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中國小說

볼세비키 형제들(6)

마장골서생 2009. 2. 11. 10:57

제 6 장

 

70년대 마지막 설날 전 그믐날 밤이다.
뿌얼스웨커 형제들의 가족이 다 모인 작은 옥탑방 안에 열기가 가득하고 웃음소리가 넘친다. 방안에는 온 집안 사람들이 직접 만든 소박하면서도 정교한 각양각색의 오색 종이 등이 가득 걸려 있어 설날의 분위기가 충만하다. 류뿌 부부는 두 올케 젠샤오링과 허웨이를 데리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식탁 위에 이미 여러 가지 안주감들이 과일, 포도주와 함께 가득 놓여있다. 류얼, 류스와 겨울 방학해서 돌아온 류웨이 세 형제는 한가롭게 창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차를 음미하며 한편으로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러시아 민가 《삼두마차》를 합창한다. 12세의 궈궈는 세 살 된 천천과 쟈쟈를 데리고서 까르륵거리며 장난을 치고 온 방안을 마구 뛰어다닌다......
창 밖은 집집마다 등불이 켜져 환하고 밤하늘에 폭죽소리가 울려 퍼진다.
악몽 같은 10년의 동란이 마침내 끝났다. 사상해방의 봄바람이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을 걷어내고 고난의 중국인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다.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귀중한 청춘의 10년이란 시간이 헛되이 보내버렸지만 이 꿈 같은 청춘의 세월 속에 가장 값진 인생의 체험을 얻게되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삶은 이미 이 유치했던 소년들을 단련시켜 인생의 무대에서 성숙한 연기자들로 만들어 놓았고, 그들 각자의 다른 배역에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 류쉐이창의 소위 “우파”와 “반역자”라는 사건은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떠나고 영혼마저 흩어진 마당에 이 모든 것이 그에게 무슨 의의가 있을까?
의외로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마침내 머리 위의 굴렁쇠를 풀고, 독립적인 인격체의 모습으로 사회생활에 출현하기 시작한 셈이 되었다. 가엾은 미커는 “노동교육”에서 풀려난 후 철저하게 명예를 회복하고 정정당당하게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진정한 군인이 되었다. 세탁공 류웨이는 와신상담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입시 후로 회복된 첫 번째 본과 대학생의 신분이 되어 다시 공부하고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무적자(黑人黑戶)”였던 류스는 몇 년을 유랑한 끝에 마침내 “평생직장(鐵飯碗)”을 얻어 부인이 존경하는 전문 작가가 되었다. 그 당시에 홍위병 영수였던 류얼은 이름없는 평범한 노동자가 되어 자신의 체력과 땀에 의존해 온 가족의 열악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든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모두 고난의 막바지까지 견디면서 질기게 살아왔다.
따스한 등불 아래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누나인 류뿌는 흥분되게 잔을 든다. “오늘 우리 쀼얼스웨이커 형제가 다 모이는 날이야. 우리 자리에서 한 사람씩 먼저 자기가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을 축배사로 한 마디씩 하기로 제의한다. 내가 보기에 역시 나이순으로 해서 가장 어린 쟈쟈부터 시작했으면 해! 쟈쟈, 제일 하고 싶은 말이 뭐니? 해보렴.”
쟈쟈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꿇어앉아 눈으로는 한 상 가득한 맛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팔을 뻗어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사이에 둔다. “난 홍사오로우를 먹고 싶어.” 
방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젠샤오링은 얼른 홍사오로우를 녀석의 밥그릇에 집어다 준다.
류뿌는 웃으며 어린 질녀에게 묻는다. “천천, 넌?”
젠샤오링이 딸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몇 마디 하자 천천은 땋은 머리를 흔들며 책을 외우듯 천장을 바라본다.
“고모 고모부 삼촌 숙모 오빠 동생......모두 다 안녕!”
“그래!” 온 집안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천천은 잔을 들어 한숨에 마시자 엄마가 잔을 얼른 빼앗는다.
초등학생인 궈궈가 일어나 말도 않고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운 듯 말한다. “전......전 열심히 공부해서 이후로 셋째 삼촌처럼 대학생이 될 거예요!”
또 한차례 박수가 쏟아졌고 궈궈는 얼굴이 온통 빨개져 앉는다.
“여보세요, 누구 차례죠! 두분 ‘웨이웨이’, 누가 먼저 말씀 하실래요?” 누나의 남편인 쓰웨이는 웨이웨이(維維)와 웨이웨이(薇薇)를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며 묻는다.
류웨이는 허웨이를 보고는 겸손하게 말한다. “형수님 말씀하시죠?”
허웨이는 불만스런 말투로 한마디한다. “무슨 말씀을, 제가 6개월 더 빨라요!”
류웨이는 잔을 들고 생각하더니, 진지하게 말한다. “군대가 이미 서남쪽 변경까지 전선을 연장하여 전재에 준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전 미커 동생이 공을 세우고 편히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허웨이가 바로 뒤이어 말한다. “저는 아직 미커 시동생을 뵌 적이 없지만 몸 건강하고 평안히 하루빨리 우리 이 따뜻한 가족 품으로 돌아오시기를 기원 드려요.”
류스는 잔을 들어 젠샤오링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형수님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비록 형수님께서 저보다 단 이틀 빠르시고......누님은 우리 뿌어스웨이커 형제의 부활한 부모님이시고, 은혜가 태산 같아요. 누님과 매형께서 검은머리가 흰머리 될 때까지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류뿌는 눈물을 머금으며 말한다. “고맙다. 스토우......”
류스는 누나 매형과 잔을 부딪고 술잔 속의 술을 비웠다.
젠샤오링은 일어나 쓰웨이를 바라보며 진정을 담아 말한다. “아주버님, 건강하셔서 하루빨리 일하시기 바래요.....”
쓰웨이는 유쾌하게 웃었지만 여전히 제수와 잔을 부딪치며 활달하게 말한다. “아마 평생 취업준비 청년일 겁니다! 제 몸이 이리 형편없으니 국가의 부담을 가중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생활하는 것도 아주 좋아요. 내가 여러분들을 위해 한평생 가정부 역할을 맡는 게 속 편해요! 고마워요, 샤오링.”
류얼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먼저 고개를 쳐들며 술을 한 잔 마시고 나서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식탁 위의 술과 요리를 바라보며 말한다. “난 별다른 소망이 없어요. 나는 그 놈의 미친 세월을 저주한 적이 있어요. 난 중국에서 정치적 박해가 영원히 없어지고 사람의 권리가 회복되어 한 사람 한 사람 다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전 동의합니다!” 류스는 형을 향해 잔을 들고 단숨에 마셔버린다.
화제가 너무 무겁고 엄숙했던지 모두 침묵한다.
쟈쟈는 버릇없이 먹고 마시는 데에 정신이 없다.
류뿌는 낮게 남편에게 말한다. “쓰웨이, 당신 먼저 말씀하세요.”
쓰웨이는 웃으며 잔을 든다. “원래는 내가 맨 나중에 끝맺으려고 했는데, 이 기회는 역시 자네들의 누나에게 넘기세. 나는 온 집안이 화목하고 행복하며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영원히 믿음과 온기가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날마다 좋아져 나라의 미래에 동량이 되기를 바란다!”
온 식구가 박수를 치며 다들 그와 잔을 부딪친다.
류웨이는 느닷없이 작은 소리로 묻는다. “어? 친황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어째 오늘 모임에 참석하시지 않은 거죠?”
형들이나 누나들은 순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앉는다.
쓰웨이는 낮은 소리로 처남에게 말한다. “아주머니의 언니가 오늘 특별히 베이징에서 여동생을 보러 오셔서 지금 호텔에서 만나고 계셔......”
류뿌가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눈에 눈물이 반짝인다. 잔을 들며 무겁게 말한다. “내가 제의하지, 우리 뿌얼스웨커 형제 가족들이 행복하게 모였을 때, 우리 어른들은 모두 일어나 우리가 사랑하는 어머니 그리고 박해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비통한 애도를 표하자꾸나. 원통한 영혼들이 평안과 위로를 얻을 수 있도록......어머니, 아버지, 편히 쉬세요.”
온 가족은 일어나 어머니의 사진을 향해 엄숙하게 서서 말없이 애도를 표한다.
검은 띠를 두른 사진 위의 어머니는 마치 영원한 미소를 띤 눈길로 묵묵히 자신의 아이들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밤의 장막 아래 산청은 드문드문 폭죽 소리가 울리고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산청호텔의 네온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부서지니 온통 명절 분위기다.
화려하게 장식한 고급 스위트룸 응접실에 친황은 언니에게 몇 해 동안의 불행했던 처지를 울며불며 하소연하자 상당한 귀부인 풍모를 풍기는 언니는 부드럽게 동생을 위로한다.
“그만 해, 아황. 다 지나간 일이잖아, 너도 마음 상해할 것 없어. 뭣 때문에 그러니. 네 형부도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았고, 너도 예전처럼 여전히 기쁘게 살고 있지 않니? 지금 그 영감님은 나이는 많아도 어쨌건 중장(中將)이야! 세 곳으로 드나들 수 있는 사합원(四合院)에 살고 있지, 문을 나서면 오성홍기(五星紅旗)를 꽂은 승용차를 타지, 비서 경호원 의사 간호사 가정부들이 도와주지, 그게 무슨 위엄이겠니! 다시 말해서 영감님이 나를 대단히 아껴서 손안에 움켜쥐고 입안에 물고있지 못할까 한스러워 할 정도인데 우리 여자들이야 뭘 더 바라겠니? 사람은 중년을 보내고 나면 세상의 풍상도 겪었고 많은 고생도 했을 텐데 그러고 나면 생활의 안정, 먹고 입는 걱정, 가정의 화목, 만년에는 의지할 곳을 바라는 것 아니니?” 우리 같이 이런 가정 출신의 아가씨가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버릴 수 있는 것이겠니! 스스로의 마음에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지 말아......20여 년 동안 이를 악물고 견뎌왔는데, 사람의 일생에 몇 개의 20년이 있니? 넌 겨우 마흔 다섯 살이야. 남은 인생이 아직 긴데 무엇 때문에 목매달고 죽으려고 하니? 정치는 남자들의 일이야. 우리 여자들은 사랑을 위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거야. 더군다나 넌 이미 한번 희생했는데 또 한평생 희생하겠다는 거야?! 너처럼 이렇게 온종일 하염없이 훌쩍거리고 의기소침해 하는 그런 고생스런 꼴을 누구에게 보여줄거니? 누가 널 진심으로 동정하겠니? 어느 집안인들 골치 아픈 일 없겠니? 다시 몇 해를 보내고 나면 사람은 늙게 될 거고 온몸은 병 투성이 일텐데 누구에게 기댈 거니? 너의 아들 미커에게 기댈래? 너의 그놈의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에게 기댈래? 직장에 기댈래? 조직에? 국가와 사회의 구제에? ......기댈 수 없을 거다! 나의 어리석은 동생아,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단다! ‘여태까지 구세주는 없어’ 난 《월드 송(國際歌)》속의 이 말을 믿어. 아황, 언니 말 들어, 결심하거라, 예전의 생활과 일도양단하는 거야! 지금 모두 ‘앞을 보자’고 부르짖고 있지 않니? 우리도 앞을 보자꾸나! 앞에 놓인 길은 많아, 넓어, 이길 저길 모두 베이징으로 통한단다. 또 어떤 사람은 베이징과 워싱턴으로도 통하고 있단다. 남은 반평생의 생활은 다시 설계해야해, 이 일은 언니가 알아서 할게. 나는 벌써 널 위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을 물색해 뒀어. 자, 먼저 사진부터 봐, 천천히 말해 줄게......”
친황은 언니의 장황한 연설에 머리가 어질어질 해졌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 컬러사진 한 장을 받아들고 멍하니 바라본다.
사진은 산뜻한 컬러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경치를 배경으로 지식인과 지도자 간부의 기개와 풍도를 겸비한 중년의 한 남자가 멋진 양복차림을 하고서 유럽의 어느 도시 강가의 난간에 한가롭게 기대어 미소짓고 있다. 배경은 고딕 양식의 뾰족한 교회와 행인이 거의 없는 작은 거리인데, 비둘기 떼들이 광장에서 몇 명의 아이들과 장난치고 있다......
언니는 친황 곁으로 바짝 다가와 소개한다. “이 양반은 사원신(沙文心)이라고 하는데 올해 쉰 다섯 살이야. 너랑 띠 동갑이니까 딱 한 바퀴 차이가 나지. 삼팔식 간부로, 소련에서 유학을 했고, 유전 총지휘자와 성 당위원회 부서기를 지냈으며, 지금은 사기부의 부부장이고 행정 9급 간부이며 유명한 당내 전문가로서 의엄과 신망이 아주 높아......문혁 중에도 적지 않은 괴로움을 겪었대. 아내는 몇 해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떴고, 세 아이는 이미 다 컸대. 하나하나 다 장래성이 있다고 하더라......”
친황은 천천히 사진을 언니에게 돌려주고는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가로 저으며 낮게 말한다. “아이, 그래도 보통사람을 찾는 게 맘 편할 거야......” 
언니는 호들갑스럽게 소리친다. “너 멍청하게 그러지 좀 마, 아황, 보통사람들의 생활에 물리지도 않았니? 별 볼일 없고 쓸모 없고 아무 권력도 없고 가난해서 헐벗는......그걸 무슨 생활이라고 하지! 그 양반 사 부장님은 내 소개를 듣고 너의 사진을 봤는데 이 결혼에 무척 만족해 하셨어! 너 제발 이 기회를 놓치지 말거라, 그 양반을 노리는 여자들이 아주 많아!”
친황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 일은 미커에게 물어봐야 해요. 애가 어려서부터 그 많은 억울한 일을 당했고, 마음 속에 그 많은 괴로움을 담고 있는데 아마도 의붓아버지를 자기에게 강요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미커는 군인이 아니니? 어린애가 아니야! 이후에 상대를 찾아 결혼을 할텐데, 넌 그래도 뻔뻔스럽게 미커 가족이랑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거니? 지금의 젊은이들 중에 누가 실속을 차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네가 사 부장을 따라가면 아이도 기댈 언덕이랑 돌아갈 곳이 있게 되는 셈이잖아.”
친황은 머리를 더욱 심하게 저으며 눈물이 온 얼굴에 범벅이 된 채 말한다. “아냐, 언니는 미커를 이해 못해......걔는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애야, 난 더 이상 그 애의 피가 흐르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싶지 않아요......그 애는 단 하루도 즐거운 날을 보낸 적이 없어요. 그 애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데, 가엾은 아들! 그 사람들은 그 애를 때리고 욕하고 못살게 굴고 개에게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발길질을 해댔어요......난 왜 그 애가 군대에 가도록 동의를 했는지 정말 죽도록 후회해요! ......총알은 눈이 없어요, 난 왜 이렇게 멍청한지......미커, 엄마가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고......”
친황은 말을 하다 참지 못하고 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목놓아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언니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통곡하는 동생을 껴안아 주고는 있지만 어떻게 위로하고 권고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동생이 통곡하고 있는 것을 같이하기가 참을 수 없었다. 

서남쪽 변경의 전방이다. 캄캄한 밤에 산발적으로 총성과 포성이 울린다.
낡아 허름한 산촌의 소학교가 모 야전군 의료부대의 임시 주둔지로 되었다. 어두컴컴한 담 안쪽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말발굽 소리가 나는 것이 전쟁에 임하기 전의 긴장된 분위기이다.
사방으로 바람이 통하는 초가형태의 교실 안에 어두컴컴한 등잔불이 흔들거리고 수염을 여덟 팔자로 기른 의료대장이 한창 군사 선전대와 기관에서 보충병으로 온 여 병사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전투 때 구조하는 기본지식을 설명하고 있다.
여 병사들 중에 아주 잘 생긴 소녀--원래 군 선전대 MC인 왕창(王暢)은 애써 긴장되고 흥분된 감정을 억제하며 대장의 시범 동작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지켜본다......
갑자기 쓸쓸한 총성과 포성 속에서 가볍고 부드러운 하모니카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이 들려온다. 어렴풋이 《모스크바 교외의 저녁》의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왕창은 마음에 감응을 받은 듯 멍해져서는 정신을 집중해서 귀를 기울인다.
분명하게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여 병사 하나가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단조로운 부대장의 설명하는 소리는 멀어지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하모니카 소리가 점점 똑똑해지기 시작하였다. 왕창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달려가고 눈에 빛이 반짝인다. 분명 정신이 나간 듯 하다.
“왕창, 주의해서 듣는다!” 거칠면서도 세심한 데가 있는 부대장은 엄숙하게 꾸짖는다. “전장은 피가 흐르는 곳이야.”
왕창은 당황한 듯 머리를 숙이고 얼굴이 온통 빨개져서는 작은 소리로 보고한다. “대장님, 저......저 화장실에 좀 가고 싶습니다......”
대장은 불만스럽게 그녀에게 눈을 부릅뜬다. “5분을 넘기지 말 것.”
“알겠습니다!” 왕창은 차렷 자세로 대답하고는 돌아서 문밖으로 뛰어나간다.
바깥은 간간이 보슬비가 날리고 들판은 어둠이 칠흑 같다.
왕창은 질퍽한 지면의 희미한 반사광을 빌어 진흙과 물웅덩이를 밟으며 힘들게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오는 습하고 음산한 파초 숲을 향해 걸어갔다.
하모니카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비가 파초 잎을 때라는 톡톡하는 소리와 여기저기서 개구리 벌레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다.  
왕창은 무서워 멈추어 서서는 어두컴컴한 숲 속을 향해 작은 소리로 부른다. “미커! 미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가볍게 응답한다. “응, 여기야.”
말이 떨어지자마자 키가 크고 민첩한 검은 그림자가 왕창의 앞에 나타나며 그녀를 놀래킨다.
왕창은 흥분된 듯이 말한다. “미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당신을 찾으려던 참인데......”
미커는 어둠 속에서 웃으며 말한다. “선전대에 예쁜 아가씨 몇 명이 내려왔다는데 전체 부대에 누군들 모르겠어? 창창, 정말 조심해야돼. 적의 특공대가 널 업어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그럼 난 죽어버릴 거야! 미워. 그런 불길한 소리하지 말아요......” 왕창은 작은 소리로 화를 낸다. “여보세요, 전 딱 5분뿐이에요.”
축축한 열대 우림의 미약한 반사광을 빌어 철모를 쓰고 온몸에 군장을 걸친 완전 무장한 미커의 모습을 희미하나마 볼 수 있었는데, 언뜻 보면 전장에서 막 내려온 병사 같았다.
“전투가 시작되면 난 부대를 따라 적군의 후방으로 침투하여 전투를 하게될 거야. 이 하모니카는 당신이 가지고 있어. 돌아와서 불어줄게......” 미커는 차분하게 말하며 하모니카를 여자친구에게 건네준다.
왕창은 손을 뒤로 감추고 머리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싫어요, 당신이 몸에 지니도록 해요. 내가 언제나 당신 곁에 있는 것처럼 쉴 때면 가볍게 불어 주면 내가 들을 수 있을 거예요......”
미커는 어둠 속에서 묵묵히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하모니카를 거두어들이며 낮은 소리로 말한다. “알았어. 내가 가지고 있지. 잘 있어!”
그는 왕창의 손을 잡아보고는 몸을 돌려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미커!” 왕창은 갑자기 뒤에서 이상하게 불렀다.
미커가 머리를 돌리자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였다.
왕창은 달려가 미커를 단단히 포옹하며 그의 뺨과 입술에 소녀의 첫 입맞춤을 남겼다......
미커는 격동하는 온 마음을 참으며 몸을 돌려 어두컴컴한 밤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초봄이다. 햇빛이 찬란하다. 삼지창제트식 여객기가 천둥소리처럼 소리를 내며 저공비행으로 스치며 비행장 활주로에 서서히 내린다.
베이징의 모 대형 문학 간행물 편집 샤린(夏琳)이 여객들 중에 섞여 트랩을 내려오는데, 확실히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했다. 날씬한 몸매, 기품 있는 풍모, 어깨에까지 내려온 수려한 머리카락, 반짝이는 눈빛, 온몸에 성숙하고 지적인 사람을 유혹할 만한 여성적 매력이 보였다.
샤린은 손을 들어 흔들자 한 대의 택시가 그녀에게로 다가온다.
“산청호텔.” 차 문이 펑하고 닫히자 날 듯이 미끄러져 간다.
차안은 리듬이 경쾌한 디스코 음악이 흐른다.
샤린은 창 밖으로 번개처럼 스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경치를 바라보니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울렁거리고 온갖 생각이 오락가락 하였다......
차가 고급스럽고 화려한 산청호텔 문 앞에 멈추었다.
샤린은 호텔 여종업원의 안내 아래 길다란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따라 예약된 스위트룸으로 걸어갔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전화기를 집어든다.
“여보세요, 산청석간 문화부입니까? ......안녕하세요! 전 베이징 문학출판사의 책임편집 샤린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최근에 산청석간에 연재하고 있는 장편소설 신작《맑은 하늘 아래의 그늘》을 봤는데요 가능한 한 빨리 작가 류스 동지와 연락을 했으면 합니다. 제게 류스 동지의 직장과 주소 전화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감사합니다! 말씀하세요......시 문련, 작가협회소설분과......민성로(民生路) 30호......숙소 교환전화, 6, 6, 8, 5, 3......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샤린은 그제야 한 숨을 쉬고는 수첩에 기록한 류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며 잠시 멍해진다. 격동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가볍게 전화 번호를 돌린다.
도시의 다른 한 편, 병원 숙소 접수처의 전화벨이 울린다.
당직 노인이 수화기를 들고 외치며 묻는다. “여보세요! 누굴 찾으십니까? ......뭐라고요? 류스? 그런 사람 없는데요? ......날 더러 불러달라고요? 알았소, 내가 불러볼 테니 기다리시오.”
그래서 건물 속에 노인의 나이 든 목소리가 울린다. “류스, 류스 전화! 류스......”
6층의 창문에 누군가 머리를 내밀고 대답한다. “갑니다!”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류스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수화기를 받아들고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접니다. 실롑니다만 누구십니까? 저보고 맞춰보라고요? 모르겠는데요......듣자하니 좀 귀에 익은 듯도 한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요......” 그는 갑자기 격동하며 놀란 듯이 소리를 지른다. “샤린?! ......정말 당신이야? 헤이! 당신이 자취를 감춘 지 십 몇 년이지? 당신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나도 빨리 당신을 만보고 싶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바로 갈게!”
류스는 전화를 내려놓고 위층으로 뛰어올라 가는데, 당직 노인이 급하게 그의 등뒤에 대고 소리친다. “전화요금......”
첫사랑을 했던 연인은 헤어진 지 수 년 만에 결국 산청호텔 스카이 라운지의 안락한 화원 레스토랑에서 다시 만났다.
석양의 금빛 아래 그들은 오래도록 서로 응시하며 미소지으며 깊이 생각한다. 식탁에 가득한 맛있는 음식들은 손도 대지 않았다.
샤린은 보기에 실제 나이에 비해 더욱 젊은 진 것 같고 말고 투명한 두 눈동자는 부드러운 정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그녀는 류스와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착잡하면서도 예리한 눈빛이 갑자기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변하였다......
류스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손 가는 대로 담뱃갑을 더듬어 꺼내고는 장난삼아 샤린에게 한 대 건네준다. 의외로 샤린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담배를 받아 입에 물고는 상당히 기품 있게 고급스런 수입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류스는 약간 의아해하며 천천히 담배를 내려놓는다.
샤린은 깊이 한모금 들이키고는 알 듯 모를 듯한 눈빛으로 류스를 똑바로 쳐다본다. “왜 그래? 불편해?”
류스는 한숨을 쉬고나서 말한다. “난 여자가 담배 피는 것 안 좋아 해.”
샤린은 담담하게 웃었지만 눈빛 속에는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하였다. “습관 될 거예요. 내가 피운 첫 번째 담배는 북쪽의 그 황량한 항상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원시림 속에서......중대장은 매우 만족스럽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온돌에 잠을 잤고, 그 양반의 담배 반 갑이 나의 옷에 떨어졌지요......나 혼자서 알몸이 된 채 축축한 풀 위에 앉아 하룻밤 내내 피웠어요......”
샤린은 말을 하며 고개를 쳐들고 큰 잔의 맥주를 들이켰다.
류스는 마음에 큰 쇼크를 받았고 가볍게 샤린의 손을 잡았다. 샤린은 온몸에 한 차례 전율이 일었고 눈가가 붉어졌지만 그녀는 즉각 맑은 눈빛을 든다.
“미안해요! 방금 말했는데, 우리 누구도 과거 일을 꺼내지 말자고......” 그녀는 수려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가볍게 웃는다. “어때요? 스토우, 당신 잘 지내죠?”
류스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저 그렇지 뭐......”
두 사람은 순간 아무 말이 없다. 레스토랑 안에 등리쥔(鄧麗君)의 부드러운 사랑의 노래가 흐른다.
샤린은 담배를 피우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말한다. “당신 아직 나의 아버지 기억해요? 노인네는 감옥에서 몇 번이나 죽었었는데 어쨌든 견뎌 왔어요......당신의 이 소설은 아버지가 먼저 보셨어요. 1장 1장씩 읽으셨는데 늘 눈물을 흘리시며 앍으셨어요......우리는 다음 호의 맨 앞에 중점 작품 발표로 하려고 하는데 노인네가 직접 한 편의 평론을 쓰시기로 결정하셨고, 당신을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하도록 추천을 하시려고 해요!”
류스는 점점 신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직 윈우탑(雲霧塔)을 기억해? 아직 카르스트 산의 동굴이 있을까? 그 어두운 물 속에 헤엄치던 투명한 송사리, 기묘하게 생긴 종유석, 햇빛이 새어들던 하늘 창문, 유령 같은 검은 박쥐들......”
샤린도 점점 흥분하기 시작하였고, 눈빛이 순진하면서도 동경하는 듯하다. “당신이 날 데리고 그곳에 다시 놀러 갈래요? 십 몇 년 됐어요! 난 그 못 잊을 장면들, 또 뛰어들 수 없는 작은 개울을 늘 꿈에서 봤어요. 마치 어제 발생했던 일 같았죠......”
류스는 잔을 들고 적극 호응하며 말한다. “당연히 가야지! 우리 내일 바로 가자! 자, 우리의 만남을 위해 건배!”
그들은 잔을 부딪히고는 서로 마주보며 단숨에 다 마셨다.
 
복잡하고 비좁은 산부인과 중심 병원 응급실의 복도 안 장의자에 안색이 초췌한 환자들이 가득 앉아 있는데, 고성으로 신음하는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와 마음을 졸이고 있는 그녀들의 남편들이다. 분만실에서 산모들의 산고소리와 신생아들의 울음소리가 수시로 들려온다......
흰 가운을 걸친 허웨이는 발 아래의 어지럽게 나와 있는 사람들의 다리를 피해 총총히 분만실로 걸어오자 30여 세의 키가 작은 한 남자가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바짝 따르며 쉴새없이 떠들어댄다.
“선생님! 의사 선생님! 집사람이 벌써 양수가 터졌어요! 제가 모질게 맘 먹고 18위앤을 써서 택시 불러 난안(南岸) 쪽에서 데리고 왔어요. 18위앤이요! 바가지가 지독하더라고요! ......선생님은 항상 그냥 서서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긴장하지 말아요, 아직 일러요......’라는 말씀만 하시니, 선생님은 아이를 낳아보지 않으셨으니, 배부른 사내는 배고픈 사내의 굶주림을 모르는 법......아, 죄송합니다! 제 말 뜻은......”
허웨이는 분만실에 들어서며 고개를 돌려 문밖에 막힌 키 작은 남자에게 참을성 있게 설명해 준다. “천만에요, 내 아들은 벌써 세 살이에요, 더군다나 난 의사라고요! 당신이 어쩔 줄 모르는 것은 당신이 애를 낳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먼저 오고 나중 오고의 순서에 따라 하는 게 아니에요......당신의 부인은 정말로 괜찮아요. 내가 말한 것은 책임을 진다는 뜻이에요. 자, 미안합니다. 안에는 더 긴박한 임산부가 있으니, 병원의 정상적인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해주세요......”
그녀가 문을 닫는데, 문이 또 그 남자에 의해 비집듯이 열렸다.
“설마 저 산모가 선생님의 친척 아닙니까?” 그는 의심스럽게 묻는다.
“그럴지도 모르죠. 밖에서 기다리세요. 그렇게 하세요!”
허웨이는 힘을 주어 문을 닫고 잠그고는 빠른 걸음으로 수술 탈의실로 들어가다 순간 문 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한 남자에 의해 깜짝 놀란다.
“이봐요! 당신 누구야? 어떻게 마음대로 분만실에 들어온 거죠. 나가세요! 빨리 나가요!”
농민 같은 젊은 사내는 얼굴을 붉히고 천진스럽게 웃으며 낮은 소리로 간청한다. “헤헤, 의사선생님, 제 아내는 소심해서 결혼할 때도 비명을 지르고 했는데, 어젯밤부터 울기 시작했어요......제가 곁에서 아내가 분만하는 것을 지키게 해 주실 수 있는지요? 하시는 일에 지장 없도록 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가 기다리세요. 말도 안돼요......” 허웨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문밖으로 내 몰고 힘껏 문을 닫았다.
허웨이와 간호사들이 산모가 출산하기 전 검사를 하는데, 신경이 곤두 선 농촌 임산부는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대었다......
고참 간호사가 참지 못하고 타이른다. “뒷심을 아껴요. 여자가 애를 낳는 건 누구라도 하는 거예요......”
허웨이는 고개를 들고 과감하게 결단한다. “수술실로 보내요!”
임산부는 두려운 듯이 큰배를 안고 울기 시작한다. “싫어요! 전 수술 안 해요! 전 수술 싫어요! ......쉐이껀(水根) 오빠! 빨리 와서 살려 줘요! ......내가 당신 천(陳)씨 집안에 무슨 평생의 빚을 졌냐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다짜고짜로 그녀를 수술대로 들어 옮겼다.
“이봐요, 떠들지 말아요! 의사선생님이 당신 목숨을 구하려는 거예요. 수술하지 않으면 엄마와 애가 다 위험해요. 제왕절개 수술은 유행이에요......아야, 소리 좀 지르지 말아요! 남자들이 들으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꼭 도살장에 들어가는 것 같잖아요......”
허웨이는 부드럽게 산모 곁에서 위로하지만 산모는 침대 시트로 머리를 덮고는 펑펑 운다......
수술대가 분만실을 밀려나오자 문 밖을 지키고 있던 젊은 농부는 흥분하며 바로 달려왔다. “낳았습니까? 남잡니까 여잡니까? 남잡니까 여잡니까? ......”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무 대답도 않고 산모를 밀고 빠른 걸음으로 수술실로 들어간다. 젊은 농부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복도에 멍청하게 서있다.
키 작은 그 남자는 고소하다는 듯이 옆에서 손짓하며 말한다. “수술한다네! 이해 하슈? 뱃가죽을 가른단 말이외다! 쫘악--!”
허웨이는 고개를 돌리며 동정하듯이 젊은 농민을 바라보며 그에게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이봐요, 이리 와서 서명하세요!”
젊은 농부는 꿈속을 헤매듯이 허웨이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석양의 남은 빛이 도시에 따뜻한 색깔을 담담하게 바른다.
하루종일 바빴던 허웨이는 기진맥진하여 병원의 정문을 나서자 허탈한 듯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녀는 길옆의 오동나무에 기대어 잠시 쉬고는 천천히 유치원 방향으로 걸어간다.
유치원 입구에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가득 서있다.
활발하고 사랑스런 아들 쟈쟈를 보자 허웨이는 온몸을 휘감던 피로가 순식간에 걷히는 듯하였고 얼굴에 친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들의 도톰한 손을 이끌고 모자 두 사람은 흥겹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걷는다.
유치원에서 일주일 동안 갇혔던 쟈쟈는 흥분하며 길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모든 것이 새롭다고 느끼는 듯이 바라본다.
“엄마, 아빠는 왜 날 데리러 안 왔어?”
“아빠는 일이 바쁘단다. 일이 아주아주 많단다......”
“남들 아빠는 다 안 바빠서 매번 바래러 오나 뭐......”
“그래, 쟈쟈의 아빠도 오셔서 쟈쟈를 마중해 집으로 돌아갈 거야. 오늘 아빠는 아마 회의를 하시느라......” 허웨이는 남편을 위해 변명을 한다.
아들은 입을 삐죽이 내민 채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한 전차 역에까지 도착하자 허웨이는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고는 곧 허리를 굽혀 아들을 안았다. “쟈쟈, 엄마 피곤해. 우리 전차 타고 집에 갈래? 전차 왔네!”
아들은 곧장 오동나무 뒤쪽으로 가 엄마와 숨바꼭질을 하듯이 숨으며 간청한다. “엄마, 공원에 뱃놀이 가자. 노 저어 본 지 한참 됐잖아!”
“쟈쟈 착하지, 내일 아빠랑 함께 뱃놀이 가자. 어때? 말 들어, 엄마랑 집에 가자! 응?”
녀석은 반신반의하며 머리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뒤로 물러나며 소리친다. “싫어, 거짓말 하지마! 아빠는 나랑 뱃놀이 안 해. 아빠는 호숫가에 서서 보고만 있는데 가고싶겠냐고!”
전차는 이미 떠났다.
허웨이는 어쩔 수없이 아들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에이, 알았어! 뱃놀이 가자. 네 아빠랑 똑같이 사람을 못살게 구네......”
모자 두 사람은 공원에서 작은 배를 빌려 호수에서 천천히 노를 젓기 시작한다. 공원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데이트하는 젊은이들과 한가로이 일없는 노인들말고는 확실히 썰렁하였다.
하루종일 피곤에 지친 허웨이는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온다. 몇 차례 노를 젓다 곧 가물가물해지고 만다. 이 상황은 신이 났던 아들에게 기분이 싹 가시게 하였다.
“엄마! 엄마! 어떻게 잠 벌레 같아?”
“아? ......아, 쟈쟈! 엄마 너무 피곤해. 엄마 잠깐만 자도 되겠니? 쟈쟈 혼자 저으렴. 착하지......”
허웨이 말하며 아예 머리를 팔뚝에 파묻고 편안하게 잠에 빠져든다. 아들은 동정하듯이 엄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쳐다보다 갑자기 무슨 비밀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소리를 지른다.
“엄마! 흰 머리카락이야! 아주 하얗다니까, 내가 봤다니까......엄마, 내가 배를 저을 테니까 자, 부르면 그때 깨면 되잖아, 엄마 말 좀 해!”
허웨이는 멍하니 “응”하고 대답하였다. 쟈쟈는 힘을 주어 노를 젓기 시작하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노를 몇 번 젓다 그만 물 속에 빠뜨리고는 놀라서 엄마를 깨웠다.
“엄마! 노가 물에 빠졌어! 물에 빠져 버렸어......”
아이의 울음 섞인 고함소리가 잠들었던 허웨이를 깨웠다. 그녀는 얼른 몸을 숙여 물위에 떠있는 노를 주웠다. 그녀는 눈을 비비다 돌연 아이가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듯 머리를 드니 쟈쟈가 멍하니 마치 뭔가 큰 비밀을 발견한 듯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러니, 쟈쟈?”
“엄마, 저기 봐! 아빠가 저기에서 배를 젓고 있어.” 쟈쟈는 신기한 듯 목소리까지 바꾸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보라니까! 저기! 작은 다리 쪽에, 빨간 옷을 입은 이모도 있네......”
허웨이는 반신반의하듯이 쳐다보고는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정말로 작은 다리 밑의 호수 위로 어렴풋이 남편과 붉은 외투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작은 배를 타고 유유히 노를 저으며 즐겁게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허웨이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이나 말을 할 수 없었다.
“저 이모는 누구야? 엄마, 내가 아빠를 부를까?” 아이는 철이 난 것처럼 엄마의 안색을 살피며 가만히 물었다.
“아니야.” 허웨이는 복받치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머리를 저었다.
“아빠는 왜 우리랑 놀지 않아요?”
허웨이는 아무 말 없이 노를 들어 나무그늘 아래로 저어가 숨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 하는지를 몰랐다.
“착하지, 아빠는 지금 일을 하고 계시니까 가서 방해하면 안돼......”
“아빠가 배를 젓는 것도 일이야? 아이는 이상한 듯 물었다.
허웨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아빠가 배를 젓는 것도 일이란다.”
아이는 부러운 듯이 먼 곳의 아빠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아빠가 하시는 일 같은 것을 할거야......”
허웨이는 눈물을 머금으며 아이의 둥근 머리를 쓰다듬자 눈 주위가 갑자기 붉어졌다. “쟈쟈, 넌 이해 못한단다......어른들의 일은 말이야 아주 복잡하거든!”
“뭘 복잡하다고 그래?” 쟈쟈는 약간 화가 난 듯 머리를 흔들며 물었다.
“복잡하다는 건 말야, 아주 골치 아픈 일들이 많이많이 뒤섞여는 것을 말하는데, 바로---”
“엉켜서 엉망이 된다는 것이지, 맞지?
허웨이의 눈물은 결국 솟구치고 만다. “정말 똑똑하네......쟈쟈. 넌 자라거든 아주 성실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엄마, 왜 울어? 내가 착하지 않아서 그래?”
“아니야, 엄마 눈에 티가 들어가서......” 허웨이는 얼굴을 감싸고서 흐느끼고 말았다. “엄마는 마음이 괴롭단다......”
쟈쟈는 엄마의 목을 감싸고서 얼굴을 감싼 엄마의 손을 벌리고서 말했다. “엄마, 내가 눈을 불어 줄게, 어때?”
“그래......”허웨이는 참지 못하고 아이를 껴안으며 뽀뽀를 해대자 아들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허웨이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썰렁한 길에는 행인들이 드물었고 가로등은 켜지기 시작하였다.
세 살 반된 아들은 머리를 숙이고 엄마랑 약간의 거리를 두고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심각한 모습이 다 큰 사내애 같았다. 허웨이는 뒤따르며 빠른 걸음으로 내 닫는 뒷모습을 보노라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일 번 도크의 거대한 수문이 뇌성같은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내려가면서 혼탁하게 출렁이는 강물을 차단하였다. 수위가 내려감에 따라 드문드문 녹이 슨 흔적이 있는 낡은 배들이 느릿느릿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도크의 “협곡”속으로 내려갔다. 그 순간 수백 개의 백열등이 켜지자 “협곡”안을 대낮처럼 비추었다. 온갖 툭탁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자 거대한 메아리가 “협곡”안을 맴돌았다.
류얼은 두 명의 전기 용접공을 데리고 선체면(船體面)에 매달려 “보수작업”을 하다 갑자기 위에서 누군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용접면과 용접기를 던지며 학생들에게 몇 마디 일러주고 좁다란 철제사다리를 따라 등불이 환한 조선대(造船臺)로 올라갔다.
아름답고 얌전한 여기사 꾸야훤이 설계도를 들고 앞에서 웃으며 맞았다. 몇 마디를 건네며 그를 시끌벅적한 작업대 앞으로 데리고 가서는 설계도를 펼치고 토론을 시작하였다.
시끄러운 소리에 그들의 대화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류얼이 설계도와 조선대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모습만이 보였는데, 남자다운 기백과 풍모가 드러났다. 여기사는 흠모와 감탄의 눈빛으로 시성을 고정한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노동자 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반장, 형수님이 점심 배달 왔어요.”
류얼은 머리를 돌려 아내가 도시락을 들고 멀리 강변의 암초 위에 서서 그를 향해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여기사에게 뭐라고 몇 마디 하고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아내에게 달려갔다. 꾸야훤은 묵묵히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고는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며 설계도에 엎드려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부부 두 사람은 조선대 암초 위에서 만났다.
류얼은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반합을 열고 맛좋은 향이 나는 음식의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이후로 다시는 가져오지마, 말했잖아, 식당에서 매일 밤 조선대로 야식을 보내오니까 우리만 특별하게 굴지 말자고......”
지엔샤오링은 그윽한 눈길로 게눈 감추듯 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하고 싶던 말을 억누르자 순간적으로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
류얼은 조선대의 일이 걱정되어 재빨리 야식을 다 먹고 나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돌아가 봐, 여기는 한창 바쁘거든!”
“얼뚜어...... ”아내는 뒤쪽에서 쭈삣쭈삣하며 불렀다.
류얼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우물쭈물 뭔가 말을 하려는 아내의 모습을 쳐다보며 이상한 듯이 물었다. “아직 볼 일 남았어? 빨리 말해봐!”
젠샤오링은 천천히 남편 곁으로 다가와 안절부절 발끝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미국에서 편지를 보냈어요......”
류얼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되는 대로 말했다. “어, 뭐라고 했는데?
젠샤오링은 떠듬거리며 말했다. “오빠랑 올케언니가 로스엔젤래스에서 가족 회사를 차렸대요......둘째 오빠 샤오정 역시 그곳에 자비 유학을 준비하고 있어요......저랑 엄마도 그곳으로 오라고 하네요......”
류얼은 차분하게 들으면서 묵묵히 담배 한 대를 빼어 물었다.
젠샤오링의 눈에는 눈물이 점점 그렁그렁 해졌다. “전 가슴속이 아주 혼란해요......전 엄마를 떠나기가 쉽지 않은데다 당신과 천천을 두고 떠나는 것은 더욱 생각하기 힘들어요......엄마는 가시기로 결심 하셨어요, 외할아버지와 오빠가 재촉이 심하셔서......전 정말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류얼은 강안의 등불을 바라보며 아내가 다른 사람의 일을 말하고 있는 듯이 아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담배를 힘껏 빨았다.
젠샤오링은 조심스럽게 그의 소매를 당겼다. “얼뚜어, 사정이 안되면 제가 먼저 천천을 데리고 가고 이후에 당신도 그쪽으로 가서 사업을 펼쳐보는 것은 어때요?
류얼은 담뱃불을 짓밟아 꺼버리고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미국 가서 뭘 하게? 미쳤어? 가서 남들 먹다 남은 빵이나 씹으라고? 2등 국민이나 되라고?......이건 언젠가 생길 일이었어, 난 벌써 예상했었지. 우리는 결국 한솥밥을 먹을 식구가 아니었어, 당신도 괜한 걱정말고 가야할 때 가라고! 천천은 분명 당신이 데려갈 수 없어! 다른 일들은 쉽게 처리하지......어때? 다른 일 없으면 난 작업장으로 돌아가겠어.”
류얼은 아내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불이 환한 조선대로 가 눈부신 등불의 바다에 녹아들었다.
젠샤오링은 얼이 빠진 듯이 남편이 아름다운 여기사와 친근하게 담소하며 점점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었다. 그녀는 천천히 뒤돌아 쓸쓸하게 어두컴컴한 밤의 장막을 향해 걸었다.

응접실 쪽의 텔레비전에는 축구장의 환호 소리가 전해왔다.
좁고 허름한 화장실에서 막 목욕을 한 허웨이는 잠옷을 입고 거울 앞에 앉아 향수를 목과 겨드랑이에 가볍게 두드리며 말없이 자신을 잠깐동안 바라보다 등을 끄고는 가만히 침실로 들어가 이미 깊이 잠든 어린 아들을 보고는 뺨에 뽀뽀를 해주고 응접실로 돌아 나와서는 소파의 남편 곁에 앉았다.
흑백 텔레비전은 축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류스는 손에 책을 들고서 아무런 반응도 없이 경기를 보고 있었다.
허웨이는 한쪽에서 가만히 남편의 차가우면서도 잘생긴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스토우, 당신 오늘 오후에 회의에 가지 않았어요?” 그녀는 편한 듯이 물었다. “전화로 당신을 찾았는데, 직장에서는 당신이 자리에 없다고 하던데......”
“아, 난 오늘 다른 일이 약간 있었어......” 류스는 설명하듯이 말하면서 눈은 화면의 멋있는 장면에 빠져 있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았어요? 쟈쟈가 화가 났었어요......”
“그래? 베이징에서 책임편집자 한 사람이 와서 내 소설이 발표된 일을 얘기하느라 그를 데리고 뱃놀이를 갔었어......” 류스는 말하다 말고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멍청한 것들! 슛을 하란 말이야!”
허웨이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갑자기 쓰러지듯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흐느끼며, 남편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왜그래? 허웨이, 무슨 일 있는 거야?” 류스는 그의 어깨를 감싸안고 되는 대로 물었다. “걸핏하면 울고 그래!”
허웨이는 부끄러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울고 싶어서......”
그녀는 얼굴을 남편의 품에 묻고서 남편이 자신의 눈물어린 눈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류스는 가볍게 아내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깊은 생각에 젖어들었다.

밤은 깊어 고요하였다. 뿌얼스웨이커 형제의 작은 집에 아직 등불이 밝혀져 있다. 쓰웨이가 식탁 옆에서 아들 꿔오궈의 학습을 지도하고 있고, 류뿌는 아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재봉틀을 밟고 있다.
누군가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예의바르게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누구세요?” 류뿌는 몸을 일으켜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는 평소에 안면이 없는 젊은 군관 두 사람이 보였다.
“실례입니다만 당신이 류커 동지의 누님 류뿌 동지입니까?”
류뿌는 불안함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미안합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찾아 와서. 저희들은 막 기차에서 내렸습니다......저희가 들어가서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상급자인 듯한 군관이 엄숙하게 물었다.
“그래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류뿌는 당황한 듯이 불청객 두 사람을 들어오게 하였고, 쓰웨이와 꿔궈는 급히 자리를 내주었다.
일가족이 불안스럽게 두 군관을 쳐다보았다.
상급자인 듯한 군관이 침통하게 천천히 소개 편지와 전사통지서를 꺼내 놓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희들은 류커 동지가 있었던 부대 정치 부처의 대표입니다. 부대장의 지시를 받고 특별히 파견되어 류커 동지의 가족에게 통지하는 것입니다. 류커 동지는 이전 2월 19일에 적 후방으로 침투하여 전투 중에 조국을 지키다 장렬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이것이 열사의 유물과 전사통지서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류뿌는 벌떡 몸을 일으켜 전사통지서와 군데군데 피가 묻어있는 하모니카에 꼿꼿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듯 흐느적거리며 마비되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이미 점화하여 엔진 소리가 하늘을 진동시키고 있다.
슬픔으로 미어지는 친황은 언니의 부축 아래 천천히 트랩을 오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에게 무수한 아픔과 고난을 안겨 주었던 충칭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눈길을 주고는 몸을 돌려 통곡하며 기내로 들어갔다......
트라이던트 식 여객기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더니 활주로를 향해 달려나갔고 이륙하자마자 파란 하늘가로 사라졌다.
미커는 오랫동안 남국의 변경 밀림에서 잠을 잤다. 그의 짧은 일생동안 약간이라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사회의 온기와 행복은 더욱 말할 것이 못되었다!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은 그를 짐승처럼 굴욕적인 생활을 보내게 하였다. 또 유약한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죄를 짓고 노동 개조 현장으로 보내졌다. 만일 누나 류뿌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사람의 정이라고는 조금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친황은 언제나 아들에게 어머니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 지난한 세월동안 실제로 자신을 지킬 수도 없음에랴! 아들을 위하여 재혼도 거절하고, 바로 아들을 위하여 충칭에 남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지금이야 이 도시에 그야말로 어떤 미련도 없었다. 그랬다, 류뿌와 동생들은 아직 남편의 혈육으로, 일찍이 그들의 생활에 들어가 본적이 있었지만, 과거의 오해와 진실의 고통은 그녀와 뿌얼스웨커 형제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어 넘기 어렵게 하였다.
이번에 언니는 그녀더러 베이징으로 가서 자격도 있고 온후하기도 한 그 노간부와 다시 가정을 꾸미도록 설득하였고, 그녀는 눈물을 머금으며 동의하였다. 동시에 관련 부서를 통해 베이징으로 옮겨가는 수속을 마치고 나니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친황은 충칭을 잊을 수 없고, 류쉐이창과 진실했던 사랑을 잊을 수 없고, 사랑스러운 미커가 자기에게 가져온 기쁨과 위로를 더욱 잊을 수 없다.
널찍한 선실에 앉아 친황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노라니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남편과 아들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있었다.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언니는 줄곧 그녀의 수려한 옆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조금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아득히 높고 먼 하늘은 씻어 놓은 듯 파랗고, 밝은 햇볕이 친황의 젊고 수려한 얼굴을 비추었고, 또 그녀의 슬픔과 고통을 선명하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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