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中國小說

볼세비키 형제들(2)

마장골서생 2007. 10. 30. 21:33

제 2 장

 

깊은 밤. 침대머리맡 말발굽 모양의 소형 알람시계는“똑딱똑딱”가고 있다. 희미하고 어슴푸레한 달빛은 나무 그림자와 창살 사이로 스며들어와 달콤한 잠에 빠진 류뿌와 막내 동생 웨이웨이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반딧불은 자유롭게 떠다니고, 밤의 곤충들은 나지막이 울고 있다. 고요한 밤의 장막에 가린 정원의 작은 집으로 엷은 안개가 서서히 감싸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고 조용하였다. 
갑자기, 성격상 경계심이 많은 류뿌가 꿈에서 놀라 깨어 귀를 기울려 주의 깊게 뭔가를 듣고 있었다. 마치 그녀는 주위에 어떤 이상한 움직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딘지 모르지만 여인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끊어졌다 이어졌다 들려왔다. 온 세상이 쥐죽은듯이 조용한 칠흑같은 밤중에 유달리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류뿌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기 시작하였다. 곤히 잠자고 있던 동생 웨이웨이를 꼭 껴안고 어둠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바짝 세워 들었다.
여인의 신음소리는 점차 또렷해져갔다. 천정 벽면에서 갑자기“쿵”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마치 사람이 떨어지는 듯……
류뿌는 마음을 굳게 먹고 조심조심 맨발로 가볍게 방문을 열고, 컴컴한 응접실을 지나 계단을 살금살금 밟아나갔다.
여인의 신음소리는 가까워질수록 커져갔다.
류뿌는 부들부들 떨며, 맨 말로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위로 올라갔다.
위층은 암흑천지였다. 도움을 바라는 여인의 고통스런 소리가 그냥 닫혀져 있는 그쪽 침실방문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다……
류뿌는 앞뒤 체면 따질 것 없이 침실 쪽으로 들어갔다. 급히 방문을 밀고 불을 켜고서는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악!”하는 소리를 냈다.
친팡의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고, 옷은 흐뜨러진 채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이따금 제 목소리가 아닌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냈다. 침대시트 위에, 마루바닥에, 바지통에, 온통 선혈과 양수가 흐르고 있었다……
류뿌는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거예요?”
친팡의 안색은 창백하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버티며 소리를 질렀다.
“빨리…… 의사 불러줘요…… 빨리요”
류뿌는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고 몇 걸음 뒷걸음질치며 재빨리 뒤돌아 아래층으로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류뿌는 얇은 잠옷을 입은 채 맨 말로 아무도 없는 적막한 거리를 필사적으로 뛰었다……
류뿌는 높은 육교를 뛰어오르고 길고 고요한 터널을 지나 불빛이 훤하게 밝혀진 병원 문으로 들어갔다……
류뿌는 곧장 응급실로 뛰어들어 숨을 헐떡이며 큰소리로 소리쳤다.
“의사 선생님! ……빨리! 구급차!……”
구급차는 푸른 빛 사이렌을 번쩍번쩍 울리며 쌩하는 새된 소리를 내며 정원의 작은 집 철제 난간문 앞에 멈춰 섰다. 류뿌는 의료진들을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바로 이층침실로 갔다.
잠에서 놀라 깬 세 명의 동생들은 응접실 한쪽 구석에 서서 눈을 휘둥그래 뜨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고통스럽게 신음하던 친팡은 신속하게 들것에 실려 아래층으로 내려와 밖의 구급차로 실려졌다.
의사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한마디 물었다.
“같이 갈 사람 있어요?”
류뿌는 동생들을 힐끗 보았다.
“…… 제가 가요”
막내동생 웨이웨이가 그녀의 치마를 당겼다.
“언니, 나도 갈래!”
리우얼 리우션 형제는 고개를 떨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류뿌는 한숨을 쉬고서, 웨이웨이를 안고 말했다.
“모두 같이 가자”
구급차는 사이렌을 길게 울리며 적막한 거리를 날 듯이 지나갔다.
비좁은 차안에는 조산이 임박한 친팡이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러댔고, 식은땀은 비오듯 줄줄 흘러내렸다. 류뿌는 손수건으로 친팡의 얼굴에 맺힌 땀을 수시로 닦았다. 뿌, 얼, 션, 웨이, 커 형제는 아버지가 그들에게 강요한 계모와 몸을 바짝 맞대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맞이하러 함께 갔다.
분만대에서 초산인 친팡이 마지막 젓 먹던 힘까지 다하며 용을 쓰고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늘 선혈과 고통을 수반한다. 어머니가 되어 본적이 없는 여인은 진실된 인생을 영원히 느낄 수 없다…… 하물며 이 고된 특수한 시기에 태어난 이 아이에게서는.
뿌, 얼, 션, 웨이, 커 형제는 묵묵히 분만실 밖 복도의 긴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그 처참한 소리는 확실히 그들 어린 형제의 심령을 깊숙이 뒤흔들어 놓았다. 더군다나 뿌, 얼, 션, 웨이, 커 형제의 이름 자체에는 “커”가 빠져있지 않은가. 누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이 곧 세상에 태어날“커”라고 불러야 할 어린 생명에 대해 몰래 뜨거운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고 의심할 수 있겠나!
동이 트기 직전, 분만실에서 마침내 갓난아기의 첫 번째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뿌, 얼, 션, 웨이, 커 형제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세 명의 형제들은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떠올리며 새로운 생명의 외침을 주의깊게 듣고 있었다. 언니 류뿌의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고였는데…… 그녀와 동생들은 분만실 문밖 쪽으로 걸어갔다. 네 명의 어린 얼굴들이 일제히 새엄마와 갓난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친팡은 산파가 안고 들어온 핏덩이 같은 아기를 보고 힘겹게 한번 웃고 나서 댐에서 큰물이 마구 쏟아지듯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녀는 자신의 친골육을 꼭 껴안고, 부드럽게 연거푸 부르고 있었다.
“미커! 내 사랑하는 아들 미커…….”          

긴 복도에서 단조로운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두 명의 보위간부가 리우쉐이창의 뒤를 따라 시위원회 소회의실로 들어왔다.
시위원회 서기 송이푸가 회의실문 맞은편의 좌석에 앉아 안색이 침울하고 머리가 흐트러져있는 리우쉐이창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테이블 건너편의 자리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앉게, 앉으시게”
리우쉐이창은 묵묵히 앉고 담배를 꺼집어냈다.
비서실 실장 왕루이는 서기 옆에 앉아 기록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위간부가 나갔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송이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침묵을 깼다.
“……어떤가? 리우쉐이창, 이번엔 지낼만한가?”
리우쉐이창은 담배 연기 한 모금 길게 내뿜었다.
“아주 잘 지내네. 먹고 자는 것 빼고 자아비판을 받고 반성문 쓰고 있네, 아주 충실하게 보내고 있지”
“오호! 충실하게 보내는 노하우라도 있나?”
“독서지. 책을 많이 읽었지.”리루쉐이창은 차분하게 대답하였다.
송이푸는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공부 물론 중요하지.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선 뭐 새롭게 느낀바가 있었나?”
리우쉐이창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확고부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못은 있지만 결코 당을 배반하지 않았어. 당신들 나에게 이 점을 억지로 인정하라고 할 수 없을 거야. 조직에서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길 바라네”
송이푸는 담배꽁초를 끄고 냉담하게 말했다.
“당은 끝까지 자네를 구제해줄려고 했어, 허나 자네는 좋은 기회를 놓쳤어, 지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우기고 있잖소. 정말 가슴 아픈 일이오. 짜오펑은 자네보다 총명했어. 그 사람 진작에 파벌・도당을 몰래 조직해서 정풍운동 때 시・도의 지도권을 차지하려는 반당행위를 기도했음을 솔직하게 시인했었지, 그래서 관대한 처분을 받았지 않았나. 어떤가? 설마 자네가 정말로 그 앞뒤가 완전히 틀어막힌 머리를 갖고 관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건가? 조직에서 자네에게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 같은가!”
리우쉐이창은 꿋꿋하게 말했다.
“역사가 나의 무죄를 증명할 것이네”
대화가 경직되었다. 왕루이는 신속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송이푸는 거듭 한숨을 쉬며 서류 한 뭉치를 들고 엄숙하게 말했다.
“좋네! 그렇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네. 지금 시위원회의 결정을 낭독하겠네. 당신은 당내 파벌・도당을 조직해서 정풍운동 때 당의 안과 밖 자본계급 우파인물들과 서로 긴밀히 짜고 당과 사회주의를 맹렬히 공격하여 시・도의 지도권을 차지하려는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 시위원회는 성위원회와 중앙의 비준을 얻어 아래와 같은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하였다. 첫째, 성위원회 후보위원, 시위원회 제2서기 겸 시장, 시정치협의회 주석을 포함한 당 내외 모든 직무를 해제한다. 둘째, 당적을 박탈한다. 셋째, 자산계급 우파인물로 규정한다. 넷째, 행정10급에서 행정18급으로 강등한다. 다섯째, 지방에서 사상개조 노동에 참여토록 한다. 장소는 빠샨현 철강공장으로 잠정한다……”
낭독이 끝나기도 전에, 리우쉐이창은 벌써 뜨거운 눈물을 줄줄 쏟아냈다.
송이푸는 왕루이에게 서류를 건네주라고 하면서 말했다.
“사인하게.”
리우쉐이창은 두 손을 벌벌 떨며 문서를 받았다. 눈물 어린 눈으로 희미하게나마 한 번 보고 서류를 한쪽으로 팽개쳐버리고는 흐느끼며 간청하였다.
“안돼, 사인할 순 없어…… 난 열 여섯 때 혁명에 참가했고, 열 여덟에 입당했소, 난 당이 주는 젓과 밥을 먹으며 성장했소, 당은 나에게 친어머니란 말이요!…… 다른 처분은 받아들이겠소만 내 입당 이십 년의 경력을 보아서라도 당적만은 유지하게 해주시오…… 난 당을 떠날 수 없소.”
왕뢰이의 차갑고 야윈 얼굴이 무표정하게 전 시장을 흘겨보고 있었다.
송이푸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말투를 다소 부드럽게 하며 말했다.
“그건 안되오. 다음에라도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인민의 대오로 돌아온다면 당에 다시 신청할 수 있을 거요……”
리우쉐이창은 너무 참담해서 울며 말했다.
“안되오……안되오……안되오…”
송이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가 안되오? 당에는 이런 선례가 있잖소. 문제는 본인이 하는 것을 봐야……”
리우쉐이창은 머리를 치고 발을 구르며, 회의테이블에 엎드려 목이 메이도록 통곡하였다.
송이푸는 잠시 침묵했다가 왕루이 쪽으로 가벼운 손짓을 했다.       
왕루이는 아주 달갑지 않게 노트와 연필을 챙겨 회의실을 나갔다.
송이푸는 회의테이블을 돌아 리우쉐이창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에게 담배 한 대를 권하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리우 이 사람아, 힘 네게. 자넨 아직 젊어, 잘못을 뉘우칠 기회도 있고…… 친팡 모자를 데리고 그 현으로 갈 수 있잖아, 이쪽의 아이들은, 내가 힘닿는 대로 보살펴줌세. 쭈오수윈 동지의 혈육들에게는 위로금과 자네가 대는 필수 양육비 외에 시에서 민정부서를 통해 약간의 보조금이 나갈걸세. 그러면 두 집안의 집 문제는 해결될 걸세……”
리우쉐이창은 정신이 나간 멍한 얼굴로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담배를 비벼 문질러 놓았다……

몸이 핼쑥해진 친팡은 중앙건물 복도에서“비서실”나무팻말이 걸려있는 사무실을 찾아 살며시 문을 두드렸다.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들어와요.”
친팡이 문을 밀치고 사무실로 들어서자 마침 책상 머리맡에 엎드려 글을 쓰고 있던 왕뢰이는 머리를 들더니 아주 반가운 듯 인사를 하였다. “야, 아팡! 왔어? 어서 들어와!”
친팡은 예의바르게 묻는다. “왕과장님! 절 찾으셨다고요?”
왕레이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손가는 대로 문을 닫고, 다정하게 친팡을 끌어 등나무 의자에 앉히고서는 향기로운 차를 한 잔 탔다.
“아팡, 요 근래 고통스러웠지? 바빠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당신을 보러 병원에 들러 볼 시간도 없었어......아이는 어때? 듣기로는 아들이라던데? 홍복이야, 아팡! ......” 그의 말씨는 특별하였다.
친팡은 담담히 웃으며 가볍게 그의 말을 끊고는 말하였다. “왕과장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지요.”
왕뢰이는 잠깐 망설이다 곧 웃으며 말한다. “이봐요! 말끝마다 과장 과장이야, 과장된지 몇 일 됐다고! 그래도 이전처럼 샤오왕이라고 불러주는게 좋지! 하하......당신 어머니 건강하시지?”
친팡은 미간을 찌푸라며 억지로 말하였다. “어머닌 그런대로 괜찮으세요......왕과장님, 바쁘실텐데 용건을 빨리 말씀하시지요,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고요.”
왕뢰이의 작은 눈동자를 굴리며 친팡에게 다가와 애매모호하게 물었다. “류쉐이창이 처분된 일을 이미 들었겠지?”
친팡은 정중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에이! 안타까운 일이야, 젊고 유능한 고급간부가 이렇게 끝나다니!” 왕뢰이는 침통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또 정겹게 물었다. “아팡, 이후로 어떻게 할 작정이야?”
친팡은 이렇다 할 말을 않고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왕뢰이는 한 걸음 더 다가서서 성의있는 태도로 친팡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팡! 과거에 친밀했던 친구로서 진심으로 당신에게 권하겠는데, 당신은 잘못 보고 있어! 류쉐이창의 허상에 완전히 홀렸던거야! 근본적으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지! 설령 실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후에 쭈오수윈을 버렸던 것처럼 당신을 무정하게 버릴 거야! 당신 생각해봐요, 20여년을 몸바친 혁명사업과 이상에 대한 믿음조차도 배신할 수 있는데, 구구한 사랑쯤이야 말해 뭣하겠어! 쭈오수윈이 그에게 어떻게 했지? 말로가 또 어땠지? 교훈으로 삼아야지......”
친팡은 담담하게 한마디 대꾸하였다. “남의 여자 앞에서 그 여자의 남편을 험담한다면 무슨 결과가 있을까요?”
왕뢰이는 흥분한 듯 일어나 이리저리 손짓을 하며 “아팡! 당신 너무 유치하군! 사태가 벌써 이 지경에 이르렀어, 무엇 때문에 아직 죽도록 그의 전차에 목을 매고 그의 순장품이 되려는거야! 당신 겨우 스물 셋이야. 꽃 같은 나이지. 인생길이 아직 길잖아. 설마 당신이 이후로 생지옥처럼 사는 것을 달가워하는 것은 아니겠지? 당신 아들이 한 평생 반혁명 자식의 누명을 짊어지고서 이 사회에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해봤어?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이 당신을 용서할까? 그들은 당신을 한 평생 원망할거야! 당신을 자기들 운명의 적으로 여기겠지! 당신의 친아들인 미커를 포함해서 당신의 반대편에 서서 당신의 원수로 변할거야! 이 모든 것을 설마 정말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겠지?”
“그만!” 친팡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고, 가슴은 화살에 맞은 듯 고통스럽게 소리질렀다. “너무 잔인하군요......”
“아니야” 왕뢰이는 정색을 하면서 소리를 높였다. “생활이 참혹한 것이지. 우리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해! 만일 진정으로 당신 아들을 사랑한다면 즉시 결단을 내려야 해. 단호하게 결심해야돼. 주저할 것 없이 우파분자인 류쉐이창을 떠나야 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지......”
친팡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전 그를 떠날 수 없어요......”
왕뢰이는 몸을 굽혀 친팡에게 다가서서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소리로 말한다. “아팡! 그에게서 떠나라구! 난 옛날처럼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아들을 사랑할거야! 당신의 모든 것을 말이야......”
그 따스한 목소리가 찢어지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부드러운 봄물처럼 여인의 가슴을 적시자 그녀는 혼란스러워졌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순간에 그녀 자신에 대해 이 잘생기고 점잖은 청년의 열정적인 마음이 생각되었다. 그녀가 결코 이런 감정에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회피하고 냉담하기 위하여 약간은 불안해하고 자책하기도 하였다. 청춘의 생명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사랑은 틀림없이 사람을 아름답게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에게도 사랑할 권리가 있고 그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그러나 그녀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류쉐이창 같은 사내의 당당한 일종의 공격적이고 정복적인 힘을 좋아하였다. 매번 무도장에서 그녀는 그의 가슴에 몸을 던지기만 하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흥분과 기쁨이 넘쳤고, 그런 숭배, 사랑, 미련, 경외심이 교차하는 감정 속에서 그녀의 무릎에서는 힘이 빠지고 온몸은 나른해지곤 하였다. 그의 강인한 팔에 기대지 않았다면 거의 그의 발 앞에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는 자신도 모르는 감정으로, 그녀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감정의 한계를 넘어 달콤하면서도 고통스런 사랑의 과일을 충분히 맛보게 하였다......
정신이 아득한 그 순간에 한 손이 어깨에서 여인의 가슴 쪽으로 미끄러졌고, 그녀의 유두를 더듬거려 찾아 문지르다 비틀었다. 아픔이 바로 온몸을 엄습하였다. 다른 한 손은 더 거칠게 그녀의 부드러운 허리사이로 미끄러져 내려와 윤기있고 매끄러운 아랫배를 쓰다듬다가 더욱 사납게 다리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친팡은 문득 정신이 들자 왕뢰이를 밀치며 얼굴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좀 떨어져 주세요! 제발 사람의 어려울 때를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왕뢰이의 여윈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음울한 눈빛으로 한참 친팡을 응시하더니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섬뜩할 정도로 차갑게 말하였다. “좋아! 나는 이미 조직을 대표하여 당신에게 최후의 구제를 시도했는데도, 당신은 한사코 류쉐이창이 가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길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하니 우리는 가슴아프고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지. 당신은 단적(團籍)에서 제명되는 호된 처분을 받게 될 것은 물론 자신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무거운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야. 당신 가도 좋아!”
친팡은 차가운 눈으로 앞의 저속하고 염치를 모르는 옛날 애인을 바라보고는 경멸스럽게 ‘흥’하는 콧방귀를 뀌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밤의 장막이 내리자 화려한 등불들로 가득 찼다. 아름다운 산골마을은 마치 은하계에서 쏟아져 내린 별들처럼 인가의 등불은 깊어 가는 가을의 밤하늘을 비추고 있다.
친팡은 아들을 안고 등불이 침침한 좁은 골목길로 돌아올 때 행인들의 차가운 시선과 비난을 참으며 흔들려 곧 떨어질 듯한 강가의 수상가옥의 침식된 나무계단을 걸어 올랐다......
어머니는 여전히 등불 아래에 앉아서 능숙하게 성냥갑을 풀로 붙이다가 외손자를 안고 돌아오는 딸을 발견하자 기쁘게 맞아주면서 아이에게 뽀뽀를 하였다.
냉기가 도는 누추한 방안에 기쁨과 온기가 가득 찼다.
친팡은 옷섶을 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어머니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어머니! 쉐이창 그 사람......근무지를 옮기게 되어 우리도 조속한 시일 안에 이 도시를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도 싫지 않으시면 우린 함께 생활하시기를 원해요......”
어머니는 마른 미소를 지으며 “무슨 말을! 높은 분들과 면식이 없어서 너희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울 뿐이지......하지만 네 형부가 외국에 있다가 뻬이징으로 전근되어 돌아왔는데, 상부에서 또 서북쪽 유전지대로 전근시켜 공업 개발을 지원하도록 해서 네 언니와 두 딸들도 함께 따라 갔단다. 그 후로 온 가족이 전보나 편지로 내게 함께 살자고 재촉하곤 하던데, 이게 바로 네가 말하는 것이 아니니?”
친팡은 생각했던 것처럼 “아” 소리를 내고는 침묵하였다.
어머니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떠보듯이 말했다. “아팡! 엄마는 네게 미안하구나. 만일에 네 언니에게 한번 말해보면......”
친팡이 황급히 말했다. “그만 두세요! 어머니! 언니도 어려운 처지예요. 어머니가 가신다고 해도 언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그녀는 갑자기 눈가가 붉어져 얼굴을 숙이고 아이에게 뽀뽀를 하였다.
어머니는 의중을 헤아리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네 언니도 참 너무하지. 네 형부가 그렇게 높은 간부라면서 가정부 같은 것을 고용하고 싶어하지 않으니,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 아니냐......”
친팡은 작은 소리로 어머니의 말을 끊고 말했다. “어머니! 절 속이지 마세요! 형부도 잘못되어 전 가족이 서북쪽의 농장으로 좌천되어 이주한 걸로 들었어요......”
어머니는 멍한 듯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도 어렵구나......류우쉐이창의 일은 가두주민위원회가 모두 전해 주었단다. 나도 책임자에게 물어보았지. 사람들은 아예 날더러 너희를 따라 가지 못하게 하니......엄마도 어쩔 수가 없구나!”
“어머니! ......우리모녀의 운명이 어찌 이리도 기구한가요......” 친팡은 끝내 참지 목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는 굳세게 눈물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담담한 어조로 딸을 위로하며 말했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어떻게 굴곡이 없을 수 있겠니? 엄마는 이제 습관이 되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단다. 너의 아버지도 살아 계셨을 때 ”갑자기 닥쳐오는 것에도 놀라지 말고 원인 모를 것에 부닥쳐도 노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늘 되뇌곤 했단다. 바로 ‘영욕에 놀라지 말고, 꿋꿋하게 절개를 지켜가라’는 말이겠지. 엎어진대도 인생의 한 단면일게다. 아가야! 외할미가 한번 안아볼까나!”
어머니는 미커를 안자 양미간에서 굳센 의지가 나타났다.
친팡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창가로 다가가 살며시 창문을 밀쳤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그녀의 고운 머릿결을 날렸다. 강물 위로 등불이 깜박거려 일렁이는 불빛은 눈부시게 아름다운데다 강 양편의 인가의 등불과 한데 어우러진다. 밤 안개 속 기선의 고동소리, 시공하는 에어 햄머와 호루라기 소리가 섞여서 들려오니 흡사 이따금씩 뜨거운 파도가 치는 것 같다. 어두움 속에서 분명하진 않지만 또 은은한 그 사천지방 희극의 높은 소리를 들었다.---아니, 어렴풋한 것은 그 고음의 구슬픈 선원의 메김 소리였다......
다 낡은 지프차가 조용하게 정원이 딸린 작은 건물의 철책 문 앞에 와 멈췄다. 류우쉐이창은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가 그의 아이들인 뿌얼스웨커 형제들에게 작별을 하였다.
작은 건물의 응접실에는 따스한 등불이 밝혀져 있고 가끔씩 앳되고 맑은 노래 소리가 창문으로 흘러나왔다. 그들은 러시아 노래 <오솔길>을 부르며 어설픈 아코디언이 반주를 맞추고 있었다.

                     오솔길은 굽이굽이 좁고도 길어라.
                     안개 가득한 먼 곳으로 통한다네.
                     나는야 좁은 오솔길을 따라서,
                     사랑하는 이를 따라 전장으로 간다네......

류쉐이창은 노래 소리에 한없이 된 듯 철책문을 부여잡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따르던 보위 간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들어가겠소?”
류쉐이창은 눈을 훔치며 가볍게 고개를 젖고는 몸을 돌려 지프차를 향해 걸어갔다.
지프차는 조용한 도로를 따라 천천히 나아갔다.
따스한 초봄의 태양은 술렁이는 산골마을을 비추고 있고, 하늘에는 이따금씩 기러기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혼잡한 시외버스터미널은 긴장되고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구 중산복을 걸친 류쉐이창은 아내인 친팡과 젖먹이 아들인 미커를 데리고 무거운 짐을 메고 여객들의 줄에 서서 차에 오를 준비를 하였다.
경적소리가 울리자 방송에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각 방면의 차편과 출발시간을 알렸다. 여객들의 줄이 혼란해지고, 사람들은 크고 작은 보따리를 메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차문과 천정으로 밀어닥쳤다. 삽시간에 아우성을 치며 흙먼지 투성이의 난장판이 되었다......
류쉐이창은 사람을 구해 트렁크와 덮개를 말아 천정으로 던져두고 힘을 다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친팡 모자가 차칸에 오르도록 보호하였다. 한바탕 여객들과 충돌을 통해 그는 마침내 후위의 창문 곁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 미커는 죄어드는 인파에 “와”하고 울음을 터트리자 친팡은 얼른 옷섶을 헤치고 아들에게 젖을 물렸다......
갑자기 류쉐이창의 눈빛이 얼어붙은 듯 고정되었다.
류뿌가 세 동생들을 데리고 멀리서 긴 돌층계의 높은 곳에 서서 겹겹의 장애물을 넘어 아버지 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류쉐이창의 마음이 갑자기 조여들면서 눈물이 소리 없이 솟아 나왔다.
류뿌는 품에 류웨이를 안고 있고, 곁에는 류얼과 류션이 서있으며, 얼떨결에 마치 젊은 어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류쉐이창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내심 깊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장거리 열차가 심하게 흔들리며, 덜커덩거리며 이 도시를 떠나 점점 짙은 먼지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볼세비키 형제는 점점 멀어져 가는 기차를 목송하고 있는데, 깊은 실의와 낙담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섯 살난 류웨이가 천진스럽게 물었다.
“누나, 아빠 갔어, 나중에 누가 우리들을 돌봐줘?”
두 형들도 그윽한 눈빛으로 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류뿌는 대답했다.
“우리들 스스로 의지해야지”
볼세비키 형제는 꿋꿋하게 함께 의지하고, 인생의 가혹한 과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1966년 초봄, 태양이 아름답게 빛나는 날.
떠들썩한 산성의 기차역 광장에 여행객의 왕래가 빈번하고 역내 방송에는 반복해서 왕수앙인(왕쌍인) 작곡, 지아스쥔(고세준) 노래의 최신 혁명가곡 ≪큰 바다를 항해 할 때는 지도자를 의지하다≫를 방송하고 있었다.
신체가 여위고 허약해 보이는 유머있고 대학생 같아 보이는 한 청년이 배낭을 지고, 트렁크를 들고 혼잡한 역 정문을 가는데, 인력거꾼이 즉시 에워싸고 영업하러 갔다. 청년은 웃으며 텅 빈 주머니를 뒤집어 내서 마부들에게 보여 주자, 마부들은 실망해서 와 하더니 흩어졌다.
청년은 흥미진진하게 번화하고 시끄러운 대로로 나가서 아이같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갑자기 낮선 행인과 웃으며 꾸벅 인사하는 것이, 마치 그의 마음속이 행복과 환락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상점 쇼원도에 그의 아름다운 고수머리와 빼어난 용모, 쾌활하고 밝은 눈과 약간 창백해 보이는 웃는 얼굴이 비춰졌다.
그는 길옆에 간식을 파는 곳에서 국수를 두 그릇을 사서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뒤 꼬깃꼬깃 구겨진 돈을 꺼내 지불했다.
젊은이는 크고 작은 길을 지나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행인들에게 수없이 길을 묻고 강어귀 쪽 높은 곳의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오래되고 허름한 옛날 주택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주소를 꺼내 번지수를 맞춰보고는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문안으로 들어갔다……
일찍이 행복하고 단란했던 “뿌얼스웨이커 가정”은 해체되었다. 누나 류뿌는 어머니의 역할까지 고스란히 떠맡아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의 십자가를 졌다. 그녀는 동생들을 데리고 일찍이 그들에게 기쁨과 동시에 괴로움을 주었던 정원이 딸린 그 작은 집을 떠나 독립적이고 따뜻한 “뿌얼스웨이커 형제”만의 가정을 꾸렸다……. 그녀는 세 명의 어린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명문대학에서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까지 단호하게 포기하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취직하여 온갖 고생과 치욕을 참고 견디며 아버지가 남긴 쓰디쓴 열매를 맛보고 있었다.“뿌얼스웨이커 형제”도 악착같이 생활해나갔다. 그들은 누나의 가느다란 팔에 기대어 차별과 모욕, 고독과 가난을 말없이 참으며 성인으로 성장하였다…….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생활도 순식간에 지나간 듯 하였다……
스웨이는 조심조심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삐꺽삐꺽 소리를 내며, 꼭대기 층의 낮고 널찍한 다락방으로 올라가 방문을 가볍게 밀쳤다. 서로 생김새가 비슷한 세 명의 사내아이들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반인 류얼과 이미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류스는 이미 후리후리하고 건장한 멋쟁이 젊은이로 컸다.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류웨이 에게는 아직도 어린티가 묻어 나왔고, 목에는 붉은 삼각건을 매고 있었다. 삼 형제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가만히 눈앞의 불청객을 쳐다보았는데, 모습은 칙칙했지만 점잖았다.
“안녕들한가, 뿌얼스웨이커 형제들!”
손님은 배낭과 작은 트렁크를 내려놓고, 자발적으로 주인들에게 인사하였다. 그는 얼마되지 않는 짐을 방 한쪽구석에 놔두고 알맞은 자리를 찾고 있는 듯 두리번거렸다. 
“누구시죠?” 마침 책상에서 일기를 쓰고 있던 류스가 눈을 번뜩이며 약간 쌀쌀맞은 태도로 물었다.
스웨이는 약혼녀가 자신을 위해 준비해놓은 듯한 마침 문 뒤에 세워져 있던 그 군용침낭을 흡족한 눈길로 보았다.
“나? 너희들 손님이지! 이다음엔 주인이 될지도 모르고. 괜찮다면 우선 내 소개부터 할께. 스웨이 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스웨이는 아주 신사적인 태도로 정중하게 어린 주인들과 가볍게 악수하였다.
“어……” 나이가 좀 든 두 사내아이는 손님의 신분을 알아차린 듯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서로 눈을 깜박거렸다. 가장 어린 사내아이는 손님이 말한 속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침 낡은 아코디언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게나 말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전 류웨이 라고 해요.”
류얼은 침대 위에 늘어놓은 반도체 부품들을 치우며 예의있게 인사하였다.
“앉으세요, 그러시면 우리 누나와 결혼하실려고요?”
세 명의 사내아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막 앉은 스웨이를 쳐다보았다.
스웨이는 진지하게 생각하였다.
“음, 내가 너희 누나에게 청혼한다고 할 수 있겠지, 그녀가 동의한다면 당연히……”
“동의하지 않으면요” 류스가 갑자기 중간에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을 걸” 스웨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다.
류얼이 화제를 바꾸었다.
“당신 하늘에게 왔죠? 우린 왜 여태까지 본 적이 없죠?”
스웨이는 고개를 돌리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대답하였다.
“옛날엔 너희들이 너무 어렸어, 누나는 너희들이 섭섭해 할까봐 말하길 원치 않았던 거야, 이젠 너희들도 다 컸고, 철도 들었으니 누나도 자신만의 가정을 꾸려야 되겠지……”
“누나랑 사귄 지 오래되셨어요?” 류스가 다시 물었다.
스웨이는 다시 얼굴을 돌렸다.
“그래,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지, 그녀는 나의 입단 소개인 이었지……”
류스는 그의 가슴에 학교휘장이 차인 것을 보고는, 다소 경의로운 어투로 심문했다.
“대학생이세요?”
스웨이는 고개를 숙여 학교휘장을 만지더니 아예 떼버렸다.
“예전에 말이야, 그래도 명문대학이었지. 대학교 3학년 1학기 때 큰 병에 걸려 입원했었지, 학업을 끝까지 할 수 없었어, 그저 자퇴당할 수밖에 없었지”
“그럼 지금 무슨 일 하세요?” 류얼이 물었다.
스웨이는 두 손을 펼쳐 보이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실직했지”
“청문회”가 중단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줄곧 잠자코 낡은 아코디언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류웨우가 갑자기 머리 들고 물었다.
“저기요, 아코디언 탈줄 아세요?”
“나? 해볼까.” 스웨이는 그 낡은 풀무같은 아코디언을 받아들고, 아주 능숙하게 음을 맞춰보고는 칭찬하였다.
“음, 쓸만하군. 그런대로 괜찮군!”
세 명의 사내아이들은 반신반의하듯 스웨이를 바라보았다.
스웨이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움직이며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청순하고 듣기 좋은 막힘이 없는 자연스런 선율이 그 낡은 풀무 같은 악기에서 기적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아코디언 기본연습곡 중에서 난이도가 아주 높은《작은 사과》를 연주했다.
우아하고 경쾌한 아코디언 소리는 뿌얼스웨이커 형제를 환상의 세계에 빠지도록 했다. 그들은 건반위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스웨이의 그 손가락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지혜와 진실로 충만한 그 두 눈을 쳐다보면서 이 아름다운 음악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이 스웨이 라는 고상한 손님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채소와 과일을 들고 돌아온 류뿌는 말없이 문틀에 기대어 다정한 눈길로 그녀가 사랑하는 약혼자와 동생들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어렸다. 이 스물 둘의 처녀는 다소 피곤한 기색을 띠고 있었지만 젊음의 활력과 아름다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막 울리고서 반장 꾸오린이 박력있게 구령을 외쳤다.
“차렷! ―”
담임 황 선생님이 수수하게 옷을 입은 예쁘고 얌전한 소녀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학생 여러분, 안녕!”
“선 ― 생 ― 님  안녕하세요!” 전체 학생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모두 앉으세요” 야윈 여선생님은 자상하면서도 엄숙하게 말했다. “학생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새로 온 친구 한 명 소개하겠어요, 이 친구는 막 베이징에서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시아린 친구예요.”
교실안에서 힘찬 박수소리가 올렸다. 시아린은 곱상한 모습으로 반친구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였다. 듣기 좋은 베이징 말로 말했다.
“급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아린 입니다”
박수소리 중 “맨발의 반장” 꾸어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새로온 여학생과 그녀의 가슴 앞 이목을 끄는 단원배지를 보고 있었다.
황 선생님이 계속해서 말했다.
“시아린 학생은 명문 베이징 사범대학 부속여중에서 온 인품과 학업성적이 모두 뛰어난 우등생 이예요, 걸스카우트 팀장과 당지부부서기, 학생회문화위원을 맡았어요, 전국중학생 작문경시대회에 나가 장원을 하여 우리들이 경애하는 모택동 주석께서 직접 붉은 삼각건을 매어 주었으며, 모 주석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였어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또 열렬한 박수 소리가 울렸다.
성격이 시건방진 류스는 가소로운 듯 시아린을 보며 흥하는 소리를 냈다.
“시아린 친구가 반에 왔으니 여러분들 서로 협동하고 도우세요, 열심히 공부해서 함께 성장하여 혁명사업의 후계자가 되어야 해요. 좋아요, 지금부터 수업하겠어요” 황 선생님께서 갑자기 류스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류스 학생, 손 한번 들어봐요”
류스는 다소 영문도 모르는 채 전체 급우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머뭇머뭇 거리며 오른손을 들었다.
황 선생님은 자상하게 시아린에게 말했다.
“시아린, 류스 학생 옆에 앉아요.”
시아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류스 옆에 가서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 가방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류스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머리를 돌려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를 취하였다.
꾸오린의 눈에 약간의 시기심이 스쳐 지나갔고, 안색은 조금 어두웠다.
황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했다.“학생 여러분, 지난번 수업시간에 백거이의 장편 서사서정시《비파행》을 배웠죠, 오늘은 여러분에게 몇 가지 문제를 내겠어요……”
시아린은 책을 펴고 연필을 꺼내 진지하게 필기하였다.
류스는 꾹 참고 한눈을 팔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우연히 시아린을 곁눈길로 힐끗 쳐다보다 마침 시아린의 맑고 차분한 눈빛과 부딪쳤다. 시아린이 우호적으로 머리를 끄덕이며 웃어 보이자 류스는 잽싸게 머리를 돌려 외면하였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 울렸다. 긴장된 고3 졸업반 교실에서 잠시 활기를 띄기 시작하여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체구가 크고 훤칠한 청년단지부 서기 푸동셩(동꾸아)은 자리를 지나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숙제를 하고 있던 류얼 앞으로 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눈짓을 주고 교실문 밖으로 나갔다.
류얼은 푸동셩을 따라 복도 끝의 창가 앞으로 왔다.
옛날 군복을 입은 푸동셩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고, 손에 서류 한 장을 가지고 나지막이 말했다.
“지부에서 심사를 통해 서면으로 교단위원회의 동의를 요청했어, 너를 중국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하도록 결정했어. 이건 입단지원서야, 사실대로 자세히 기재해.”
류얼은 정중하게 두 손으로 입단지원서를 받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손을 약간 떨었다.
푸동셩은 친근하면서 진지하게 계속 말했다.
“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적극적으로 조직에 올려고 했잖아, 계속해서 여섯 번이나 입단신청을 해서 조직의 오랜 검증을 거쳤어, 이건 정치상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는 소중한 표현이지. 곧 몇 개월 후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잖아, 난 졸업 전에 너의 조직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해.”
류얼은 흥분하며 말했다.
“난 조직의 관심과 믿음에 고마울 뿐이야, 난 절대로 조직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을 꺼야, 하루빨리 영광스런 공산당 청년단원이 될꺼야. 또 하나 내가 생각해봤는데……”
푸동셩은 그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친근하게 물었다.
“다른 문제 있냐?  조직 앞에선 바로 말하기잖아.”
류얼은 결심을 하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버지 말인데, 난 벌써부터 그와 모든 친분을 끊었어. 아버지와 상관 있는 칸에 그의 이름을 쓰지 않고 우리 엄마와 관계된 내용만 쓸 수 없니? ……”
푸동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말했다.
  “안돼. 입단 지원서는 아주 엄격한 정치 공문서 여서 한치의 숨김이나 거짓을 용납할 수 없어. 네 아버지의 문제를 조직은 모두 자세히 알고 있으니, 당의 정책은 표현을 중시하지.” 그렇게 해서 이 입단지원서에 기입해야 할 뿐 아니라 네 아버지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인식과 비판이 있어야 되고, 철저하게 네 부친과 정치상으로 명백히 한계를 그어야 돼. 그렇게 해야 지부 대회의 인가와 통과를 얻을 수 있고, 학교 청년단 위원회의 심사와 비준을 얻을 수 있다고......
  류얼은 무거운 마음으로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내가 가?”
  푸동성은 가볍게 류얼의 어깨를 쳤다.
  류얼은 입단 지원서를 들고 천천히 돌아서 교실로 향해 나갔다.
  푸동성이 류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조용한 사범대학도서관 서재 안에, 작업복을 입은 류뿌가 서가 앞에서 빈틈없이 도서목록을 열람하고 있다.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불렀다.
  “류뿌, 밖에 어떤 사람이 찾아!”
  류뿌는 대답하며 하던 일을 놓고는 비좁은 책장과 책장 사이를 지나 서재 문밖으로 나와 물었다.
  “누가 절 찾으세요?”
  직원이 대답했다.
  “아래층에 있는데 나이든 노동자 같았어.”
  류뿌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층으로 내려갔다. 과연 정문 밖 게시판 앞에 서있는 낡은 작업복을 입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류뿌는 주저하며 걸어가서 물었다.
  “동지, 절 찾으셨어요?”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데, 바로 여러 날 보지 못한 아버지 류쉐이창이었다. 류뿌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아버지였어요!?”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류쉐이창은 이미 변해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고 검고 여위었으며,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눈빛은 둔하고 등허리도 좀 굽어졌으며, 투박하고 거친 두 손을 비비는 태도가 사소한일에 구애되고 자기를 낮추어 보여 작년과 전혀 딴 사람 같았다.
  류뿌는 만감이 교차하여 낮은 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서 얘기하세요.”
  류쉐이창은 바삐 딸아이의 소매를 붙잡고 불안하게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니 됐어. 널 보니 아주 바빠 보여서...... 여기서 얘기하자꾸나.”
부녀 두 사람은 옆쪽으로 비켜 만년석송 화분 앞에 섰다.
아버지는 실눈을 뜨고 자상하게 딸을 보며 농민처럼 “허허”하며 손을 비비면서 웃어 보였다.
“허허. 뿌야, 다 컸구나, 네 엄머랑 너무 닮았어…… 다 큰 처자가 되었구나…… ”
류뿌는 마음이 아파 참을 수 없어 잠깐 아버지의 말을 끊었다. “아직도  현에 계세요? 언제 돌아오셨어요?”
“응, 돌아온 지 몇 일 됐단다. 짐 정리한다고 바빴지, 너와 너 동생들을 볼 면목도 없고……. 뿌야, 아빠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단다, 인민의 내부문제를 처리하면서 우파 딱지도 떼고, 조직에서 시로 불러 남쪽 강어귀의 비철금속공장에서 간부대우를 받으며 일하게 해주었단다, 잠시 노동자 일 하고, 양식도 노동자처럼 매달 40근 받기로 했단다.”
류뿌는 아버지가 마치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듯 많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매우 언잖았다. 그를 잠시동안 눈여겨보고는 말이 끊어진 틈을 타 물었다. “당적은 회복하셨어요?”
류쉐이창의 얼굴근육에 약간의 경련이 일어났고, 한 숨 쉬며 말했다. “에이, 이 일은 어렵게 됐어. 처음에 니 짜오 아저씨는 당적을 유지했지, 식견이 있었지…… 됐어, 더 이상 미련 없어, 인민의 대오로 돌아온 것만 해도 관대한 처분을 받은 거잖아, 어떤 우파분자들은 공직조차도 박탈당했다고 하던데……”
류뿌는 가볍게 한 숨을 쉬고는 얼굴을 한쪽으로 돌려버렸다.
류쉐이창은 또 기뻐하였다. “한가지 잊었는데, 친팡 아줌마와 동생 미커도 돌아왔어. 나와 함께 살고 있지, 아주 큰집에서 말이야, 니 동생 미커는 정말 많이 컸어……”
류뿌는 다시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근무시간 이예요,  간단하게 말씀하세요. 또 다른 일은 없으세요?”
류쉐이창은 안절부절 발을 바꿔가며 몰래 딸의 안색을 살폈다. “나…… 이야기를……”
류뿌는 그를 격려하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는가요? 힘껏 도와 드릴께요.”
류쉐이창은 마침내 용기를 내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듣자하니……듣자하니까, 너 곧 결혼한다며?”
류뿌는 얼굴이 빨개졌고,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류쉐이창은 여전히 말을 방방 돌리며 겉 바퀴를 돌고 있었다. “대학생이라며? 게다가 학업을 중단했다던데?”
류뿌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바로 하세요!”류쉐이창은 조심스럽게 조금씩 밖으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허허, 무슨 얘기냐 하면 말이다. 그 사람 외국인 수녀가 운영하던 자선영아원에서 커서 큰 병에 걸렸다는 구나…… 그래도 내력이 의심스러운 사생아잖니?  뿌야,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하거라, 평생의 일이니까 한때 미혹돼서 평생 고생을 자초하지 말거라…… 그 사람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앞으로의 생활은 어쩔거고?……”
류뿌는 죄수처럼 치졸하고 가련한 아버지를 보며 비분의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왈칵 쏟아졌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구요?”
류쉐이창은 절박하게 말했다. “우선은 결혼을 급하게 서두르지 마라, 다시 잘 생각해보자꾸나……”
“아버진 제 앞에서 이런 말씀하실 자격이 없으세요!” 딸은 온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된 채 갑자기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전 아빠처럼 그런 모습은 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셨으니까요!  전 그런 사리사욕만을 채우는 생활은 싫어한다 구요. 가세요!”
지나가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놀랍고 의아하게 이 장면을 목격했다.
아버지는 묵묵히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구고 갔다.
류뿌는 이층 화장실로 뛰쳐 올라 문을 잠그고 얼굴을 묻고 목이 메이도록 통곡하였다. 그녀는 불쌍한 스웨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가련한 아버지를 위해 흐느끼며 울었다. 그녀는 그렇게 가슴 아프게 울었다……
저녁 무렵, 류뿌는 강어귀 주택밀집지역의 다세대주택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돌아와서는 벌겋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계단 위를 올라갔다.
방안은 이상하리 만치 조용하였다.
류뿌는 계단을 돌아가는 곳의 자신이 사는 그 작은 방문을 열어보았다. 골방엔 사람 하나 없었고 어머니의 초상화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류뿌는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들어 잽싸게 몸을 돌려 꼭대기층으로 올라가 힘껏 꽉 잠겨진 다락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얼아! 스아! 웨이웨이야! 빨리 문열어!……”
방문이 갑자기 활짝 열렸다. 참신한 푸른색 교복을 입고 가슴에 붉은 꽃을 단 스웨이는 반지르르한 얼굴을 하고 방문 옆에 서서, 궁궐에서 사람을 청할 때의 손동작을 하며 말했다. “환영합니다. 나의 여주인님!”
낮고 넓직한 다락방안에서는 한줄기 밝은 빛이 비췄다. 방안에는 채색 종이테이프와 각종 색깔의 저압 전등들이 꽉 걸려 있었다. 방의 배치도 완전히 새로워져, 중앙에 새로운 탁자보가 깔린 그 식탁에는 냉채, 간식, 과일과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세 명의 동생들은 깨끗하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나를 바라보며 웃으며 나란히 서있었다.
“이건 ― ?” 류뿌의 마음속으로 뜨거운 파도가 솟구쳤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난지 알았다는 듯 눈물을 머금고 웃었다.
스웨이는 앞으로 나아가 신선하고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부인의 가슴에 사뿐히 꽂아주고, 그녀의 손을 끌고 식탁 중간에 앉았다.
류얼은 아코디언을 탔고, 네 명의 사내아이들은 역동적이고 듣기 좋게 소련가곡《산사나무》를 합창하였다.

노래 소리 황혼녘의 수면위로 가볍게 울려 퍼지고,
나는 오솔길 따라 나무 아래로 가지요.
봄바람 솔솔 불고, 나무 잎새는 살랑살랑 흔들리고,
젊은 선반공과 대장장이의 머리를 흩뜨려 놓지요.
아, 산사나무, 내가 사랑하는 산사나무야!
아, 산사나무야,
너는 왜 슬퍼하는냐?
……

류뿌는 행복하게 따뜻한 눈길로 남편과 동생들을 바라보았고, 벽의 검은 테두리 액자 속의 어머니 초상을 보며 투명하고 맑은 눈물을…….
스웨이는 류얼에게 기분좋게 콜 하자, 류얼의 아코디언이 선율이 아름다운《꽃은 왜 이렇게 붉은가요?》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스웨이는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감정을 풍부하게 넣어 노래하였다.

꽃은 왜 이리도 붉은 가요?
왜 이리도 붉은 가요?

류뿌는 눈물을 머금고 웃으며 함께 합창했다.

아 ― 붉기가 마치,
붉기가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군요!
그녀는 청춘의 혈액으로 물을 주네요

노래 소리는 창 밖으로 날려가고 밤하늘로 흘러, 아주 멀리 멀리 퍼져갔다. 온화한 등불이 비추는 낡고 오래된 이 다락방 아래에 바삐 길을 가는 사람들도 감정이 풍부한 노래 소리에 이끌렸다.
스웨이는 갑자기 리듬이 빠르고 선율이 아름다운 불가리아 악곡《갈대피리》를 타기 시작하였다. 누나와 동생들의 격려와 요청으로 천진난만한 류웨이가 방 한가운데에서 스페인 춤을 모방하여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예쁘고 깜찍한 갈대피리 일곱 소리내지요,
난 열 손가락으로 갈대피리 멋지게 타구요.
푸른 잎새 손가락으로 바뀔 수 있다면,
꼭 나처럼 즐거운 노래 타지요.

뿌얼스웨이커 형제는 즐거운 휘파람을 불며 정연하게 손뼉을 치며 기쁨과 흥분 속에 잠겨있다......
쓰웨이가 갑자기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아코디언을 천천히 멈추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 있던 뿌얼스웨이커 형제도 무슨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다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구식의 간부 복장을 한 아버지 류쉐이창이 아내 친팡과 어린 아들 미커를 데리고 문 밖에 서 있었다. 확실히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말 화기애애하구만! 한참 동안을 두드렸는데 너희들이 듣지 못한 듯 하더구나. 어쩔 수 없이......헤헤.” 아버지는 비굴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 얼굴에 비위를 맞추려는 웃음을 띠고서 변명하였다.
바짝 야위고 누렇게 뜬 친팡의 얼굴도 옛날의 자태와 광채는 더 이상 없었다. 순종하는 눈빛으로 똑 같이 야윈 미커를 데리고 남편의 뒤에서 조용히 서있었다.
즐거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머니의 초상화가 조용히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류쉐이창은 구세주를 만난 듯 걸어와서 쓰웨이의 손을 잡고 친근하게 물었다. “자네가 바로 쓰웨이인가? 반갑구만 반가워......”
그래도 쓰웨이가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서 반갑게 인사하였다. “아! 바로 아버님이시죠? 어서 앉으시죠! 들어오세요!”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의 낯빛이 싸늘하게 무서울 정도로 침묵하였다.
류쉐이창은 난처한 듯이 웃으며 억지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너희들 모두 잘......지내지? 헤헤. 눈 깜짝할 순간에 8,9년이 흘렀구나. 하부조직에 있으면서도 늘 너희들을 걱정했었다......”
뭔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아내를 불러 주머니에서 누런 종이로 싼 싸구려 간식과 사탕 같은 것들을 꺼내 탁자 위에 놓고 미커를 끌어 당겨서는 한 명씩 소개해 주었다. “자, 미커야! 이 쪽이 누나......이 쪽은 큰형......이 쪽은 둘째형......이 쪽은 쓰웨이 형......이 쪽은 셋째형......봐라! 너에게도 이렇게 많은 형과 누나가 있지!”
아버지가 소개를 하자 미커는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하였다.
류얼은 느닷없이 홱하고 책가방을 메더니 낯을 찌푸리며 누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나 학교로 돌아간다!”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꽝”하는 소리가 나도록 세게 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벌벌떨면서도 웃음을 지으며 애써 버텼다.
뒤따라서 류스도 책가방을 어깨에 걸치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나도 학교로 돌아간다.”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집안의 공기가 숨이 막힐 듯이 가라앉았다.
창 앞에 서있던 류웨이는 갑자기 살며시 미커에게 손짓하였다.
말간 콧물을 흘리던 미커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자기에게 장난스럽게 눈을 깜박이는 작은 형을 바라보면서 머뭇머뭇 창문 앞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류웨이는 두꺼운 판지로 만든 망원경을 미커에게 건네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자! 봐라!”
미커는 망원경을 들고서 맞은편 강 언덕의 민가의 등불을 보았다.
“어때? 볼만해?”
“좋아!” 미커가 웃었다.
아버지의 눈동자가 갑자기 젖었다. 허벅지를 툭 치더니 호주머니에서 한 병의 값싼 소주를 꺼내어 두 개의 잔을 잡고 술을 “콸콸” 가득 따루어 쓰웨이에게 한 잔을 건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술이 지기를 만나면 천 잔이라도 부족하거늘 우리 장인 사위 두 사람 건배!”
말을 마치자 목을 젖혀 “콸콸” 단숨에 마셔버렸다.
친팡은 눈물을 머금은 채 남편을 바라보면서 말을 거들고 싶었지만 억눌렀다.
류뿌와 쓰웨이는 서로 마주보고는 잠자코 있었다.
알콜은 류쉐이창의 눈을 달아오르게 하였다. 벽에 걸린 전처의 초상을 바라보자 눈물이 갑자기 눈가에 그득 고였다.
두 아이도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류쉐이창은 목청을 돋우어 쓰리고 아린 태행의 민가를 불렀다.

                 씨감자 꽃 피니 두드러기처럼 열리고,
                 그 두드러기 바로 내 맘과 간의 꽃잎이라오.
                 반은 누런 콩이요 반은 쌀이라지만,
                 그 밥 받쳐드니 당신 생각나는구려.
                 대낮엔 당신 생각에 말도 못하고,
                 밤이면 당신 생각에 등도 못끈다오!
                 당신을! 당신을! 정말 당신 생각에,
                 눈물 방울은 장마처럼 떨어진다오...

이 간절하고도 뜨거운 노래 소리는 자리하고 있는 뒷세대의 마음을 흔들고 감동시켰다. 어려서부터 태행의 물을 마시며 자란 류뿌는 더욱 참을 수가 없어서 입을 막고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류뿌!” 쓰웨이는 그녀를 쫓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 아버지 마음도 괴로우실거야. 너무 견디기 어렵게는 하지 말아요. 다시 말하면, 오늘은 우리들의 결혼일이잖소. 난 나의 신부가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래요.”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이 남편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참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여전히 쏟아졌다.
약간은 초라할 정도로 소박한 혼례는 평온하고 온화한 분위기 속에 계속 진행되었다. 쓰웨이에게 기대고 있던 류뿌는 온통 붉으스레한 얼굴로 미소를 머금고서 류쉐이창과 친팡이 크게 감동에 겨워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밤이 깊어 두 개의 붉은 촛불은 고요하게 타오르고 간소하고 정갈한 신방에는 한 쌍의 신랑 신부만이 남게 되었다. 그들은 사랑이 듬뿍 담긴 눈으로 서로 하염없이 마주보고 있다가 갑자기 결렬하게 포옹하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긴 입맞춤을 하였다.
한참동안 침묵이 흐른 후에 쓰웨이는 붉게 물든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살며시 말했다. "류뿌! 난 한 평생 당신에게 잘할 것이고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동생들을 잘 돌볼 것을 하늘에 맹세해!......“
“쉬---잇” 류뿌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을 막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쓰웨이! 부부간에 유별난 맹세가 필요한가요? 전 달콤한 소리는 필요 없어요. 당신이 행동으로 증명하길 바래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 계시는 이 가정에 어려움도 적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저랑 꿋꿋이 견뎌 갈 수 있다면 전 행복하고 만족한 아내가 되겠지요!”
“류뿌! 시간이 증명할 것이야!” 쓰웨이는 진솔하면서도 열정적이었다.
그녀는 위안이 되는 깊은숨을 들이키고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부드럽게 남편의 품에 안겼다. 쓰웨이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눈물이 비치는 그녀의 두 눈을 보자 참을 수 없이 몸을 굽혀 입맞춤을 하였다. 그 짭짤한 눈물이 그를 신혼 첫날밤을 시작하게 하였고, 고된 삶을 맛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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