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원흉?
미국이 한반도에서 미군과 소련군 간의 군사분계선으로 38선을 책정한 것은 이론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38선을 책정한 사실이 곧 한반도 분단에 대한 미국의 책임으로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38선 획정만 하더라도 미국의 일방적 선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 합의해서 이뤄진 것이다. 만일 소련이 38선을 미․소간의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하는 데 반대했더라면 38선은 양측간의 군사분계선으로 획정될 수 없었다. 소련은 38선 문제에 대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동의했다. 따라서 만일 38선의 책정이 한반도 분단의 원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의 책임이 아니라 미․소의 공동책임이 되는 것이다.
여러 나라의 예를 볼 때 군사분계선이 곧 국토 분단선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군사분계선이 어떤 나라의 국토에서 활동하는 외국 군대들 간의 군사활동 분계선으로만 멈추고 거주민들의 생활이나 정치활동의 분리선으로 변질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것이 국토 분단을 초래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서독지역의 미ㆍ영ㆍ불 군대 간의 군사분계선이나 오스트리아에서 미ㆍ소ㆍ영ㆍ불 군대 간의 군사분계선은 그 지역의 국토 분단을 유발하지 않았다. 1990년대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된 여러 나라들에서 유엔군으로 참여한 각국 군대 간의 군사분계선도 마찬가지다.
군사분계선이 국토 분단을 초래하는 것은 외국 군대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자기들의 관할 하에 있는 지역과 여타 지역간의 교통․통신망을 단절시키고 그 지역 주민의 생활방식을 여타 지역 주민의 생활방식과 상이하게 만들 경우에 한정된다. 해방 직후 남한지역을 점령한 미국은 38선을 순수한 군사분계선으로 유지하려 했던 데 반해 북한지역을 점령한 소련은 38선을 통치분계선으로 변질시켰다.
소련군은 북한지역을 점령하자마자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한지역과의 교통ㆍ통신을 단절하여 남북 주민들 간의 자유로운 통신ㆍ통행을 금지했다. 소련군은 이어 김일성을 앞세워 북한지역에서 토지개혁ㆍ산업 국유화ㆍ교육개혁ㆍ주민 사상 개조운동 등을 실시하여 북한 주민의 생활방식을 남한주민의 생활방식과 완전히 다르게 변질시켰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미ㆍ소공동위원회를 비롯하여 몇 차례에 걸쳐 38선을 경계로 단절된 남북한간의 교통ㆍ통신을 회복하고 남북한 주민간의 자유 왕래와 자유로운 상거래 등을 회복할 것을 소련군에게 제의했으나 소련군은 일체 응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기준으로 할 때, 한반도 분단을 초래한 책임은 38선이란 군사분계선을 제안한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분계선으로 설정된 38선을 통치분계선으로 변질시킨 소련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1945~1948년 사이 미국의 한반도정책 및 남한에 대한 정책을 분석해 보면 어느 구석에도 남한을 식민지화․군사기지화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없다. 미국은 처음부터 남한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미국은 남한이 미군을 주둔시켜야 할 전략적 가치가 없는 지 역이며 극동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남한주둔 미군은 군사적 부담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미국은 처음엔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는 것을 저지하려 했고, 그것이 저지된 다음에는 한반도 전체가 소련의 위성국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고만 했다. 미국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한반도에 좌우연립 통일정부가 수립되고 나면 남한지역에서 조속히 군대를 철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정부 구성이 불가능해지자 더 이상 헛돈을 쓰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남한에 정부를 수립해놓고 남한 주둔 미군을 조속히 철수하고자 했다. 이 사실은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주한미군의 주둔 지속을 간곡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서둘러 미군을 철수한 사실에서 잘 확인된다.
양동안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이 글은 양동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대한민국 건국사≫(이승만 박사 기념사업 출판사업부) 중에서 정리한 것임.
입력날짜 : 2006-04-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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