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天有 著 / 李商千 譯, <中國古代官制>, 학고방, 2006.
一、선진(先秦)의 관제(官制)
1. 하조(夏朝)의 관제
중국 고대 관제의 역사는 유구하여, 그 원류는 원시사회 후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사(古史)에서 말하는 전문(傳聞)시대로서 그 때에 이미 관(官)의 맹아기가 있었다. 예를 들면 황제(黃帝)시기에 황제는 구름을 관으로 삼았고, 염제(炎帝)는 불을 관으로 삼았으며, 태호(太昊)는 용을 관으로 삼았다. 요순(堯舜)시대에 이르러 관명(官名)은 점점 많아졌다. 기록에 의하면 순(舜)임금은 우(禹)에게 수리를, 기(棄)에게 농사를, 수(垂)에게 백공(百工)을, 익(益)에게 산림과 못을, 계(契)는 교화를, 고요(皐陶)에게 형벌을, 백이(伯夷)에게 제사를, 용(龍)에게 명령의 발포 등을 관리하도록 명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사회 생산력에 일정한 발전이 있었고, 계급 분화와 대립이 이미 출현했으며, 사회를 압도하는 권력기관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관제는 바로 최초의 국가 정권의 발생을 따라서 출현한 것이다.
중국 국가 정권 형성의 상징은 세습왕조의 확립이다. 하(夏) 왕조(기원전 21세기-기원전 17세기)는 중국의 첫 번째 세습왕조이며, 최초의 노예제국가(奴隸制國家)이기도 하다. 하 왕조의 건립 초기에는 최고 통치자를 “후(后)”라고 칭하다가 후에 “왕(王)”이라고 하였다. “후”자의 본의(本意)는 생육(生育)이며, 조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도 한데, 하 왕조가 막 원시 사회 씨족 조직에서 탈태(脫胎)되어 나왔고, 최고 통치자가 조종(祖宗)의 신분으로 권력을 행사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왕”자의 본의는 동중서(董仲舒)의 분석에 의하면 삼횡(三橫)은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내고, 일수(一豎)는 이 셋 사이를 관통한 사람으로 바로 왕인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왕이란 천하가 귀의하는 것이다(王, 天下之所歸也)”라고 했는데, 천하가 왕에게 심복 한다는 의미인데, 왕은 인간 최고 권력의 대표자라는 것이다. 하 왕조는 우(禹)임금에서 걸(桀)왕까지 열일곱 명의 왕이 있었다.
왕 아래 가장 중요한 관(官)은 “삼정(三正)”과 “육사지인(六事之人)”이었다. “정(正)”은 관리의 통칭이다. 하 왕조에 거정(車正)이 있었는데 거복(車服)을 관리하였고, 포정(庖正)이 음식을 관장하였으며, 목정(牧正)이 목축(牧畜)을 관장하였는데, 모두 직접 왕실을 위해 일하는 관리들이었다. 삼정은 이런 정과는 달리 고위층의 관장(官長)을 가리키며, 정사(政事)를 주관하는데, 통상 두 세 사람이 있다. 육사지인은 늘 왕의 좌우에 있으며, 지위도 아주 높아서 전쟁이 있을 때 왕을 대신하여 군대를 통솔할 수 있었다.
이밖에 비교적 중요한 관으로는 또 주인(遒人)、색부(嗇夫)、대리(大理)、태사(太史)、희화(羲和)、고(瞽)、관사(官師) 등이 있었다.
주인은 왕의 근신(近臣)으로, 주로 왕명의 하달과 정령(政令)의 선포를 책임진다. 동시에 의견을 구하고, 아래의 상황을 위로 전달하는 책임도 겸하였다.
색부는 국가 경제 권력을 집행하는 관원이다. 농업의 잉여 생산물을 거두어들이는 책임을 졌다.
대리는 사법 직능을 지니고 있는 관원이다. 형옥(刑獄)을 관장하고 소송(訴訟)을 조정하였다.
태사는 사관(史官)이다. 기사(記事)와 서책(書冊)을 관장하였다.
희화는 역법(曆法)을 관장하는 관원이었다.
고는 악사(樂師)이다. 제사와 왕이 오락 할 때의 음악을 관장하였다.
관사는 “교(校)” 즉, 학교의 교관이다. 왕에게 규간(規諫)하는 책무도 있었다.
하 왕조에 이미 지역에 따라 행정구역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목(牧)”은 각 행정구로 파견되어 가서 공부(貢賦)를 징수하는 관원이었다. 그러나 하 왕조의 통치 아래 여전히 많은 부족 즉, 갈(葛)、위(韋)、고(顧)、곤오(昆吾)、상(商)、주(周)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부족들의 수령을 대부분 “백(伯)”이라고 칭했는데, “무슨 무슨 씨(某某氏)”라고 칭하기도 했다. 전하는 말에 “우임금이 도산에서 제후들을 만났는데, 옥과 비단을 가진 자들이 만국이나 되었다(禹會諸侯于涂山, 執玉帛者萬國)”고 하고, 또 다른 대회(大會)에서 “방풍씨가 나중에 도착하자 우임금은 그를 죽였다(防風氏後至, 禹殺而戮之)”[《국어(國語)․노어하(魯語下)》]고 하였다. 하왕(夏王) 분(芬) 때는 “아홉 오랑캐가 와서 노역에 참가하였다(九夷來御)”고 하였다. 하왕 망(芒) 때는 “아홉 오랑캐들에게 명하여 큰바다에서 사냥하게 하여 큰 고기를 잡았다(命九夷, 狩大海, 獲大魚)”[《죽서기년(竹書紀年)》]고 한다. 이러한 기록은 모두 각 부족과 하 왕조와의 예속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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