幽默雜事/折碎房間

[스크랩] 추노, 논란에 파묻히고 있는 것...

마장골서생 2010. 2. 24. 09:04

요즘 최고의 인기와 논란을 동시에 누리고 있는 추노.

추노가 진짜 재밌는 건, 이게 단순히 300 패러디 액션 활극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십과 오해의 거품 아래에서 추노가 말하고 싶어하는 건 뭘까...?

 

조금 속 깊은 추노 얘기를 해보자!!

 

 

 

일단 추노가 그냥 재밌으라고 만든 드라마는 아니다.
처음부터 제작진이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은 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고
현실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전체 그림에 해당하는 시대 배경부터 간략히 훓어보자.

 

 

# 시대상황 - 왜 하필 인조인가?

 

인조시대를 이해하려면, 시간을 약간 거슬러 선조부터 얘기할 필요가 있다.

 

선조: 조선 사회를 강타했던 충격파

정통성에 무지하게 집착했으며,
지배층은 무능했고,
임진왜란 발생에,
사회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전통적인 신분제적 윤리 의식을 강화하려고 용을 썼다.

-> IMF 사태를 부른 무능한 보수 정권과 닮았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가 나뉘는 것처럼

IMF의 충격은 IMF 전과 후의 대한민국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만들었다.

 

 

광해군: 못 다한 개혁 

그 다음이 광해군인데, 꽤 똑똑한 왕이었다.
국사책에는 실리외교로 유명한 인물.
그래도 광해군 덕에
명청교체기의 불확실한 대외 정세 속에서
전쟁 안 치르고 평화 분위기 유지하며
그럭저럭 전란 뒷수습도 했다.
그러나 당시 실세였던 서인의 쿠데타로
왕위에서 쫒겨나고 역사엔 폭군의 대명사로 기록.


-> '잃어버린 10년'... 평가는 평가의 대상 뿐만 아니라 

                              평가자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평가가 저평가를 넘어서 폄하로 내려가면,

                              평가 이전에 평가자의 인격부터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조: 집권 사대부가 만들어준 왕
걍 얼굴 마담격이라...
국가와 백성을 위한 로드맵같은 거 짜고 싶어도 짤 수 없었고,
당시 조선을 장악하고 있던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아바타였다.
국제 정세 따위 싹 무시하고,
지네들 지배 논리 강화용으로 시도없이 청나라를 도발해 쌌더니,
아니나 다를까 병자호란으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 후덜덜... 제길슨... - - ;;;

 

 

결론

간단히 말하자면, 병자호란 직후는
진보정권의 짧은 집권이 끝나고
급격하게 보수화된 조선 사회의 모순이 매우 눈에 잘 드러나면서
피지배층의 불만이 고조되는 시기.

 

 

 

이 불만에 가득찬 눈빛... 후덜덜;;

 

 

 

#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드라마에서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의 모순으로 설정된 것이 '신분제'

 

업복이로부터 자유민의 삶을 빼앗고,
대길이한테서 이다혜를 떼어놓고,
큰놈이에게서 아버지의 사랑을 앗아가고,
송태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린다.

 

그렇다면 이 지랄맞은 사회에
짓눌린 개인은 어떻게 대처할까?

 

 

 

01.  조정이니 양반이니 그런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숭례문 개잡놈 이대길

 

극단적인 현실주의자가 나올 수 있다.
더러운 세상에 적응해서 똑같이 더러운 인간이 되어
악착같이 성공하는 것이다.
비인간적이고 폭압적인 사회의 룰을 그대로 내면화한 대길이는
드라마 초반에 짐승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현실에 대한 외면은
사회로부터 비롯된 개인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

 

애초에 대길이가 고통 받는 원인은
양반인 자신과 노비인 언년이가 맺어질 수 없다는 데 있다.

 

대길이가 언년이를 붙잡아서
다시 자신의 노비로 만든다해도
대길이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양반과 노비는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년이를 만나기 전에 대길이가 호언했던 대로
'다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사회의 룰로는
대길이 개인의 바램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신분제 때문에 고통받는 인간이
오히려 신분제를 강화하는 추노꾼 노릇을 하는 게
극단적인 현실주의자가 빠지는 함정이다.

   

 

 황철웅이 양반이라고 해서 나을 것은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어머니와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좌의정의 뜻에 따라 살인귀로 변해갈수록 

(어머니)집에 못 들어간다...ㅜ,ㅜ

 

 

 

02. 바른 왕을 세우면 세상이 올바르게 바뀌겠지... 

 

송태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꿈꾸는 온건한 점진파.
자신이 엘리트이고, 비슷한 엘리트인 양반을 모아서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다.

한계는 신분제 자체를 (당장은)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

 

쿠데타가 성공한다고 해도
송태하 개인의 신분상승이 있을 뿐,
송태하가 대의명분으로 삼고 있는 지켜야할 다수의 백성은
여전히 피지배층으로 남는다.

 

게다가 소수라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권력에 비협조적인 지식인일 경우,

언제 황철웅의 급방문을 받을지 모른다...

 

 '세상이 바뀌면 노비가 없어지나요?'  '음... 그건 차차?'


 

 

03. 똑같이 벌거벗고 태어나서... 이건 뭔가 세상이 잘못된 거 아니네?

 

업복이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문제의 근원이 노비를 핍박하는 양반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피지배층이 뭉치면 막강한 힘이 생긴다.
문제는 이 힘의 방향성이 꼭 올바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파악하고 결정하지 못할 경우,

여론 조작이나 교묘한 술수에 의해 조종될 수 있다.

 

 

'그럼 그 분(노비당을 조직한)은 누구요?'
'아, 누구긴, 훌륭하신 분이지.'

'양반을 다 죽이고 임금도 죽이면 그땐 어떻게 되나?'
'그건 그때 가면 알겠지.' 

 

 

 

만약 지령을 내리는 '그분'이 같은 노비가 아니라
알고보니 좌의정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이 지랄맞은 현실이
앞으로도 계속 지랄맞도록 일조하는 꼴이 된다.

 

조직적인 힘 이전에
깨어있는 시민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는 거~~~
(가스통 할배들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될 수는 없는 거잖아... ㅠ,ㅠ

부디... 천지호패거리보다는 나은 길을 걸어줘...)

 

 

 

 

 04. 내가 바라는 것은...

 

자... 그럼 이제 진정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길을 알아보아요~

 

 

 

결국 문제의 핵심은 양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노비를 없애는 것이다.

양반은 바람구멍으로 해치울 수 있지만
노비는 어떻게 없앨 것인가?

 

신분제에서 노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극도로 제한된 신분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존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평생 해야 하는 존재.

 

신분제가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한 존재들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려면
외부에서 주어진 '도구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된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따르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답이 바로 '이다혜'씨다.
그녀는 노비로 태어났으되
결코 노비가 아니었다.

 

 

두 노비를 비교해보자.

제작진이 꼬질꼬질한 노비를 만들 줄 몰라서 안 만든 게 아니다.

초복이가 진짜 노비를 보여줘야했다면,

언년이는 절대 노비여서는 안 되는 역할.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욕구에 진솔했다.
그런데 그 욕구라는 것이 인간으로써 지극히 보편적인 욕구다.
(거의 헌법에 보장된 천부 인권 수준의 욕구라고 보면 된다.)

 

오랑캐에게 끌려갈 때를 보자.
노비 '언년이'라면
제 한 목숨 바치더라도 상전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인간 '언년이'는
자신의 주인인 대길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한다.

 

대길이가 언년이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노비 '언년이'라면
군말없이 주인을 뫼시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인간 '언년이'는
노리개가 되기 싫다고 한다.

 

개인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벗어나려면

제도의 무자비함과 야만에 맞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욕구를 자각하고

이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욕구'를 향해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모험을 선택하는 개인이 존재해야 한다.

 

 

 

# 세상을 바꾸는 법

 

01.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천천히...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정당한 욕구,

이것을 추구하는 때이른 모험자들이 늘어나는 것이

변화의 씨앗이다.

 

이다혜씨가 어떻게

사회가 정해놓은 선 너머로

개인들을 끌어내는지 살펴보자.

 

근데 사실 특별할 게 없다.
그냥 말할 뿐이다, 솔직하게.


종래의 미실이나 여인천하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과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든 손에 넣기 위해 갖은 술수를 동원하지도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착스러움도 없다.

 

다만 상대가 인간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호소할 뿐이다.

 

 

 대화의 기본 자세: 화자가 눈을 맞추고 진심을 전달하면

 청자는 오~하고 알아든는다.

 

 

자신이 살고 싶다는 것을,
살기 위해 마루 밑에 숨은 대길이에게 보여준다.
양반으로서의 체면을 버리고
마루 밑에 숨은 자신의 욕구에 비추어
언년이의 간절함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년이가 말한 사랑-상대를 소비하지 않고 존중하는 사랑-에 대해
'네가 아픈 것도 싫고 추운 것도 싫다'며 대길이 공감한 것은
본인이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길이 언년의 욕구(존중받는 사랑)에 공감하자,
(자신이 아닌 언년이를 위해 물러선다)
언년이 역시 대길의 욕구(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은 욕구)에 공감한다.
(양반과 노비의 연애는 100% 노비가 다친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걍 보내는 게 상책)

  

 

 '신분이 다른데 노리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언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현실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것에 다시 공감한 대길의 선택은
언년이가 혼자 감당해야 했을 위험을 자신이 나눠지는 것.

부모님 앞에 나가 언년이와의 혼인을 허락받으려 한다.

(양반 남자가 노비 여자와 결혼하면 벼슬에 나갈 수도 없고,
자신의 자손부터는 모두 노비. 간단히 말해 자의로 멸문하겠다는 뜻.)

 

 

 

02. 총 맞은 듯이... 들불이 일어날 수도 있다...

 

대담하지만

(위선 떨며 숨기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소리내서 금지된 것을 요구하다니!!)

보잘 것 없는

(당장은 얘네들만 그러니까)

이 선언의 대가는 가혹하다.

 

언년이가 처형당하게 된 것 (매질-> 물 안줘서 죽이기)

 

이 때 대조적인 것이
언년이와 언년이 오빠인 큰놈이의 태도.

 

큰놈이가
주인 어른 앞에서 

(둘이 그런 사이) 아니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반면,

 

언년이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주인어른 앞에서 살려달라고 말하지도
둘의 관계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노비로서 살 것인가,
인간으로서 죽을 것인가... 의 기로에서
언년이가 선택한 것은 분명했다.

 

그런 언년이의 선택이 변화시킨 것은
언년이의 오빠, 큰놈이.

  

 

언년이가 죽을 지경이 되니 사람이 이렇게 달라졌다!!!

언년이가 오빠로부터 사랑받으며 자랐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언년이는 노비로서의 자신을 경험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경험이 먼저였을 것이다.

 

 

 

'노비' 큰놈이는 평생 주인을 섬겼지만
'인간' 큰놈이는 그날 밤 처음으로 인정을 호소하며 아버지를 부른다.

 

그러나 인간을 변화시키는 이 공감의 메커니즘은,
인간성이 결여된 상대에겐 먹히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대길이 아무리 울어도 아버지는 그 아픔을 알지 못하고
큰놈이 아무리 애원해도 아버지는 혈육의 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비인간적인 사회에 맞서 큰놈이가 선택한 것은
노비로 사는 것도, 인간으로 죽는 것도 아닌,
인간으로 살기 위해,
비인간적인 아버지-세계-를 죽이고 거기서 나오는 것.

그리고 큰놈이는 10년만에 가장 양반다운 양반.
덕망있는 좋은 양반이 된다.

 

큰놈이는 드라마에서 최초로

단단한 세계에 작은 금을 내는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세계(아버지)를 깨고 나왔던 큰놈이가

기존의 양반과 다름없어지는 순간

자신이 벗어낫다고 생각했던 무자비한 세계가

형제의 모습을 하고 다시 눈 앞에 나타난다. 

 

아버지가 대길을 위해 언년이를 죽이려던 것에 절망했던 그가

혜원을 위해 대길을 죽이려 드는 아버지와 똑같은 인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세계를 한 번 깼다고 해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부조리한 세계에 다시 붙잡히는 것이

아마 변절일 것이다.

 

주인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를 뿐인 백호는,

큰놈이가 정당성을 잃은 순간

자동으로 존재 가치를 잃는다.

 

 

 

03. 안주하는 자는 변한다...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해야 하는 법.  

 

혜원(이제부턴 언년이가 아니라)이 양반에서 멈추지 않은 것은
양반 역시 신분제에 예속된 부품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권부품이건 천민부품이건
정해놓은 대로 굴러가야 하는 것은 똑같다.

 

만혼이다... 책잡히기 쉬우니 시부모 공양 잘하고 지아비 잘 떠받들고

아들딸 많이 낳고... 혹시 모르니까 기억도 파내고... 어익후 - _ - ;;;


 

 

 

집안에서 정해준 혼인을 거부하고,
정인의 증표를 가지고 다니고,
정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으며,
때로는 남장도 하고,
외간 남자랑 같이 다니고,
상대가 사실상 노비인데다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혼인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인 신분제 사회에서
노비 신분의 역적과 연애 결혼이라니.... 자살 행위다.)

 

 

언년이가 동조자(오빠)를 얻어 노비에서 벗어나는 순간

노비를 처벌하던 아버지가 오빠의 손에 죽는 것처럼,

 

혜원과 함께 동행하기로 오지호가 결심한 직후,

양반을 처형하는 자객도 목숨을 잃는다.

 

언년이가 노비의 세계에 함몰되지 않았던 것처럼,

양반의 굴레 역시 더이상 혜원을 붙잡아 둘 수 없게 된 것이다.

 

 

 

# 나를 배반하는 세상을 배신하지 않는 법

 

01 계산하지 말 것

추노에서 이다혜의 역할이 수동적이라는 얘기는
능동성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평가다.

꼭 싸움하고 대장 먹고 (주로 남자용)
원하는 것은 아득바득 손에 넣고야 마는 비뚤어진 카리스마(주로 여자용)가
있어야 능동적인가?

 

이다혜씨가 맡은 역할은
종래와는 다른 타입의 내면적 강인함에서 나온 능동성이다.

이다혜씨는 단순히 연애질이나 하는 역할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지극히 당연한 욕구들이
한 개인의 자존과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뭉개버릴 수 있는 사회에서,
이다혜씨는 그 모든 욕구들에 기꺼이 목숨을 건다.

 

정말 대단한 것은
자신이 거대하고 악의적인 사회에
직접적으로 대항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다.
두려운 대로, 모자란 대로... 결과가 어떻든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남장을 한다고 여행이 안전해지지는 않으며

머리를 자른다고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좋은 세상이 올때까지, 혹은 자신이 강력해질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으면

자신도 세상도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무언가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기 때문에 무언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02 나도... 너도... 우리 모두 계산은 이제 그만...

 

그런 인간형은 주위에 반향을 끼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로 설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구구절절 말이 없어도 사람을 변화시킨다.

 

(왜 하필 노비놈이랑 혼인을 하냐... 고 절규했던 대길이가
송태하와 같이 있는 혜원을 보고 나서
같은 패거리에게 물은 것은 '너희는 무엇이 하고 싶으냐'였다.)

 

이다혜씨가 연기했던
언년이나 혜원에게 공감했던 인물들은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다혜.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존재이며
그러기에 가장 가혹하게 처벌받는 존재이다.

 

근시안적으로 보자면
이다혜씨가 민폐를 끼치는 것은 맞다.
비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세상에서
개인이 인간으로 남기로 결정하는 순간,
세상은 번민의 바다고 투쟁의 장이며 비극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이 분들 말씀을 따르거나 혹은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은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다 

 

 

 

그렇다고
김용철 변호사가
사제단이나 이런저런 후원자에게
민폐를 끼쳤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용철 변호사가 입에 칼 물고
이건희네 집에 불지르러 가지 않았다고
수동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사회정의는 어쩌면

양심을 지키며 올바르게 살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욕망들의 결과일지도... 

 

 

여기까지는 현실과 드라마의 교차점이었다.

추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야당의 위기가 겹쳐보이기도 하고,

어용 단체의 활약이 떠오르기도 하고 

합법의 탈을 쓴 횡포의 사례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진흙 속의 진주처럼 아주 가끔 빛을 발하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꿈꿔보기도 한다.

 

 

 

 

 # 결정적일 때 발목 잡는 건 누구?

 

이제부터는 좀 가벼운 얘기를 해보자.

 

혜원이 엄청난 내면적 강인함을 지닌 인물임에도 

민폐 캐릭으로 비난받는 까닭은 뭘까?

 

일단 이다혜씨의 연기 때문은 아니다.
원인은 바로 오지호의 연기.

 

이다혜씨의 역할은
해야 하는 일에 칭칭 얽매여 있는 인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인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의무와 도리로 똘똘 뭉친 송태하를 연기할 때의 오지호에게

불만을 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면 연기가 아니라... 내면이 아예 없다해도... 한없는 용서를 베풀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로봇 송태하에서
인간 송태하로 변해가는 순간들에 보여줘야 할
내면의 갈등, 떨림, 흔들림 등등...의
온갖 내면 연기를
오지호가 더럽게 못 한다는 것이다... ㅠ,ㅠ

 

한참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제주에서 원손마마 내팽겨치고
벼랑위 절경에서 뽀뽀씬만 봐도...

 

그 지점은
'충신' 송태하와
'인간' 송태하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어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국가를 위해 이 한몸 아낌없이 바치겠노라.'라는 말투로
'데려올 사람이 있다. 안 오면 먼저 가거라.'라니...
전혀 인간 송태하가 보이지 않는다.

 

 

 

 멀어지는 언년이의 환상에 안타까워하는 대길.

장혁의 이 상실감 장면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럼 다음 장면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10회의 똑같은 시간대에 장혁과 교차편집으로 등장한 오지호다.

무려 벼랑 위에서 기다리는 이다혜를 바라보는 장면인데...

혜원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설렘과 행복이 느껴지는가? 

 

 

그러니 시청자들은,
'충신' 송태하의 급박한 추격씬 사이에
생뚱맞게 웬 연애질이냐고 비난한다.

 

'인간'과 '충신' 사이의 갈등이 없으니
'인간' 송태하가 설명되지 않고
이다혜씨와 키스하는 게 '충신' 송태하로 보이니,
기껏 절체절명의 순간에
극적으로 '인간' 송태하로 급선회하는 장면이
순식간에 김이 팍 새버린다... ㅜ,ㅜ

 

배경, 배우 할 것 없이 곱게 꽃단장하고 기다렸건만... 오라는 '인간' 송태하는 안 오고... ㅜ,ㅜ


 

 

연애물 재미의 반은 캐릭 변화가 먹고 들어간다...
게다가 이 드라마 주제가 뭔가?
세상과 사람이 어떻게 바뀌어야하는가... 이거잖아... ㅜ,ㅜ

(근데 오지호... 넌 안 바뀌고 있어... 어떡해, 어떡해...
너만 정의의 로봇이야... 무려 로봇이 연애해... 살려줘...)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절벽에서 둘이 뽀뽀하는 게 아니라,
오지호가 뗏목 냅두고 절벽으로 가는 그 장면부터였다.

안타까운 것은 오지호는
로봇 송태하(추격씬)가 워낙 재밌다 보니
연기력 논란을 비켜가는 반면,

이다혜는
본인은 제대로 연기하고 있음에도 불구,
상대가 로봇 송태하인 바람에
본인 등장씬에서 유독 드라마가 재미없어져버린다는 점.
그리고 욕은 이다혜가 독박 ㅠ,ㅠ

 

 

 # 그럼 상대를 바꿔보자...

 

비교되는 장면이 바로
장혁이 오지호를 죽이려다가
이다혜를 보고 나서
추노질을 그만두기로 하는 씬.
(이렇게 하면 분명히 좌의정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
하긴... 성공했다고 살려둘 좌의정도 아니지만.
어쨌든 조선 최고 실세의 오천냥을 꿀꺽하고 멀쩡할 인간은 없다.)

사실상 장혁이 자기 목숨 내놓기로 결정하는 장면들인데,
(최장군과 왕손이한테 사실상 유산 분배해줌.)
이 장면에선 이다혜 민폐논란이 없다.

바로 장혁이 자신의 내면에서 들끓는 상호 배반적인 감정들에 
(집착과 애정, 복수와 이해)
아낌없이 흔들리다
'본연의 선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고통스러운 내면을
충실히 묘사해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네가 행복하면 안 되지'

그랬던 대길이가... 엉엉 울다가... 아이고 부처님... 하다가 마침내 변한다.


 

 

 

장혁이 처한 상황을 따지게 되는 게 아니라
(그러면 이 년이 또 민폐질이얏!!이라며 화내게 된다.)
장혁의 내면 변화에 같이 몰입해버리는 것이다.

장혁의 위험한 선택에 우리가 수긍하고 마는 것은,
10년을 집착과 복수에 시달리던 '추노꾼' 대길이
10년 전, 언년이를 위해 가문과 신분을 버렸던 '인간' 장혁으로
변화하는 순간이 절절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역이 제대로 변화하는 순간,
긴장감이 팽팽한 쿠데타의 한가운데서도
송태하와 빛나는 한 때를 보내며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는 이다혜는 설득력을 얻는다.
 

 하루 빨리 군사는 모으러 가야 되지,

조선비랑은 슬슬 내부 갈등 일지...

이런 상황에서 결혼질이라닛!!!이란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이 장면과 장혁의 폭발적인 감정 변화 씬이 서로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제주의 절경 위에서 이다혜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장면의 중요성과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한낱 한복화보라고 폄하되는 까닭은...

이다혜가 오지호 마음 속의 이상화된 인물을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보여주었음에도,
정작 그것에 자극받고 갈등하고 고뇌하고 망설이다
마침내 극적으로 변화하는 오지호의 마음이 보이지 않아서다.

변화의 원인으로 이다혜씨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변화 자체가 설득력있게 제시되야 하는 것이다.
오지호는 멋진 배우지만,
내면의 변화를 연기하기엔 아직 불충분하다.

  

# 사태를 해결은 해야 되겠고...

이다혜씨는 신분제를 초월한 순수한 이상형의 인간을 연기한다.
구체적인고 현실적인 인간이 아니라,

상징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송태하와 대길 모두의 이상향... 가까워올 때도 사라질 때도 아름다운 존재. 

인간성 회복을 상징하는 구원의 여신인데... 이 정도 미모는 수긍해주자. 

성모 마리아도 가련한 어린 양들을 위해 출산후 붓기 덜 빠진 현실적인 외모는 살포시 감추어 주시지 않는가... 

 

 

 

아름다움으로 표현된 이 이상적 인간형에 

상대역이 제대로 반응해주지 않으면,
아다혜씨의 상징성은 
쓸데없이 드라마 발목잡는 눈요기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이론적으로 세 가지.
오지호가 뛰어난 연기력을 급속 충전하여
이제부터라도 '인간' 송태하로 변신할 것.
(피노키오도 했으니, 오지호라고 못 할 건 없지만...
문제는 드라마 끝나기 전에 변신해야 한다는 건데... 현실성은 없다.)

두 번째는 내면 연기가 가능한 장혁으로 러브라인을 바꿀 것.
하지만 이미 장혁이 '인간'으로 변신한데다...
오지호랑 결혼까지 해버려서... ㅜ,ㅜ
다만, 송태하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눈이 뒤집힌 장혁이
재변신하는 포인트를 노려볼 수는 있겠다.

마지막 세번째는... 이다혜가 상징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로 변신하는 것.


문제는... 여태껏 의도된 초월성을 벗어버리는 순간...
이다혜 역시 땅바닥을 뒹굴며 몸부림치는 육신을 입고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인데...

이 극단적인 변화를 설득력있게 연기하는 게
만만치 않을 거라는 점.
(그래도 오지호씨보단 이다혜씨한테
변신 연기를 기대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기는 하다.)

문제는... 이다혜씨의 변화가 원래 시나리오상 잡혀있는 과정이고
그래서 김혜원이라는 인물이
여전히 드라마의 주제를 상징할 수 있으면 괜찮다.

하지만 사태수습용으로 급히 비상착륙시킨 거라면...
상징성은 상징성대로 사라지고,
현실성 넘쳐나는 인물들이 안그래도 득시글거리는 캐릭의 격전지에서
소리소문없이 장렬히 전사할 수도 있다... ㅜ,ㅜ

그러면
'암담한 이 세상,
그나마 한 줄기 있던 희망 따위 그냥 사그러지고 마는 거다!!!'
라는 막장 주제로 치달을 위험성도... ㅜ,ㅜ

머... 어떻게 되든
추노...
부디 희망이 있는 드라마로 남아주길...

 

출처 : 그냥 한번...
글쓴이 : 강살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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