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敏 張文立 共著 / 이상천 역, <진시황제릉>, 학고방출판사, 2007.
2. 격박놀이(擊博之戲)
박(博)은 고대 유희의 하나로써 현재의 바둑과 유사하다. 박을 할 때 사람마다 여섯 개의 바둑알을 잡고 하기 때문에 육박(六博)이라고도 하였다.《초사(楚辭)》에서 송옥(宋玉)은〈초혼(招魂)〉중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놀이 기구로는 옥으로 장식한 산가지 놀이와 상아로 만든 바둑 놀이가 있고, 소일거리로 또 육박 놀이가 있다. 두 패로 나누어 돌을 움직여 진공하고 쌍방이 맞붙어 양보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건 ‘성효(成梟)’를 얻게되면 승리를 하는 것인데, 큰 소리로 ‘오백(五白)’을 외치며 매우 다급해 한다(菎蔽象棋, 有六簙些. 分曹竝進, 遒相迫些. 成梟而牟, 呼五白些.)”라고 하여 육박 놀이를 할 때, 두 사람이 각자 말판을 따라 알을 움직이고, 서로 핍박하며 외쳐대는 상황을 형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곤폐(菎蔽)는 옥으로 장식한 도박용 산가지이며, 성효(成梟)는 한 발 앞서는 것이고, 모(牟)는 두 배로 이기는 것이다. 전해오는 말에 육박이라는 놀이는 오조(烏曹)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이라고 한다. 은대(殷代)에 이미 있었고, 전국시대․진․한 때에 더욱 발달하였다. 진시황의 모친은 행실이 조심스럽지 못한데다 노애(嫪毐)라고 하는 자와 서로 좋아하였다. 노애는 극도로 사치하고 국사를 전횡하여 아무렇게나 처리하고는 항상 시중의 좌우 근신들과 박희(博戱)를 즐겼다. 한대(漢代)의 문제(文帝)․경제(景帝)․무제(武帝)․소제(昭帝)․선제(宣帝) 등도 이런 유희를 좋아하였다. 한 선제는 황제가 되기 전에 진수(陳遂)라는 사람과 관계가 좋아서 항상 함께 박희를 즐겼다고 한다. 선제는 기예에 정통하지 못한 탓에 늘 바둑에서 졌다. 선제는 즉위한 후에 진수를 기용했는데 후에 진수의 관직이 태수(太守)에까지 올랐다. 선제는 진수를 위해 한 통의 옥새로 봉한 문서를 보내어 “조칙으로 태원 태수에게 고한다. 그대는 현재 관직이 높아졌고 봉록도 많아졌다. 이로써 내가 그대와 육박을 할 때 진 빚을 다 갚은 셈이다”라고 하였다. 한나라 강도왕(江都王)의 딸이 오손(烏孫)국의 국왕 곤막(昆莫)에게 시집을 갈 때에도 한 선제는 도박 도구를 하사하였다. 박희는 진․한 때 비교적 성행하던 유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도박 도구는 고고학적 발굴에서 적지 않게 출토된 적이 있다. 잠들어 있는 진나라의 묘에서 도박 도구 두 세트가 출토되었는데 모두 나무 바둑판․뼈 바둑판과 대나무 산가지로 구성되어있었다. 바둑판(基盤)을 국(局)이라고도 한다. 그 가운데 하나의 목국(木局)은 길이가 32㎝이고 넓이가 29㎝이다. 도박 산가지는 길이가 23.5㎝로 반쪽의 가느다란 대나무 관으로 만들었다. 나무 바둑판 위에 곡선․네모와 네 개의 원점(圓點)이 새겨져 있다. 바둑돌의 경우 한 세트는 장방형의 6알이고 다른 한 세트는 방형의 6알로 모두 12알이었다. 이것은 진시황 30년(기원전 217년) 때의 도박도구였다. 한나라 때의 도박도구는 더욱 많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도박도구에서 보면 도박도구는 국(局; 바둑판)․바둑돌․도박 산가지라는 세 가지로 구성되어있다. 어떤 박주(博籌; 도박할 때 쓰는 산가지)는 박경(博煢; 도박 주사위)으로 대체되었다. 박경을 박투(博骰)라고도 한다. 그러나 투자(骰子;주사위)는 네모난 것이고, 경(煢)은 원형으로 된 다면체이다.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한나라 묘지에서 출토된 박경은 18면체의 원형 목경(나무 주사위)이다. 18면에 1에서 16까지의 숫자가 새겨져있고, 다른 두 개의 대정면(對頂面)에 새겨진 글자는 각각 “교(驕)”와 “괴(妻畏)”1)이다. 진시황릉 북쪽 외성의 모가촌(毛家村)에서 경(煢) 한 매를 출토한 적이 있는데, 14면체의 돌 구슬(石球)이었다. 그것의 12면에 각각 1에서 12까지의 숫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두 개의 대정면에는 “교(驕)”와 “괴(男妻)”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한 매의 돌 주사위인 석박경(石博煢)이다.
도박판인 박국(博局)의 면 위에는 12개의 곡선이 새겨져 있다. 두 사람이 마주하여 도박을 하는데 각자 6개의 저(箸; 말--혹은 2개의 저․8개의 저)를 잡는다. 경(주사위)이 던져질 때는 굴릴 수 있는데 지금의 투자(骰子; 주사위)처럼 던져서 뒤로 구르면 윗면에 새겨진 글자가 나타난다. 말을 움직이는 사람은 나타난 숫자에 따라 말을 움직이거나 말을 따먹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짓는다. 여섯 개의 말(저) 중 “효기(梟棋)”라고 하는 것이 한 매 있고 나머지의 것을 산기(散棋)라고 하였다.《고박경(古博經)》이라는 책에서는 “말을 도처로 움직이는 것을 세운다라는 것인데, 이를 교기라고 이름한다(棋行到處卽竪之, 名爲驕棋)”고 하였다. 효기(梟棋)가 바로 교기(驕棋)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말이건 효기를 이루면 세워도 되고 다른 말을 먹을 수도 있는데, 바로 장기를 둘 때 장군과 왕 혹은 포커 중의 킹과 같다. 만약에 던져서 “妻畏”와 “男妻”가 나오면 효기를 거꾸로 놓는다. 그래서 “妻畏”와 “男妻”는 교(驕)와 반대되는 뜻을 가진 글자라고 할 수 있다.
진릉에서 출토된 이 박경은 현재까지 박국 및 저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쉽게 썩는 나무나 대나무여서 그런지 아니면 분실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지하에 묻혀있는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곳에 원래 한 세트의 도박도구가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박경을 발견한 곳에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건축물이 있는데 진대의 평기와․반원통형기와 및 와당이 출토되었다. 이 때문에 이 박경은 당연히 그 당시 진릉에서 공사를 책임졌던 대소 관리들 혹은 일반 작업자들이 놀 때 사용했던 실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당시의 사회풍조를 반영하고 있으며 진대의 사회생활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1) 妻畏와 男妻은 한나라 무덤에서 출토한 것으로 어떤 것에는 “妻黑과 妻告”가 쓰여져 있다. 이것들은 “驕”와는 한 쌍의 반대어로서 뜻은 승부라고 할 때의 패배(輸)이다. 이학훈(李學勳) 선생은 그것들을 “부끄러울 괴(媿; kuì)”라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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