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雜談/大學故事

논문인지,지도교수 위인전인지…

마장골서생 2009. 3. 7. 17:16

[무용계 석박사 논문 요지경 실태]

논문인지,지도교수 위인전인지…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8.04.14 20:58

 

'어려서 갖은 고생을 다하지만 꿋꿋하게 역경을 이겨낸다' '타고난 재능을 갈고 닦아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된다' '역사는 스승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초등학생 때 읽었을 법한 위인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무용학과 학위 논문들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투적인 표현들이다. 제자가 스승을 주인공으로 삼아 '위인전'식 논문을 작성해 버젓이 학위 논문으로 제출하고 스승이 그 논문을 심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교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비범"=본보가 검토한 논문의 저자들은 자신의 지도교수가 살아온 과정과 역경 등을 감동적인 일대기 형식으로 다뤘다. 숙명여대 졸업생인 권모씨는 2004년 자신의 지도교수를 주제로 한 석사학위 논문 '정재만의 창작 작품에 내재된 전통적 성향 연구'를 제출했다. 권씨는 '정재만 전통춤의 전승 배경'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스승의 어린 시절에 대해 "(정 교수는) 어려서부터 여느 아이와는 다르게 예능 분야의 기질이 역력했다" "동네 굿판을 보고들은 것을 집에서 혼자 모방해보고 연습했다"고 기술했다.

또 정 교수의 학문적 열정에 대한 헌사는 낯뜨거울 정도다. 저자는 스승의 학창 시절에 대해 "궂은 일도 마다않고 춤을 위해 고생했던 시절을 보냈으며,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도 전통무용을 학습하고 대학 교육을 받으며 쉴 틈 없이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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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 서모씨도 2006년 작성한 '정재만류 승무 춤사위 연구분석'에서 논문 작성 목적을 '지도교수의 숭고한 정신을 부각시켜 후세에까지 전승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논문을 쓴 이유 자체가 지도교수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대놓고 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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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서는 "당대 춤계의 가장 큰 별이었던 한영숙은 민속춤을 예술로 승화시킨 자신의 할아버지 한성준을 닮은 제자로 정재만을 꼽으며 극찬했다"며 정 교수와 그 스승의 일화를 '전설'처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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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유모씨가 작성한 논문 '김말애 춤세계 연구' '김말애의 생애와 작품활동' 장도 스승에 대한 찬양 수준이 비슷하다.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무용을 시킨 어머님의 공으로 전국 아동무용 경연대회에서 입상할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김 교수의 스승은 어릴 적 김 교수에게) '어찌나 춤을 잘 추던지'라며 칭찬했고, 무용계의 거봉이라 지칭되던 조택원은 '너는 스승을 능가하는 무용가가 돼라'는 격려의 글을 발표했다"고 서술했다. "(김 교수는) 30대 중반에 척추를 다치는 불행을 당했다. 이러한 시련은 그녀를 더욱 강하고 성숙되며 진정한 무용가가 될 수 있는 전환점의 계기가 됐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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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작품은 천상의 예술"=이화여대 신모씨는 2005년 작성한 '김영희 작품세계에 나타난 총체 예술적 성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다른 사람은 흉내낼 수 없는 김영희만의 무대 스타일로서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으로 인정받아 좀더 발전적인 형태로 보여지고 있다"면서 "창작춤 운동은 내적인 측면에서 '김영희 이전' '김영희 이후'로 나누어볼 수 있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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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작품을 통해 한국적 현대무용의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 논문도 있다. 한양대 최모씨의 2002년 논문 '김복희 작품세계에 나타난 한국적 현대무용에 관한 연구'에서 저자는 "신념을 꺾지 않고 명맥을 유지한 안무가 김복희의 작품 주제 선정의 방법과 작품의 전개과정 등을 분석하여 한국적 현대무용의 완성도를 알아본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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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모씨는 2006년 작성한 '정재만류 승무 춤사위 연구분석'에서 "(정재만의) 승무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고 멋 있는 춤"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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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최모씨의 올해 논문 '한국 창작춤에 있어서 무속의 죽음관에 관한 연구'도 스승의 작품을 '한국 창작춤의 대표'로 평했다. 최씨는 논문에서 "김영희 안무의 '어디만치 왔니'는 무속의 죽음관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80년대 한국 창작춤을 대표하는 작품에 속한다" "이 작품은 9명의 군무가 거의 완벽하게 표현돼 죽음을 현대적인 의식으로 재음미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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