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文史哲/經濟故事

시장경제의 의미??

마장골서생 2009. 7. 4. 00:03

경제관료-경제학자들, 시장경제의 뜻 제대로 알까?

벽파랑 | 2014.02.08. 09:40


우익인사들, 특히 요즘 부쩍 소리를 내고 있는 [뉴-라이트] 사람들이 맨 먼저 내세우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그래도 알겠는데 시장경제라는 말이 무엇인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수석으로 들어 간 김태동 교수는 "시장에 가서 물어봐라"라는 말을 했고, 일간지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그 어느 일간지도 시장이 무엇인지 따지지 않았다. "시장경제"라는 말이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됐던 시기가 바로 이 때였다.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필자는 김태동 교수와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여러 시간을 만나면서 시장경제의 뜻을 물어봤지만 뚜렷한 정의를 듣지 못했다. "빅딜이니 워크아웃이니 하면서 칼춤을 추지 말고 시스템을 만들고 시스템으로 하여금 개혁을 하게 하라"는 말을 해주었지만, 그는 시스템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시스템 개념을 설명했더니 "그런 것을 왜 정부가 만들어야 하느냐, 시장에 맡기면 되지"라는 말을 했다. 필자는 화가 나서 그만 일어서자 했다.


어느 경제 연구소에 가서 시장경제라는 검색어로 자료를 찾아보니 공병호 박사가 지은 책이 바로 "시장경제"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책은 매우 두꺼웠지만 그 어느 곳에도 시장경제의 정의가 들어 있지 않았다. 필자가 이러한 노력을 들인 것은 한국에서 경제를 주무르는 사람들, 시장경제를 외치는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시장경제에 대한 정의를 딱 부러지게 기술해놓은 책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필자는 필자가 1975년도 미국 경영학 과정에서 배운 경제교과서(맨스필드)를 다시 열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동 규제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아담 스미스가 정의해 놓은 가격결정 메커니즘이다"


세상에는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국가들이 매우 많다. 모두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국가는 성적이 좋고, 어떤 국가는 나쁘다. 만일 아프리카 사회에 가면 시장경제가 저절로 잘 될까? 시장경제의 성적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성적이 좋으려면 시스템이 좋아야 한다.


시스템이 없는 사회에서 경제를 시장에 맡기면 무질서만 횡행한다. 한국에서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갈수록 더 무질서해지는 이유는 시장에 아담 스미스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고, 오히려 시장경제 개념에 반하는 간섭들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사회다.


시스템만 보면 한국경제의 운명을 안다. 한국사회에는 아담스미스의 가격결정 이론이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시스템이 없고, 일자리 창출 시스템이 없다. 시스템이 해야 할 일을 제치고 배우지 못한 386들이 난장이 장난치듯 함부로 주므른다. 수입도 하지 마라. 공장도 세우지 말라. 수출도 하지 마라. 외국자본 못 들어온다. 기업 하는 놈들은 민족의 적이다. . . 



시장경제 시스템이란?



아담 스미스가 정의해 놓은 "시장"이란 "합리적인 소비자"와 "합리적인 생산자"가 만나 공정한 방법으로 경쟁하여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였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가 정의해놓은 시장 메커니즘이 작용하려면 3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만 한다.


첫째, 모든 경제 주체가 합리적인 의사결정(rational decision making)을 해야 하고


둘째, 모든 시장 정보가 누구에게나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흘러야 하고


셋째, 경제 주체 간에 공정한 경쟁(fair competition)이 보장돼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얼마나 훌륭하게 보장될 수 있느냐에 따라 시장경제의 성적표가 달라진다. 



한국 경제주체는 비합리적 의사결정 주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란 자원이 희귀하다는 인식하에서 출발한다(scarce resource). 소비자에게나 생산자에게나 자원이 희귀해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자원이 얼마든지 많다면 무엇 때문에 합리적인 방법을 고안하려고 고민을 하겠는가?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는 이 자원의 희귀성 자체가 부정되어 왔다. 특히 지금의 탈레반들은 S-사업이다, J-사업이다, 행담도 사업이다, 과거사 청산 사업이다, 위원회 공화국 건설사업이다, 대통령 전용 헬기 사업, 최고급 승용차 사업, 외국 나들이 사업, 청사-연구소-국영기업 전국 찢어발기기 사업 등 등. . 자금을 공기나 물보다 더 흔하게 쓰고 있다. 가강 큰 경제주체인 국가가 이렇듯 합리적인 의사결정 주체가 아닌데 무슨 시장경제인가? 


선진국 기업들에겐 자금과 인력이 가장 희귀한 자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100명이 하던 일을 20명으로, 다시 그 20명을 5명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낸다. 은행은 비전이 있는 기업에게만 돈을 빌려주고, 빌려준 다음에도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밀착 감시한다. 빚을 많이 진 기업에게는 절대로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겐 자금이 매우 희귀한 자원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지금의 탈레반들은 어떻게 하는가?


반면 한국에서는 비전문가들의 눈에도 나타나 보일만큼 인력이 남아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이 인력을 해고할 수 없다. 기업이 합리적인 경제 주체가 아닌 것이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기업에게도 한국의 은행들은 돈을 계속해서 빌려준다. 일단 빌려주면 기업이 그 돈을 어디에 쓰던 상관하지 않는다. 해마다 빚이 늘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은행이 빚을 얼마든지 늘려주었기 때문에 힘을 가진 정부, 공기업, 대기업들에게 자금은 반 자유재로 인식됐다.


은행이 부실경영을 해서 고객이 맡긴 돈을 내주지 못하게 되자 국가가 저금을 대신 갚아주고, 그 돈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부담 지운다면 그런 은행과 그런 국가는 합리적인 경제 주체가 아니다. 정부가 과학적 분석 없이 사업을 집행하고 대규모 공사들이 부실 공사로 이어진다면 그런 정부는 합리적인 경제 주체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시장을 아담 스미스의 이론대로 돌아가게 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재로 인식되고 있는 자금과 인력을 희귀 자원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 기업들과 정부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수리공학적 경영 기법에 훈련된 분석팀에게 모든 의사결정을 의존해왔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훌륭한 과학적인 방법들이 고안돼 왔고, 경영자들은 이러한 과학의 문화권 속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생활화해 왔다.


만일 선진국 기업들도 은행돈을 얼마든지 끌어다 쓸 수 있었고, 주먹구구식으로 기업을 경영해도 정부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망하더라도 별로 사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과학적인 경영의 길을 걷지 않고 도덕적 해이에 중독 됐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잘못은 기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는 것이다.


첫째, 은행으로부터 돈을 자유자재로 빌릴 수 없어야 하고, 빌린 돈에 대해서는 반드시 은행이 공인회계사를 고용해 그 돈의 사용 과정을 감시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기업은 수리과학으로 무장된 과학자들을 대거 기용하거나 용역을 의뢰하여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고안해내고 불필요한 인력은 아무런 제한 없이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엔 시장경제 없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정보들이 모두 투명하게 만들어진 사실적 정보가 아니라 조작되고 왜곡된 정보라면 분석과정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의사결정은 합리적일 수 없다.


어느 기업이 적자를 냈으면서도 흑자를 낸 것으로 분식 회계한다면 그 정보는 투명할 수 없고, 투명하지 못한 정보를 가지고 그 회사의 주식을 사는 사람은 결론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것이다. 설사 선진국 기업이라 해도 투명성 있는 회계에 대한 감시와 인센티브 시스템이 없다면 그들 역시 한국 기업들처럼 가짜 회계 자료를 만들어 낼 것이다.


똑같은 제품이 강북에서는 1만원에 팔리고 있고, 강남에서는 2만원으로 팔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보가 차단된다면 아담 스미스가 정의한 가격 결정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다. 새롭게 만든 제품이 안전하고 약속한 성능을 만족시키는 제품인지 아닌지를 평가하지 못한다면 아담 스미스가 정의한 가격형성 이론이 왜곡돼 버린다.



공정한 경쟁이 없는 사회엔 시장경제 없다



시장경제 마지막 제3의 원칙은 공정한 경쟁(fair competition)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혼자 시장을 독점하려고 경쟁 기업을 불공정한 방법으로 방해한다면 독점가격이 형성돼서 수요곡선이 가격에 따라 변화되지 않는다. 창의력 없는 대기업이 더 싼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의 출현을 막는다면 수요자의 선택이 비합리적으로 왜곡된다. 중간 유통업자들에 의한 매점매석 행위도 공정한 경쟁 질서에 위배된다. 그룹 내부 기업들간에 이뤄지는 봐주기 식의 내부 거래도 공정한 경쟁에 위배된다. 제조물을 만든 기업이 그 제조물의 안전과 성능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툭하면 시장경제에 맡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시장에서는 위의 세 가지 원칙이 준수되지 않고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저절로 준수되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이 세 가지가 준수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설치해 놓아야 한다. 이런 시스템이란 룰과 감시로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무엇이 시장경제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