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샌델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4.0과 샌델에 열광하는 대중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정규재TV 2012년 08월 01일자
더타임스의 경제편집장이 쓴 책이 '자본주의 4.0'이다. 고전자본주의 1.0에서 케인스의 2.0과 신자유주의 3.0을 지나 이제 4.0으로 진화하자는 주장이다. 청와대의 대통령 측근들이 강조하는 진화적 공생발전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모양이다. 경제가 진화한다는 것과 진화를 계획한다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 청와대 측근이나 저자인 칼레츠키의 오류만은 아니다. 오류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자는 낭만주의 루소나 마르크스의 혁명론에까지 좌익 사상 전반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다. 자본주의는 망할 것이라는 예측과 그러므로 망하게 만들자는 주장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실로 어이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대중의 반시장 정서가 아니라 지식인들의 '반정부 정서'가 저자의 고민이다. 선(善)한 정부가 '자~알 하면' 모든 시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왜 정부를 불신하냐는 항변이다. 정부와 시장이 대립만 할 것이 아니라 잘 협조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자는 정부 조직과 시장 기구를 마치 별개의 대립적인 사회조직으로 혼동하고 있다. 추상적 정부를 구체적 행정부처와 혼동하고 전경련을 시장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4.0의 정책을 언급한 부분은 좌충우돌이어서 무정부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겠다.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내면 되기 때문에 국가부채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저자는 대외지급 능력과 국가부채를 혼동하고 있다)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재앙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일련의 정교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면 실로 궁색해지고 만다. 무엇이 정교한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아니 그런 설명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
정부 규모는 더 작아져야 하고 정부 권능은 더 커져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런 조립이 가능하다는 순진성이 부럽다. 민주주의가 잘 돌아가야 하고 여론의 힘을 줄이는 것이 좋다는 주장에 이르면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콤플렉스를 드러내고 만다. 좌파 지식인의 우파 전향인 셈이다. 정부 지출은 줄이고 세금은 늘리자는 모순된 주장도 그렇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을 유능한 정부가 '자~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터놓고 대화하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신뢰가 회복되어야 하며, 좋은 정치인을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측근들이 가는 곳마다 떠들어댈 뿐더러 언론까지 가세해 4.0을 부풀리는 것은 한국 지식계의 황폐함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저자 자신도 애매모호함이 4.0의 특징이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원칙과 변칙, 복잡성과 모호성을 이런 식으로 짜깁기하면 곤란하다.
샌델 열풍도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억대를 넘기는 거액의 강사료를 받고 지난주 한국을 다녀간 샌델은 소위 공동체주의자다. 공동체의 가치에 헌신하는 덕성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도 아름답지만 공동체 가치기준을 누가 정하는지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포퓰리즘이거나 가부장적 권위주의 체제라야 가능한 세계관이다. 상인의 폭리를 비판하고 가치배분에서 시장원리를 배제하자는 철학이 이토록 유행하고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의외다. 최고의 플루트는 플루트를 가장 잘 부는 사람에게 배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누가 플루트를 가장 잘 부는지, 누가 플루트 분야에서 가장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의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정부라는 우월적 판단자를 전제해야 비로소 풀리는 문제다. 그게 공동체주의라는 사상의 함정이다. 폭리는 상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공급이 만들어진다는 시장역학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도덕적 구호를 현실의 해법인 것처럼 가장하는 이런 수법도 매우 오래되었다. 마치 박원순 씨가 그래왔던 것처럼 서울대 법대라는 권위(아쉽게도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와 하버드대 교수요 더타임스 편집장이라는 권위에 의존한 고약한 마케팅이다.
암표상의 부도덕을 준엄하게 꾸짖는 책이 바로 샌델의 최근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지난 주말 연세대에서 있었던 샌델의 신간도서 판촉행사에는 1만여 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여기엔 샌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이들은 공짜 입장권을 구해 2만원, 3만원에 되팔았다. 구름 같은 인기의 조력자인 암표상의 등장을 샌델은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정의(justice) 논변으로 유명한 소위 공동체주의 철학자가 샌델이다. 공동체주의는 번역하자면 전체주의의 낭만형 버전 정도 될 것이다. 잘해봤자 국가와 정부가 도덕의 독점 공급자가 되는 그런 사회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아주 반가워할….
그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는 무려 100만부나 팔렸다. 미국서는 무명의 책이 한국에서 이토록 팔린 것은 기현상이다. 덕분에 출판사들이 대거 샌델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전작의 각색이라고 할 만한 《돈으로~》가 나오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출판사의 의도가 무엇이든 독자들은 시장 아닌 공동체를 강조하는 샌델의 결론에만 주목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반(反)시장, 반기업 정서를 증폭시킨다.
샌델 열풍은 한국의 지식계가 부박(浮薄)하다는 증거다. 철학 교수 중에 경제를 아는 이가 드물고 경제학 교수 중에 철학적 논변을 전개할 수 있는 학자가 없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나 소설가 복거일 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름조차 찾기 어렵다. 재미는 있지만 편협하고,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지엽적이며, 시장경제를 비판하지만 도덕적 호소 외에는 어떤 대안도 없는 공허한 주장이 바로 샌델이다. 허리케인이 닥친 마을의 상점 주인이 창고의 물건을 꺼내 이재민을 돕기는커녕 폭리를 취하는 장면에 대한 악의적 묘사는 더욱 그렇다. 누구라도 이 부도덕한 폭리 상인과 소위 시장경제 체제에 적개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진면목은 전혀 다르다. 조선시대 실화라고 전해지는 이야기다. 한양에 흉년이 들어 쌀값이 몇 배씩 폭등하면서 백성들의 아우성도 비등했다. 조정은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폭리를 취하는 미곡상은 참수하겠다는 방을 곳곳에 내붙였고. 이때 한 신하가 뛰어 들어왔다. “한양 쌀값이 폭등했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 전국의 상인들이 쌀을 지고 한양으로 달려오고 있는데 목을 자른다면 모두 돌아가고 말 것”이라며 이 신하는 왕을 설득했고 기어이 한양 백성들을 살려냈다. 샌델의 몇 수 위인 이 조선선비의 이름은 ‘위대한 연암 박지원’이다.(나의 아버지 연암 박지원,過庭錄) 샌델은 눈앞의 폭리만 보았을 뿐 그것이 장차의 균형가격을 만들어 내면서 다양한 재화를 절묘하게 공급하는 동태적 흐름은 보지 못했다. 그는 상점 주인이 평소 열과 성을 다해 창고를 관리해왔다는 사실도 보지 못했다. 폭리는 그것에 대한 작은 보상이며 다른 상인들이 물건을 싣고 달려오도록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장의 지시요 명령이다. 시장은 이렇게 정부보다 빠르게 물자부족을 해소한다. 더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는 그런 재화 부족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른 상인들을 꾸준히 자극한다. 일상에서 웬만하면 재화부족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샌델의 눈에는 이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너무도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개인의 도덕심에 의존하지 않고도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힘을 샌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샌델은 자신이 직접 해답을 주려는 것은 아니라고 겸손을 떤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다. 답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처음부터 답이 없다. 자신이 비판하는 그 어떤 부도덕한 사례에 대해서도 실천적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의 철학적 기반 위에서는 대책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의 주장처럼 도덕의 가치질서에 따라 재화가 분배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도덕이라는 이름의 국가 폭력이 시장을 대체하는 세상은 이미 주자학적 도덕세계나 봉건적 계급사회에서 충분히 경험한 바다. 이런 공론(空論)에 한국 사회가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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