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中國時事

위구르 사태 왜 일어났나

마장골서생 2009. 7. 24. 12:51

[국제] 위구르 사태 왜 일어났나

믿음 버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위구르인의 뿌리 이슬람교 억압에 분노

 

 체포된 남편과 아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 중인 위구르족 여성들. photo 조선일보 DB

 

우리는 평등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살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총으로 쏘라고 하세요.”

지난 7 7일 중국 북서부 신장 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의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던 한 젊은 위구르 여성은 외국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죽여 달라 TV카메라 앞에서 절규하는 이 위구르인의 말에는 중국 내 897만 위구르인의 한이 서려있다
.

중국 톈산(
天山) 산맥 아래 도시 우루무치가 피로 얼룩지고 있다. 7 5일 첫  시위 이후 최소 156명이 사망하고 10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중국 당국은 밝혔다. ‘차별 대우 중단으로 시작된 위구르인의 시위 구호는분리 독립으로까지 발전했고 중국 당국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스크에 예배 드리러 가는 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서쪽 끝 실크로드 도시 카스에서 기자가 만난 위구르인 가이드 아크바르의 말이다. 당시는 베이징올림픽 기간 중이었고 기자는 위구르 분리독립주의자들의 폭탄 테러 공격 이후 이 지역 정세 취재를 위해 신장 위구르자치구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분리주의자들이 카스 시내의 중국 국경경찰청사 앞에서 새벽에 구보하러 나온 경찰관들에게 폭탄을 던져 십수명을 살해한 직후였다
.

당시 중국 당국의 감시를 피해 현지 상황을 취재하면서 위구르인이 종교 자유까지 구속받는 걸 접하고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아무리 무신론자들의 집단이라고 해도 종교 자유까지 억압하는 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카스에서는 미성년 무슬림의 모스크 출입도 허용되지 않았다. 카스 중심에 있는 이 도시 최대의 이드 카 모스크 앞 광장에서 지켜보니 무슬림의 휴일인 금요일인데도 부모 손을 잡고 모스크에 들어가는 어린이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

또 이슬람의 예배 인도자인 이맘들은 개인적으로 이슬람 성경인 코란을 가르칠 수 없고 아랍어 공부는 지정된 정부 학교에서만 허용됐다. 이슬람 신앙을 떠받치는 5대 기둥 중 두 개인라마단 기간 중 금식메카로의 순례도 당국이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즉 학생과 정부 기관 종사자들은 라마단 때에도 식사를 해야 하며 개인적으로 메카 순례 여행에 나서는 위구르인의 여권은 압류됐다. 위구르인은 정부가 주관하는 공식적인 순례만 따라갈 수 있었다
.

민족 정체성의 상실은 위구르인이 느끼는 최대의 문제이다. 종교 생활에 대한 제약이 가해지고 학교에서의 민족 언어 교육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끝없이 몰려오는 한족은 위구르 땅에서 위구르인을 소수 민족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

위구르족은 역사적으로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최대 집단이었지만 최근 인구 지형은 급격히 바뀌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장려에 힘입어 한족이 대거 신장으로 이주하면서 1949년 신장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했던 한족이 2000년 조사에서는 40%를 기록했다
.

중국 중앙정부가 1990년대서부대개발정책을 채택한 이후 신장의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도 향상됐다. 하지만 많은 위구르인들은 여전히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고 한족과의 소득 격차도 늘어나고 있다. 잇따라 부설되는 철도와 도로를 타고 밀려드는 한족은 석유, 농업, 건설 등 신장의 대규모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

위구르인은 소외를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지난 7 8일 보도한 카스에 살았던 한 위구르인의 말이다. 인권단체휴먼 라이트 워치의 중국 연구원 니컬러스 베컬린 역시기본적으로 위구르인과 한족 간의 관계는 식민지배자와 피지배자라고 말했다
.

물론 중국 관리들은 정부의 정책이 소수 민족 불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걸 부인한다. 많은 한족은 위구르인이 중국 내 다른 55개 소수 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위구르인은 아이를 두 명 이상 낳아도 한족과는 달리 벌금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위구르 학생이 대학 입학시험을 볼 때 가산점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족이 잘사는 건 자신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주장하며위구르인은 게으르다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레비야 카디르

  

중국 정부는 민족 분쟁의 원인으로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 신장은 레비야 카디르(62) 같은 외부 인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중국 당국이 이번 우루무치 유혈 시위의 배경으로 지목한 레비야 카디르는 해외 위구르인 단체인세계위구르회의대표. 레비야 카디르는 중국에서 대단히 성공한 여성 기업인이었으나 1999년 중국 당국의 위구르인에 대한 정책을 비판한 뒤 투옥됐다가 지난 2005년 신병치료를 이유로 석방돼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평화적인 운동을 강조하고 있으며 무장 투쟁은 반대한다. 레비야 카디르는 해외의 위구르인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나 그가 위구르인을 결집시킬 역량을 가졌는지는 미지수이다.

위구르인은 티베트의 분리 독립 운동과는 달리 최근에서야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옛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하면서 민족운동에 눈을 뜬 탓이다. 티베트의 경우 망명지도자 달라이 라마라는 지도자가 있는 반면 위구르인에게는 확실한 구심점도 없었다
.  

중국 당국은 위구르의 분리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위구르 지역이 분리 독립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중국 정부가 소수 민족을 포용하며 이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


최준석 조선일보 국제전문기자 jscho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