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승은 간 데 없고 무승만 남은 소림사
달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선승(禪僧)은 간데 없고, 무승(武僧)과 상승(商僧)만 눈에 띠니 어찌하리오.
먼 옛날,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인도에서 건너온 선승 달마가 면벽수도하던 소림사의 도량 앞에 젊은 승려가 하염없이 서 있었다. 제자가 되길 원하건만 달마는 좀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거듭 돌아가라 내친다.
젊은이는 뜻을 굳히지 않았다. 오히려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자 한쪽 팔을 자른다. 하얀 눈 위에 붉은 선혈이 낭자하다.
달마도 놀란다. 가사로 팔을 감싸준다.
외팔이 중이 된 이가 바로 선종의 두 번째 조실인 '혜가' 스님이고, 그 도량은 년년세세 '입설정(立雪亭)'이라 불린다. 그리고 소림의 승려들은 피로 물든 달마대사를 기리기 위해 대대로 붉은 승복을 입는다는 것이다.
소림사에는 중국의 5악(岳) 중 중악(中岳)인 숭산(嵩山)의 정기가 흐른다. 숭산의 서쪽 끝자락 소실산(少室山) 기슭에 앉아 있다. 선종의 본산으로 언제부터인가 '천하제일명찰(天下第一名刹)'이란 명예를 얻었다.
북위 효문제 때 태화(太和) 20년(496년), 소실산 산림 속에 부처를 모신 절을 짓고 공양하기 시작했다 하여 절 이름이 '소림사'다.
중국은 지난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숭산과 소림사의 역사유적을 묶어 산시성의 오대산 불교건축군과 함께 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올해는 오대산의 문화유산 등재만 확정됐고, 숭산과 소림사 유적에 관한 심의는 내년 브라질리아 회의로 넘어갔다.
이미 숭산과 소림사가 중국인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관심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숭산은 변치 않아도, 소림사는 아주 많이 변했다.
늘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소림 쿵푸를 연마하려고 찾아오는 수련생들로 가득하다. 도통 차분하게 선종의 요체인 명심견성(明心見性)하거나 돈오성불(頓悟成佛)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소림사 가는 길엔 온통 무술학교다. 등펑(登封) 시내에서 소림사까지 크고 작은 무술학교가 76개나 있고, 이 곳의 수련생은 무려 6만여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소림사 경내에도 마찬가지다. 관광객을 상대로 소림 쿵푸를 공연하는 무술관 앞의 커다란 운동장 2곳에 하루종일 흙먼지를 일으키며 무공을 익히는 추리닝 바람의 '예비 이연걸'들이 족히 수천은 될 듯 하다.
'문밖 수련생' 중 우등생만이 '문안 학교'에서 제대로 소림 쿵푸를 익힐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시내의 학교들은 모두 소림무술학교의 정식 입문을 준비하는 '예비 학교'인 셈이다.
그 많은 학생들의 로망은 바로 영화배우 이연걸이다.
소림무술학교 출신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스타 중의 스타이기 때문이다. 영화 '소림사'가 없었다면 국제적인 스타 이연걸은 없었을 것이다. 이연걸 역시 이런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지난해 4월 '일기금(壹基金)'을 설립해 쓰촨 대지진과 미얀마 태풍의 재난구호 활동에 참여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있다.
'이연걸 신드롬'과 함께 쓰융신(釋永信) 방장 스님의 CEO식 관리가 소림사 알리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1987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방장에 오른 쓰융신 스님은 '소림 쿵푸'의 상업화와 국제화에 적극 나섰다. 소림 쿵푸를 소재로 베이징의 홍극장 등 전국 주요 관광지에다 상설 무대를 만들었고, 세계 순회공연까지 하고 있다. 피부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쿵푸 수련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의 공연은 마치 '차력쇼'를 보는 듯 하다.
뽀족한 창 위에 배를 대고 빙빙 도는가 하면, 가느다란 바늘을 던져 유리판을 뚫는다. 힘과 기가 넘친다. 그리고 어김없이 공연이 끝나면 기념 사진을 찍도록 배려한다. 공짜는 없다. 다 장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선종의 자취도 찾기 어렵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소림사에서 7km 정도 떨어진 등펑(登封)시 대선구경구(待仙?景?)의 계곡에서 공연되는 '선종소림 음악대전(禪宗少林 音樂大典)'이 '달마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좀더 도움이 될 듯 하다.
'선종소림 음악대전'은 영화 '와호장룡'의 음악 감독 출신인 탄둔(潭盾)이 총연출을 맡아 총 3억5000만위안을 투자해 숭산을 배경으로 깊은 계곡에 무대를 만든 총 5악장으로 이루어진 음악극이다.
2006년 10월 초연 이후 2008년부터 정식으로 공연되고 있다. 춤과 노래, 최첨단 조명 수단이 조화를 이뤄 선종 문화와 소림 무술의 참모습을 재현해 '가장 아름다운 5대 실경 연출'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다.
짙은 어둠이 내린 대선구협곡에 들어서면 시원한 골 바람과 계류 소리가 긴장감을 풀어준다. 칠흑 그 자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담농의 차이로 능선과 하늘만이 드러날 뿐이다.
오후 8시. 산골 처녀들의 합창 소리와 함께 오색의 빛이 계곡의 밤을 눈부시게 밝힌다. 선경(禪景)을 담은 제1악장은 '수악(水樂)'이다.
달마의 환영인 승려는 바위 위에 앉아 수도하고, 물동이를 든 산골 처녀들이 나타나 불가와 속세를 대비시킨다.
제2악장은 선정(禪定)을 노래한 '목악(木樂)'.
소림 목어공(木魚功)을 보여준다. 불문의 법기인 목어를 통해 다양한 타악기의 소리로서 소림 무승의 성장 과정을 표현한다. 양치기 소녀가 양떼를 몰고 나타나 노래하며 수도승의 마음을 뒤흔들어보지만 어림없다. 오히려 스님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불국정토에 전한다.
현악기의 선율이 팽팽한 긴장감을 더해주는 제3악장은 소림 무술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선무(禪武) '풍악(風樂)'.
풍령(風鈴), 풍권(風拳), 풍곤(風棍), 풍기(風旗) 등 소림 무술이 심산유곡에서 발현하는 모습을 그린다. 찰나에 천지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깨달는다는 것도 암시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빛이 메운다. 북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여성 합창이 이어지면 첨단 장비를 이용한 '빛의 축제'가 시작된다. 제4악장으로 선오(禪悟)의 장면을 그린 '광악(光樂)'이 이어진다.
소림사의 탑림(塔林)을 옮겨놓은 계곡 사이로 달이 뜨고, 검은 하늘 사이로 4명의 검승(劍僧)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땅 위엔 탑림의 사계가 그려진다. 찬 서리 내린 산과 고풍 어린 산사, 길게 드리워진 석탑의 그림자, 산등성이 위로 차오르는 달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무승들은 생명의 한계를 뛰어넘어 천지 영혼과 하나가 되고, 영원히 비상한다.
숭산의 돌은 악기가 된다. 천지상화(天地祥和)의 소리를 만든다. 선송(禪頌)이 잔잔하게 계곡을 휘감는 제5악장은 '석악(石樂)'.
소림 악승(樂僧)들의 노래가 계곡 가득히 울려 퍼지며 편안하게 만물을 감싼다. 이것이 바로 선이다. 자연을 음미하고, 생명을 경애하고, 천지만물을 예찬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을 후렴구로 반복하는 남녀 혼성 합창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어떻게 이런 깊은 산골짜기에다 무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600여명의 출연진이 해발 1400m의 산 속에서 이런 장관을 연출하리라곤 좀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천년이 흐른 지금, 개혁 개방의 맛을 아는 '달마의 제자' 소림사 사람들은 여기저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속으로 끌어내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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