幽默雜事/自虐山行

내 고향은 문경 새재

마장골서생 2009. 3. 1. 00:28

문경 새재

(본 내용은 신재동님의 블로그 내용이 조선일보에 떠 있어 고향생각도 나고 하여 퍼다가 편집한 것이다. 님께 감사드리며..)

난 초등학교 내내 여기로 소풍을 갔었는데, 언제나 이 길을 다시 걸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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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길을 지나 구름위로 올라서니

굽이굽이 휘도는 새재길 삼십리 

사람은 나무가지 위를 밟는 것 같고

말은 푸른 병풍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구나

소세양(1486~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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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 온 골짜기 얼음으로 덮였더니

봄을 맞아 계곡에 물 흐르기 시작했네

자연의 경치 시절따라 달라짐이여

사람의 마음 늙어가면서 더 끌리는 구나 

서거정(1420~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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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틀바위' 기름짜는 틀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공명은 깨어진 시루와 같고

였다 흩어지는 뜬구름 같은 것

이제 나 홀로 산으로 가 노라니

푸른 숲 사이로 노을이 진다.

임억령(1496~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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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제2관문 조곡관

 

가을 바람 쓸쓸하여 초목이 다 시드는데

뜰 가득 노란 국화 어찌하여 피었는고

진실로 만절한 향이 가실 때가 없어라

권섭(1671~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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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길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죽령이나 추풍령을 넘어서 가는 길도 있는데 너나없이 조령, 즉 문경새재를 넘었다. 문경의 옛 이름이 '문희' 였는데 그 뜻이 '기쁜소식을 듣게 된다'였다. 그러니 과거 보러 가는 선비가 구태어 죽령이나 추풍령 처럼 뚝뚝 떨어지는 이름의 고개로 넘어 가겠는가? 이왕이면 기쁜소식을 듣게 된다는 문희고개 즉 문경새재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심지어 전라도 선비들도 굳이 먼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다나!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길손들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

시내도 언덕도 하앟게 얼었는데

눈 덮인 칡넝쿨엔 마른 잎 붙어있네

마침내 똑바로 새재를 벗어나니

서울 쪽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네

정약용(1762~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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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언더우드'여사의 황해도로 떠난 신혼여행기에 주막이 나오는 장면:

"하루종일 가마를 타고 가는데 가마속 좁은 공간에서 흔들려야 했다. 지긋지긋하게 좁은 길로 바위를 넘고 구릉을 지났다. 하룻밤 쉴 곳은 여관도 아닌 조금 큰 초가집, 주막이었다. 여행객들이 가득찾고 온갖 오물이 널려 있었고 벌레들이(모기,빈대) 득실 거렸다. 지나가는 길에 호랑이나 살쾡이들이 나타나는 곳도 있었고 위험한 산돼지도 있었다. 그보다 무서웠던 것은 포악한 산적떼의 손아귀에 걸려드는 것이었다. 먹을 것은 열악해서 겨우 목숨을 유지할 정도의 음식 밖에는 없었다."

                   

살랑살랑 솔 바람 불어오고

졸졸졸 냇물 소리 들려오네

나그네 회포는 끝이 없는데

산 위에 뜬 달은 밝기도 해라

덧없는 세월에 맡긴 몸인데

늘그막 병치레 끊이질 않네

고향에 왔다가 서울로 가는 길

높은 벼슬 헛된 이름 부끄럽구나

유성용(1542~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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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힘 넘치고 구름은 도도히 흐르네

산 속의 물 내달아 흰 무지개 이루었네

성난 듯 낭떠러지 입구 따라 떨어져 웅덩이 되더니

그 아래엔 먼 옛적부터 이무기 숨어있네

푸르고 푸른 노목들 하늘의 해를 가리었네

나그네는 유월에도 얼음이며 눈을 밟는다네

깊은 웅덩이 곁에는 국도가 서울로 달리고 있어

날마다 수레며 말발굽이 끊이지 않는다네

즐거웠던 일 그 몇번이며 괴로운 일 또 몇번이었던가

하늘 땅 웃고 어루만지며 예와 오늘 곁눈질하네

큰 글자 무르녹은 듯 바위에 쓰여 있으니

다음날 밤에는 응당 바람 비 내리리라

이황(1501~1570)

 

새재는 굽이굽이 고갯길이요

용추는 깊고 깊은 연못이라네

구름은 산허리를 두르고

아침 해 산머리에 빛나네

어여쁜 새는 나무에서 울고

미끈한 물고기 연못에서 뛰네

저들이야 모두 제 뜻대로 살건만

나는야 갈길 멀어 석양 길로 접어든다

신익전(1605~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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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귀정(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구 경상감사가 엄무를 인수인계하던 교인처)

'경상감사 도임행차'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는데, 총300여명으로 구성된 행열은 50여개가 넘는 깃발과 말을 탄 사람들 악사들, 군졸들의 행열, 선비들의 행열, 거대한 가마를 탄 경상감사, 그뒤를 따르는 관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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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찬 폭포소리 물 속에 잦아들고

에워싼 나무들로 그윽하고 깊어라

용아 너는 예로부터 어떻게 닦았기에

지금 여기 누워서도 놀라지 않느냐?

홍언충(1473~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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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바위

 

옛날 인근에 살던 어느 큰 부자가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었는데 자라면서 점점 몸이 허약해서 아무 일도 못했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문경에 있는 도사를 찾아가 물으니 '당신 집터를 둘러싼 돌담이 아들의 기운을 누르고 있으니 아들이 담을 직접 헐어 그 돌을 문경새재 책바위 뒤에 쌓아 놓고 매일 기도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요'라고 일렀다. 이후 아들은 돌담을 헐고 삼년에 걸처 돌을 책바위까지 나르니 허약하던 몸이 어느새 튼튼해 젔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결국 장원급제까지 하였다. 이후 이곳을 넘나들던 과거객들이 책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면 장원급제를 한다는 전설이 전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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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관문 조령관

 

흐르는 시냇물 뱀처럼 날래고

기이한 봉우리 창검을 세운 듯

찬바람 맞으며 서울로 가는 길

필마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네

조인도(1585~1664)

 

산 꿩은 꾹꾹꾹 시냇물은 졸졸졸

봄비 맞으며 필마로 돌아오네

낯선 사람 만나서도 반가운 것은

그 말씨 정년코 내 고향 사람일세

이황(1501~1570)

                                 

단풍 든 새재를 나귀 타고 넘는데

세 해 지난 베옷에 몸종 하나뿐

나는 새 바라보며 솔바람 맞노라니

내 모습 그야말로 그림 속 그 시인

정희량(1469~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