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操 무덤 찾았다
▲ 조조의 얼굴.
1789년 만에 河南省서
曹操墓时隔1700多年重见天日
유비(劉備), 손권(孫權)과 함께 중국의 패권을 다투었던 조조(曹操·155~220)의 무덤이 사후 1789년 만에 허난(河南)성에서 발견됐다고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 언론이 27일 일제히 보도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의심이 많았던 조조가 사후 자신의 무덤이 도굴될 것을 우려해 72개의 의총(疑塚·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으며, 지금까지 그의 무덤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人民日报》等中国媒体12月27日报道,与刘备、孙权一起争夺中国霸权的曹操(155年至220年)的陵墓在其过世1789年后在河南省被发现。据《三国志演义》记载,曹操担心自己死后陵墓被盗,建了“七十二疑冢”,因此他的陵墓位置一直是个谜。
허난성 문물국은 이날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허난성 안양(安陽)현에 있는 동한(東漢)시대의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문헌으로만 전해져오던 위(魏) 무왕(武王) 조조의 진짜 무덤인 '고릉(高陵)'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안양현은 조조가 숨진 곳으로 문헌에 나오는 뤄양(洛陽)에서 동북쪽으로 230㎞가량 떨어져 있다.
中国河南省文物局当天在北京召开记者会公布,在发掘位于河南省安阳县的东汉时代大墓的过程中,发现了一直记载于文献中的魏武王曹操的“高陵”。安阳县是曹操去世的地方,位于距文献中记载的洛阳东北方向230公里左右的地方。
전형적인 토갱(土坑)묘인 고릉은 깊이 15m가량에 길이 60m, 넓이 740㎡의 대형 무덤이다. '중(中)'자 형태로 된 무덤은 동서 방향으로 통로가 나 있고, 천장부와 묘실, 통로 등은 모두 벽돌로 건축돼 있었다. 허난성 문물국은 이 무덤이 여러 차례 도굴된 흔적이 발견됐지만 금은 같은 보석류와 도기(陶器), 철제 갑옷, 철검, 비석 등 250여 점의 부장품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고고학자들은 부장품 중 '위 무왕이 사용했다'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창과 돌베개를 근거로 이 무덤이 조조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此次发现的高陵是典型的土坑大墓,墓地深15米左右,长60米,占地面积约740平方米。大墓呈“中”字形,有东西方向的墓道,天棚和墓室、墓道等均以砖头砌成。河南省文物局称,尽管发现多次被盗的痕迹,但仍发现了金银等珠宝类和陶器、铁甲、铁剑、石碑等250多件器物。在出土器物中,考古学者根据刻有“魏武王常所用格虎大戟”、“魏武王常所用格虎大刀”以及“魏武王常所用慰项石”等铭文的兵器和石枕,得出了这一墓地是曹操高陵的结论。
무덤에서는 또 60대로 추정되는 남성과 20대, 40대로 보이는 여성 등 3명의 유골이 발견됐다. 남성 유골의 연령대는 역사 기록에 나오는 조조의 사망 시 연령(66세)과 비슷하다고 중국 언론은 보도했다. 조조는 정치적으로 실권을 잡았으나 스스로 제위에 오르지는 않았고 사후에 무왕(武王)으로 추존됐다.
另外,在大墓中还发现了被推定为60多岁的男性和看似20多岁和40多岁的女性等1男2女的遗骸。中国媒体报道称,男性遗骸的年龄与历史记载的曹操终年66岁相吻合。曹操尽管在政治上掌握实权,但没能登上王位,死后被推举为武王。 200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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