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中國小說

볼세비키 형제들(1)

마장골서생 2006. 11. 2. 08:51

이 번역 소설은 내가 유학하던 시절에 안방극장의 연속극으로 방영된 적이 있다. 한 가족사를 통해 문화대혁명을 거쳐 개방시기에 이르는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이다. 내가 워낙 감동 깊게 읽었기에 초벌 번역을 우선 시도한다. 차후에 완역이 되면 출판도 고려해 보고...

 

제 1 장

 

1956년 음울하고 다사다난했던 늦가을, 근심스런 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밤이었다.
차가운 가을비가 바람에 날려 눈물 자국처럼 유리창문을 두드리며 흐느끼듯 “솨아 솨아” 소리를 낸다. 창밖에 춤을 추듯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는 마치 선녀와 악마가 어우러져 미친 듯 춤을 추는 것 같다. 해질 무렵 비바람 속에 외로이 서있는 가로등의 둥그렇게 내리는 희미한 불빛은 다투어 피려는 꽃송이처럼 보인다. 멀리 번화가의 작은 서양식 건물들이 어두컴컴해지는 밤의 장막 속에 조용히 엎드려있고 쥐 죽은 듯 아무런 기척도 없다.
해질 무렵부터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을 내던 샹들리에 등이 꺼지고, 플로어 스탠드만이 부드러운 불빛을 어지러이 뿌리고 있다. 두터운 비로드 커튼이 드리워져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관공서 주말무도회의 음악과 웃음소리를 차단하고 있다. 방안은 유난히 조용하다. 벽에는 낡은 스위스제 벽시계가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가고 있고, 간혹 “때앵~!”하는 아주 큰 울림소리를 내었다. 보육원에서 돌아온 동생들은 떠들고 다투다 지쳐 벌써 잠에 곯아 떨어졌다. 머리를 두 가닥으로 예쁘게 땋아 늘어뜨리고 앳된 얼굴이지만 조숙한 모습의 열두 살 난 누나 류뿌만이 허약하고 병약하지만 힘껏 단정하게 치장한 어머니와 함께 응접실 소파에 앉아 이미 다 식어버린 푸짐한 생일 상을 지키며 말없이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쭤어수윈은 평범하고 착한 여인이다. 젊을 때의 매력도 이미 지난 그녀의 용모는 너무 평범해서 직장에서건 집에서건 어느 누구의 주의도 끌지 못해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찬탄을 금치 못하게 했던 영광스러운 혁명경력을 가진 이 비범했던 여성을 사람들은 거의 망각해 버린 듯 하다. 오로지 딸 류뿌의 작은 가슴속에서만이 그녀는 아직도 그렇게 순박하고 아름다우며 한 평생 존경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지루하게 내리는 밤비 속에 이 행복한 뿌얼스웨이커 가족에게 닥쳐올 불행을 어린 류뿌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어느 때 보다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자기 가정의 불행은 유혈투쟁 십여 년 만에 마침내 전국의 정치권력을 쟁취한 중국공산당 사람들이 대도시로 들어온 후 소수의 향락주의자들이 갖가지 허울 좋은 이유로 내세우는 “이혼과 개조”의 요란한 소리 속에서 서서히 비극적 서막을 열었으며......굳건한 의지의 혁명가인 쭤어수윈은 어떤 무정한 타격이라도 당당히 맞설 수 있었지만 온화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로서의 그녀는 가정이 깨진다는 두려운 사실이 아이들의 여린고 천진한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 가정의 따뜻한 온기를 덮고 있는 그 베일이 갑자기 찢겨질 때 비참한 현실은 그야말로 냉혹해서 어머니이자 여자인 그녀로서는 똑바로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엄마, 기다리지 말고 쉬세요. 아버지는......일이 바쁘신가봐요......” 딸 류뿌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데 두 눈동자는 빗물에 젖은 듯하다.
깊은 생각에 빠진 쭤어수윈은 어깨를 한번 떨고는 한참 만에야 한 마디 내뱉는다. “내가 네 아빠를 기다리다 십여 년이 지났는데 이번에도......기다린다. ......”
“땡땡!......” 벽의 괘종시계가 순간 12시를 알리는 소리를 냈고 커다란 종소리는 거실 안을 맴돌았다. 그녀는 갑자기 맹렬한 심장 박동을 느끼자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가슴을 움켜잡고 가죽 소파 위에 쓰러진다. “엄마! 엄마......”, 딸 류뿌는 황급히 찬물과 구급약을 가지고 와 온 힘을 다해 뻣뻣해진 어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고는 울부짖으며 작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따뜻한 수건으로 주름 가득한 이마의 식은땀을 살살 닦는다.
여인은 잠깐동안의 혼절 상태에서 천천히 깨어나서는 똑바로 누운 채 새까만 천장을 바라보는데, 창백한 얼굴에 핏기라고는 없는 입술로 겨우 한 마디 한다. “15년이나 됐어, 나와 네 아빠의 관계는 끝이야, 어쩌면 좀더 일찍 끝냈어야 했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며 억지로 웃어 보이지만 눈에는 눈물이 반짝인다.
“안돼요!......” 류뿌는 어머니의 품에 엎드려 소리내어 운다, “엉엉......엄마! 엉엉, 안돼요!......”
집에서 키우는 꽃에는 들꽃 같은 향기가 없는 법, 늙고 쓸모 없는 중년 여인이 어떻게 그 젊고 요염한 여자에 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수성과 인성의 혼합물이다. 누군들 자신이 반한 남자가 인성보다 수성이 강하다고 말하겠는가? 이런 생각을 불쌍한 딸에게 말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어! 선량한 어머니인 그녀가 그런 더러운 물이 딸의 순결한 영혼을 더럽히게 할 수는 없었다. 쭤어수윈은 바짝 여윈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딸의 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렁그렁한 굵은 눈물 방울을 소리 없이 주르륵 흘리고 만다.
갑자기 거실에서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류뿌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화들짝 놀라 재빨리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며 탁자 위의 수화기를 집어든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수화기에서 낮고 귀에 익지 않은 남자 목소리가 전해온다. “여보세요, 류 시장님 댁입니까? 여기는 시당 위원회 사무실 비서처인데, 시장님께서 오늘 저녁에 사무실에서 잔업을 하시며 서류를 심사해야 하니 집에서 빨리 밤참을 좀 가져오셨으면 합니다만......” 류뿌는 어머니를 흘끔 쳐다보고는 급히 묻는다. “여보세요! 죄송하지만 아저씨는 누구세요?” 하지만 전화가 “찰칵 ”하고 끊겼다. 류뿌는 의아해 하며 천천히 돌아서다 이상하면서도 침착한 눈빛으로 말없이 창 밖을 주시하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창 밖 날씨는 점점 어두워져 가고 비는 갈수록 굵어지고 있다. 가로등에 비춰지는 빗줄기는 가닥가닥 빛을 발하는 화살촉처럼 차가운 대지를 향해 빠르게 쏘아대고 있다.
여인의 눈물이 완전히 말라버렸고, 동그랗게 부릅뜬 눈동자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조용하다.

정치협상회 강당의 불빛이 휘황하고, 흥겨운 음악소리 속에 무도회는 절정에 달한다. 잘생기고 매력적인 시장 류쉐이창은 업무에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여대생 친황의 날씬하고 부드러운 허리를 감싼 채 나는 듯이 춤을 춘다. 중산복을 걸친 류쉐이창은 바로 남자의 매력이 넘쳐나는 나이인지라 자신이 예쁘다고 하는 무도장의 여자들 치고 그에게 매혹되지 않는 여자가 없다. 그가 짙고 치켜 올라간 눈썹아래의 빛나는 눈으로 여인에게 향하기만 해도 그 여인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두 다리에 힘이 다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는 늘씬하고 요염한 친황과 함께 춤을 추며 가슴 앞에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수줍은 듯 온순한 눈빛을 바라보고, 자신의 귓전을 때리는 그녀의 꿈같은 속삭임을 들으며, 몸에서 풍겨오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그윽한 향기를 맡고, 그는 격렬하게 고동치는 자신의 마음은 이미 그녀에게 취하고 있음을 느꼈다. 모든 것이 원만하고 순조롭게 돌아가고, 주변에는 젊은 여인들이 있고, 웃음소리가 있고, 박수소리에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악이 있다. 젊고 패기만만한 시장인데 어떻게 이런 온정과 상상으로 가득 찬 가을비 오는 밤에 인생을 즐거움을 다 누리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자의 강한 팔에 안긴 여자의 두 볼은 꽃처럼 붉고, 빛나는 큰 눈은 감지도 못하고, 긴 속눈썹은 간간이 떨리며 마음 속의 춘정을 드러낸다. 그녀는 완전히 몰입하여 춤을 추는데, 춤을 추는 자태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완전히 정감이 가득한 기쁨 속에 빠진 듯 하다. 그 봉긋이 솟은 탱탱한 가슴은 댄스 파트너인 남자에게 밀착되어 서로 간에 마음 깊은 곳에 억누르고 있던 애욕의 뜨거운 파도를 불러일으키는데......노래와 춤이 흥겨워 마치 꿈속 같다. 이 한 쌍의 남녀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모든 것을 잊은 듯했다.
무도장의 어두컴컴한 모퉁이에서 질투와 증오로 가득 찬 눈빛을 번뜩이고 있는 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바로 류쉐이창의 비서인 왕뤠이였다. 빳빳한 회색 카키 중산복이 고지식함과 열등감을 숨길 수는 없었다. 즐거워하는 무리들 밖으로 푸대접받는 청년은 우울해 하며 파리한 야윈 얼굴로 몸을 돌려 천천히 문밖으로 걸어가 홀로 정문 앞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몇 모금 빨아 당기고는 연기를 길게 내 뿜는다. 담배연기에 둘러싸인 얼굴은 음침해 보였다.
어제 왕뤠이는 친황에게 새로 출판된 소련 소설 한 권을 보내면서 책 속에 편지도 한 통 끼워 넣었는데, 뜨겁고 진지한 말로 그녀에게 가슴 가득한 감정을 다 털어놓고, 또 오늘 무도회장에서 만나 얘기 좀 나누자고 약속하였다. 이 때문에 온 몸과 마음을 열렬한 사랑에 던져 넣은 청년이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자신과 마음에 둔 사람이 서로 만났을 때 하려던 말 몇 마디를 모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생각하고, 자신감과 애정의 밝은 태양이 자기에게 행복과 따스함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느꼈다. 오후에 퇴근하면서 그는 이발관으로 가서 새로운 스타일로 이발한 후 숙소로 돌아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새 신발로 바꿔 신고 제일 먼저 정협 강당에 도착하니 그 흥분된 마음은 곧 신랑이 될 것만 같았다.
간절한 바램이 일생의 운명을 결정할 것처럼 긴장되고 흥분되었다. 웃는 얼굴로 다가온 젊은이는 보고도 못 본 척하면서도 첫 번째 무곡이 시작되자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시장의 품속에 뛰어들고는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바꾸지 않았다. 왕뤠이는 화도 나고 조급하기도 해서 몇 곡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용기를 내서 막 쉬게 된 친황에게 춤을 청했는데, 여자는 뜻밖에도 웃으며 “미안해요, 좀 쉬고 싶어요”라고 딱 잘라 거절하였다. 왕뤠이는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앉아 거듭 추측해 본다. ”내 편지를 봤을까?“ 어떤 여자가 다가와 그에게 춤을 추자고 청했다가 신경질적인 거절을 당했다. 그러나 자신의 상사와 친황이 그렇게 우아하고 어울리는 자태로 한 곡 한 곡 추어나가는 것을 보고는 일종의 질투심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솟구쳐 나와 억지로 버티고는 있지만 그의 마음 속은 견디기 어려웠다. 또 몇 곡이 흘렀고, 그는 기회를 엿보다 친황에게 다가가 묻는다. ”내가, 내가 준......편지, 봤어요......?“ 예쁜 여자는 아래위로 훑어본다. ”뭐라고요? 주신 책도 아직 안 들쳐봤는데요.“ 경멸하는 듯한 눈빛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양 그의 머릿속은 계속 웅웅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일말의 원망도 드러내지 못하고 얼굴만 붉힌 채 어두운 구석으로 물러났다.
이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왕뤠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왕비서, 어떻게 춤을 안 추시나?” 그는 대충 얼버무리며 급히 담배를 비벼 끄고는 슬며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더욱 굵어진다. 주말 무도회는 밤이 깊어서야 끝이 났다. 손님을 배웅하는 차들이 한 대 한 대씩 차례로 빌딩 옆 주차장을 떠나고, 흥겹게 시간을 보냈던 간부와 직원들은 우산을 받쳐들고 희희낙락 빗물을 밟으며 흩어져 간다.
시장 류쉐이창의 검은색 볼가 전용차가 제일 나중에 무도회장 정문의 계단 아래까지 미끄러져 가더니 그는 손안의 우산을 곁의 여자에게 건네며 가볍게 말한다. “샤오황, 사무실에서 기다릴 거니까 꼭 와야 돼......”
젊은 여자는 온몸을 가볍게 떨며 물기어린 눈망울로 훑어보다 자신의 얼굴과 마음이 타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낮은 신음 소리를 낸다. “응......”
그 애교 섞인 신음소리는 남자를 흥분시켰던지 잠깐동안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빗속에 내려섰다 급히 차에 올라 떠난다.
가을비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여자는 그 빛나는 눈빛을 느끼자 예리한 칼로 이미 재빠르게 자신의 옷을 남김없이 벗겨버리는 것 같았고, 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백옥 같은 몸매를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 드러내고 있는 듯 하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녀는 운명에 맡길 뿐이었다.
우산을 받쳐든 귀여운 여인은 비 내리는 캄캄한 밤으로 검은 구름이 날아들어 가을바람에 날리 듯이 흥분되고 황홀해졌다. 구름 꽃이 그녀의 눈앞에 피어나듯 가슴에 격랑이 일었다. 대학을 나와 시 정부 기관으로 들어와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는 매력 넘치고 풍모 있는 젊은 시장에게 깊이 매료되고 말았다. 그가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눈길이라도 주면 그녀는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한참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보다 혁명의 더 오래된 아내와 발랄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사랑이니 정이니 하는 분수에 맞지도 않는 감정을 가질 수 없는 데도 이 당당하고 멋진 남자가 늘 그녀의 다정다감한 가슴과 낭만적인 꿈속으로 파고들어 강력한 감정적 충격을 가져오고 사랑의 감정이 일도록 한다. 그 맛은 달콤하기도 하고 견디기 어렵게도 한다.
오늘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듯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의식이 분명했다가도 몽롱해지는 여자를 한 걸음 한 걸음 멀지 않은 시 정부 사무 건물로 걸음을 옮기게 하였다.
이것은 류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흥분되고 불안한 밤이긴 마찬가지다.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친황의 모습은 감정이 풍부한 그의 마음도 흔들어 놓아 그가 이미 오랫동안 가슴 밑바닥에 억눌러놓았던 세찬 욕구를 불러 일으켜 모든 사람이 그렇듯 감정의 늪에 빠져 벗어나지 못한다. 겨우 이런 말을 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뜻밖에도 비장한 기백이 솟아 나와 두 눈조차 촉촉이 젖었다.
 류쉐이창의 모든 기억 속에 쭤어수윈과는 정치상에서 생활상에서 의지와 기계적이고 판에 박힌 듯한 성생활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할 것은 없었다. 그들 사이는 벌써부터 무미건조해져 너는 너고 나는 나인 채 우연히 만날 경우의 눈빛조차도 무관심하기 그지없었다. 한 사람은 혁명을 하느라 바쁘다 했고, 한 사람은 아이들을 위해서 집안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고 핑계를 대어 서로의 거리는 당길수록 멀어졌고, 류쉐이창은 심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도 귀찮게 여겨졌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그도 애정이 남아 있어서 아이의 얼굴을 보듬어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등 귀여워하였다.
그러나 젊고 자신만만한 시장은 마음 속에 억누르고 있던 그 감정의 욕구를 폭발시킬 돌파구를 충동적으로 찾고 있었는데, 수려하고 온유한 친황이 그의 곁에 출현한 것은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끼얹어 애정의 불꽃을 타오르게 한 것이다. 오늘밤의 무도회는 굳센 의지를 지닌 혁명전사로 하여금 더 이상 솟구치는 열정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들어 그녀와 밀회를 가지지 않는다면 영혼과 육체가 그야말로 폭발해버릴 것처럼 만들었다.
류쉐이창은 외투를 벗고 넓은 사무실 중앙에 서있다. 구 정권으로부터 남겨져 온 두터운 양모 카펫이 깔려 있는데, 그 위에서 얼마나 많은 로맨틱한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알까? 그는 군대를 이끌고 이 도시를 해방하고 이 건물에 들어오기 몇 해 전에는 새로 성립된 혁명정권을 공고하게 건설하는 일에 모든 정력을 다 바쳤다. 하지만 근래 몇 해 동안은 업무에 바쁜 것 외에 늘 가슴속이 답답하고 공허하였다. 누렇게 뜬 아내의 모습이 갈수록 불만스러워 주변에 연회장소에서건 교제장소에서건 빛나는 젊고 예쁜 여자가 있었으면 하고 갈망하였다. 단순히 생리적인 필요에서 보면, 정력이 넘치는 데다 정열적인 젊은 시장 역시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정취를 아는 사랑스런 여인이 있었으면 했는데, 빼어난 새 아내를 품고 있는 전우들을 볼 때마다 그런 요구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이 낡은 건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가져온 친황이라는 여자가 출현하자 그는 이 목표를 공격하여 포획할 결심을 하고, 그 옛날 전장에서처럼 어떤 대가를 치르든 간에 반드시 잡고 말겠다고 맹세하였다.
오늘밤의 로맨틱한 무도회와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는 마침내 가까워진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애정의 불꽃을 붙여놓는 동시에 억제할 도리 없이 마지막 얇은 막을 찢고 피차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그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한다......그들에게 있어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어서 폭발하는 날엔 어떤 세속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
사무실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우산을 든 젊은 여인이 사뿐히 걸어 들어온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에 영롱한 빗방울이 묻어 있고 발그레하게 물든 얼굴의 두 눈동자는 더욱 반짝인다. 흥분으로 한없이 떨리는 아름다운 몸매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꽃나무 같다. 남자는 잠깐 멍하니 서있다 격렬하게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으며 뜨겁게 말한다. “샤오황......!”
“문, 문......” 품속으로 뛰어들어 안기는 여자가 작은 소리로 외치지만 그 뜨거운 입술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고 만다.
커다란 자극에 고무된 남자는 그녀의 늘씬한 허리를 안아 올리고는 몸을 돌리며 발로 문을 닫는데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카펫 위에 쓰러졌다. 밀어의 속삭임도 없고 부끄럼도 거절도 없다. 긴장되지만 민첩한 손발의 동작과 묵계로 몰입하는 몸의 언어만이 있을 뿐이다......여인이 알몸이 된 그 순간 벌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는 동작을 멈추고 희고 단단한 두 다리 사이에 꿇어 앉아 멍하니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윤기 나는 육체인가! 언뜻 보기만 해도 온몸이 끝없이 들끓는 남자의 호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그녀의 민감한 육체와 섞기 위해 스스로 혈기가 넘친다고 여기는 남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던져 버린다. 사랑, 욕망, 헌신 등등 불같은 감정에 싸여진 여인은 이미 어떤 부끄럼도 없이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도 연약한 그 비밀스런 곳도 완전히 남자 앞에 드러내고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생명의 찬란한 순간을 맞이한다......
이것은 류쉐이창이 여태껏 한번도 있어 본적이 없는 감정이고, 자신의 인생세계가 갑자기 다가온 밝은 빛에 의해 가릴 것 없이 비춰지자 여러 해 동안 가슴 밑바닥에 잠들어 있었던 순정과 욕정이 일제히 깨어나서 그는 대단히 분명하게 의식되는 것을 느낀다. 품속의 이 아름다운 여인은 그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동시에 일종의 모든 것이 새로워진 생활을 가져다 주었다. 슬픈 일인지 기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돌아볼 여유 없이 그는 이 여인을 새로운 반려자로써 필요하였고 그리고 선택하였고, 앞으로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든 눈 딱 감고 헤쳐나갈 뿐이었다.
“아......” 파도처럼 밀려드는 쾌감이 두 연인의 온몸을 휘감아 말초신경조차 하나하나 애욕을 불러 일으켰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듯한 사지가 한 덩어리가 되어 갈수록 거친 숨과 신음 소리를 따라 미칠 것처럼 두 연인은 카펫 위에서 이리저리 뒹군다......고요한 사무실은 흡사 환락의 침실 같았다.
일련의 낮은 천둥소리가 두터운 구름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가르며 포효하고 부슬부슬 내리던 가을비는 더욱 세어진다.
야윈 어린 여자아이 류뿌는 우산을 쓰고 도시락을 들고서 빗물이 고인 땅에 반사되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어두컴컴한 정부청사 쪽으로 걸어갔다.
그 건물은 마치 한 밤중에 잠복하고 있는 거대한 짐승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데 3층의 넓은 창문에서 따스한 주황색의 등불이 희미하게 새어 나온다. 이곳은 류뿌가 자주와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한데 하물며 그 불빛이 위안과 용기를 주는 데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천둥소리가 갈수록 가까워지더니 우르릉하며 머리 위를 스친다. 활기가 전혀 없는 건물과 음산하고 어두운 복도는 너무 조용해서 가파르고 긴 계단과 텅 빈 발걸음 소리가 여자이이에게 마음 졸이며 몇 번이나 망설이게 하였다. 그녀는 울고 싶었고 아버지를 부르고 싶었지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어기적어기적 어둠을 더듬으며 3층으로 올라가 마침내 복도 깊은 곳에 있는 아버지의 사무실 문에서 새어나오는 한 줄기의 빛을 보았다. 여자아이는 코가 찡하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줄곧 음지에서 이 연기를 연출해온 왕뤠이는 건물 모퉁이의 은밀한 곳에서 차가운 눈으로 비틀거리며 가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 가에 음흉한 웃음을 띤다. 그는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알고 있다. 그 거칠었다 가벼웠다 하던 숨소리와 신음 소리가 마치 다정함과 질투로 가득 찬 그의 마음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찢어버리는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의 가슴속에서 날뛰는 야수 같은 마음을 있는 힘껏 억누르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앞뒤 가릴 것 없이 시장실로 뛰어들어가 히스테릭하게 한 바탕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그가 잃어버릴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일자리정도겠지만 마음 속의 여인을 무정하게 앗아간 시장은 바로 패가망신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엿 같이 통쾌할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왕뤠이의 동경과 갈구는 미녀를 대하는 것만큼이나 강렬해서 그는 이를 악물고 그 치욕을 참을 수밖에 없었고, 고집스런 입술 가로 한줄기 피가 배어 나와도 손으로 닦지 않았다. 어린 류뿌가 자신의 지시에 따라 도착하자 왕뤠이는 너무 좋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계단입구 쪽으로 몰래 빠져나가 유령처럼 몸을 숨긴다.
살금살금 복도의 깊은 곳으로 걸어가는 류뿌의 작은 얼굴은 어느 정도 평온해졌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이르러 갑자기 꽉 닫힌 문 안쪽에서 희미하게 전해오는 여인의 웃음소리와 남자의 숨소리를 들었다. 어린 아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안절부절하며 잠시 서있다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조용히 사무실 문 앞으로 다가가 문틈에 바짝 붙어 사무실 안을 엿보았다. 순간 그녀의 작은 얼굴은 창백해져 천둥에 맞은 것 마냥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밝고 온화한 불빛아래 알몸인 아버지가 똑같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여인을 꼭 껴안고 가볍게 떨고있는 두 사람의 육체는 감정에 북받친 듯 뒤얽히고 부딪치며 극도의 긴장과 흥분 속에 완전히 빠져 미친 듯이 카펫 위를 뒹굴고 있었다......
“텅!”하고 도시락을 나무바닥에 떨어뜨렸고 귓전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아악! ―” 놀랍기도 두렵기도 화가 나기도 한 듯한 류뿌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계단입구 쪽을 향해 뛰었다. “우당탕탕!”하는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하늘의 천둥과 합쳐져 검물 전체를 진동시켰다.
류쉐이창은 순간 품속의 여인을 풀어놓고 몸을 일으켜 사납게 고함친다. “누구야?! ......밖에 누구야? ......”
그는 알몸인 채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사정없이 떨기 시작하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은 온몸에 힘이 다 빠질 정도로 놀라 두 손으로 가슴과 혈흔을 띤 은밀한 곳을 가리며 가죽소파 옆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않는다.
어지러이 뛰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온 건물에 울려 퍼져 말로 할 수 없는 공포를 가져온다.
류쉐이창은 급히 옷을 주워 입는데 눈에는 불같은 노기를 띤 눈빛이 뿜어져 나온다. 잽싸게 책상 서랍 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 빠른 걸음으로 문 입구로 다가가 사납게 방문을 열어 젖혔다. 바닥에 엎질러진 도시락과 우산 그리고 사방으로 흐르는 국물을 발견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쉰다. 낙담과 불안이 점점 분노를 누르기 시작한다.
건물 복도에 퍼지는 발소리가 사라지자 정적이 다시 밀려오고 가을비 소리도 완전히 다른 기분을 가져왔다.
류쉐이창은 몸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가 창문 커튼을 올리고 건물 밖으로 내다보자 낯익은 검은 그림자 하나가 휘청거리며 시정부 정문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순식간에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만이 보였다.
그는 남모르게 한숨을 쉬고는 소파 위에 던져놓았던 옷을 들어다 벌벌 떨고있는 여인의 몸 위에 걸쳐 주며 말한다. “친황, 걱정하지 말아, 내가 있잖아. 빨리 옷 입고 돌아가도록 해, 우리 다음에 만나자고.”
친황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흐느끼며 말한다. “쉐이창, 무슨 일이 생기면 전, 전 어떡해요?”
남자는 그녀를 껴안으며 얼굴에 이해 못할 웃음을 띤다. “어떡하긴? 기껏해야 내가 마누라와 이혼하고 정식으로 널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 밖에 더 있겠어.”
이 승낙하는 말을 얻고 나자 여자는 말없이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껴안고 뜨거운 키스를 퍼붓는데, 정신이 딴 데 가있는 남자는 억지로 대한다. 방금 전까지 미칠 듯 달아올랐던 사랑의 감정은 이미 흔적 없이 사라졌고 그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오늘밤 집으로 돌아가 이 난관을 넘길 수 있을까이다.
한 밤중의 천둥소리는 끊임없이 울어대며 아득한 밤하늘을 뒤흔들었고 끊임없이 내리던 가랑비는 몇 번인가 반복하더니 폭우로 변하였고, 은색 뱀 같은 번개가 비바람이 흩뿌리는 화원식의 작은 건물을 불시에 한번씩 비춘다. 짙은 어둠이 내린 산청의 시계탑이 12시를 치자 길고 무서운 종소리가 비 내리는 밤하늘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시장이 전용하는 그 검은 자가용이 비의 장막을 빠르게 가르며 활짝 열린 화원식 건물의 철문 안으로 조용히 진입한다. 훤칠한 체격을 가진 시장이 차에 오르자 그 차는 천천히 후진하여 사뿐히 출발하였다. 류쉐이창은 시원한 빗줄기가 마음 속의 불안과 노기를 식혀줄 것처럼 빗속에 잠깐동안 우두커니 섰다. 친황은 이미 기관 숙소로 보내졌지만 달콤한 그녀의 체향이 그의 몸에 남아 갑자기 흥을 다하지 못하고 꺾인 정욕을 불러 일으켜 다시 괴로울 정도로 넘쳤다.
그는 검은 양복 위의 빗물을 떨어낸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지으며 등불이 전처럼 밝은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소파에 꼿꼿하게 앉아있는 아내가 보였다. 노기로 가득 차 불타는 그녀의 두 눈과 딸 류뿌가 마귀라도 본 듯이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모습이 그의 얼굴빛을 냉담하게 변하게 하였다. 되는 대로 담담하게 한 마디 한다. “으응, 이렇게 늦었는데......아직 안 잤소?”
쭈어수윈은 얼굴은 차갑고 눈은 불을 뿜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당신도 늦은걸 알아요? 당신에게 묻겠는데, 뭐 하러 갔어요?”
“회의하러 갔쟎소!” 류쉐이창은 상대방의 이런 심문하는 듯한 말투에 반감이 들었다. 하물며 벌써 이 일을 알고있는 딸아이 앞에서는 더했다. 그는 퉁명하게 한마디를 내 뱉으며 외투를 아무렇게나 옷걸이에 걸고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고통과 실망으로 가득 찬 여인은 결국 폭발시키며 그에게 소리를 지른다. “류쉐이창! 당신 거기 서! 하나 묻겠는데 도대체 당신 공산당원 맞아?”
류쉐이창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서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싸늘하게 훑어보며 낮게 중얼거린다. “미쳤군!”
“야!......” 쭈어수윈은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어 남자의 따귀를 매섭게 후려치고는 이를 갈며 욕을 퍼붓는다. “반역자! 색마! 흉악하고 잔인한 놈! 우수당원의 옷을 걸치고 여자의 바지 속에나 기어들어 간 놈! ......”
얼떨결에 따귀를 얻어맞고 멍해진 류쉐이창은 순간 발을 구르며 노발대발한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에서 브라우닝 권총을 뽑아들고 그녀에게 겨누며 몹시 허둥거리며 소리를 지른다. “빌어먹을! 감히 날 쳐! 죽여버리겠어!”
여인은 가슴을 쫙 펴고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고함을 친다. “그래, 쏴라! 쏴 보란 말이야! 망할 자식! 나 쭈어수윈은 국민당과 일본 놈들 손에도 죽지 않았는데, 오히려 배은망덕한 남자 총에 당해야 하는군. 좋아! 오늘 내가 공산당의 시장인 너에게 죽어주지! 흐르는 피가 검은지 붉은지 지켜봐라! 빨리 쏴라, 이 겁쟁이! 네놈이 바람 피던 용기는 다 어디 갔어! ……“
류뿌는 놀라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미칠 듯이 화가 난 어머니를 힘껏 껴안는다. “엄마! 엄마아……”
그 치기 어린 날카로운 울부짖음은 그야말로 사람의 혼을 뒤흔들었다. 노기 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린 류쉐이창은 아무 것도 듣지 못한 듯이 “따르륵!” 권총의 노리쇠를 당겨서는 총구를 여인의 이마에 대고 소리친다. “제기랄! 끝장내자고! ……”
그 순간 옆에서 부들부들 떨며 예순이 넘어 보이는 작은 발에 백발이 성성한 노모가 류쉐이창에게 부딪힐 듯 다가온다. 노부인은 손에 부엌 바닥을 쓰는 작은 빗자루를 들고서 아들을 좇으며 매섭게 그의 어깨와 등을 후려친다. 합죽한 입은 연신 울먹이며 욕을 해댄다. “개만도 못한 놈! 먼저 날 죽여라! 복을 차버릴 놈! 양심 없는 놈 같으니라고! 벼슬하고 총이 있으니까 사람을 해치려고 들어! 이 개만도 못한 놈! ……”
권총을 든 남자는 홱 돌아서서 소리친다. “어머니, 어머니! 방으로 돌아가세요, 돌아가시라고요! ……”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눈물을 흘리며 여인은 쉰 목소리로 외친다. “어머님! 저 사람 막지 마세요! 전 저 류쉐이창의 총을 맞을 거예요! 쏴봐! 내 머리를 쏴보란 말이야! 망나니!……”
격렬한 말다툼 소리에 9살 난 류얼, 7살 난 류스와 겨우 만 4살이 되는 류웨이까지 모두 놀라서 깼다. 깊이 잠들었던 형제들이 잠자리에서 동글동글한 머리를 내밀고 여섯 개의 동그란 큰 눈을 뜨고 두려운 듯이 거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서운 “부부싸움”을 바라보며 모두 놀라 떤다. 어린 마음들은 얼어붙었다. 아이들은 이미 외로운 돛단배에 버려진 것과 같다. 의지할 곳 없는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에 말이다……
“이혼해! 이혼하자고! 제기랄, 이렇게는 더 못살아! ……”
류쉐이창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노모를 밀치고 씩씩거리며 혼자 이층으로 올라갔다. “쾅!”하고 육중한 문이 닫히는 굉음에 건물이 흔들렸다. 혁명전쟁의 시련을 경험한 혁명가정의 파멸을 선고했다.
그 소리를 따라서 쭈어수윈은 총알에 맞은 듯이 2층 계단 입구와 멀지 않은 바닥에 넘어졌다.
  “엄마! 엄마아……”
가슴이 찢어질 듯한 류뿌의 울부짖는 소리가 놀라 어리둥절한 세 동생을 깨웠고, 형제들은 비틀거리며 방안에서 뛰쳐나와 다들 기절해 죽어 가는 어머니 몸 위로 달려들어 날카롭고 처량한 소리로 울부짖는다.
백발이 성성한 노모는 아들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계단 위로 뛰어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는다. “투하이야! 투하이야아! 넌 너 자신을 망치고 있단다! 천벌을 받을 거다! 투하이야! ……”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치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화분의 꽃이 창문턱으로 비쳐드는 밝은 햇볕 아래 활짝 피어 있고, 창 밖의 나뭇가지에 몇 마리의 참새가 재잘대며 서로 장난을 치고 있다. 비 온 뒤의 날씨는 하늘을 파랗게 씻어놓은 듯이 높고 맑아 보인다.
의식이 혼미한 쭈어수윈은 병원 특별 중환자실의 병상에 누워있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 옆에서 지키고있다.
두꺼운 유리문 밖에서 류뿌와 어린 세 남동생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하얀 병실 안은 아주 조용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기다란 복도에 발자국 소리가 울려고, 왕뤠이가 시당위원회 서기 쏭이후와 비서경호원들을 안내하여 급히 왔다. 주름이 많은 쏭이후의 얼굴에 걱정과 초조함이 가득하다. 일찍이 통지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병원원장과 사범대학 관계자들이 급히 달려왔다.
쏭이후는 묵묵히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가 흰 가운을 걸친 원장에 의해 중환자실로 안내되었다.
쭈어수윈은 창백한 얼굴로 머리카락이 풀어헤쳐진 채 코에는 산소호흡기를 꽂고서 미동도 없이 하얀 침대에 누워있다. 병실의 분위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쏭이후는 살며시 침대 앞으로 다가가 몸을 약간 굽히고 환자의 수척하고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쑤윈, 쑤윈……”
쭈어수윈은 천천히 눈을 뜬다. 눈빛은 멍하니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쏭이후는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는다. “쑤윈! ……”
쭈어수윈은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눈에서 눈물이 솟아 나오고,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말은 하지 못한다.
쏭이후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그녀를 향해 살며시 웃어 보인다.
유리문 밖의 네 아이들은 말없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쭈어수윈은 천천히 눈을 감더니 머리를 한 쪽 방향으로 기울이자 억누를 수 없는 눈물이 베개 위로 줄줄 흘러내린다.
시당위원회 서기는 깊이 한숨을 내 쉬고는 몸을 일으키며 낮은 소리로 원장과 의사들에게 병의 상황을 물어보고는 중환자실을 나온다.
류뿌는 울면서 쏭이후를 부른다. “아저씨……”
눈 주위가 붉어진 쏭이후는 말없이 네 아이들을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안으며 긴 의자에 앉아 친근하게 그들을 위로한다. “얘들아, 울지 마라, 엄마는 좋아 질 거야……어떤 시련도 너희 엄마는 다 참고 견뎌냈어!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곳에서도, 모진 고문을 당해서도, 억울함과 모욕을 참아내며 잔혹한 투쟁을 했었단다! 너희 엄마는 여태껏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 너희 엄마는 내가 보아왔던 당원 중 가장 강인한 여성 공산당원이었단다! 우리는 너희 엄마의 강인한 생명력을 믿어야 한다. 너희 엄마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아……”
그는 갑자기 소리를 낮추어 묻는다. “아버지는 오셨니?”
아이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류뿌만이 눈물을 머금고 내색하지 않았다.
쏭이후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한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음,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왕비서, 내 차로 얘들을 먼저 집에 데려다 주게, 저녁에 다시 학교와 보육원으로 데려다 주도록 해, 애들 공부에 지장 없도록 해야하네.”
왕뤠이는 공손하게 대답하며 다가와 허리를 굽혀 가장 어린 동생인 류웨이를 안는다. “자, 웨이웨이, 삼촌이랑 할머니 보러 집으로 가자. 얘들아, 집에 가자!”
슬픔에 젖은 류뿌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들고는 어떤 생각에 잠긴 듯이 이 과묵한 아버지의 비서를 바라본다. 낮고 귀에 익은 그의 목소리와 뭔가를 피하는 듯한 눈빛이 류뿌의 단순한 머릿속을 섬광처럼 반짝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해가 질 무렵이다. 퇴근하는 기관의 간부들이 떠들며 시당위원회 기관의 정문을 빠져나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책가방을 멘 류뿌가 길에서 비스듬히 마주 보이는 곳에 조용히 퇴근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바라보고 있다. 하얀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어른 같은 고집스런 표정이 있다.
석양이 비껴드는 기관 정문 앞에 행인들은 점점 줄어들고 이따금씩 기관장의 승용차가 지나간다.
갑자기 류뿌의 눈이 반짝하더니 문 옆으로 숨었다--
단정하면서도 아름답게 유행하는 옷을 차려입은 친황이 시계를 보며 바삐 정문을 걸어 나와 공원으로 향한다.
류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도로를 사이에 두면서 살금살금 따라 갔다.
친황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혼자서 앞을 향해 가고 있다. 그녀의 뒷모습은 단아한데다 걷는 모습도 유연하고 우아해서 지나치는 행인들이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주의를 끌었다.
류뿌는 입술을 꼭 깨물며 멀리서 친황을 뒤따른다.
친황은 공원정문 앞에 도착하자 무의식적으로 뒤돌아보고는 흥성대는 관광객들에 싸여 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류뿌는 급히 길을 건너 매표소창구로 달려가 입장표를 사서는 친황의 뒤에 바짝 붙어 공원으로 들어갔다.
해질 무렵의 공원 안은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아 좀 썰렁해 보인다.
친황은 한가롭게 호수의 아홉 구비나 되는 작은 다리를 건넌 다음 사람이 없는 한적한 인공산의 뒤를 도는가 싶더니 그 순간에 보이지 않았다.
류뿌는 숨을 헐떡거리며 뒤를 따라가다 살그머니 인공산의 동굴에 몸을 숨기고 바깥쪽을 살피다가 갑자기 약간 뜻밖인 듯 놀라 멍해졌다.
--왕뤠이가 공원의 벤치에서 일어나 친황을 맞이하며 친근하게 그녀의 손을 당기며 자기 옆에 앉히려고 한다……
어린 류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흡사 사생활 속에 숨은 어떤 비밀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내심 이상한 충동이 솟구쳤다.
왕뤠이와 친황은 말을 낮게 주고받다가 흥분한 듯 점점 의견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친황은 자기 어깨에 올려놓은 상대의 손을 뿌리치며 일어나려다 왕뤠이에게 붙잡힌다. 두 사람은 순간 아무 말이 없다. 친황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낮게 흐느끼자 왕뤠이는 마른 얼굴을 검푸르게 하고서 말없이 담배를 피운다……보기에도 그들이 다투는 문제가 일반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 류뿌는 갑자기 그 비가 오던 날 밤 이 여인과 아버지가 뜨거웠던 장면이 생각나자 작은 입술을 꼭 깨물며 증오하듯 그녀를 노려 본다.
날은 어느새 어두워 졌다. 저녁바람이 간간이 불어왔고, 마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어지러이 떨어져 땅위를 금색으로 덮는다……친황은 마침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만년필 하나를 살며시 벤치에 놓는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왕뤠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가 싶더니 돌아서 재빠르게 자리를 뜬다.
왕뤠이는 천천히 머리를 들더니 멀어져 가는 친황의 뒷모습을 괴롭게 바라본다. 그는 갑자기 그 만년필을 움켜잡더니 힘을 주어 사납게 부러뜨려서는 가까운 인공호수에다 던져버린다.
황혼 무렵이다.
화려한 등이 켜지고 오고가는 사람들로 흥성거린다. 산청의 영화관은 새 영화가 상영중이고, 온 거리에 부드러운 사랑의 노래가 흐른다.
류뿌는 잽싼 걸음으로 가는 친황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가 그녀와 함께 내려가는 케이블카에 오른다.
천천히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케이블카 안에서 류뿌는 모퉁이의 어두운 곳에 묻혀서 언뜻언뜻 불빛에 비치는 아름다운 친황의 옆모습을 살피고 있다. 류뿌에게 갑자기 알 수 없는 슬픔이 솟구쳐 눈물이 점점 시선을 가린다……
친황은 불빛이 휘황한 번화가를 벗어나 갑자기 울퉁불퉁한 좁은 골목으로 꺾어든다. 그곳은 어두컴컴하고 집들은 낡았으며 주위는 시끄러워서 흡사 옛날 빈민가에 들어선 느낌이다. 류뿌는 이곳저곳에 부딪히며 살금살금 친황의 뒤를 좇는다. 친황은 오르락내리락하며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 흔들흔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강가의 수상가옥에 다다르자 희미한 불빛이 새나오는 낡은 문을 두드렸다.
막 집에 들어선 친황은 방문을 열다가 표정이 엄숙한 전혀 안면이 없는 어린 숙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너, 누굴 찾는 거니? 꼬마 아가씨.”
“당신을 찾는 거예요!” 류뿌는 전혀 겁먹지 않고 곧장 문으로 들어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차갑게 낡은 집안의 초라한 가구들을 훑어본다.
40세가 넘어 보이는 중년 부인이 식탁에서 성냥에 불을 붙이려다 침착하게 고개를 들고 류뿌를 쳐다보았다. 허름한 옷을 입고 누추한 집에 살아도 그녀에게 아직 남아있는 예전의 고상한 운치는 여전하고, 침착하고 깊은 눈빛이 범상치 않은 기품을 풍겨 준다.
친황은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이 불청객의 신분을 알아차리고 자연스럽게 물 한잔을 건네며 인사한다. “앉아요, 꼬마 아가씨, 집안에 과일 하나 없네.”
류뿌는 조심스럽게 나무의자에 앉아 아무런 표정 없이 똑 같이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친황을 바라본다. 그 순간 류뿌는 갑자기 자신이 많이 자랐다는 것을 의식하였다.
친황의 어머니는 말없이 성냥갑으로 가득 찬 큰 바구니를 받쳐들고 나가며 아주 예의 바르게 방문을 살짝 닫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강에 불빛이 부서지고 물결은 맑고 깨끗하다. 맞은 편 기슭은 불빛이 휘황하여 선경에 든 것처럼 황홀하다. 높은 기적소리와 나지막한 모터소리가 아득한 듯 가까운 듯 서로 호응하듯 들린다. 어디선가 아주 재미있는 사천지방 희극의 높은 곡조와 징, 북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와 사람을 별천지에 있는 것 같이 만든다……
“저는 류쉐이창의 딸 류뿌예요. 아줌마와 얘기하고 싶어서 왔어요.” 류뿌가 짧은 침묵을 깨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친황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네. 아빠를 많이 닮았거든……”
류뿌는 차갑게 말을 끊는다. “아뇨, 전 엄마를 닮았어요.”
친황은 너그럽게 쓴웃음을 짓고는 진지하게 말한다. “류뿌, 어렵게 여기까지 날 찾아왔구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녁 먹고 가, 어머니가 음식을 잘 하시거든……”
류뿌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재차 그녀의 말을 끊는다. “다시는 우리 아버지에게 치근거리지 마세요! 아줌마가 아직 청년단 휘장을 두르고 있는데……청년단원 같은데? 우리 엄마는 1936년에 입당한 혁명가예요. 우리 엄마의 명성을 모욕하지 마세요! 우리 뿌얼스웨커 형제를 모욕하지 말란 말예요!”
친황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난 너희들의 어머니를 아주 존경한단다. 너희 어머니는 내가 다녔던 사범대학의 총장이셨지……”
류뿌는 눈물을 머금으며 소리를 지른다. “아줌마는 우리 엄마의 학생이 될 자격이 없어요! 우리 엄마에게 아줌마 같은 학생은 없단 말예요!”
친황의 눈물이 점점 솟아 흐른다. “……사람의 감정은 아주 복잡하단다……류뿌, 넌 아직 이해 못해……”
“무슨 감정 말예요!? 아줌마는 우리 아버지와 엄마의 감정을 이해해요? 그분들은 동고동락하며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혁명에 참가하셨고, 우리 엄마는 아버지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했어요……아줌마가 무슨 감정을 이해한다는 거예요!?” 류뿌는 격렬하게 친황의 코에다 삿대질을 하며 말한다. “아줌마는 시장 부인이 되고 싶은 거죠! 우리 아버지를 속이고 있어요! 아줌마는 사기꾼이에요!”
친황은 온몸이 떨렸지만 천천히 고개를 들고 정중하면서도 확고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야, 넌 잘못 생각하고 있어. 너에게 말해 주마. 난 정말 너의 아버지를 사랑한단다. 그분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도 돼 있어!”
류뿌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 “아줌마……정말 부끄럽네요! 아줌마를 증오해요!”
두 사람은 잠시 양보 없이 맞서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하였다.
문 여는 소리가 나며 친황의 어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을 들여와 그릇과 접시를 가지런히 식탁 위에 놓고 나서 아주 예의바르면서도 성의 있는 말로 한마디한다. “찬이 별 맛 없더라도 꼬마 아가씨, 편안하게 좀 들어봐요!”
류뿌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싸늘하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돌아서 문밖으로 나왔다. 친황의 어머니가 예의를 잃지 않고 계단 입구까지 마중 나와 손전등으로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비춰주며 어린 유포를 배웅해준다.
“잘 가요, 멀리 안 나간다.”
낡은 나무 창 뒤쪽에 서있는 젊은 여인은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슬퍼한다.
류뿌는 홀로 어둡고 좁은 골목을 걷는다. 굴욕적인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린다.
지등(紙燈)을 밝히고 있는 가판음식점들이 길가에 늘어섰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음은 삶의 갈망을 느끼게 한다. 사천지방 희극의 높은 소리가 귀에 울린다. 예로부터 전해온 풍류와 운치, 이별의 슬픔과 만남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혹시 아름다운 친황이 지위 높은 아버지를 사랑한 것도 불행한 것일까? 혹시 세상살이라는 것이 이렇게 흩어지고, 사랑하다 원망하며, 살다 죽는 것일까?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류뿌는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누구를 위해 슬퍼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

넓고 밝은 사무실에 시당위원회 서기 쏭이후가 창 앞에 서서 바깥의 경치를 말없이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입에서 뿜어낸 흰 연기가 그의 얼굴을 흐릿하게 만든다.
문여는 소리가 나고, 시장 류쉐이창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무실로 들어선다. “라오 쏭, 날 찾았소?”
쏭이후가 몸을 돌려 앞으로 다가서며 그의 손을 잡았다. “쉐이창! 탄광기지에서 막 돌아오는 건가? 고생 많았네. 자, 어서 앉게!”
쏭 서기는 직접 시장에게 차를 따라주고 담배에 불을 붙여주는 등 동작과 표정이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류쉐이창은 담배를 두어 모금 빨아들이고는 참을 수 없는 듯이 묻는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소? 내 아내 쑤윈의 일이오……?”
“쑤윈의 상황이 좋지 않네, 지금도 응급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의사들이 전력을 다하고는 있지만……아, 이 일은 더 이상 말 않겠네” 쏭이후는 찌푸린 미간을 풀며 화제를 바꾼다. “쉐이창, 우리 시에서 조직하고 파견할 중공업 기술 시찰단이 소련에 시찰 갈 일에 관해서 성위원회와 중앙에서 이미 허가했다네. 자네가 단장을 맡고 궈(郭) 부시장과 성의 차오(曹) 청장이 부단장을 맡을 걸세. 단원 명단도 기본적으로 시 위원회가 확정하면 즉각 중앙과 성에 보고하여 비준을 받을 참이네. 친황을 시찰단의 러시아어 통역 일을 맡기겠다고 자네의 건의에 관해서 말인데……자네가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려해보길 바라네,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서 파견할 수도 있지 않은가?”
류쉐이창은 불만스러움을 감추고 묻는다. “무슨 문제가 있소?”
“친황 동지는 자격이 미진한데다 경험도 부족해서 아마 중책을 맡기기 어려울 걸세……” 쏭이후는 완곡하게 말했다.
“진짜 이유는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이것 뿐만은 아니지. 친황의 가족관계가 복잡하네. 그녀의 부친은 전에 우리 시에서 유명한 자본가로서 해방전야 때 홍콩에서 갑작스런 병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기생출신의 세 번째 첩이었다가 지금은 가도(街道; 도시의 區아래의 작은 행정단위)에 의해 노동을 감독 당하고 있네……”
류쉐이창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시당위원회 서기의 말을 끊고는 반박한다. “이런 판단은 성립할 수 없을 거요? 친황의 어머니가 비록 성분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적의 스파이 조직과 관계가 있었다는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물며 친황 자신도 신중국이 키워낸 대학생이자 적극적인 요구로 입단한 청년단원인데, 어째서 가족들의 출신만 가지고 자신의 동지를 의심하고 배척해야 하냐고! 출신이 좋지 않은 것으로 말하자면 당신 라오 쏭도 만청(滿淸) 팔기자제(八旗子弟)의 후예가 아니냐고? 쑤윈은 대 관료지주의 딸이 아니었냐고? 자신의 가정을 배반하고 무산계급의 선봉적인 전사가 되지 않았냐 말이오?!“
쏭이후는 인내심을 가지고 말한다. “친황은 혁명투쟁의 시험을 거치지 않았고, 세계관은 아직 무산계급 쪽으로 전환되지 않았어. 하물며 이번은 중대한 해외업무임에랴. 정치심사는 아주 엄격한 것이네.”
귀신에게 홀린 듯한 류쉐이창은 더욱 고집을 부리며 변론식으로 반박한다. “친황의 언니는 해외주재 중국대사관 무관의 부인으로 오랫동안 남편을 따라 외국에서 일하고 있지.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할 거요?” “우리가 외교부에서 집행하는 것을 절대로 의심해서는 않되는 것이 별도의 간부정책이지?”
쏭이후는 좀 불쾌한 듯 한 숨을 쉬며 몸을 소파에 기대며 말한다. “……쉐이창 동지, 너무 고집스럽군. 당의 고급간부로서, 한 시의 시장으로서, 우리는 인민을 위해 일할 때 언제나 당의 위신과 군중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야겠지? 지금 아래 간부와 군중이 자네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하는 소리가 성안에서도 적지 않게 퍼지고 있단 말일세……”
“난 개의치 않겠어!” 류쉐이창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흥분하여 카펫 위를 왔다갔다한다. “나와 쑤윈이 이혼하는 일을 수군대는 것에 불과해! 그것에다 친황까지 더해서 말이지. 이런 스캔들은 당연히 사람들의 구미를 당겨 안주거리가 됐겠지. 정말 할 일 없는 것들! 이건 내 사적인 일이야. 난 시당위원회가 순전히 개인의 감정에 속하는 문제를 업무상의 일과 같이 취급하지 않기를 바라오! 이혼만 해도 그래, 내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지 않소! 다시 말해서 나와 쑤윈이 완전히 쌍방이 합의한 만큼 어떤 사람도 간섭할 권리 없다고!”
쏭이후는 매우 걱정스러운 듯이 류쉐이창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한다. “쉐이창, 쑤윈은 자네가 혁명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한 안내자로서 많은 고생을 했지. 그리고 자네 부부에게는 네 명의 사랑스런 아이들도 있잖아……”
“그만두시지, 쏭 서기!” 류쉐이창은 손짓으로 쏭이후의 말을 저지하며 점점 냉혹하고 각박하게 말한다. “난 알고 있지. 자네는 쑤윈에게 감정적으로 깊었지. 자네는 쑤윈의 입당소개자이자 북평학생운동시기에 가장 빨리 구했던 사람이었지……이런 사실들을 난 다 이해할 수 있어. 혁명가도 살아있는 사람이지! 하지만 자네는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 남의 감정을 희생시키려는 것이지……”
쏭이후는 차 탁자를 치며 일어선다. “자네 너무 지나치는군, 류쉐이창 동지! 자네가 어떻게 자네와 몇 십 년 동안 고난을 함께 한 동지와 전우를 이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자네에게 충고 하나 하지, 자네의 자만심은 이미 커질 대로 커져 위험한 지경까지 와버렸어, 다시 정신 차리고 엄격하게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자넨 실패하고 말 걸세!”
류쉐이창은 냉랭하게 턱을 치켜든다. “자네의 가르침에 감사 드리네, 또 다른 일 있으신가?”
쏭이후도 공적인 일을 처리하듯 다시 한번 말한다. “친황의 일에 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라네.”
“이게 오늘 얘기 할 핵심 내용이지? 미안하네, 깜빡하고 자네에게 알려주지 못 했네: 친팡이 시찰단의 러시아어 통역을 맡는 일, 자오 부성장이 이미 친필로 서명했네. 이것은 조직의 결정일세, 난 무조건적으로 따르겠네. 다른 문제는 아무래도 나 혼자 해결해야겠네. 그럼.”
류쉐이창은 서류원본 한 부를 시위 서기에게 건네주고, 야간 냉소 띤 얼굴을 하며 몸을 돌려 사무실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쏭이푸는 그의 뒷그림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고는 한숨 내쉬었다.

공항의 잔디에는 아이엘-14 프로펠러 비행기 한대가 마침 시동을 걸어놓고, 귀를 멎게 할 정도의 요란하게 울리는 거대한 소리 내고 있었다.
가죽 모자를 쓰고, 짙고 두꺼운 바바리코트를 입은 류쉐이창이 방대한 소련사찰단을 이끌고 트랩에 올라 기내입구에서 고개를 돌려 환송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친팡이 손에 생화를 들고 류쉐이창 옆에 나타났다. 그녀는 새로 파머를 하고 약간 분을 발랐으며, 몸에는 짙은 홍색 가죽 옷깃의 스코트와 검은 롱스커트를 입었으며 하이힐을 신은 발을 내딛으니 더욱 청려하고 고상하면서 농염하고 사람을 매혹시킬 듯 하였다.
군악대의 나팔이 우렁차게 울리자, 악대들이 일제히 연주하였다.
류쉐이창은 희색이 만면하며, 빈번히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였다. 젊고 아름다운 친팡이 한쪽에서 돋보이게 하여, 그는 더욱더 활기차 보였다.
시위 서기 쏭이푸를 비롯하여 다른 시 지도자들과 환송하는 사람들은 꽃과 화려한 깃발을 드날리며 비행기 서서히 움직이는 것을 목송하였다.
쏭이푸는 혼자 중얼거리며 나지막이 한 마디 했다: “저 사람……꼬리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구먼!”    
곁에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던 부시장이 미온적으로 한 마디 받았다: “그 사람 백이 막강하잖아요! 자오 부성장이 있으니……”
“응?” 쏭이푸는 경계하며 그에게 눈을 한번 부라리자 부시장은 급히 못다 한 말을 되 삼켰다.
그들 뒤에 서있던 왕루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안색을 살폈다. 입술 가에는 오히려 숨길 수 없는 원망이 묻어나왔다.
아이엘-14 비행기가 날카롭게 생하는 소리를 내며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위로 날더니 점차 운무 속으로 사라졌다……

초겨울의 양광이 따사롭게 청 빈 학교운동장을 비추고 있는 가운데 교실 여기저기서 낭랑한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 소형 자동차 한 대가 살그머니 교내로 들어와 멈췄다.
중학교 1학년 한 반에서는 음악수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교실에는 청순하고 우렁찬《카투사》의 노래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배꽃 온 천지에 필 때,
강가에 부드럽고 빛나는 가벼운 비단 떠다니고 있지요……”

풍금을 타고 있던 젊은 여교사와 학생들은 감정을 몰입하여 노래하고 있었고, 뒷자리에 앉은 류뿌는 오히려 약간 안절부절 해하는 듯 보였다.
순간, 머리가 허연 여교장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엄숙한 표정으로 류뿌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류뿌 학생, 좀 나와요.”
노래 소리가 뚝 멈추었고, 교실 안은 순간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류뿌는 교실 문 밖에 검은 긴 제복을 입은 비서 왕루이가 서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얼굴색이 순간 새파래졌다. 그녀는 재빨리 일어서서 걸음을 옮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몇 명의 학우들이 급히 그녀를 부축하였고, 그녀는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교실을 나왔다.
교장이 여교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우 여러분! 계속 수업하세요!” 몸을 돌려 교실 문을 나왔다.
풍금 소리와 노래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왕루이와 교장은 탈진한 듯한 류뿌를 부축하고 복도에 서 있었고, 류뿌는 불길한 조짐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온몸이 끊임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왕루이는 나지막이 그녀를 격려하며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어, 류뿌! 넌 장녀잖아, 동생들에게 모범이 돼야지, 남들이 비웃지 않도록 해야지, 가자!”
류뿌는 숨을 한번 골라 잠깐 안정을 하고 천천히 왕루이와 교장의 손을 밀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카투사》의 노래 소리는 점점 격앙되고 우렁차기 시작하였고, 어린 소녀의 얼굴에는 기이한 밝은 빛이 빛나고 있었다.
병원 감호실에서는 긴장감이 감돌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마침 환자에게 최후의 구조조치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들락날락하며 산소통과 인공호흡기를 옮겨왔다. 간호사들은 끊임없이 환자에게 강심제 주사를 놓고 있었고, 원장과 시위서기 쏭이푸는 낮은 소리로 구조방안을 연구하며 의사들의 구조를 지휘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헛수고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마지막 희망을 갖고 있었다.
류뿌는 가방을 멘 세 명의 동생을 데리고 유리창 너머로 방안을 두리번거렸으며 그들은 마침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일에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압도되었고, 심지어는 우는 것도 잊어버렸다.
복도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기관 간부와 사범대학의 교수와 학생 직원들로 꽉 차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은 계단 입구까지 몰려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생화와 과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쏭이푸가 갑자기 오더니 유리문을 열고 엄숙을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손짓을 하며 그들을 모친의 병상 앞까지 데리고 왔다.
혼수상태에 빠진 주오슈윈은 이미 임종직전에 와 있었고, 아이들은 소리 내어 통곡하였다: “엄마! 엄마야! ……” 어떤 자각도 없었다.
쏭이푸와 의사 간호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기계적으로 조금도 희망이 없는 응급조치를 반복하고 있었다……
“쏭 서기님!” 왕루이가 급히 감호실로 들어와 작은 소리로 쏭이푸에게 말했다. “모스크바와 전화 연결됐습니다, 류쉐이창 그―”
쏭이푸는 왕루이의 말을 제지하고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나갔다. 왕루이가 바짝 그 뒤 따라 달려가 유리문을 열었다……
갑자기, 임종직전의 주오슈윈이 천천히 눈을 뜨고, 입술이 극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꼿꼿하게 세워 앉더니, 사람을 전율하게 하는 밝은 눈빛으로 살짝 흔들거리는 유리문을 멍하니 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에서 단음 하나를 뱉어냈다:
“류……류……”
환각 중에 희색이 만면하고 멋지고 사람의 이목을 끄는 류쉐이창이 서서히 유리문을 열고 두 팔을 벌리고 미소를 지으며 맞이하러 오고 있었다……
유리문이 또 다시 서서히 열리며 류쉐이창의 얼굴에 찬란한 미소가 지어지더니 두 팔을 벌리고 경쾌하게 걸어왔다.
주오슈윈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엄마!” 류뿌가 소리를 치고, 어린 손으로 재빨리 입을 막았지만 영롱한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연속이어 눈에서 솟구쳐 온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노래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고, 엄마가 부른 혁명가곡이 약했다가 커져가더니 점점 유쾌하고 열렬해졌고, 분방하고 우렁차지더니 모든 기세를 압도하여 빈방에 울러 퍼졌다……
장중하고 무거운 애도의 음악 소리가 서서히 올라왔다. 주오슈윈의 유해에는 상장(喪章)이 걸쳐졌고, 의미심장한 눈빛은 영원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듯 하였다.
조문실에는 무수한 화환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고, 새까맣게 군중들로 가득 찼다. 사자는 측백나무와 선화더미에 편안히 놓여져 있고, 유해 상에는 선홍의 당기(黨旗)가 덮여 있었다. 시위서기 쏭이푸를 대표로 하는 조문단이 사자의 유해를 향해 세 번 허리를 굽혀 절을 한 뒤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서서히 이동하는 사자의 유해를 향해 이별을 고했다……
울어 눈이 충혈된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은 비통하여 절규하려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유족석상에 서 있었고, 무감각하게 사람들의 조문을 받고 있었다……
조문하는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루었고, 간부․직원․시민․학생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화장터의 시신을 화장하는 화로 옆에 비통하여 절규하려는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은 분리간의 철책난간을 흔들며 목이 쉬어라 울며 소리쳤다……
사자의 유해는 활차 위에 평평히 놓여져 있었고,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영구차는 시동을 켜고 긴 궤도를 따라 활활 뜨겁게 타오르는 화장하는 화로 쪽으로 미끄러지며 불바다로 들어갔다……
류뿌가 울다 혼절하자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가득한 쏭이푸가 품안에 꼭 안아주었다……
산은 광활하고 계곡은 고요하며, 새들은 지저귀고 꽃은 만발하여 향기로 가득 찼다. 푸르른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장엄하고 엄숙한 남산혁명국립묘지를 빙 두르고 있었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은 열사들의 영령과 함께 있었다.
팔에 상장을 찬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은 누나 류뿌의 인솔 하에 모친의 묘지에 엄숙하게 서서 직접 채집한 야생화 한 다발을 올렸다. 그들은 묘비에 새겨진 모친의 유상을 응시하고 있었고, 하루 밤 사이에 많이 성숙해진 듯 하였다. 가장 어린 동생 류웨이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먼 곳에서 자동차가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급촉한 발걸음 소리를 따라 막 국외에서 돌아온 류쉐이창이 급히 아내의 묘지에 달려왔다. 그는 갑자기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이 낯설고 싸늘한 눈빛으로 말없이 그를 주시하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순산 발걸음을 멈췄다.
부친과 아이들이 마주 쳐다보며, 침묵하고 있었다.
이 뼈에 사무치도록 잊기 어려운 광경은 동년의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의 기억 속에 깊이 숨겨졌다……

시위 본관에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였고, 비서 간사들은 긴장되게 자신의 일을 바쁘게 하고 있었다.
류뿌의 뒷그림자가 침착하게 복도 깊은 곳에 있는 시장사무실로 걸어갔고, 아주 멀리서도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아버지가 하급직원을 나무라는 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은 이렇게 수장에게 조수를 합니까? 예? 내가 가기 전에 몇 번이나 설명했던 일을 왜 줄곧 미루고 하지 않은 겁니까? 예? 당신 그 머릿속에는 하루 종일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는 겁니까? 당신의 직위를 해고하겠소!”
류뿌가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자, 비서 왕루이가 손에 서류 한 뭉치를 들고 꼿꼿이 택상 앞에 서서 머리를 숙이고 훈시를 받고 있는 것이 보였고, 시장은 짜증내며 탁자를 치며 명령하며 말했다:
“자네 바로 시말서 쓰게! 바로 여기서 쓰게!”
왕루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한쪽 탁자에 앉았다.
아버지 된 사람이 갑자기 문에 서있던 딸 류뿌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가 이곳에 왜왔어? 지금은 근무시간이야, 볼 일 있으면 집에서 얘기해!”
류뿌는 마음을 졸이며 얼굴이 붉힌 채 앞으로 걸어와 부친에게 한 장의 선언문을 읽기 시작했다: “성명서: 부친 류쉐이창은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성과 외도하여 무정하게 모친을 병사케 하고 가정을 파탄시켰기 때문에 우리 뿌․얼․스․웨이․커 형제 네 사람은 심사숙고한 끝에 지금부터 류쉐이창과 정식으로 부자의 연의 끊기로 결정한다. 이에 특별히 성명한다. 주오슈윈의 자녀: 류뿌․류얼․류스․류웨이……사인하세요!”
류쉐이창이 대노하며 성명서를 빼앗아 갈기 찢어 바닥에 내던져버렸다: “정말 황당하군!”
류뿌는 놀라 두려워하며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당신……”
류쉐이창은 사나운 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누가 너희들에게 이런 거 하라고 시켰어? 응? 이건 분명히 뒤에서 누가 사주한거야? 누구야?”
류뿌는 용감하게 얼굴을 치켜들고 부친을 바라보았다: “우리들이요”
왕루이가 다소 난감한 듯 일어서서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류 시장님, 저……?” 류쉐이창이 성가신 듯 손을 내젓는 것을 보고 급히 서류를 집어 들고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나와서 방문을 닫았다.
아버지와 딸 두 사람이 식식거리며 잠깐 침묵 하더니, 류쉐이창은 낙심한 듯 맥없이 가죽의자에 털썩 주저앉고는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류뿌는 감정 복잡하게 아버지를 바라보다, 그녀는 순간 부친의 살쩍에 살짝 희고 눈을 찌를 듯 한 백발을 발견하고는 눈가가 단번에 촉촉해졌다……
류쉐이창은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뿌야, 넌 이미 철이 들었으니까, 너에게 해줘야할 말들이 있어……내가 인정하지, 너 엄마에게 미안해, 나와 너 엄마 간에는 이미 어떤 부부간의 얘기할만한 감정이 없어……그녀는 혁명을 했던 사람이지, 뜨거운 불덩이처럼, 강한 쇳덩이처럼, 아주 강하게 통치하려는 폭군처럼 말이야……난 견딜 수 없었어. 나도 아주 강하게 통지하려는 사나이야, 난 여성의 숭배와 따뜻함이 필요 했어……”
류뿌의 눈물이 서서히 눈가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그녀는 아버지의 고백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내심이 진실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아버지와 영혼의 대화를 할만한 자격과 능력이 없었고, 그녀는 어쨌든 아직 미성년의 소녀였다.
류쉐이창은 이마를 짚고 여전히 혼자 중얼거리듯 하소연 하며 말했다: “그녀는 다정하고 존경할만한 어머니일지는 몰라도 그녀는 분명히 온유하고 다정한 아내는 아니었어. 그녀는 나보다 두 살 많지, 당령(黨齡)도 나보다 두 살 더 길어, 더욱 사람들이 경외하는 맏언니 같아……”

……해방전쟁 첫 해, 류쉐이창의 부대는 완전 미제장비들로 무장한 국민당 정예군과 대치하며, 전무후무한 치열한 격전을 치렀고, 며칠 밤 동안 귀를 멎게 하는 총과 포탄소리 속에 보내면서, 전투영웅 류쉐이창은 완전 공산당원으로 조직된 돌격대를 이끌며 정면으로 적의 전선을 돌파하여 본 부대에 총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로 맹세하였다. 출발 전 정치위원으로서 맏누님 주오슈윈은 쉐이창 옆에 서서 주먹을 휘두르며 전투 전에 교육을 하였고, 그녀는 허리에 무장띠를 메었고 소리는 낭랑하고 힘이 있었다. 쉐이창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힐긋 몇 번이나 보며 내심으로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갑자기 적 진지에서 그들이 모여 있는 산 쪽으로 포탄을 맹렬하게 발사하자, 젊은 돌격대장은 급히 전사를 지휘하며 산개시켰다. 바로 이 순간 주오 누님이 세차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류쉐이창! 엎드려! ―” 그는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모든 돌보지 않던 그 여인에 의해 덮쳐 쓰러졌다. 꽈당! 포탄이 폭발하자, 흙과 돌들이 솟구치며 온 하늘에 날렸다. 주오 누님은 류쉐이창의 몸을 꽉 누르고 있었고, 그가 힘을 다해 일어나고서야 그녀가 어깨에 부상을 입고, 진홍색의 피가 셔츠의 반을 물들였음을 알게 되었다! ……“주어 정치위원님! 주오 누님, ……빨리, 들 것! 후방 응급대로 보내! ……” 류쉐이창은 크게 소리치며 지휘하며 주오슈윈을 응급조치를 하였고, 그는 누구보다도 이 여인이 방금 용감하게 덮쳐 그의 생명을 구했고, 이것은 두 번째였음을 알고 있었다. 들것에 실려 나갈 때 남자는 얼마간의 감정이 일었으며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주오 누님, 몸조리 잘 하십시오, 전쟁 끝나면 찾아뵈겠습니다!” 여인의 창백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그것은 보기 드문 대승리였고, 류쉐이창이 이끄는 돌격대는 특등공을 세웠고, 그는 부대장에게 야전사령부에서 거행하는 공로축하회에 참석할 것을 위탁하고 자신은 주오슈윈이 요양하는 작은 마을에 갔다. 농가의 큰방에서 한 쌍의 남녀는 사랑을 느꼈고, 쉐이창은 얼굴을 슈윈의 가슴에 묻고는 여성의 따뜻함을 느꼈고, 동시에 자애로운 모애를 얻었다……
적이 쏜 그 포탄은 그들의 혼사를 재촉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 전우간의 감정은 많은 것을 덮어주었고, 그들은 당시 서로 행복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포연이 사라진 뒤, 틈이 서서히 드러났고, 너무 갑작스러워 막을 수 없을 정도의 인생비극으로 옮아갔다.                  
그가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딸이 언제인지 모르게 이미 살그머니 사무실을 떠났다……
류뿌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본관 계단을 내려오는데, 비서 왕루이가 뒤에서 따라와 그녀를 불렀다.
“류뿌!” 왕루이는 그녀를 동정하듯 바라보며 위로하며 말했다. “아빠에게 화를 내지마, 그는 일도 바쁘고 고민할 것도 많아, 네가 이해해야 돼……참, 류 시장님 오늘 저녁에도 연장근무 하실 거야, 그때 가서 밤참 좀 사무실로 가져와……”
류뿌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왕루이의 웃음 가득한 그 야윈 얼굴을 바라보며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그날……비서님께서 전화 하셨어요?”
왕루이는 단언하지 않고 쌀쌀하게 한번 웃고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화제를 둘렸다: “네 아빠와 친팡의 혼인보고 위에서 이미 비준했어. 너 모르고 있었지? 너네 지금 살고 있는 그 집 해방 전에는 친팡 네의 공관(公館)이었지. 지금, 자본가의 언니 친팡이 또 시장 부인의 신분으로 다시 그녀가 일찍이 산 적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지……”
왕루이는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으며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류뿌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삶이 도처에 무서운 함정들로 충만한 것 같았고, 고립무원의 소녀 류뿌는 누구에게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그녀는 울었다……
시장 류쉐이창과 외교부 사무실의 통역원 친팡의 결혼식은 시정협(市政協) 강당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초청에 응해 출석한 각계 인사와 유명인들이 식장에 가득하였고, 널찍한 결혼식장은 오색찬란하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으며, 특별 초청한 악대가 경쾌하고 즐거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 정말 겨울 산성의 가장 뜨거운 결혼식이라 할만 했다. 약간 세심한 당정간부들은 이번 혼례에 반드시 출석해야 되는 시위 서기 쏭이푸가 식장에 오지 않았음에 주의하였다. 그는 류쉐이창의 상사 일 뿐만 아니라 그와 환난을 함께 했던 전우이기도 하였다. 그의 불참은 시장의 혼인에 어느 정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호탕하고 시원하며 자기주장이 강한 류쉐이창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한결같이 밝은 낯빛으로 도처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신부 친팡은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 사람마다 그와 그들의 혼사를 몰래 귀에 입을 대고 수군수군 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 하였다. 그녀의 밝고 깨끗한 앞이마에는 가는 땀이 맺혀있었고, 류쉐이창이 수시로 확고한 눈빛으로 그녀를 지지하지 않았다면 정말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줄곧 그녀와 류쉐이창의 연애와 혼사에 대해 줄곧 마음속에 두고 있던 그 청년 역시 사람들 속을 비집고 왔다 갔다 하여 그녀를 안절부절 하게 만들었다.
류쉐이창의 네 아이들은 한 명도 혼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 그는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이 일을 알려주자 류뿌와 그녀의 동생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눈을 부라리며 적의를 크게 드러냈다. 친팡이 말을 더듬으며 그들에게 힘껏 아내로서 계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감정이 복받치는 곳을 말할 때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그녀를 동화속의 요괴나 요괴할멈 정도로 여기는 같아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장황한 혼례식이 마침내 끝나고, 주례가 신혼 방에 몰려가 놀리는 속례(俗禮)를 선포하자, 많은 사람들이 한바탕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팡은 어제의 일로 근심걱정에 휩싸였다. 류쉐이창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샤오팡, 괜찮아, 좋아질 거야. 얘들 아직 어리잖아, 걔들 우리의 감정 이해라지 못해, 날 위해서라도 마음 넓게 가져줘, 억울하더라도 좀 참아……” 친팡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몸을 남편의 어깨에 기대고서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독립된 화원의 그 서양식 건물에는 즐거운 분위기가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류쉐이창과 친팡은 상의해서 침대시트와 이불만 새로 사 침실을 간단하게 꾸몄다. 친팡은 결혼식에서 사탕 한 봉지를 가져와 류뿌와 그녀의 동생들에게 나눠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방문을 열자 응접실은 쥐죽은 듯 조용하였고, 아이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친팡이 말없이 사탕을 다기위에 놓아두자, 류쉐이창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뿌야! 뿌야! ……” 한참 지나서, 한쪽 방문이 열리며 류뿌가 문에 서서 무관심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생들 모두 자요, 전 숙제하고 있었어요.” 류쉐이창은 노기를 띠었지만 화를 내기에는 좋지 않다고 여겨 웃으며 말했다: “류야, 친팡 엄마가 사탕 가지고 왔어, 좀 먹어.” 류뿌가 친팡에게 힐끗 백안시하며 말했다: “아니요, 먹고 싶지 않아요.” 말을 다하고 방문을 “꽝”하고 닫아버렸다.
“너! ……” 류쉐이창은 달려가 문을 두드리고 싶었지만 친팡이 그를 붙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쉐이창, 당신 좀 봐요, 방금 나보고 마음 넓게 가지라고 했잖아요. 가요, 우리 올라가요……”
여인의 온순하고 다정한 눈빛은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고, 그는 한숨 내쉬며 그녀의 팔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위층으로 올라갔고, 처음 신랑을 위한 마음에 다소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사방에서 어린 얼굴들이 방문에서 나와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침실로 들어오자 류쉐이창은 친팡을 품에 껴안고 그녀에게 진하게 한번 키스를 하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자기야, 이번에 됐다, 우린 진정한 부부가 됐어, 침대에 올라가도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게 됐어.” 신부의 양 뺨이 빨갛게 붉어지고, 아름다운 눈을 지긋이 감고는 중얼 중얼거리듯 말했다: “쉐이창, 오늘 같은 날이 있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어, 소중히 여기도록 해요……”   
그들은 키스를 하며 침대 가에 앉았고, 순간 몸이 달아오르며 급박하게 옷과 바지를 벗겼다. 신랑은 완전히 벗은 신부의 허리를 끌어 당겨 안고 안정되게 침대에 눕혔다……
“아아! ―” 신부가 놀라 소리치자 허리가 어떤 자상을 받은 듯 혼란스럽게 들렸고, 두 손으로 남자의 목을 안고 온몸을 떨었다.
침대 위에는 축축한 냉수가 가득 뿌려져 있었다.
누가 이런 짓궂은 장난을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신혼부부는 서로를 쳐다보며 서로 껴안고 나무의자에 앉아 물에 흠뻑 젖은 새 침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1957년 초여름, 반우파운동(反右派運動)이 시작되었다.
시위시관은 대자보의 바다로 변했다. 복도 안, 뜰 내, 도처에 우파분자가 맹렬히 진공하는 것을 반격하는 대자보가 내걸렸다. 그중 류쉐이창의 이름도 불쑥 눈에 띠고 자주 보였으며, 어떤 곳은 진한 붉은 색의 “×”로 찍혀져 있었다.    
확성기에는《인민일보》의 사설을 고음으로 방송하고 있다:《이것은 왜인가?》……“‘공산당의 정풍운동을 돕자’라는 명분 하에 소수의 우파분자들이 마침 공산당과 노동자계층의 지도권에 도전하고 있다, 심지어 공공연히 공산당은 물러나야 한다고 크게 떠들고 있다. 그들은 이 시기에 편승해 공산당과 노동자 계층을 전복하고 사회주의의 위대한 사업을 전복하여 역사를 후퇴시켜 자산계급독재정권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사실은 혁명승리 이전의 반식민지 상태로 후퇴하여 중국인민을 다시 제국주의와 그 주구의 반동통치하에 두려한다……”
뿌․얼․스․웨이․커 형제 중에 가장 어린 동생 미커가 곧 어머니 친팡의 배에서 태어나려고 할 때 순식간에 몰아친 폭풍우가 엄습해 왔고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시장 류쉐이창은 생활의 정점에서 끝이 없는 심연으로 추락하였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우파투쟁 중에 성․시위원회는 그와 자오 부 성장(省長)을 우두머리로 하는 “조류태행파반당집단(趙劉太行派反黨集團)”을 폭로하였다. 명성이 자자한 이 고급산부의 정치생명은 하루 만에 갑자기 기묘하게 끝나버렸다……
저녁 무렵. 시커먼 구름이 뿌연 하늘을 덮자, 폭우가 오기 전의 소리가 분명치 않은 번개가 멀리서 가까이서 울리고 있었고, 번개는 수시로 어두운 모퉁이에서 빛나고 있었고, 지면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한 차례 한 차례 몰려왔다.
임신한 친팡은 퇴근 후 화원식 작은 건물의 철책난간 앞에 와서 갑자기 집 안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음을 알고,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바짝 긴장하며 무거운 몸을 끌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으로 들어갔다. 요 며칠 정치적 풍랑이 거세게 덮치면서 그녀에게는 걱정스런 마음이 많이 들었다.
널찍한 응접실안에는 류뿌와 동생 세 명은 등을 꺼놓고 소파에 앉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친팡은 문 옆에 스위치를 더듬어 켜자 장식등이 순간 훤하게 빛났다.
10살 된 류얼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뭐하는 거예요? 꺼요!”
친팡은 잠깐 벌벌 떨고서, 급히 전등을 껐다.
어두컴컴한 광선에서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은 침묵하고 있었고, 차갑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 계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높게 융기된 복부 역시 그들의 눈을 아프도록 찌르고 있었다.
친팡은 멋쩍어하며 한 마디 물었다: “돌아왔니? ……아빠는?”
형 누나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는데, 5살 된 류웨이가 아무래도 천진하고 어려서 그런지 대답하며 말했다: “아빠 혼자 위층 방에 계세요, 식사도 안하시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둘째 형 류얼이 한 대 때리자 그는 바로 입을 닫아버렸다.
친팡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이층 곳곳은 컴컴하여 위기를 숨기고 있는 듯 하였다.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울렸다.
친팡은 순서대로 거실과 침실 몇 칸의 방문과 등을 켜도 남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급히 꽉 잠겨있는 서재의 문을 두드리고는 나지막이 소리쳤다: “쉐이창! 쉐이창!”
방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였고, 어떤 움직임조차 없었다. 여인은 그런 적막이 끝이 없는 심연처럼 자신이 마침 빠르게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친팡은 열쇠로 방문을 열었고, 문은 안에서 잠겨져 있어 초조하게 소리쳤다:
“쉐이창, 문 열어요! 친팡이예요!”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나자 친팡은 급히 열쇠로 방문을 쑤셔 통하게 하고, 전등을 켰다. 그녀는 놀라 아연해졌다―
류쉐이창이 산발을 하고 흩트러진 옷차림을 한 채 넋을 잃고 거대한 사무책상 뒤쪽의 가죽의자에 녹초가 되어 앉아 기괴한 눈빛으로 아내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책상위의 유리판에는 종이 한 장과 펜 하나 정교하고 영롱한 브라우닝식 권총이 놓여져 있었다!
친팡은 무서워하면서도 다정하게 물었다: “쉐이창, 어떻게 된 거예요?”
류쉐이창은 갑자기 “흥흥”하며 몇 마디 냉소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흥, 내가 우파가 되었어?! 정말 웃기는군! 나 류쉐이창 16살 때 혁명에 참가했어, 24살 때 현위서기, 29살 때 행정공서 전문직원, 35살 때 400만 인구를 이끄는 시장이 되었건만 ‘우파’라니, 내가 우파가 되었다니? 하루아침에 죄인 됐어?! 제기랄 이게 무슨 논린가?!”
친팡이 위로하며 말했다: “급해하지 마요, 일이 분명하게 밝혀질 거예요……”
류쉐이창은 격분하며 탁자를 쳤다: “일은 본래 아주 분명했어! 바로 그 패거리들이잖아, 자기편이 아니면 배척하고, 운동으로 사람을 치고, 그들의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거잖아, 나와 자오 부 성장을 무슨 ‘반당집단’으로 무고하는가 말이야! 근거가 뭐냐 말이야?! ……안돼! 당 중앙 마오 주석에게 편지 써야 되겠어! 나야말로 한번 봐야겠어, 도대체 누가 진정한 반당집단인지 말이야!”
친팡은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 눈물이 흘러나왔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천천히 그의 곁에 다가왔다.
류쉐이창은 분한 느낌이 들어 종이에 힘을 주고 쓰다, 몇 글자 쓰지도 못하자 사납게 펜을 던져버리고 일어서서 권총을 집어 들고 총구를 자신의 머리로 겨누고서는 절망한 듯 소리를 질렀다: “안 써! 난 선혈과 생명으로 나의 무죄를 증명하겠어! 그들이 내 시체를 밟고 위로 올라 오라지! 나 류쉐이창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어! 마오 주석 만세! ……”
친팡은 놀라 달려가 그를 안고 울며 소리쳤다: “쉐이창! 이러면 안돼! ……안돼! ……”
류쉐이창이 몸부림치는 가운데 문밖에서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서 왕루이가 두 명의 보위간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비굴하고 굽신거리는 예전의 태도를 바꾸었고, 번뜩거리는 눈빛은 우쭐한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과감하게 명령하며 말했다: “빨리, 총 뺏어!”
두 명의 보위간부는 나아가 다짜고짜 총을 뺏었다.
류쉐이창은 낙심한 듯 그곳에 서 있었고, 몸은 끊임없이 떨고 있었다.
왕루이는 새파란 야윈 얼굴을 근엄하게 짓고는 종이 한 장을 꺼내 선포했다: “류쉐이창, 나는 현재 당신에게 시위의 결정을 선포한다: ‘원(原) 시위 제2서기․시장 류쉐이창 동지는 중대한 착오를 범하여, 시위상위회(市委常委會)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하였으며, 성위(省委)의 서면비준을 통해, 류쉐이창 동지는 지금부터 직무를 정지하고 성으로 돌아와, 격리하여 심사를 받고 자신의 반당죄행을 밝힌다.’ 똑똑히 들었나?”   
류쉐이창은 격분하여 이를 갈고 식식거리며 가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왕루이는 차갑게 친팡을 힐끗 보고는 명령했다: “류쉐이창, 빨리 짐 챙겨, 우리와 갑시다!”
친팡은 의외인 듯 물었다: “지금 바로 가요?”
왕루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간다!”
한 차례 혼란한 발걸음 소리를 따라 류쉐이창은 조촐한 짐을 들고 왕루이 등의 사람들에 압송되어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왔다.
류뿌와 세 명의 동생들은 바짝 기대에 응접실 소파에 앉아 마음 심란하게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류쉐이창은 어린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을 바라보며 내심 순간 뜨거운 파도가 솟구쳐 올라 눈가가 붉어지더니 걸음을 멈췄다. 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낮은 소리로 왕루이에게  한마디 했다: “잠깐 기다리시오” 몸을 돌려 모친의 침실로 들어갔다.
백발이 성성하고 발이 작은 모친은 마침 침상 가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태연자약하게 철제 실타래를 돌리며 마사를 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밖에 무슨 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예 모르고 있는 듯하기도 했고, 모든 상황을 분명히 알고 있는 듯 했다.
류쉐이창은 쿵하며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어머니! 저 갑니다. 부디 몸조심 하십시오……”
모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담담하게 아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속담에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했어, 무슨 대단한 일이 있다구 그래? 일본 놈들이 쫓아오는 것보다 무서워? 아범아, 넌 어려서 몸이 약했어, 어깨는 조금만 무거워도 감당이 안됐지. 사회에 나간 지 오래되었어도 어째든 가정을 이루었잖아, 위에는 어른이 아래는 아이들이 있지만 밤에 편안하게 잠을 잔 적이 없어, 너 거꾸로 한번 자세히 생각해봐! 사람들이 ‘아들이 멀리 떠나면 어머니는 걱정한다’고 그러잖아, 너도 곧 40이 다 됐는데, 엄마는 네가 사람 된 도리를 모를까 걱정이다……”
류쉐이창은 만면에 눈물을 흘리고, 모친의 가르침을 공경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모친은 몸을 돌려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다,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되는대로 살려 무나! 나도 곧 죽을 목숨이니까, 마음속은 그래도 집안의 가구와 묘를 생각하고 있지, 아무튼 네 아빠를 따라 가련다. 넌 나를 화장하지 말거라……가거라!”
“어머니―!”
류쉐이창은 흐느껴 울며 절규하며 순간 오체를 땅에 부딪치며 “꽝, 꽝, 꽝!”하며 모친에게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는 일어서서 눈물을 뿌리며 왕루이를 따라 집을 떠났다.
지프차가 전 시장을 데리고 갔다.
자동차 소리가 점점 멀리 사라지고, 초여름의 번개가 번뜩이는 가운데 빈번히 울렸다. 마사를 꼬고 있던 모친은 고개를 천천히 돌렸고,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모친의 얼굴에는 이미 눈물 흔적으로 가득했다……   

창밖의 양광은 밝고 눈부셨고, 매미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교실 안은 조용하였으며, 학생들이 “쓱쓱” 열심히 필기하는 경미한 소리만이 들렸다. 칠판에는 분필로 “기말고사 작문문제―우리 아빠”라고 큼직하게 쓰여 져 있었다. 엄숙하고 완고해 보이는 한 안경을 쓴 여교사가 강단에서 시험을 감독하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류얼은 마음이 허전하고 무료하여 천장을 바라보며 정신이 나간 듯 있었고, 눈앞의 시험지는 백지 상태였다. 조금 후 그는 시험지에 마음대로 날려 쓰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짓궂은 장난을 한 듯한 음흉한 미소가 띄었다.
여고사가 살짝 류얼에 다가오더니 미간을 점점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류얼의 답안지를 거두고는 식식거리며 교탁으로 돌아가 전체 학생들에게 그 답안지를 보여줬다:
“학우 여러분! 여러분 류얼 학우의 작문 답안지를 감상하세요, 나는 류얼 학우가 유급될 거라고 생각이 돼요……”
류얼은 답안지에 추하게 생긴 한 장교가 창이 큰 모자를 쓰고 팔자수염을 늘어뜨리고 견장에는 무수한 금별이 수두룩 박힌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옆에는 “우리아빠는 대만(臺灣)에 있어요.”라고 써져 있었다.
전체 학생들은 장내가 따나가도록 웃었고, 학생들은 류얼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류얼은 약간 우쭐해하는 듯 했고, 역시 전혀 개의치 않고 웃었다.
여교사는 화가 나서 물었다: “류얼, 너 아빠 대만에 계시니?”
동구아(冬瓜)라는 별명을 가진 한 대머리 남자아이가 끼어들며 말했다: “선생님께 보고합니다, 걔 아빠는 골수 우파입니다!”
류얼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사납게 대꾸하며 말했다: “헛소리! 너 아빠야말로 골수 우파잖아!”
동구아도 일어서서 우쭐거리며 선포하며 말했다: “우리 아빤 중국인민해방군 소장이며 군단장이야, 반동파만 잡지!”
류얼은 열 받았다: “니가 바로 반동파야!”
동구아도 지지 않았다: “넌 우파 똘마니겠네!”
“반동파!”
“우파똘마니!”
두 아이는 말다툼 할수록 더욱 격렬했고,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해!” 여교사가 교편으로 교탁을 치며 제지하며 말했다. “니들 뭘 떠들어? 교실에서 싸우면 안 된다는 것 몰라? 정말 기가 막혀! ……니들 둘 시험 치지 마, 나가!”
동구아는 식식거리며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는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류얼은 굳은 얼굴로 책가방을 챙기고 난 뒤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가버렸다.
여교사는 화가 치밀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교탁을 치며 말했다: “뭘 봐! 계속 시험 쳐!”
학생들은 웃음을 참고, 머리를 숙이고 작문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황혼녘, 교외 쪽에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건축공사장 도처에는 벽돌, 목재, 모래와 시공기계들이 놓여져 있었다.
류얼은 책가방을 메고 석양 아래에 아무도 없는 공사장을 찾아다니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살짝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스토우, 스토우!”
류얼이 담 뒤쪽에서 그에게 손을 흔드는 것만 보였다.
류스는 류얼 앞으로 달려갔다: “형, 무슨 일이야?”
류얼은 런닝을 벗어버리고, 탄탄한 가슴을 드러내며, 한바탕 단단히 벼르고 말했다: “동구아  그놈 버릇 고쳐놔야겠어!”
류스가 물었다: “걔가 왜?”
“그 자식―!” 류얼은 마저 하려던 말을 삼키고는 무의식중에 학교 쪽으로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정신을 진작시키고 말했다: “쉿! 그 자식 와!”
형제 두 사람은 담 뒤에서 얼굴을 살짝 내밀고 긴장하며 살펴보았다.
류스는 불안해하며 말했다: “형, 걔들 무리지어 다녀……”
류얼이 말했다: “겁내지 마! 내가 먼저 갈게, 넌 엄호해!”
동구와와 옛 군복을 입은 남자아이들이 웃으며 걸어오자, 류얼은 단기필마로 앞으로 나아갔다.
동구아가 놀렸다: “오호, 우파똘마니! 어쩔 건데? 인정하지 하겠다 이거지? 아니면 우리 해방군에게 투항하겠다는 거지, 하하……”
우월감이 아주 강한 그 남자아이들은 놀리며 웃기 시작했다.
류얼은 짐짓 두려운 모양을 하며 서서 말했다: “좋아, 내가 항복할게, 내가 항복할게……”
동구아가 입을 삐죽거리며 크게 웃으며 득의양양해하는 순간 류얼이 머리를 숙이고 앞으로 달려 나가 동구아를 머리로 받아버리자 그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뒤로 벌러덩 나자빠져버렸다.
그 사내아이들은 고함을 지르더니 류얼을 에워싸고 가차 없이 마구 때렸다.
류얼은 싸울 수가 없어, 크게 소리쳤다: “스토우! 스토우! ……”
“야―!” 류스가 아주 긴 고함소리를 지르며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와서 상대방을 겨누고 마구 휘둘렀다.
상대방이 혼란한 틈을 타 형제 둘은 포위를 뚫고 모래사장으로 달려갔고, 동구아와 그의 친구들은 힘을 다해 쫓아왔다……
이로 쌍방은 모래사장에서 격렬한 “모래전”을 펼쳤다.
동구아 쪽이 아무래도 사람이 많고 기세가 맹렬하였으며, 분산하여 공격하며 싸우면 싸울수록 용감했다. 류얼의 눈은 불행히도 모래에 가려 전투할 인원이 줄어들어 형제 둘은 동구아와 친구들에게 몰살되었고, 모래사장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치고 박고 싸우며 머리가 깨져 피가 나도록 맞았다……
누나 류뿌가 제때 “현장”에 도착하여, 한 덩어리가 된 남자아이들을 힘껏 떼어 놓고는 엄하게 훈계하며 말했다:
“니들 찔리는 게 없어? 붉은 스카프를 메고 있으면서! 니들 자신을 봐봐, 소년대원 같은지 말이야?!”
동구아와 친구들은 류뿌의 팔에 소년대 대대장 안장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식식거리기 만할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쌍방 모두 “상처”를 입고, 옷차림은 엉망이 된 채 꾀죄죄한 얼굴을 하고 있어 일군의 떼거지 같았다.
류뿌가 두 동생을 끌고 가자, 류얼은 따르지 않고 고개를 돌려 동구아 쪽으로 호되게 욕을 해댔다.
동구아와 사내아이들은 고개를 돌려 모래사장 꼭대기에 서서 멀리 사라져 가는 류뿌와 그의 동생 쪽으로 소리 높여 노래했다―

염치없는 사람 왔네,
그 이름은 이승만,
비행기 타고, 폭탄 던져,
수많은 인민 죽이네;
사람들은 그에게 피땀을 배상하도록 하네,
배상 못하면 질솥 쳐야 한다네,
둘째 날, 내가 와서 보니, 
질솥이 흐물흐물 해질 정도로 쳤었네.

달은 허공에 떠있고, 은쟁반 같이 밝았다. 미풍이 나뭇잎을 살짝 불자 바다파도가 부드럽게 모래사장을 씻어 내려가는 듯 했다……
후덥지근하며 썰렁한 2층 침실에는 친팡이 등 하나만 켜놓고 세심하게 시부모님의 검은 코르텐 새 솜옷을 깁고 있었다. 서글픈 마음이 복받쳐 올라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다.
발이 작고 백발이 성성한 노모가 유령 같이 침실 문에 나타났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불렀다: “어멈이냐?”
친팡은 눈물을 닦고 일어서서 노모를 부축하였다: “엄마, 어―어머니! 왜 올라오셨어요?”
노모가 침대 가에 앉고는 말 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친팡을 아래위로 훑어보자 친팡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머니, 솜옷 다 깁었어요, 겨울에 입으실 수 있을 거예요.”
노모는 손을 뻗어 친팡의 배를 어루만져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명령하며 말했다: “이리 오렴, 누워, 우리 손주 소란 피우는지 한번 들어 보자구나?”
노모는 몸을 숙이고 귀를 며느리의 배에 대고 빙그레 웃으며 듣더니 아이가 소꿉놀이 하듯 좋아하였다.
“음……분명히 아들이야, 이렇게 힘껏 떠드는 것 좀 봐! 에이, 내가 네게 미안하구나, 어멈아, 몸 푸는데도 있어 줄 수가 없구나……” 노모는 말을 하다 갑자기 목 메이는 소리를 냈다. “나 내일 일찍 떠난다……”
“어머니……” 친팡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뜨거워져서 노모의 품에 안겼고, 억울한 듯 눈물을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 아이가 태어나서는 안 되는데……”
노모는 며느리를 꼭 껴안고 그녀의 미끈한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얘야, 나 널 미워했었어. 슈윈이 나와 익숙했지, 아이들도 그녀를 떠날 수 없었구……내가 보기에 넌 힘들게 살 팔자야, 아범과 함께는 어떤 복을 누리지 못해, 죄를 입을까 두려워. 내가 너에게 부탁할게, 어른이 얼마나 큰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아이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돼. 에이, 계모가 감당하기 어려울 거야, 널 힘들게 하는구나. 참고 견디려 무나……”
친팡은 눈물 빛이 투명하고 맑게 빛나는 얼굴을 들었다: “어머니, 제 몸이 안 좋아요, 터미널까지 못 바래다 드릴까 걱정이예요……”
노모는 연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들은 여자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거야! 아들이던 딸이든 하나를 남겨, 늙었을 때 의지할 것이 있으면 마음이 허전하지 않게 되잖아……”
친팡이 울며 말했다: “어머니, 가지 마세요……”
“바보 같이……얘야, 넌 보기 드문 미인이야. 아범 여복은 있어, 여복은 있어, 하하……더군다나 넌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얘야! 넌 내 딸과 같아, 마음이 아파……”
노모는 어깨를 떨며 울음소리를 냈다.
친팡은 노인의 품안에 안겨 슬픈 나머지 죽고 싶은 심정으로 울었다……

벨소리가 울리자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은 할머니를 부축하며 사람들을 따라 터미널 플랫폼으로 들어와 좌석이 있는 열차를 찾았다. 자리에 앉자 노인네는 손자들을 빨라 가라고 다그치며, 기차가 갑작스레 떠날까 걱정이 되었다.
류얼은 열정적이고 경험이 풍부한 여 열차장을 찾아 그녀를 할머니 앞까지 데리고 와서 소개하며 말했다: “이쪽은 우리 할머니세요, 할머니, 이쪽은 열차장님이세요, 이 분들이 가시는 곳까지 보살펴 드릴 거예요.”
여 열차장은 노인의 손을 잡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마음 놓으세요, 제가 책임지고 타이위엔(太原)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노모는 기쁘게 대답했고, 열차장은 급히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류뿌와 세 명의 동생은 노인 곁에 기대어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물었다: “할머니, 좀 계시다가 돌아오세요, 예?”
출발을 알리는 예비종소리가 울리자, 열차는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노인은 급해서 연신 손을 흔들며 말했다:
“빨리 내려가, 내려, 얘들아! 빨리”
아이들은 열차를 떠나 하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플랫폼에서 할머니가 계시는 좌석의 창문을 찾았을 때 갑자기 노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음을 발견했다.
“할머니……”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치며 말했다.
할머니의 입술이 실룩거렸고,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가득 고여 있었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기적 소리가 한번 길게 울리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할머니의 눈물이 “주룩”하며 흘러내렸고, 차창에서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내밀고는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네 아빠를 용서해! 용서해줘……”
“할머니! ……”
아이들은 흐느껴 우는 소리를 냈고, 눈물이 그들의 두 눈을 모호하게 했다……
정거장 방송국에서는 기쁘고 격앙된 행진곡 음악을 틀어주고 있어, 노인네의 마지막 말은 그 속에 묻혀버렸다.
바퀴는 쨍강쨍강 울리고, 기적을 크게 울렸다. 녹색의 열차는 자애롭고 선량한 할머니를 데리고 갔고, 뿌․얼․스․웨이․커 형제들의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한 동년도 가져갔다.

'中文史哲 > 中國小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볼세비키 형제들(6)  (0) 2009.02.11
볼세비키 형제들(5)  (0) 2009.02.11
볼세비키 형제들(4)  (0) 2009.01.28
볼세비키 형제들(3)  (0) 2009.01.28
볼세비키 형제들(2)  (0) 2007.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