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탐험 5부
안데스의 신화, 잉카 문명
EBS 다큐 프라임
* 평균 해발고도 4,000미터가 넘는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지난 15세기 이 험준한 산악의 주인공은 잉카인들이었다. 그들은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었고, 자연을 숭배했으며, 농업 기술을 고도로 발전시켰다. 한때 소수민족이었으나 안데스의 주인이 되었으며 찬란한 황금 문명을 뿌리 내렸던 남미의 잉카족. 이 잉카족의 황금 문명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아 서구 열강에 의해 무너졌다. 하지만, 잉카족의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는 지금도 안데스의 신화다.
*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을 따라 약 7천 킬로미터 뻗어있는 평균 해발고도 4천 미터의 안데스 산맥. 그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우루밤바강(잉카인들이 신성시했던 성스러운 계곡을 흐르는 강) 450미터 절벽 위에 불가사의한 고대 도시가 있다. 공중도시라 불리는 마추픽추다. (15세기 초 잉카인들이 세운 공중도시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라는 뜻)
* 해발 2,400여 미터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 마추픽추는 500여개의 탑들이 천상을 오르는 듯 되어 있으며 건축물 모두는 정교하게 돌을 다듬어 지어졌다. 도대체 이 도시는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건설했던 것일까? 연구 결과 이곳은 왕궁이었음이 밝혀졌다. 침실 내부는 황금으로 장식된 흔적도 있다. 마추픽추에서는 유일하게 전용 화장실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약 5평방킬로미터 면적의 마추픽추는 비단 왕의 영역뿐만 아니라 잉카 제국 최고의 숭배대상이었던 태양을 위한 신전, 생산을 담당했던 일반 주거 지역으로 구분된다. 완벽한 계획도시이자 복합도시였던 것이다. 왕의 주거지와는 달리 석축이 종교하지 않은 일반 주거지역의 내부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물거울이라 불리는 웅덩이의 용도는 확실치 않다. 잉카인들은 이처럼 도시의 모든 부분을 마치 두부 다르듯 돌을 다듬어 건설해냈다. 전문가들은 이곳을 건설하는 데 만 여명의 노동자가 약 40년가량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들은 도시 곳곳에 마치 거미줄을 연결하듯 수로까지 만들었는데, 현대 어느 도시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잉카인들은 왜 낮고 평평한 대지를 마다하고 이 가파른 산정에 도시를 세웠던 것일까?
* 마추픽추 정상에 위치한 주신전. 이곳에 나 있는 세 개의 창문은 잉카의 탄생설화를 의미하며, 잉카 유적 곳곳에서 발견되는 한쪽 모서리가 둥근 기하학적 구조물에 대한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다만, 창문을 통해 들어온 태양빛이 내부에 안치된 신선 모양의 돌을 비췄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하지만, 잉카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 있다. 마추픽추의 정상, 자연석을 깎아 만든 이것. 바로 인티와타나(케추아어로 태양을 붙잡는 돌이란 의미)이다.
* 서기 1438년, 안데스 산맥에 한 위대한 영웅이 탄생한다. 파차쿠텍 잉카 유팡기(잉카의 9대왕, 1438~1471년),그는 스스로 태양의 아들임을 선언했다. 소왕국의 왕자였던 그는 쿠테다를 통해 정권을 거머쥔 뒤 협정과 전투를 반복하며 안데스 여러 부족들을 통합, 제국을 완성해 나갔다. 그리하여 작은 부족에 불과했던 잉카족은 그가 권력을 잡은 지 50년도 되지 않아 오늘날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영역에 이르는 남북 4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 제국을 건설한다. 당시 파차쿠텍에 의해 잉카의 수도로 건설되었던 페루 쿠스코. 해발 3,400미터에 달하는 쿠스코에서 오늘날 옛 잉카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16세기, 스페인에 의해 멸망된 후 스페인 풍의 건물들로 채워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정복자 스페인도 잉카의 흔적까지 완벽히 지우지 못했다. 이 돌벽은 5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건고하고, 다각형 돌쌓기 공법은 현대에서도 불가사의중 하나다.
* 잉카의 배꼽이라 불렸던 코리칸차(산토도밍고 성당, 페루 쿠스코). 잉카 제국 당시 태양의 신전이 있던 이곳은 1570년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그들의 종교 건축물로 덧씌워졌다. 그러나 그 내부에 품고 있는 역사는 여전히 잉카다. 잉카인들이 이 신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구조물에 잘 드러나있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잘 짜맞춰진 것이다. 때문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성스러운 이 공간에 자신들의 공간을 지음으로써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고자 정복하고자 했다.
* 잉카시대, 황금으로 장식된 문을 통해 태양빛이 들어왔으며 태양빛이 뒷 벽면에 반사될 때 잉카인들은 그 위치와 그림자를 통해 그해 농사의 시기를 점쳤다. 코리칸차는 신전 광장을 중심으로 태양, 무지개, 달, 별의 신전이 흘러가며 자리하고 있었다. 한 쪽엔 천둥과 번개의 자리가 있어 왕과 신하들이 정기적으로 제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모두 농경과 관계된 신들이었다. 이처럼 산악민족이었던 잉카족들은 자연과 관계된 수많은 신들을 섬겼다. 하지만 모든 신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신은 인티라 불렸던 태양신. 지난 15세기 마추픽추를 건설하고 제국을 일궜던 파차쿠텍이 스스로 태양의 아들임을 자처했던 것도 거기에 있었다. 쿠스코에 있는 이곳 코리칸차를 중심으로 당시 잉카인들은 동서남국 네 방향에 따라 태양이 빛을 비추듯 320여개의 도시를 건설해 나갔다. 마추픽추와 같은 신전 도시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도시와 도시를 잇는 잉카로드를 만들었는데 이는 4만 킬로미터에 달했다. 이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왕의 명령이 전달되는 데는 며칠이면 가능할 정도였다.
* 전성기 시절, 잉카제국의 인구는 약 600만~1,000만 명에 달했다. 그들은 탄생신화를 갖고 있었고 태양신을 신봉했으며 엄격한 관료체계와 문자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담아낼 정도의 정교한 도시 문화를 갖고 있었다. 우리가 문명으로 규정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험준한 산악 지형에 어떻게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해발 3천 미터 고원지대에 자리한 마라스 염전. 잉카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이곳은 산속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일염전 중 하나다. 일억 년 전, 태평양 대륙판이 남아메리카 대륙판 밑으로 들어가면서 안데스 산맥이 만들어졌는데 그때 흘러갔던 바닷물이 염전을 이룬 것이다. 그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햇볕에 증발시키면 소금이 나온다. 일명 황토염전이라고 불리며,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마라스 염전. 비록 산악지방이라고 해도 잉카인들은 생존에 필요한 소금을 얻기 위해 먼 바다에까지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오늘날, 안데스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마(낙타과의 포유류, 남아메리카에서 털을 얻고 짐을 운반하게 하기 위해 기르는 가축)는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고원에서만 살 수 있다는 동물이다. 이밖에도 양, 염소와 같은 가축들을 키우며 많은 잉카족들은 유목생활을 해왔고 이런 가축들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집을 짓는 것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새 건물을 짓고 있다는 한 잉카인 가족. 여기에 사용되는 벽돌과 모르타르역시 섬유질이 많은 가축의 분뇨와 일반 진흙을 섞어 만드는 것이다. 이는 내구성과 보온도 뛰어나다. 이처럼 잉카인들은 자연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안데스 산맥 곳곳에는 각기 문화가 다른 80여 부족들이 산다. 하지만 잉카는 이런 특수성을 잘 이용했기에 건축, 농업, 의학, 약초학 등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것이 산악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명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농업의 경우, 아직까지 어떤 문명도 잉카의 기술력을 능가할 수 없을 정도다. 안데스의 토지는 화산재로 형성되었기에 물 빠짐이 좋고 기름져 감자와 옥수수 같은 작물들이 성장하기엔 최고의 조건이다. 잉카제국 당시, 감자의 경우만 해도 약 3천종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 많은 품종을 개발하고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일까?
* 쿠스코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모라이(잉카시대 농업시험장) 얼핏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잉카제국 시절 농업센터와 같은 곳이다. 아열대에서 자랄 수 있는 감자를 키우기 위해 잉카의 농업 기술자들은 밑에서부터 위쪽으로 조금씩 적응시키며 품종을 개량해 나갔다. 맨 아래와 맨 위의 온도 차이는 약 5도 이상. 기술자들은 밭 사이에 난 이 계단을 오가며 어디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감자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감자는 물론 옥수수까지 산악지형에 알맞은 수천 종의 품종을 개발할 수 있었다. 해발 수천 미터의 황량하고 추운 산간지방이 아닌 초록의 풍요가 넘실대는 잉카의 땅. 그러나 잉카 농업 기술의 백미는 콜카라 불리는 잉카인들의 농업 저장고이다. 주로 마을 인근 가파른 벼랑 위에 흙과 돌로 지어진 집. 콜카는 잉카의 언어인 케추아어로 저장고를 의미한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이곳은 통로를 지나면 우리의 온돌방과 같은 저장 시설이 있었다. 평평한 이곳이 곡식 저장고. 습도로 인한 부패를 막기 위해 바닥엔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커다란 환기구를 설치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잉카인들은 전국 곳곳에 이런 저장 시설을 만들었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차곡차곡 곡식을 쌓아 보관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변질 없이 보관할 수 있었다는 콜카의 저장 기술. 그런데, 곡식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초록색의 물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민트향의 허브였다. 냄새를 통해 병, 해충과 동물의 접근을 막고자 했던 잉카인들의 지혜였던 것이다.
* 콜카는 오늘날의 에콰도르, 콜롬비아는 물론 아르헨티나까지 수만 개 이상 보급되었다고 한다. 농산물의 저장, 분배 시스템을 통해 잉카가 유례없이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오늘날도 잉카원주민들의 주식은 감자다. 아궁이를 통해 감자를 삶은 다음 온 식구들이 부엌에 앉아 먹는데 이때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려고 생야채를 곁들이기도 한다. 생활에 필요한 옷감을 만드는데도 잉카인들만의 개성이 강하게 들어간다. 잉카인들은 거의 원색에 가까운 화려한 색을 즐겨 입었는데 이는 자연에서 염료를 얻어낼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어서 가능했다. 때문에 잉카에서 좋은 품질의 옷감은 황금보다 귀한 가치를 인정받았다. 옷감의 색과 질이 가문의 명예를 상징한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의, 식, 주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었던 잉카인들. 그런 잉카인들에게 자연 숭배사상은 단순한 신념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 그들은 땅, 바위, 돌, 강, 하늘과 같이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본능적으로 존경했고, 숭배했다. 특히 밤하늘은 잉카인들에게 있어 삶과 죽음을 사색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 이었고 그들이 동물에 붙인 별자리만 백여 가지가 넘었다. 하늘에 신령스러운 힘이 삶을 지배한다고 믿던 잉카인들은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안데스의 수도 쿠스코에 맹수 표범을 옮겨왔고, 피삭에는 큰 독수리의 일종인 콘도르, 오얀타이탐보엔 가장 사랑받았던 가축 야마, 그리고 마추픽추 역시 천상을 오간다는 새 콘도르 모양을 상징적으로 옮겨왔다. 오늘날 가장 온전히 남아있는 잉카의 상징, 마추픽추. 그렇다면 마추픽추는 어떤 면에서 콘도르를 닮아있다고 하는 것일까?
* 이를 살피자면 가파른 와이나픽추(케추아어로 젊은 봉우리란 뜻)산길을 두 시간 가량 올라가야 한다. 선연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마추픽추. 그러나 이것을 뒤집어 보면 전혀 모양이 달라진다.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 즉 콘도르의 모습이 완연한 것이다. 잉카인들에게 마추픽추는 천상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것이다. 천상으로 가는 관문, 잉카인들이 가장 숭배했다는 이 신전 인티와타나에는 또다른 놀라운 천문학적 비밀이 숨어있다. 해발 2,400여미터. 인티와타나 주변에는 정확히 동서남북 네 개의 신령스러운 산이 존재한다. 서쪽 산미구엘, 북쪽 와이나픽추, 동쪽 와카이위카, 남쪽 살칸타이가 그것이다. 그런데 일년에 두번 태양이 정동쪽 방향인 와카이 위카에서 떠오른뒤 반대쪽 산미구엘쪽으로 가는 정오가 위면 태양은 인티와타나 머리 위에 있게 되고 그림자가 사라진다. 이때 잉카인들은 태양을 붙잡았다고 생각했으며 그만큼 자신들의 힘이 강해졌다고 믿었다. 안데스의 황금문명을 일궜던 잉카제국, 그 힘의 원천은 태양신에 있었던 것이다. 잉카의 수도 쿠스코, 그 중심에 위치한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 그런데 도시 외곽에 또 하나의 거대 유적이 있다. 삭사이와만. 모두 자연석을 다듬어 3층으로 쌓아올린 이곳은 한때 잉카의 요새로 불렸다. 그러나 복원이 계속되면서 이곳이 15세기 잉카의 건설자 파차쿠텍과 그의 아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코리칸차와 같은 태양의 사원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잉카의 건축술은 지금도 미스테리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곳이 이곳 삭사이와만. 가장 큰 돌은 무려 360톤에 달한다. 하지만 돌과 돌 사이는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기 그지없다. 잉카인들은 가히 돌쌓기의 달인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이곳을 건설하는 데만 약 6만 명이 동원되었으며 이들은 15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채석장에서 이것을 끌고 와서 돌망치로 이것을 완성했다. 삭사이와만의 맨 정상에 있는 지금은 터만 남은 원형 유적지. 그러나 15세기 이곳은 왕이 태양신 행사를 집행하던 건물이 있었으며, 가까운 거리에 물을 숭배하던 거대한 또 하나의 신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잉카 제국 전성기 시절 바티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잉카의 편이 아니었다.
* 대항해 시대, 유럽 열강은 앞 다퉈 신대륙 개척에 나섰고 남아메리카 역시 정복대상이었다. 최초로 중남미 파나마 지역에 도착한 스페인 군대. 군대를 이끈 사람은 프란시스코 피사로였다. 스페인을 출발한 피사로의 군대는 파나마, 툼베스를 거쳐 1532년 카하마르카에서 잉카의 왕을 만난다. 스페인 군대는 잉카의 왕에게 성경을 선물했다. 그러나 잉카의 왕은 자신의 신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성경을 던져버린다. 전쟁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잉카군들은 처음에는 소수라 얕잡아봤던 스페인군에게 패했고 급기야 왕이 볼모로 잡힌다. 왕은 말했다. "이방 천정에 닿을 만큼 황금을 주겠소!" 왕을 구하기 위해 잉카족들은 전국 곳곳에서 황금을 모아 실제로 방을 채워주게 된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스페인군이 처참하게 왕을 살해해버렸던 것이다. 잉카의 잔존세력들은 안데스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무려 약 40년에 걸쳐 게릴라전을 감행한다. 하지만 1572년 그들은 결국 멸망했고 잉카문명은 역사에서 잊혀졌다.
* 그로부터 약 400년이 흐른 1911년, 한 젊은이가 사라진 잉카 문명의 황금을 찾아 이곳에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하이럼 빙엄(1875~1956, 미국의 역사가, 고고학자)이다. 그는 마침내 7월 24일 안데스에서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를 발견한다. 하이럼 빙엄은 황금을 원했다. 하지만 그가 찾은 것은 무너진 도시와 암반 속에 갖춰진 100여구에 달하는 미라들뿐이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한 박물관, 이곳엔 다수의 잉카 미이라들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잉카의 미이라에 대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스페인의 정복당시 학자였던 구아만 포바. 그의 기록에 의하면 죽은 황제들 역시 살았을 때와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여전히 궁전과 영토, 신하들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죽은 왕의 세력과 살아있는 왕의 세력의 대립은 잉카제국 약화의 중요 요인이 되고 만다. 잉카제국은 이미 약해져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 잉카는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새로운 질병인 천연두와 콜레라에 의해 약 120만 명이 희생될 만큼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무기의 차이 또한 현격했다. 스페인군들은 철로 된 투구와 온몸을 감쌀 수 있는 쇠갑옷으로 무장했고 화약, 대포총을 사용한 반면, 잉카인들은 겨우 돌 같은 것을 막대기에 매달아 사용하는 정도였다. 심지어 그들은 활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명예롭지 않다는 이유였다.
* 태양왕 파차쿠텍에 의해 번성했던 잉카제국, 그러나 잉카제국은 그로부터 채 100년도 되지 않아 스페인에게 굴복했고 마지막 왕은 목에 밧줄이 걸린 채 쿠스코로 압송 되었다. 잉카의 마지막 왕은 스무 살에 불과했으나 단두대에서 죽었고 잉카의 영광도 사라졌다. 그로부터 440여년이 흐른 지금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남미 최고의 관광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를 통해 잉카문명의 과거를 떠올리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 한때 남미를 호령했던 제국 잉카, 그들은 평균 해발고도 4천 미터가 넘는 안데스에 찬란한 황금문명을 건설했다. 그들은 고도로 발달된 건축문화를 갖고 있었고, 뇌수술이 가능할 정도의 의학기술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양을 건너온 또 다른 문명의 희생냥이 되고 만다. 마추픽추는 안데스의 잉카 전설을 품고 있는 역사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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