하니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이어서 참새가 대붕을 비웃으며 “나는 도약하여 날아오르지만 불과 몇 장 높이에서 내려와 넝쿨 숲 사이를 날아다니는데, 이 역시도 가장 많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저 친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翶翔蓬蒿之間, 此亦飛之至也, 而彼且奚適也)”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장자는 “이것이 바로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이다(此小大之辯也)”라는 결론을 내렸다. <逍遙遊>와 同工異曲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또 <秋水>편이 있다. 대체로 <소요유>의 대붕․참새와 <추수>편의 海若․河伯은 실제로 앞뒤가 어울리고 취지가 서로 같다. 하백․해약의 우화는 이러하다.

 

가을 장마가 때맞춰 내리면서 불어난 온갖 냇물이 황하로 들어간다.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용솟음쳐서 양안과 모래섬 사이의 소나 말도 제대로 구별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황하의 주인인 하백은 매우 기뻐하며 천하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여겼다. 하백은 물이 흘러가는 대로 동쪽으로 가서 북해에 이르렀다. 동쪽으로 아무리 쳐다보아도 대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백은 비로소 득의양양했던 얼굴을 바꾸고는 북해약을 향해 탄식하였다……
(秋水時至, 百川灌河; 徑流之大, 兩涘渚崖之間, 不辯牛馬. 於是焉河伯欣然自喜, 以天下之美爲盡在己. 順流而東行, 至於北海, 東面而視, 不見水端. 於是焉河伯始旋其面目, 望洋向若而嘆曰……)

 

“하백은 매우 기뻐하며 천하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여겼다.” 이것은 <소요유> 중 참새가 “넝쿨 숲 사이를 날아다니며” 득의양양해 했던 것과 똑같이 자기중심의 철학을 표현하였다. 이것은 자잘한 것만을 알고 대수롭지 않은 것에 즐거워하는 수많은 河伯型의 보잘것없는 철학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철학은 장자의 안중에서 모기나 등에 같은 지식에 불과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