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莊子淺說

1. 빈궁한 생활

마장골서생 2009. 2. 5. 23:18

1. 빈궁한 생활


장자를 언급하면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신기한 느낌을 준다. 그의 가문도 아득하여 알 수 없고 사승관계의 원류도 분명치 않으며 생졸 연대도 역사에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당시에 전기를 쓴 사람이나 스스로 언급한 글도 없어 그의 일생은 시종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다행히도《장자》라는 책 속에 그의 제자들이 간혹 산발적으로 장자의 행적이나 사적을 약간이나마 기록해둔 덕분에 이런 기록들의 편린은 후대 사람들의 가슴 속에 특수한 형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장자》라는 책 속에 기록된 장자의 생활은 무척 빈궁했던 것 같다. 그가 남에게 돈을 빌리는 장면을 묘사한 이야기를 예로 든다.

 

장주(莊周)는 집이 가난하여 감하후에게 쌀을 꾸러 갔다. 감하후가 말하기를 “알았네, 내가 지방의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게 되면 300냥을 꾸어주겠네. 어떤가?”라고 하였다.
장주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속이 거북한 듯이 말하였다. “내가 어제 오는 도중에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네. 뒤돌아보았더니 수레바퀴의 자국으로 움푹 파인 곳에 붕어가 한 마리 있었네. 그 붕어에게 물었지: ‘얘, 붕어야! 여기서 뭘 하느냐?’ 붕어가 대답하기를 ‘저는 동해에 사는 물고기인데, 약간의 저를 살려줄 수 있는 물이 좀 있습니까?’라고 하였네. 난 이렇게 말했지 ‘알았다, 내가 남방에 가게 되면 오나라나 월나라의 왕에게 일러 서강의 물을 끌어다 널 맞도록 하겠다. 되겠느냐?’ 붕어는 내 말을 듣더니 몹시 불편한 듯이 고개를 숙이며 ‘전 물을 떠나와서 안전한 곳을 잃고 말았답니다. 전 약간의 물만 있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건어물 시장에 가셔서 저를 찾는 것만도 못합니다!’라고 말했다네.”(《外物》, 이후로는 편명만 쓰고 서명은 쓰지 않을 것임)

 

이 이야기는 우언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집이 실제로 가난했던 모양이다. 다른 기록에서도 그의 곤궁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장자는 헝겊을 대고 기운 거친 베옷을 걸치고 삼실로 얽은 구멍 난 헝겊 신발을 신고서 위나라의 왕을 만났다. 위나라 왕이 “선생께선 어찌 이렇게 남루하신 것이오?”라고 물었다.
장자가 대답하기를 “이는 빈궁한 것이지 남루한 것이 아닙니다. ……”(《山木》)

 

사실 장자는 빈궁하기도 했고 남루하기도 하였다. “아둔한 군주와 교활한 재상”이 판치는 그런 시대에는 소인들만이 득세한다. 다른 한 예를 보자.

 

宋나라에 曹商이라는 자가 있었다. 송나라 왕은 그를 사신으로 삼아 진나라에 파견하였다. 그가 떠날 때는 송나라 왕이 자신에게 준 몇 량의 수레밖에 없었는데 秦나라에 도착해서는 진나라 왕이 기뻐하며 그에게 백 량의 수레를 선물로 주었다. 그가 송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장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허름한 촌구석에 살면서 가난 때문에 짚신이나 삼아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영양실조로 목뼈가 불거져 나오고 얼굴이 누렇게 뜨는 이런 방면에는 내 그대를 따라갈 수가 없소이다. 하지만 일단 대국의 군왕을 만나기만 하면 수백 량의 수레를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나의 장점이올시다.”
장자가 대답하였다. “내 듣기로 진왕은 종기가 나서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을 찾고 있다고 들었소. 누구든지 종기를 터트려 고름을 짜내는 자는 수레를 한 량 얻을 수 있고, 누구든 그의 항문의 치질을 핥는 자는 다섯 대의 수레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오. 치료받는 부위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얻는 수레가 많다고 하더이다. 그대는 진왕의 항문의 치질을 핥은 것은 아니겠지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수레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거요? 그만 그대의 갈 길이나 가시오!”(《列御寇》)

 

장자의 후학들이 기록한 이 사례들이 만약에 사실이라고 한다면 대화 속에 장자의 일부 실제생활상이 암시되고 있다. 그는 “허름한 촌구석에 살면서” 누렇게 뜬 얼굴에 비쩍 마른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촌구석에서(在陋巷)” “조촐한 끼니로 때웠던(簞食瓢飮)” 顔回와 어찌 난형난제가 아니겠는가? 영양실조였던 안회는 가련하게도 서른 살에 요절하고 말았지만, 장자는 되려 그 명이 길어 7, 80세까지 살았다. 문장의 기세로 보면 원기가 왕성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만일 장자가 정말로 “짚신을 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면, 그것은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렌즈를 갈아 생활했던 것과 실제로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들은 모두 물질생활의 필요는 최하위 단계로 낮추었지만 정신생활은 높은 곳에 두고자 힘썼던 것이다.

'中文史哲 > 莊子淺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꿈에서 나비가 되다  (0) 2009.02.08
5.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하다  (0) 2009.02.06
4. 절친한 벗 혜시  (0) 2009.02.06
3. 평생토록 관직을 사양하다  (0) 2009.02.05
2. 이상한 까치 이야기  (0) 2009.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