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史哲/中國風景

광서성(廣西省: Guangxi) 계림(桂林: Guilin)과 이강(리강/漓江: Lijiang)

마장골서생 2009. 3. 6. 23:45

광서성(廣西省: Guangxisheng) 계림(桂林: Guilin)과 이강(離江: Lijiang)

 

 

광서성(廣西省)은 장족의 자치구로 전체 명칭은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Guangxi Zhuangzu Zizhiqu)다. 광(廣)은 넓다는 의미로 226년 광도(廣道)건설과 관련이 있다. 광서는 광동(廣東: Guangdong)과 함께 양광(兩廣: Liangguang)으로 불린다. 진조(秦朝: BC 214: Qin)때 중국의 일부가 되었다. 광서는 송조(宋朝: 960-1279: Song)때 광남서성(廣南西省: Guangnanxi Circuit)이란 지명으로 통치되었다. 원조(元朝:1271-1368: Yuan)이후 광서로 불리다가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성립 이후 소수 민족 장족이 많이 사는 자치구가 되었다.

광서성은 청조(淸朝:1644-1912)시기인 1851 1 11일 동쪽의 Guiping()에서 홍수전(洪秀全:Hongxiuquan)김전기의(金田起義/金田起义;태평천국이 발기한 지역들)한 지역이다. 1885 3 23일에는 베트남 국경에 위치한 진남관[鎭南關(Zhennan: 지금의 Youyi)]에서 중법전쟁[中法戰爭: 또는 청불전쟁(淸佛戰爭)]기간에 진남관전투(鎭南關戰投)가 일어났다. 전쟁기간 동안에, 프랑스군의 침입 경로는 연이은 중국민족주의로 인해 위상이 높아진 풍자재(馮子才: Feng Zicai) 휘하의 군대 쪽이었다.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설립 이후, 광서는 중국의 가장 강력한 군벌 중 하나인 구광서파벌(舊廣西派閥: Old Guangxi Clique)의 기반 역할을 하였다. 육송전(陸荣廷/陆荣:Lujungting) 등이 이끌던 이 군벌은 주변의 호남(湖南: Hunan)과 광동(廣東: Guangdong)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구광서파벌(舊廣西派閥)1920년대 초에 이종인(李宗仁: Lizongren)과 백숭희(白崇禧: Baichongxi)가 이끌던 신광서파벌(新廣西派閥: New Guangxi Clique)로 바뀌었다.

광서는 백색기의(百色起義)로도 유명한데, 1929년 등소평(鄧小平: Dengxiaoping)이 이끌던 공산당이 발기하였으나, 국민당(國民黨) 군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1944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때, 일본은 대륙타통작전(大陸打通作戰) 또는 예상계회전(豫湘桂會戰: Operation Ichigo)의 일환으로 호남 광서간 철도를 점유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연결하기 위해 광서지역을 침략했다. 그 작전은 성공하여 광서지역의 모든 도시들은 일본의 점령하에 놓여졌다.

남쪽 멀리 있던 광서는 인민공화국이 설립된 이후에도 공산당의 무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공화국이 창설된 지 두 달 후인 1949 12월에 통합되었다. 1958년 주은래(周恩來/周恩来: Zhouenlai)의 추천으로 장족(壯族: Zhuang)의 자치지역으로 전환되었다. 이런 이유는 장족은 중국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집단의 하나이며, 광서지역에 주로 거주하기 때문이다.

광서는 역사적으로 내륙에 위치 하였으나, 1952년 광동의 일부 해변지역이 광서에 편입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일부 지역의 중공업발전이 이루어 졌지만, 그곳은 전세계 사람들의 매력을 끄는 여행지로 더욱 알려져 있었다. 1990년대의 중국의 경제성장기에도 광서지역이 뒤처졌지만, 최근에는 광동의 기업들이 저임금을 찾아 생산기지를 건설하면서 소득증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림(桂林: Guilin)은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북동쪽 이강(漓江: Lijiang)의 서쪽에 위치한다.

 

 

계림“목서[木犀: Muxi, 금계(金桂)의 꽃]의 숲”이란 의미로, 수많은 금계나무가 도시를 향기롭게 하기 때문이다. 계림은 그 독특한 풍경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하다. 우리나라 제주시와 우호도시를 맺고 있다.

1921년에는 손중산(孫文/孫中山: Sun Yatsen)이 이끄는 북원정군(北遠征軍)의 본부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1940년에 현재의 계림의 명칭이 사용되었다. 1981년에 북경(北京: Beijing), 항주(杭州: Hangzhou), 소주(蘇州: Suzhou)와 함께 자연과 역사문화유적 보호지구로 지정되었다.

 

정강왕성(靖江王城: Jing jiang wang cheng)

 

정강왕부(靖江王府)라고도 한다. 계림시 중앙에 위치하며 웅장하고 장엄한 벽으로 둘러 쌓여있어서 왕족과 그 가족들의 “내부 도시” 역할을 하였다. 4전각과 4궁전 그리고 40여 개의 건축물들이 본궁을 감싸고 있다. 건물들의 배치는 명조(明朝)풍이다. 독수(獨秀/独秀:Duxiu)봉을 기준으로 승원문(承遠門/承远门)、숭운전(承運殿/承运殿)、침궁(寢宮/寝宫)、어원(御苑) 등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明)을 설립한 홍무제(洪武帝:1372)15년에 건축이 시작되었다. 남송(南宋:960-1279)의 고종(高宗: Gaozong)이 된 조구(趙構: Zhaogou)와 원조(원조:1371-1368)의 혜종(惠宗)도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살았다. 홍무제의 5존 조카 Zhu Shouqian이 처음으로 정강의 왕이 된 후 12세대 동안 14왕이 그곳에서 살았다.

 

 

청조(淸朝:1644-1912)시기엔 관서지방의 관청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중화민국(中華民國)시절 손중산(孫文/孫中山/孫逸仙: Sun Yatsen)이 북벌을 위해 본부를 설치한 곳도 이곳이다. 1925년 겨울 중산(中山:Yatsen)공원으로 개칭되었다.

정강왕성은 600여 년의 역사를 거치며 몇 번의 화재로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중국에서 왕성으로 가장 잘 보존되고 있어서 당시 조각된 난간과 대리석 계단을 볼 수 있다. 지금은 광서사범대학(廣西師範大學)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계림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전통건축과 지역 문화가 어우러진 특성상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칠성암(七星岩: Qixingyan)

 

칠성암은 계림시내 이강(漓江: Lijiang) 동쪽의 칠성공원(Qixing Gongyuan)내에 있다. 공원입구엔 송조(宋朝: 960-1279)때 만든 화교(花橋)가 있으며, 공원 내엔 보타산(普陀山: Putuo)과 낙타산(駱駝山: Camel hill) 등이 있다.

 

 

칠성암은 당조(唐朝: 618-907)시기인 1300여 년 전의 탐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동굴의 온도는 연중 섭시 20도 정도이다. 가장 높은 곳은 27m 이고 가장 넓은 곳은 49m 이다. 이 종유굴(鍾乳窟)의 길이는 대략 1km 정도로 관람에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카스트 지형에 형성된 계림의 특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현란한 조명과 어우러진 동굴내부는 천연적인 프레스코그림 같으며, 곰을 먹는 용, 호랑이를 잡는 곰 등의 절경이 있다.

 

복파산(伏波山: Fuboshan)

 

정강왕성(靖江王城: Jing jiang wang cheng)의 북동쪽 강변에 있다. 강에서의 높이는 63m이다. 산의 절반은 강 쪽에 위치한다. 파도를 억제하는 산이라고도 하는 데 이곳에 물이 다다르면 산에 막혀서 회전하기 때문이다.

공원에 들어서 우측에서 보는 쌀독은 1000여명 정도의 양이란다. 남쪽은 대나무와 야자수 그리고 다양한 꽃들이 펼쳐진다. 산의 남쪽 비탈은 돌아온 진주 동굴인데, 당조(唐朝:618-917)와 송조(宋朝: 960-1279)시기의 불상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송대의 유명한 서예가이며 화가였던 Mifu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천장에 매달려 거의 바닥에 닿을 듯한 어떤 바위는 검을 시험한 바위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어떤 황제가 자신의 검을 시험하여 아래를 잘랐다고 한다. 돌아온 진주 동굴 근처의 서쪽의 돌계단은 계수정(癸水亭: Kuishui)과 정상으로 향한다. 그곳에선 새처럼 이강(漓江)을 굽어볼 수 있다.

 

상비산(象鼻山: Xiangbishan)

 

계림시 남쪽 이강(漓江)과 도화강(桃花江)합류하는 곳에 있다. 말 그대로 코끼리가 코로 물을 먹는 형상이다. 계림의 상징이고, 해발 220m 이다. 코와 다리 모양 사이에 있는 수월동은(水月洞: Shuyuedong) 물에 침식되어 만들어진 반원 모양이다. 이런 현상은 독특한 것으로, 당송(唐宋)시기에 이를 찬양한 글들이 근처 벽들에 새겨져 있다.

 

 

산 정상엔 명조(明朝: 1368-1644)때 세운 보현탑(普賢塔: Puxianta)이 있는데, 멀리서 보면 칼자루 모양 같다. 근처에 작은 섬은 이강(漓江)과 주변경관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장소이다. 물속에 발을 담그고 맥주를 마시며, 지역의 쌀 국수와 바비큐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강(漓江: Lijiang) 이하 리강(漓江)

 

“중국의 북쪽엔 만리장성(萬里長城: Wanli Changcheng)이 있고 남쪽엔 리강(漓江: Lijiang)이 있다는 말은 유명한 말이다. 리강은 보통 중국의 대표적인 자연풍경으로 묘사된다. 리강 여행은 계림여행의 으뜸이고 중국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로, 계림에서 리강 크루즈를 하지 않았다면 백두산 가서 천지를 안 본 꼴이다.

 

 

리강은 계림 북쪽의 자원현(資源縣: Xingan)의 묘인산(猫儿山)에서 발원(發源)하고 계림(桂林: Guilin), 양삭(陽朔: Yangshuo)을 거쳐 오주시(梧州市: Wuxhou)의 서강(西江)으로 흘러 든다. 총 연장 437km로 계림과 양산 간의 연장이 86km 인데, 계림 남쪽으로 40분 거리의 Zhujiang 부두에서 양삭에 이르는 54km가 통상적이 코스이다.

 

 

 

Zhujiang부두에서 양삭까지 수천 수백의 괴이한 봉우리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스치는 강바람과 죽순같이 늘어선 봉우리들을 감상하는 것은 자연이 준비한 화랑에 들어선 듯하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에 다양한 모양의 환상적인 봉우리와 수정 같은 물 푸른 산, 대나무 숲들 등과 어우러진 아연한 경치를 즐기려면 시선을 빨리 놀려야 한다

 

 

백미는 지금부터다. 뾰족한 봉우리가 갑자기 나타나고 강이 S자를 그리며 흐른다. 들판에 물소들이 순찰하고, 물위에선 오리들이 헤엄치고, 시골 집들 앞에선 농부들이 벼를 수확하고,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고 아이들은 노래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전원적이며 아름다운 풍경들은 도시생활의 지루함을 날려버리고 재충전하는데 그만이다.

 

 

노적암(蘆笛岩/芦笛岩: Ludi Yan, Reed Flute Cave)

 

노점암은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7km 떨어진 도화강(桃花江) 서쪽 광명산(光明山)의 중턱에 있다. 이 동굴은 입구 근처에 무성한 갈대들이 바람에 스칠 때 피리소리를 낸다고 하여 노적암(蘆笛岩)이라 한다. 길이는 800m 로 관람에는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예술적인 자연궁전”으로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월량산(月亮山: Yueliang Shan)

 

계림시에서 남쪽으로 65공리(公里:km) 떨어진 양삭현(陽朔縣)의 남쪽에 있다. 산을 관통하고 있는 반원의 구멍은 대수층(帶水層)의 석회동굴 형태로 남아 있다. 아크에 오르는데는 20분 정도가 소요되며 입장료를 지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