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ㆍ15 해방 이후 남북한에서 전개된 정치변화를 면밀히 비교해 본 사람이라면, 남한에서 단독정권인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수립되고 그에 따라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됐다는 주장을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단독정부가 먼저 수립된 것은 북한이다. 1946년 2월에 수립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 산업국유화, 주민사상 개조운동, 경제계획 수립 등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사업들을 수행한 분명한 정부이다.
김일성은 1946년 2월20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행한 연설에서 "지난 2월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우리나라 력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중앙정권기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역사학자 김한길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인민민주주의 독재정권'이라 기술했다.
또
북한은 1946년 11월에 도ㆍ시ㆍ군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하고 1947년 2월과 3월에 리(동)ㆍ면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했으며, 이를 기초로 1947년 2월 국회에 해당하는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했으며, 그 북조선인민회의가 행정부인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했다. 요컨대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단독선거인 5ㆍ10 선거가 실시되기 1년 넘어 전에 단독선거를 실시하고 단독국회를 구성하고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민족이 분단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단독 공산정권 수립으로 이미 민족이 분단된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문에 민족이 분단됐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우리 민족이 공산주의로 통일될 수 있었는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것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으로 인해 남북한에 대립적인 정권이 수립되고 6ㆍ25 전쟁이 일어났다는 주장은, 독일에서 동ㆍ서독의 대립적 정권이 수립됐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분명히 잘못된 주장이다. 상대방을 무력 침공하여 굴복시키려는 노력이 전개되지 않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공산정권은 1946년부터 인민군을 급속하게 강화해 왔으며, 남한의 좌익세력은 남한군대에 좌익분자들을 대대적으로 침투시켜 놓았다. 또한 북한 공산정권은 1948년 3월에 중국 공산당 정권과 비밀 군사협정을 체결했다. 비군사적 방법으로 남한을 공산화할 수 없을 경우 군사적 방법을 동원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같이 볼 때, 6․25 전쟁은 대한민국정부 수립 때문이 아니라 남한을 공산화하려는 북한의 의지 때문에 발발한 것임이 분명하다.
누군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대한민국 건국 때문에 6ㆍ25 전쟁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면 남한의 공산화를 바라는 비롯된 것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다.
양동안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출처 : '대한민국 건국사'(이승만 박사 기념사업 출판사업부) 중에서.
입력날짜 : 2006-05-0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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