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되려면 1000만원 쏴라?
공식 논문심사료 외에도 뒷돈·접대비 관행 여전
거부땐 교수 눈밖에 날까 학생들 '벙어리 냉가슴'
한겨레 | 입력 2009.11.02 14:40 | 수정 2009.11.02 15:09
[한겨레]
서울 시내 유명 예체능계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는 ㅎ씨는 최근 졸업 논문 심사를 앞두고, 현금 50만원씩을 담은 봉투 5개를 준비했다. 앞서 논문 지도교수를 찾아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느냐"고 물은 뒤 '가르침'을 받은 대로 한 것이다. 1시간 안팎에 걸쳐 1차 논문 심사를 마친 뒤, 그는 심사를 맡은 교수 5명에게 이 돈봉투를 일일이 건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날 저녁 서울 강남의 고급 일식집에서 식사 접대에 100여만원이 들었고, 식사 뒤에도 "고생했는데 한잔 진하게 먹자"는 담당 교수의 제안에 '2차'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돈봉투'를 포함해 이날 하루만 400만원이 들었다. 2차 심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고, 이른바 '도장 찍는 날'로 불리는 3차 최종심사 때도 300만원을 넘게 써야 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준비한 박사 논문 통과를 눈앞에 두고, 불편한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ㅎ씨는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논문 뒷돈을 마련하는 상황이 황당했지만, 논문 심사를 담당한 교수는 '박사 학위 받아가면서 그 정도도 안 해서야 되겠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관행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논문의 질에 상관없이 지도교수로부터 논문에 도장을 못 받을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고 말했다.
또다른 학교에서 박사 과정에 있는 ㅂ씨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ㅂ씨는 논문 심사를 다섯 차례 받는 과정에서 '뒷돈'으로만 모두 1000여만원을 썼다. 교수들한테 따로 챙겨줘야 하는 돈봉투뿐 아니라 간식, 식사, 접대비 등으로 한 차례 심사를 받을 때마다 수백만원씩 써야 했다. ㅂ씨는 "이런 돈에 거부감을 느끼는 교수들도 상당수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주변 어디서나 이런 관행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국내 대다수 대학이 박사 학위 취득 때 공식적인 논문심사료를 두고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뒷돈 관행'이 여전해 가난한 대학원생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돈은 '교통비', '거마비', '심사비' 등의 명목으로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일부 학교에선 이런 관행을 거부하는 교수가 논문 심사에서 아예 배제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사과정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교수들의 눈 밖에 날 것을 염려해 문제 제기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대학원생은 "서울 유명 대학의 교수들이 평소 친분 있는 언론인, 정치인 등을 활용해 뒷돈 관행을 지적한 익명의 제보자를 기어코 찾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삼호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학교마다 논문심사료가 정해져 있는데도 일부 교수들이 지위를 이용해 수백만원씩 '촌지'를 받고 있다"며 "학교 쪽이 '뒷돈 관행'을 차단할 제도와 제보자를 보호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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