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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파오 입은 여승무원, 시속 300 징후 고속철

마장골서생 2011. 7. 2. 22:57

징후(베이징-상하이) 고속철

 

▲ 징후고속철에 투입될 고속열차가 상하이훙차오역에 서 있다. photo 블룸버그

 

“아침에 자금성을 둘러보고, 오후에 푸둥(浦東)을 거닌다.” 세계 최장 징후(京滬·베이징~상하이)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중국에 나도는 말이다. 6월 30일,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를 달릴 징후고속철이 개통을 앞두고 있다. 오는 6월 30일 오후 3시부터 운행 예정인 1318㎞의 징후고속철은 수(隋)양제의 대운하에 비견되는 초대형 프로젝트. 모두 2209억4000만위안(약 40조원)의 공사비가 투입됐다.
   
   1794㎞의 경항(京杭·베이징~항저우) 대운하와 노선이 비슷한 징후고속철은 중국의 양대 경제권인 환발해만(環渤海灣)과 장강(長江)삼각주를 남북으로 관통하게 된다. 고속열차는 베이징~상하이 간 1318㎞의 고속선로를 최대 시속 300㎞로 주파하게 된다. 기존 열차로 11시간 가까이 걸리던 베이징~상하이 구간은 고속철 개통으로 최대 4시간48분으로 줄어들게 됐다.
   
   베이징남역을 시종착역으로 하는 징후고속철은 톈진(天津)과 지난(濟南), 쉬저우(徐州), 난징(南京), 우시(無錫), 쑤저우(蘇州)를 지나 상하이에 이른다. 3개 직할시(베이징·톈진·상하이)를 연결하고 허베이(河北)·산둥(山東)·안후이(安徽)·장쑤(江蘇) 4개 성을 통과한다. 또 해하(海河)·황하(黃河)·회하(淮河)·장강(長江) 등 4개 강을 가로지른다.
   
   징후고속철의 정차역은 모두 24곳. 이 중 5곳은 시종착역이고, 19곳은 중간 정차역이다. 징후고속철이 통과하는 곳은 중국 전체면적에서 6.5%에 불과하지만 차지하는 인구는 26.7%,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3%에 달한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인구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만 11개를 지나게 된다. 베이징~상하이 간은 하루 90편의 열차가 운행될 예정이다.
   
   
   국내선 항공사들 긴장
   
   진(秦)시황의 만리장성과 수양제의 대운하처럼 징후고속철 역시 순차적으로 완공됐다. 2008년 8월 1일,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톈진 간 징진(京津)고속철이 개통된 데 이어, 지난해 7월 1일에는 상하이엑스포를 앞두고 상하이~난징 간 후닝(滬寧)고속철이 개통됐다. 징후고속철은 고속선로가 없던 톈진에서 난징에 이르는 미개통 구간을 연결한 것이다.
   
   베이징~상하이 간 고속선로에는 시속 300㎞의 G열차와 시속 250㎞의 D열차 등 두 종류의 고속열차가 투입된다. 중국 철도당국은 고속철 테러방지와 암표 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열차표 실명제도 전격 도입했다. 고속철 탑승자들은 항공권을 구매할 때처럼 신분증을 제시한 다음 이름이 인쇄된 열차표를 구매해야 한다. 외국인의 경우도 여권 같은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표를 구매할 수 있다.
   
   16개 차량을 한 편성으로 해 달리는 징후고속철의 좌석은 2등석과 1등석, VIP석(관광석 포함) 3개로 분산 배치됐다. 열차표 가격은 시속 300㎞ G열차의 경우 555위안(약 9만9000원·2등석), 935위안(1등석), 1750위안(VIP석·관광석) 등으로 책정됐다. 시속 250㎞의 D열차는 이보다 낮은 410위안(2등석), 650위안(1등석) 등으로 G열차보다 저렴하게 정해졌다.
   
   징후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항공사들이 긴장하는 기색도 역력하다. 베이징~상하이 구간의 항공권은 이코노미석 기준으로 1000위안(약 18만원, 유류할증료 포함) 내외에 운임이 형성돼 있다. 베이징~상하이 간 비행시간은 2시간10분가량이지만, 중국 항공사들은 빈번한 탑승지연과 결항으로 악명이 높다. 또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은 시내에서 1시간 거리의 외곽에 있다.

 

 

▲ 징후고속열차의 VIP석

 

고속열차 첫 좌변기 등장

 

징후고속철의 좌석은 비행기를 방불케 한다. 과거 중국 열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침대칸을 없앴다. 대신 가운데 통로를 기준으로 2등석은 5열, 1등석은 4열, VIP석은 3열로 좌석을 구성했다. 2등석은 838석, 1등석은 156석, VIP석은 28석을 확보했다. 특히 조종석 바로 뒤의 관광석에는 투명유리를 통해 기관사가 열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3번째 차량에 배치된 1등석에는 중대형 항공기 비즈니스석에서나 보던 계란형 좌석을 설치했다. 개인용 액정 모니터를 갖춘 계란형 좌석은 좌석이 180도로 펴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 5번째 차량은 장애인 전용칸, 9번째 차량은 식당칸으로 구성했다. 중국 철도부는 “소수민족인 후이족(回族)과 위구르족(維吾爾族)을 위해 이슬람 식단도 준비했다”고 밝혔다.
   
   중국 열차로는 이례적으로 앉은 자세로 용변을 볼 수 있는 수세식 좌변기를 탑재한 것도 징후고속철의 특징이다. 기존 열차에는 쪼그리고 앉아서 용변을 보는 재래식 좌변기가 설치돼 있다. 이에 외국인 열차이용객들은 화장실 이용에 적지 않은 불편을 호소해 왔다. 중국 철도부는 “동서양의 습관을 존중해 동양식과 서양식 좌변기를 모두 설치했다”고 밝혔다.
   
   또 징후고속철에는 짙은 남색의 치파오(旗袍)를 착용한 ‘가오제(高姐)’라는 여승무원이 탑승하게 된다. 중국 철도당국은 19~22세의 키 165㎝ 이상의 미모의 여승무원을 엄선해 매 편당 4명의 여승무원을 투입한다. 징후고속철에 투입되는 여승무원들은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과 보통화(표준어) 2급, 영어 3급 이상의 언어능력을 갖췄다.
   
   특히 고속철 여승무원들은 고속철이 통과하는 직할시와 성의 인문·지리·역사 등을 700자 내외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격조건까지 요구받았다. 또 징후고속철에는 이들 열차승무원과 별도로 청소전담요원 5명이 탑승한다. 과거에는 열차승무원이 열차 내 화장실 청소까지 담당했었다. 이제 ‘가오제’들은 열차 고객 서비스에만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시종착역 베이징남역 세계 최대
   
   징후고속철의 시발역인 베이징남역은 세계 최대 기차역으로 등재됐다. 베이징남역의 전신은 청(淸) 말기인 1897년 처음 지어진 마가보(馬家堡)역이다. 마가보역은 청 말 영국인이 설계한 베이징 최초의 기차역이다. 1902년 의화단의 난으로 8국 연합군이 자금성과 원명원을 유린할 때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도망갔던 서태후와 광서제는 마가보역을 통해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이후 마가보역은 청 말기인 1902년 영정문(永定門)역으로 개명했다. 영정문은 베이징의 황성(皇城)인 자금성을 둘러싸는 외성(外城)의 남대문이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이후 농촌 출신의 농민공들은 영정문역을 통해 베이징으로 입성했다. 고급열차는 시내 베이징역으로 들어가고, 표값이 저렴한 저속열차가 영정문역에 기착했기 때문이다.
   
   베이징남역이란 지금의 이름은 1988년에 붙었다. 베이징남역은 2006년에 역사 리모델링에 착수해 2008년 8월 1일, 베이징올림픽(2008년 8월 8일) 개막을 앞두고 재개장했다. 지상 2층, 지하 3층의 베이징남역은 부지면적 49만㎡, 연면적 42만㎡로 초대형 비행접시를 연상케 한다. 13개 플랫폼에 24개 선로를 갖춰 기존의 베이징역과 베이징서역을 능가하는 규모다.
   
   징후고속철 개통은 100년간의 중국 철도지도를 바꾸는 의미도 있다. 당초 중국 철도는 상하이가 아닌 ‘중국의 배꼽’에 해당하는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을 잇는 징한(京漢)철로를 주축으로 설계됐다. 1905년 개통된 징한철로는 신해혁명(1911년)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베이징 시발 고속철이 우한보다 앞서 상하이에 들어오면서 철도교통의 중심축이 상하이로 이동한 셈이다.

 

▲ 남색 치파오를 입은 여승무원과 조종석이 바라보이는 관광석.


테러 대비 열차표 실명제

상하이는 이미 고속철 전용역인 상하이훙차오(虹橋)역 정비를 끝마친 상태다. 상하이훙차오역은 공항(훙차오공항), 장거리버스터미널, 고속도로와 지하철이 한데 결합된 화동(華東)지방의 최대 기차역으로, 16개 플랫폼에 30개 선로를 확보했다. 훙차오역은 징후고속철 개통에 앞서 지난해 7월부터 난징과 항저우행 고속철의 시종착역으로 이용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징후고속철 개통으로 자국의 물류경쟁력이 배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징후고속철 개통에 따라 기존의 베이징~상하이 간 징후철로는 화물전용철도로 전환될 예정이다. 총연장 1463㎞의 징후철로는 1968년 난징 장강대교의 개통과 함께 부설됐다. 하지만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는 막대한 철도물동량으로 인해 선로용량 부족을 호소해왔다.
   
   징후고속철 개통과 함께 철도 소프트웨어 정비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부터 열차표 실명제를 시작한 데 이어, 지난 6월 12일부터는 열차표의 온라인 발매도 시작했다. 중국은 그간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발매가 안돼 기차역이나 여행사에서 열차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야 했다. 중국 철도당국은 “연내 모든 열차에 온라인 발매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징후고속철은 상하이를 지나 선전과 홍콩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미 상하이에서 저장성 항저우까지는 고속선로를 갖춘 상태다. 이에 일부 고속열차는 베이징에서 항저우로 직행한다. 저장성 닝보(寧波)에서 출발해 푸젠성(福建省) 샤먼(厦門)까지 동남연해고속선도 갖추고 있다. 항저우~닝보 구간만 정비하면 고속열차가 대만과 마주한 샤먼까지 내달릴 수 있는 셈이다.

   징후고속철은 ‘부패철’?
   
   하지만 징후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고속열차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 2월 터진 중국 철도부의 초대형 부패스캔들이 그 까닭이다. 류즈쥔(劉志軍) 전 철도부장은 고속철 장비업체인 보여우(博宥)그룹 등으로부터 100억위안(약 1조8000억원) 규모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낙마했다. 한 현지 언론은 “류 부장의 정부(情婦)만 18명에 달한다”고 폭로했다.
   
   앞서 류즈쥔 전 부장의 동생인 류즈샹(劉志祥) 전 우한철로분국 부국장도 2006년 뇌물수수, 불법자금은닉(약 72억원), 살인청부 혐의로 사형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류 전 부장은 친동생인 류즈샹을 한커우(漢口)역 역장, 우한철로분국 부국장으로 중용해왔다. 동생(류즈샹)에게 제공된 뇌물까지 합할 경우 류즈쥔의 부패 규모는 중국 역사상 최대란 평가다.
   
   류즈쥔 전 부장은 철로수리공 출신으로 중국 고속철의 아버지 격이다. 1996년부터 2011년 2월까지 철도부 부부장, 부장(장관)으로 재직해왔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터지자 고속철 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입안해 사실상 주도했다. 하지만 류즈쥔의 낙마와 함께 중국 고속철은 자재를 빼먹거나 저질 자재를 사용했을 가능성으로 ‘두부철’이란 비아냥마저 나온다.   
   
 

▲ 징후고속철의 시종착역인 베이징남역.

 

   380㎞ 설계에서 300㎞로 낮춰
 

   실제 류 전 부장 재임 중 징후고속철의 공기와 개통시점은 무리할 정도로 앞당겨졌다. 징후고속철은 2008년 4월 18일 착공한 이후 이례적인 속도로 공사를 진행해 2년 반 만인 2010년 11월 15일에 궤도부설을 마무리했다. 비록 산과 같은 장애물이 거의 없는 허허벌판인 화북(華北)평원 위에 고속선로를 부설했다 해도 너무 빠른 속도로 공사가 진행된 셈이다.
   
   이에 징후고속철의 개통시기도 당초 2012년 12월에서 2011년 11월로 1년이 줄어들었다가, 다시 같은해 6월 30일로 앞당겨졌다. 공교롭게도 징후고속철 개통식 다음날인 7월 1일은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고속철 안전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 당초 설계속도 380㎞로 설계된 징후고속철은 류 전 부장의 낙마 후 운행속도를 350㎞, 300㎞로 계속 낮췄다.
   
   철도당국이 고속열차 안전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이어 지난 6월 22일 철도부 전 부총공정사 겸 고속철도팀 부주임 저우이민(周翊民)은 “중국 고속열차의 시속 350㎞, 심지어 380㎞는 열차의 안전운행을 고려하지 않고 조작된 것”이라며 “류즈쥔 전 철도부장 재임시절 중국 고속철도는 세계 제일, 세계 최고를 달성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다”고 폭로했다.
   
   이에 차량도입계약서에 300㎞로 운행할 것을 명시한 것을 어기고 350㎞, 심지어 380㎞로 달리게 했다는 것이다. 저우이민은 “그간 중국 고속철의 기술수준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기술은 여전히 독일 지멘스 등에 의존하고 있다”며 “최근 일부 고속철에서 지반침하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만큼 징후고속철도 시험운행 중 보다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고 밝혀 파장이 일었다.

 
/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