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代奉祭祀는 누구까지의 제사인가
이런 상식적인 문제를 제목으로 내세워 글을 쓰려니 서글픈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요즘 와서 세상 사람들이 옛 예법에 대해 하루가 다르게 무식해 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상식적이었던 것도 지금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4대봉제사란 뜻이다. 4대봉제사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까지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상에 대해 지내는 제사에 자신까지 여기에 포함시킬 수 없으니 당연히 4대봉제사가 된다.
전통 제례에서 고조할아버지까지는 매년 기제사(忌祭祀)를 지내지만 고조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5대조가 되면 묘제(墓祭)를 지내는 것이 상례다.
여기서 고조할아버지를 왜 5대조라 하지 않고 4대조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논리대로 하면 이는 계수(計數)의 원리에 합당하는 과학[數理]의 문제로 자신이 대수(代數)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고조할아버지까지의 제사는 4대봉제사가 아니라 5대봉제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자신을 조상의 대수에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해괴(駭怪)한 말이다.
옛 선현들은 수리에 무식해서 고조할아버지까지의 제사를 5대봉제사라 하지 않고 4대봉제사라 했단 말인가? 이런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수리를 따졌지만 사실은 수리도 모르고 국어의 논리도 모르는 것 같다.
나(0대)→아버지(1대조)→할아버지(2대조)→증조할아버지(3대조)→고조할아버지(4대조)
수리를 따지는 사람은 1(일)만 수리인 줄 알았지, 0(영)에서 수리가 시작되는 것은 모르는 것 같다.
4대봉제사라고 할 때에는 나의 제사를 이 대수에 넣을 수 없으니 나를 0(영)대로 잡은 것이다.
예법(禮法)에서 논리성과 합리성을 따지는 문제는 선현들이 현대인보다 훨씬 더 현명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상과 후손의 관계를 두고 말할 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제3자의 입장에서 조상과 후손을 두고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주체가 되어 선조 또는 후손과의 관계를 말하는 경우다. 마치 일상 생활언어에서 지칭(指稱)과 호칭(呼稱)의 다름이 있는 것과 같다. 전자처럼 제3자가 되어 객관적인 사실을 두고 보면 나에게서 고조할아버지까지는 5대가 된다. 하지만 후자처럼 본인이 주체가 되어 조상의 대수를 헤아리면 고조할아버지까지는 4대조가 된다.
자신을 조상 대수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손님 9명과 함께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묻기를 “거기에 사람이 몇 명이 있느냐”고 하면 열 사람이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나에게 손님이 몇 사람 있느냐고 물으면 아홉 사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의 숫자에서 제외 되어야 한다. 몇 대조냐, 몇 대(세)손이냐 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즉, 몇 대조냐 하는 것은 조상의 대수를 헤아리는 것이므로 자신은 이 대수에 넣어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이와 반대로 몇 대(세)손이냐 할 때는 후손의 대수를 헤아리는 것이므로 그 기준이 되는 할아버지는 여기에 계산되어서는 안 된다. 즉 기준이 되는 할아버지가 자손이 될 수 없고, 내가 조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보면 몇 대조, 또는 몇 대(세)손이라고 할 때 주체가 되는 사람은 대(세)수에 계산해서는 안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런 논리를 모르고 과학이 어떠니, 수리가 어떠니 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알아야 한다.
다음 세(世)와 대(代)에 대해서 묘제의 실례를 들어가면서 확인해 보자. 묘제의 대상은 오대조(五代祖) 이상에서 시조까지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고조까지는 가정에서 기제사로 지내고 고조의 아버지, 즉 오대조부터는 묘제를 지내는데, 여기서 몇 대조, 몇 세손이라 하는 세(世)와 대(代)가 문제된다.
본래 세(世)와 대(代)는 같은 뜻으로 사용해 왔는데, 후에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자인 세(世)자를 당나라 사람들이 바로 읽을 수가 없다고 하여 세(世)자 대신에 대(代)자로 바꾸어 썼다.
세(世)와 대(代)의 쓰임을 정확히 알려면 이 말이 쓰이던 역사적인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청(淸)나라 선종(宣宗)의 도광(道光) 26년(1846)에 편집하여 지경학재장판(知敬學齋藏板)에서 출판한 《피휘록(避諱錄)》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중국 역사상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 이것을 감히 바로 읽지 못하고 달리 읽는 것을 고증하여 보인 것이다. 이 책의 3권에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을 당시 사람들이 다른 글자로 고쳐서 읽는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당태종의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기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은 이를 감히 그대로 읽을 수 없어 모든 글에서 세(世)자는 대(代)자로 바꾸어 읽었다. 이를 학술적인 용어로 피세작대(避世作代)라고 했다. 즉 세(世)자를 피해 대(代)자로 바꾸어 썼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잘 다스려진 세상을 본래 치세(治世)라고 했으나 이를 치대(治代)로 고쳤다. 또 세종(世宗)은 대종(代宗)이라 고쳤다. 이처럼 세(世)자만 바꾼 것이 아니라, 민(民)자도 바꾸어서 본래 민부(民部)라 쓰던 것을 호부(戶部)라고 했다. 이때부터 몇 세(世)라는 말도 몇 대(代)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관례를 따라 세(世)와 대(代)는 아무런 혼란 없이 써왔다. 그런데 1960년대에 한갑수의 ≪바른말 고운말≫(1111~1112쪽. 책은 1968년 융문사에서 펴냈으나, 방송은 훨씬 그 이전에 있었음.)에서 잘못 방송되면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世)는 위에서 내리칠 때 쓰이는 말이고, 대(代)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칠 때 쓰이는 말이란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아래에서 위로 올려칠 경우
고조의 아버지(五代祖) ← 고조(四代) ← 증조(三代) ← 조(二代) ← 부(一 代) ← 본인(대수에 넣지 않음)
② 위에서 아래로 내리칠 경우
고조의 아버지(一世) → 고조(二世) → 증조(三世) → 조(四世) → 부(五世) → 본인(六世)
와 같이 계산하여 몇 세손(世孫)이라고 할 때, 세(世)에는 자신까지 계산하고 몇 대조(代祖)할 때, 대(代)에는 자신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世)와 대(代)는 본래 같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한갑수의 말대로 하면 오대조(五代祖) 묘제(墓祭)에는 육세손(六世孫) ○○가 오대조(五代祖)에게 올리는 것으로 된다. 매스컴에 서 한번 잘못 보도된 이 주장은 오늘날까지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과거에도 조상을 중심으로 내리 계산할 때는 오세손(五世孫)처럼 세(世)자를 많이 쓰고 자신을 중심으로 위로 계산할 때는 오대조(五代祖)처럼 대(代)자를 쓰는 경향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世)와 대((代)는 본래 같다. 따라서 오세손의 기점이 되는 할아버지는 오대조가 된다.
오대조(五代祖)라 하면 조상의 대수(代數)를 헤아리는 것이므로 기준점이 되는 자신은 대수에 넣을 수가 없다. 자신을 이 대수에 넣으면 자신이 조상의 대수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세손(五世孫)이라 하면 자손의 세수(世數)를 헤아리는 것이므로 기준 점이 되는 그 조상은 이 세수에 넣을 수가 없다. 그 조상을 이 세수에 넣으면 조상 이 자손의 세수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몇 세손이라 하면 기준점이 되는 조상은 세수에서 계산하지 않고, 몇 대조라 하면 기준점이 되는 자신은 대 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祖)가 손(孫)의 세수(世數)에 계산 되 고, 손(孫)이 조(祖)의 대수(代數)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마치 나의 오세손 하면 나를 손의 세수에 계산할 수 없고, 또 나의 오대조라 하면 나를 조의 대수에 계 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불급신(代不及身)이라는 말도 대수를 계산할 때는 본 인을 대수에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世)와 대(代)는 본래부터 동일한 것이다. 다만 진시황이후 왕가(王家)에서는 세(世)를 쓰고, 사가(私家)에서 는 대(代)를 쓰는 경향은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같은 집에 살 때, 삼대(三代)가 한 집에 산다고 한다. 이때는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 것이요, 기점이 되는 몇 대조나, 몇 세손의 조(祖) 와 손(孫)이 붙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보아도 타당하고 우 리 역사상 고문헌에 아무런 혼란 없이 써온 것으로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묘제 축문에는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① 六世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② 五世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③ 五世孫○○ 敢昭告于 顯五世祖考...
④ 五代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⑤ 後孫○○ 敢昭告于 顯先祖考...
위의 보기에서 ①은 한갑수식 발상으로 아예 말이 안 된다. ②, ③, ④는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다만 ②는 내리 계산할 때는 ○世孫, 위로 계산할 때는 ○代祖라는 관례를 살려서 사용한 것이다. ③은 모두 ○世孫, ○世祖를 사용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④는 내리 계산할 때도 ○代孫, 위로 계산할 때에도 ○代祖라 한 것인데 이것을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⑤는 이런 번거로운 것을 다 버리고 오대조(五代祖) 이상은 모두 선조라 쓰고 그 후손은 모 두 후손이라고 쓰는 것이다. 이는 우암(尤菴) 후손들과 노론계열에서 쓰는 예이다. 즉 서인 계열에서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②나 ④의 예문을 많이 사용하므로 대중을 따르는 것이 무난할 듯하다.
이 세(世)와 대(代)에 대해서 필자의 족질(族姪) 이성형(李星衡)이 의문을 가지기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원론적인 것만 대충 말해 주었더니, 그는 이것을 더 발전시켜 정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으나 대부분 이를 시인하려 들지 않더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들이야 믿든지, 말든지 더 이상 설득하려 들지 말고 과거 우리 역사상 쓰인 사례만 조사하여 보이고 더 이상 논란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 후에 그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세(世)와 대(代)》라는 조그만 책자를 만들어 성균관을 위시해서 전국 유명 도서관에 기증했고, 인터넷으로도 서원, 향교, 전례원, 각문중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알렸더니 그 사례를 보고서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이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예시한 것 중에 우리 가문의 일과 관계있는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기로 한다.
①계손(繼孫=敬憲公)→②지시(之時)→③공려(公礪)→④사필(士弼)→⑤우인 (友仁)→⑥상의(尙毅)→⑦지안(之安)→⑧하진(夏鎭)→⑨익(瀷=星湖)
위의 표는 실학자인 성호 이익선생의 계보이다. 보다시피 경헌공과 성호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두고 보면 9대이다. 하지만 이남규(李南珪, 철종6 1855~1907)선생은 경헌공을 모신 구봉사(龜峰祠) 중수기문을 쓰면서 경헌공의 8세손 성호 이익이라고 했다. 이남규선생은 한산이씨(韓山李氏)로 한말 의사(義士)인 동시에 유학자이다. 이런 분이 성호선생의 가계와 대수를 잘못 알고 썼을 리가 없으며 설령 잘못 알고 썼더라도 그 후손들은 그것을 모르고 이 기문을 내걸 리가 없다.
또 공자를 모신 사당을 문묘(文廟)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학행(學行)과 덕망을 겸비한 사람이 별세하면 국가의 논의를 거쳐 이 문묘에 종사(從祀)했는데 이를 승무(陞廡)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승무된 사람은 18현(賢)이다. 우리 역사상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유학자가 18명인 셈이다. 이성형은 그의 《세(世)와 대(代)》란 책에서 이 18현의 후손들이 몇 대조, 몇 대(세)손이라 쓴 사례를 권태현(權兌鉉)님이 조사한 표를 인용하여 모두 예시하여 보였다. 그 결과는 물론 위의 이남규선생이 쓴 예와 같았다.
이처럼 논리적인 측면이나 역사적인 사실이 명확한데도 이를 믿으려 들지 않는다니 한심스럽다. 더 나아가 오히려 과거의 것이 수리상(數理上)으로 보아 잘못되었으니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란다. 필자가 위에서 설명한 논리와 실례를 이해하면 이런 의문이 풀릴 것으로 믿는다. 이와 같이 논리가 정연하고 역사적으로 아무 혼란 없이 써 오던 것을 지금 와서 왈가왈부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어느 면으로 보아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금까지 4대봉제사라 하면 고조할아버지까지 제사를 이르는데, 나를 1대로 잡아야 한다는 사람의 주장을 따르면 고조까지의 제사를 5대봉제사라 해야 한다. 이 무슨 망발인가?
글/부산대학교 한문학과명예교수 文學博士 李炳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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