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唐國史補

3. 장안으로 돌아가려는 현종

마장골서생 2009. 9. 1. 19:57

[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3. 장안으로 돌아가려는 현종(玄宗幸長安)1)


현종(玄宗)은 개원(開元) 24년, 당시에 동도(東都)에 머무르고 있었다. 궁중에 괴이한 일이 발생하여 다음날 재상들을 소집하여 서도(西都)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 당시에 재상이었던 배요경(裵耀卿)과 장구령(張九齡)이 현종에게 간언하였다. “백성들의 농사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겨울이 되기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 당시 재상에 갓 임명된 이림보(李林甫)가 현종의 뜻을 간파하고는 신하들의 행렬이 물러갈 즈음 다리를 저는 체 하며 걸었다. 현종이 “다리가 아픈가 본데 어찌 그런고?”라고 묻자 “신은 다리에 병이 있는 것이 아니오라 폐하께 따로 아뢸 것이 있어서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곧 이림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은 폐하의 동궁(東宮)과 서궁(西宮)이 있는 곳입니다. 폐하께서 행차하시는데 어찌 시간을 택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백성들이 농작물을 수확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길가를 끼고 있는 농작물에 대해서만 특별히 세금을 면제해주면 될 것입니다. 신이 법을 시행하는 관리들에게 이 일을 알리도록 허락해주시면 즉시 서궁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종은 크게 기뻐하며 바로 장안으로 수레를 몰았고 다시는 동도 낙양에 가지 않았다. 현종이 장안에 머문 지 한 달만에 배요경과 장구령 두 사람은 파면되었고 우선객(牛仙客)이라는 사람이 재상에 임명되었다.

(玄宗開元二十四年, 時在東都2). 因宮中有怪, 明日召宰相, 欲西幸. 裵稷山3)‧張曲江4)諫曰: “百姓場圃未畢, 請待冬中.” 是時李林甫5)初拜相, 竊知上意, 及班旅6)退, 佯爲蹇步. 上問: “何故脚疾?” 對曰: “臣非脚疾, 願獨奏事.” 乃言: “二京, 陛下東西宮也. 將欲駕幸, 焉用擇時? 假有妨于刈獲, 則獨可蠲免沿路租稅. 臣請宣示有司7), 卽日西幸.” 上大說8), 自此駕至長安, 不復東矣. 旬月9), 耀卿‧九齡俱罷, 而牛仙客10)進焉.)


1) 이 편에서는 이림보(李林甫)의 간사함과 당 현종(玄宗)의 어리석음을 기록한 것으로 풍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현종은 이융기(李隆基)의 묘호(廟號)이고 당명황(唐明皇)으로도 부른다. 처음에 임치왕(臨淄王)에 봉해졌고, 기병하여 위씨(韋氏)를 멸하고 얼마 있지 않아 즉위하였다. 초기는 정치를 잘 했으나 후에는 양귀비(楊貴妃)를 총애하고, 간신 이림보(李林甫)와 양국충(楊國忠)을 임용하여 “안사지란(安史之亂)”을 초래한다. 촉(蜀)땅으로 피난하기도 한다. 재위 44년(712-756). 

 

2) 동도(東都): 낙양(洛陽)은 지금의 하남(河南) 낙양시이다. 당대(唐代)에는 삼도(三都)가 있었는데, 서도(西都)는 장안(長安), 동도는 낙양, 북도(北都)는 지금의 태원(太原)인 진양(晉陽)이다.

 

3) 배직산(裵稷山): 배요경(裵耀卿)을 말하며, 현종 때 재상을 지냈다. 그는 강주(絳州) 직산[稷山: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직산현(稷山縣)] 사람이다. 고대에는 항상 적관(籍貫)을 이름으로 삼았는데, “읍호(邑號)”라고 했다. 그래서 배직산이라고 한 것이다.

 

4) 장곡강(張曲江): 장구령(張九齡)을 말하며 현종 시기에 재상을 지냈다. 그는 소주(韶州) 곡강(曲江: 지금의 廣東省 韶關 西南쪽) 사람이다. 그래서 장곡강이라고 한 것이다.

 

5) 이림보(李林甫): 현종 때의 재상(宰相)으로 19년 동안 조정에 있으면서 권력을 전횡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면전에서는 아주 좋은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뒤에서 모함을 해대어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입에는 꿀을 머금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구밀복검(口蜜腹劍)”고 하였다.

 

6) 반려(班旅): 조정 대신들의 대열을 가리킨다.

 

7) 유사(有司): 관리(官吏)이다.

 

8) 열(說): “열(悅)”과 통하며,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9) 순월(旬月): 만 1개월을 말한다.

 

10) 우선객(牛仙客): 현종 때의 재상으로, 순고(鶉觚: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영대(靈臺)] 사람이다. 처음에는 현의 말단관리로 있었으나 사람됨이 청렴결백하여 후에 유국공(幽國公)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