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文史哲/韓國歷史

이두(吏頭)

마장골서생 2009. 7. 15. 21:01

이두(吏頭)

 

이두(吏頭) ․이토(吏吐) ․이투(吏套)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호칭은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는 쓰이지 않은 듯하며 고려시대에 들어와 점차 공문서나 관용문에 쓰이면서 생긴 명칭인 듯하다.


이두는 넓은 의미로는 한자차용표기법(漢字借用表記法) 전체를 가리키며 향찰(鄕札) ․구결(口訣) 및 삼국시대의 고유명사 표기 등을 총칭하여 향찰식 이두 또는 구결식 이두 등의 말로 쓰이기도 하나, 좁은 의미로는 한자를 한국어의 문장구성법에 따라 고치고(이를 통칭 誓記體表記라고 한다) 이에 토를 붙인 것에 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두는 신라 초기부터 발달(儒理王 때의 辛熱樂, 脫解王 때의 突阿樂 등)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체로 의미부(意味部)는 한자의 훈을 취하고 형태부(形態部)는 음을 취하여 특히 곡용(曲用)이나 활용(活用)에 나타나는 조사나 어미를 표기하였다. 이두를 이러한 요소들의 명칭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의 표기는 한국어 문장 전체를 표기하게 되는 향찰에 와서 그 표기의 난숙기를 이룬다.


《서동요(薯童謠)》 《혜성가(彗星歌)》가 진평왕(재위 579~632) 때의 작품이므로 6세기경에는 그 표기법이 고정된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이 창제될 때까지는 한문번역의 구실도 하였으며,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는 그 쓰임이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소송문 ․고시문 ․보고서 등의 관용문에는 여전히 쓰였으며 조선 후기의 영 ․정조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두를 창안한 사람이 설총(薛聰)이라고 하나 《서동요》나 《혜성가》의 제작연대가 6세기경이라는 것과 이두의 표기가 보이는 경주의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591) 및 설총이 신문왕(재위 681~691) 때의 사람이라는 사실로 보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두 사용의 한 예를 들면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권6, 호율(戶律) 남녀혼인조(男女婚姻條)의 ??凡男女定婚之初 若有殘疾 ․老幼 ․庶出 ․過房 ․乞養者 務要兩家明白通知 各從所願 寫立婚書 依禮嫂嫁 若許嫁女已報婚書及私約??을 이두로 ??凡男女定婚之初良中 萬一殘疾 ․老弱及妾妻子息 ․收養子息等乙 兩邊戈只 仔細相知疾爲良只 各從所願以 婚書相送 依例結族爲乎矣 女家亦 婚書乙 曾只通報爲 私丁音定約爲遣??라 해석하였다.


이는 원문을 번역한 번역문의 구실도 하며 밑줄 그은 부분이 형태부를 나타낸 것으로 그 읽는 법과 뜻은 다음과 같다. 良中 → 아 ․아에 ․아의(~에, 處格을 나타내는 말)/等乙 → 들을(??들??은 複數接尾辭),??을??은목적격)/戈只 → 이, 익기(??이?? 또는 ??n??의 뜻으로 主格을 나타내는 말)/爲良只 → 얏기(??하여??와 같은 뜻)/以 → 으로(造格의 뜻)/爲乎矣 → 오되(하되)/亦 → 여, 이(여기서는 주격을 나타내는 말로 쓰임)/曾只 → 일지기(현대어와 같음)/爲 → 며(하며)/私丁音 → 사사로이, 아뎌(현대어와 같음)/爲遣 → 고(하고).


대개 이두는 토씨 정도에나 쓰이는 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글자에 쓰이는 모든 발음을 활용하고 있다. 훈과 독 모두 활용된다. 그리고 자음까지도 활용하여 수수께끼같은 글을 짓는 것이다. 이두는 한민족 고유의 글이며 한자의 본래 쓰임새이다. 뜻글자이면서 소리글자인 것이다. 소리의 역할이 뜻 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어느 때부터인가 한자가 중국글자가 되어서 역사가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옛 한자서는 100% 이두이다. 오래된 글일수록 이두이다. 이런 이두문을 중국 글자로 해석하니 신화가 되는 것이다. 한자로 된 한 줄은 최소한 10개 이상의 풀이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자의 훈독은 순서를 바꾸어서도 읽어야 한다. 天은 하늘 천이라고도 읽어 해석하고 천 하늘이라고도 읽어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천자문 첫 머리를 예로 보자.


天地玄黃[천지현황] 宇宙洪荒[우주홍황]=천 하늘[하늘 천] + 지 땅[땅 지] + 현 검을[검을 현] + 황 누르[누르 황] + 우 집 [집우]+ 주 집[집 주] + 홍 넓을[넓을 홍] + 황 거칠[거칠 황]


[풀이 1][뜻글자로 풀이] 하늘과 땅은 검고 누렇다. 우주는 넓고 거칠다.==>[내재된 의미 해석] 백두산은 불굴이 있어 검고 중국 땅은 똥색이며, 가생이 나라 조선의 신부 신라는 넓고 거칠다.


[풀이 2] 하늘 땅에  거물이 눌러  집집마다 널리 거칠어졌다.=백두산에 불굴이 폭발해서 눌러 덮치니 고을이 모두 황폐해졌다.


[풀이 3] 천 하늘[백두산] 지 땅[부여]에는 현 거물[불굴]이 있어 유황으로 누르스름하였다. 우지지직 홍수[붉은 물,용암] 널리 퍼지니 황폐하여 거칠어졌다.


[풀이 4]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 박 긁어서 = 1) 천지 가마솥의 화산불을 긁어냈다. 2) 천산에 널려있던 보물을 줏었다.


[풀이 5] 천 하늘 지 땅에 현 왕자가 황제 누르[누렁이,왕검]이다.  윗 집[불굴] 주재하니 환하게 널리 걷히었다.


[풀이 6] 한단[천산, 바이칼]의 현 왕자가 황제 누르[누렁이,길 임금, 바리데기]]이다. 윗 집[신라]에서 주재하니 홍홍  널리 거치었다[나라가 커졌다].


[풀이 7] 하늘 川[압록강, 두만강]이 땅 속으로 흘러 가니 강물'한'이다. 누런 벼 지어 주어 널고 걷히게 하였다.


[풀이 8] 하 늘어진 川[황하]을 땅에 지으니 현으로 꾸불꾸불한 강물이다. 누렇고 어리석은(愚, 어리석을 우) 치우가 집어 잡으니 살모사(虹, 무지개 홍) 되어 널리 거칠어졌다.


[풀이 9] 하늘천[비단]은 단지[항아리] '한가위'[바이칼]에서 누에를 주관하여 집집마다 키워 널리 비단길[鴻, 큰기러기 홍]을 거쳐 팔았다.


[풀이 10] 현대에 와서는 '음담패설'이므로 생략한다. 노골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풀이 11] 한단[바이칼]에 '꼬꼬'[병아리]는 노랗다. 집집마다 널리 치었다.


이 문장의 기존 풀이는 "하늘과 땅사이는 넓고 커서 끝이 없은즉 세상이 넓음"이다. 그러나 보라 분명히 본래의 단어 뜻은 사라지고 누군가가 밥벌이하느라 작문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본 뜻은 문자 그대로 해석이 되며 "하늘과 땅은 검고 누렇다. 우주는 넓고 거칠다."라는 뜻이다.


천자문의 저자는 하룻밤 사이에 글을 짓고 머리가 희어 졌다고 하는데, 얼마나 공갈이 심한가 어찌 하룻밤에 천자문을 짓겠는가. 그러나 이 땅과 중국의 모든 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이두문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 지어지는 것으로 하룻밤에는 불가능하고, 천자문을 지으려면 수년을 고심해야 한다. 검은머리 청년이 머리가 흰 할아버지가 되도록 고생해야 지어지는 것이다. 천자문은 중국 남조 梁의 주홍사가 동진의 왕희지의 글 중에서 모아서 글자가 모두 다른 1000개의 글자로 지었다고 한다.


노자 같은 대 문장이라도 하룻밤에는 어림없다. 위의 3 풀이 중에 3번째는 사람들이 장난  삼아 부르는 노래이다. 그러나 이두식 사고로 보면 엉터리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 현 거믈이 무엇인지 답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결코 장난으로 전해오는 천자문 타령이 아닌 것이다. 가마솥이란 바로 백두산 꼭대기의 불구멍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노고 끝에 만들어진 우리 선조의 글을 하룻밤 글로 폄하하고 내동댕이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 유학자들의 큰 폐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개 옛 저자들은 많은 글을 남기지 못하였다. 짧아 보이는 문장이지만 풀어놓고 보면 그 분량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옛 글은 모두 이두이고, 공맹도 이두로 지은 것이 분명하다. 그 글들 속에는 중국인이 알지 못하는 토씨라는 개념이 수도 없이 박혀있다. 어떻게 저자가 머릿속에 개념이 없는 토씨를 쓰겠는가? 가장 기본적인 의문조차 품지 않고 중국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유학자인 것이다.

 

이두는 일제시대까지 존속한 것이 분명하며, 현대에 와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분명히 이두문이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고종이 만든 국호 대한제국과 태극기가 그 증명이다. 대한은 알지와 왕검 시대의 국호이고, 태극기는 有라는 글자를 그림 이두로 표현한 것이다. 이두가 없으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찰은 언젠가 별도로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