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中國歷史

제3의 성 환관

마장골서생 2009. 7. 2. 12:58

환관

 

제3의 성(性)

여기서 말하는 제3의 성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이다. 궁중의 이야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존재, 환관이 바로 그들이다.

환관이란 스스로의 결정이나 형벌에 의해 심벌이 잘려진 남성을 말한다. 흔히 그들은 중국과 우리 나라에만 있었던 존재로 이해하기 쉽다(일본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고대 오리엔트,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등에서도 환관이나 그와 유사한 습속이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① 신바빌로니아를 창시했다고 하는 세미라미스가 환관을 거느렸다는 사실 ② ‘침대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영어의 eunuch ③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 지어다’라는 성경의 구절(마태복음, 19:12) ④ 19세기 후반인 교황 레오13세 당시에 금지되었지만 이탈리아에서 가톨릭 합창단의 소프라노 가수를 만들기 위해 남자 어린이를 거세했다는 사실 등을 예로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도 중국과 같은 시기에 환관이 나타났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원을 따지면 단연 중국이 앞선다. 기원전 8세기 무렵인 서양의 경우와 달리 중국에서는 기원전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은(殷) 왕조때 승리자의 과시를 위해 정복한 티벳인을 거세했다는 문자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그 기원이 오래된 만큼 중국에서는 환관이 하나의 제도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궁정에서 큰 세력을 가지면서 국가의 흥망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 생활을 지원하는 자가 쇄도한 경우(많은 경우 12,000-13,000명이 있었다고 한다)는 중국뿐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수술 기술도 상당히 발달하게 되었다. 청대(淸代)의 자료에 의하면 도자장(刀子匠)이라는 수술 전문가가 있었으며, 비용은 은6량(현재의 약 30만원)이었다고 한다. 당장 돈이 없을 경우 나중에 급료를 받아 갚을 것을 보증해 주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수술이 가능했다. 오늘날과 같이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행해진 수술이었지만 도자장의 실수는 거의 없었다. 1870-80년대에 북경에서 취재를 했던 한 영국인은 오랜 기간의 수술 자료를 조사한 결과 30세의 남자 한 명이 사망했을 뿐이라고 했다.

수술 후 100일 가량 지나면 대개 상처는 아물게 되고 그 후 1년간 환관 견습을 받고 궁성으로 들어가 직책을 부여받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3의 성, 환관은 어떠한 특성을 지니는 인간이었을까?

수술을 받은 환관은 본래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목소리부터가 달라진다. 어린 나이에 거세를 당하면 젊은 여성과 거의 구별되지 않지만, 성인이 된 후에 환관이 되면 매우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된다. 수염 또한 없어지고 점차 여성의 모습으로 바뀐다. 남장을 한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육체가 변함에 따라 성격도 바뀌었다. 쉽게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내고 잘 풀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적의가 없는 유화적인 인간이었다. 강한 자에게는 미소와 함께 자신의 허약성과 열등감을 알리면서 접근하려 하고 여자나 어린아이에게는 애정을 가진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의 무능을 원망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지극하다. 또한 환관은 자비심이 있어 가난한 사람에게 성금을 잘 내고 물건값을 깍지 않아 상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단결심도 강했다. 후한(後漢) 말기 하진(何進)이라는 장군이 환관을 멸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을 알아차린 환관들이 그를 칼로 죽였다. 이렇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악인도 아니고 선인도 아닌 환관은 한마디로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환관은 무엇 때문에 존재했을까?

그들은 군주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군주는 처음에는 지상에 있어서 신의 대리인이었다. 그래서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선이 있듯이 군주와 백성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었다. 문제는 군주가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군주의 정체는 밝혀질 수 없는 비밀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드러나면 권위가 보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후궁도 마찬가지였다. 미녀도 그렇고 그 곳에 있는 물건도 백성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한 상황이 가축적인 인간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없게 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군주가 백성을 지배할 목적으로 신비스러운 거리감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 낸 산물이 만들어진 제 3의 성, 환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