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唐楊貴妃

6. 술에 취하여《예상우의무》를 추니 당명황은 즐거워하였다

마장골서생 2009. 11. 9. 22:53

穆渭生 著 / 李商千*權容浩*姜秉喆 共譯 <唐楊貴妃>

*포항동양문학예술연구회(POLAS)의 첫번째 역서*

 

6. 술에 취하여《예상우의무》를 추니 당명황은 즐거워하였다


 양옥환이 입궁하여 마외파에서 병변으로 죽기까지 16년간 당명황에게 총애를 받은 후비였으며, 종일 함께 하던 반려자이며, 또한 당명황이 그녀의 예술재능을 독차지하였던 가수이자 무희였다. 다재다능한 당명황과 예능이 뛰어난 양귀비는 의기가 상투한 예술의 분위기속에서 함께 즐거움을 누렸으며, 당 제국의 문화예술사에 화려한 한 면을 남겼다. 이 시기의 음악과 춤은 또 짙은 이국의 풍격으로 충만하였다.

 위진 육조 시대 이래로 누차 전란을 겪었기 때문에 전통 궁정 음악과 춤은 이미 온전하게 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서역의 음악과 춤은 부단히 유입되어 수당의 궁정 음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전통음악은 아악(雅樂)、속악(俗樂)으로 양분한다. 아악은 궁정음악이며, 종묘와 사당에서 제사를 올리고, 조회나 경축행사를 거행할 때 연주하며, 전아(典雅)한 형식을 추구하여 경직되고 생명력이 결핍된 것 같으며, 전란을 겪어 보존해서 전래되기 어려웠다. 속악은 각종 연회에서 연주하였으며, 빈객들에게 오락으로 제공하는 악무이며, 또한 민간에서 유행하는 음악이다.

 수나라 문제 양견(楊堅)이 재위할 시기에 대신 정역(鄭譯)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역의 음악을 참조하여 궁정음악을 정리하고, 구부악(九部樂)을 제정하였다. 수나라 양제 양광(楊廣)은 다재다능하여, 음악과 춤을 좋아하여 크게 강조하였으며, 태상악(太常樂) 구성원을 증원하고 전문적인 악무 예인들을 양성하였다. 당나라는 수나라의 제도를 계승하고, 태종 이세민 시기에 당나라 음악을 십부(十部)로 제정하였다. 연악(燕樂)、청악(淸樂)、서량악(西凉樂)、천축악(天竺樂)、고려악(高麗樂)、구자악(龜玆樂)、안국악(安國樂)、소륵악(疏勒樂)、고창악(高昌樂)、강국악(康國樂) 등이다. 그 중에 연악、청악이 한족 전통 악무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이민족과 외국 악무이다.

 당명황 이전의 당나라 황제(여황제 무측천을 포함)들은 모두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서역 음악인 “호악(胡樂)”을 애호하였다. 정관 4년(630) 동 돌궐을 평정하고 태종 이세민은 능연각(凌煙閣)에서 연회를 열어 공을 치사하였는데, 태상황 이연(李淵)이 직접 비파를 연주하고,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은 음악에 따라 일어나 춤을 추었다. 유명한《진왕파진악(秦王破陣樂)》이 연주될 때의 춤은 120명의 갑옷을 입고 창을 잡은 예인들이 공연하며, 감정이 격해지는 춤사위로써 이세민의 무공 업적을 칭송하였다. 이것은 북조 이래 상무(尙武) 전통을 잘 표현하였다. 그들의 조상이나 자신들은 바로 서역에서 유입된 악공으로 예를 들면 백명달(白明達)、배신부(裵神符)、배광노(裵光奴)、안질노(安叱奴) 등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악무 기예에 뛰어났으며, 신분이 높은 자리에 올랐다.

 수양제와 당명황이 크게 악무를 강조한 이래, 비단같이 화려하고 참신한 속악이 일시에 유행하였다. 당나라 십악부는 뒤에 또 좌부기와 입부기에 나눠 예속되었다. 좌부는 바로 당상에서 연주하는 것이며, 예술수준이 입부보다 높았으며, 팔부악곡이 있으며, 무희가 3~12명이며, 춤사위는 우아하고 맑은 소리에 박자가 느리며, 악기반주가 있다. 입부는 당 아래에서 연주하며, 육부악곡이 있으며, 반주에 사용되는 악기에는 대고(大鼓: 큰북)、동라(銅鑼: 구리 징)가 있으며, 음향이 웅장하고 위세당당하였다.

 개원 초기 당명황은 내원에 좌우 교방을 설치하고, 전문적으로 속악을 교육하였다. 뒤에 또 좌부 소속 소년 악공들을 300명 선발하여 궁중 이원(梨園)에서 법곡1)을 가르쳤다. 천보 연간에 또 궁녀 수백 명을 선발하여 의춘원에서 가무를 가르쳤다. 당시 이원과 의춘원의 남녀 음악 예인들을 “황제이원제자(皇帝梨園弟子)”라고 불렀다. 황실 이원은 바로 성당의 국가 악무 학원이며, 당시 유명한 악사、우수한 음악 예인과 무희들이 모인 곳이라 말할 수 있다. 이밖에 또 국내 소수민족과 외국에서 들어온 악무(樂舞) 예술가도 있었다.

 궁정 연회와 포회(酺會)2)를 거행할 때, 공연하는 교방 악무는 건무(健舞)、연무(軟舞)로 양분한다. “건무”는 힘차고 굳세며, 박자가 경쾌하다. 관현악기와 북으로 반주를 한다. “연무”는 부드러우며, 박자가 느리고 서정적이며, 반주악기는 주로 비파이다. 건무에서 전형적인 서역 풍격을 갖춘 것은 자지무(柘枝舞)、호등무(胡騰舞)、호선무(胡旋舞)가 있다.

 자지무는 석국(石國: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 Tashkent)에서 전래되었으며, 기녀가 공연하는 독무 또는 두 사람이 추는 쌍자지(雙柘枝)가 있다. 무희는 머리에 창이 높고 속이 빈 모자를 쓰고, 모자에 진주와 비취와 방울을 달아서 일어날 때 찰랑찰랑 소리를 낸다. 몸에는 오색 비단 저고리를 입고, 소매가 좁아 팔에 들러붙으며, 허리에 자주색 긴 허리띠를 두르며, 발에는 붉은 색의 부드러운 장화를 신고, 온몸에 이국적인 분장을 하여 매우 신선한 운치가 있었다. 쌍자지무는 기녀가 두 송이 큰 연꽃 속에 각기 숨어있게 하고, 북 소리에 맞추어 연꽃이 활짝 피어나면 그 속에서 기녀가 나와 서로 마주하여 춤을 춘다. 기녀의 허리가 가늘고 부드럽고, 춤추는 발걸음도 경쾌하고 민첩하며, 구경하는 사람에게 “몸이 가볍고 뼈가 없는 듯이 유연한” 느낌을 주었다. 북소리 박자가 빨라짐에 따라 무희는 큰 폭으로 팔을 흔들며, 열정적으로 표현하며, 때로는 허리를 뒤로 크게 젖히고 땅에 엉덩이를 대지 않고 쪼그리고 앉는데 아름답기 그지없다. 춤을 거의 마칠 때가 되면, 무희들은 웃옷의 소매를 벗기어 팔을 드러내며, 두 눈으로 추파를 보내어 정을 주는 듯하며,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자주색 비단적삼 흔들며 자지무를 추는 무희들이 나오네.

紫羅衫動柘枝來3)


 북소리 빨라지고 무곡이 그칠 무렵 쓰러질듯 허리를 뒤로 젖히네.

 鼓催殘拍腰身軟4)


자지무는 매우 높은 기예와 연기 재능이 요구되며, 당시 이러한 춤을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인 “자기기”가 있었다. 중당시기의 소련사(蕭煉師)、관반반(關盼盼) 등은 바로 유명한 “자지기”였다.

 호등무(胡騰舞)도 석국에서 전래되었으며, 남자 예인이 하나의 양탄자에서 공연하는 독무이며, 피리(橫笛: 저)5)와 비파를 주요 악기로 하였다. 춤추는 사람은 머리에 구슬 장식을 한 작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반짝반짝 빛이 났으며, 몸에는 폭이 좁은 소매의 서역의 적삼인 호삼(胡衫)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포도를 그려놓은 긴 허리띠를 묶고, 발에는 비단 장화를 신었다. 공연할 때 무희는 먼저 관중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린다. 그 춤사위는 동작이 빠르고 변화가 많으며, 뛰어오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호등무를 추기 전에 무희들은 먼저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나서 일어나 춤을 추는 가운데 여러 가지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는데, 동쪽으로 기울이다가 서쪽으로 기울며,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위로 올린다.


몸을 뛰어오르게 하고 발을 흔들며 꽃을 수놓은 양탄자를 밟네.

跳身弄脚踏花毯.6)


붉은 땀방울 흐르고 구슬을 가득 달아놓은 모자가 비뚤어지네.

紅汗交流珠帽偏.7)


격렬하고 씩씩한 춤에서 양강(陽剛)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그래서 호등무를 추는 무희들은 대부분이 “피부가 옥과 같으며, 코는 송곳처럼 뾰족하다.(肌膚如玉鼻如錐.)”는 서역의 “호인(胡人: 이방인)”이다.

 호선무는 강국(康國: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일대)에서 유래되었으며, 반주 악기는 주로 북、동발(銅鈸: 구리 징)과 피리이다. 백거이의《호선녀(胡旋女)》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빙글빙글 춤추는 서역 여자, 빙글빙글 춤추는 서역 여자,

마음은 비파에 따라서 손놀림 자유로이 북을 치네.

비파와 북소리에 맞추어 두 소매를 들어 올리네.

눈처럼 훨훨 다북쑥처럼 뒹굴듯이 춤을 추고,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며 지칠 줄을 모르고,

천 번 만 번 돌고 돌아 그칠 줄을 모르네.

인간세상의 어느 것도 이에 비할 바가 없겠네.

달리는 수레바퀴나 회오리바람도 이보다 느리리라.

무곡이 끝나자 천자에게 재배하고 물러나니,

천자도 그녀들을 위해 기뻐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네.

빙글빙글 춤추는 서역 여자, 강거국에서 온 사람이네.

헛되이 동쪽으로 만 리 먼 길을 왔네.

중원에도 빙글빙글 춤추는 여자 있으며,

묘기와 재능을 다투는 솜씨 너희보다 낫다네.

천보 말년에 세상이 변란으로 어지러우니,

천하의 남녀 모두가 법도를 벗어났네.

궁 안에 양귀비 궁 밖의 안록산 두 사람이,

빙글빙글 추는 서역 춤에 뛰어났다네.


이화원에서 양옥환을 귀비로 책봉하고,

금계 그려진 병풍 아래에서 안록산을 귀비의 양자로 거두었네.

안록산의 빙글빙글 추는 서역 춤에 현종의 눈이 멀어서,

반란군이 황하를 넘어가도 믿으려 하지 않았네.

양귀비가 빙글빙글 추는 서역 춤에 현종의 마음 빼앗았고,

마외파에 죽어 버려진 양귀비를 그리는 마음 깊어만 갔네.

그때부터 천지의 법도가 기울어,

50년 동안 나라가 기강을 바로 세우지 못하였네.

빙글빙글 춤추는 서역 여자여! 부질없는 춤만 추지 말고,

이 노래 자주 불러 천자를 깨우쳐라!

 

胡旋女, 胡旋女. 心應弦, 手應鼓.

弦鼓一聲雙袖擧, 回雪飄颻轉蓬舞.

左旋右轉不知疲, 千匝萬周無已時.

人間物類無可比, 奔車輪緩旋風遲.

曲終再拜謝天子, 天子爲之微啓齒.

胡旋女, 出康居, 徒勞東來萬里餘.

中原自有胡旋者, 鬪妙爭能爾不如.

天寶季年時欲變, 臣妾人人學圜轉.

中有太眞外祿山, 二人最道能胡旋.


梨花園中冊作妃, 金鷄障下養爲兒.

祿山胡旋迷君眼, 兵過黃河疑未反.

貴妃胡旋惑君心, 死棄馬嵬念更深.

從茲地軸天維轉, 五十年來制不禁.

胡旋女, 莫空舞, 數唱此歌悟明主.


그림 유림(楡林) 25 窟獨舞


호선무를 추는 무희는 몸에 붉은 비단으로 만든 웃옷을 입고 초록 바지를 입고 붉은 장화를 신었다. 둥근 양탄자에서 이리 저리 뛰어오르면서 빠르게 회전하고, 두 발은 항상 둥근 양탄자에 닿을 겨를이 없었다. 춤이 최고조에 달하면 무희의 머리에 쓴 모자에 달린 구슬과 어깨에 걸치는 비단 천조각(cape)이 유성처럼 반짝이고, 휘날렸으며, 구경하는 사람이 눈을 현란하게 하였다. 천보 연간에 서역 여러 나라에서는 일찍이 여러 차례 동쪽 장안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호선녀를 진상하였다.

 서역의 음악과 춤은 당나라 시대에서 일시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황궁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유행하였다. 원진(元稹)의 《법곡(法曲)》이란 시에 이렇게 묘사하였다.



여자가 서역남자의 부인이 되면 서역화장을 배우고,

예인이 되고나면 서역의 음악을 배우고자 힘쓰네.

………………………………

서역음악과 서역기마술과 서역화장술이,

50년 동안 당나라 천하를 휩쓸어버렸네.


女爲胡婦學胡妝, 伎進胡音務胡樂.

………………………………

胡音胡騎與胡妝, 五十年來競紛泊.


천하 지존의 당명황 자신은 이미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강력한 주창자였으며, 또한 자신이 앞장서서 공연하는 사람이었다. 당명황은 천성적으로 총명하며, 근면하고 학문을 애호하였으며, 지략(智略)에 뛰어났으며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 시가 방면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가 남긴 작품은《전당시(全唐詩)》에 60 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음악은 천부적이고 조예가 깊으며, 문학 재능보다 수준이 높았다.

 당명황은 어려서부터 잡기와 음악을 애호하고 음률에 정통하였으며, 그가 악기를 연주함에 이어서 흉노족의 북인 갈고(羯鼓)、옥피리、비파、호금(胡琴)8) 등에 모두 수준이 높았다. 그가 창작한 악곡 역시 그 신묘함을 발휘하였으며, 예를 들면《능파곡(凌波曲)》은 우아하고 온화하며,《자운회(紫雲回)》는 쓸쓸하고 청아하다.《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은 더욱 더 사람을 통쾌하게 한다. 당명황의 음악에 대한 감각은 예민하며, 연주를 지휘하는 재능을 겸비하였다. 이원제자가 악곡을 합주할 때 여러 악기의 음향이 일제히 울리더라도 만약 하나의 악기가 실수를 하게 되면 그는 즉시 알아채고 교정을 해주었다. 악기 가운데 당명황은 갈고를 가장 잘 연주하였다. 그는 갈고를 악기 중의 우두머리라고 칭찬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가 사용했던 북채가 몇 상자나 되었다 한다. 또 당명황의 큰 형 영왕(寧王) 이헌(李憲)과 그의 아들 이진(李璡)、악공 이구년(李龜年)、조정 대신 송경(宋璟) 등은 모두 갈고 연주에 뛰어났다.

 솔직히 말해서 당명황은 성당 시기 손꼽히는 음악 예술가였으며, 여러 대가들 가운데 손색이 없는 절정 고수였다. 그의 애호와 주창 아래에 개원 천보 시기의 음악과 춤의 예술은 공전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사회 전반에 활발하고 명랑한 정신을 불어넣어주었으며, 향락주의의 쾌락 정서를 충만하게 해주었다. 당명황이 성당 시기 음악과 춤의 예술에 대한 공헌은 먼저 황제의 신분으로서 속악을 주창하였으며, 그 다음은 직접 참여하여 작곡하고 춤도 연출하였다. 그가 주관하여 개편한 악무로는《파진악(破陣樂)》、《상원악(上元樂)》、《성수악(聖壽樂)》、《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등이 있다.


그림

현종이 피리를 불며 연주하고 양귀비가 일어나 춤을 춘다.

바람에 선녀의 소매 펄럭이니《예상우의무》를 추는 듯하다.9)


천자는 풍류인물로서 재주가 많아 항상 시중드는 좌우 궁녀가운데 자연히 노래와 춤에 뛰어난 미인들이 많이 필요하였다. (천보 연간) 궁중 기녀 염노(念奴)는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고 노래에 뛰어났으며, 연기력이 우아하고 숙련되어, 당명황의 총애를 깊이 받았으며 항상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염노가 재주를 당명황에게 보여줄 때, 손에는 단판(檀板)을 잡고,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면 눈동자는 움직일 때마다 가을 맑은 물처럼 하늘에 떠가는 혜성처럼 빛났다. 그녀의 노래 소리는 청아하고 크게 울려 퍼졌는데 마치 조잘대는 종다리가 종과 북과 생황의 반주보다 훌륭하고 구름 위에서 날면서 노래하는 듯하였다.10) 당명황은 웃으면서 양귀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염노와 같은 여자는 외모가 아름답고 요염하며, 눈과 얼굴이 예쁜 사람이다.” 당송 이래의 사패(詞牌) 즉 곡조명(曲調名)의 하나인《염노교(念奴嬌)》는 바로 염노의 노래 가락이 높고 우렁찬 데서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또 다른 궁중 기녀 영신(永新)은 노래 소리가 “기뻐하는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용기가 나며, 슬퍼하는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더욱 애통하게 하였다.”11) 그녀는 노래를 잘 불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악곡에 잘 적응하여 노래 한 가락을 부르면 그 소리가 장안의 깊은 골목까지 울려 퍼졌다. 한 번은 당명황이 근정루에서 연회를 열었는데, 성대하게 백희(百戱)를 공연하였다. 근정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서로 다투어 구경하고, 서로 밀치고 저마다 구경하려고 소란을 일으켰으며, 황제가 노여워하여 자리를 떠나려하였다. 환관의 우두머리 고력사가 황망히 계책을 올렸다. 가기(歌妓) 영신을 근정루에 불러들여 노래 한 곡을 부르게 하면 반드시 저 소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영신이 어명을 받들어 근정루에 와서 귀밑머리를 올리고 소매를 휘저으며 높은 목청으로 노래하였다. 과연 근정루 아래 백성들의 소란스런 소리가 삽시간에 조용하여 마치 한 사람도 없는 듯하였다.

 신풍의 여배우 사아만(謝阿蠻)은《능파곡(凌波曲)》이란 춤을 잘 추었다. 당명황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아 항상 황궁에 출입하였다. 사아만의 춤사위는 미묘하여, 당명황과 양귀비가 구경하다 흥이 높아지면, 직접 갈고와 비파를 들고 그녀를 위해 반주를 하였다. 양귀비는 자신의 금속장비환(金粟裝臂環: 금팔찌)12)을 사아만에게 상으로 하사하였다. 

 양귀비의 시녀 장운용(張雲容)은《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잘 추었다. 한 번은 그녀가 당명황과 양귀비를 따라 여산 수령궁(繡嶺宮)에 갔을 때, 양귀비는《증장운용무(贈張雲容舞)》(무희 장운용의 춤에 답하여 지은 시)라는 시를 지어 선물하여 총애를 나타내었다.


비단소매에 향이 일어나는데 향기는 끝이 없고,

연꽃은 가을 안개 속에서 살랑살랑 흔들거리네.

가벼운 구름 고개를 지나다 잠시 바람에 흔들리고,

부드러운 버들가지는 연못가에서 수면을 두드리네. 

羅袖動香香不已, 紅蕖裊裊秋烟裏.

輕雲嶺上乍搖風, 嫩柳池邊初拂水.


 당명황의 후궁 중에서 양귀비는 용모와 안색으로 첫 번째이며, 음악과 노래와 춤에 정통하고 황제의 은총을 한 몸에 받는 전방지총(專房之寵)이었다. 수많은 비빈들 가운데 양귀비는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출중하였다. 그녀의 가무예술은 천부적 자질이었으며, 소녀시기에 낙양에서 학습하고 양육되어 재능이 두드러졌다. 그 후 수왕부에서 4년 남짓 왕비생활을 하면서 양호한 환경에서 생활하여 온화하고 도량이 넓어졌다. 가무와 오락 방면에서 예능이 더욱 더 성숙하였다. 황궁에 입궁한 뒤 자연스럽게 그녀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황제의 오랜 환심과 총애를 얻었다. 당명황이 잡기와 음악을 지극히 애호하고 작곡과 연주에 정통하였으며, 양귀비가 가무에 뛰어났으며, 예능 역시 많은 미인 가운데 최고였다. 정말로 의기가 상투하고 천생연분이었다.

 음악과 춤은 서로 관계가 밀접한 예술이다. 음악은 선율의 미묘함으로써 오음으로 표현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즐겁게 해준다. 춤은 신체의 변화를 주며, 자태가 아름다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즐겁게 해준다. 춤은 음악에 함축된 경계와 정서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동작 형상이며, 춤추는 사람의 표현을 통해서 시원스럽게 전달한다. 음악의 연주와 춤의 공연은 모두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과 좁은 공간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예술의 감화력은 오히려 현실의 공간과 생사의 시간을 초월할 수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갖게 하고 음미함이 끝이 없다.

 음악과 춤의 공연은 또 음주와 관련이 있다. 춤추는 사람은 먼저 균형미가 있는 외모의 아름다움을 갖추어야 하며, 춤을 춘 다음에 혈기왕성한 율동을 보여주어야 비로소 춤사위가 더욱 더 사람을 크게 감동시킬 수 있다. 적당한 음주는 사람에게 심신의 자유를 주고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호등무는 술을 마셔야 춤을 출 때 뼈와 살이 부드러워진다네(胡騰醉舞筋骨柔.)”13)라고 한 것은 바로 춤추는 사람의 예술의 재주와 지혜가 술기운에 의지해서 발휘되며, 춤추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작이 더욱 더 민첩하고 즐겁게 움직이고 시원스럽게 표현하게 하고 정서가 격렬하게 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당나라 역사에서 당명황과 양귀비가 함께 한 무곡이 바로 그 유명한《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다. 사료의 고증에 따르면, 이러한 무곡은 인도에서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본래의 이름은《바라문곡(婆羅門曲)》이며, 짙은 종교색채를 띠고 있다. 그것은 서량(西凉) 일대에 전래되었고,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무위(武威)] 양경술(楊敬述)이 황궁에 진상하였다. 당명황은 그 악곡에 대해 약간의 윤색을 가한 뒤《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꾸었다.(718~720년간에 완성됨) 이러한 악곡을 대형 궁중 춤으로 연출한 사람은 바로 가무에 뛰어난 양귀비였다. 이러한 위대한 창작은 그녀에게 중국 고전 무용사에서 확고한 지위를 안겨주었다.


 예상우의무14)라는 춤은 궁중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무희들에 대한 자질、기예、복식 등은 모두 상당히 강조하였다. 무희가 착용하는 진주와 비취로 만든 목걸이, 몸에 는 무지개색의 치마, 외부에 공작새 깃털을 단 비단옷을 입었다. 춤을 추기 전에 약간의 서정적인 전주곡이 연주되며, 뒤이어 박자가 분명해지면, 수십 명 내지 백 명 이상의 무희들이 박자에 맞추어 서서히 춤을 추며, 자태가 아름답고 경쾌하고 부드러운데, 마치 놀란 학이 날개를 펴는 듯하다. 박자가 점점 발라지고 춤사위도 회전을 위주로 하며, 무희의 치마는 마치 펄펄 날려가는 하늘의 구름 같으며, 또 바람에 펄펄 날리는 백설 같다. 얇기가 매미 날개와 같은 예상우의는 무희들의 회전동작에 따라 위로 아래로 펄럭이며, 마치 하늘의 선녀가 훨훨 나는 듯하다. “푸른 하늘 월궁 신선들의 아름다운 악곡에 예상우의무를 추네.(碧雲仙曲舞霓裳)”15), “선녀의 소매가 바람에 나부끼어 공중으로 펄럭이네.(風吹仙袂飄飄擧.)”16) 이것은 바로 당명황이 추구하는 신선 음악(仙樂)의 경계였다.

 양귀비는 안무가이자, 무희였다. 그녀의 춤추는 재능은 전문적으로 당명황이 감상하고 즐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명황은 만백성 위에 군림하는 위대한 황제이고, 당나라 제국의 영토 안에서 모든 권력、영예、재산、자랑、미녀、환락 등 모두가 그의 소유이며, 모두 지고무상(至高無上)한 황제의 권력에 귀속하였기 때문이다.

 당명황이 화청궁에서 긴긴 밤 촛불을 밝히고 밤을 새워 연회를 열어 즐길 때, 이원의 악공이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소리가 아득히 먼 곳까지 울려 퍼지며, 궁 밖으로 전해졌다. 의춘원 무희들이 예상우의무를 추면, 춤사위가 경쾌하게 펼치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주흥이 일어날 때까지 술을 마시면, 마음은 뜨겁고 몸은 부드러워지고, 양귀비는 바로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녀는 머리에 장식한 진주와 비취 같은 보석들이 등불 아래 빛을 발산하였으며, 어깨에 걸친 비단천은 춤을 추면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획획 휘날리었으며, 그녀의 몸과 팔은 유연하고 민첩하며, 우아한 곡조와 어울려 날렵하기가 마치 백조가 날갯짓하는 것과 같았다.


그림 돈황 197 굴건무(窟健舞)


선율이 명쾌하고 숨이 가쁘게 빨라질 때, 그녀의 온유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유쾌한 술기운에 의지해서 경쾌하고도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예상우의는 회전할 때마다 허공에 휘날리는데 마치 채색비단 띠를 둘둘 두르고 있는 듯하며, 그녀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춤사위를 통해서 승천하는 듯하였다. 양귀비와 함께 춤을 추는 궁중 기녀들은 모두가 붉은 얼굴에 옥 살결이며, 모두 성대한 장식을 하여 마치 예쁜 꽃들이 소복이 모여 한여름 들판에 활짝 피어나 향기를 진하게 피우는 듯하였다. 또 뭇별들이 달을 둘러싸고 하늘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선경처럼 사람을 매혹시켰다.

 양귀비의 춤추는 솜씨는 용광로의 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절정에 달하여 열정을 사방으로 발산하여 그 매력이 비할 데가 없었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한 늙은 황제는 정신을 집중하여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 미인들과 함께하는 데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영혼은 음악에 도취되고, 혼백은 춤에 흥분하였다. 양귀비의 팔이 굽혔다 펴질 때마다 그 동작 하나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두 눈에 빛나는 추파는 정을 전해주고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으며, 마치 월궁의 항아가 강림하여 춤을 추는 듯하였다. 흡사 동해의 신선이 강림하고, 신선이 산다는 삼산(三山) 즉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에 초청되어온 듯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눈앞에 있는 것 같아도 손을 뻗어 가리킬 수 있는 신선의 경지였으며, 언뜻 보기에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바라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다가설 수 없었다.

 음악이 사람들의 심령세계、정신세계가 지향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러한 목표는 일정하지 않아 종잡을 수가 없어, 붕새가 날개를 펼치는 것처럼 환상적이기도 하며,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깨닫기도 한다. 비파 연주에서 졸졸졸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피리 소리에 산들산들 가을 바람소리가 들리며, 긴 피리(長笛)에서 종다리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 이러한 생명력이 강한 소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의 지혜를 열어주고, 만 리 먼 곳 상상의 여행을 하게하고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게 해준다. 음악 경계 가운데 아름다운 꽃과 달콤한 샘물은 선율에 따라 나타나, 사람의 가슴속에 파고들어 향기를 풍기고 맑고 시원하게 해준다. 춤은 외면적으로 존재하는 형체 언어이며, 유동하는 조형 동작의 공연으로 불타는 생명의 열정을 전한다. 그 춤사위는 봄바람이 얼굴을 스치듯이 우아하기도 하고, 준마가 힘차게 달리는 듯이 강경하며, 속세 육신으로 하여금 신선과 같은 경지에 오르게 하며, 속세에 신선한 활기와 쾌락을 풍부하게 하며, 신비한 세계의 청정 무욕의 세계를 맛보게 하며, 사람들에게 육체의 피로를 들어주며, 심신의 번민을 해소해준다. 생명은 움직이는 데서 존재한다. 노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음악을 감상하고 춤을 체험하는 것은 청춘으로 돌아가는 염원에 대한 만족이기도 하며, 육체의 양호한 감각을 보호 유지하는 묘약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당명황은 이러한 인간세계에서 신선의 음악이 영원히 연주되기를 원하였으며, 이러한 미묘한 춤이 영원에 즐길 수 있기를 원하였다. 황제에서 신선의 경지에 오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염원이자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림 돈황 180 굴무기(窟舞伎)


1) 동진(東晋) 이래 북조(北朝)의 음악이 불교법회에 사용되어 법곡(法曲)이라 칭하였다.

2) 포회: 고대 국가 경축행사가 있을 때, 황제가 신하와 백성들과 함께 즐긴 하나의 경축행사이다. 포는 본래 민간에서 화합의 모임에 연회를 베푸는 의미가 있었다. 봉건국가가 백성들이 불순한 활동을 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임에 연회를 베푸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일찍이 진(秦)、한(漢) 시대에도 있었다.

3) 백거이의 시《자지기(柘枝妓)》(서역의 자지무를 추는 기녀) “널찍한 곳에 자리를 펴서 한바탕 화려한 연회를 열고, 연이어 북소리 세 번 빠르게 두드리어 박자를 빠르게 하네. 붉은 촛불 움직이니 복숭아 잎이 일어나고, 자주색 비단 적삼 흔들면서 자지무를 추는 무희들이 나타나네. 무희들 허리에 띠 드리우고 금장식 둘러차니 화려한 허리가 쓰러질 듯하고, 머리를 돌리면 호모에 달린 방울 소리 찰랑거리고 백설같은 얼굴 보여주네. 무곡이 끝날 때까지 구경하여도 미련이 남아, 마음은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는 무산의 선녀가 사는 양대를 향하네.(平鋪一合錦筵開, 連擊三聲畵鼓催. 紅蜡燭移桃葉起, 紫羅衫動柘枝來. 帶垂鈿胯花腰重, 帽轉金鈴雪面回. 看卽曲終留不住, 雲飄雨送向陽臺.)”

                             (西安 唐代“柘枝舞”石刻)

4)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시《백거이의 시 자지에 화답하는 시(和樂天柘枝)》“자지무를 추는 기녀는 본래 초나라 왕실 사람이며, 옥같은 얼굴에 아름다운 춤사위에 장식물은 화려하네. 높이 올린 머리 봉황새가 내려앉은 듯하고, 새로 만든 적삼에는 투계의 모습을 수로 놓았네. 북소리는 빠른 박자로 들어가 무곡이 끝날 무렵에 이르러 무희의 몸은 허리를 뒤로 젖혀 쓰러질듯하고, 땀에 젖은 비단 적삼은 빗방울이 떨어진 듯 얼룩지네. 진수성찬의 술자리에 공연은 끝나고 서로 작별하며 떠나가는데, 아름다운 무희들 선녀 서왕모[西王母]를 따라 선경으로 승천하려하는구나.(柘枝本出楚王家, 玉面添嬌舞態奢. 鬃鬢故(改)梳鸞鳳髻, 新衫別織鬪鷄紗. 鼓催殘拍腰身㼱(연, 軟), 汗透羅衣雨点花. 畵筵曲罷辭歸去, 便隨王母上烟霞.)”

5) 

6) 당나라 사람 유언사(劉言史)의《왕중승택야관무호등(王中丞宅夜觀舞胡騰)》“몸을 공중으로 훌쩍 뛰어오르며 회전할 때마다 비단 허리띠에 달린 방울이 요란하게 울리며, 이리저리 발길질 하며 걸을 때마다 비단 장화는 사뿐사뿐 거리네.(跳身轉轂寶帶鳴, 弄脚繽紛錦靴軟.)” 당나라 사람 이서(李瑞)의《호등아(胡騰兒)》“눈을 치켜 올리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꽃무늬 양탄자를 밟고 다니며(揚眉動目踏花氈.)

7) 당나라 사람 이서(李瑞)의《호등아(胡騰兒)》“눈을 치켜 올리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꽃무늬 양탄자를 밟고 다니며, 붉은 땀방울 온몸에 흘러내리고 진주 구슬을 단 모자가 삐뚤어져 갸우뚱거리네. 술에 취한 듯이 동쪽으로 갸우뚱하다 서쪽으로 갸우뚱하며, 한 쌍의 장화 부드럽고 무희들 등불 앞에 가득하네. 둥글게 돌아가며 뒷면서 박자에 맞추어 한 덩어리가 되며, 팔을 들어 손바닥을 뒤집어 깍지를 끼며 춤추는데 무희들의 허리는 반달처럼 가늘구나.(揚眉動目踏花氈, 紅汗交流珠帽偏. 醉却東傾又西倒, 雙靴柔弱滿燈前. 環行急蹴皆應節, 反手叉腰如却月.)”

8) 

9) 백거이의《장한가》“風吹仙袂飄飄擧, 猶似霓裳羽衣舞.”

10) 송나라 사람 왕작(王灼)《벽계만지(碧鷄漫志)》卷5에서《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의 “염노가 단판을 손에 잡고 자리에 서면, 그녀의 노래 부르는 소리가 구름 위에까지 울려 퍼진다.(念奴每執板當席, 聲出朝霞之上.)”를 인용하였다.

11) 당(唐), 단안절(段安節)《악부잡록(樂府雜錄)·가(歌)》“영신은 귀밑머리를 들어 올리고 소매를 휘저으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그녀의 노래에 너무 빠져버린 나머지 광장이 쓸쓸하여 마치 한 사람도 없는 듯하였다. 기뻐하는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용기가 나며, 슬퍼하는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더욱 애통하게 하였다(永新乃撩鬢擧袂, 直奏曼聲, 至是廣場寂寂, 若無一人, 喜者聞之氣勇, 愁者聞之腸絶.)”

12)   金裝玉臂環

13) 당나라 사람 원진(元稹)의《직부사(織婦詞)》.

14)

15) 당나라 사람 장호(張祜)의《화청궁사수(華淸宮四首)》중 두 번째 시. “천자의 궁궐 깊은 곳의 밤은 길어 끝이 없고, 월궁 신선의 악곡에 예상우의무를 추네. 옥피리 소리 허공에 울려 퍼지고, 달은 차고 여산의 화청궁 밤은 길어라.(天闕[朱閣]沈沈夜未央, 碧雲仙曲舞霓裳. 一聲玉笛向空盡, 月滿驪山宮漏長.)”

16) 백거이의《장한가》. “선녀의 소매가 바람에 나부끼어 공중으로 펄럭이니, 마치 예상우의무를 추는 듯하네.(風吹仙袂飄飄擧, 猶似霓裳羽衣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