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文史哲/經濟故事

국세청 ‘TJ 동향 보고서’ 만들었다

마장골서생 2009. 7. 3. 21:59

국세청 ‘TJ 동향 보고서’ 만들었다

검찰, 지난 연말 압수수색 때 발견…
외주사 관련 이권 문제 담고 있어 포스코의 총력 로비 의혹과도 맞물려

 

» 2005년 국세청은 포스코 세무조사를 벌여 1797억원의 추징세금을 부과하고도 끝내 검찰에 고발하지 않아, 포스코의 세무조사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검찰이 압수수색할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이 만들어놓은 ‘TJ 동향 보고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2008년 12월3일 오후 1시30분. 검찰은 대구 북구 침산동 대구지방국세청 3층 조사1국2과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조사1국은 법인세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2층 대구지방국세청장실 역시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이었다. 대구지방국세청 관계자는 “당시 검찰 직원들이 영장을 들고 들이닥쳤다. 포스코 관련 수사를 한다고 했다. ‘수사에 참고해야 한다’며 포스코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검찰에 건네준 자료는 국세청이 기업들을 상대로 하는 ‘정기조사’ 자료였다”고 말했다.

검찰은 앞서 구속된 이주성 국세청장 조사 과정에서 포스코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흔적을 포착했다. 검찰은 포스코 외주업체들의 납품 비리와 이 전 청장 재직 시절 포스코가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조사 무마를 대가로 돈이 오갔는지를 살펴봤다.

2005년 포스코 세무조사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왜 국세청이 포스코 세무조사 뒤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느냐다. 최근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비교해봤을 때도 의문은 증폭된다.

지난해 7월 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이 부산 태광실업 본사에 직접 내려가 관련 장부를 압수해 오면서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시작됐다. 세무조사를 지시한 것은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었다. 원래 태광실업을 담당하는 곳은 부산지방국세청이었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은 지방 기업의 세무조사에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동원했다. 국세청이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들어가자,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국세청은 4개월 동안 먼지떨이식 조사를 한 뒤, 지난해 11월25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모두 242억원의 세금을 탈루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는 등 정·관계 수사로 확대했다.

2005년 포스코 세무조사도 비슷한 차례로 진행됐다. 국세청장의 지시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투입됐고, 세무조사 뒤 맥시멈(최고치) 과세를 한 것도 닮았다. 수개월 동안 먼지떨이식 세무조사를 한 것 역시 같았다. 태광실업 때와 마찬가지로 포스코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그 뒤로 극명하게 갈라진다. 국세청은 검찰에 고발하는 것을 포기해버린다.

 

이주성 전 청장 특명으로 서울청 요원 급파

 

국세청의 포스코 세무조사 과정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5년 국세청의 포스코 세무조사도 7월에 착수됐다. 2000년 민영화 뒤 처음으로 실시된 세무조사였다. 하지만 정기 세무조사 이름으로 시작한 포스코 세무조사는 사실상 ‘특별(심층) 세무조사’로 확대됐다. 애초 세무조사는 관할인 대구지방국세청 조사1국 소속 조사요원들이 맡았지만 기획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까지 투입됐다.

국세청의 정예요원들이 투입된 배경에는 대구지방국세청의 중간 조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이주성 전 청장의 특명이 있었다. 전직 국세청 관계자는 “이 전 청장이 포스코의 세무조사를 ‘세게’ 하려 했다. 하지만 대구국세청에서 잘 안 하는 것인지, 잘 못하는 것인지 특별히 건진 게 없었다. 이 전 청장이 대구지방국세청의 중간조사에 불만을 터뜨리며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조사요원들을 급파했다”고 말했다.

그 뒤 포스코에 부과된 추징세금은 1797억원이다. 세금 추징 규모가 크면 국세청이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게 수순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포스코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포스코는 국세청 추징세액을 순순히 납부한 뒤, 이듬해인 2006년 6월 국세심판원(현 조세심판원)에 추징액 전액에 대한 과세 불복을 제기했다. 포스코가 과세 불복을 제기한 이유는 세법 해석의 문제라고 알려져왔다. 포스코는 지난 15년 동안 포항제철소의 차세대 친환경 공법인 파이넥스 기술 개발에 공을 들여왔다. 연구개발비 5541억원, 설비투자 1조600억원 등 파이넥스 공법에만 1조6141억원을 쏟아부었다. 포스코와 국세청의 시각차는 이 돈을 연구개발비로 볼 것인지 여부였다는 것이다. 연구개발비로 본다면 손비 처리가 가능하지만 투자비라면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국세청은 연구개발비를 탈세 수단으로 인식해 과세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고, 포스코는 순수 연구비로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 세무법리 해석 때문에 조사 기간을 연장할 만큼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했겠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세무조사 결과 밝혀진 것 이외에 더 큰 비리가 있었을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 포스코가 로비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포스코 쪽은 결국 거액의 세금 추징을 당했다는 점을 들어 로비를 공식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의 현직 고위 간부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하기 위해 당시 이구택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의 핵심 임원들이 전사적 차원에서 청와대와 국세청 등에 총력 로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무엇 때문일까? 이와 관련해 검찰이 2008년 대구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TJ 동향 보고서’라는 문건에 주목하게 된다. 이 보고서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언론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세무조사 보고서 뒤에 별지 문건으로 붙여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이 만든 ‘(세무)조사 결과 보고서’ 뒤에 별지 형식으로 ‘TJ 동향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이 붙어 있었다. TJ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애칭이다.

이 보고서에는 박 명예회장이 포스코와 외주사의 거래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외주사가 포스코에서 경제적 이득을 보게 하고 그 대가로 외주사로부터 개인적으로 지원을 받아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박 명예회장이 포스코와 포스코 외주사의 거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건인 셈이다.

이 문건을 알고 있다는 포스코 관계자는 “국세청 조사를 통해 이에 대한 전모가 밝혀지면 포스코 전반이 비리 집단으로 지목되고, TJ도 치명타를 입게 되는 사안이었다. 일부 비자금은 정치권으로 흘러든 것으로 추정됐다. 이 때문에 이구택 전 회장은 포스코의 부조리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차원에서 로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 사정에 밝은 한 재계 인사는 “포스코 쪽 로비의 핵심은 단순히 탈세 추징금을 깎아달라는 차원이 아니었다. TJ 동향 보고서가 비리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자, 포스코 최고위층이 총력을 기울여 로비에 나섰다. 결국 로비가 먹혀들었고, 국세청장이 주도해 덮어버렸다. 포스코와 직접 관련이 있는 사안만으로 세금을 추징하고 만 것이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한 인사는 “국세청은 포스코 세무조사 기간을 연장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하지만 포스코 본사에서 나온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추가 조사를 하면서 외주사를 뒤졌고 거기서 TJ 관련 부분이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에서 확인한 내용과 일치한다. 검찰 관계자는 “포스코는 글로벌 기업답게 (회계) 관리를 잘해놓았더라. (회계를) 완전히 딱 맞춰놓았다. 포스코 본사는 힘들 것 같고, 문제는 외주사 차원에서의 비자금 조성이었다”고 밝혔다.

전직 국세청 직원도 “TJ가 해외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포스코에는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에 관한 내용이 보고서에 있었다. 검찰이 당시 문건에 나온 외주사들을 수사한 것으로 안다. 포스코 본사보다 계열사에 조금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문제는 계열사 차원의 비자금 조성”

 

한 검찰 인사는 “박 명예회장이 포스코를 그만둔 지 꽤 됐는데도 여전히 (포스코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구택 전 회장과의 사이가 소원해졌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다’라는 식의 내용을 본 것 같다. 박 명예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포스코 오너도 될 수 있는 것 같았다. 박 명예회장이 차기 포스코 회장에 누구를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이 보고서를 보고 ‘이게 왜 여기 들어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아마 국세청장이나 대통령이 보라고 그런 자료를 만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포스코 외주사를 둘러싼 이권 구조의 문제는 ‘TJ 동향 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포스코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한 기자는 “외주업체 문제는 포스코의 아킬레스건이다. 정권 실력자가 포스코를 틀어쥐려고 하면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해 외주업체 문제를 건드리기만 하면 된다. 외주업체 문제가 나오면 역대 포스코 경영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국민기업 포스코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들로는, 외주업체와의 불투명한 거래, 정치자금 조성 의혹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는 문서가 존재했다면 당연히 공개돼야 한다. 도덕적·정치적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포스코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 철강회사로 자리를 잡고 앞으로 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