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2의 담수호인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후난(湖南)성의 서쪽 끝은 대대로 치우의 후예인 묘족들의 터전이었다. 명나라 조정은 대륙의 동도 서도 아닌 한복판, 묘족의 땅에 '변성(邊城)'을 쌓았다. 지금 후난성과 구이저우(貴州)성을 오가는 통로였던 '딩즈관(亭子關)' 주변 능선 위로 높은 벽을 올렸다.
명청 왕조는 자신들의 정권을 공고히 하고, 묘족(苗族)을 억압하면서 진압하기 위함이었다.
명나라 만력(萬歷) 33년(1615년)에 시작한 약 380여리의 성벽 공사는 천계(天啓) 2년(1622년)에 마무리됐다. '묘강변장(苗疆邊墻)'이라 불리던 성벽이 지금 '신비로운 땅 상시(湘西)'에 복원된 '남방장성(南方長城)'이다.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남방장성은 2001년 2월 복원한 것이다. 영흥평(永興坪)에서 아납영(阿拉營)까지 군데군데 남아 있는 유적을 중심으로 1.78km를 옛 모습에 맞춰 이었고, 성곽 안쪽의 숙영지였던 전석영(全石營)에는 한 변이 31.7m, 총 면적이 1000㎡인 세계에서 가장 큰 바둑판을 만들었다. 이 곳에 사용된 청석의 무게만 무려 159t에 달한다.
봉황현 봉황고성에서 30여분 떨어진 산중턱에다 만든 바둑판의 옆 벽면에 '기행대지 천하봉황(棋行大地 天下鳳凰)'이란 문구를 크게 써놓았다.
이 곳에서 2003년부터 한국과 중국의 바둑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사들이 2년마다 대국을 펼치고 있다.
2003년 조훈현 국수와 창하오 9단이 첫 대국을 가진 뒤 2005년에는 이창호와 창하오, 2007년에는 이세돌과 뤄시허(羅洗河)가 차례로 맞대결했다. 3번의 결과는 1승1무1패.
올해로 4회째다. 오는 29일, 2009 봉황고성(鳳凰古城) 제4회 세계바둑 최고대국(世界圍棋?峰對決)이 열린다. 올해의 대국자는 이세돌 9단과 구리(古力) 9단이다.
동문 위 누각에서 두 대국자가 하나 하나 착점을 하면 검은 옷과 하얀 옷을 입은 소림 무예 수련생 361명이 '인간 바둑돌'로 변한다. 승부가 끝날 때까지 흑돌, 백돌이 돼서 참선을 하듯 자리를 지킨다.
승자는 5만달러, 패자는 3만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26세 동갑내기인 두 기사의 통산 전적은 18번 대국에서 9승9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과연 지난달부터 한국 기원에 휴직서를 내고 두달여 동안 공식 대국을 펼치지 않았던 이세돌이 얼마나 녹슬지 않은 기력을 보일지 관심거리다.
중국 기원은 남방장성에서 벌어지는 한중 최고수 대결을 기념하기 위해 조훈현 국수와 창하오(常昊) 9단의 대국 장면을 조각해 산성 옆 비탈에다 설치했다.
그러나 2007년 가을 어느 날, 우리의 눈에 띈 것은 손목 잘린 조훈현 국수의 모습이었다.
제작 과정이 부실한 탓이었을까, 관리 소홀이었을까. 아니면 의도된 사고였을까. 지금은 깔끔하게 보수했기를 기대해 본다.
남방장성은 정상까지 짧지만 가파르다.
동쪽 성곽으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다보면 허벅지에 통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쉬노라면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협곡 사이로 길게 이어진 길이 보이고, 양쪽으로 논밭이다.
발 아래 큼지막한 바둑판이다.
다시 돌계단을 오르면 그늘막도 있다. 땀도 식히고, 성곽 일대를 둘러볼 수도 있다. 간간히 관광객이 보인다. 관광용 말을 타기도 한다.
성곽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지다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동쪽보다 더 가파르다. 성곽 일주에는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남방장성은 한족과 가깝게 지내던 '숙묘(熟苗)'와 융화를 거부하고 맞선 '생묘(生苗)'를 갈라놓은 검은 장막인 셈이었다. 생묘족의 경제 발전과 사회적 진보를 막음으로써 순응하도록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남방장성의 동문을 통해 전석영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오래된 돌탑 모양의 유적지가 보인다. 아래쪽은 병사들의 숙소였고, 위쪽은 봉화대였다.
봉화대는 벽돌을 쌓아올린 3층 구조로 중간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다. 1층의 구멍은 화살을 쏘는 곳이다. 2층은 관측 구멍이고, 3층은 연기로 신호를 보내던 곳이다.
길이가 무려 8m이고 무게가 1500kg이나 되는 칼도 마당 한 켠에 놓여 있다. 관우의 칼을 모방한 '청룡언도(靑龍偃刀)'다.
청나라 가정(嘉定) 연간 이 곳을 지키는 병사들은 소수였다. 늘 묘족의 침공이 두려워 군기가 흔들렸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효과가 없자 이 곳을 지키던 장수는 하늘의 뜻에 따라 '진보지도(鎭堡之刀)'를 만들었다며 긴 칼을 병사들에게 보여주었다. 더 이상 동요가 없었다.
녹이 실었지만 아직도 위풍당당하다.
남방장성은 만리장성처럼 거대한 성은 아니다. 그러나 명청시대 한족에겐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방어선이었다.
지금도 후난성과 구이저우성에는 많은 묘족들이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전처럼 '생묘'니, '숙묘'니 하는 구분은 없지만 노래와 춤을 즐기는 선량한 민족성을 지닌 채 대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변하고 있다. 남방장성에서 열리는 바둑대회도 마찬가지다.
주최측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회를 홍보하기 위해 '미녀 선발대회'까지 서슴지 않는다.
바둑대회의 도우미가 될 '봉황보패(鳳凰寶貝) 선발'이란 이벤트를 진행해 24일 총 10명의 후보 중 3명의 당선자를 최종 확정했다.
총 67만4685명의 네티즌과 4명의 심사위원의 평가를 종합한 결과 연기자 장린린(張琳琳)이 1위인 관군(冠軍), 봉황 출신인 티엔후이(田慧)가 2위인 아군(亞軍), 모델인 파오페이(鮑菲)가 3위인 계군(季軍)을 차지해 오는 29일 대국과 시상식의 도우미를 맡는다.
타강이 흐르는 봉황고성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 마을'이다. 중국 근대문학의 큰 획을 그은 작가 선총원(沈從文)과 세계적인 화가 황용위(黃永玉)을 배출한 곳이다. 타강에 조각배를 띠우고 홍교를 바라보며 뱃길을 가노라면 시나브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곳이다.
봉황성의 외곽, 남방장성은 바둑과 함께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