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곽자의를 대신한 임회왕 이광필(臨淮代汾陽)
곽자의(郭子儀)가 하양(河陽)에서 수도 장안(長安) 조정으로 돌아가게 되자 이광필(李光弼)이 그를 대신하여 군대를 통솔하게 되었다. 옛 진영에 옛 병사와 옛 깃발 그대로였지만 이광필이 한 번 호령하자 모두 정예병사들로 바뀌었다고 한다.
(郭汾陽自河陽入, 李太尉代領其兵. 舊營壘也, 舊士卒也, 舊旗幟也, 光弼一號令之, 精彩皆變.)
1) 곽분양(郭汾陽): 당(唐)의 대장 곽자의(郭子儀; 697-781년)이며, 화주(華州) 정현(鄭縣) 사람이다.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에 임명되었을 때, 하북(河北)에서 사사명(史思明)을 격퇴하였다. 후에 관내(關內)와 하동(河東)의 부원수(副元帥)에 임명되었고, 회흘(回紇)의 군대와 협력하여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수복하였다. 중서령(中書令)으로 승차하고, 이후에 분양군왕(汾陽郡王)으로 봉해졌다.
2) 하양(河陽):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맹현(孟縣)의 남쪽이다. 건원(乾元)원년(758년)에 곽자의(郭子儀), 이광필(李光弼), 왕사례(王思禮) 등 9명의 절도사들이 20여만의 군사를 이끌고서 상주(相州)[지금의 하남성 안양(安陽)]에서 안경서(安慶緖)를 포위하였다. 당군(唐軍)은 통일적 지휘가 안 되는 데다 군량미 또한 부족하여 이듬해에 전 전선에서 궤멸되었고, 곽자의 등은 하양으로 퇴각하였다. 관군용사(觀軍容使) 어조은(魚朝恩)은 책임을 곽자의에게 떠넘겼고, 당 숙종(肅宗)은 곽자의를 장안으로 소환하였다. 그리고는 이광필로 하여금 대신 군대를 지휘하게 하였다.
3) 이태위(李太尉): 당(唐)의 대장(大將) 이광필(708-764년)로서, 영주(營州) 유성(柳城)[지금의 요녕성(遼寧省) 조양(朝陽)] 거란(契丹)족 사람이다. 일찍이 하서(河西), 삭방(朔方)절도부사에 임명되었다.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곽자의와 함께 하북(河北)으로 진격하여 십여 군을 수복하고, 또 태원(太原)에서 사사명(史思明)을 격퇴하여 임회왕(臨淮王)으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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