幽默雜事/折碎房間

실크로드 - 중앙아시아 要路 우즈베키스탄

마장골서생 2012. 2. 3. 10:57

'헛소문만도 아닌 '김태희 정도 수두룩',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要路 우즈베키스탄 (다섯)

 

 

헛소문만도 아닌김태희 정도 수두룩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要路 우즈베키스탄

면사포 쓴 신부 마치 선녀 같아 설레게 해 (다섯)

                               (2010년 11월 12일 ~ 11월 19일)


중앙아시아서 가장 큰 메드레세 이젠 호텔로

 

일행은 ‘쿠냐 아르크(Kunya-Ark)’에서 나와 서문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 건물인 ‘무하마드 아민 칸 메드레세(Mohammed Amin Khan Madrasah)’로 되돌아간다.

무하마드 아민 칸이 1852년 ‘칼타 미노르 미너렛’ 축조와 동시에 지은 건물이다.

그 건물 끝 이찬칼라 안쪽에 ‘칼타 미노르 미너넷’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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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칼라에서 가장 높은 '무하마드 아민 칸 미너렛' 앞길에서 만난 신혼부부 행렬. 면사포 쓴 신부는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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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칼라에서 가장 높은 두 첨탑(미너렛)과 가장 큰 푸른 돔을 가진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의 지붕이 보인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메드레세(Madrasah : 젊은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이슬람사원 부속 고등교육시설)다.

이 긴 큰 건물은 벽이 두껍고 튼튼하게 지었다.

직사각형의 긴 2층 건물이다.

건물 복판에 전체 건물보다 높고 화려한 메인게이트가 자리했다.

메인게이트 동 ․ 서 양쪽으로 다섯 칸으로 이뤄진 똑 같은 건물이 이어졌다.

그리고 건물 양쪽 끝엔 흰색과 파란색의 화려한 타일을 붙인 낮은 첨탑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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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칼라서 가장 큰 '무하마드 아민 칸 메드레세'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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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메드레세 메인게이트의 양편엔 꼭 이 같이 생긴 건물이 붙어 있다. 왼쪽건물 모습.)

 

2층보다 높은 뾰족아치로 만든 메인게이트 내부는 아주 화려하고 특이하다.

벽면과 천장엔 캘리그래피(Calligraphy :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 장식이 아니라 눈부신 터키산 칠보타일로 치장했다.

또 2층 높이에 목조로 된 발코니가 2층의 동 ․ 서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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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게이트 안쪽을 장식한 그림. 죄수를 벌주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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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의 중앙아시아 지도. 푸르게 큰 곳이 카스피해, 작은 곳이 아랄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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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통용되던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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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의 장신구.)

 

메인게이트 안쪽 벽엔 갖가지 옛 그림을 걸어뒀다.

이들 기록화는 죄인을 다루는 그림 코란을 공부하는 그림 옛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 영토를 그린 지도(지도엔 카스피해와 아랄해 등 내륙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옛 칸의 초상화나 사진 등등이다.

또 옛 화폐와 칸의 금 ․ 은 ․ 옥 ․ 보석 등으로 만든 장식물 등을 진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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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메드레세는 '칼타 미노르 미너렛'과 붙어있다.)

 

이 건물은 메드레세 외에도 이슬람 최고재판소와 감옥으로도 쓰였던 곳이다.

2층에만 모두 120개의 방이 있다.

교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방을 제공한 사례를 만든다.

메드레세엔 12살부터 입학자격이 주어진다.

기본코스는 15년.

그러나 성적이 뛰어나면 5년만에도 졸업이 가능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속국이 되면서 호텔로 바뀐 뒤 지금까지 영업을 계속한다. 건물입구와 건물앞쪽은 타일로 장식되었다.


멋지게 조각된 213개 기둥이 받친 주마사원

 

성 안쪽으로 들어간다.

길거리엔 민속공예품을 파는 난전과 가점포가 연이어졌다.

여러 종류의 카펫도 걸어놓고 판다.

조금 늙은 낙타 한 마리가 공터에 메어있다.

낙타 주변엔 대여섯 명의 현지인이 모여 얘기를 나눈다.

그 중엔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인이 낙타 주위를 돈다.

아마 순산을 기원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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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교길의 초등학생들. 카메라를 보자 손을 들며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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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낙타가 성안 정원 근처에 묶여있다.)

 

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늙은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정원도 보인다.

일행이 찾은 유적은 주마사원(Djuman Mosque)과 미너렛이다.

이 모스크는 5.000여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큰 공간이라 중앙아시아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10세기에 건축되었다.

그 뒤 여러 번 재건축을 거쳤다.

지금의 형태를 갖춘 시기는 18세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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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3개의 나무기둥으로 만들어진 '주마 모스크' 천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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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여 년의 견뎌낸 목조열주. 아랫부분은 조각 자취도 희미해졌다.)

 

이 사원엔 3m 간격으로 213개목조열주(나무기둥)가 지붕을 받치고 있다.

이들 기둥은 각각 독특한 조각이 아로새겨져 눈길을 붙들어 맨다.

이들 열주 중 가장 오래된 기둥은 옛 호레즘(Khorezm) 첫 수도 우르겐치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약 1.000여 년을 지탱해 온 것이다.

이들 기둥에 새겨진 멋진 조각은 천장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에 의해 독특한 분위기와 신비감마저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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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마모스크' 내정의 4각 정원.)

 

건물은 ‘’형이다.

복판의 정사각형 공간을 통해 햇볕이 찾아든다.

이 사원은 지금은 음악박물관으로 쓰인다.

음악박물관으로 쓰이는 방은 열쇠로 잠겨있어 내부를 보지 못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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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마모스크'의 미너렛. 41m로 이 성에서 두 번째 높은 첨탑이다.)

 

모스크 앞에 자리한 미너렛이찬칼라에서 두 번째 높은 첨탑이다.

높이 41m다.

탑 안에 설치된 81개의 나선형계단을 타고 오르면 꼭대기에 다다른다.

미너렛도 오르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장 작고 높은 메드레세 ․ 미너렛 대칭 이뤄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미너렛(Islam Khoja Madrasah & Minaret)을 찾는다.

주마모스크에서 성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왼쪽으로 꺾어진 골목이 나온다.

이 골목엔 가방 ․ 나무스틱 ․ 카펫 ․ 옷가지 등 갖가지 가게가 이어져 상당히 붐빈다.

그리곤 큰 대문이 나타난다.

대문 안은 연이어진 뾰족아치 길로 천장은 백색 페인트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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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와 미너렛' 찾아가는 골목. 장사꾼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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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뾰족아치로 연이어진 터널.)

 

그 길 벗어나자 멀리 이찬칼라에서 가장 높은 이슬람 호자 미너렛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또 오른쪽엔 이슬람 묘지와 짙푸른 지붕을 얹은 낮은 첨탑도 보인다.

아치형 묘마다 전면엔 사자(死者)의 이름과 이력 등을 적은 붉은 철판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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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와 미너렛' 근처에 있는 이슬람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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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45m로 이 성에서 가장 높은 '이슬림 호자 미네렛'의 당당한 모습.)

 

미너렛 앞길에서 면사포 쓴 신부와 양복에 넥타이 맨 신랑의 신혼부부 행진대열을 만난다.

이 대열엔 곱게 차린 화동 두 명이 길라잡이로 앞장섰다.

그 뒤로 팔짱 낀 신혼부부와 그 양옆에 남 여 대반(對盤) 두 젊은이가 붙어서 걷는다.

신혼부부 뒤로 가족 친지 등 수십 명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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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호자 미너렛 앞에서 이곳 여인 한 명과 기념촬영한 일행.)

 

면사포 쓴 신부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

늙은 나그네까지도 사진 찍으며 가슴이 두근댄다.

‘이 나라 여인들은 모두 미인’이라고 소문 낫듯이 말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우즈베키스탄엔 김태희 정도의 미인이 밭을 매고, 전지현 정도가 시장에서 장사하며, 수많은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 테니스 선수)가 거리를 활보한다.”는 등의 얘기가 퍼져있을 정도니깐.

이곳 사람들은 옛 유적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걸 영광으로 여긴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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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호자 미너렛'을 오르는 계단에 선 나그네.)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미너렛으로 오르는 계단은 붙어있다.

정원덕사장님은 이 계단 통해 높이 45m이찬칼라에서 가장 높은 이 첨탑을 올랐으나 나그네는 포기하고 만다.

첨탑 안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너무 힘듭니다. 오르지 마세요.”라고 강권하는 가이드 김씨의 의견을 중시했다. 사실 그 보담 힘이 달렸기 때문이리라.

히바(Khiva) 떠나면서는 후회스러움이 꾹 치밀어 올라 한동안 참느라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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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칼라에서 가장 작은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 전경.)

 

이 건축물은 이찬칼라에서 가장 근세인 1910년에 지어졌다.

히바한국(Khiva 汗國) 최후 칸의 대신이던 이슬람 호자(Islam Khoja)가 건축했다.

그는 러시아나 유럽을 자주 나다녔던 개방적인 인물이다.

유럽식 학교나 병원 우체국을 비롯해 새로운 도로의 건설 등 히바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그는 급격하게 외래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보수파와 마찰을 빚게 된다.

결국 음모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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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작은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의 정문. 정문은 화려한 타일로 장식했다.)

 

이찬칼라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이 메드레세 입구는 멋진 타일로 정면을 장식했다.

1층엔 42개의 방이 있으나, 2층엔 방이 없다.

마당도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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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호자 미너렛' 앞에서 한 여인과 포즈 취한 정 사장님.)

 

45m의 이 미너렛은 기단의 지름이 9.5m다.

벽돌로 쌓아올렸지만 중간 중간에 채색된 타일을 둘러 입혔다.

그래서 실제 높이보다 더 높게 보이는 기시감을 일으킨다.

 

따라서 ‘가장 작은 메드레세와 가장 높은 미너렛의 건물’로 유명하다.

이 건물 또한 당초엔 병원 ․ 약국 ․ 우체국과 전신국, 수공업 공장과 사립학교 등의 용도로 쓰였다.

메드레세 앞 2층 건물은 몇 십 년 전까지 통역사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다.


존경받는 시인 영묘 석관, 모자이크 눈부셔

 

일행은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Pahlavan-Mahmud Mausoleum)를 찾아간다.

중심가에서 남쪽에 있다.

파흘라반 마흐무드(Pahlavan-Mahmud : 1247 ~ 1326)는 히바(Khiva)에서 존경받은 시인이자 철학자 겸 레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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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의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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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흘라반 마흐무드'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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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의 천장.)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는 에서 가장 큰 푸른색 타일로 덮인 뾰족아치형지붕이 덮었다.

또 영묘가 있는 건물은 이찬칼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타일로 내 외장을 장식했다.

특히 벽과 천장은 화려한 문양의 타일로 조각되어 있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석관 모자이크는 눈이 부실 정도다.

이 관이 위치한 내부엔 샹들리에의 불빛이 비춰줘 신비감과 황홀함을 연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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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묘 안에 있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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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묘를 장식한 터키 고급 타일.)

 

이 묘역 안엔 전설의 우물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지금도 양철로 된 큰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로 손을 씻고 영묘를 참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물물을 “남자가 마시면 힘이 강해지고, 여자가 마시면 아름다워진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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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쉬 하울리 궁'의 출입문.)

 

일행은 이찬칼라의 동쪽에 있는 타쉬 하울리 궁(Tash Hauli Palace)으로 향한다.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에서 서문 쪽으로 돌아 나와 다시 동쪽으로 걷는다.

이 궁은 1830년부터 8년간에 걸쳐 완공된 건물들이다.

당시 이찬칼라를 지배하던 알라쿨리 칸(Allahkuli Khan)이 쿠냐 아르크에 필적할 정도의 궁으로 건축한 것이다.

따라서 이찬칼라 안에서 아름답기로 첫 손에 꼽힐 정도의 호화스러운 타일로 인터리어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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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쿨리 칸의 집무실.)

 

’형 궁전이다.

칸의 공무집행 공간 연회 및 손님접대 공간, 그리고 침실인 하렘 공간으로 연이어졌다.

각 칸마다 멋지게 조각된 나무기둥 하나가 대들보를 받치고 있다.

의식이 행해지던 공간의 천정은 화려한 기하학 모양을 조합해 호화스러움이 극에 달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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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쉬 하울리 궁'의 내정. 우물이 보인다.)

 

’형 건물복판엔 넓은 내정이 있고, 우물도 보인다.

내정을 둘러싼 2층 건물이 하렘이다.

하렘엔 크고 작은 방이 모두 163개에 이른다.

남쪽 테라스의 큰 방이 정비의 침실이다.

 당시 칸은 4명의 비빈을 두도록 법이 정해졌다고 한다.

알라쿨리 칸은 내정에 마련한 유르트(yurt : 가죽이나 펠트(felt)로 만든 가볍고 옮길 수 있게 된 유목민의 둥근 천막)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고 전한다.

지금 이 궁엔 목도리나 옷가지를 파는 장사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지키고 있다.


성 밖 바자르 대폿집서 즐거운 한 때 보내

 

어느덧 오후 3시다.

이찬칼라 안에서 들린 유적은 더 많다.

그러나 그곳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다 알 수 없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어떤 문화재는 정문 사진만 찍기도 했고, 또 어떤 유적은 정문을 들어가 얼른 살피고 되돌아 나오기도 했다.

가이드 김씨의 역할이 마땅찮으나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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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칼라' 성밖의 바자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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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행은 이찬칼라 동문을 통해 성 밖과 붙은 히바바자르(Bazaar : 시장이나 상점가)를 찾는다.

의류와 잡화, 그리고 식료품 ․ 채소 ․ 견과류 ․ 과일 등 생필품을 거래하는 곳이다.

의류와 잡화는 그나마 허름한 가게에 진열되어 있지만 그 외의 품목은 난전에서 팔았다.

구두나 가방수선난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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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자르 내 옷감가게. 자매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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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 가게. 다른 식료품도 판다.)

 

가이드 김씨와 초암주지스님과 송정화씨는 바자르를 한 바퀴 돌곤 석류를 사 이찬칼라 안으로 먼저 들어간다.

정원덕사장님과 나그네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난전대폿집일망정 들려보지 않고 배겨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 대폿집엔 술안주로 ‘샤실릭(шашлык)양고기 꼬치 굽고 있었다.

맥주와 양고기 꼬치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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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고기 꼬치를 굽고 있다.)

 

맥주는 유리컵이 없어 사발에 따라 마신다.

양고기 꼬치는 노린내가 풍긴다.

예상했던 대로다.

난데없는 관광객 두 늙은이가 술을 마셔대자 구경꾼들이 늘어난다.

그 중엔 이웃 음식점 여주인도 보여 손짓으로 불러본다.

그녀는 다른 부인까지 데리고 와 합석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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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자르 대폿집에서 이웃 식당 아주머니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우린 그냥 그녀들에게 ‘코리안’이라고 말하자 ‘! 주몽’이라고 반기면서 술잔을 받아든다.

정 사장님이 사발에 맥주를 가득 부어주자 벌꺽벌꺽 잘도 마신다.

짧은 시간 웃고 떠들면서 낯선 이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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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자르엔 구두수선공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다시 시장을 한 바퀴 도는데 ‘달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바로 40대 암달러 상인이다.

웃고만 돌아선다.

괜히 경찰에게 달러를 바꾸다가 적발되면 큰 말썽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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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과 과일을 파는 난전가게.)

 

이찬칼라 북문으로 가는 길 앞에서 일행과 만나 숙소로 간다.

저녁 먹고 잠시 휴식 취한다.

밤의 이찬칼라를 보기 위해서다.

이찬칼라는 낮 ․ 밤 ․ 새벽 이렇게 세 번을 봐야만 ‘참다운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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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사장님이 쓰고 있던 모자와 상인이 파는 모자를 바꾼 후 서로 만족해 하는 표정.)

 

여름철엔 찌는 듯한 더위로 낮 동안은 성안이 텅 빌 정도란다.

우린 다행히 11월 중순을 택했으니 낮에 성 구석구석을 다 돌았다.

그러니 야경이나 해돋이 때의 이색적인 풍광만 훑으면 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