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역대 청나라 황제의 수라상에 반드시 올라야 하는 음식이 만두였다. 천하통일의 상징음식으로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민족과 각 성(省)의 특산물로 혼합 만두 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원세개가 대통령이 되고 이 만두 먹는 것을 일상화했다 한다. 이처럼 음식을 떠나 민족의 인종·지역적 갈래를 통합하는 정치철학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그렇게 뜻이 큰 만두 소를 우리나라에서는 쓰레기로 채워 만두파동이 파장을 키워나가고 있다.
만두의 뿌리를 「사물기원(事物紀原)」은 촉나라 제갈공명에 소급시키고 있다. 남쪽을 치려 노수(瀘水)를 건너려 할 때 풍파가 일자 사람의 머리 49개를 베어 제사를 지내야 한다 하여 살생을 기피, 양과 돼지고기로 소를 만들고 겉을 밀가루 피로 싸 사람 머리처럼 만들어 대신한 데서 비롯됐다 했다. 머리를 기만(欺瞞)했다 하여 만두(瞞頭)가 만자와 음이 같은 만두(饅頭)가 됐다고도 하고 남방 민속에 사람 목을 베어 제사지내는 것을 소 돼지 양고기로 머리모양 만들어 대신했다 하여 만인의 머리라는 만두(蠻頭) 만두가 됐다고도 한다.
고려 말기의 가요에 「쌍화점에 쌍화사러갔더니 회회(回回)아비 내 손목을 쥐더라」라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상화(霜花)가 만두요 아랍계 상인인 회회아비가 우리나라에 만두를 만들어 팔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충혜왕 때 왕궁 주방에 몰래 들어가 만두를 훔쳐먹은 자를 처벌했다는 기록이 정사에 나오는 최초이고 보면 고려 후기에 만두가 들어왔음을 짐작케 한다.
인조께서 전복으로 소를 넣은 만두를 좋아하여 생신날 세자는 동궁에서 비(妃)와 더불어 손수 만두를 만들어 올렸다 했으니 조선조에 들어 궁중식으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만두 소에 들인 정성도 대단했다. 소를 만들 때 창호지로 입을 가려 음기(陰氣)가 닿지않게 하고 무릇 채소에 칼을 대는 것을 금기(禁忌), 손으로 으깨야 했다. 소에 들 음식을 놓아두는 방향도 오행(五行)에 맞게 놓아 두는 등 정성을 별나게 요구했던 것은 그것이 제사음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쓰레기 만두소를 발상하는 머리는 그래서 만두(蠻頭)가 아닐 수 없다.
[조선닷컴 이규태 코너]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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