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만수암(萬壽庵)의 비구니

흰 피부에 용모단정한 20대 중반의 여성. 유창하게 표준어를 구사하는 이 여성이 과연 법의를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누가 그를 비구니라고 생각했을까?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법명이 전민법사(傳愍法師)임을 알게 되었다. 원래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졸랐지만 한사코 거절한다. 법명을 받게 되면 세속에서 쓰던 이름은 영원히 버리는 거란다.

전민법사는 어려서부터 불교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무겁고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를 지며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속세를 떠나 한마음으로 수행에 정진해 내세를 기원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들도 그의 뜻을 존중해 모두들 전민법사가 수행으로 온 가족의 현세와 내세에 안락과 행복을 가져다 주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그는 광둥성 토박이로, 출가 전까지 샤산에서 살았다. 1995년 고교 졸업 후 여동생과 함께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아버지는 광저우 육용사의 승려이다. (중국 일본 등 외국 특정 불교 종파는 스님도 결혼생활이 가능하다고 함)

나중에 결혼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시원스럽게 그러나 확고한 어조로 답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국민의 신앙의 자유와 출가인의 결혼의 자유를 모두 허용하지만 저는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전민법사의 인품, 교육 수준, 견문 등은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그는 1997년 마카오 불교학원에서 6년을 수학해 석사학위를 보유한 재원이었다.

전민법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비구니들의 생활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만수암의 비구니들은 출가 이후로 모두 독신으로 수행하며 사원 안에 기거한다. 그들의 생활에는 엄격한 규범과 규칙이 있고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한다. 처음으로 승려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노여승을 자신의 규범 스승으로 모시고, 스승에게 도덕 및 품행 교육과 관리를 받는다. 그 후 유명한 생불이 머리를 깎아준다. 생불이 불경을 외고 비구니를 축원해 준 후, 머리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닥의 머리카락을 깎음으로써 육근(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가리키며, 이 여섯 가지를 죄업의 근원으로 여김)을 깨끗이 하고 모든 근심과 번뇌를 끊어버렸음을 나타낸다.
모든 출가인은 ‘삼귀’라 하여 불가에 귀의하고, 불법에 귀의하고, 승려에 귀의하게 된다. 이를 위해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종교적 신념을 견지해야 하며,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불경을 공부해야 한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만 경내에 머무를 수 있다.

비구니가 수행하는 가장 보편적인 형식은 음식을 끊고 엄격한 금욕 속에서 고행하는 폐재(閉齋)이다. 간혹 부잣집에서 죽은 이의 천도를 위해 비구니에게 폐재를 청하기도 하는데 의식이 끝난 후에는 일정한 공양을 받는다고 한다. 폐재는 일반적으로 이틀 동안 이루어지며, 첫째 날까지는 말을 해도 괜찮고 식사는 점심만을 먹게 된다. 둘째 날부터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실 수 없으며, 말도 한마디 내뱉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비구니 홀로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수행을 해야 한다. 이 수행은 셋째 날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된다.

비구니의 생활은 비록 단조롭고 물질적인 향락도 누릴 수 없지만, 그들은 불경 공부와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이 속세에서의 기복 심한 삶보다 평화롭다고 말한다. 비구니들은 하루 종일 방안의 어두운 곳에 조용히 앉아 경문을 읽고 공부한다. 외출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방문객은 조용히 사절한다. 문고리에 나뭇가지를 하나 끼워두는 것은 좌선중이라는 뜻이다. 신도나 가족들이 찾아와도 나뭇가지가 보이면 조용히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좌선은 최소 한 달이 걸리고 길게는 반년이 넘게 이어지기도 한다. 비구니들이 좌선을 하는 이유는 감각과 사고 사이에서 진리를 통하고 일체의 사념을 버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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