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문가들은 이 회장의 경영방식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위기’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45세에 국내 최대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그는 의도적으로 위기를 강조했다. 조직원들은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2류에 그친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제자리걸음을 하면 3류로 처진다는 위기감을 불어넣었다. 1993년 일명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리는 이 회장의 신경영은 이렇게 해서 나왔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초일류에 대한 이 회장의 열망은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때의 일화에서 확인된다. ‘반도체 왕국’인 일본에 결코 대적할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무릅쓰고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뒤 20년 만에 세계 1위 반도체 회사로 키워냈다.
▼ 주변 만류에도 밀고나간 반도체 뚝심, 갤럭시의 기적을 이루다 ▼
신동엽 연세대 교수는 “선대 회장 시기의 삼성은 경영관리 수준을 높이는 ‘관리의 삼성’으로 충분했지만 글로벌 경쟁 국면에선 통하지 않았다”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라는 높은 열망 수준을 제시하고 조직에 위기감을 불어넣는 위기경영이 삼성을 지금의 자리로 끌어올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 ‘불량은 암(癌)’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과거의 행태는 쉽게 일소되지 않았다. 1994년 삼성전자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에 자신이 없었지만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했다. 불량률이 11.8%까지 올라갔다. 명예회복을 위해 일부 모델 생산을 중단하기도 하고 원인을 유형별로 분석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 회장은 ‘불량은 암이다. 자꾸 옮아가면 결국 망하게 된다’라고 생각했다. 무선사업부의 사정을 보고받은 그는 시중에 나온 불량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고 지시했다. 그해 3월 9일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내걸린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2000여 명의 임직원이 굳은 표정으로 앉은 가운데 ‘화형식’이 열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500억 원 상당의 휴대전화와 키폰(업무용 전화기) 등에 불을 붙였다.
불길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당시 무선사업부 이사였던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내 혼이 들어간 제품이 불타는 것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했다. 이상하게도 타고 남은 재를 불도저가 밀고 갈 때쯤 각오랄까, 결연함이 생겼다. 그 불길은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해 국내 시장점유율 4위였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이듬해 1위로 올라섰다.
○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
“일본은 마른 수건을 짜고 있고, 우리는 물수건을 짜고 있다. 그 다음은 두뇌 싸움이다. 그래서 천재가 필요한 것이다.”(삼성 신경영)
이 회장은 한 사람의 인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고전경제학의 생산요소인 노동과 자본에 더해 경영과 지식근로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피터 드러커를 높이 평가했다.
이 회장은 2002년 사장단 워크숍에서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 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인재 경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른바 ‘S급 인재(핵심 인재)’ 영입은 삼성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지상 과제가 됐다. 인재 확보에 돈을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여성 인력 활용에 공을 들인 것도 우수 두뇌에 대한 끝없는 열망에서 비롯됐다. 이 회장은 지난해 삼성그룹 여성 임원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여성 임원이 사장까지 돼야 한다”며 이들을 격려했다.
○ ‘메기론’과 앞으로의 숙제
“최고경영자는 좋은 의미에서 ‘메기’가 돼야 한다.”(1991년 이 회장의 신문 기고)
천적인 메기와 같은 공간에서 사는 미꾸라지들이 자기들끼리 평화롭게 지내는 개체들보다 건강한 것처럼 CEO는 부하들을 긴장시켜 조직을 활력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7월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의 분기 실적을 내며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간 이 회장은 다시 위기론을 꺼내들었다. “모든 이익의 70%가 집중된 스마트폰을 빼면 나머지는 사실상 적자”라는 야박한 평가가 그룹 수뇌부에서 흘러나왔다. 이럴 때일수록 축제 분위기를 버리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이 회장은 갑작스레 출근 시간을 오전 6시 30분으로 앞당겼다. 초긴장 모드는 전 그룹에 확산됐다. 금융, 건설 등 다른 분야 계열사들도 삼성전자 못지않은 초일류 기업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을 더욱 느끼고 있다.
사실 이 회장의 위기경영은 단순한 엄포가 아닐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오른 만큼 기존 시장의 1등을 따라잡는 데 능한 제조기업이 아니라 시장을 창조하는 ‘마켓 크리에이터(Market Creator)’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갈림길에 선 삼성그룹의 경영철학이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 회장 한 명의 카리스마 경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형태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는 ‘한국 경제의 대표선수를 밀어주자’는 편이었던 국내 정치와 사회 분위기가 이제 삼성의 독주를 견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이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의 개편이나 불투명한 후계구도의 정립 등이 풀어야 할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재를 양성하고 인화와 단결로 1990년대까지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
1987년 12월 1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 이건희(70) 삼성호(號)의 출범을 알리는 일성(一聲)이 터져 나왔다. 이 회장은 부친 이병철 창업주가 별세한 1987년 11월 19일 삼성그룹 회장에 추대돼 이날 공식 취임식을 치렀다. 당시 그의 나이 45세였다. 이 회장은 연단에 올라 "삼성의 전통과 창업주의 유지(遺志)를 계승·발전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회장의 약속은 당시에는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한국에서는 1·2위를 다투는 전자회사였으나 세계적으로는 무명(無名)에 가까운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 이 회장의 구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실현됐다. 취임 당시 9조9000억원이던 삼성그룹 매출은 올해 384조원으로 39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계열사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03조2000억원으로 303배 커졌다. 2009년 휼렛패커드(HP)를 꺾고 세계 최대 매출을 올리는 정보기술(IT) 기업에 올랐고, 올해 글로벌 톱10 브랜드에 선정됐다. 뉴욕타임스가 "애플의 유일한 경쟁자는 삼성"이라고 보도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은둔의 경영인'으로 불리며 끊임없이 혁신과 위기의식을 강조해온 결과다.
그간의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이 회장은 임원 교육서인 '삼성 신경영'에서 "회장에 취임하고 보니 막막했다. 제2창업을 선언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룹 전체가 사그라질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밝혔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고민하던 그는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주요 임원 수백명을 소집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위기의식과 변화를 강조했다. 신경영 선언이었다."삼성은 2류다. 그대로 있으면 3류, 4류가 된다. 망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임원들에게 충격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 이 회장이 부르짖는 변화는 일종의 문화혁명 같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인재 경영과 품질 경영을 성장의 양대 축으로 삼아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1995년 경북 구미공장에서 품질 불량인 무선 전화기 수만대를 불태운 일화는 유명하다. 동시에 진대제·이기태·황창규 등 뛰어난 실적을 올린 경영인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삼성은 현재 메모리반도체·TV·휴대폰 등 20여가지 품목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이 따라가기 바빴던 소니·샤프·노키아 등은 모두 거액의 적자에 시달려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다.
삼성의 미래가 장밋빛 일색은 아니다. 사업구조가 삼성전자 휴대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자칫하면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높다.신성장 동력 발굴은 수년째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 2세 승계를 둘러싼 편법 증여 논란은 끊임없이 삼성을 따라다닌다. 형제들과의 유산 상속 소송도 재판결과에 따라 삼성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매출이나 이익 규모가 워낙 커서 삼성이 한국 경제 전체를 쥐락펴락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을 앞두고 이 회장의 경영 성과를 알리는 게시물을 19일부터 삼성그룹 블로그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글은 '그날의 약속을 돌아보다'. 이 회장이 취임식 때 했던 약속들이 실제로 지켜졌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이 기획을 10회 게재하고 세계 초일류를 향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