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은백색으로 물든 북부의 작은 도시를 비추고 있고, 조용하고 평온하였다.
아름다운 작은 도시 공원 옆은 모 부대 군병원 지역이다.
진찰실의 응급실에는 인턴 군의관 허웨이가 마침 공병대 중대에서 부상을 입고 온 병사를 맞이하고 있다.
부상병은 노랗게 뜬 얼굴로 허약하고 바짝 마른 채, 지저분하고 낡은 군장을 하고, 손가락에는 붕대를 감고 있다. 깊고 예지로운 눈빛과 도도하면서 차분한 기질은 분명 예사롭지 않고,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허웨이는 환자의 뜨거운 이마를 짚어보고, 청진기로 그의 배를 진찰하면서 청순하고 수려한 미간을 서서히 찌푸리기 시작했다.
“자자, 누워요, 옷 허리띠 풀어요”
허웨이는 환자를 병상에 눕게 하고 손가락으로 그의 간을 누르며, 가벼운 소리로 말했다. “숨 쉬고…… 숨 뱉고……”
환자는 순순히 숨을 쉬고 뱉고 하며 얼굴을 찡그리며 통증을 참았다.
허웨이는 몇 차례 반복적으로 안마하고, 다시 손가락으로 환자의 가슴과 배를 살살 두드리고 진찰하며 물었다.
“열 난지 몇 일 됐죠? 처음에 어땠어요?”
“그저께 오후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어지럽고, 졸리고, 메스껍기도 하고, 소변은 노랗고, 가끔 배가 아파요……”
“먹는 것은 어때요? 느끼한 음식 먹을 수 있어요?”
“아뇨, 보기만 봐도 토할 것 같아요……”
“자자, 숨 뱉어요…… 들이쉬고…… 아파요?”
“조금요……”
“음, 일어나요!” 허웨이는 수도가로 가 손을 씻고 테이블로 돌아와 앉고, 머리를 들고 환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온 중대 위생병에게 물었다. “당신은 위생병입니까? 왜 일찍 안 데려왔죠?”
농촌출신 위생병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공사기간 촉박하죠, 사람도 없고…… 전 독감인줄 알고 아스피린을 먹였습니다……”
부상병은 자리로 되돌아와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무슨 병이죠?”
“급성 황달형 간염 이예요. 바로 입원해야 돼요”
허웨이는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다. “이름은? 소속은?”
“류스, 774사단 3대대 9중대 4소대 포병분과 부조장, 70년 입대……” 위생병은 귀찮은 듯이 대답했다.
허웨이는 환자를 보았다. “유서? 동서남북의 서?”
류스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흐를 류, 스승 스”
허웨이는 주의 깊게 그를 한번 쳐다보고, 마스크를 벗고 일어서서 “날 따라와요”하고는 얼굴이 빨개진 채 문밖으로 나갔다.
류스는 골똘히 생각하며 그녀의 늘씬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어났고, 몸이 한결 가뿐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녁 무렵, 조용한 내과병실에서 류스는 병상에 누워 닝겔주사를 맞으며, 커버가 씌여진 책을 읽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허웨이가 어린 간호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류스는 급히 책을 놓았다. “야, 허 선생님!”
허웨이는 원래 하던 대로 그의 이마에 손을 대고 말했다. “6번 병상, 아직 열 내려가지 않았어요 당분간 책보지 마세요, 피로를 줄여야 돼요……”
류스는 응답하고, 책을 베게 밑에 넣었다.
허웨이는 어린 간호사에게 인계하며 말했다. “잠자기 전에 유동식 한번 넣어줘요, 밤에 특별히 잘 살피고…… 그럼, 쉬세요”
허웨이는 류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어린 간호사를 데리고 나갔다.
류스는 몰래 킥킥 웃고, 다시 베게 밑에서 책을 꺼냈다.
붉은 석양이 말없이 메마른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저녁식사 후 허웨이는 동료들과 말하며 웃으며 기숙사 밖 회랑으로 돌아왔다. 한 여사병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허 선생님, 빨리요, 손님 왔어요” 여병사는 신기하다는 듯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아가씨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와아하는 소리를 지르며 돌아갔다.
허웨이가 여병숙사로 들어가자 체구가 크고 훤칠한 젊은 장교가 예의를 갖추며 몸을 일으켰다. “허웨이! 왔어?”
허웨이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그릇 젖가락을 놓고 인사했다. “아, 후 참모님, 앉으세요”
후동성은 조심스럽게 깨끗한 침대가쪽에 앉고, 웃으며 말했다. “왜 이래 부드러워졌어, 우리 양가 평범한 관계 아니잖아, 허 삼촌께서 항상 나한테 너 어린 여동생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셨는데”
허웨이는 물 한 잔 따라 마시며 물었다. “후 삼촌께서는 요즈음 잘 지내셔?”
후동성이 말했다. “건강하신데, 혈압이 좀 높아. 영감쟁이 정신은 멀쩡하지, 광조우 지역 부사령으로 발령 나셨어”
허웨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마음이 다소 산란해 보였다.
후동성은 자상하게 물었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허웨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방금 좀 어지러워서……”
“미니얼씨증후군 아니니?” 후동성이 그의 이마를 짚어 보고 말했다. “너 학교에서 돌아온 얼마 안 돼 이곳 기후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 거 아냐? 조심해”
허웨이는 몸을 움직이며 가식적으로 말했다. “괜찮아! 의대에서 실습할 때도 자주 군대에 갔잖아……”
다시 침묵이 흘렀다. 후동성은 약간 겸연쩍어 담배 한 대 꺼내더니 순간 분위기상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옷안에 넣었다.
“상관없어, 피워” 허웨이는 말하며 창문을 열었다.
후동성은 원래 모습을 되찾고,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안 피울래. 어때? 하루종일 갑갑했을 텐데, 산책이라도 할까? 공원의 설경이 아주 볼만해, 사령부쪽 사람들 사진 찍으로 갔다던데……”
허웨이는 완곡하게 거절하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힘들 거 같아, 조금 이따가 병원에서 여사병 반상회가 열려, 더군다나 오늘 급성간염에 걸린 위급 환자가 있어, 마음이 놓이질 않아……”
허웨이는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저런, 그럼 다음에 가지 뭐. 책임감이 아주 강한 인턴 군의관이구만! 좋아, 갈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해”
허웨이는 마음이 걸려 일어서서 말했다. “좀 더 앉았다가 가?”
“볼 일 봐, 그럼” 후동성은 손을 흔들고 몸을 돌려 씩씩한 군인 자세로 병원 밖으로 성큼 걸어갔다.
허웨이는 눈으로 후동성의 뒷그림자를 배웅하고, 잠시동안 멍한 채로 있었다.
일군의 여사병들이 흡사 땅밑에서 갑자기 “와!”하는 소리를 내며 튀쳐 나오듯 허웨이를 에워쌌고, 허웨이는 깜짝 놀랐다.
“정말! 니들 뭐해? 깜짝 놀랐잖아……”
여사병들은 재잘재잘 거리며 허웨이를 에워쌌고, 이상하리 만큼 흥분했다.
“좋겠다! 한참 작업하더니, 숨겨놓은 동무가 있었네!”
“허 선생! 국수 먹여 줄꺼죠?”
“어쩐지 남자 관심 없다 싶었더니, 알고 보니 애인이 있었네……”
“후 참모님 얼마나 멋져, 형부 될께 틀림없어……”
허웨이는 안달이나 얼굴이 빨개지며 그녀들을 치며 말했다. “계집애들! 니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하는 거야! 그의 아빠와 우리 아빠는 전우사이야, 우린 어릴 때부터 알았다구……”
“그럼 소꼽친구에, 겹사돈 맺겠네. 호호……”
여병사들은 우하하 웃으며 달아났고, 일제히 음에도 맞지 않는 애정곡을 불렀다. “화창한 봄날에…… 18세 오빠 강 저 너머 앉아 있지요. 호호……”
허웨이는 후끈 달아오른 얼굴을 어루만지며,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은은히 들려오는 점호 나팔소리가 작은 도시의 하늘에 오래오래 메아리 쳤다.
허웨이는 흰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차고 병동으로 갔다.
길가에 한 사람이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허 선생님, 병동 돌아보시게요?”
허웨이는 응답하고, 등이 꺼진 병동회랑을 따라 돌았다.
류스가 입원하고 있는 입원실을 지날 때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망설이다 살그머니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둠 속에 한 환자가 인사했다. “허 선생님, 병동 순시 중이세요?”
“조용히 하세요, 쉬세요” 허웨이는 환자에게 이불을 덮어주려는 순간 류스의 병상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환자가 대답했다. “몰라요, 방금 책 끼고 나가는 것 같은데…… 그를 찾으세요?”
허웨이는 엄숙하게 말했다. “지금부턴 정해진 시간에 쉬라고 알려줘요. 그럼, 쉬세요” 살짝 방문을 닫았다.
정적이 감도는 병동 회랑의 끝 환자식당에 불이 켜져 있어, 허웨이는 그곳으로 갔다.
유리창 너머 류스가 테이블에 엎드려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허웨이는 문을 밀고 들어가, 나무라며 말했다. “류스 동지, 왜 아직도 안 자요? 병원의 휴식규정을 지켜주세요”
류스는 재빠르게 종이로 빨간 커버의 노트를 덮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 선생님, 죄송해요. 자료 좀 준비하느라고요”
허웨이가 물었다. “무슨 자료?”
“아하, 중대 공사 결산하는 거 말입니다……” 류스는 생각이 끊어진 것에 대해 아주 언잖아 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허웨이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다른 일은 없어요. 제시간에 쉬세요. 당신 병은 아주 심각해요, 지나치게 몸을 혹사하지 마세요”
류스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물었다. “심각해요?”
“일반적으로 급성간염은 제때 치료받으면 이후에 별다른 영향이 없어요, 하지만 치료와 회복이 안되면 만성적인 간염 혹은 다른 질병으로 번질 수 있어요, 그럼 한평생 힘들어요.”
류스는 골똘히 생각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허 선생님, 치료를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
허웨이는 잠시 머뭇거렸고, 물러나며 말했다. “일찍 쉬어요”
류스는 순간 불렀다. “하 선생님!”
허웨이는 몸을 돌렸다. “다른 일 있어요?”
류스는 웃고,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깊고 예지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 시 좋아하세요?”
허웨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시? 물론 좋아하죠!”
류스는 다소 흥분하며 제의했다. “괜찮으시면 이 시 어떤지 한번 들어보실 레요?”
류스는 말하면서 두툼한 파란 커버로 된 노트 한 권을 꺼냈다.
허웨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류스는 한쪽을 펼치고, 나지막하고 듣기 좋은 바리톤으로 감정을 풍부하게 넣어 차분하게 낭송하였다 ――
거미줄이 무정하게 나의 부뚜막을 몰수했을 때,
잿더미의 여남은 연기가 빈곤의 슬픔을 탄식할 때,
나는 완강하게 실망의 잿더미를 평평하게 깔고,
아름다운 눈송이로 쓴다. “미래를 믿는다!”
나의 자빛 포도가 만추의 눈물로 바뀔 때,
나의 눈부신 꽃이 타인의 마음에 의지할 때,
나는 여전히 완강하게 이슬이 맺힌 앙상한 등나무를 보며,
삭막한 대지 위에 쓴다. “미래를 믿는다!”
나는 손가락으로 ――
저 하늘가로 요동치는 물결을 가리킨다,
나는 손바닥으로 ――
저 태양과 대해를 받친다.
나는 서광을 흔들며 ――
저 깜직하고 따뜻한 연필로,
아이들의 노트에 쓴다 ――
미래를 믿는다! ……
허웨이는 깊고 진실된 시구에 깊은 감동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눈에 영롱한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 모습은 그녀의 얼굴을 더욱 순정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류스는 순간 낭송을 멈추고, 나지막히 물었다. “어때요?”
허웨이는 겸연쩍게 눈을 닦고, 흥분하며 말했다. “너무 좋은데요! 오래동안 이런 시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직접 쓴 거예요?”
류스는 노트를 닫고 웃으며 말했다. “제 수준으로 어떻게! 베이징의 한 홍위병 친구가 쓴 거예요, 전국 지식 청년권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요, 널리 애송되구요……” 그는 순간 화제를 돌리며, 냉소적인 얼굴로 말했다. “반동적인 시로 느껴져요?”
허웨이는 의아해하며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반동? 왜요? 아주 감동적인걸요, 게다가 고귀한 정신까지 묻어나잖아요”
류스는 짖궂은 장난치듯 웃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을 제대로 보았네요, 교양이 있으시군요……”
허웨이는 멸시와 조롱을 당한 느낌이 들어, 쌀쌀하게 그를 보며 말했다. “너무 거만하군요? 혼자 잘난 척 하고 다른 사람들은 바보로 아는군요? 아마…… 내가 사람 잘못 본 거 같네요”
허웨이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데, 류스가 불렀다.“허 선생님!”
류스는 다가와 그녀의 뒤에 서서, 미안해하며 말했다. “허 선생님, 미안해요, 원래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제가 너무 심했어요. 정말로 이 시를 좋아하시면 베껴 드릴께요, 아직 많아요……”
허웨이는 내심의 충동을 참으며, 쌀쌀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갔다.
류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 내쉬며 식탁으로 돌아와 다시 붉은 커버의 노트를 펴고 쓰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달빛이 깊은 잠에 빠진 병영을 어루만지고 있고, 세상은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여사병 기숙사안에 아가씨들의 미약한 호흡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허웨이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차마 견딜 수 없어 일어나서 침상에 내려와 책상 앞에 앉아, 등불이 새지 않게 종이로 가려놓은 스탠드를 켜고 일기장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썼다.
“나 오늘 왜 이러지? 왜 이레 설레지? 왜 이레 괴롭지? 왜 늘 그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는 거지? 왜 그 두 눈을 잊을 수 없는 거지? …… 난 낮선 이성에게 쉽게 감정을 더러내는 아가씨가 아니잖아, 왜 멍청하게 시 들으러 간 거지? 그의 조롱을 받았지? 왜 또 그의 카리스마와 도도함에 이토록 끌리는 거지? 왜? …… 내 마음은 너무 심란하다. 설마 내가 정말 첫 눈에 반해버린 걸까? 하지만 그를 안지 하루도 안되었잖아!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고위층 자제? 사기꾼? 야심가? 미치광이? 아니면 모래 속에 숨어있는 황금? 물밑을 잠유하는 교룡? …… 삶이 얼마나 기묘한가, 얼마나 복잡한가, 얼마나 불가사의한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굳게 유지해야 돼…… 하지만, 하지만 난 괴롭게도 여태까지 나 이 ‘콧대 높은 공주’의 마음을 이처럼 사로잡은 사람이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에이, 허웨이야 허웨이, 너 어떻게 할꺼니? ……”
허웨이는 스탠드를 꺼고, 어둠속에 앉아 오래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저녁 무렵, 따바샨 오지에 있는 모 생산대 사당안에서 직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검게 그슬린 기둥에는 바람막이 유리가 달린 제등이 걸려져 있고, 방안에는 거무칙칙하고 야원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남녀노소 마을주민들로 꽉 차있고,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었고, 연무가 자욱하였다.
생산대 서기와 지식청년 류얼이 심하게 닳은 탁자 앞에 앉아 있다.
대대 서기는 곰방대로 탁자를 치며 소란스런 소리가 차츰 가라앉은 다음 훈계하기 시작했다.
“너거 이 썩어 문드러질 제8 생산대 정말 도움이 안되는 구만이! 어쩐지 전 식구가 깡통 찼나 싶었어, 집안끼리 치고 박고 싸울 땐 정말 실감나더구먼, 양씨 집 린씨 집 완전 불구대천 원수더구먼! 서로 잘되는 꼴을 못 보더구먼! 생산대를 이 모양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말이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고구마 죽 먹고 배부른 모양이지! 아무나 막 자르면서 니들 자신은 왜 안 짤라? 이런 식으로 자르면, 전 생산대 식구 굶어 죽어! 돌대가리들, 머저리들, 남 좋은 일 다 시켜주고 말이야! 정말 ‘농민교육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니까 ……”
남녀노소는 멍하니 실없이 웃으며 훈계를 들었다.
대대 서기가 말투를 다소 누그러뜨리고 계속 말했다. “대대에서 판단해서 결정했소, 린 양 양가의 대장과 부대장 모두 물러나요! 한쪽으로 서요! 대대는 지식청년 류얼 동지를 생산대 대장으로 추천하겠소. 반대하지 않으면 박수로 환영해주시오!”
뜻밖에도 전 사당에서 열렬한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류얼은 사지를 쭉 펴고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대대 서기는 약간 의기양양해하며, 곰방대를 버끔버끔 피우며 말했다. “류얼 이 사람 말이오, 여러분이 추대한 거요! 도시에서 온 지식청년 학력이 높아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공정하게 일 처리해요, 당신들처럼 서로 잡아뜯고 엉망진창으로 하지 않아요. 이 사람 홍위병 사령 때 무수한 사람들 거느렸어요, 당신들 이 손바닥만한 생산대 똥 사는 것처럼 간단하게 움직여 나갈꺼요! 모두 들어요, 누구라도 대장의 지도에 복종하지 않으면 류얼 동지가 ‘선 처리 후 보고’할꺼요, 거기 영감들에게도 따끔하게 훈계할거요! 류얼 동지, 한 마디 하게!”
류얼은 간단하게 말했다. “서기 님께서 잘 말씀해주셨소. 전 조직의 신임과 구성원들의 지지에 감사하오, 견마가 되어 제8 생산대의 식구들을 위해 밥벌이하겠소!”
구성원들은 더욱더 힘차게 박수를 쳤다……
모임이 끝난 후 류얼은 횃불을 들고 촌 밖 대숲에 홀로 거주하는 초라한 띠집으로 돌아왔다. 띠집안에는 따뜻한 불빛이 켜져 있고, 귀엽고 작은 허약한 한 여 지식청년이 부엌에서 밥을 하느라 분주하였다.
류얼은 집문으로 성큼 들어왔고, 되는 대로 인사하며 말했다.“왔어?”
“예”찌엔샤오링이 온순하게 응답하며 급히 주걱을 내려놓고, 뜨거운 물 한 잔 따라 류얼 앞에 내놓았다. 류얼은 편안하게 앉아 뜨거운 물에 발을 담갔고, 찌엔샤오링은 잽싸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사를 차렸다. “식사해요”
류얼은 발을 닦고 나무 슬리퍼로 갈아 신고 식탁 앞에 앉았다.
찌엔샤오링은 밥과 반찬을 담아 류얼 앞에 가져 와서 부드럽게 말했다. “배고팠죠? 죽순 볶았으니까, 따뜻할 때 먹어요!”
류얼은 국과 고구마 죽을 후루룩 마시고, 죽순김치를 먹었고, 두 사람은 부부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류얼은 가볍게 원망하듯 말했다. “언제 왔어? 날도 저물었는데, 사고날까 두렵지 않아? 다음엔 날이 어두워지면 오지 마, 작년 양리리가 네 명의 괴한에게 겁탈당한 거 몰라……”
그는 순간 말하지 않고, 살벌하게 죽을 먹었다.
찌엔샤오링은 눈썹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고분고분하게 응답했다. “응……”
류얼은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참, 오늘 공사 주임이 너 불러 뭐라 하든? 좋은 일은 아니지?”
찌엔샤오링은 잠시 머뭇거리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나보고 입사지원서 쓰라고 했어요, 사서함 69에 화잉샨의……”
류얼은 젓가락을 놓고 예민하게 물으며 말했다. “이런 좋은 일이 있나? 조건은? 조건은 말하지 않튼?”
찌엔샤오링은 머리를 떨구고, 눈물을 글썽이며 잠시 망설이더니, 나지막히 말했다. “……나더러, 나더러 시중들래요……”
류얼은 밥그릇을 식탁위에 올려놓더니 우악스럽게 말을 끊고 말했다. “됐어! ……염병할, 얼마나 많은 소녀를 유린했는지! 이 색마! …… 또 뭐라든?”
찌엔샤오링은 눈물을 닦고, 류얼에게 다시 죽 한 그릇 들어주고는 말했다. “거절하면 영원히 전근할 생각치 말라며……”
류얼은 가물거리는 등불을 골똘히 주시하며, 중얼거리듯 맹세하며 말했다. “내 이 자식을 혼 좀 내줘야겠어, 기다리고 있어”
산바람이 불어오자 숲은 일렁이며 소리를 내었고 깊은 계곡에는 멀리 들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전해왔다. 석유램프는 가물거리고, 음침한 기운은 방안에 가득 찼다.
젠샤오링은 애처롭게 류얼을 바라보았다. “난 무서워......”
류얼은 깊은 생각을 하는 듯이 여자 친구를 바라보고는 조용하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젠샤오링은 다가와 말없이 그의 품에 기대어 그의 허리를 꼭 껴안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류얼은 가볍게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신선한 꽃잎 같은 입술을 내밀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류얼은 천천히 머리를 숙이고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고, 두 사람의 호흡은 점점 가빠졌고 결국 억누를 수 없는 미친 듯한 입맞춤으로 빠져들었다......
“아, 류얼, 꼭 안아줘, 더 세게......아, 사랑해, 뭐든 너에게 줄게, 류얼, 날 좋아하잖아, 뭐가 필요해?......” 욕정이 넘치는 소녀의 가쁜 호흡과 속삭임은 작은 짐승처럼 그의 품안에서 파닥였다.
은 쟁반 같은 달이 고요하게 하늘에 걸려 말없이 두 젊은이들의 괴로운 사랑을 축복하고 있었다.
맑은 하늘은 아득하고 땅에는 누런 흙먼지가 가득하였다. 황량한 고원(원塬:중국 서북 황토 유역의 탁상의 고원)의 꼭대기에 잡색의 양떼가 천천히 이동하고 있고, 양치기의 노래는 하늘을 맴돌았다.
날마다 바람불어도, 날마다 맑기만 하네,
날마다 보아도, 말하지 못했어라......
네가 그리워라, 정말 네가 그리워라,
날마다 널 그리지만 사랑을 이룰 수 없어라......
공허하고 적적한 황토 고원의 오솔길에 현지 농민의 솜옷을 걸치고 적십자 약상자를 멘 류웨이가 황급히 걷고 있었다.
검붉은 얼굴, 밤송이 같은 짧은 머리, 황토로 뒤범벅이 된 몸, 붉은 수수같이 성숙한 체구......몇 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는 이미 완전히 소박한 타이싱(太行)산 지역에 사는 젊은이처럼 변해 있었다.
그는 언덕을 걷다가 멈춰서 멀리 내려다보며 남쪽의 충칭에 있을 누나와 형들을 생각하자 맑은 눈에 회색 그늘이 스쳤다.
멀리 고원 위에 갑자기 작고 검은 점이 나타나더니 약한 산바람이 간간이 불어와 긴 소리를 내었다---
“우......우......”
작고 검은 점의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분명하게 날아왔다---
“우......넷째야......네 할머니가 안되겠다......빨리 돌아오너라......네 할머니는 더 못 견딘다......”
류웨이는 깜짝 놀라 언덕을 나는 듯이 뛰어 내려갔다.
들쑥날쑥 겹겹이 펼쳐진 토굴집들이 온통 누런 흙과 하나되어 소조처럼 무겁고 유화처럼 칙칙해 보였다.
류웨이는 숨을 헐떡이며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고향사람들과 말을 걸고는 바람처럼 작은 마당으로 뛰어들어갔다.
류웨이는 단숨에 햇빛이 침침한 토굴 안으로 달려들어가서 목이 잠길 정도로 소리쳤다. “할머니......”
할머니는 구들 위에 뉘어져 있고, 이미 수의로 바꿔 입혀져 있었다. 눈빛은 멍하니 어둠침침한 천장을 바라보면서 미약한 숨을 쉬며 입으로는 난난을 되뇌이고 있었다. “넷째야......넷째야......”
류웨이는 울부짖으며 할머니의 얼굴에 엎드려 노인의 차디찬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저 돌아왔어요......할머니!......”
할머니는 별안간 똑바로 몸을 일으켜 문밖을 바라보며 연신 소리를 내면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빨리 나가봐라! 빨리 나가보라니까! 우리 막내 손자가 돌아 왔구나! 빨리 가거라, 망할 것들......”
문가에 서서 눈물을 닦던 부녀자와 아이들이 놀라 도망을 쳤다.
할머니는 하하 한번 웃더니 곧바로 넘어져서는 숨이 끊어졌다.
류웨이는 할머니의 품에 엎드려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목동의 괴롭고도 처량한 사랑의 노래가 또 들려왔다......
엷은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은 높고, 눈이 그친 후의 날은 맑기만 하였다. 붉은 황토 고원 위에 장송하는 검은 색의 행렬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장송깃발은 펄럭이고 장송하는 종이돈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허리에 흰 천을 두른 연주팀(嗩吶隊:태평소나 날라리를 부는 사람들)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사원들은 해바라기>라는 곡을 연주하며 장송 행렬의 보조에 맞춰 검은 관의 뒤를 따라서 천천히 행진하였다......
류웨이는 부모상을 치르는 듯이 흰 삼베로 묶고 관을 당기며 손에는 상주의 지팡이를 짚고 통곡하였다. “할머니......”
고향 사람들도 관의 뒤를 따르면서 묵묵히 눈물을 닦았다.
검은 색의 무리가 점점 황토 속으로 사라졌다.
까치 한 마리가 때 아니게 잎이 다 떨어진 마른 가지 위에 앉아 간간이 기쁜 듯한 소리를 내었다.
저녁 무렵이었다. 허웨이 홀로 사단장의 집으로 들어갔고, 위병은 그녀에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였다. 걱정거리로 가득 찬 허웨이는 황급히 답례를 하였다.
사단장의 부인이 응접실 문밖에서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였다.
“까치가 울더니 귀한 손님이 오시는구만. 웨이웨이야. 너 오늘 정말 한가한 모양이구나, 네 삼촌(양씨)이 애태우고 있단다. 빨리 방에 들어가 봐라.”
부인은 친절하게 허웨이의 손을 끌며 응접실로 들어가자 건장한 양 사단장은 유쾌하게 소파에서 일어섰다.
허웨이는 부동자세로 사단장에게 경례를 하였다. “사단장님, 안녕하세요!”
사단장은 급히 그녀를 당겨 앉히고는 말했다. “됐어! 됐어, 집안에서 이럴 필요까지야. 허웨이, 여자아이가 돼서 남들 집 사내애만 못하구나, 동성은 벌써 도착해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지!
허웨이는 어리둥절해졌다. “후 참모도 왔다구요?......”
사단장은 기쁘게 말했다. “후 참모는 정말 훌륭한 인재야, 넌 정말 안목이 있구나! 허웨이, 이번에 내가 군관구 회의에 갔다가 네 아버지를 만났단다! 허 부사령관은 너와 동성의 일을 듣고는 대단히 기뻐하셨지! 노 지휘관께서 또 날 집으로까지 데리고 가셔서는 마오타이 술을 마셨지. 하하......”
허웨이는 약간 감정을 누르기가 힘들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물었다. “사단장님, 저와 후 참모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무슨 일입니까?
사단장이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부인은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좋은 일이지! 기관과 친속들에게 모두 소문났는데, ‘천생연분(天上一對兒, 地上一雙)’이라고 모두들 말하더군! 허웨이야, 너 더 이상 이 이모랑 네 삼촌을 속이지 마라, 결론을 얘기하자면 네 삼촌은 아직 ‘중매쟁이(月下老)’야. 빨리 이 이모에게 말해봐, 언제 결혼 할 생각이야?......”
허웨이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갑~니~다!”라는 길게 끄는 외침소리를 따라서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요리 접시를 받쳐든 후동성이 응접실로 걸어왔다. 그는 허웨이와 맞닥뜨리자 머리를 끄덕이고는 가볍게 물었다. “왔구나?”
허웨이는 약간 화가 난 듯이 얼굴을 돌리고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후동성은 좀 난처한 듯 손을 비비며 나지막한 소리로 사단장에게 말했다. “사단장님, 요리가 다 나왔습니다......”
“자 자 자, 모두 앉아요! 모두들 앉아, 오늘 저녁 우리 통쾌하게 두 잔을 마십시다. 자아, 허웨이. 멍하게 있지 말고!”
허웨이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고 마지못해 사단장의 명령에 복종하며 식탁 앞에 앉았다. 비록 애써 내심의 충동을 억제하면서 말을 않고는 있지만 얼굴 색은 여전히 분명히 보아주기 민망할 정도였다.
사단장은 모두의 잔에 붉은 포도주를 가득 따라주고, 스스로는 마오타이 술을 가득 채운 잔을 들고 호쾌하게 말했다. “자, 젊은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건배!”
말을 마치면서 목을 젖혀 술잔의 술을 비우는 순간, 모두 술잔을 건드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이상하여 물었다. “왜들 그래?”
허웨이는 얼굴을 붉힌 채 답답한 숨을 쉬었고, 후동성은 불안스럽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부인은 문제가 있음을 대충 눈치채고는 살며시 사단장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사단장은 불쾌한 듯이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뭐냐 모두들 말도 않고? 말다툼 한 거냐? 동성! 너 말해라, 무슨 일이 있었지?”
후동성은 입을 열기는 열었지만 말하기 난감한 듯 했다. “저......”
“변변치 못한 놈. 허웨이, 네가 말해라.” 사단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허웨이의 얼굴을 훑었다. “내게 불만 있는 거냐!”
허웨이는 천천히 머리를 들고 강한 어조이기는 하나 성의와 예의를 잃지 않고 사단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단장님, 전 사단장님께 불만 같은 것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와 후 참모는 지금까지 연애를 해 본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결혼 같은 것은 말할 것이 못됩니다. 이것은 오햅니다. 왜냐면 제게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저는 사단장님과 이모께서 제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에 감사하고요, 후 참모의......나에 대한 우정과 신임에 역시 감사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후 참모, 이 일로 감정상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해요......죄송합니다. 사단장님!”
집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사단장은 생각할 것이 있는 양 머리를 숙이고 빈 술잔을 매만졌고, 부인 역시 가만히 앉아 말을 하지 않았다.
후동성의 안색이 평안하게 회복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말했다. “주방에 봄 가봐야겠습니다......”
침묵하였다. 오랜 침묵이었다.
고요한 밤하늘에 은은한 소등 외침소리가 울려 퍼졌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병원의 복도 끝에 있는 환자 식당에는 여전히 등이 밝혀져 있었다. 허웨이는 흥분되는 심정이 되어 빠른 걸음으로 그곳으로 걸어갔다.
문을 밀치고 들어섰지만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탁 위에 잡지와 두꺼운 붉은 가죽의 노트가 펼쳐져 있고, 만년필이 옆에 놓여있었다.
허웨이는 강한 충동에 의해 이끌려 살며시 걸어가 조심스럽게 노트를 폈는데, 눈빛이 갑자기 멈췄다---
노트의 속표지 위에 만년필로 힘있는 글자 몇 자가 적혀 있었다. “뿌얼스웨이커 형제의 이야기, 작가서문.”
허웨이는 자기도 모르게 소설에 깊이 이끌렸고, 천천히 앉아서 “뿌얼스웨이커 형제”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갑자기 차디찬 목소리가 그녀의 등뒤에서 울렸다. “허 의사! 당신 어떻게 함부로 남의 일기를 훔쳐볼 수 있습니까?
허웨이는 감격해 있다 깜짝 놀라 돌아서서 마음 편하게 뒤에 서있는 류스를 보았지만, 눈빛을 번쩍이며 말했다. “이건 일기장이 아니야. 소설 한 부야......”
냉랭하게 목소리를 높여 허웨이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걸 쓴 사람의 허락도 받지 않고!”
허웨이가 별안간 일어나더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를 향해서 말했다.“사랑은 타인의 허락이 필요 없는 거야!”
류스는 멍했다. 허웨이도 멍해졌다. 처음으로 대담하게 서로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둘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으나 허웨이가 돌아서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허웨이!” 류스가 불렀다. 허웨이는 갑자기 멈춰 섰다. 류스는 감동해 하며 그녀의 뒤에 와서 섰다. 잠시 섰다가는 조용히 말했다. “네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니길 바래(希望我沒有聽錯你的話)......” 허웨이는 벌써 뜨거운 눈물이 가득해서 순간 몸을 돌려 류스의 품속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류스를 꼭 껴안고 말했다.“사랑해!......”
류스도 이 뜻밖의 사랑고백에 아주 감동되어 눈엔 감격의 눈물이 반짝였다. 가볍게 떨고있는 허웨이의 몸을 껴안고 있는 류스의 깊은 눈은 창밖의 조용하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두운 가로등은 밤 안개 속에서 분명히 구별하기 어렵고, 오래된 다락방은 밤의 장막 아래서 이상하게 쓸쓸해 보였다. 농촌에서 막 누나 집 남안으로 급히 돌아온 미커는 불길한 징조를 예감한 것같이 보였다. 꿈속 같이 텅비어 아무도 없는 골목을 달려갔다. 벽을 둘러싸고 노천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 《南征北戰》에서 나는 총포소리와 관중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미커는 텅 빈 공장 정문으로 달렸고, 골목과 단층집으로, 외진 구석에 위치해 있는 작고 어두운 방을 향해 달렸다.
방안은 불이 어둡고, 이상한 기척이 미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불길한 징조가 강하게 미커의 몸과 마음을 두렵게 했다.
미커는 좁고 캄캄한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급히 전등을 밝게 켰다.
순간, 눈앞의 광경에 놀라 멍해졌다.!
자신의 어머니가, 바로 도축사에 의해 침대에 넘어 뜨려져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녀의 살려달라고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남자의 난폭한 손에 의해 힘으로 가려졌다. 그 색마의 “헤헤” 하고 낭랑하게 웃는 소리가 어두운 방안에 울렸다.
미커는 정신이 이상해졌다! “야---”하며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가서, 잡히는 대로 식칼을 잡아들고 그 색마의 높이 치켜든 엉덩이를 향해 잔인하게 찔렀다.도축사는 돼지를 잡는 것 같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달아나려고 하는데, 미커가 또 연달아 칼로 팔을 두 번 쳤다. 순식간에 온몸에 피를 흘리며, 머리를 감싸안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미커는 난폭한 새끼 표범처럼 “와와” 울부짖으며 칼을 들고 문밖으로 쫓아갔다. 놀라 멍해진 어머니는 울며 필사적으로 아들을 붙잡았다. 미커는 미친 듯이 날뛰고 발버둥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강은 큰 물결로 소용돌이치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를 냈다.
잔인한 두 칼은 미커를 잡혀 들어가게 했다. 죄명은 계급보복, 무산계급 혁명파에 대한 난폭한 공격이었다......
검은 구름이 빽빽하게 퍼진 하늘아래에 검은 색의 담벽이 우뚝 솟아 있었다.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박박 깍은 미커는 두 명의 교도관에 의해 호송되어 죄수용 차에 떠밀려 태워졌다. 비통하고 절망적인 친황은 더 이상은 큰소리로 부르지 않았고, 류뿌와 스웨이의 품에 기절하여 쓰러졌다.
죄수 호송차는 경적을 울려 쌩하며 먼 곳으로 떠나갔다.
미커는 얼굴을 철책 난간에 붙이고 치욕과 고통을 가져다 준 산성을 돌아보며 갑작스레 웃었다. 깨달음 뒤의 후련함을 가지고......
검은 구름이 성을 뒤덮었다. 하늘은 벌써 이른봄의 기러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휘영청 밝은 달은 넓은 대지 위에 퍼져있고, 거무스럼한 소나무 가지 위에는 묵직하게 쌓인 눈이 소복이 덮여있다. 오솔길이 구불구불하게 눈 덮인 벌판의 절정에서 사라졌다. 광활하고 사람이 없는 공원에는 눈꽃이 부드럽게 날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하였다.
천지가 온통 너무나 조용하였다. 생동적이고 고요한 은백색의 세계에, 쌓인 눈을 밟을 때 “뽀드득” 하는 소리가 가볍게 날 뿐이었다.
밤이 깊어 인기척이 없다. 군복을 입고 군모를 귀까지 눌러쓴 두 군인이 인적이 묘연한 눈 내린 공원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한 사람은 건강미가 아주 뛰어나고, 또 한사람은 가냘프고 약했다. 마음놓고 그녀도 남자와 같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팔자 걸음을 걷고 있었다. 얼굴엔 또 두툼한 마스크를 끼고 있었으나 아장아장 걷는 걸음걸이와 연약한 허리 그리고 아름다운 형체에서 아직도 소녀라는 것을 분간해 낼 수 있었다.
남자 군인은 고고하게 머리를 쳐들고 자신의 영지를 둘러보는 것 같았으며 심지어 가볍게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야, 나 군인 같애?” 그녀는 가슴을 꼿꼿이 세우고 조용히 물었다.
류스는 감상하듯이 그녀의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응, 멀리서 보게 되면 속일수도 있겠어. 애석하게도 허리는 너무 좀 가늘고 약해서, 몸을 덮어 숨길 방법이 없구만! 비록 옷을 두텁게 입는다 해도......”
“그럼 어떻게 해? 나 벌써 삐져서 못 참아!” 그녀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서 끄내고 싶었으나, 류스가 여전히 못하게 했다. 허웨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什麽都得將就你. 류스는 형들처럼 그녀의 어깨를 껴안으며 말했다. “좀 참아봐, 아가씨! 두 남자 군인이 눈밭에서 한 밤중에 터 놓고 얘기하는 거야, 또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아니라......”
류스와 허웨이는 조용히 쌓인 눈을 피해 밟으며 새까맣게 보이는 소나무 숲 가운데로 나가서 서로 포옹하며 진지하게 입맞추었다. 달빛은 나무그림자를 뚫고 지나가 조용히 숲 가운데의 공터를 밝게 비추었다.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두 연인은 달콤함과 따뜻한 향기에 빠져 들어갔다.
“스터우, 아직 부대에 남아 있을 거니! 아빠와 얘기 좀 했는데......” 허웨이는 갑자기 간청하는 의미로 애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等......), 날마다 자유자재로 여기에 와서 산책해도 되겠지......”
류스는 허웨이의 고집스런 만류에 끌리게 되어 살며시 웃었다. 분명하다, 아마 이것은 언제나 그들 사이의 화제일 것이다.
“아니, 너 어떻게 이렇게 고지식하니?” 류스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나무그림자 안에서 허웨이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고서 말했다. “나에게 정해진 것은 직업군인이 아니야, 하물며 출신을 속이고 부대에 몰래 들어온 ‘나쁜 사람‘ 이야. 어느 날 정말로 신분이 일단 폭로되면, 또 군복을 벗어 던지고 농촌으로 흘러 들어가 일생 동안 농민이 될 거야...... 허웨이, 우리 청년들의 정신적인 고뇌를 도무지 넌 상상도 못 할 꺼야, 넌 너무 순조롭게 보육원에서부터 초등 1학년까지, 그 후에 부정으로 군인이 되고, 군의대학 졸업까지, 그리고 입당해서 간부로 발탁됐기 때문에 자연이 어떤 사람이 무상의 뇌물을 바쳤을 꺼야, 이후에도 다시 거드름 피우는 책임간부의 부인이 되어, ...................부유한 생활을 누리겠지, 하......”
류스는 정곡을 찌르고는 웃기 시작했다. 악독하고 냉혹하게 웃었다. 연인사이의 온정과 양해는 조금도 없었다.
“넌 양심이 없어!” 허웨이의 눈물이 단번에 왈칵 쏟아졌다. 원망스럽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정말 그런 저속한 여자라면, 뻔뻔스럽게 너와 함께 뭘 하겠니!...... ”
류스는 걱정거리에 부딪친 것 같이 허웨이 곁에 가서 천천히 걸으며 담배를 꺼내서 말없이 피웠다. 거만한 얼굴을 높게 들고 먼 곳의 달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래 말이 없었다.
밤새가 날개 짓을 하며 깊은 밤하늘을 향해 날아 오르고 몇 번 슬픈 소리를 냈다.
허웨이는 눈물을 삼키고 멈추고는 뒤돌아서 류스의 조각상 같은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또 약해졌다.
그녀는 살며시 사랑하는 사람 옆으로 가서 두 팔을 뻗어 류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그의 딱 벌어진 가슴에 기대었다.
“류스”, 허웨이는 살짝 그를 밀더니, 빠르고 과감하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모든 단추를 풀어버린 허웨이의 얼굴에 선홍색의 빛을 발하였다. 그것은 여인의 생명의 찬란한 빛이고, 류스의 눈을 또 눈부시게 비추었다.
류스는 멍하니 허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깊은 곳에는 줄곧 열정이 파동 치고 큰 파도가 물결쳤다. 입 속은 오히려 바싹 말랐지만 물어보았다. “허웨이, 너 뭘 하고 싶은 거니?”
그녀는 상반신 전부를 이미 드러냈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어깨와 밝고 깨끗한 유방은 그렇게 풍만하고 아름다워 그야말로 백옥으로 조각한 여신 같았다.
허웨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약간 웃었다. “류스, 날 원했잖아, 너에게 진심과 성의로 조금도 남김 없는 사랑을 증명하려고...... 내 모든 건 너의 것이야, 류스......”
“허웨이!” 류스는 허웨이의 순수하고 아름답고 거짓없는 처녀의 몸을 감상하며, 열정이 솟구치고 마음속의 불꽃이 곧 뿜어 나왔다. 류스의 몸은 정욕의 충동으로 끊임없이 떨렸다.
그녀를 본 류스의 손이 과감하게 혁띠로 향했으나, 한번 억누르고는 옷을 잡아 그녀의 몸 위에 걸쳐주었다. 그녀에게 입맞추며 말했다. “난, 너의 귀한 사랑을 이미 얻었어. 너무 기쁘고 만족해. 널...... 사랑하는 일은, 아직 신혼 첫날밤까지 기다릴 꺼야. 널 사랑하니까 널 존중하고 싶어. 너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얻은 것 같애 ”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자기야, 날 꼭 껴안아 줘, 놓지 말고......” 허웨이는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진정한 사내 대장부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정하게 살을 문지르며 말이 없었으나, 마음속은 오히려 격정의 물결이 점점 높아갔다.
은 쟁반 같은 달이 쓸쓸하게 어두컴컴한 뭇 산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대나무 숲에 숨어있는 초가집 안으로 아주 약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가스등아래, 류얼과 세 남자 지식청년들이 돌아가며 큰 사발로 저질의 백주를 마시고 있고, 지앤샤오링은 부엌에서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류얼은 백주 몇 잔으로 빨개진 눈을 크게 뜨고 낯은 소리로 말했다. “오늘 모두 오라고 한 것은, 인민공사의 그 악질분자 마주임을 좀 훈계하려고 불렀어! 요즘 마주임이 샤오링이”---, 밤에 아마 샤오링을 찾아가서 귀찮게 할 수 있어......샤오링! 마 주임이 오후에 너보고 뭐라고 했지?
지앤샤오링은 큰 접시에 감자 튀김과 김치볶음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나르며 말했다. “사람이 많고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나에게 웃어 줘. 말하지 말고......”
한 지식청년이 몹시 화를 내며 욕했다. “제기랄, 일찍이 그의 부품을 빚졌는데 양리리의 사건이 반년동안 조사했는데도 종결돼지 않았지. 맞아, 이 늙은 늑대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
“넷 중에 어린 여자아이 바이윈은 마 주임에 의해서 임신까지 했어도 집으로 보내지 않았어, 몇 번 농약을 마셨지만 또 죽지도 않았어. 사람들 모두 멍해졌었지...... ”
“큰 형 얘기 좀 해봐요! 어떻게 해?” 지식청년들은 단단히 벼르며 한스럽게, 당장 가슴에 가득 찬 분노를 악질분자에게 내 뿜었다.
류얼은 이미 계획이 서 있는 것 마냥 손을 저으며 말했다. “우리 의논해, 결정하면 바로 실행하는 거야!”
여럿이 생각을 모아서 함께 의논하기 시작했다.
한 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하고 밤벌레가 일제히 울고 있었다.
군복을 걸친 마주임이 속요를 흥얼거리며 몽롱한 달빛을 타고 흔들흔들하며 논두렁과 대나무 숲을 지나갔다. 불꺼진 지앤샤오링의 초가집 앞까지 더듬어 갔다. 먼저 집안의 인기척을 듣고서 곧 창문가까이 다가가 목청을 가다듬고 부드럽게 부르기 시작했다.
“샤오지앤! 샤오지앤 벌써 자? 빨리 문 열어봐, 마주임이야. 직공 모집표를 네게 주려고 가져왔어......”
잠깐동안 기다렸지만 집안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마씨는 문 앞에서 질질 끌다가 문을 밀었. 갑자기 자물쇠를 더듬었다. 자기도 모르게 김새하며 낮게 욕을 했다. “**! 한밤인데 집에 없어...... 음란한 계집! 중은 달릴 수 있어도 절은 달릴 수 없지. 肯信日不死你个小騷......“
마주임은 욕을 해대며 왔던 길을 따라서 돌아갔다. 막 대나무 숲을 가는데 갑자기 네 명의 복면한 그림자가 가스 방망이를 쥐고 말없이 마주임을 향해 포위했다. “누구야?...... ” 하고 마씨가 소리지르려고 하자 바로, 복면한 사람들에게 두꺼운 포대자루로 머리를 씌워지게 되었고 자루 입구는 꽉 졸라매져서 사방이 캄캄했다. 연이어서, 가차없이 마구 때렸다. 가죽 채찍과 큰 몽둥이로 정면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痛得姓麻的 .
평소에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네 명의 복면한 남자들은 당황하지 않고 專揀 -----나쁜 점은 손을 대서라도 골라내야 했다. 그 악질분자가 울며 부모를 부르고 연거푸 살려달라고 할 정도로 때렸다.
보아하니 대충 때려준 것 같았다. 마씨도 곧 소리치지 못했다. 한 사람이 손을 저었다. 복면한 네 사람은 마씨의 사지를 몇 번 흔들더니 “어이!” 하는 소리를 내며 갑자기 마씨를 공중으로 내 동댕이쳤다. 묵직하게 차디찬 겨울 밭에 굴러 떨어졌다.
곧이어 휘파람소리가 나더니 복면의 남자들은 순식간에 아득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흙탕물이 가득한 자루 속의 살 뭉치만이 남아 밭 가운데서 발버둥치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 소리를 낼 줄 아는 괴물 같았다.
먼 나무숲 옆에 류얼과 지앤샤오링이 그늘에 서있으면서 냉정하게 이 모든 것을 목격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류얼은 참을 수 없어 손을 내밀어 지앤샤오링을 꼭 껴안았다.
산취 노동교육농장 접견실에 객지에서 고생하고 있던 친황과 일부 면회 온 친척들이 철 난간 뒤쪽에 서서 안쪽의 꽉 닫혀있는 철문을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적적하게 작은 문 옆에 서서 가족들을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을 바라보던 친황은 마침, 한 눈에 아들 미커를 알아보았다.
“미커! 내 아들!...... 엄마 여기 있어! 어서 와, 얘야! 엄마 쪽으로 와!......” 눈물이 쏟아지는 친황은 열렬하게 아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미커는 머리는 헝클어지고 검고 말라보였다. 어두운 시선이 마침내 엄마에게 멈췄다. 진심으로 원하지 않은 듯 천천히 엄마 쪽으로 걸어왔으나 면회하는 칸막이로부터 2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다시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친황은 칸막이 사이로 열렬하게 손을 내 뻗었다. 온 얼굴에 눈물을 가득 흘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어서!, 얘야! 엄마 옆으로 와라!, 너 좀 보자!, 널 생각하며 엄마는 몇 천리를 달려왔어, 아들아......”
검게 여위고 지저분한, 차가운 얼굴의 미커는 조금도 동정하지 않은 채, 어두운 눈빛으로 얼굴엔 괴상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친황은 아들을 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약간 신경질적으로 가방 안에서 사탕, 통조림, 과자, 과일, 땅콩, 통 닭구이 등등 몽땅 끄집어내서 아들에게 내밀었다.“어서 들어 얘야! 엄마가 너 주려고 아주 많이 가지고 왔어......”
미커는 갑자기 말했다.“담배가 필요해요.”
친황은 분명히 듣지 못 한 것 같이 말했다.“뭐라고? 아들아 네 말은-”
미커는 격분해 하며 고함쳤다. “담배를 줘요! 담배!!”
샘솟듯이 눈물을 흘리는 친황은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엄마가 곧 가서 사 올께...... 기다리고 있어, 아들아!”
친황은 울면서 사람들을 비집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작은 골목의 잡화점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바쁘게 돈을 끄집어내어 질이 나쁜 담배 두 갑을 샀다. 또 울면서 접견실로 뛰어들어왔다.
미커는 담배를 보고는 눈이 금방 밝아졌다. 앞으로 나가 담배를 강제로 빼앗은 미커는 돌아서서 보지도 않고 철문을 향해 가버렸다.
친황의 마음은 아파서 찢어질 듯 했고, 울면서 불렀다.“미커......”
미커의 뒷모습은 철문 안으로 사라졌고 벨 소리가 울렸다.
먹을 것을 몽땅 안고 있다가 맥이 빠져 아래로 떨어뜨렸다. 즉시 귀를 찌르는 병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추하고 지저분한 시골 여관에 돌아온 친황은 한 바탕 울었다. 어지러워서 침대에 누워 어떻게 하면 재차 미커를 볼 수 있고, 또 몇 마디 얘기를 할 수 있을 지를 궁리하고 있었다.
“삐꺽,” 낡은 나무문이 열려졌다. 같은 방의 농촌 노부인이 들어왔다. 몹시 흐뭇하게 불렀다. “친황 동지, 난 우리 다와를 보았다오, 집에 있을 때 보다 더 튼튼하게 자랐더군! 헤헤, 노동개조범은 쌀밥을 먹고, 우리는 산골에 나는 고구마와 호박으로 배를 채우잖아요.”
친황은 노부인의 수다를 듣고 싶지 않았다. 노부인의 아들이 어떻게 농사짓는 소를 훔쳐서 도살했는지, 또 어떻게 도망쳐서 공안원이 추적하여 붙잡히게된 이야기는, 노부인의 아들이 영웅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친황도 노부인을 동정했고, 노부인은 필경 질박하고 온후한 농촌 어머니의 사랑이, 수백 리 떨어진 곳에서 걸어서, 형을 살고 있는 아들을 면회하러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농촌의 노부인은 입을 다물었고, 정말 잠든 것 같아서 친황은 창문으로 다가가 어슴푸레한 먼 산을 바라보면서도 혼탁한 눈물이 났다.
오후의 밝은 태양은 니우레이비 창에 비쳐 들어왔다. 눈물자국이 가득한 친황의 얼굴 위에 비췄다. 친황은 놀라서 깼다. 햇빛은 비춰 지나가더니 문밖으로 옮겨갔다. 다른 침대에서 오므리고 있는 농촌 노부인은 오히려 너무 흥분하고 피곤했던지 움직이지도 않았다.
작은 시골은 아주 고요하고 한적해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든 중에서 가장 체면이 서는 기와 벽돌로 된 단층집 앞에 간 친황은 머뭇거리다 즉시 들어가서, 돈을 꺼내 담배를 샀다. “동지, 가장 좋은 담배 두 갑 주세요.”
“가장 좋은 담배는 황금엽인데, 열 갑에 이 마오 치이고, 한 보루에 이 콰이 치이니까 두 보루면 산콰이 스마오 입니다” 좀 수다스러운 점원이 한 손엔 담배 두 갑을 쥐고 또, 한 손은 그녀를 향해 내밀고 돈을 요구하는 것이 친황이 담배를 가지고 달아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친팡은 돈을 내고 담배를 갖고 갔다. 그녀는 급히 읍외에서 멀지 않는 노역소에 와서 꽉 닫혀진 면회소 철문과 아무도 없는 텅빈 평지를 보고서야 순간 면회시간 외에 아들 미커를 만날 수 없음을 알았다.
낙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정연한 발걸음 소리와 큰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눈여겨보니 일군의 노동개조 복역수들이 교도관의 호송아래 호미 등의 농기구를 메고 대문을 나서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친팡은 내심의 기쁨을 참을 수 없었고, 길가로 비켜서서 눈을 크게 뜨고 푸른색 교도복을 입고 똑같이 스포츠형 머리를 한 복역수 중에서 아들을 찾았다. 그녀는 마침내 침울한 얼굴로 행렬의 맨 마지막 줄에서 굳은 표정으로 가고 있는 미커를 보았다.
“미커!”
한 중년의 교도관이 이 광경을 보고 다가와 친절하게 물었다. “아주머니, 미커 어머니 되세요?”
“예” 친팡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간부는 바로 소리쳤다. “류커! 나와!”
미커는 서서, 벌써부터 어머니를 보고는 한쪽으로 외면해 있었다.
중년의 교도관은 친팡의 손에서 담배를 받아들고, 미커에게 말했다. “류커, 엄마라고 부른다, 그럼 이 담배 준다”
친팡은 그가 이렇게 처리하리라 곤 생각지도 못했고, 너무나 감격하며 자상하게 아들을 보았다.
미커는 목석처럼 저기 서서 어머니는 보지 않고 담배 두 갑만 쳐다보고 한참동안 우물쭈물하더니 무뚝뚝하게 소리를 냈다. “엄마……”
“미커! 아들아, 아들아!……” 친팡은 나아가 그를 꽉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미커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그녀를 밀치고 중년 교도관 앞으로 가 손을 내밀며 담배를 달라고 했다. 교도관은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에게 담배를 주었다. 미커는 담배를 가지고 뛰어 재빨리 이미 멀리 가버린 행렬을 쫓아갔다.
친팡은 눈으로 아들을 보내고 마음속으로 다소간의 위안을 얻었다.
교도관이 말했다. “아주머니, 류커는 생각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들이 잘 지도하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교도관 님, 여러분들 너무 고맙습니다……” 친팡은 그를 향해 몸을 크게 숙이며 인사했다.
태양은 아득하고 고요한 산야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다.
방문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이 부딪혔다. 류웨이가 크고 작은 짐을 지고 방안으로 달려들며 큰소리치며 말했다. “누나! 나 왔어!”
마침 등 아래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류뿌 부부와 아들 꿔꿔는 놀라 기뻐하며 말했다. “야, 웨이웨이 돌아왔어!”
꿔꿔는 껑충 높이 뛰어 류웨이의 목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세째 외삼촌!”
류웨이는 목에 꿔꿔를 매단 채 손에 크고 작은 짐을 들고 외조카와 우하하 웃으며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류뿌와 스웨이는 급히 동생의 짐을 받고 말했다. “꿔꿔! 빨리 내려와. 외삼촌 너무 힘들어……”
류웨이는 외조카를 내려놓고 식탁가에 앉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직 식사 안 한 모양이지? 잘됐다, 그럼!”
류웨이는 손 가는 대로 그릇과 젓가락을 집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그릇 속에 넣어 한바탕 게걸스럽게 먹었다.
류뿌는 깨끗한 그릇과 젓가락을 가지고 와 말했다. “야, 그건 내 꺼야!”
류웨이는 먹으며 소리쳤다. “따지긴, 배 좀 채우고”
루뿌는 마음이 아파 동생 그릇에 반찬을 덜어주며 나무라듯 말했다. “몇 일 동안 밥 안 먹은 거야, 어떻게 이 모양이 됐어. 천천히 넘겨, 막히지 말고…… 꿔꿔 빨리 외삼촌에게 국 한 그릇 떠 줘”
류웨이는 자신도 모르게 전형적인 농민처럼 의지위에 쭈그리고 앉아 통쾌하게 먹으며 말했다. “덜거덩거리는 기차에서 삼일 보냈지, 소병 네 개 계란 두 개 먹었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류뿌는 동생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웃으며 골려주듯 말했다. “정말 샨시 사나이 같네, 쭈그리고 밥 먹으면 불편 안 해?”
류웨이는 모호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응, 편안해……”
전 가족들이 안타깝게 농부같은 류웨이가 혼자서 마음껏 먹고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고, 작은 다락방에는 포근함과 기쁨이 넘쳐흘렀다.
류웨이는 마침내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길게 거친 숨을 몰아쉬고, 트럼을 하며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듯 평안하고 기쁜 모습을 하였다.
꿔꿔는 한쪽에서 외삼촌의 먹는 모습을 보고 소곤거리듯 웃었다.
스웨이가 그릇과 젓가락을 치우며 말했다. “웨이웨이야, 오기 전에 전보라도 치지 그랬어, 우리가 역에 마중 나갔잖아”
“참말로! 집도 못 찾는 것도 아닌데, 마중은 요”
류웨이는 말하면서 허리춤에서 농민용 담뱃대를 꺼내 너덜너덜한 담배쌈지에서 동냄비처럼 누런 실담배를 가득 퍼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뻑뻑”피우기 시작하였고, 저 안락하고 유쾌한 모양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신선”같았다.
전 식구들이 실눈을 한 채 어안이 벙벙하였다.
스웨이가 재미있게 눈을 깜빡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웨이웨이, 가난한 중하층 농민과 이 정도로 결합했으니, 널 모범노동자로 뽑아야 할 것 같다!
류뿌는 허리가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꿔꿔는 외삼촌에게 달라붙어 소리쳤다. “나도 담배 피울래, 피워보자! 담배 맛이 너무 좋아……”
류웨이도 충실하게 웃고, “후”하며 담배 찌꺼기를 불고는, 담뱃대를 치우고, 의자에 내려와 진지하게 말했다. “놀리지 마, 농민이 왜 오래 사는지 알아요? 일하길 좋아하지 공기 좋지 채소 많이 먹지 생각 덜 하지 등에 많은 생활습관들 도시사람들이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어. 예를 들어, 쭈그리고 밥 먹는 거, 가공되지 않는 실담배 피우는 거, 흙덩어리로 엉덩이를 닦는 거 말야……”
류뿌는 웃음을 참고 호통치며 말했다. “웨이웨이, 본론만 얘기해!”
류웨이는 장난스럽게 머리를 치며, 순간 한 가지“본론”이 생각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듯 물었다. “참, 누나. 한 가지 이해가 잘 안 되. 내가 어떻게 갑자기 도시로 올 수 있었던 거야? 더군다나 산부인과 병원 같은 이렇게 좋은 직장에 말이야? 편지에는 어떤 사람이 도움을 준거라고 했잖아, 도대체 어떤 마음씨 좋은 사람이야?”
류뿌는 그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말했다. “송 삼촌”
류웨이는 약간 의외였다는 듯 놀라며 말했다. “그 분이? 풀려나셨어?”
류뿌는 아들의 머리를 만지고 그를 어르면서 말했다. “꿔꿔, 아빠랑 부엌에 가서 그릇 씻을래, 엄마 외삼촌이랑 얘기 좀 하게, 응? 어유 귀여워, 빨리”
꿔꿔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아빠를 따라 나갔다.
누나와 동생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 낮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류뿌가 동생에게 알려주며 말했다. “송 삼촌 성으로 소환되고 얼마 안 있지나 시위원회 제일서기가 됐어, 하루는 저녁에 집으로 찾아와서 우리 형제들에 대해 묻는 거야. 너 큰형은 홍위병 두목이었기 때문에 벼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한동안 돌아오기 힘들다고 했어. 마침 이곳 산부인과병원에서 지식청년을 채용한다고 해서 송 삼촌이 연락해 너를 샨시에서 오게 한 거야……”
류웨이가 물었다. “이거 부정 채용 아냐?”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부정 채용됐다 하자, 문호를 활짝 열면 오히려 지원하는 사람이 없을걸!”류뿌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번에 병원에서 세탁공 뽑아, 2명만 뽑지, 이런 일 하고 싶어하는 사람 아예 없어. 이 병원 직원들과 지식청년 가장들은 차라리 얘들을 농촌에서 보내게 할지언정 이런 식의 채용에 응하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병원측에서 너를 봐주려 부정채용한 게 아니라 사실은 웨이웨이 너가 병원에 도움을 주는 거지, 그쪽의 큰 일을 덜어주는 거지”
류웨이는 의심쩍은 듯 누나의 엄숙한 얼굴빛을 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 세탁공 말이야, 옷 씻는 사람 아니야? 화장실 청소하고 대변 치우는 사람보다 더 창피한가? 논둑 고르는 것 보다 더 힘들고 피곤한가? 지옥보다 더 무서운가?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가장 천한 일도 사람이 있어야 되잖아!”
류뿌는 동생의 둥그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한숨쉬며 말했다. “웨이웨이, 잘 생각해,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돼. 하려면 낯두껍게 끝까지 하고, 중간에 그만두면 안 돼. 안할려면, 타이싱샨으로 돌아가 농민이나 해, 다음에 다시 기회를 보면서 말야……”
“뛰어난 인물은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아, 하늘아래 나 류웨이가 못할 일이 있을라구. 누나 마음 놔, 옷 씻으로 갈게! 깨끗하게 씻을 게, 세탁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내가 보여주지!”
류웨이는 마음이 너무 들떴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갈망으로 충만했다.
산부인과 병원 사무실 복도에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다. 류웨이는 “노동인사과”를 찾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안경을 쓴 젊은 간부가 엄숙하게 말했다. “누구 찾으시죠?”
류웨이는 자연스럽고 의젓하게 스스로 보고했다. “저는 세탁공 류웨이 입니다”
같은 사무실의 간부 몇 명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머리를 치켜들었다.
안경 쓴 간부는 눈빛을 번뜩이고, 몸을 일으켜 열정적으로 류웨이의 손을 잡고 연거푸 말했다. “류웨이 동지,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류웨이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일도 시작하지 않았는데요, 고생 요!”
안경 쓴 간부는 그를 앉게 하고 계속 친절하게 그에게 말했다. “류웨이 동지요, 이번에 샨시에서 돌아오게 한 거 정말 쉽지 않았소, 특히나 우리 병원 같은 좋은 직장에선 말이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지방을 드나들었고 머리가 터졌는지 말이오, 정말 인재 중의 인재를 써요! 조직의 당신에 대한 신임 져버리지 마시오? 특히 시위원회 송 서기님에 대해선……”
류웨이는 차갑게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 사람 말하는 거 믿을 수 없군. 상황 다 알아요. 아직 자리 하나가 비었는데 지원하는 사람 없죠? 세탁실 데리고 가 주시쇼!”
안경 쓴 간부는 아주 난처하여 야원 얼굴이 온통 벌겋게 달아올랐고 정치활동 간부 몇 명은 류웨이를 오히려 다시 보게 되었다.
안경 쓴 간부는 여전히 권위적인 태도를 풀지 않고 류웨이의 입사서류를 보면서 또 엄숙하게 말했다. “류웨이 동지, 당신 이 일 좋아합니까? 이건 혁명하는 것과는 달라요……”
류웨이는 웃고, 도리어 물었다. “당신은 좋아합니까? 좋아하시면 함께 하시죠, 뭘 머뭇거리시죠! 한 평생 옷 씻으면 붉은 두 마음을 단련할 수 있으니까, 어때요?”
한 젊은 여성간부가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하고 웃었다.
안경 쓴 간부는 더욱 부끄러워 견딜 수 없어, 불그락 푸르락 해지며 계단 쪽으로 가 낮게 말했다. “자, 가시죠……”
병원 입원부 뒤뜰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침대시트, 이불커버와 환자복을 가득 말리고 있다. 이들 이미 흰색에서 누렇게 변질된 물건들은 아예 깨끗하게 세탁된 적이 없고, 많은 혈흔과 때가 끼어 있었다.
안경 쓴 간부는 코를 막고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류웨이는 새로 지급받은 작업복과 속이 깊은 장화 등 노동보건용품들을 안고 이리저리 살피며 뒤를 따라갔다. 어둡고 습기 찬 세탁실이 몇 미터 남아있을 때 안경 쓴 간부는 애매한 손짓을 하고 몸을 돌려 입과 코를 막고 목숨을 구하는 것처럼 재빨리 빠져나왔다.
류웨이는 쓴웃음을 짓고 억지로 간혹 풍기는 지독한 냄새를 참으며 억지로 보일러가 웅하고 물소리가 솨하는 세탁실로 갔다. 세탁실 문을 막 넘자, 그는 순간 멈추었다――
희미하고 컴컴한 등불아래 동작이 꿈 뜬 귀머거리와 벙어리 두 명의 일용직공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더러운 양수혈로 가득 찬 큰 통 옆에서 더럽고 불결한 이불커버와 환자복들을 두 손으로 문지르며 씻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듯한 아주 강한 악취가 순간 풍기자 류웨이는 머리를 돌리고 문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류웨이는 귀신이 쫓아오듯 세탁실을 뛰쳐나와, “왝왝”거리며 토하며, 위장이 뒤집어지고 온몸이 뒤틀리고 눈물을 엉엉 쏟아내며 온 힘이 다 빠지는 듯 했고 담즙을 모조리 토하고 싶었다.
문소리가 났고, 류웨이는 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범포 작업복을 입고 고무장갑을 끼고 속이 깊은 장화를 신고, “완전무장”한 채 세탁실에 나타났다. 그는 앞으로 가 생기가 조금도 없는 나이든 그 벙어리와 귀머거리 직공을 쫓아내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오수통 앞에 서서 진지하게 세탁하기 시작했다.
문지르고, 씻고…… 씻고, 문지르고……
손이 불고……
뜨거운 땀은 열기와 닿아 증발되어 버리고……
오수는 맑은 물로 행구었고, 오랜 시간 씻기지 않은 묵은 때도 기적같이 사라졌다……
온 정원 안에 눈처럼 희고 깨끗하게 세탁된 침대시트와 환자복을 말렸고, 마치 흰색의 깃발의 바다가 태양 빛 아래에 서서히 흔날리는 것 같았다.
류웨이는 흰색의 침대시트로 가서 검열하듯 그것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얼굴에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북방. 774사단 본부 주둔지.
“보고합니다!” 군무계장 허씨가 문밖에서 외치고는 문을 밀고 정치위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치위원 님, 누굴 찾으십니까?”
“앉으시죠” 정치위원은 단독직입적으로 말했다. “하 계장, 3대대 9중대 포병과 부조장 류스, 당신이 받은 사병이오?”
하씨는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치위원은 하씨에게 담배 한 대를 던져주고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말했다. “당시 받은 상황을 한번 말해보시오”
하씨는 회상하며 말했다. “당시 말이죠, 부대가 남방에서 북방으로 막 옮겨왔을 때죠, 급히 영향력을 넓히고 각종 사업을 추진키 위해 사단 당위원회의 전문연구와 상부의 비준을 얻어 비정식 루트를 통해 사회에서 예능방면의 인재를 모병하여 사단 홍보부대와 상무부대를 강화할려고 했습니다. 저의 임무는 청뚜에서 10명의 예능방면의 병사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모병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죠, 대부분은 농촌으로 간 지식청년 중의 지방간부의 지제들이었습니다, 희극학교 학생도 몇 명 있었고요. 당시에는 각 부대마다 모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 일을 끌면 문제가 생길까봐 빨리 그들을 데리고 부대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기차를 타고서야 제가 가장 믿었던 노래 동작과 공중제비에 능란했던 그 ‘양쯔롱’이 형제부대에 의해 궁지에 빠졌음을 알았습니다, 베이징얼후를 타는 청쿤이 임시로 한 친구를 데려와 대체했습니다. 이때 기차는 출발했죠, 저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청쿤은 이 친구는 이미 작고하신 노간부의 자제로, 문장력 뛰어나고, 그림과 서예에 출중하며 학교농구팀에서 뛴 적이 있고 노래를 잘 부르고 경극을 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청쿤에게 반주를 넣도록 하고 그로 하여금 샤오지엔뽀를 부르도록 했습니다. 헤이, 생각지 않게 말이죠, 온 차안에서 난리가 났죠! 여객들이 바로 짝짝하고 박수를 쳤죠, 확실히 잘 불렀죠. 이렇게 해서 류스는 신병대에 오게되어, 군복을 입고……”
“입영수속은 어떻게 했소? 당신은 그의 가정상황과 정치문제를 알고 있었소?” 정치위원은 엄숙하게 물었다.
하씨는 약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하는 수 없이 계속 말했다. “수속 말입니까, 이렇게 뒷문으로 들어온 이들 병사들은 수속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작년이 되어서야 ―― 다시 말해서 그들이 군인이 된지 4년 후에서야 시무장부를 통해 전부 입영수속을 마쳤죠…… 가정상황와 정치문제는 류스 자신이 써놓은 문서에는 현재 이름은 류스로, 흐를 류 스승 스 이며, 예전에 성 류‘볼세비키’세를 썼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1936년 혁명에 참가한 노간부이며, 1956년 병사했고, 총칭사범대학 교장 및 당위서기를 지냈습니다. 아버지 이름은 쓰지 않고 ‘일반간부 역임’했으며 해방 후 어머니와 이혼하고 일찍 병사하였고 생전 어떤 관계도 없었다는 등등을 써놓았을 뿐입니다”
“당신 너무 경솔했소, 하 동지!” 정치위원은 참지 못하고 그의 진술을 끊고 화를 내며 말했다. “입영수속과 보관자료에 이렇게 분명한 약점이 있는데도 당신들은 어떻게 본 체 만 체 들은 체 마는 체 하는 거요, 당신 군무계장 어떻게 된거요? 응? 알려주지, 류스의 아버지는 악명 높은 반혁명우파분자, 변절스파이요, 문화대혁명 때 스스로 당과 인민을 끊고 죄가 무서워 자살했소, 그의 형은 반동숙청파 학생두목으로 폭행, 약탈, 파괴행위에 참가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소……”
하씨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설마?”
정치위원은 이미 닳은 편지 한 통을 내던졌다. “한번 봐요! 속사정을 잘 아는 한 사형수가 서북감옥에서 여러 사람을 거쳐 보내온 폭로편지요, 총칭 시위원회 민생고충과의 조사후 부대로 보내 처리하라 한거요…… 정말 멋대로 군!”
하씨는 긴장하며 폭로편지를 보고 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정치위원은 단호하게 명령하며 말했다. “하 계장! 즉시 이 편지와 류스의 신상자료를 사단군무과로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리시오!”
하씨는 서서 바로 대답했다. “예!”
정오. 황벽한 산골에서 우렁찬 폭발음이 울렸다. 사단에서 마침 전 사단 각 연대 포병과의 실탄사격훈련을 심사를 하고 있다.
포탄 한 발 한 발이 정확하게 과녁으로 날아가고 불꽃이 눈부실 정도로 번뜩였다.
먼곳에서 북경 차번호를 단 짚차가 긴 먼지를 일으키며 손살같이 왔고, 사격장 밖에서 멈췄다. 차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군무계장 하씨가 사단군무과 부과장 후동성을 수행하여 차에 내려왔다.
류스가 땅에 엎드려 침착하게 40포탄통을 들고 조준을 한 다음 방아쇠를 당겨 포탄을 과녁 중심에 명중시키자 열렬한 박수소리와 갈채가 쏟아졌다……
후동성과 하씨가 기획 및 심사 사단 참모장과 악수하고 몇 마디 나눈 뒤 참모장은 머리를 돌려 큰소리로 명령하며 말했다.
“9연대 포병과 부조장, 나와!”
류스는 땅에서 일어나 참모장 앞으로 뛰어와서 경례하며 보고했다. “9연대 부조장 류스 보고합니다!”
참모장은 소개하며 말했다. “이분은 사단 군무과 후 과장이네, 일 때문에 제군을 찾고 있네. 후 과장, 가게”
후동성은 친절하게 류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저쪽에 가서 얘기하세” 말하면서 앞장서서 몸을 돌려 갔다.
류스는 앞면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순간 생각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앞뒤로 가며 묵묵히 사격장을 떠나 도로가의 차쪽으로 갔다. 길을 조금 가다 후동성이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친절하게 웃으며 류스를 바라보았다.
“류스, 날 기억하겠나?”
류스는 마음속으로 놀랐고, 후동성의 얼굴을 곰곰이 들여다보고는 신중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앞면이 있긴 한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후동성은 친절하게 그를 일깨워 주었다. “육재 국민학교 1학년 때 …… 자네와 자네 형 일군의 군관할 지역 아이들과 모래더미에서 싸웠는데…… 생각나나? 하하……”
류스의 마음이 순간 경색되었다. “당신이…… ‘동성’이?”
“후동성 이다, 자네 형님의 절친한 친구지!” 후동성은 반갑게 류스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오늘에서야 자네가 774사단에 있다는 것을 알았네…… 너무 좋은데! 연대에서 할만해?”
류스는 모든 것을 무시하는 태도를 회복하고 마음속에서 자포자기스런 위화감이 생기며 냉소하며 말했다. “후 과장님께서 오늘 납시었으니 제게 또 무슨 문제가 있으시지요? 여긴 옛날 이야기나 하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실 말씀 있으시면 바로 하시죠!”
후동성은 웃으며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 자네 형님이랑 똑같아, 특히 민감해! 우리 먼저 다른 얘기 좀 하지, 자네 형님 어떻게 보내는지 같은 거 말이야!”
“별일 없으면 전 훈련받으러 갑니다!” 류스는 한편으로 말하고 한편으로 몸을 돌려 사격장 쪽으로 갔다.
“류스” 후동성이 류스를 불러 세우고 잠깐 생각하더니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자네의 예감이 맞아, 확실히 약간의 문제가 있어…… 꿔린 이라는 사람 기억나나?”
류스는 머리를 돌리고 쌀쌀하게 물었다. “꿔린? 쏭위앤위앤을 총살한 범인 말입니까? 왜요, 아직 살아있습니까?”
후동성은 무겁게 한숨쉬고 말했다. “원래 교수형을 선고받았어, 나중에 무기로 감형돼 칭하이의 한 감옥 복역중이지……자네가 군인이 된 걸 누가 그에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폭로편지를 한 통 써서 2년이나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우리부대로 전달됐어……”
류스는 냉소적으로 물었다. “나의 뭘 폭로했습니까? 사람 죽이고 방화한 거? 강간하고 약탈한 거요? 뇌물받고 도적질한 거요?”
“자네 아버지의 관한 일이지, 이건 그렇게 문제가 안되. 곤란한 건 자네가 입영할 때 가정출신과 자네 아버지와 관련된 사실을 속였다는 거야, 사단에서 매우 화가 나 있어, ‘강제퇴역’을 시킬지도 몰라, 마음의 준비를 하라구……”
“전 원래부터 부대에 남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류스는 냉소하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십쇼, 상관없습니다.”
후동성은 간절하게 말했다. “내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몰라. 부대내에도 가정출신이 좋지 않는 인사들이 있어, 여전히 승진되고 중용되고 있어. 문제는 자신의 마음가짐이지……”
“됐습니다, 후과장 님. 당신과 전 결국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아닙니다.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류스는 말을 마치고 후동성에게 정식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성큼 가버렸다.
후동성은 괴로운 듯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눈이 약간 달아올랐고, 뒤로 돌아 먼 곳의 산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봄 저녁, 적막한 공원에 달빛이 대지를 가득 비추고 있다.
면 군장을 하고 면 군모를 쓴 두 명의 군인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솔길을 따라 산보를 하고 있었고, 한참동안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허웨이는 가볍게 숨을 쉬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직접 사단장을 찾아봐, 나서서 처리해달라고 해……”
“절대 안돼! 만일 너가 이렇게 하면 내 인격을 모독하는거야!” 류스는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난 일찍감치 생각했어, 이 군복 벗고 따빠샨 띠집으로 가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날이 올거라는 것을 말야”
허웨이는 류스의 팔뚝을 잡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말 들어, 너가 어디 가던지 난 영원히 너와 함께 갈게”
류스는 웃고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진지하게 말했다. “허웨이, 나 몇 번이고 생각했봤어, 우리의 사랑 결국에는 비극으로 끝날꺼야. 소련영화《해방》에서 아리사가 ‘당신은 내 전장의 처’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야. 넌 군대의 딸이자, 온실 속의 화초야, ‘붉은 금고’에서 컨 아리따운 아가씨야, 넌 보통 사람의 고됨과 어려움을 상상할 수 없어……”
허웨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너가 김옥에 있으면 밥을 넣어주고, 너가 거리를 떠돌며 밥을 구걸하면 막대기를 끌어 줄꺼야…… 너 어떻할래? 류스 너만 있으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
“꼭 그렇게 해야되겠니? 어느 아가씬들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 영화부귀로운 미래를 바라지 않겠어?” 류스의 쌀쌀한 말투는 점점 가혹했다. “난 정말 널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더욱이 너가 아끼는 이 군장을 벗게 할 수 없어. 지금 보니, 너 후동성이랑 가장 잘 어울려. 가문도 맞고, 앞길도 구만리 같잖아”
허웨이는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그에게 소리쳤다. “그만해! 넌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 감정을 짓밟을 권린 없어!” 그녀는 몸을 돌려 오솔길 쪽으로 뛰쳐갔다.
“웨이웨이!” 류스는 쫓아가 그녀의 어깨를 안고 미안한 듯 나지막히 속삭였다. “미안해! 마음이 너무 심란해서…… 오늘 일에 대해선 일찍감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더군다나 후동성까지 나타나니까. 웨이웨이……”
허웨이는 얼굴을 그의 가슴속에 묻고 억눌린 듯 울었다……
어둠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렸고, 몇 개의 검은 그림자가 이쪽으로 살금살금 오자 허웨이는 재빨리 류스를 밀치고 눈물을 닦았다.
허웨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하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사단장을 찾아가서 직접 나서서 방법을 생각해달라고 청해야겠어요......”
“절대로 안돼요! 만일에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바로 내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오!” 류스는 가차없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나는 벌써부터 생각해왔소, 언젠가는 난 이 군복을 벗어버리고 따빠산(大巴山)의 초가집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거라고 말이오.”
허웨이는 류스의 팔을 당기며 살며시 말했다. “전 당신을 따르겠어요, 어디를 가시든지 영원히 따라갈 거예요.”
류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다 진지하게 말했다. “허웨이, 난 우리 사랑이 비극으로 끝이 날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바로 <해방>이라는 소련 영화에 아리사가 ‘당신은 나의 전쟁터 아내’라고 말한 그것처럼 말이오. 당신은 군인의 딸이어서 온실 속의 꽃송이라고 할 수 있고, ‘붉은 보험상자(紅色保險箱:혁명열사의 자식으로 장래가 보장되는 것)’속에서 자란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달픔과 어려움을 상상조차도 하기 힘들거요......”
허웨이의 눈에서 눈물이 솟았다. “당신이 감옥에 간대도 밥을 날라 드리고, 유랑하며 밥을 구걸하게되면 전 당신의 지팡이가 되어드리겠어요......당신은 또 어떻게 하길 바래요? 류스, 당신만 곁에 있으면 전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그럴 필요까지야? 어떤 여자가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과 부유한 앞날을 바라지 않겠소?” 류스의 냉랭한 말은 갈수록 야박해졌다. “난 정말로 당신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에 참을 수 없고, 당신에게서 진정으로 좋아하는 군복을 벗겨야한다는 것이 또한 참을 수 없어요. 지금 와서 보아도 당신은 역시 후동성과 가장 잘 어울려요. 집안도 엇비슷해서 앞날도 창창하고......”
허웨이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 말하지 말아요! 당신이 날 사라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당신이 나의 감정을 짓밟을 권리는 없어요!” 그녀는 돌아서 작은 길로 뛰어갔다.
“웨이 웨이!” 류스는 쫓아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미안한 듯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내 마음이 무척 혼란해서......오늘 일에 대해 난 오래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졌어요, 더군다나 후동성까지 나타났으니 말이오. 웨이 웨이......”
허웨이는 얼굴을 그의 품에 묻고서 억누르듯 울었다......
어둠 속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더니 몇 개의 검은 그림자가 이쪽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허웨이는 황급히 류스에게서 떨어지며 눈물을 훔쳤다.
세 명의 당직 완장을 찬 군인들이 남몰래 만나는 연인 앞으로 다가와 하얀 손전등 빛으로 그들의 얼굴에 비추었다.
“뭐 하는 짓이야? 등을 꺼라!” 류스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손전등이 꺼졌다. 우두머리가 되는 당직 군인이 엄숙하게 물었다. “당신들 어디 소속이오? 관동성명을 대시오?”
“악! 뱀! 뱀이닷!......”지엔샤오링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기겁한 듯 곁에 누워있던 류얼의 품으로 뛰어들어서는 온 몸을 떨었다.
어두컴컴한 등불아래 푸른 무늬가 있는 굵은 뱀 한 마리가 거무튀튀한 낡아빠진 초가집의 기둥을 감고서 몸통을 반쯤 늘어뜨리고 주둥이로 “쓰쓰”하며 혀를 날름거렸다.
류얼은 자신의 품안으로 파고들어 떨고 있는 여인을 꼭 껴안고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 마, 이건 독 없는 얼룩뱀이야, 내가 벌써 그런 뱀이랑 같이 지낸 지 반년이 넘었어......보라구, 저 뱀은 사람의 감정과 통한다고.”
푸른 얼룩뱀은 소리 없이 또아리를 틀었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류얼은 가볍게 웃으며 기름등잔에 불을 켜고는 그곳에 담뱃불을 붙였다.
지엔샤오링은 여전히 고개 들어 보지도 못하고 힘껏 머리를 류얼의 품속으로 묻었다. 울음이 섞인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류얼, 무서워......”
류얼은 여자친구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묵묵히 담배를 빨았다.
적막한 산림 속에 간간이 소나무 가지를 울리는 바람이 일고, 야생 고양이는 밤중에 어린애 같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한줄기 음산한 바람이 나지막하게 기괴한 소리를 내며 사면이 허술한 초가집을 뚫고 들어오자 기름 등잔의 불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류얼은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황급히 일어나 앉았다.
“꽈당!” 하는 큰 소리가 울리더니 갑자기 초가집 대문이 사람에게 차여 열렸고, 사나운 표정을 하고 총을 지닌 핵심 민병들이 공사(公社)의 마(麻)주임의 인솔 하에 문을 차고 들어서서는 쩌렁쩌렁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라! 손들어!”
류얼은 놀라 기절한 여자 친구를 꼭 안고는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들 뭐하는 짓들이야! 당장 꺼져라!”
마 주임은 냉랭하게 “헤헤” 웃으며 천천히 다가와 사납게 힘을 줘 이불을 젖혀 내의와 잠옷만을 걸친 젊은 한 쌍의 남녀를 남들 앞에 구경시켰다.
“화냥년!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할거지? 헤헤, 이봐! 이 건달과 간통범을 묶어라! 데리고 가라!”
핵심 민병들은 우르르 몰려와 굵은 밧줄로 안간힘을 쓰며 반항하는 류얼과 놀라 꼼짝도 못하는 지엔샤오링을 다섯 갈래로 묶었다.
류얼은 발버둥치며 심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린즈빈! 너 이 젊은 피로 적신 강간범! 내가 네 조상을 범해 버리겠다!”
마 주임은 호되게 류얼의 두 뺨을 후려쳤다. “잡종!”
류얼은 발을 날려 마 주임의 명치를 걷어차자 마 주임은 “아이쿠” 소리를 내고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벌러덩 자빠졌다.
마 주임은 벌떡 일어나더니 큰소리를 질렀다. “패라! 죽도록 패라!”
개머리판과 주먹이 비 오듯이 류얼의 몸으로 쏟아졌고, 류얼은 순식간에 얼굴이 퍼렇게 멍들 정도로 얻어맞아 머리는 터져 피가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미친 듯이 노한 맹수처럼 버티고 서서 반항하며 욕을 퍼부었다......
어둡고 음산한 기와지붕과 이어지는 푸른 돌 판을 깐 굽은 작은 길에 수수하고 소박한 빠산의 작은 진(鎭)은 마침 장날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한 차례 다급한 시간을 알리는 징소리가 공사 건물에서 들려오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분분히 열려진 공사 건물 문 쪽으로 몰려들었다.
오래되고 낡아빠진 토희(土戱:지방에서 하는 전통극)를 하는 한 무대 아래에 무장한 당직 민병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다 찢어진 내의와 잠옷만을 걸친 류얼과 지엔샤오링은 각자 단상의 두 기둥에 묶여있고, 가슴 앞에는 “불량배 류얼”과 “매춘부 지엔샤오링”이라고 씌어진 검은 패와 떨어진 운동화가 걸려 있었다. 군용 외투를 걸친 마 주임은 유유히 단상 위에 앉아 두 다리를 꼬고서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있고, 고용된 길거리의 건달이 깨진 징을 치며 온 단상을 뛰어다녔다.
남루한 옷차림에 광주리를 짊어지고 짐을 든 농민들이 빙 둘러서서 피투성이가 된 류얼과 잿빛 얼굴에 산발을 한 지엔샤오링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동정과 분노가 가득 찼다.
기진맥진한 류얼은 단 아래의 새카맣게 모여든 군중들을 바라보면서 상처의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고향 분들, 사원 동지 여러분, 마즈빈은 인두겁을 쓴 짐승입니다. 손에 쥔 권력을 빌어서 수많은 젊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짓밟았습니다! 이 피값은 반드시 돌려줄 것입니다! 마가 놈은 절대로 편하게 죽지 못할 것입니다!”
마 주임은 펄쩍 뛰어 일어나서 허둥지둥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징채를 류얼의 입 속에 쑤셔 넣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도록 하였다.
“마가 놈아! 네 놈의 피를 다 뽑아버릴 테다!” 한마디 고함 소리를 따라서 일단의 젊은이들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멜대와 몽둥이를 휘두르며 무대 쪽으로 돌진하여 들어왔으나 당직을 서는 민병들에게 저지 당하였다. 쌍방이 서로 팽팽하게 밀고 당기며 크게 싸움이 벌어져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펑” 마즈빈은 권총을 꺼내 하늘을 향해 발사하며 무대 아래를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반란을 하고 싶은가?! 총을 들어라!”
당직 민병들은 총의 노리쇠 뭉치를 “철커덕!” 잡아당겼고, 쌍방은 일촉즉발의 긴박한 태세로 대치하였다.
“띠 띠!”하며 문 밖에서 맑은 자동차 크랙션 소리가 들려왔다.
베이징 산 지프차 한 대가 뿌옇게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공사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현 위원회 서기 왕뤠이가 두 명의 간부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마 주임은 보자마자 무대에서 뛰어내려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를 뚫고서 왕뤠이 앞으로 달려와서는 굽실거리며 인사를 했다. “왕 서기님! 오셨습니까? 자, 자 안으로 드시지요......”
왕뤠이는 검푸르고 마른 얼굴을 하고 위엄 있는 태도로 무대를 가리키고는 날카롭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방금 누가 총을 쏘았지?”
마 주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두......불량한 것들이 함부로 연애질을 해대서 좋지 못한 여론이 많아서......”
왕뤠이는 멀리서 류얼 가슴팍에 걸린 검은 패를 발견하자 눈빛이 한차례 반짝함과 동시에 마 주임을 날카롭게 노려보면서 물었다. “저 남자는 누군가?”
마 주임이 대답하였다. “류얼이라고 지식청년의 불량한 두목인데, 줄곧 복잡한 여자관계를 가지고 부녀자들을 희롱해 왔습니다......”
한 청년이 큰소리로 욕을 해댔다. “헛소리! 너야말로 색마다! 늙은 색골! 개잡놈!”
마 주임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내며 소리쳤다. “현위(縣委)의 왕 서기께서 여기 계신다. 너희들 뭘 하고 싶은 거냐! 무산계급의 전정을 뒤집어엎고 싶은 거냐?!”
“그만 됐어!” 왕뤠이가 차갑게 호통을 치자 린즈빈은 바로 기가 꺾였고, 시끄럽던 사람들도 갑자기 조용해졌다.
왕뤠이는 침착하게 사람들을 뚫고 무대위로 올라가 류얼에게로 다가가 말없이 그의 포승을 풀기 시작하였다......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멍하니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그 순간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 길거리 건달도 잽싸게 올라와 지엔샤오링의 포승을 풀었고, 몇 명의 청년들도 뛰어올라와 지엔샤오링을 부축하였다.
류얼은 복잡한 감정으로 말없이 왕뤠이를 바라보았다.
무대 아래의 청년들과 농민들은 격한 감정으로 현위 서기를 바라보았고, 마가의 얼굴색은 흉측하게 변하였다.
왕뤠이는 손에 든 굵은 밧줄을 흔들며 엄숙하게 말했다. “지금이 무슨 때인가, 아직도 운동 초기의 ‘폭력’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가? 응? 사사로이 법정을 만들어 고문으로 자백이나 강요하고, 군중에게 모욕을 보이며, 지식청년들을 박해하다니, 린즈빈! 너 알고 있나? 헤이롱장과 윈난의 생산건설부대의 지식청년들을 살해한 농장간부가 이미 중앙에 의해 사형을 받았다는 것을 말이야, 고의로 법을 어기고 싶은 것인가? 응? 당신 머리가 몇 개나 되지?!”
마 주임은 순간 얼굴색이 창백해지며 식은땀이 솟았다.
왕뤠이는 검푸른 얼굴로 선포하였다. “황 부장, 수갑을 채우시오, 공안국으로 보내 처리를 기다립시다!”
공사 무장부의 황부장이 명령을 내리자 일군의 핵심 민병들이 뛰어와 린즈비의 총을 빼앗고 포박하였다.
마가는 민병들에게 떼밀려 가면서 뒤돌아보며 울음 섞인 소리로 외쳤다.
“왕 서기님! 전 억울합니다!......저 마즈빈은 훔치지도 강탈도 국민당에 참가하지도 않았습니다......저도 빈농 출신입니다!”
청년들과 농민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왕뤠이는 담담하게 류얼을 한번보고는 수행간부들을 데리고 지프차로 걸어갔다. 자동차는 크렉션을 울리면서 천천히 공사 정문을 빠져나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온 몸에 상처투성이인 류얼은 멀리 지프차가 일으키는 흙먼지를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북방이다. 모 부대 양 사단장의 사무실이다.
부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허웨이를 꾸짖고 있다. “......허웨이 동지, 자네는 자신의 앞날에 너무 책임감이 없어! 자네는 어떻게 이토록 경솔하게 자신의 결혼대사를 결정할 수 있는가? 자네는 날더러 자네 부친에게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야? ......자네는 장군의 딸인데다 군의대학 졸업생이고, 간부이자 혁명 군인이야! 자네가 어떻게 함부로 비정규로 부대에 들어온 불순분자와 같이 섞일 수 있단 말인가?! 자네는 미련 없이 자네 부친이 한 평생 입었던 군복을 벗어 던질 수 있단 말인가?!......부대는 엄격한 조직과 기율이 있는 무산계급무장집단인 관계로 옥의 티라도 허용될 수 없다. 자네는 이 일의 심각한 결과를 생각해 봤는가?!”
허웨이는 울어서 붉어진 눈을 들고 낮은 소리로 확고하게 말했다. “저는 조직의 처분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나와 류스의 사랑은 순전히 사적인 일에 속하므로 어떤 사람이라도 함부로 간섭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저의 전역신청서입니다. 조직에서 비준해 주십시오......”
허웨이는 전역보고서를 올렸는데도 얼굴색은 이상하리 만치 평안하였다.
부대장은 사납게 담배만 두어 모금 빨고, 그 보고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좋아. 사단장인 내가 자네를 설득할 수 없는 이상 허 부사령관께서 친히 이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청하겠네.”
이튿날 한 대의 검은색 GM산 승용차가 사단의 마당으로 들어오자 부대장과 정치위원 등 일군의 사람들이 공손하게 영접하였다.
호리호리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에 자못 선비의 풍모를 지닌 허원더 부사령관은 차에서 내려 영접 나온 부대의 지휘관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허원한은 부대장과 후동성 및 비서 경비들의 수행 하에 병원의 여군숙소에 도착하였다. 마침 방안에서 허웨이를 위로하고 있던 아가씨들이 황급히 일어나 머리를 숙이고 문밖으로 물러났다.
허웨이는 흐느끼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빠......”
아버지는 침통한 얼굴로 말없이 천천히 담배를 더듬어 꺼내었다.
부대장 등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살며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
허웨이는 묵묵히 아버지에게 물을 한잔 따르고 맞은편에 서서 기다렸다.
장군은 미간을 찌푸리고 담배를 피우며 좁은 방안의 통로에서 몇 걸음 걷다가 창문 앞에서 멈춰 서서 애틋한 감정으로 딸아이 쪽으로 바라보며 가만히 말했다. “너의 몇 통의 편지를 나와 네 엄마는 다 보았단다......얘야! 너 결정한 것이냐?”
허웨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장군 역시 생각한 바가 있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부득불 직접 내 귀한 딸의 혼을 빼 논 젊은이를 봐야겠군......웨이야! 웨이야! 요구가 지나치진 않겠지?”
아버지는 엄숙하게 말하면서도 눈에는 자애로운 빛이 어렸다.
“아빠......” 허웨이는 한 번 부르고는 괴로운 듯이 아버지의 품에 뛰어들어 아이처럼 울었다.
점심때였다. 한 대의 베이징 메이커 지프차 먼지를 펄펄 일으키며 부대 후원의 작은 객관의 문 앞으로 와서 멈추었고, 후동성이 차에서 내려 황급히 작은 뜰을 지나 지휘관실로 갔다.
소파에 앉아 류스의 소설 원고를 읽던 허원더가 머리를 들어 후동성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됐어? 데리고 왔어?
후동성은 어두운 얼굴로 문 입구에 서서 고개를 저었다.
허원더는 돋보기를 떼며 이상한 듯이 물었다. “데려오지 않았다고? 그 친구 연대 안에 없던가?
후동성이 말했다. 연대 안에 있습니다. 연대 초대소에서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아버님 그 친구를 만나지 않으시면 안됩니까? 저는 아버님께서 그 친구를 받아드리지 못하실까 걱정입니다. 그 친구는 완전히 특이한 친굽니다......“
“난 나의 안목을 믿는다.“ 허원더는 냉랭하게 말을 자르고는 ”왜? 그 친구 오고 싶지 않다고 하던가?“
후동성은 내뱉듯이 말했다. “제가 드리는 몇 마디는 절대로 마음 속에 두지 마십시오......그 친구가 이렇게 말합디다. ‘기왕에 나를 만나시겠다고 하시지만 내가 무엇 때문에 그분을 뵈어야 하지? 그분이 대 지휘관이시기 때문인가? 만나려면 그분께 친히 오시라고 하시지! 또 내게 시간이 있을지도 봐야겠고......’“
장군은 찻상을 치며 몸을 일으켜서는 굳은 얼굴로 한참동안 아무 소리도 않고 뒷짐을 진 채 방안을 몇 바퀴 돌더니 천천히 말했다. “흥, 이 친구 정말 오만하군......천지를 모르는 녀석이구만! 내 당장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좀 봐야겠어, 권위로도 할 수 없는 게 있군!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내 직접 가겠어!”
지엠 메이커 승용차로 연대의 초대소로 갔다. 허원더는 혼자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장군 앞에 나타난 사람은 훤칠한 체격에 영민하면서도 과묵한 젊은 군인으로 행동이 침착하고 눈빛이 깊으며 굳게 다문 입가로는 한줄기의 비웃는 듯한 미소가 흐르고 냉담하면서도 대담한 모습에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묻어났다.
허원더는 시선을 고정하고 옷깃의 휘장과 모자의 휘장을 떼어 낸 류스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며 남모르게 찬탄하였다. 장인과 사위 두 사람은 연대 초대소의 허름한 객실에 앉아 서로 바라보면서 말은 않고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만을 내었다.
장군은 미래의 사위를 만류하기로 결정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샤오류, 나는 자네가 군대에 남아 일하기를 희망하네. 가정문제가 넉넉지 못하다해도 진정한 인재라면 군대 역시 파격적으로 중용한 선례가 있다. 만일 자네가 여기에 남길 원한다면 나는 방법을 모색해서 자네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서 먼저 학교에 들어가 연구를 할 수 있게 하겠네. 자네가 조건이 되면 당연히 직업군인이 되겠지......”
“아닙니다. 저는 군대에 남을 수 없습니다.” 류스는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장군은 냉정하게 물었다. “무엇 때문인가?”
“전 혐오합니다......”
“혐오한다고? 뭘 혐오한다는 거지? 군대를 혐오한다?” 장군은 자존심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약간 화가 치민 듯이 추궁하였다.
“그렇습니다! 여기의 모든 것을 혐오합니다!” 류스는 조금도 기죽지 않은 듯이 분노로 이글거리는 장군의 눈빛을 마주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위선, 무지, 뒷거래, 친인척임용, 계급차별, 자화자찬, 아첨, 권력남용, 사상통제, 겉치레, 형식주의 등 쓸데없고 관료적인 말에다 거짓말에 허풍까지......”
그렇다면 자넨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야?! 무슨 자격으로 이다지도 각박하게 인민의 군대를 비난하는가? 그야말로 말 같잖은 소리!“ 장군은 책상을 내리쳤다.
류스의 상기된 얼굴이 잠깐 동안에 냉정해졌고, 노기등등한 장군을 오만하게 흘겨보며 아무 대꾸도 않다가 차갑게 한마디 뱉았다. “제가 무엇을 했건 책상을 내리 칠 필요가 있겠습니까?......죄송합니다. 사령관 동지, 전 쉬어야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등을 돌려 담배를 피우며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았다.
장군은 거만하고 냉혹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화가 치밀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태껏 자기에게 감히 이렇게 지껄이는 자가 없었는데, 첫 번째 사람이 바로 딸이 연모하는 남자라니......초대소 문을 나서며 장군은 참을 수 없어 한 번 뒤돌아보고는 길게 탄식하였다.
“이 녀석은 머리도 있고 재능도 있는 젊은이지만 위험한 친구로군” 장군은 부대 앞에서 차에 올라 떠나며 딸에게 착잡하게 말했다. “녀석은 아마 경천동지할 일을 벌여 사회에 공헌할 수도 있겠으나 개인주의의 늪에 빠져 생활을 버릴 수도 있을게다......웨이웨이야, 나는 진정으로 너에게 말하건대 녀석은 아주 이기적인 놈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뜻이 있는 법’이니 네 자신이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거라! 나와 네 엄마는 이후로 더 이상 이 일을 따지고 묻지 않겠다. 너에게 나의 충고를 받아드리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 설사 내 마음이 불편하다 해도 말이다......”
장군은 가슴아프게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몸을 돌려 차안의 뒷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검은 색의 지엠 승용차와 호위승용차는 부대 지휘관들의 전송아래 천천히 부대의 큰 뜰을 빠져 정문 밖으로 사라졌다.
허웨이의 눈물은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말이 나약하고 어지러운 소녀의 마음을 깊이 깊이 찔렀다.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에 의해 자신의 인생의 운명이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틀 후, 소란스럽고 복잡한 기차역의 플랫폼에는 벨소리 요란스레 울리고 안개가 자욱하였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고통스런 마지막 작별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배웅을 나온 후동성은 한 켠으로 물러나 답답한 듯 담배를 피웠다.
류스는 묵묵히 허웨이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작은 손을 부여잡고 애정 어린 말을 하였다. “널 기다릴게......”
허웨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물은 주르륵 흘러내렸다.
류스는 멀리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후동성에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큰 걸음으로 객차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스토우”하고 부르는 소리에 류스는 급히 돌아보았다.
허웨이는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뛰어가 용감하게 두 팔을 벌려 사랑하는 이를 끌어안고는 여객들의 놀란 눈길을 받으며 류스의 뺨에 소녀의 입술자국은 남겼다......그 시절에 이처럼 뜨거운 입맞춤은 얼마나 큰 용기였겠는가!
후동성은 멀리서 이 장면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버렸다.
찢어질 듯한 기적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한 순간에 류스는 길지 않은 군대 생활을 단호하게 마감하였다. 열차는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 다행스런 것은 그가 벌써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고, 따스하고 깊은 정이 어린 두 눈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군에 입대한 후 얻은 큰 수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웨이의 사랑은 그렇게 진지하면서도 간절하였고, 열정은 불같이 뜨겁게 마음을 감쌌고, 또 맑은 봄물처럼 부드럽게 전신을 적셨다. 류스도 여러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자신이 후동성을 이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은 이처럼 기묘하여, 사랑에 눈 뜬 소녀의 마음이 큐피터의 화살에 맞자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마음 속에 둔 남자만을 사랑하고 만 것이다. 사랑은 확실히 마력을 지니고 있고, 놀랄만한 힘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바꿀 수도 있다.
차창 밖으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단조롭고 거친 북방의 한줄기 격정으로 맺혔고, 류스의 포부를 따라서 힘있게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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