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이조 지음 / 이상천 옮김 《당국사보(唐國史補)》, 학고방출판사, 2006.
2. 최호가 만나려던 이옹(崔顥見李邕)
최호(崔顥)에게 명성이 있었는데, 이옹이 한 번 만나고 싶어 대문을 열어두고 그를 맞이하려고 하였다. 마침내 최호가 당도하여 시를 지어 바쳤는데, 그 첫 구절에 “열다섯 살에 왕창에게 시집갔네”라고 쓰여있었다. 이옹은 호통을 치기 시작하며 “어린 친구가 무례하군!”라고 하고는 최호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崔顥1)有美名, 李邕2)欲一見, 開館待之. 及顥至, 獻文, 首章曰: “十五嫁王昌3).” 邕叱起曰: “小子無禮!” 乃不接之.)
1) 최호(崔顥): 당 변주(汴州)사람으로 개원(開元) 연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문장력은 있었으나 행실이 바르지 못했다고 한다. 도박과 술을 좋아하고, 아내를 얻었다가 잘 생긴 여자만 보면 바로 버리는 등 너 댓 번의 장가를 들었다고 한다.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이라는 벼슬로 생을 마쳤다. 일찍이 황학루(黃鶴樓)를 지나다 지은 시가 절창이어서 이백(李白)도 보고서 찬탄해 마지않았다고 하는 일화가 전한다. 《신당서》권203과 《구당서》권190하에 그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2) 이옹(李邕): 당 때 서예가이자 문학가이다. 자는 태화(泰和), 광릉(廣陵)의 강도(江都)사람이다. 이선(李善)의 아들로 이교(李嶠)의 천거를 받아 좌습유(左拾遺)가 된다. 공부랑중(工部郞中)에 발탁되지만 괄주사마(括州司馬)로 강등되었다 다시 진주자사(陳州刺史)로 전임된다. 천보(天寶) 초에 북해태수(北海太守)를 지냈으므로 세칭 “이북해(李北海)”라고 하였다. 이백과 두보(杜甫)도 그를 칭송하였다고 한다.
3) 왕창(王昌): 당나라 사람으로 자가 공백(公伯)이다. 관직이 산기상시(散騎常侍)였으며, 훌륭한 외모로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열다섯 살에 왕창에게 시집갔네(十五嫁王昌)”는 최호가 지은 《왕씨 댁의 어린 며느리(王家少婦)》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전당시(全唐詩)》권130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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