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月東魯行答汶上翁1)
5월에 동로를 유력하다 문상옹에게 답하여
五月梅始黃, 오월이라 매실이 노랗게 익기 시작하고,
蠶凋桑柘空2). 누에치기 끝나자 뽕잎도 다 먹이고 없네.
魯人重織作, 이 때쯤이면 동로의 여인들 베를 짜는데,
機杼鳴簾櫳3). 베틀소리가 주렴창살 사이로 새어나오네.
顧余不及仕4), 내 벼슬길로 나아갈 수 없는 몸인지라,
學劍來山東5). 학문과 검술을 닦으려고 산동으로 왔네.
擧鞭訪前塗6), 달리던 말을 세우고 앞길을 물었다가,
獲笑汶上翁7). 문수 가의 노인에게 조롱을 당하였네.
下愚忽壯士8), 늙은 소인배가 장사의 뜻을 경시하니,
未足論窮通9). 더불어 궁통을 논할 가치가 전혀 없네.
我以一箭書, 나도 한 대의 화살에 편지를 묶어 쏘아,
能取聊城功, 요성을 함락시킬 공을 세울 수 있지만,
終然不受賞, 끝까지 상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羞與時人同10). 세인들과 같아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네.
西歸去直道11), 서쪽으로 돌아가매 곧은길로 가려는데,
落日昏陰虹12). 해질 녘 무지개다리의 그림자가 어둡네.
此去爾勿言13), 이렇게 갈지니 그대는 더 말하지 마오,
甘心如轉蓬14). 쑥처럼 날려도 내 기꺼워 할 것이외다.
1) 五月東魯行答汶上翁(오월동노행답문상옹):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開元 24년(736) 36세에 이백이 처음으로 동로를 유력할 때 지은 것이다. 東魯(동로): 初唐 때 魯郡에서 바뀐 兗州(지금의 산동성 경내)를 가리킨다. 汶上翁(문상옹): ‘汶上’은 바로 汶水(지금의 산동성에 있음)의 상류이다. 시 속의 대답하는 말을 통해 문상옹은 사상이 庸俗하고 식견이 짧아 이백의 품은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노인임을 알 수 있다.
2) 蠶凋桑柘空(잠조상자공): 蠶凋: 누에치기가 이미 끝난 것을 가리킨다. 桑柘: 뽕나무와 산뽕나무. 이 구는 누에치기가 끝나면서 뽕나무에서 따온 뽕잎도 다 먹였다는 의미이다.
3) 機杼鳴簾櫳(기저명렴롱): 機杼: 방직기. 櫳(롱): 창문. 이 구는 베를 자는 베틀과 북의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주렴을 드리운 창문 사이로 새어나온다는 의미이다.
4) 顧余不及仕(고여불급사): 顧: 다만, 단지. 不及仕(불급사): 벼슬길에 나아 갈 수 없다. 이 구는 이백이 25세에 三峽을 거쳐 蜀을 나서 湖北․江蘇․河南․山西 등을 유력하느라 出仕할 기회가 없었음을 나타낸다.
5) 學劍來山東(학검래산동): 이백은 학문과 검술을 익히는 것이 생활 속의 두 가지 취미였다. 이백은 25살부터 10년 동안 여러 곳을 유력하다가 마침내 산동에 정착하게 된다. 이 시에서 말하는 산동은 지금 행정상의 산동 지역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唐代에는 華山 以東의 넓은 지역을 가리켰다. 춘추시기에 齊魯 두 나라의 관할 구역이 바로 이 일대였다. 秦漢 사이에 이곳에서는 朱家와 같은 遊俠之士들이 출현한 적도 있다.
6) 擧鞭訪前塗(거편방전도): 擧鞭은 말을 세우느라 채찍을 드는 것. 訪前塗는 ‘길을 묻다’와 ‘이후의 출로를 이해하다’라는 두 가지 측면의 의미를 지닌다.
7) 獲笑汶上翁(획소문상옹): 이백이 전도에 대해 알아보다가 문수의 한 노인에게 조롱을 당하는 유쾌하지 못한 일을 겪게 된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그 비웃음이 무엇이었는지는 기록해 둔 것이 없다.
8) 下愚忽壯士(하우홀장사): 《論語․陽貨》에 “선천적으로 잘 아는 슬기로운 자와 막혀도 배울 줄 모르는 천치는 서로 바뀌지 않는다.(唯上知與下愚不移.)”라는 구절이 있다. “下愚”는 이백이 자신을 조롱하는 모든 이들에 대하여 경멸하는 호칭으로 쓴 것이며, “汶上翁”도 당연히 그 속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壯士”는 이백 자신에 대한 호칭이다. 이백의 입장에서 보면 “下愚”들은 “壯士”의 포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下愚: 儒家에서는 사람을 세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천성적으로 어리석어 바꿀 수 없는 사람을 “下愚”로 여겼다.
9) 未足論窮通(미족론궁통): “어리석은 이들(下愚)”은 “壯士”의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더불어 “窮通”의 문제 상에서 논의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이다. “窮通”은 “窮達”을 뜻하는데, “達”을 “通”으로 고친 것은 押韻의 필요 때문이다.
10) 我以一箭書, 能取聊城功, 終然不受賞, 羞與時人同(아이일전서, 능취료성공, 종연불수상, 수여시인동): 이 네 구는 이백이 戰國시기 魯仲連의 사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재능과 포부를 비유한 것이다. 이백이 이를 비유로 든 것은 이 고사가 산동에서 발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史記․魯仲連傳》戰國시기에 燕나라의 장수가 齊나라의 聊城을 함락시켰지만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어 연나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후에 제나라의 田燕이 요성을 공격했지만 1년도 안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노중련이 편지를 화살에 묶어 성안으로 쏘아 죽기를 각오하면 출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연나라의 장수가 편지를 보고는 3일 동안 통곡을 하다 자살하였다. 요성이 혼란해지자 田單이 요성을 함락시켰다. 제나라 왕이 노중련에게 작위를 내리려고 하였다. 노중련은 부귀하지만 남에게 굽히고 사느니 빈천하지만 세상을 무시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낫다고 여겨 海上으로 달아났다. 이백은 이 네 구에서 노중련으로 자신을 비유하였다.
11) 西歸去直道(서귀거직도): 이백은 동로로 오기 전에 서쪽 長安을 유력할 계획이었는데, “곧은 길(直道)”을 고수하겠다는 자기 인생의 태도를 묘사한 것이다.
12) 落日昏陰虹(낙일혼음홍): 표면상의 의미는 해가 질 무렵 어두운 무지개 다리의 그림자를 보고 일으킨 연상이다. “陰虹”은 쓰르라미 같은 일종의 벌레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楊齊賢은 李林甫와 楊國忠 같은 간신들이 임금을 가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 구는 이백이 서쪽 장안으로 가서 벼슬을 하려고 하지만 권신들이 득세하여 편할 날이 없는 정치 상황 때문에 여의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13) 此去爾勿言(차거이물언): ‘爾’는 ‘汶上翁’을 가리킨다. 이 구는 문상옹 당신의 말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입을 다물라는 의미이다.
14) 甘心如轉蓬(감심여전봉): 이 구의 의미는 바른 길을 고수하다가 비록 바람에 날리는 쑥처럼 되더라도 달게 받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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